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한국 최초의 선교사
한국에 첫 번째 파송된 선교사
[1956.4.20]


일본에 본부를 둔 북극동 선교부장 폴 시 앤드루스(Paul C. Andrus)는

한국에 복음선교사로
돈 지 파웰(Don G. Powell)장로와
리차드 리 데튼(Richard Lee Detton)장로를 보냈다.

이 때 두 장로는 김호직 박사의 개인 보증으로 입국사증을 얻어 첫 선교사로 내한 했다.
당시 선교사가 일본에서 한국을 오느데는 한일간의 국교정상화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비자를 받는데 어려움이 많았었다.

1956년 5월 초순 Richard L. Detton 장로와 Don G. Powell 장로가 김 호직 박사님의 개인 보증으로 입국사증을 얻어 드디어 내한하여 부산에 찾아왔다.

부산 동대신동 검정다리옆 이층 집을 전세로 빌려 주일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지부장으로 Detton 장로가 수고해 주었고 주일학교를
박재암 형제가 맡았었다.

파웰 장로는 21개월 된 딸을 가진 신혼의 몸으로 선교사업을 나왔을 만큼 신앙심이 강했으며, 이들의 활발한 선교사업은 한국에 참된 복음이 급속히 전파되는 전환점을 이루었다.
파웰 장로는 서울에서 봉사했고, 데톤은 부산에서 봉사했다.

당시 기록상의 회원 총수 64명.
최초로 부동산 매입. 서울 성동구 유락동 산 12번지.
서울 서대문구 신문로 서울 고등학교에서 예배를 보다가 서울 성동구 유락동으로 옮김.


돈 파웰 형제
한국에 파견된 최초의 선교사


[한국 교회 50주년 기념, 한국 지역대회, 2005.7.31,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힝클리 회장님, 저는 말씀하는 도중에 혹시 심장마비가 일어날까봐 심장마비 구급약을 갖고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머무른 지가 약 열흘 정도 됩니다.

저는 1956에 한국을 떠난 후로 이번이 한국에 처음 돌아온 것입니다.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정말 주님의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그분의 손길이 한국에 닿아서 이 나라와 또 한 이 백성의 마음에 닿으셨습니다. 제가 한국에 옛날에 처음 왔을 때 김호직, 홍병식 형제님 등 몇 분이 저를 만나주셨고 육군 지프차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제가 한국에서 차량이라고 본 것은 육군 지프차와 육군 트럭을 제외하고는 차량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때는 세단차도 없었고 고속도로도 고층 건물도 호텔이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이 나라는 그야말로 황폐한 나라였습니다. 저는 종종 한국에서 봉사한 첫번째 선교사라고 듣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처음 선교 사업을 한 사람은 M1 소총을 들고 헬멧을 쓴 군인들이었습니다. 저희들은 1956년 김호직 박사님과 64명의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64명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충실한 말일성도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소총만 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몰몬경도 같이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군인 형제님들이 저와 제 동반자가 한국에서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이 성도들을 잘 가르쳐 주시고 길을 닦아주신 것에 늘 감사합니다. 상황은 대단히 가혹했습니다. 그때는 전기도 없었고 온수도 목욕시설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먹는 음식과 마시는 물에 대해 아주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인쇄된 자료도 없었고 몰몬경 번역된 것도 없었고 어떤 인쇄 장비 복사기도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영에 의해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이 이렇게 될 거라고 꿈도 꾸지 못했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제 와서 보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압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압니다. 그분이 우리의 형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러분 한분 한분을 그분의 형제와 자매로 사랑하십니다. 힝클리 회장님은 하나님의 진실 된 선지자이십니다. 이 사업은 우리의 사업도 힝클리 회장님의 사업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한 뒤 힝클리 회장은 워커 장로에게 말씀을 즉석에서 부탁했다.

 [한국교회 50주년 한국지역대회]
 

최초 선교사 입국 전의 교회 역사

교회의 복음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옴으로써 한국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의 복음 역사가 시작되었다.

*1921년  



 

 

데이비드 오 멕케이 사도-1921 - 후에 교회 대관장한국 땅을 최초로 밟은 말일성도.
데이비드 오 멕케이 대관장이 십이사도 시절인 1921년에 일본을 거쳐 부산에서 만주까지 여행한 것이 기록상 한국땅을 밟은 첫 번째 말일성도였다.
데이비드 오 멕케이(David Oman Mckay) 대관장은, 조지 앨버트 스미스 대관장의 뒤를 이어 교회 9대 대관장으로, 78세에 대관장이 되엇으며, (재임 1873.9-1970.1, 96세). 유타주 헌츠빌 출생. 유타대학교 졸업. 1906(32세) 십이사도. 1922-24(49-51세) 유럽선교부장. 남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미 여행(81세). 1956년. 로스 엔젤레스 성전 헌납(83세). 1951.7.20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선교사로 부름받는 젊은이들의 수가 줄어들 게 되자, 대관장단은 칠십인에게 필요 사항을 충족시키도록 도우라고 지시하다. 따라서 교회 회원들이 복음 선교사로 봉사하게 되었다.

*1945

2차 세계대전 말, 남한에서 주둔하던 일본군의 항복을 미국 편에서 이끌어낸 덴마크 씨 젠슨(Denmark C. Jensen) 대령은 말일성도의 일원이었다. 젠슨 형제와 다른 말일성도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1945.10.26

그 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미군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고 있었던 1945년 10월 26일에 말일성도인 루드 로빈슨(Ruth Robinson) 형제(당시 하사가 다른 12명과 함께 군인의 몸으로 인천항 우리나라에 들어와 1년간 체류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46.10.26

루드 로빈슨(Ruth Robinson) 형제 미국으로 돌아감.

*1950.6.25

 

 

한국에 말일성도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은 1950년 6.25동란(한국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한국에 파견되었던 미국 군인들 중에 있었던 말일성도들이었다.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말일성도들은 영내에서 교회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국 동란으로 U.N.군이 참전하게 되고 이들과 함께 참전한 미국 군인 중 다수의 말일성도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실제로 이들은 군대내에서 활동하며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쳤고 복음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한국인들에게 전도함. 한국 동란 직후 고 김호직 박사가 미국 코넬 대학에 유학하여 말일성도였던 교수의 감화로 입교. 한국인 최초의 신자가 됨. 영양학을 전공. 박사 학위 취득.
*6.25때 들어온 종교들 / 유엔군참전과 함께 전교
 모르몬교 신도 6만여명으로 가장 활발 (동아일보/1982.6.18)

*1951년
 

 

 

최초의 교회 모임최초의 교회모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영어 성경 공부와 더불어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서울, 대구 등지에서 부산과 유사하게 영내 교회 모임과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52.8.3

 

  

 

한국에서의 첫 번째 침례식
첫번째 침례식부산 송도 앞 바다에서 김호직 장로(당시 부산 수산대학 학장)의 아들 김신환 형제와 딸인 8세의 김영숙 자매를 포함한 4명의 하나님의 자녀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침례식에서 침례를 받았다. 김호직 박사는 1951년 9월 미국에서 귀국하여 12월 부산 수산대학 제4대학장에 취임 (1954년 1월까지). 귀국 때 공항에 내려 바로 부산의 미군부대로 달려가 교회 예배모임에 참석하는 등 신앙의 모범을 보였으며 본격적인 한국에서의 신앙의 씨를 뿌리는데 평생을 기여했다. 그는 1955.3.10부터 문교부 차관에 임명되어 1956.6.18일 까지 역임했다.

*1953-1954

Dr. Spencer J. Palmer 군목으로 종군. (후에 한국 선교부 제2대 선교부장이 됨)

*1954

Dr. Robert H. Slover 육군 대령으로 종군

*1954.9
 

당시 12사도인 해롤드 비. 리(Harold B. Lee)장로가 미 국방성의 배려로 미 육군 준장 계급장을 달고 내한 미군 부대를 방문, 미공보원에서 환영대회를 가짐.
초기 선교사/Delton, Powell, Newell Kimball, Larry Orme, Claude Newsman, Gail E. Carr, Lee Roy Fry, Edward Brown, Cline G. Campbell

*1955.3.20
 

육군 중위 팔머(2000.11 별세) 군목의 노력으로 박재암, 오계희, 권익현 등 여러 형제들이 부산 송도에서 침례 받음.

*1955.8.2 

 

 

 

 

당시 12사도 정원회 회장이고 대관장단 보좌이던 죠셉 필딩 스미스(Joseph Fielding Smith)장로가 방한하여 미8군 예배당에서 미군 성도들과 한국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대회를 가졌다. 스미스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남산 장충동 소재 지금의 신라호텔 부근의 공원 언덕에 올라 서울이 잘 내려다 보이는 장소에서 한국을 복음 선포 지역으로 헌납하였다. 옛 영빈관 뒷산. [기념 사진]  그는 헌납 기도를 통해 이 땅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택된 땅이 되고, 한국 백성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지도록 축복하며, 한국의 안정과 번영을 약속했다.
「한국 지방부 조직」
같은 날 저녁 모임에서 북극동 선교부장 힐튼 에이 로버트슨(Hilton A. Robertson)에 의해 부극동 선교부 산하 한국 지방부가 조직되었으며, 십이사도 정원회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의 성별로 김호직 장로가 초대 지방부장이 되었다. 초기 지방부 산하에는 아직 지부 조직이 없었고 부산 그룹, 서울 그룹 등 미군 성도들이 중심이 된 그룹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1956년 6월 한국 지방부 산하 서울지부가 설립되었다.

  dia_pink.gif 한국 교회 50년 약사
dia_pink.gif 한국 선교의 시작 - 부산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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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대 선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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