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와 나


         1990년 12월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청주스테이크(교구)장  최 수영

          수정  2003년 12월  한국교원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최 수영



   이 글은 나의 일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나의 지식과 느낌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에 대한 나의 믿음, 소망, 사랑을 갖게 되었는가!  또한 어떻게 그의 사랑을 느꼈으며 그의 사랑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나의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적어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고 있는 자들에게 나의 간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신앙이 증가되고자 글로 적어보았다.


   1962년 목포중학교 2학년 때 어떤 소설가가 쓴(박기당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라고 기억됨) 동화책을 읽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산상수훈을 설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으며 그렇게 높은 차원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과연 그는 실존했던 인물이며 그는 어떻게 그러한 높은 차원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대단히 감동적이면서도 너무 나와는 거리가 먼 현인 같았다.


   세월은 흘러 1964년 서울 경동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참석해 보았다. 루터 교회였으며 목사님께서 성경을 많이 인용하면서 경건하게 예배를 집행하신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의 감동적이고 신화적인 느낌을 생각하며 신약성서를 구입하여 읽고 또 읽었다. 대학 입시 준비에 대비하여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나아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며 여러 가지로 회의에 빠져 있는 나에게 신약성서는 가장 의미 있는 책이었으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거리감과 신화적인 요소는 있지만 나의 생각은 그의 가르침과 그의 고귀한 사상에 집착하고 사색에 잠기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경동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에 있는 친구를 통해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솔트 레이크 성전 사진과 뒷면에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신앙개조가 있는 선교사의 명함을 보고 그 건물 즉 성전이 거룩한 건물이라는 인상을 받아 그 건물과 그의 교회에 대하여 질문을 해 보았고 그의 교회가 서소문에 있는 우리 집과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그 성전이 거룩한 건물이라는 인상과 그 교회에 대한 이상한 호기심 때문에 집에 와서도 곰곰이 오래 동안 생각해 보았고, 그 뒷날 그 친구에게 교회에 같이 가 구경도 하고 선교사도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림 1)>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솔트 레이크 성전(주님의 집)

 

    서울 서대문 근처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서부지부에 방문하여 선교사들을 소개받고 복음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6개월 후 1964년 12월 12일에 침례를 받았다.  그 후 얼마 지나 몰몬경을 읽게 되었고 니파이 3서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고대 미대륙에 나타나셔서 가르친 내용을 읽게 되었다.  신약성서의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니파이 3서 27장 27절에서 멈추게 되었다.  “이에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나와 같은 자라야 하느니라. ” 어떻게 나와 같은 미약한 사람이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베드로나 십이사도 혹은 슈바이쳐와 같은 사람들에게 해당되겠지. . .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 .


   그러나 그 순간 중학교 국어 책에서 읽었던 “큰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이라는 나다니엘 호오돈이 쓴 단편소설이 생각났고 주인공인 어어니스트(Earnest)가 어려서부터 큰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언젠가는 인디안들을 통해 엄마가 들려준 그 전설의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나 그와 같은 인자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의 소망이 되었고 흰 백발이 되었을 때 바로 그 어어니스트가 큰바위 얼굴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의 모범을 따르면 언젠가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열등의식이 있는 미약한 자가 감히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꾸 의심이 들었으나 몰몬경 이더서 12장 27절을 읽고 용기와 힘을 얻었다.

   서울 경동고등학교 졸업 때 그 동안 학교에서 권장해서 은행에 저금한 돈을 찾아 성경을 하나 사서 일년 안에 다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구약이 읽기 힘들었으나 다 읽었고 신약도 다시 읽었다.  몰몬경도 다시 읽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는 구절이 몰몬경에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와 내가 온전함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통해 우리 인류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고 전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맏형이었고 하나님인 엘로힘의 지시 하에 여호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주를 창조했고 수 없는 세상을 창조했고 우리도 그의 계명을 지키고 발전하면 우리도 우리의 아버지인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그의 뜻과 계시를 주었고 이 말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하여 조셉 스미스라는 어린 소년을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회복시켰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일의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해 현대 계시를 많이 주었고 그 책이 교리와 성약 이라는 것도 배워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교리와 성약을 읽을 때면 주님께서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느낌을 여러 번 느꼈다. 특히 “나의 친구여, 이제부터는 너희를 나의 친구라 부르러니와 내가 너희에게 이 계명을 줄 필요가 있나니, 곧 내가 권능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러 돌아다니며 나의 친구와 함께하던 그 시절의 나의 친구와 같이 될 지어다”(교성 84:77) 그 외 여러 곳에서 “나의 친구여” (교성 94:1, 98:1, 100:1, 104:1)라는 구절과 “이제부터는 너희를 친구라 부르려니와. . . ”등의 구절은 나에게 대단한 친밀감을 갖게 해 주었으며 예수님께서 나의 친구가 되어 주실까 두렵고도 은근히 기쁘기도 하였다. 또한 “그러므로 너희는 성결케 되어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만 향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나님을 보게 될 날이 이르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자기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나님이 정하시는 시각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보여 주시리라. ” (교성 88:64) 나도 언제 성결케 되어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  꿈만 같은 이야기인 것 같았다.


   말일에 회복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선택된 축복의 땅인 미국에 가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성스러운 건물이라고 강한 인상을 받았던 미국 유타주 솔트 레이크 성전도 가보고, 조셉 스미스가 어느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과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대답해주신 그 숲 속에 가서 나도 기도해 보고 싶고, 후기성도(몰몬) 개척자들이 핍박을 받아 고생하여 서부로 이동했던 곳들도 방문해 보고 싶고, 회복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미국에 가보고 싶었다. 또한 연구와 신앙으로 학문을 탐구하기 위하여 주님의 대학인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싶고... 왜 미국이 축복 받은 땅이며 가장 으뜸 되는 땅인지 직접 가서 관찰해 보고 싶었다.


  침례 받을 때부터 결심했던 선교사업을 거의 끝마칠 무렵(1972년 12월)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선교부 소식지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십이사도였던 맬빈 제이 밸라드 장로님의 주님을 만난 꿈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후기성도 종교교육원 몰몬경 학생교재  527쪽에도 있다). 그 기사에서 “내가 백만년을 산다고 해도 결코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분은 팔로 나를 안으시고 입 맞추시고 가슴으로 꼭 껴안아 주시고 축복하셨는데 내 뼈의 골수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 만사를 손에 쥐고 계시는 그의 면전에 서서 그의 사랑과 애정과 축복을 받으면서 느낀 감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가 있다면 그때 느낀 감격을 느끼기 위하여 현재의 나 자신과 앞으로 되고 싶은 나 자신을 모두 바치겠습니다”를 읽고 매우 감동되었으며 그 느낌이 어떠했길래 그렇게 기록했으며 나도 주님을 만나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하고 막연한 소망을 가져 보았다.


  1973년 3월에 2년 임기의 선교사업을 끝마치고 5월 문교부 유학시험에 합격하고 8월에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 운영하는 하와이 교회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 해 12월 축복사 축복문을 받았고 주님께서는 내가 교육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기를 바라시고 또 잘 준비되었으면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쁨과 확신으로 그 부름에 응할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나 같은 미약한 자에게도 시키실 일이 있을까? 어떻게 교육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을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지식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 그리고 무엇이든지 기회가 있는 대로 열심히 배워 주님께서 어떤 일을 맡기면 준비가 되어 있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77년 6월 하와이 교회대학을 졸업하고 유타주 브리감-영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학문중의 학문이요 정신적으로 방황한 나에게 학문의 목적과 인생의 목적을 알게해 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는 한국의 종교교육원 교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며 교육공학 박사과정에 있었다. 고학으로 공부를 했고 또한 공부가 어려워 많이 기도하고 많이 울었다. 현대 계시에서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닌 즉 너희는 지혜의 말씀을 부지런히 구하고 서로 가르치라. 참으로 가장 좋은 책에서 지혜의 말씀을 구하라. 또 연구와 신앙으로써 학문을 구하라.”(교리와 성약 88:118) 그리하여 연구와 신앙으로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주님께 많이 매달렸고 여러 번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느꼈다. 

  

   1979년 박사코스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시아 언어과 학과장께서 한국어를 가르칠 교수를 찾고 있는 데 이미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지만 나도 박사 과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나에게도 접수시켜 보도록 권하면서 원서를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주님께 한국에 돌아가 종교교육원 교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 왔다는 것과 그러나 필요하다면 브리감 영 대학의 한국어 프로그램을 위해서 몇 년 동안 학교를 위해 일할 수도 있다고 기도해 보았다. 기도 할 때마다 브리감 영 대학에 남아서 한국어 프로그램을 키우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학교당국이 나를 교수로 채용할 것이라는 것을 기도의 응답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내에게 브리감 영 대학이 나를 교수로 채용할 것이라고 느낌을 이야기 했을 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같이 웃고는 했다.


   기도의 응답인 나의 느낌대로 박사학위가 끝나기 2년 전인 1979년부터 브리감-영 대학교 한국어담당 교수가 되었고 후기성도 귀환 선교사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에 대하여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 나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준 교회와 나의 사랑하는 조국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신세를 많이 졌고 한국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한 미국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했다. 나의 헌신적인 열성과 한국의 후기성도 교회가 발전함으로써 미국의 귀환 선교사가 많아짐에 따라 1982년 브리검 영 대학교에 한국어 학사 전공 인가가 나게 되었고 한미교육위원회단장 이었고 하버드 대학 출신인 귀환 선교사 Mark Peterson교수가 채용되어 한국어 프로그램이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다.


   브리감 영 대학에 한국어 학사과정이 인가되었고 학생 수가 많아짐에 따라 한국학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느껴 1984년 서울대학교의 어학연구소로 한국언어학을 연구하러 8개월 객원 연구교수로 왔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미국인의 의식구조를 밑바닥부터 파헤치고 싶었으나, 우선 한국어의 주제 및 주격조사 “는/가”에 대한 연구로 고민하고 있었고 몇 개월이 지나고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서울대학교의 어학연구소 세미나에 저의 연구를 발표하도록 부탁을 받았다.  유명하신 서울대의 국어학자이신 이기문 교수님도 저에게 그것을 해결하면 국어의 골칫거리의 절반이 해결되는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양동휘 교수님도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논문을 "Topicalization in Japanese and Korean"으로 썼고 그것에 대하여 다루었고 이화여대 재직시 논문도 그 문제에 대해 2편을 발표했으나 구름을 잡으려고 하는 것같이 실제하고 있으나 가서 잡으려면 잡히지가 않은 것 같아 영어학자가 너무 국어 문제에 뛰어드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고 나에게 용감하다고 말씀하셨다. 유명한 언어학자요 저에게 발표를 부탁하신 이정민 교수는 모든 언어학자들이 다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으니 무엇이 골칫거리인지만 발표해도 된다고 하셨다.


   어떻게 발표를 할까 걱정되어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도 해 보았으나 연구하는 데에 별 진전이 없었다.  서울대학교의 뒷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왜 언어를 혼동시켜 놓고 우리에게 언어를 배우고 다른 나라 백성과 친숙하게 지내라고 하셨습니까?”(교리와 성약 90:15절 참조) 우주를 어떤 율법으로 다스리신다고 했는데 (교리와 성약 88:36-38, 42절 참조) 언어에는 어떤 율법이 있습니까? 제가 연구하는 것은 유명한 언어학자들도 잘 모르는데 당신의 성령을 저에게 보내 주셔서 저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 다음 주 수요일에 유명하신 서울대학교의 언어학자들 앞에서 발표하게 됩니다. 제가 잘못하여 제가 개인적으로 망신당하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제가 잘못하여 당신의 교회와 당신의 학교인 브리감 영 대학교를 망신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회복된 교회와 당신의 학교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99%의 노력에 1%의 영감이 주어진다면 제가 몇%더 노력해야 1%의 영감을 받겠습니까? 하고 탄원하기 시작했다. 발표하기 전 마지막 토요일에 형수님과 어머님께 금식하고 연구할테니 과일도 가져오지 마시고 쥬스도 가져오지 마시고 노크도 하지 마시라고 당부를 하고는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 연구하며 기도했다. 오래 도안 이렇게 저렇게 모델을 만들어 보고 있는 데 갑자기 의식 구조와 언어 구조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과 성경에서의 잠언에 "For as the man thinketh in his heart, so is he"(Proverb 23:7) 그리고 “모든 것에 상대가 되는 것이 있느니라”는 몰몬경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 두 아이디어를 이용해 언어학적인 틀을 만들어 내가 연구하는 테마의 문제 해결에 적용해 보았고 그리하여 훌륭하게 발표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연구 논문이 서울대학교 어학연구(20권 3호)에 실리게 되었다.


   왜 내가 나의 전공 분야도 아닌 언어학을 그처럼 열심히 연구하고 주님께 간구하였는가? 그것은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로 연구하러 오기 얼마 전에 나를 한국어 담당 교수로 고용하셨던 클라크 학장님을 만났을 때 이상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한국어 교수를 채용할 때 학교의 위원회에서는 하버드 대학 출신이요 유명한 학자요 이미 대학교수로 계신 미국인을 1위로 추천했고 나를 2위로 추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위인 미국인을 먼저 접견하고 일주일후 2위인 나를 면접했다. 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나는 대답하길 “저는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갑니다. 그러나 브리감 영 대학이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만일 필요하다면 몇 년간 봉사할 수 있겠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학장님은 좋은 인상을 받았단다.  그 후 위원회의 최종 추천을 받아 12명의 명단을 책상 위에 놓고 기도를 했고 나를 쓰라는 느낌을 받았단다. 보통 위원회가 추천한 1위의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관례여서 그 다음날 또 기도를 하였단다. 그 때도 역시 나를 쓰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 그리하여 나를 채용했다는 것이다. 하버드 출신이 4명이나 접수했고 모두 12명이 접수를 했는데 주님께서 나를 신임하여 나를 채용하도록 학장님께 영감을 주셨다. 그리하여 그 신임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고 금식했고 드디어 99% 근처의 노력에 1~10%의 학문적인 영감을 받았다.


   브리감-영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동안 “연구와 신앙으로 학문을 탐구하라”(교리와 성약 88:118)는 주님의 말씀은 항상 나의 가슴속에 있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연구를 끝내고 브리감-영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의식구조와 언어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과 “모든 것에 상대가 있다”는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더 연구하고 언어를 분석해 보았고 수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언어학적인 3차원적인 모델을 만들었고 언어자료를 분석하여 통계적으로 그 모델을 중명하였다. 그 동안 딱은 수학 실력, 컴퓨터, 통계학, 교육공학적인 모든 지식을 동원하였고 성전에서 계시와 영감을 달라고 기도도 많이 하였다. 어느 날 “그리스도의 빛”에 대한 현대 계시(교리와 성약 88편)를 읽고 종교교육원 학생교재를 읽다가 그 전에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력과 위대한 어떠한 발견이나 발명도 그리스도의 빛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빛을 더 받지 않고는 학문적으로나 가정적, 국가적 어떠한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경전과 성전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연구와 신앙으로 학문을 탐구하고 기도로써 그리스도의 빛의 도움을 구하여 논문 몇 편이 학술지에 실리게 되었으며 그중 한편은 네덜란드의 유명한 언어학술지(Linguistics 24(1986), 351-369)에 실리게 되었다.


   나는 침례 받기 전부터 경전을 가까이 접해왔으나 정작 열심히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브루스 알 멕콩키 사도님의 임종전 마지막 후기성도 연차대회에서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통과 구속의 사업에 대한 강한 간증을 듣고서부터이다. 그 간증을 듣고 나도 울었으며 나도 멕콩키 사도님과 같은 주님에 대한 강한 간증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도 멕콩키 사도님과 같은 열의와 신앙으로 열심히 경전을 탐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종교교육원 과정을 끝냈으나 매 학기마다 종교교육원 과정을 한 과목 이수하고 학생교재를 사서 열심히 경전과 교재를 빠짐없이 읽고 깊이 연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나도 스펜서 더불류 킴볼 예언자님과 같이 경전을 가까이하고 주님과 가까이하고 싶어서 열심히 연구했다.


   경전을 열심히 탐구하고 주님의 나에 대한 뜻이 무엇일까, 열심히 구하고 성전을  열심히 방문하든 시기가 몇 달이 지나고 1985년 11월 18일 저녁 나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나는 성전 가멘트만 입고 어떤 산등성 꼭대기로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하였고 그곳에서 어떤 모임이 있다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그 모임을 주관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꼭대기에 다다르자 그 분은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반겨 주셨다.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고 신임하고 있다는 것을 미소를 보면서 알았다. 그 분의 사랑과 나에 대한 신임을 뼈 속 깊이 느꼈으며 그래서 나는 기분이 참 좋았고 신이 났다.  나는 그 모임이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뽑힌 14만 4천의 대제사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고 어떻게 뽑혔는가 하는 이상한 공식도 보았으며  주님께서는 어떤 율법에 의해 그의 왕국을 다스린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모임이 끝나고 하얀 옷을 입은 어떤 두 사람이 양옆에서 나를 어깨동무하고 산등성을 날라 어떤 성전 입구에 데려다 주고 떠나갔다. 성전 안으로 날아 들어가니 은경 엄마가 나의 옷과 가방을 지키고 있었고 약 3-4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라 생각했고 짜증을 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으나 나를 보더니 짜증을 내지 않고 와서 반갑다고 미소로 반겨 주었고 약 7m 떨어진 곳에 큰 딸 은경이와 아이들이 옷을 단정히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깨어보니 꿈이었고 주님께서 미소하실 때 나를 사랑하고 신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흐뭇하고 영육이 기쁨으로 흡족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성전을 방문하여 그 꿈이 무슨 뜻인가 프로보 성전의 해의 영광 방에서 묵상하며 기도해 보았다.  주님께서 나를 준비시키시고 시키실 일이 있어서 그러한 꿈을 주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가?  이제부터는 100% 정직해야겠고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도 점점 없애고 남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하고 성도답게 생활하여 주님의 사랑과 신임을 받도록 나 자신을 고쳐가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맬빈 제이 밸라드 사도님이 말씀하신 “그때 느낀 감격을 느끼기 위하여 현재의 나 자신과 앞으로 되고 싶은 나 자신을 모두 바치겠습니다.” 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느낄 수가 있었다.


  1986년 1월 2일은 40세가 되는 생일이었다. 유타주 솔트 레이크 성전이 40년 걸려 완성되었고 그 후부터 본격적으로 봉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교회에 들어오게 된 동기도 솔트 레이크 성전이 거룩한 건물이라는 인상을 받아서였다.  솔트 레이크 성전이 40년 걸려 완성되어 주님의 사업을 위해 쓰여 졌으니 나 자신의 성전(몸)도 이제 40세가 되었으니 주님의 사업을 위해 쓰여 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솔트 레이크 성전에 가서 나의 자신을 주님 사업에 쓰이도록 바치겠다고 생일 날 성전에 가려고 했으나 솔트 레이크 성전이 문을 닫아 프로보 성전에 가서 나의 자신을 주님의 왕국에 쓰이도록 바쳤다.  “40세인 보잘 것 없는 저를 바치오니 필요하시다면 주님 원하시는 대로 써 주옵소서”  주님께서 나의 헌납을 받아 주셨는지 확실히는 모르나 세 번 그렇게 기도했을 때 사양하시지는 않으신 것 같았다.  꿈을 꾼 날이 화요일이므로 매주 화요일마다 성전에 가서 그렇게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구했다.


  1986년 9월초에 한국교원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로 오게 되었다. 미국에 13년 사는 동안 왜 내가 한국에 태어났으며 주님의 나에 대한 뜻이 무엇인가? 항상 염두에 두었다.  13년 살았던 에덴동산(미국)을 떠나고 또한 6년간이라는 세월을 학생으로서 또한 7년간 교수로서 배우고 가르쳤던 주님의 대학교(브리감-영 대학교)를 떠난다는 것은 시집가는 처녀의 마음이요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과 이브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회복된 교회로 인도하셨고 교훈에 교훈을, 경험에 경험을, 시련에 시련을 거듭하여 나를 연단하셨고 그의 신임과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


  나는 1973년 6월호 성도의 벗(최근에 리아호나로 명칭이 바뀜)에 실린 휴 비 브라운 장로의 “건포도 나무”를 여러 번 읽었으며 읽을 때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런 시련이 닥칠 것을 예감했다. 해의 영광을 상속받을 모든 자는 예외 없이 아브라함과 같은 시험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종교교육원 학생교재에서 읽었다. 주님께서는 나를 미국으로 인도하셔서 나를 준비시키셨고 훈련시켰으며 그의 왕국의 율법들을 더 잘 보고 느끼고 깨닫도록 도와주셨고 그 위에 사랑과 신임을 꿈으로 보여 주시고 그의 사랑하는 한국 땅 나의 조국으로 나의 가족을 보내셨다.  또한 교육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라고 축복하셨고 나에게 목표를 주시고는 한국교원대학교로 인도하셨다. 한국의 교육의 장래를 위해 나에게 시키실 일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희망이 있고 의로운 소망이 있다.  나의 남은 생애를 주님을 위해 그의 왕국에서 그의 재림을 준비하며 그의 사랑하는 종이요 친구들인 그의 양들과 함께 힘을 합하여 열심히 일하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왕 중 왕으로 다스릴 복천년에 한국의 교육부에서 일하도록 열심히 배우고 준비할 것이다.  그리하여 “착하고 충실한 내 종아 잘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으며 꿈에서 조금 느꼈던 그의 사랑과 신임을 계속 영원히 느끼고 받고 싶어 나의 결점과 성스럽지 못한 모든 것을 고치며 주님과 같은 성품을 닮아 가도록 노력하겠다.  경전 즉 성경, 몰몬경, 그리고 현대의 계시인 교리와 성약에서 배울 수 있는 그의 모든 가르침이 사실이라는 것과 “이에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나와 같은 자라야 하니라”(몰몬경 니파이삼서 27: 27)는 말씀이 무슨 뜻이며 그 말의 가능성을 이제는 믿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먼 옛날 멀리 떨어진 유대지방에 살았던 낯선 이국사람이 아니요, 살아 계신 나의 위대한 친구요, 스승이요, 구속주 이시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신임하며 나도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따른다.  겸손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나의 이 경험과 간증이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안에서 소망을 갖는 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신 우리의 친구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보았다. 살아 계신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전한다.  아멘.

 

       Soo-Young Choi, Ph.D.
     Dept. of English Education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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