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死亡)의 골짜기로
 

피셔 소령:

미공군의 일등 조종사로 미국 정부가 그 공적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웅에게 하사하는 최대의 훈장을 받음. 대통령이 그의 목에 푸른 리본을 걸어 줌으로써 마침내 그는 미 공군으로(항공국을 포함) 훈장을 받는 마흔 여덟번째 영웅이 된 것이다. 또한 그는 공군이 단일 군으로 독립된 이래 다섯 번째로 이 훈장을 받은 것이며 이 훈장을 받은 유일의 생존 인물이 되었다. 이 훈장을 받은 네명의 조종사는 모두 한국동란 때 받았으나, 사실 훈장을 받을 공을 세워놓고는 모두 죽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피셔 소령은 월남전에서 이 훈장을 받게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피셔 소령과 마이어스 중령.
피서 소령은 캄보디아 근처의 가설 활주로에서 그를 구했다


 

   린든 비. 존슨 대통령은 1967년 1월 19일 폭설이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백악관 실내에서 특별 시상식을 갖기로 했다. 이날 원래 계획된 대로 남쪽 뜰 잔디밭에서 시상식을 갖는 것은 취소되었지만 수상자는 언짢아 하거나 그렇다고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환경과 조건과 계획의 변화에 면역이 생긴 사람이다. 그는 그날 그의 신축성 있는 기지와 재능과 또 그가 비친 용기로 인하여 백악관에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미공군의 일등 조종사로 미국 정부가 그 공적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웅에게 하사하는 최대의 훈장을 받기 직전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그의 목에 푸른 리본을 걸어 줌으로써 마침내 그는 미 공군으로(항공국을 포함) 훈장을 받는 마흔 여덟번째 영웅이 된 것이다. 또한 그는 공군이 단일 군으로 독립된 이래 다섯 번째로 이 훈장을 받은 것이며 이 훈장을 받은 유일의 생존 인물이 되었다. 이 훈장을 받은 네명의 조종사는 모두 한국동란 때 받았으나, 사실 훈장을 받을 공을 세워놓고는 모두 죽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피셔 소령은 월남전에서 이 훈장을 받게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그때의 모든 상황과 조건과 경위로 보아 피셔 소령도 사실 그 훈장을 받게 된 공로를 세우면서 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설과 상장과 조건과 경위의 역설은 때로 전장리라는 좌점에서 시체가 아닌 영웅을 분만하기도 하는 것이다. 비로 이것이 1966년 3월 10일 죽음을 웃어 넘긴 피셔 소령의 엄청난 무용담인 것이다.

   시상식에서 해롤드 브라운 공군 참모총장이 읽은 의례적인 공로 상장의 글을 들으면서 데포드 웨인 마이어스 중령은 버니 피셔 소령의 실같이 잔잔한 미소를 곁눈질 해 보였다.

   ".....뛰어난 의협심과 목숨을 건 용맹심을 발휘한 A-1E의 조종사는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월남 공화국 아사우 근처에서..."   "저 자주 동료들에 의해 "쩜프"라는 별명으로 불려지는 마이어스 중령이 입을 열었다.
  "정말 그는 의협심이 강하고 담대할 뿐만아니라 그 위에 목숨까지 내걸고 덤벼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일 마이어스 중령이 모른다면 알 사람이 없다. 마이어스 중령이란 그날 바로 피셔 소령이 구출해낸 사람이다. 장소는 조용한 백악관 회의실이었지만, 쩜프 마이어스 중령은 일년이 지난 그때의 모습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히 머리속에 그려 넣을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설명했다.


미국 군인의 최고 영예인 상이 린든 비 존슨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주어진 후의 기념촬영. 아이다호주 남 스테이크 회원인 그의 훈장
수여식에는 피셔 자매와 다섯 아들도 같이 초청되었다.

 

  총알이 튀는 골짜기로 베트콩 2,000여명이 몰려들어 공군 특별 전초지를 휩쓸었다. 숨막히는 더위가 골짜기를 지지 누르고 있었으니, 그 골짜기는 폭이 반 키로미터 남짓하고 길이가 25리 쯤되는 것이었는데 베트콩 선발대가 이미 계곡 양옆으로 와서 20여문의 대공화기를 설치해 놓았다. 원자 무기 수백대라도 이 보다 더 무서우랴!  특히 이 날은 8,000피트 두께의 구름층을 뚫고 하강해야 했으며 지상에서부터 구름까지의 높이는 최고 800피트에서 200피트까지 되는 곳도 있었다.  측면에서 공격하기에는 너무 좁고 이 계곡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비행하다가 급한 좌회전을 시도한 다음 이미 베트콩이 점거한 남쪽 방벽을 때려야 했다.  그러니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180도 각의 급회전을 수없이 되풀이 해야 했던 것이다.

   마이어스 중령은 그의 편대 조종사 허버트 킹 대위와의 작업을 회상해 낸다. 이들은 구름위를 선회하면서 틈을 엿보았으며 아래로 뚫린 틈만 있으면 A-!E기를 몰고 내려가 요새에 남은 병력을 조력하려 했다.  존 루카스 대위와 그의 편대 조종사 프란씨스 바스케스 대위의 비행기가 풀레이크로부터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일행은 바스케스 대위가 인도하는 구멍을 통하여 사망의 골짜기로 강하해 내려가서 폭격을 유도하는 아군의 무전을 잡고자 나무 높이로 저공 비행을 했다.  이들은 남쪽 요새 벽을 겨누어 강타했으며 전날엔 베트콩 300여명을 가시 철조망으로 날려 버렸다.

   루카스와 해그는 북쪽에 남아 지원 했고 피셔소령이 첫번째로 급강하하는 뒤를 마이어스 중령과 킹이 뒤따랐다.  이들이 골짜기로 강하하자 베트콩의 대공 포화는 일제히 문을 열었다.  킹의 기체를 덮은 창문이 포화에 맞았으나 사람은 기적적으로 이를 피했다. 그러나 일단 창문이 파괴된 그의 비행기는 그런 상태로는 구름속을 비행할 수 없어 일단 강제로 본부 기지까지 송환 되었다. 피셔 소령과 마이어스 중령은 남쪽 요새 벽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면서 강타했다. 이 때 돌연 공격을 시도하던 쩜프 마이어스는 기체의 진동을 느꼈다.

  "내 기체에 캘리바 50탄을 맞은 일이 있는데 이것은 그것 보다도 더 큰 중공제 37밀리 포 같음"이라고 외쳤다.

  "곧 이어서 엔진이 이상해 졌고 바로 완전히 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기체내부는 온통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나는 무전기를 틀어 나의 호출번호를 밝히고, Surf 41 번기,

  "적탄에 심하게 맞았음"이라고 전하자 바로 뒤에 따라오던 피셔소령이 "기체 뒤 꼬리에 불이 붙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나는 고도가 낮아서 탈출을 시도하지 못했고 결국 불시착 하겠다고 피셔 소령에게 전했습니다."

  "전쟁이 치열한 중에도 피셔 소령은 포화에 맞아 불시착한 동료에 대한 전우애를 어쩌자 못했습니다."
 이것은 마이어스 등을 두드리면서 이야기 하는 공군 참모총장의 음성이었다. 순간 마이어스는 현실로 돌아왔고 피셔 소령은 대통령의 면전에서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 우주에서는 다시는 있을 수 없는 감흥에 취해 있었다.

   피셔 소령은 마이어스 중령이 외친 '불시착 함'이라고 한 소리를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었다.

  점프 마이어스 불과 200피트는 불과 200피트 상공에서 포화에 맞았다. 그위에 중장비를 갖춘 그는 겨우 회전으로 균형을 잡았을 뿐, 더구나 화염과 연기에 싸인 그는 전방을 내다 볼 수 없었다. 이를 포착한 피셔는 마이어스와 함께 착륙 계획에 동조하여 실제로 착륙지를 검사하면서 마이어스가 기체를 내리려하자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일러 주었다.

   "기수를 위로!"

  피셔의 외침에 마이어스는 어김없이 움지여 주었고 그리하여 A-1E는 배를 땅에 붙이게 되었다.

  "그는 동체에 붙은 연료 탱크를 제거하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해서 기체가 땅에 닿자마자 났다."고 피셔는 후에 설명했다.

  "커다란 불기둥이 솟았고 불길은 기체가 헤치고 들어간 방향으로 통로를 내 주었다. 그는 얼마를 그대로 끄려 가다가 결국은 오른편 비상구로 탈출 했지만, 불길이 곧 그 뒤를 쫓았고 기체는 마침내 완전히 불꽃속에 휘말렸습니다. 나는 그가 곧 뛰려니 생각했지만- 상식으로는 그렇게 한다-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가 270도의 우회를 한 시간으로 보아 한 40초 가량이 걸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시간이 무서울 만큼 길다고 느꼈었습니다."

  피셔는 곧 공군 사령부를 불러 마이어스가 불길 속에서 뛰어나오지 않았다는 것과 어쩌면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마이어스는 자기대로 무기, 낙하산, 헬멧 등을 던져버리고 탈출을 위해 구조 기아도 제거 했으며 그러다가 마침내 탈출에 완전히 성공했다.)

  "나는 계속해서 상공을 선회했고 마침내 쩜프 마이어스가 기체 우편으로해서 뛰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흠사 마이어스 자신이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는데 그건 아마 꽉찬 연기 속에서 버티고 있느라고 연기가 몸에 베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마이어스는 곧 통로 옆으로 뛰어갔습니다."

  피셔는 마이어스가 뛰어간 근처에 낮으막한 뚝이 있는 것을 보았으며 마이어스가 그 뚝 근처 숲에 숨는 것을 보았다. 적은 바로 그 너머에 있었다. 피셔가 마이어스 위로 강하하자 그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결국 피셔는 그의 생존을 확인하기는 했으나 부상을 얼만큼 입었는지는 알길이 없었다. 피셔는 이를 본대에 알리고 구조 헬리콥터가 언제쯤 도착하겠느냐고 했더니 벌써 출발했다고 답하는 거였다. 피셔는 구조대의 도착 시간을 약 20분으로 잡았다. 이때 루카스와 해그가 다시 지원해 왔다. 이들은 마이어스 근처로 적이 닥아오지 못하도록 엄호하면서 계속 요새를 화염으로 뒤덮었다.

  약 10분쯤 후에 피셔는 다시 본대를 불러 구조대의 행방을 물어보니 피셔가 예상한 시간에 닿도록 이미 출발했다는 거다. 본대는 다시 피셔에게 그가 뚫고 들어온 구름 구멍을 찾아 올라가서 구조대를 에스콧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절대로 그러한 방법으로 마이어스를 구출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마이어스 주변으로는 베트콩이 득실거렸고 만일 내가 자리를 뜨기만 하면 곧 그에게로 덮칠 기세였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피셔는 자기가 직접 내려가 마이어스를 구출해 내겠다고 본대에 연락했다.

  "본대에서는 이를 저지하려했고 나 스스로도 현명하지 못한 계획임은 알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나의 계획이 그리 탐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기를 갈망한 것은 이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불시착한 그가 나의 동포요, 함께 복숨을 건 전우(戰友)였음을 어쩝니까?  나는 본대(本隊)에 나의 착륙계획(着陸計劃)을 알리고 곧 칙륙을 시도했습니다. 바스케스 대위가 바로 뒤에서 기총소사를 퍼부었습니다. 나의 속도는 착륙하기 엔 너무 빨랐습니다. 그 위에다 파괴된 활주로 언저리에 덮힌 연기는 정말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연막뒤에 까지 몰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만 속도계를 밟은 시간이 좀 길어서 활주로 끝에 정지하기엔 너무 멀리 지나쳤습니다."

 

범 신앙잡지 가이드포스트(Guideposts) 미국판
1967년 9월호 표지에 실린 버니 피셔 형제

 

  생각컨데 연기가 피셔에게 큰 장애가 되었던 것 같다. 더구나 베트콩들이 뒤엎어 놓은 활주로의 철판은 여기 저기 튀어나와서 비행기의 바퀴를 찢기에 안성 맞춤이었다.

  "정말이지 그곳은 수라자이었습니다." 피셔는 말을 이었다.

  "숙소가 파괴될때 날라온 파편이랑 바켓스 등, 그리고 휘발류 드럼과 불발된 18인치 로켓트탄, 어쨋든 나는 이러 것들을 스치면서 내달았습니다. 결국 활주로 밖으로 밀려 나갈 수 밖에 없다고 간파한 나는 다시 엔진을 걸어 이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피셔는 180도 꺽어 돌아와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착륙을 감행했다.

  "나는 되돌아와 활주로 거의 끝에서 착륙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활주로의 길이는 불과 2,500피트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비행기가 가진 최대의 성능을 구사하며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나는 이때 만큼 놀라거나 겁을 낸적이 없었습니다. 비행기가 도저히 멈춰질 것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다시 브레이크 단추를 세차게 누르면서 밑날개를 최하각으로 웅크렸습니다. 어점 파괴된 활주로가 도움이 된건지도 모릅니다. 결국 비행기는 활주로를 조금 벗어난 곳 까지 밀려가서 섰습니다. 활주로 끝 부분에 있었던 휘발유 드럼을 쳤을 법도 한데 내가 돌아섰을 때 꼬리로 슬쩍 스쳤을 뿐 비행기 날개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피셔는 전체 활주로의 약 2/3을 그대로 달리면서 마이어스를 찾았다.

  "저는 그가 있는 곳을 알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비행기의 저를 보자 두 팔을 힘있게 휘둘러 보였던 것입니다. 저는 근처에 가서 급정거를 시도했으나 어지나 속도가 빨랐던지 한 100 피트나 미끄러진 다음에야 기체는 멈추었습니다. 저는 잠시 기다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제가 확인했던,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했을 그는 없었습니다. 필경 짐작보다는 중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직일 수가 없었을 텐데, 혹시나 하는 걱정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빨리 비행기의 브레이크를 고정 시킨 다음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 그가 있던 자리를 뒤져 보았습니다. 저는 거울을 통해서 날개 뒤로 기어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빨간색의 두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후에 마이어스는 기자들에게 46살의 자기로서는 일찌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착륙했다고 말했다. 마이어스는 날개에 매달려 조종사석 밑에까지 올라와 있었다. 피셔는 그의 바지 뒤를 잡아올려 비행기 바닥에 눕혔다.

  "머리 부분에 심한 상처를 입었으나 조금도 아픔을 호소 하지 않았습니다."

  피셔의 말을 빌리면 두 조종사는 그곳에서 재빨리, 그리고 무사히 이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행기가 제 속도를 내게 되자 피셔는 득의 만만하여 A-1E 라는 선명한 표식의 기체를 계곡의 위 아래로 선회하며 비행했다.

  마이어스와 피셔는 구조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자기들의 작전을 효과적으로 지원하여 준 세 조종사에 대한 이야기를 끄치지 않았다.

  정확한 기총 소사와 엄호 폭격은 구조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이었다.
  피셔가 의자에 달린 낙하산 조종간을 잡아다니려 했을 정도의 결정적이며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으나, 방금 전에 포격을 받아 위험한 루카스는 헤이그와 바스케즈를 인도하여 적진을 무사히 탈출하게 하였다. 이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는 모두 "윈체스터" 였으나 루카스가 말한 대로 베트콩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동료 조종사들과 피셔가 계곡을 마악 떠나자 A-1E기 구조 편대가 오고 있었다. 그 날 오후 17명의 조종사 중 살아남은 13명의 조종사는 아쇼 비행장으로부터 철수 했다. 그러나 며칠 후에 그들은 동편 상봉에 있던 월맹군 1개 중대를 섬멸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베트콩이 구축한 요새의 동편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결국 그래서 우리는 살아도 망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살아남은 조종사 한 사람은 술회하고 있다.

  "...적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 작전에 참여하여 성공적으로 이끈 피셔 소령의 영웅적인 공격 정신과, 자기를 아끼지 않는 희생적 용기는 미국 군인으서의 표본이 되기에 족하며 이는 곧 그 자신과 미 공군 전체의 명예를 높이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미국 서부 아이다호 주 가정에서의 아버지와 아들
자녀들은 모두 보이 스카웃이며 그이 가족은 모두 음악 애호가들이다.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미공군의 기고한 전통이란 무엇인가? 용기만으로 족한 것인가? 아니면 '전우 중 한 사람'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또는 그리하여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수 없는 지경에 달했을 때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한 어떤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미래에 희망을 약속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불사 한다는 - 본래부터 핏속에 섞여 전해 내려왔거나 혹은 후에 의식적으로라도 불어넣어진 신념 - 아마도 국가가 포상하는 바 신념이 작용했을 것이다.

  1월 19일 백악관에는 실로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버니 피셔 소령이 훈장을 받는 다는 데에 공군 용사들은 조금도 놀람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1953년 폴로리다주 틴달 공군기지에서 Day Fighting School을 졸업한 이래 초음속 제트 비행조종을 하였던 방공 사령부에 근무하게 될 때 까지 미공군에서 보낸 생애의 총경산 이기도 했다.

  폴로리다주 홈스테드 공군기지에서 제 319 방공 전투 중대 중대장으로 ㅡㄴ무하던 버니 피셔가 월남 근무를 지원한 것은 1965년의 일이었다.

  제 319 비행대대의 중대 A 중대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많은 훈장을 받았다. 그곳에 근무하면서 엔진 연료 계통에 고장을 일으킨 F 104 전투기와 함께 두 번이나 무사히 착륙한 기록을 세웠다.  F 104 전투기의 경우에서 엔진 연료 계통의 고장은 조종사 탈출이 불가피한 통례였는데, 이는 고장이 난 후로 4,5분 밖에는 더 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셔는 이 첫 번째 사고를 무사히 넘긴 공로로 공군 참모부에서 수여하는 훈장을 수여받았다. 두 번째 사고를 방지한 것으로 계속하여 공군 본부에서 수여하는 훈장을 받았다.

 

조종실에서 마이크를 조작하고 있는 피셔 형제
현재 그는 서독 군인지부의 지부장단에서 봉사하고 있다.

 

  그 후 피셔는 방공 사령부에서의 다난했던 12개월의 근무로 바빴다. 다난하다고? 그렇다.

  1965년 7월부터 1966년 6월까지 A-1E 편대를 이끌고 비엔 호아, 푸레이쿠 등 월남을 누비고 돌아다니며 혁혁한 전과를 올려 6개의 훈장을 수여 받았다. 이 외에도 무사고 비행 조종사, 은성 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계속 수여 받았다.

  그 사람 혼자의 힘으로?  그의 인간 신념, 철학으로?  그가 그리도 뛰어나게 용앵스러웠고 앞으로도 용앵스러울 수 있는 원인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국가가 베푸는 훌륭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몰몬(말일성도)이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이다. 그렇기에 담배도 피우지 않으며 술도 마시지 않고(커피 조차도 들지 않는다) 욕을 하거나 다른 죄악에 물들지 않은 것이다.  간호원과 결혼한 그는 슬하에 다섯 자져를 두고 있다.  그는 자기의 혁혁한 전공에 교만하지 않고 조용히 국가가 제시하는 이상의 구현에 헌신하며, 나아가서는 그들의 생명과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우수한 조종사요, 다재다능하며, 쾌할하며, 용기에 가득찬 사람이다.  현재는 독일에 기지를 둔 제 406 방공 전투단에서 F-102의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다.

  유수한 훈장 수여자로서의 자질을 쌓을 수 있는 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다만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는 바이다. [자료원: 성도의 벗(리아호나), 19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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