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서기 1950년 6.25사변 참전 미군에 의하여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시작함과 때를 같이 하여 제1차 한국정부 파견 유학생으로 미국 코넬대학에서 영양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김호직 박사가 학위뿐만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교회의 복음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옴으로써 한국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복음 역사가 시작되었다.  [50년 : 1955.8.2 - 2005.8.2]

dia_pink.gif 한국 선교의 시작 - 부산 지부    dia_pink.gif 최초 교회 조직 한국 지방부   dia_pink.gif 최초 교회 한국지방부 이후

*1921년  



 

 

데이비드 오 멕케이 사도-1921 - 후에 교회 대관장한국 땅을 최초로 밟은 후기성도.
데이비드 오 멕케이 회장이 십이사도 시절인 1921년에 일본을 거쳐 부산에서 만주까지 여행한 것이 기록상 한국땅을 밟은 첫 번째 후기성도였다.
데이비드 오 멕케이(David Oman Mckay) 회장은, 조지 앨버트 스미스 회장의 뒤를 이어 교회 9대 회장으로, 78세에 회장이 되엇으며, (재임 1873.9-1970.1, 96세). 유타주 헌츠빌 출생. 유타대학교 졸업. 1906(32세) 십이사도. 1922-24(49-51세) 유럽선교부장. 남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중미 여행(81세). 1956년. 로스 엔젤레스 성전 헌납(83세). 1951.7.20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선교사로 부름받는 젊은이들의 수가 줄어들 게 되자, 대관장단은 칠십인에게 필요 사항을 충족시키도록 도우라고 지시하다. 따라서 교회 회원들이 복음 선교사로 봉사하게 되었다.

*1945

2차 세계대전 말, 남한에서 주둔하던 일본군의 항복을 미국 편에서 이끌어낸 덴마크 씨 젠슨(Denmark C. Jensen) 대령은 후기성도의 일원이었다. 젠슨 형제와 다른 후기성도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1945.10.26

그 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미군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고 있었던 1945년 10월 26일에 후기성도인 루드 로빈슨(Ruth Robinson) 형제(당시 하사가 다른 12명과 함께 군인의 몸으로 인천항 우리나라에 들어와 1년간 체류하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46.10.26

루드 로빈슨(Ruth Robinson) 형제 미국으로 돌아감.

*1950.6.25

 

 

한국에 후기성도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은 1950년 6.25동란(한국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한국에 파견되었던 미국 군인들 중에 있었던 후기성도들이었다.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후기성도들은 영내에서 교회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국 동란으로 U.N.군이 참전하게 되고 이들과 함께 참전한 미국 군인 중 다수의 후기성도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실제로 이들은 군대내에서 활동하며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쳤고 전임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한국인들에게 전도함. 한국 동란 직후 고 김호직 박사가 미국 코넬 대학에 유학하여 후기성도였던 교수의 감화로 입교. 한국인 최초의 신자가 됨. 영양학을 전공. 박사 학위 취득.
*6.25때 들어온 종교들 / 유엔군참전과 함께 전교
 모르몬교 신도 6만여명으로 가장 활발 (동아일보/1982.6.18)

*1951년
 

 

 

최초의 교회 모임최초의 교회모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영어 성경 공부와 더불어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서울, 대구 등지에서 부산과 유사하게 영내 교회 모임과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52.8.3

 

  

 

한국에서의 첫 번째 침례식
첫번째 침례식부산 송도 앞 바다에서 김호직 장로(당시 부산 수산대학 학장)의 아들 김신환 형제와 딸인 8세의 김영숙 자매를 포함한 4명의 하나님의 자녀가 한국에서의 첫 번째 침례식에서 침례를 받았다. 김호직 박사는 1951년 9월 미국에서 귀국하여 12월 부산 수산대학 제4대학장에 취임 (1954년 1월까지). 귀국 때 공항에 내려 바로 부산의 미군부대로 달려가 교회 예배모임에 참석하는 등 신앙의 모범을 보였으며 본격적인 한국에서의 신앙의 씨를 뿌리는데 평생을 기여했다. 그는 1955.3.10부터 문교부 차관에 임명되어 1956.6.18일 까지 역임했다.

*1953-1954

Dr. Spencer J. Palmer 군목으로 종군. (후에 한국 선교부 제2대 선교부장이 됨)

*1954

Dr. Robert H. Slover 육군 대령으로 종군

*1954.9
 

당시 12사도인 해롤드 비. 리(Harold B. Lee)장로가 미 국방성의 배려로 미 육군 준장 계급장을 달고 내한 미군 부대를 방문, 미공보원에서 환영대회를 가짐.
초기 선교사/Delton, Powell, Newell Kimball, Larry Orme, Claude Newsman, Gail E. Carr, Lee Roy Fry, Edward Brown, Cline G. Campbell

*1955.3.20
 

육군 중위 팔머(2000.11 별세) 군목의 노력으로 박재암, 오계희, 권익현 등 여러 형제들이 부산 송도에서 침례 받음.

*1955.8.2 

 [공식 한국
 교회 설립]

  

 

당시 12사도 정원회 회장이고 제일회장단 보좌이던 죠셉 필딩 스미스(Joseph Fielding Smith)장로가 방한하여 미8군 예배당에서 미군 성도들과 한국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대회를 가졌다. 스미스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남산 장충동 소재 지금의 신라호텔 부근의 공원 언덕에 올라 서울이 잘 내려다 보이는 장소에서 한국을 복음 선포 지역으로 헌납하였다. 옛 영빈관 뒷산. [기념 사진]  그는 헌납 기도를 통해 이 땅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택된 땅이 되고, 한국 백성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지도록 축복하며, 한국의 안정과 번영을 약속했다.
「한국 지방부 조직」
같은 날 저녁 모임에서 북극동 선교부장 힐튼 에이 로버트슨(Hilton A. Robertson)에 의해 부극동 선교부 산하 한국 지방부가 조직되었으며, 십이사도 정원회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의 성별로 김호직 장로가 초대 지방부장이 되었다. 초기 지방부 산하에는 아직 지부 조직이 없었고 부산 그룹, 서울 그룹 등 미군 성도들이 중심이 된 그룹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1956년 6월 한국 지방부 산하 서울지부가 설립되었다.

*1956.4.20 

 

 

한국에 첫 번째 파송된 선교사
북극동 선교부장 폴 시 앤드루스(Paul C. Andrus)는 한국에 복음선교사로 돈 지 파웰(Don G. Powell)장로와 리차드 리 데튼(Richard Lee Detton)장로를 보냈다. 이 때 두 장로는 김호직 박사의 개인 보증으로 입국사증을 얻어 첫 선교사로 내한 했다. 당시 선교사가 일본에서 한국을 오느데는 한일간의 국교정상화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비자를 받는데 어려움이 많았었다. 파웰 장로는 21개월 된 딸을 가진 신혼의 몸으로 선교사업을 나왔을 만큼 신앙심이 강했으며, 이들의 활발한 선교사업은 한국에 참된 복음이 급속히 전파되는 전환점을 이루었다.파웰 장로는 서울에서 봉사했고, 데톤은 부산에서 봉사했다.
당시 기록상의 회원 총수 64명. 최초로 부동산 매입. 서울 성동구 유락동 산 12번지. 신문로 서울 고등학교에서 예배를 보다가 유락동으로 옮김.

*1956.8-9

6명의 선교사들이 더 입국했다. 딘 앤더슨, 래리 옴, 뉴엘 킴볼, 게일 이 카, 칼 플래처, 클라우드 뉴먼 장로들. 이들 중 박사학위자도 있었고 동냥을 얻으러 온 걸인을 붙잡고 함께 우는 사람도 있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으로 선교사업을 나오기 위해 여러번 금식하고 기도한 선교사도 있었다. [기념 사진]

*1956.6.3
 

서울고등학교(서울 중구 정동)에서 북극동 선교부 한국지방부 서울지부가 조직되었다. 서울 성동구 신당동(유락동) 산 12-24번지를 매입하기 전까지 그 곳에서 예배를 보았다.
[
사진 보기]

*1956.9
 

 

 

 

 

한국인 최초의 선교사: 이영범 장로
 1954.12월 김호직 박사로부터 침례. 서울 을지로 6가 침례교회의 건물 뒤 연못에서 침례받음. 이 날 밤 그는 기도를 했다. "주님 이 은혜 무엇으로 보답하오리까. ...당신의 말씀을 온 천하에 알리겠습니다. 뜨거운 사막도 좋고...날 보내주소서."  선교사 부름을 받고 부산에서 봉사(20세).
대학3학년때 선교사 출발. 가족,학교당국,친지등을 놀라게 함. 기독교에 눈을 뜬 것은 연세대학교 입학할 무렵. 인왕산 중턱에 친구와 짝을 지어 올라가서 비가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2년! (이 때 친구가 홍병식 형제
<홍박사 칼럼>). 선교사 귀환 후 군복무 마치고, 미국 남가주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 취득. 애리조나 피닉스에 거주. 법정 지정 심리학자로 근무. 애리조나 한인회 이사장(1996). 당시 동반자는 킴볼장로와 앤더슨 장로. 앤더슨 장로는 선교사업을 마치고 유타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근 30년이 넘게 브리감영 대학 하와이에서 교수생활하다가 은퇴후 한국 서울 선교부에서 부부선교사로 봉사. (*공식 한국선교부 조직 첫 한국인 선교사는 한인상 장로)

*1957.3

한국지방부 번역실이 창설됨.
삼청동 5번지 땅을 매입(300여평). 교회의 본부를 삼청동으로 옮기고 소형 인쇄 시설을 갖추고 번역과 출판의 업무를 시작함.

*1957

서울중앙지부가 동부와 삼청 둘로 나뉨
초기 삼청지부 지부장 봉사-홍병식, 정대판, 한인상, 이민관, 지영달, 최욱환 형제.
서울 중앙지부가 삼청으로 개명.
6.25 후 한옥에서 예배를 보던 성도들은 건축기금 모으기 시작(1969.2-1971.4.11 기공식까지)   [
사진 보기]

*1958

 

당시 L. Edward Brown 장로를 비릇한 11명의 선교사가 있었으나 그중 Ray Hawkins 장로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황달(간장염)에 걸려 상황이 좋지 않았으므로 북국동 선교부장 Paul C. Andrus가 선교사들을 다시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해 방한하여 뜻을 밝히고 삼청동에서 특별 모임을 가짐. 각각 흩어져서 개인 기도를 갖고 다시 집합한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일어서서 한국에 그대로 남기를 간청하였고 죽음이라도 불사하기로 뜻을 같이함. 감동한 Andrus부장도 눈물을 지으며 홀로 동경으로 돌아감.

*1958.5.6

몰몬경의 한국어 번역 작업이 시작되어 장세천 형제(서울 중앙지부)가 몰몬경 한국어 번역을 하도록 폴 씨 앤드루스 선교부장에 의하여 성별됨.

*1959 

마크 이 피터슨 장로(십이사도)가 서울상업고등학교에서 개최된 지방대회에 참석함
제2대 한국 지방부장 L. Edward Brown
제3대 한국 지방부장 James E. Bradshaw
제4대 한국 지방부장 Lynn Waddell

*1959.8.31

한국지방부장이던 김호직 박사가 별세함(1905.4.16-1959.8.31). 당시 서울 교육위원회 위원장. 건국 대학교 축산대학장.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장례는 사회장. 묘지 망우리.

*1959.9

서울지방부에서 서부지부 조직(현 서대문 와드)

*1959.2.1

김호직 박사가 돌아가신 후 홍병식 형제가 몰몬경 니파이삼서 번역을 시작하도록 브라운 장로에 의해 성별되었는데 이는 교회 대관장단의 지시에 의함

*1962.7  

 

한국 선교부 설립
일본에 소재한 북극동 선교부에서 분리되어 한국선교부 탄생.
초대 한국선교부장인 게일 이 카(Gail E. Carr)선교부장 성별. 선교부 산하 지부로 서울에 동부, 동대문, 삼청, 서부, 청운 등 5개 지부와 부산지부, 대구지부 등 모두 7개의 지부로 운영됨

*1963

제5대 한국 지방부장 정대판 형제

*1963.2.10

서울 청운지부 조직. 서울중앙지부에서 분리.

*1965 

 

 

김호직 박사'성도의 벗',(현재의 '리아호나'월간지)잡지가 창간호를 냄. 월간지로 현재 잡지는 2001년 1월 현재 통권 418호. 발행소: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7번지/1년 구독료는 5,000원(권당 500원)/전화:02-2232-1441
(표지 사진은 '성도의 벗' 창간호 표지(현 '리아호나')로 사진은
김호직 장로/한국인 최초의 말일성도, 1951.7.29 침례/미국 코넬대학에서 식품영양학 전공, 1952년 박사 학위/문교부 차관역임/1947년 42세로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전신인 숙명여전의 교장 시절에 미국유학) 

*1963.7

한국 지방부 평의원이 조직됨

*1963.10

부산 동구 지부 개척이 시작됨

*1963.5

한국선교부의 건축담당으로 루스 형제 내한.

*1963.7  

건축선교사로 김상호, 남영진, 윤재철, 김명웅, 김성규, 김형호 형제 부름 받음

*1964.2.9

 

 

공식 한국선교부 조직 후 한국 최초 복음 선교사 한인상 장로. 임지 대구로 출발. 1938.12월 출생. 6남2녀중 장남. 1957.4월 침례. 1966년 서울 용두와드에서 결혼. 그 후 한국 교회의 개척자로서의 길을 걸어온 증인. 1960년 고든 비 힝클리 부대관장에 의해 장로 성임. 1964-66년까지 한국 선교부(당시에는 선교부가 하나)에서 선교사로 봉사. 몰몬경 번역. 선교사봉사시 대구에서 지부장. 1965년 서울 삼청지부장. 1975년-1978년 한국인 최초의 선교부장 부름 봉사. 1978년 한국인 최초의 지역대표 부름. 1991.5월 한국인 최초의 총관리 역원인 70인 제이정원회 부름. 서울성전장 역임.

*1964.10

한인상 형제에 의해 몰몬경 번역사업 시작됨. 1967년 번역 완성.

*1965.8.2

스펜서 제이 팔머 장로 제2대 한국 선교부장 부름

*1966.9.10 

 

 

최초의 표준 건물
한국땅에 최초로 표준 건물이 당시 12사도였던
고든 비 힝클리(현재 회장) 장로에 의해 헌납되었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동부 지부 예배당으로 건축된 이 건물은 대지 1,145평에 건평 322평으로서, 이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 한국 최초로 건축 선교사들이 부름을 받아 무보수로 봉사했으며, 전국의 성도들이 건축비를 분담하기 위해 건축 기금을 모금하는 한편, 부족한 건축기금을 충당하기 위해 직접 건축 현장에서 노동을 통한 봉사에 참여했다. 이 예배당은 아시아 대륙(일본 제외)에서의 첫 번째 표준 건물이었다.

*1966

차종환 형제 국내 최초 후기성도로 박사 학위 취득.
제7대 한국 지방부장 임명.

*1967.3

한국어 몰몬경 초판 3천권이 출판됨. 삼화인쇄소에서 시도했다가 실패, 보진제에서 초판을 인쇄함. 번역 한인상 형제. -->1991.10월까지 100만부 판매 돌파. 리아호나(성도의 벗) 편집부에서 100만권째 몰몬경의 행방을 추적한 결과 대전 선교부의 안상헌 장로에 의해 구도자에게 전달 확인.(1991.11)

*1967

이호남 형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선교부장단 보좌로 부름.

*1967.4.27

제일회장단의 Hugh B. Brown 부대관장이 Gordon B. Hinckley 장로(당시 사도)를 동반, 한국을 방문. 현 청운동의 국기게양대를 헌남하였고 이 모임에 독립운동가 이갑성 선생을 초대함. 개회기도-박재암. 당시 한국의 선교사는 총 62명.

*1967.8

2박3일간 최초로 청소년 대회 개최.

*1967.10.4

성도의 벗(현재의 리아호나 월간지)이 문공부에 등록되어 정규 잡지로 인정 받음.

*1968

부산 지방부 초대 지방부장 배영천 형제

*1968.2

한국선교부 산하에 중앙지방부, 남부지방부 조직

*1968.8

더불류 H. 슬로버 제3대 선교부장 부름

*1968.10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 합본이 정대판 형제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됨

*1970

한국어 찬송가가 번역 출판됨

*1970.5.3

부산 동래지부 승격. 1968.3.15 개척된 동래지역이 지부로 승격되었다. 부산에 일찍 세워진 다른 지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착실히 발전. 초대 지부장에 박관호 장로가 지지됨.
[
기념 사진 -주일학교를 마치고]

*1970.6.14

목포지부 승격. 1969.10.1 개척된 목포지역이 지부로 승격되었다. 35명 침례회원. 초대지부장 넬슨 장로. 선교부장단의 이호남 형제, 호남 지방부장 이재수 형제 참석.
[
기념 사진]

*1970.8 

중앙지방부는 동서중앙지방부로, 남부지방부는 남지방부와 호남지방부로 분리 조직됨

*1971.7

엘 에드워드 부라운 제4대 선교부장 부름

*1972.8

종교 교육원 개원
서울 중구 무교동 남강빌딩 3층 85평을 임대하여 개원. 원장에 이호남 형제

*1973.3.8 

 

서울 스테이크 탄생 (한국 최초)
  초대 스테이크부장(한국 최초)에
이호남 형제 부름받음. 당시 12사도 정원회 회장이었던 스펜서 더불류 킴볼 장로가 서울을 방문해서 아시아 대륙에서는 첫 번째 스테이크인 한국 서울 스테이크를 조직하고 초대 스테이크장에 이호남 형제, 제1보좌에 김창선 형제, 제2보좌에 최욱환 형제를 성별하였다. 초대 축복사 김종균 형제. 당시 서울 스테이크에는 8개의 와드와 2개의 지부로 구성되었다.

*1973.5.25-26

한국 최초로 스테이크 대회. 900여명 참석.

*1973.7.26
   -29

 

서울 스테이크 청년대회
강원도 강촌에 위치한 창촌 중학교에서 청년대회를 가졌다. 참석자는 150여명 이었다. 용산역을 출발한 형제 자매들은 10시에 강촌에 도착, 주변 정리와 함께 이남선 형제의 개회 선언으로 대회의 막을 올린 이번 대회에서 이들은 캠프 송, 게임, 신학 세미나, 무용, 체육대회, 경보대회, 카니발 및 무도회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가졌다.

*1974.10.7

방문자 센타 개관 - 한국 최초.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를 소개하는 방문자 센타를 개관. 전국의 200여명의 선교사들이 모두 모여 광주시내에서 집중 전도 활동. 그룹을 지어 찬송가를 부르며 광주시내를 다니며 복음 전도. 400여명의 방문자와 함께 모임.
<
상세 기사>

*1974.11

 

 

 

 


 

 

 

텐더 애플즈와 뉴 호라이즌  중창단 공연 시작
음악을 통해 사랑과 기쁨을 전달. 레코드 판과 카세트 테이프로 판매. 
텐더 애플즈 제단은 본래 황근옥씨가 미군인 스텐 브론슨씨의 도움을 받아 창설한 후 독자적으로 공연해 오다가 1974년 11월부터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선교사들로 구성된 뉴 호라이즌 중창단과 함께 공연을 시작함.


<텐더 애플즈 합창단>


<뉴 호라이즌 합창단>

*1975.7.1

 

한국인 최초의 선교부장
부산 선교부가 조직되면서
한인상 장로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부산 선교부의 선교부장으로 부름을 받아 3년간 봉사하였다. 당시 한국에 선교사 150명.
한인상 장로는 1962년 한국에 선교부가 조직된 이후로는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로 선교사업 기간중 몰몬경을 한국어로 번역했고, 선교부장의 임무를 마친 후 1978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지역대표로 부름을 받아 봉사하였다.

*1975.8.15

 

 

 

 

 

 

 

 

 

 

 

 

 

 

 

 

 

 

 

 

 

 

 

 

 

1975 한국 지역대회
한국에 교회가 들어 온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가 서울에 소재한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교회 회장으로서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스펜서 더불류 킴볼 회장과 총관리 역원 및 본부 보조조직 회장단이 참여하여 가진 한국대회는 8월 15일(금)부터 8월 17일(일)까지 열렸다. 이 대회는 전국에서 1만여명의 성도들과 구도자들이 모여들어 대관장단 및 총관리 역원들의 영감에 찬 말씀을 들었으며, 특히 문화의 밤 공연에서는 전국에서 성도들이 준비한 합창, 민속 무용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루어져 총관리 역원을 비릇한 모든 회원들의 경탄과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아울러 계보세미나(기념페넌트 큰 사진)가 많은 회원 일반인과 함께 청운동에서 열렸으며 죽은 조상에 대한 구원과 족보에 대한 관심을 대대적으로 불러 일으켰다.
8월 15일 오후 1시에 도착한 킴볼 대관장 부처와 총관리 역원은 마중 나온 많은 성도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텐더 애플스 합창단으로부터 환영의 노래를 선사 받았다. 이들은 도착 즉시 국립 묘지를 참배하여 무명 용사비에 헌화하였고 이어 순국 1주기를 맞는 육영수 여사의 묘소에도 참배하였다.
대관장단과 총관리 역원은 조선 호텔에 여장을 풀었고, 대회의 첫날인 15일 저녁 7시에는 문화의 밤 행사에 참석하였다. 대회 이틀째인 16일 아침 일찍이 총관리 역원은 국립 박물관을 방문하여 한국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에 관해 설명들었고 진열된 금판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9시에는 장충체육관 귀빈실에서 대관장단과 사도를 모시고 기자 회관이 있었다. 10시에 오전 총회에서 회장은 성전 건립을 발표하였고 이어 4시에는 오후 총회가 있었으며 5시 30분에 청소년의 밤이, 7시 30분부터는 부모의 밤이 진행되었다.
대회 3일째인 17일 10시에 오전 총회가 시작되었고 4시에 오후 총회를 끝으로 3일간의 대회를 모두 마쳤다. 한편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인 바바라 스미스 자매는 이날 10시 KBS 텔레비젼에 출연하여 범세계적인 조직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상호부조회를 소개한 바 있다.
본 대회 개회사를 통해 킴볼 회장은 일본 동경에 아시아인을 위한 성전이 세워진다고 발표했다.
한국대회에서는 총 34회에 걸쳐 말씀이 있었다.
1. 성전을 짓는 백성(스펜서 더불류 킴볼 회장-16일 토요일 오전 모임)
2. 저는 저의 형과 같이 되고 싶습니다.(애드니 와이 고마쯔-
    16일 토요일 오전 모임)
3. 너희가 주께 간구하여 보았느냐? (데오도르 엠 버튼-16일 토요일 오전 모임)
4. 복음의 메시지 (스터얼링 더불류 실-16일 토요일 오전 모임)
5. 간증 (어네스트 엘 윌킨슨-16일 토요일 오전 모임)
6,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긍은 보는 그것이니이다 (고든 비 힝클리 장로-
    16일 토요일 오후 모임)
7. 영원한 가족 (폴 에이치 던 장로-16일 토요일 오후 모임)
8. 슬기로운 자 (김창선-서울 스테이크 부장단 제1보좌-
    16일 토요일 오후 모임) .....

1975년 한국대회-장충체육관

*1975.11.20

서울 서 종교 교육원 준공
서울 중구 무교동 남강빌딩에서 이전 개원.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현재의 서울 성전 자리

*1976

복지 농장 구입. 논-5,000평, 밭-4,000평

*1976.9.4

 

 

종교 교육원(신학연구원) 제1회 졸업식
종교교육원강당(당시 신학연구원)에서 교회의 신권 지도자와 학부모를 모시고 역사적인 제1회 졸업식을 성대히 거행했다.
김차봉 형제의 사회로 진행된 졸업식에서 이호남 원장과 유진 피 틸 서울 선교부장, 한인상 부산 선교부장이 졸업생들에게 격려사를 하였다. 종교 교육원은 1972년 9월에 개원이래 2년과 4년 과정을 75년까지 통해 574명의 졸업생과 174명의 개종자와 14명의 선교사를 배출하였다.  이호남 종교 교육원 원장은 환영사에서 교육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행동의 변화와 영적으로 거듭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77.1.1

서울 스테이크 잠실지부 조직
서울 강동쪽 지부로 최초 조직됨. 초대 지부장단에 하봉식 형제, 1보좌 김과영, 2보좌 송재현 형제가 부름받음.

*1977.7.1

서울 서 스테이크 분리. 초대 스테이크부장 김창선 형제

*1977.3.22

서울 제7와드(노량진 와드) 예배당 기공식. 560평. 70여 성도 참석. 극동지역 담당의 70인 제일 정원회 고마쯔 장로, 이호남 스테이크장, 김창선 부장, 최욱환 부장, 서희철 형제, 구중식 형제, 최규열 감독 등 참석

*1977.4.12

서울경제신문에 교회 기사 소개 - "가정을 지상의 천국으로"
몰몬교도의 신앙과 생활, 월요일마다 '가정의 밤' 모임
자립, 자조, 근면실천 모토.  <
사진 보기>

*1977.5.22

 

 

서울 서 스테이크 탄생
서울 스테이크가 서울 동 스테이크와 서울 서 스테이크로 분리되었다. 십이사도 정원회 고든 비 힝클리 사도가 역사적인 모임을 감리. 분리된 서울 서 스테이크 총회원수는 2,800여명. 과거 서을 스테이크 산하 제2와드(현 서대문와드), 제6와드(녹번와드), 제7와드, 제9와드와 서울 선교부 인천 지방부 산하 인천지부, 수원지부, 화곡지부, 안양지부가 서울 서 스테이크로 편입되었다. 서울 서 스테이브주장에 김창선 형제, 1보좌에 김차봉 형제, 2보좌에 이남선 형제가 부름.  축복사 조인식 형제. 고등평의원으로는 김산, 홍무광, 구중식, 송평종, 이용상, 양해윤, 박기생, 김희남, 박정욱, 정지헌, 서원, 구원석, 윤덕순, 정유 형제가 부름 받음.

*1977.8 

 

한국 청년 대회(1회)
선교부 시절 각 지방부 별로 청년대회 및 청소년대회가 열려 청소년과 청년들의 활동을 촉진시켜 오다가 스테이크가 조직된 이후 최초의 전국 규모의 스테이크/지방부 합동 한국청년대회가 충북 영동에서 열렸다. 서울 스테이크와 영남지방부, 호난지방부 등 전국에서 모인 청년 250여 명이 모여 3박 4일동안 다양한 활동속에서 젊음의 열기를 발산시켰다.

*1978.2

에덴 청소년 학교 개교. 서울 동 스테이크 1와드(현 용두와드)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배우기를 갈망하는 직업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 1979년까지 76명이 입학하여 35명이 졸업. 중학입학 자격 검정고시에 11명이 합격, 고입검정고시에 18명이 합격했다. 수업료 무료. 수업기간은 18개월. 30여명의 교회 형제 자매들이 무료봉사로 운영.

*1978.8.15

한국인 최초로 지역 대표로 한인상 형제가 부름 받음

*1978.9.26
  -10.7
  <11일간>

서울 시청앞 지하철 전시장 - 계보 전시회
11일간 전시회 개최. 관람자 21,000여명. 한국 서울 선교부 주최. 에프 레이 하킨스 서울 선교부장 지도. 5부로 나뉘어 소개. 1부-고대 사람이 계보사업을 행했던 목적. 2부-미국 유타주 솔트 레이크 부근
화강암 기록 보관소 소개, 3부-한국의 전톤적인 계보 기록 전시, 4부-개인 기록의 필요성, 5부-말일성도는 왜 계보사업을 한는가에 대해 설명.
<
사진 보기>

*1979.4.29

 

 

 

 

 

 

서울 서 스테이크 소속 제2와드(현재 서대문 와드(서부지부-충정와드) 헌당식 
서울 서 스테이크 산하 제2와드(현 서대문 와드) 헌당식이 기꾸찌 장로를 감리자로 모시고 성대히 거행. 회원들의 땀과 결실을 보아 헌당을 하게 된 예배당은 공과 교실, 예배당, 상호부조회실, 조리실, 합동실 등을 갖춘 현대식 건물.
  (헌당 3년전인 1976년의 2와드 회원들이 건설 공사에 봉사로 건축 현장을 도왔다. 와드 독신 청년 형제들이 자갈과 벽돌을 등에 지고 교회 건물 2층으로 나르는 중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포즈를 취했다.
-사진 우측으로부터 김승범, 전경식, 김승진, 남복출, 박복주 형제)
(서울 서대문 와드는 서부지부-2와드-충정와드로 명칭이 변경되다가 지금은 서대문와드로 되었다.)
 [
서대문 와드의 공사중과 오늘날 사진]   [헌당식 사진]

*1979.4.29

서울 서 스테이크 제9와드 헌당식
기꾸찌 장로를 감리자로 모시고 성대히 거행. 회원들의 땀과 결실을 보아 헌당을 하게 된 예배당은 공과 교실, 예배당, 상호부조회실, 조리실, 합동실 등을 갖춘 현대식 건물.
[
기념 사진]

*1979.5.5

서울 서 스테이크 6개와드 탄생
서울 서 스테이크는 제2와드(서울 서부지부->2와드->충정와드->현 서대문와드)에서 스테이크 특별 모임을 갖고 제2와드에서 서대문와드를 제6와드에서 녹벙와드를, 인천와드에서 동인천와드를, 제7와드에서 노량진 와드를 분리 시켰다.

*1979.7.1
 

한국 서울 서 선교부 창설.
초대 선교부장 Brent Clement 형제
부산 스테이크 창설, 장재환 형제
서울 동 스테이크 창설, 고원용 형제
서울 북 스테이크 창설, 홍무광 형제

*1979.9.13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    /    역사적 한국 공연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충실한 태버나클 합창단의 역사적인 한국공연이 서울의 남산 국립극장에서 그 화려한 막을 열었다. 수 많은 교회 회원과 음악을 사랑하는 내외빈, 서울 시민 등이 참가해서 감동과 예술성의 극치를 이룬 장엄한 합창을 듣고 감격해 했다. 특히 한국의 애국가를 합창단이 한국어로 부를 때의 그 감동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환희의 순간이었다.
*일시: 1979년 9월 13일 오후 5시, 저녁 8시 / 2회 공연
*장소: 서울 남산 장충동 국립극장
*주최: 한국일보
*후원: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
         *
입장 티켓
 
몰몬태버내클 합창단 한국 공연

*1979.12.27

서울 동 종교 교육원 준공. 1980.3.6 입주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1980.1.7

한국인 선교사만으로 구성된 광주 지역
부산 선교부의 한국인 선교사들은 최초로 모두 이호남 선교부장의 지시로 광주지역으로 전근. 광주 지방부를 광주 스테이크로 승격시키기 위한 커다란 목표를 갖고 모임. 한국인들만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더욱 큰 의미와 사명감을 갖게됨. [
기념 사진]

*1980.1.22-25

종교교육원(신학연구원) 제2회 동계 봉사활동 - 3박4일간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능평1리 마을. 연 인원 550여명 참석. 30여명 형제 자매 참석. 의료봉사, 유년부 활동, 건강관리 노인학교, 위생관리 및 식생활 개선 등.(성도의 벗, 1980.4)
[
기사 사진]

*1980.2.20-21

 

한국 지역 지도자 세미나
한국의 모든 스테이크 부장단과 선교부장단은 한국과 일본 지역을 관리하는 요시히꼬 기꾸찌 장로와 서울 지역 대표인 이호남 장로 그리고 부산, 광주, 지역 대표인 한인상 장로가 참석한 가운데 지도자 세미나를 가짐. 한국 번역출판부에서. 한국에 교회가 세워진 이래 처음 갖는 모임. [
사진 보기]

*1980.9.18

 

선교사 주한 외국인 민속 예술 경연대회에서 가요 부문 최우수상 수상. 세종문화회관에서 코리아 헤럴드 주최 제13회 경연대회에서 서울 서 선교부에서 봉사하고 있는 4명의 선교사가 가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 노래 제목은 "장미"였고, 청중들의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 그들은 선교사로 열심히 봉사하면서 틈틈이 연습하였다. 코리아 헤럴드 주최 민속 예술 경연대회는 매년 한번씩 개최되며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 선교사들이 참여하여 훌륭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사진 보기]

*1980.10.11
 

로스앤젤레스 한국지부 문화의 밤 행사 및 바자회
로스앤젤레스 한국지부에서 한국 고유문화를 소개하는 모임과 바자화 개최. 250여명 참석. 초등회 어린이는 민속무용, 동요를 불렀고 상호부조회 자매들은 도라지, 부채춤 등으로 한껏 흥을 돋우었다. 또한 1980년 남가주 미스 코리아로 뽑힌 장정순 자매와 로스엔젤레스 한국 지부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최인빈 형제의 장남인 최경호 형제의 태권도 시범이 일품.
[
기념 사진

*1980

광주 스테이크 창설, 초대 박병규 형제

*1980.
  10.25-26

 

 

 

 

 

 

 

 

 

 

1980 한국지역대회
종로구 청운와드 야외에서 개최되었는데 날씨가 너무 쌀쌀하여 총관리 역원들은 담요를 둘러 쓰면서까지 모임에 참석하여 회원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시내 각 일간 신문과 주간종교, 코리아 헤럴드, MBC-TV, KBS 등 메스컴에서도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 '80년 한국대회에 대하여 보도했다. 이 후 한국지역대회는 참석하는 회원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부산, 광주, 전주 등 지역별로 분산 개최되었다.

1980년 한국지역대회-서울 종로 청운와드

*1980.10.27

한국 지도자들 동경 성전 헌납식에 참석. 한인상 장로 지역 대표로서 본모임 개회 기도

*1980.11.27
  -29

경북 대학교 교내 몰몬 전시회.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경북 대학교 학생회 주최로 몰몬전시회를 가졌다. 교내 시청각 교육실에서는 "고대 미대륙은 말한다", "쟈니 링고" 등의 영화를 상영했다. 이 전시회를 지도한 경상대 권찬태 교수는 서울에서 잠실와드 감독으로 봉사하다가 경북 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전시회 사진]

*1981.3.28
 

한국 코롭합창단 창단 기념 발표회 (온누리 합창단 전신)
교회 한국 몰몬합창단(코롭 합창단) 창단 기념 공연이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유관순 기념관에서 성대한 발표회를 가졌다. 단원 60여명. 회원들의 기대에 못지 않은 훌륭한 발표로 듣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단장에 배영천 형제. 한국지역 대표 한인상 장로의 격려.
[
합창단원 공연 사진]

*1981.4.1

 

 

 

 

 

 

 

 

 

 

 

 

 

 

 

 

 

 

교회 제151차 연차대회에서 한국 서울성전 건축 허가 성명 발표
성전 모금운동이 미국 한국인 성도들이 펼쳐 차종환, 이정현, 최인빈 중심이 되어 약 3만불 모금. 김창선 부장이수락 말씀을 함.

             * 한국일보 기사 : 서울에 모르몬교신전(성전) 건립(1981.4.12)

*1981.6.18

서울 스테이크 조인트 리사이틀. 서울 스테이크에서 주최한 조인트 리사이틀이 국립극장 소강당에서 7시에 열렸다. 조미영 자매와 배정숙 자매는 피아노 독주를 하였고, 홍봉엽 자매는 독창을 발표하여 250여명의 관중을 매료 시켰다. 한국을 방문한 기꾸찌 장로와 3개 선교부장 부처도 참석했다.

*1981.6.23

제주도에 복음 전도 시작. 부산 선교부에서 선교사를 파견.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이래 25년 만이다. 7월 1일자 제주신문에 교회를 소개하는 기사가 4명의 선교사 사진과 함께 게제되었다. 1983년에는 제주도 출신 첫 복음선교사가 탄생했다. 한금아 자매가 그 주인공. 서울 천호지부에서 봉사. 한 자매는 유치원 교사로 재직 중 친구소개로 개종.

*1981.6.24

 

 

브리감 영 대학교 국제 민속 무용단 한국 공연
서울 국립극장. 한국 국제 문화협회 초청. B.Y.U. 국제 민속 무용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용단으로 미국의 민속 무용 전문가인 메리 젠슨 여사가 본 단체를 이끌고 있으며 미국 전역은 물론 해외에서도 폭넓은 순회 공연을 가졌고 특히 콘서트와 국제 페스티발의 참가를 통하여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아 왔다. 순수한 전통 의상과 전문적인 안무가 특징인 본 무용단은 1964년 전 미국의 민속 무용 공연팀으로 국제 페스티발에 첫 선을 보였으며, 1974년엔느 국제 민속 무용 공연대회(CIOFF)에 미국 대표팀으로 참석하였다. [
무용단 사진]

*1981.11.30

인천 스테이크 창설, 초대 허 채 부장.

*1982.7.1

부산 서 스테이크 창설, 도길회 형제

*1982.11.21

청주 스테이크 창설. 황충열 부장
강서 스테이크 창설. 이도환 부장
영동 스테이크 창설.
박재암 부장
동대문 스테이크 창설 손승은 부장

*1983.3.30

 

김도필 자매 별세 (한국 최초의 여성 회원)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향년 78세. 이화여자전문대학 영문과 졸업.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면 모란공원. 묘지헌납은 김차봉 서울서선교부장. 별세하기 전 고별사를 남겨 영결식에서 낭독됨. 평소 김자매는 사랑과 가르침을 많은 회원들에게 전함. 몰몬경과 세계사 대비 년표를 직접 제작함. 영결식은 4월 1일 청운와드에서 남영진 부장의 감리로.
[
사진 보기: 부산의 초기회원들-왼쪽부터 박재암,김호직 박사, 국영길, 김도필, 최재신] 

*1983.5.7

대구 스테이크 창설, 권찬태 부장

*1983.5.9

서울 성전 기공식 - 서울 신촌 현장.
감리-12사도 정원회 Marvin J. Ashton 장로. 이호남 지역대표. 한인상 장로.

*1983.5.10

브리검 영 대학교 국제 민속 무용단 한국 공연
서울 청운와드  [
무용단 사진]

*1983.9.4

삼청와드 증축 헌당식. 서울 스테이크. 유재순 감독. 최욱환 스테이크 부장 참석

*1984.5.23-
          5.28

브리검 영 대학교 사교무용단(Ballom Dancing Group) 한국공연
서울과 청주. 5.25일 MBC 여의도 공개홀에서 전국 방영을 위한 녹화. MBC문화체육관 공연. 2,700여명 관객을 사로잡음. 미국의 전통적인 사교춤,코메디,난쟁이 춤,여러나라 특색있는 춤 공연.이번 공연 참여 학생단원은 자유중국,태국,중공(중국)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옴. 26일 아침 KBS,MBC에서 방영. 청주에서 2회 공연,대대적인 찬사와 호평. 충북대학교 총장과 청주시장이 만찬을 베품.[
무용단 사진]

*1985.12.14
 

 

 

 

 

 

 

 

 

 

 

 

 

 

 

 

 

 

 

 

 

 

서울 성전 헌납
아시아 대륙의 첫 번째 성전인 서울성전은 1981년 4월 1일 성전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고, 1983년 마빈 제이 애쉬톤(Marvin J. Ashton)사도의 감리 하에 기공식이 거행되었으며, 1985년 12월 14일 당시 부대관장이었던 고든 비 힝클리 장로에 의해 헌납되었다. 힝클리 장로는 헌납 기도에서 교회의 발전과 성도들의 축복, 그리고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했다.
초대 성전장에 Robert H. Slover 형제, 1보좌에 허채 형제, 2보좌에 박재암 형제 
-일반공개: 1985.11.26(화)-12.7(토) 까지
-안내 팜플랫 내용
<서울시의 남서쪽 마포구 동교동 언덕에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의 37번째 성전인 한국 서울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교회 회원들은 성전을 "주님의 집"으로 여기고 있으며, 특별한 목적을 지닌 이 건물은 매우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헌납식이 끝난 후에는 오직 합당하고 충실한 교회 회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회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인생의 목적에 관해 좀더 자세히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하며, 몸과 마음을 성결케 하고, 주님께 헌신적인 봉사를 하기 위해 자신을 바칩니다. 거룩한 의식 즉 침례와 지상과 하늘 나라에서 유효한 결혼과 같은 의식도 성전에서 집행됩니다.(마태복음 18:18 참조). 성전 사업의 독특한 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르침과 의식을 받아들일 기회도 갖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대리 사업입니다. 경전에는 주님이 영의 세계에서 돌아가신 분들에게 성역을 베푸셨음이 언급도어 있습니다.(베드로전서 3:18-20, 4:6 참조).....>

서울성전이 있기 까지:
1980년 동경성전이 헌납되었으나 한국성도들이 부부가 함께 성전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고 여행경비도 많이 들었다. 한국의 신권지도자들은 오랜 동안 한국에 성전이 건립되어 성도들이 온전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대관장단에 건의하여 왔다. 특히 연차대회에 참석한 신권지도자들은 한국민의 조상 경외 풍습과 족보를 소중하게 기록 보존하는 현황을 대관장단에 자세히 설명하고, 장로교 목사로 봉직하고 있다가 개종한 '김산'형제가 자기의 족보를 직접 지참하여 설명하는 등의 열성을 보여 서울 성전 건립을 결정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헌납 당시 오픈 기념으로 15일간 모든 일반 국민에게 성전 내부가 공개 되었다. 

  
사진 보기 :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추위를 무릅쓰고 늘어선 회원들
 


   <서울 성전 기공식>


<서울 성전 헌납>


 성전규모: 2,416평, 연건평: 788평
 완공: 1985.11.15
 일반공개: 1985.11.25-12.7,  11일간
 참여인원: 12,770여명 (유창순 전국무총리 등 귀빈 및 서울시민 등 전국에서 관람)

 한국서울성전 헌납식: 1985.12.14   09:30
 *감리: 고든 비 힝클리 부대관장
           (현 대관장)
 *개회기도: 최욱환 장로
 *말씀 : 브래포드 장로, 헌터 장로
            (후에 14대 대관장이 됨),
            힝클리 부대관장
 *개회찬송: "오래 기다리던 만왕의 왕"
 *폐회찬송: "타는 듯한 하나님의 영"
 *폐회기도: 이호남 장로 

*1987.9.13 

 

 

서울 지역 대회
서울역 힐튼호텔 국제회의장: 5,300여명 참석. 힝클리 부대관장 감리.
박관수 형제가 편곡한 찬송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 "성도들아 큰 시험이 닥쳐와도"와 "주님이 오실 때"를 14명으로 구성된 실내 관현악단의 반주로 350여명의 서울지역 합창단이 노래함.
힝클리 부대관장님은 "제가 주님의 손의 상처를 보았고 그분의 옆구리의 상처를 한국에서 보았습니다"라고 간증했다.

*1987.11.21

잠실와드 헌납식 (서울 영동스테이크)
1977.1.1 잠실지부가 조직된 이래. 약 11년만에 예배당을 갖게 되었다. 착공 8개월만.
헌납기도 김택우 스테이크장. 당시 감독 박복주 형제. 교회 기공식때의 스테이크장은 박재암 형제, 1보좌 서희철 형제, 2보좌 정 윤 형제. [
기공식 사진/1987.3.15]

*1988.9.12-16

 

서울 국제 민속 축제 - 브리감 영 대학교 민속무용단 - 88올림픽 전야제 참석
서울 올림픽 문화축전의 일환으로 한국 국제문화협회, 한국방송공사와 서울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에서 공동주최한 '88 서울 국제 민속축제에 미국대표로 브리감 영 대학교 민속무용단이 참가하였다. 전 세계 12개국에서 초청된 민속무용단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 성화봉송에 따라 전국에서 공연을 가졌다. [
무용단 사진]

*1988.9.16

서울88올림픽 개막오페라-"시집가는 날" -말일성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리워지다
총감독 김신환 형제. 바리톤 최현수 형제 출연. [
기사 내용]

*1988.9.24

 

제24회 '88서울 올림픽 참가 선수 노변의 밤
노량진와드에서. 바쁜 경기 일정에도 불구하고 서울 지역 독신 성인들과 함께 노량진 와드에서 열린 우정의 밤에 참석, 국적을 초월한 우정과 간증을 나눔. 이상태 서울 서 스테이크장 보좌의 감리로 가진 모임에 이들 선수와 가족들이 참석, 독신 성인들이 준비한 노래와 무용을 즐김.24회 서울 올림픽의 말일성도들은 10여명으로 확인되었다.

*1989.6.18
 

공주 지부 헌납식
청주 스테이크 공주지부 신축건물 헌납식을 갖다. 100여명의 회원 참석. 공주사대 교수로 재작하며 서울 반포지부 축복사인
김종균 형제는 1984년에 공주에 교회가 들어와 5년만인 1989년에 헌납식을 가진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며 치하. 최수영 스테이크장이 헌납기도로 이 예배당이 천사들에 의해 지켜저 재난을 막을 수 있도록 축복. [기념 사진]

*1989.7.16

강원도 강릉 지방부 주문진 지부 조직
서울 선교부 강릉지방부 소속.
신호범 선교장이 참석. 지부장에 홍도기 형제. 참석 56명
<
기념사진>

*1989.7.2

충남 서산 지부 개설
천안 지방부 소속(이정은 지방부장). 전도서(1988.7.24, 홍무광 대전 선교부장). 지부장에 김구환 형제.<
기념 사진>

*1989.8.1-4

'89합동 청년대회 개최.
경기도 가평 백둔 분교에서. 서울영동,북 스테이크, 강릉,원주 지방부의 149명 합동 청년대회.
신호범 선교부장 말씀. 김택우 스테이크 부장 말씀. 8시간 산행. '동심의 세계' 모임 등.
<
사진>

*1990.1

 

 

 

 

 

 

 

온누리 합창단 활동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합창단을 조직하여 교회 활동을 지원하고 대외적으로 교회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하자는 지도자들의 의견에 따라 온누리 합창단이 1990년 1월에 조직되었다. 지역적인 제한으로 인하여 서울 및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회원들로 구성된 합창단 (단장: 홍무광, 지휘자: 정대판)은 3월 발족 기념음악회를 시작으로 서울, 부산, 광주, 전주, 대전, 대구, 청주 등 전국을 다니며 수 많은 공연을 하였다.
특히 1995년 9월 2일부터 10일간 미국 순회 공연을 가져 로스엔젤레스, 라스베가스, 솔트레이크 시티, 시애틀 등지의 미국 성도들과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는 템플스퀘어 내에 있는 어셈블리 홀에서 십이사도들과 총관리 역원들을 모시고 공연하였으며, 마침 추석날을 맞은 9월 8일에는 대관장단 사무실을 방문하여 힝클리 대관장을 비릇한 대관장단과 십이사도 여러분에게 한국 성도들의 감사와 사랑을 한국 가곡과 민요와 찬송가에 담아 드리는 감동적인 시간도 가졌다.

*1990.6.5
 

  

 

 

 

최초의 한국인 성전장 : 박병규 장로
1986년 2월에 교회교육기구 책임이 변경되어 서울, 서울서, 부산, 광주 네 지역 중 부산, 광주 지역을 담당토록 지역대표로 임명되었다. 다시 1990년 2월 13일에 지명이 변경되어 서울서 지역을 담당, 영동, 강서, 서울서, 인천 스테이크를 담당. 당시 성전에서 인봉자와 의식봉사자로 봉사. 당시 성전장이었던 파머 장로의 후임으로 힝클리 회장으로부터 부름. 한국인 최초의 성전장이 되었다. 

*1991.6 

 

 

최초의 한국인 총관리역원
1973년 한국에 첫 번째 스테이크(교구)가 설립된 이래 한국교회에서의 문제는 급격히 증가하는 회원들을 인도할 지도자의 양성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어려운 사회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한국 내 신권 지도자들이 양성되어 거의 대부분의 교회 조직이 우리의 지도력으로 인도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밑바탕 속에서 한국 최초의 선교부장과 지역 대표를 역임했던
한인상 장로가 1991년 6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총관리 역원인 칠십인 제2 정원회의 일원으로 부름을 받았다. 한인상 장로의 총관리 역원으로서의 부름은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 성도 전체의 긍지를 높여 주었다.

*1991.10


 

한국어판 몰몬경 100만부 판매 달성 (1967년 2월 초판 3,000부)
몰몬경: 현재 34개 언어로 출판
몰몬경: 1990.1-1990.12, 1년간
            한국:    217,971부 판매
            세계: 6,014,521부 판매 

*1993.3.6-3.7
 

광주 스테이크 구모라 합창단 제6회 정기 발표회
양일간 발표회. 광주스테이크 회원으로 구성된 구모라 합창단은 1984년에 창단. 지휘자로 조용현, 김용, 김정기, 이남준 형제가 차례로 봉사. 연습시간은 매 안식일 저녁시간. 이남준 형제 지휘와 서나미 자매 반주로 36명의 단원이 외국곡 "이별의 노래"외 1곡, 한국 가곡 "봉선화"외 2곡, 중창 "내 친구 찾으리"외 2곡, 찬송가 "주는 이몸을 사랑해요"외 2곡 등.
[
기념 사진

*1993.4.18

 

KBS에서 후기성도 서부이주 소재 영화 방영 - "머나먼 낙원"
한국 최초로 후기성도들의 서부 이주 수난사를 소재로 한 영화 <머나먼 낙원(Young and Free)>이 KBS2 오후 2시 10분에 전국에 방영되었다. "서부개척시대에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천지를 찾아나선 사람들이 황야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미국 오하이오주 말일성도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서부로 떠나는데 그들 앞에는 굶주림과 질병이 도사리고 있다."(동아일보 1993.4.18 일자 소개) 이 영화는 교회에서 만든 영화는 아니며 서부이동 이야기를 일기에서 발견한 소재를 근거로 제작한 영화다. [
상세한 내용]

*1993.6.26

 

서울-서울 서 지역 합창 경연대회
장소 서울 중구 구민회관. 서울 스테이크를 비릇해서 멀리 청주 스테이크까지 11개 스테이크 참석. 1,000여명 이상 참석. 첫 번째로 발표한 안양스테이크는 연분홍색 블라우스로 통일한 자매들의 산뜻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영예의 1위는 인천 스테이크, 2위 수원 스테이크, 3위는 서울 북스테이크가 차지.

*1993.8.4-7

 

한국 청년 대회(2회) 1976년 1회대회 이후 전국단위 모임 17년만.
충북 영동 양산 송호리. 양산팔경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개최.
참석인원 전국단위 청년 1,000여 명.
4개 주제의 세미나, 5개 주제의 워크샾, 9개 주제의 교양 강좌, 5개의 특강 실시.

*1993.10.10

분당지부 설립
서울 영동 스테이크 분당와드. [
교회 사진] [분당와드 약사] [분당와드 소식]

*1994.5.18

제1회 서울 서지역 한마당 체육대회

*1994.3.30



 

한국 공보위원회 '기적의 역사' 출간
한국 공보 위원회(위원장 주덕영 형제)에서 공보 활동의 일환으로 '기적의 역사'를 출간. 신국판형 크기(150X220mm)로 397쪽 분량을 가진 이 책은 신호범, 주덕영, 이상태, 스펜서 파머(Spencer J. Palmer),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홍병식, 차종환, 김차봉, 마이클 알렌(J. Michael Allen), 서희철 등 국내외의 독실한 말일성도들이 공동 집필.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세계적 종교의 등장'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새로운 세계적 종교로 등장하는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와 성공적인 세계 선교 등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오해를 불싟킬 좋은 기회. 이 책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구입 가능. [
책 전체 내용]

*1995 

 

북한 동포 돕기
교회 본부에서는 1995년부터,
북한 동포들에게 수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인도주위적 지원을 하고 있다. 수천톤의 밀가루, 옥수수, 분유, 식용유, 담요, 의료기기, 약품 그리고 상당량의 비료, 농약, 분무기와 농산물 씨앗들이 보내어졌다. 한국성도들도 이와는 별도로 북한 동포를 위한 특별 금식을 실시하고 금식 헌금을 모금하여 북한 자원단체에 기탁한 바 있다.

 

1995. 9.2-
 9.12

 

  

 

 

 

 

 

 

  

온누리 합창단  미국 공연
 
단원,관계자 포함,82명 참여 -1990년부터 미국공연 준비

온누리 합창단 제16회 미국 L.A.공연 (9.3/로스앤젤레스 스테이크 센터)

온누리 합창단 제17회 미국 라스베가스공연 (9.5)

온누리 합창단 제18회 미국 솔트레이크 공연 (9.7)
    어셈블리홀.1,200석 좌석 가득.닐 에이 맥스웰 사도 참석.


미국 순회공연 중 유타 대관장단 방문 (1995.9.8)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은 한국 가곡 '보리밭'과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
경복궁타령,아리랑,주의 기도,애국가,우리 다시 만나볼 동안'을
들었다.

온누리 합창단 제19회 미국 시애틀공연 (9.9/200여명 참석)

*1996.3.15

한국 선교사 훈련원 제185기 (1996.2.26-3.15)
권경숙 자매, 김인애 자매, 남용범 장로, 도재왕 장로, 박은주 자매, 박종성 장로, 백영애 자매, 신 석 장로, 심봉석 장로, 인윤자 자매, 장수성 장로, 정환규 장로 [
사진 보기

*1997.8

 

 

 

 

한국 청년 대회(3회) 
교회 개척자 150주년 기념하기 위한 전국단위 청년대회가 충북 영동에서 열려 초기 개척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되새기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1997.1-12

 

 

 

 

 

 

 

 

 

개척자 150주년 기념행사
교회 초기 개척자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개척자 150주년 기념 행사가 전세계적으로 시행되었던 1997년, 한국에서도 기념 행사가 다양하게 시행되었다. 상호부조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복지시설 방문 봉사와 각 스테이크 중심의 자연 정화운동, 그리고 전국의 1000여 명의 성도들이 참여한 헌혈운동 등 실질적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있었던 개척자 기념행사 (포장마차 여행 재연 등)에 한국 주요 일간지 기자 8명이 함께 참석하여 말일성도의 참된 모습을 보고, 일간신문과 잡지에서 그 내용을 크게 보도하여 교회 홍보에 좋은 계기가 되었다.  

*1998.9.5


 

수재의연금 3,879만원(미화 3만달러) 성금
(조선일보 1998.9.5)

극심한 수재를 입은 한국의 경기,수도권 지역 수재민을 위한 구호금이 교회본부의 전 세계의 말일성도들의 정성을 더해 조선일보를 통해 전달되었다.

*1999.12 

 

 

 

한국 교회의 현황 (1999년 말 현재)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 말 현재 한국교회는
*스테이크 : 17개
*지방부 .......... 6개
*선교부 .......... 4개
*와드, 지부 ...166개
*회원수 ........7만여 명
*선교사 ........500여 명
*
서울성전 죽은자를 위한 의식 .......연간 10만건
*종교교육원 ....5개

*2000.4.22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 신호범 형제 초청 공보행사
수원스테이크 공보위원회 주최. 교회 전임 서울 선교부장이자 현재 워싱턴주 상원의원인
신호범 형제 초청. 협찬사인 동아문고 이벤트홀에서. 권영준 형제사회로 수원방송에서 녹화. "공부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책에 대한 저자와의 대화시간을 가짐. 언론관계자, 지역지도자, 도내 고교 교장들이 참석. 이용환 스테이크장의 사회로 교회소개 및 신호범 형제의 미국 입양 후 역경을 딛고 동양인으로서 최초의 미국 상원의원이 된 경험과 정치 철학 등을 나눔.

*2000.8.26

 

 

 

브리감 영 대학교 총장특별공로상 황근옥여사 수여. 황근옥 자매. 사회사업가. 평생을 고아 양육과 사회봉사활동에 바쳐옴(80세, 2000년) 한국인 처음으로 미국 유타주 소재 브리검 영 대학 총장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1965년부터 5년동안 송죽고아원 원장으로 재직했고 69년부터는 자신이 직접 '텐더 애플즈 홈'이라는 고아원을 설립, 20여년동안 운영했다. 6세때 부친 사망, 6년간 고등학교 교편, 교사 교환 프로그램으로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 공부, 여름에 버클리에서 일하던 중 BYU 한국인 학생을 만나 BYU로 초대, 1962년 6월 23일에 침례, 한국에 귀국 송죽고아원 창립, 2000년 8월 BYU에서 Presidential Citation<총장 특별공로상>을 받음)가 말일성도 미군인 스텐 브론슨(Stan Bronson)씨의 도움을 받아 창설한 이 재단은 고아와 가정을 잃은 소녀들을 위한 사업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2000.10.28

 

 

 

 

 

 

 

*수원 스테이크 30년사 발간
 수원 스테이크 30년사

발행처: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수원 스테이크
발행인: 이용환 스테이크장
주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신풍동 221-2
규모: 320쪽(성도들의 간증 106쪽 포함), 고급아드지.
편집인: 수원 스테이크 역사편찬 위원회/이영희, 오은용, 이상호, 구승훈, 임승근, 김태은, 황현선

내용: 발간사(이용환 수원스테이크장), 축사(한인상 장로), 발간 취지(구승훈 수원스테이크 제2보좌)/지도자 연표/
초기 수원성도들의 발자취(1970-1992)/스테이크 조직과 발전(1992-1999)/스테이크 연대표/통계로 본 스테이크 발전 현황/스테이크 주요 일지(1992-1999)/스테이크 대회 모임 내용(1992-1999)/보조조직 역사/스테이크 초등회 행사 조명/청소년 행사 조명/상호부조회 행사 조명/선교사업 주요일지/성전 주요 일지/기타 사진 자료/와드별 역사 보고: 권선와드-매탄와드-신풍와드-안성지부-오산와드-용인지부-율전와드-평택지부/수원 스테이크 30년사 출판기념-특집 기획/성도들의 간증/편집후기 
<
큰 사진>

*2001.4.28-29

 

 

 

2001년 서울 지구대회 - 잠실 실내 체육관
2001년 서울 지구대회가 십이사도 정원회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의 감리로 개최되었다. 28일 오후 1시에는 신당와드에서 서울/경인 지역의 10개 스테이크장, 미군 지방부장, 강릉지방부장, 서울 성전장, 서울 선교부장, 서울 서 선교부장이 참석.
29일 오전 11시에는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5,60여명의 회원과 구도자가 참석한 가운데 총회 개최.
1996년 5월 22일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의 방한으로 가졌던 특별 지구대회(당시 명칭 한국대회, 이 대회는 서울과 부산에서 나누어 개최되었다) 이후 5년만에 개최. 특히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는 합창은 스테이크별 연습과 전체 연습을 통해 최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2001.8.8-11

 

 

 

제4회 한국 후기성도 청년대회     [사진 보기]
충북 보은 속리산 유스타운. 한국 복음 전파 50주년 기념. 100여명 신권 지도자 방문. 771명 참석. 대회장 칠십인 지역관리 역원 김종렬 장로. 4개 대대로 편성. 준비대대(아담,에녹,아브라함,모세,이사야 조, 순종대대(침례요한,베드로,야고보,요한,바울 조), 성약대대(리하이,니파이,앨마,몰몬,모로나이 조), 회복대대(요셉 스미스,브리감 영,멕케이,킴볼,힝클리 조).
셋째 날에 '시련과 인내, 그리고 봉사' 프로그램으로 350여명이 내속리 면사무소의 도움으로 내속리면 일대 지역봉사 전개. 갈목리 60명, 하판리 30명, 상판리 30명, 구병리 20명, 백현리 30명 등등이 봉사로 고추를 따거나 퇴비증산을 위한 제초 작업 등에 참석.
"힐라맨의 이천 용사"를 형상화한 2001 한국청년대회 캐릭터와 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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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5

온누리 합창단 김호직 박사 추모 및 성탄절 공연 /   공연 내용 소식
   장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35, 아츠풀센터, 전화: 02-3486-0145 

*2002.5

한국 선교사 훈련원 252기 [사진보기]

*2002.7.30-
   8.3(3박4일)

서울 영동스테이크 가족캠프: 제1회 영동스테이크 한마음 여름대축제 캠프. 참여인원 300여명. 단일대회로는 사상 최대 가족 회원참여 모임. 장소:경남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상촌마을/청소년수련원.지리산 청학동,남해 한려해상국립공원 관광. [기념사진]

*2003.2

 

 

 

청주스테이크 최수영 형제는 960쪽의 <한국 후기성도 기억의 책 : 충청지역을 중심으로>를 고급 양장으로 출판하였다.  최형제는 15년 전인 1988년 3대 청주스테이크장을 할 때부터 이 책을 준비하였다. 그 책에는 285명 이상의 충청 성도들의 개인 기록과 사진이 있다. 그리고 대구 권찬태 가족이 청주와 대전에서 노변의 밤에 말씀하신 자녀교육과 권영준 형제의 하늘의 힘을 끌어오기 위해 신앙으로 공부한 노력과 방법에 대한 내용의 글과 오디오 파일도 있다 부록의 CD-ROM에는 충청지역 성도들과 선교사 사진(1185개), 한국 교회 역사적인 사진(414개), 재미 말일성도들 사진(87개), 미국 성지순례와 관광사진(936개)과 성지순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993개)도 있다. 그리고 충청지역 역사적인 자료를 포함하여 봉사한 선교사들의 명단 등이 있다. 또한 신호범 선교부장의 일생에 대한 노변의 밤 말씀(90분) 오디오 파일도 있다. 청주스테이크 최수영 형제. [상세 내용 보기: 충청지역 기억의 책]

 


 =>> 
한국 교회 역대 선교부장

*초창기 역대 지방부장 및 스테이크장

<서울 지방부장>
1대 .....
김호직 ...................... 1956 - 1959
2대 ..... Lowell E Brown ........ 1960 - 1961
3대 ..... James E Bradshaw ...1961 - 1962
4대 ..... Lynn Waddell ............1962
5대 .....
정대판 .......................1962 - 1964
6대 .....
이호남 .......................1964 - 1966
7대 .....
차종환 .......................1966 - 1969

<한국 중앙 지방부>
1대 ..... 차종환 ......................1969 - 1970
2대 .....
김종균(서울 서지방부, 박재암 김창선(서울 동 지방부)

<한국 부산 지방부>
1대 .....
배영천
2대 ..... 장재환

<한국 서울 스테이크>
1대 ..... 이호남 .................. 1973
 

2005.1.1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한국교회 공식 홈페이지 오픈
http://www.lds.or.kr 또는 http://www.ldschurch.or.kr

2005.7.1

한글 교회 이름 변경세 경전인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 한글 개역판 출간
기존 이름: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새    이름: 예수 그리스도 교회 후기성도 교회
영문 명칭은 변동 없음

2005.7.30-31

한국교회 헌납 50주년 기념 문화의 밤, 한국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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