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學年度 敎育學碩士 學位請求論文

요셉 스미스의 敎育思想


 

 

 

Ⅱ. 요셉 스미스의 생애

 

 

- 그의 교육사상의 영향을 준 사건을 중심으로 -


1. 유년기와 배경

 

요셉 스미스 이세는 1805년 12월 23일 미국 버몬트주 윈죠군 쇄론읍에서 아버지 요셉 스미스 일세와 어머니 루시 맥 스미스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815년 뉴욕주 팔마이라로 이사하였고, 거기서 4년이 되자, 온타리오군의 만체스터로 이사하였다. 요셉 스미스 이세의 가족은 11명으로서 아버지 요셉 스미스 일세, 어머니 루시 맥 스미스, 형 라빈, 하이람, 요셉 스미스 이세, 사무엘 해리슨, 윌리암, 돈 카로스, 누이 소프로니아, 케더린 그리고 루시였다. 요셉 스미스는 개척지 소년으로서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

 

이 당시 미국에서는 끊임없이 변하는 지역적인 개척 양상과 종교 면에서의 개척 양상은 너무도 긴밀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었다. 강인한 영국의 순례자들이 기아와 싸우면서 뉴잉글랜드 해안에 상륙하던 때로부터 미국으로 모여든 수많은 이주민들은 뭔가의 불만을 품고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불만은 구세계의 경제 정치 사회 또는 종교적 요인 등으로 야기된 것이었다. 신세계는 새로운 자유를 안겨 주었다. 이는 신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 갑자기 달라졌다거나 보다 관대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미대륙이라는 곳은 이웃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어디로든 자리를 옮길 수 있는 광대한 토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이상향이 미국에서 싹트게 되었다.

 

미국의 개척사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 즉, 어떤 변화를 갈구하거나, 낡은 관념을 버리고, 새롭고 급진적인 계획을 펼쳐 나가려는 용감한 사람들이 이룩한 역사이다.

 

종교 면에서도 개척은 큰 부분을 차지했다. 고정된 관념에 묶여 있는 구세계에서는 종교적 자유가 철회되거나 부인되었으나 미국에서는 심한 압박이 가해져 오면 그곳을 떠나면 되었다. 서부는 실질적으로 미개척지였으므로 이동의 방향은 항상 일정했다. 방대한 서부는 자유 사상가들을 유혹했다. 서부는 그들에게 안전한 도피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일단 그곳으로 가기를 거부할 때는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하여 순교 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개척사는 기존하는 모든 규범에 대하여 도전한 힘차고 새로운 이상에 불타는 종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란서에서 추방된 위그노 이민단은 캐나다에서 자유로운 이념을 펼칠 피난처를 찾았고, 뉴잉글랜드 지방의 로저 윌리암스는 서부로 이주하여 로드아일랜드에 식민지를 세우고 자신의 생명도 건졌으며, 보스톤 청교도들의 분노를 산 토마스 후커 목사는 최초의 포장 마차를 타고 서부로 이주해 코네티커트에 신민지를 이룩했다.

 

기존의 종교나 제도에 대한 반항 때문에 끊임없이 핍박의 대상이 되온 자유 사상은 언제나 서부에 와서 안정을 찾았다. 19세기 초엽 미국의 종교사를 보면 기성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 30여개의 새로운 종파가 생겼다. 1809년 초기 기독교가 사라졌다고 결론을 내린 알렉산더 캠벨은 심한 고초를 겪으면서 기존 신조의 사슬을 끊고 그것이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 대담한 각오를 가지고 그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제자 또는 캠벨교라고 일컬어졌으며 후에는 침례교인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19세기 초반은 활발한 종교 부흥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초기 30년간에는 새로운 종교로 개종하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대부분 종파는 회원을 배로 증가시켰다. 미국의 종교 개척자들 중에는 요셉 스미스의 가족도 포함되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기존의 종교적 신조와 의식에 대해 불만이 있었으며, 정통 청교도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그의 할아버지는 퀘이커 교도를 숨겨 준 이유로 이해 박해를 받자 집을 팔고 서부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 요셉 스미스 일세도 종교에 대한 관심이 컸고 시현을 믿었다. 그는 기존 종교 신조에 불만이 있었으므로 아무 종교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요셉 스미스의 어머니도 그 당시 자기가 찾고 있는 종교가 없다고 생각했다.1)

 

2. 종교 교육자로서의 길

 

1) 완전자와의 접견

 

소년 요셉 스미스도 그 당시의 종교에 대해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14세된 요셉 스미스는 아무 교회도 가입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만 15세 되던 1820년의 일을 기록한 소위 첫 번째 시현이라고 알려진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윌리암 이 베렛, 『회복된 교회』 (서울: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 삼화인쇄소, 1976). pp.19~22.


“종교 문제로 만체스터에서 크게 동요가 일어났고, 사람들이 각각 감리 교회, 장로 교회, 침례 교회를 지지하며, 논쟁을 보였고... 이때 나의 가족 4명은 장로 교인이 되었으며... 대 혼란기에 나는 진지한 반성과 커다란 불안감에 사로 잡혔고, 때가 지남에 따라 감리교파에 어느 정도 가입하고 싶었으나, 어느 것이 옮고 그른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외부의 소란이 끊임없었으므로 마음이 때때로 혼란에 빠졌을 때 이들 종파 가운데서 어느 것이 옳은지 자문하여 보았다. 하루는 내가 야고보서 1장 5절을 읽게 되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성경의 어느 구절도 이 때 이 글처럼 나의 마음속에 힘있게 임한 일이 없었다. 참으로 강한 힘이 나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이것을 여러 번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자가 있다면, 바로 자신임을 깨달았다.

 

마침내, 나는 하나님께 간구해 보기로 결심하고 1820년 어느 봄, 아름답고 맑게 개인 날 ;아침, 이전에 미리 계획한 곳에 은밀히 나아가 주위를 살펴보고 혼자 있음을 확인한 후 무릎을 꿇고 생후 처음으로 소리내어 하나님께 소망을 말했다. 내가 기도하기 시작하자마자, 어떤 힘에 사로잡혀 말조차 못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 죽어 버릴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어떤 파멸 속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머리 바로 위에 햇빛 보다 더 밝은 빛 기둥을 보았으며, 그 빛 기둥이 나타나자 나를 결박한 힘이 풀렸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함과 영광을 지닌 두 분이 공중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 한 분이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른 한 분을 가리켜 말씀하시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

 

나는 주님께 어느 교파가 옮고 어느 교회에 나가야 할지 물었고, 그 분은 아무 교파에도 속하지 말라는 것과, 모든 교파가 다 그르고, 신조는 가중하고, 교사는 부패하고, 그들의 마음은 심히 멀고, 사람의 계명을 교리로 가르치고, 하나님 능력은 부인한다고 말씀했다.

나는 세상의 교파적인 문제에 관한 한 마음에 만족을 얻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한 자는 하나님께 구하면 얻는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2)


이 시현으로 말미암아 요셉은 외적인 태도에 변화를 보였고, 분명한 지식과 분명한 간증을 갖게 되었다. 이후 3년 동안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진정한 관심은 7년 후에 시작되었다. 이후 1823년이 될 때까지 요셉 스미스는 평범한 소년으로 살았다. 그 동안에 그는 많은 핍박을 받았다.


2) 『요셉 스미스』 2:5~28.


2) 특별한 그의 교육 과정


“1823년 9월 21일 저녁 잠을 자려고 침실에 들어가 모든 허물과 어리석음을 사함 받으며, 다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입장과 처지가 어떤 것인지 지시해 주시도록 간구했다. 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음을 완전히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한 줄기 및 가운데서 공중에 흰 성의를 입고 계신 분이 나타나 나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부터 보내진 천사 모로나이임을 밝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시킬 일이 있고, 나의 이름이 좋게도 나쁘게도 전해질 것이라고 하였고, 미대륙에 먼저 살았던 백성들의 기사가 기록된 금판이 있다고 전하였고, 그 책에는 고대 주민들에게 전한 온전한 복음이 기록되 있다고 했다. 또 우림과 둠밈이라는 보석으로 된 번역기가 있고, 말라기 3장 일부와 4장을 약간 달리 인용했으며, 이사야 11장을 인용하였고, 사도행전 3장 22~23절과 요엘 2:28~끝절을 인용했고, 그 판은 때가 되면 가지리라고 했으며 다음날에는 아버지께 이 사실을 알리도록 지시하였다. 모로나이는 22일까지 모두 5번 나타났으며, 그 때 마다 똑 같은 말을 하였다. 나는 그 후 1827년까지 매년 9월 21일에 그 판이 묻혀 있는 곳에 갔으며, 그 때마다 천사는 주님께서 행하시고자 하는 바와 왕국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내게 가르치고 지혜를 주었다.”3)


3) 직업과 결혼

 

1825년 10월 요셉 스미스는 뉴욕주 세낭고군에 사는 죠사이아 스톨이라는 노인의 은광에서 일을 했고, 그때 아이작 해일의 딸인 엠마 헤일을 만났고 두 사람은 1827년 1월 18일 결혼하였다.4)


4) 교육사상에 특별한 영향을 주었던 인물, 서적, 사건

 

1827년 9월 22일 그는 몰몬경의 금판을 받았다. 그가 금판을 꺼낸 곳은 오늘날 팔마이라에서부터 남쪽으로 만체스터까지 뉴욕주 고속도로 21로 여행하면 뉴욕주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 기념비를 세워 구모라 언덕이라고 칭하고 있다.



3) 上揭書, p.73~78. 밑줄은 연구자 첨가.

4) 上揭書, p.78~79.



1829년 4월 5일 올리버 카우드리가 나타나 요셉 스미스의 서기로 일하면서 번역 내용을 받아쓰기 시작해 7,8월경 몰몬경의 번역이 완성되었다. 번역 과정에서 요셉스미스의 형 하이람이 요셉 스미스를 돕고 전파하고 싶어하자 “먼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라. 그리하면 혀가 풀리리라”했고, 올리버 카우드리에게는 진리를 아는 방법으로서 “먼저 마음 속으로 연구한 후에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하나님께 물으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이 주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고자 할 때에, “바야흐로 기이한 일이 인간의 자녀에게 나타나려 하는도다. 시온의 대업을 일으켜 세우기를 힘쓰라. 재물을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라.” “인간을 하나님께 데려오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선언하는 계시를 전했다.5)

 

1829년 5, 6월에 부활한 침례 요한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나타나 성직 곧 아론신권고 멜기세덱 신권을 요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수여하므로써 그는 종교 교육가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6)

1829년 8월 25일 에그버트 비 그랜딘 출판사와 미화 3,000불로 5,000부의 몰몬경을 인쇄하기로 계약하여 1830년 3월 18~25일에 몰몬경 초판을 발행하였다.7)


3. 종교 교육자로서의 요셉 스미스



5) 요셉 스미스, 『교리와 성약』 (서울: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1968), 6편, 116편.

6) 上揭書, 13편, 18편.

7) 前揭書, 윌리암 이 배랫, pp.35~42.



 

 

이 계시는 복음을 선포할 교사는 권위 있는 자에게서 성임받고 성경과 몰몬경에 있는 복음 원리를 가르치고 신조에 따라 행동하며, 영이 인도하는 데로 가르쳐야 하며, 또한 성도들에게 국가의 법을 지키며, 헌납의 법을 소개하고, 장차 받을 경전으로 교육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8) 『교리와 성약』 21:1,2.




4. 인간 요셉 스미스에 대한 평가


요셉 스미스가 나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때, 나중에 보스톤 시장이 된 조사이아 퀸시의 방문을 받았다. 학식이 많은 그는 몰몬 예언자와의 접견에서 매우 크게 감동을 받아 그 방문에 관하여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그의 저서 “과거의 인물”에 수록되었다. ‘요셉 스미스’라는 제목으로 된 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을 수 있다.


“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한 교과서 내용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리라는 것은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19세기에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친 미국의 역사적 인물은 누구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몰몬 예언자 요셉 스미스’라고 씌여질 것은 결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불합리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답변은 후세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상식이 될 것이다.... 자유 분방한 이 세대에 종교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높으신 이에게서 선택되어 부름을 받은 사자가 속된 명칭으로 모욕을 당하게 해서는 안된다.”10)


요셉 스미스의 영향력은 해가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50여년이 지난 1993년 말 현재 149개국에서 8,696,224명의 성도들이 그를 존경하고 그가 하나님의 참된 예언자였음을 간증 드리고 있다. 이들 추종자들은 지상의 모든 문명국을 대표한다.

 

그의 생존 당시에 발휘된 선교 정신은 결코 침체되는 기색이 없었다. 세기 말에 이으러 선교 운동은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하여 무보수 복음 선교사가 1993년말 현재 48,708명이며, 회원 수는 10년 단위로 40~60%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11)


9) 『영원히 설 주님의 왕국』 (서울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1984). pp.3~4.

10) Josiah Quincy, Figures of the Past (Boston : Roberts Brothers. 1883).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의 이름은 좋게도 나쁘게도 알려지고 받아들여진다. 역사가와 종교가는 놀랄만한 결과를 가져온 종교 체제에 대해 계속적인 조소를 퍼부을 수 없었다.

요셉 스미스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은 그가 세운 종교를 버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 한다.

이런 놀라운 발전과 비범한 희생, 말일성도의 신앙의 비결을 조사하면 결국 예언자가 가르친 진리에 귀착하게 된다.

소년 요셉 스미스가 예언자로 발전하기까지 과정은 그의 가르침에 잘 나타나 있다.


“ 무릇 창세 이전부터 변경될 수 없게 선포된 하늘의 율법이 있어 모든 축복은 이에 근거를 두나니 우리가 어떠한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때에는 그것이 근거를 두고 있는 율법을 순종하였으므로 얻게 되는 것이니라”12)


요셉 스미스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였으므로 첫 번째 시현을 보았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었다. 나부시의 창설자는 그로부터 10년 전에 교회를 조직한 요셉 스미스 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성품은 발전하고자 하는 강인한 성품이었다. 그는 자신의 결점을 시인하고 그것을 회개하는 도덕적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나는 나 자신의 결점과 불완전함을 곧잘 책망하곤 한다.”13)라는 표현이 그의 개인 일지에 곧 잘 나오고 있으며, 이는 그의 내적인 정신 세계를 말해 주고 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개인적인 계시에서 그의 행위를 꾸짖는 계시를 조금도 주저 없이 그대로 기록하였다.


11) "Statistics," Deseret News (Salt lake city, Utah: 9 April, 1994), p,23.

12) 요셉 스미스, 『교리와 성약』 130:20~21.

13) 『교회정사』 제1기 제2권, (솔트레이크 시티), p.10.


"보라, 네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어기며, 인간의 설득에 넘어가기 그 몇 번이더냐“14) 또, ”그러하니 네 범법을 변명할 수 없으려니와 네 길을 가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15)

 

교회를 조직하고서 예언자가 직면했던 고난과 역경과 수 많은 시련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업적은 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교회를 조직하여 순교할 때까지 14년간 그는 거의 한 순간도 평안을 누리지 못했다. 그는 세 곳의 주에서 쫓겨났고, 한 주에서는 투옥 당했고, 또 다른 주에서는 순교하였다. 38회나 허위 조작으로 구류되어 공판장에 서기도 했다. 죄명은 절도로부터 반역죄까지 다양했다. 법정은 가혹했으나, 공판마다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그에게는 이미 제이의 천성이 되었고 바울과 같이 고난을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이 되게 하였다.

 

요셉 스미스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고 강하고, 활동적이었으며, 팔씨름, 레스링, 막대기 당기기 등을 즐겼으며, 소년들과 야구놀이를 좋아했고, 얼굴색은 밝고 푸른 눈과 턱수염은 거의 없고 표현력이 뛰어났고... 솔직함, 독립적인 인격을 소유했다.

 

그는 가족을 사랑했으며 9명의 자녀와 2명의 양자를 두었으며, 자녀 5명은 어려서 죽고 막내는 그가 죽은 뒤 태어났다. 요셉이 14년 동안 세운 교회는 오늘날까지 건재해 급변하는 세계 요구에 맞는 종교 철학을 이루어 놓았다. 1세기 반 이상이 지난 오늘날 조직상이나, 교리 상으로 부족한 것을 거의 보충한 것이 없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지니 바꾸어 말하면 빛과 진리니라.” “무지하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은 성도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교육열을 높이고 법률과 정치에 대하여 탐구했고, 도시를 건설했고, 군대를 편성했고, 번창하는 도시의 시장으로 봉직했고, 제조업과 산업에도 기여하였다.

요셉 스미스는 문체에 있어서도 크게 발전하였다. 그의 초기 기록에는 오자와 문법상의 오류가 많았지만 말년의 문장에는 보기 드문 문체와 아름다운 표현 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불완전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14) 『교리와 성약』 3 : 6.

15) 上揭書, 24 : 2.


완전히 출판된 그의 서적은 여러 권이며, 출판되지 않은 단편적인 설교문이나, 사설은 12권도 넘는다. 그의 가장 훌륭한 문학적 기여는 몰몬경 번역이다. 그 외에 모세서, 아브라함서, 교리와 성약 등이 있다.

 

그의 개인일지는 주석이 첨부되어 여섯 권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에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며, 5개 국어에 능통했고, 성경의 권위자였고, 역사에 능통했고, 모든 주제에 있어 훌륭한 대담자가 되었다.16)

예언자가 순교할 때 현장에 함께 있어 4발의 총탄을 받고 처참하게 부상당했으나, 후에 회복되어 교회의 3대 대관장이 된 존 테일러는 이렇게 묘사했다. “주의 예언자요, 선견자인, 요셉 스미스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다만 예수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 살았던 그 어느 사람보다 더욱 많은 일을 수행하였도다. 17)


16) 前揭書, 윌리엄 이 배랫, pp. 190~194.

17) 『교리와 성약』 135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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