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색 작가 김정화씨…
농촌에 보급운동도; 천연염료 아롱빛깔에
빠져 20년 염색 외길

[조선일보, 2005-6-16]



대구시 중심가 봉산문화회관 2, 3층 전시장의 모든 벽이 아름다운 빛깔의 천들로 뒤덮였다. 먹는 감을 비롯해 치자, 홍화, 느릅나무 껍질, 양파 껍질 등을 ‘천연염료’로 써서 물들인 천들은 단순히 ‘염색한 직물’의 차원을 넘어 한 폭의 회화처럼 대자연을 묘사한 작품이 되어 눈길을 붙든다. 1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의 주인공은 보기 드문 ‘천연염색 작가’ 김정화(金貞花·50)씨. 20여년간 천연염료의 은은하고 고운 빛깔에 빠져 작업을 계속해 온 그가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쪽물을 들여 첩첩산중을 표현한 조각보, 홀치기(천을 묶어 물들이기) 기법을 이용한 천불천탑(千佛千塔)…. 전시장을 채운 100여점의 작품들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천을 부분 부분 묶거나 접은 뒤 안료를 뿌리는 작업 끝에 탄생했다. 김씨에 따르면 작품 하나를 제대로 만들려면 3년에서 5년까지 계속 염료를 뿌려줘야 한다는 것. 감물을 들일 땐 천 조각 하나에 3년간 무려 1500번의 물들이기를 반복해야 작품이 태어난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사람의 노동력과 함께 길고 긴 날의 이슬과 달빛이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표현한다. 너무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어서 늘 친정어머니(배창순씨·裵唱順·74)와 정답게, 때로는 다투면서 만들었다.

이런 작업을 20여년 계속해온 김씨의 직업은 공무원. ‘경북 영천시 농업기술센터 생활지도사’가 그의 직함이다. 경북 영천에서 과수원집 맏딸로 태어난 김씨는 어렸을 적 화가가 되고 싶던 소녀였다.

그러나 중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가세가 기울자 고교 졸업 후 1974년 농촌지도소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생활지도사로 근무하게 됐다. 그러던 중 한국적 아름다움 가득한 천연염료의 세계를 접하고 그림과 색채의 꿈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틈틈이 전국을 돌며 명맥이 끊어져 가는 천연염색의 노하우를 알고 있는 농촌의 촌로(村老)들을 찾아가 비법을 채록한 끝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갔다.

이런 노력을 평가받아 2001년부터 김씨는 아예 천연염색을 농촌에 보급하는 것을 주임무로 삼는 생활 지도사가 됐다. 취미와 일이 행복하게 만난 것이다. 2002년에는 ‘신지식 공무원’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어려움도 많았다. 아직도 ‘내 집’이 없어 친정어머니 집에 얹혀 살고 있다. 김씨의 손가락 중 세 개는 짧고 모양이 이상하다. 하루 종일 염료에 손을 담그고 염색을 위해 즙 짜는 기계를 쓰다 다쳤다. “어린 시절 경기(驚氣)를 심하게 앓을 때면 늘 머릿속에 감돌던 몽환적 광경, 해가 뜰 때의 불꽃색, 이런 색을 재현해 보는 게 제 필생의 목표예요. 죽을 때까지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대구=박원수기자 (블로그)w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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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1일자 대구 매일 신문 문화부에 대구 스테이크 영천 지부의 김정화 자매의 기사가 실렸다. 김 자매는 천연 염색 연구가로 활동중이며, 기사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문화와 사람-천연염색 연구가 김정화씨

[대구 매일 신문, 2005년 6월 11일]


 


 
“감으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요? 천만에요. 천연염색이야말로 자연이 준 가장 자연적인 물감이지요.”
천연염색연구가 김정화(50·경북 영천 농업기술센터 생활지도사)씨의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봉산문화회관엔 요즘 보기 드물게 관람객들로 북적대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생활지도사의 첫 개인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기, 전남,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을 보기 위해 예약된 단체들도 많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회화적으로 천연염색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시장 한 면을 꽉 채운 작품 ‘영목(靈木)’. 영목은 가로 6m, 세로 4m 두 폭으로, 크기가 관람객을 압도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표현 기법이다.

붓 없이 천연염색으로만 표현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고, 작품의 메시지가 관객들의 감성에 와닿는다. 구상부터 추상까지, 기존 회화의 영역과도 맞닿아있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재료로 감 40포대나 사용했고 작업 기간도 5년 이상이 걸렸다. 그의 작품엔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의 어릴 적 추억과 감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천연염색 작품은 시도 자체가 쉽지 않아요. 천연염색으로 채도와 명도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염료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아야 해요. 아무리 여러 번 염색해도 색이 탁해지거나 어두워지지 않지요. 또 작품당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까지 걸리니,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할 수 있겠어요.”

단색 염색으론 옷감 만드는 게 고작이지만 회화적으로 표현한 천연염색 작품은 새로운 패턴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랜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천연염색 작품은 입소문을 타고 해외에서도 수차례 전시 요청이 들어오고 있을 정도다.

김씨는 지난 88년부터 천연염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결혼과 함께 그만뒀던 영천 농업기술센터에 재입사하면서부터다. 개인적 관심과 직업적 성취가 맞아떨어져 주말이면 천연염색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농촌진흥청 천연염료전문지도연구회를 구성해 천연염색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96년부터 시작한 천연염료 강좌를 거친 사람만도 5천 명이 훌쩍 넘는다. 그가 천연염색 재료로 쓰는 식물들은 자그마치 204종. 그 가운데 염색에 적합한 식물로 40~50종을 꼽는다.

천연염색 대신 ‘식물염색’이란 말을 즐겨 쓰는 그는 논밭의 잡초를 가장 애용한다. 겨울에는 한약재를 주로 쓴다. 사과나무 잎, 포도껍질, 쥐눈이콩 등 농산 부산물은 기본이다. 자연을 활용하는데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고 감수성에도 맞아 떨어져, 농촌에서 천연염색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다른 지방에 비해 영남지방에선 천연염색을 홀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호남지방에 가면 호남에만 천연색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남지방도 그 역사가 깊어요. 오래전부터 푸른색을 내기 위해 사용했던 ‘청두’는 ‘쪽’보다 훨씬 색이 오묘해, 청보랏빛을 냈죠. 청두는 소하천 정비와 경지정리로 사라져버렸지만 20, 30년 전만 해도 시집갈 땐 청두로 색을 낸 ‘잉물 치마’를 챙겨가곤 했어요.”

작업실에 쌓여있는 수백여 점의 작품을 더 이상 정리하기 힘들어 개인전을 하게 됐다는 그는 “이제서야 무엇을 해야 할지 겨우 알았다”고 말했다. 천연염색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면서 그는 어릴 적 화가의 꿈을 이룬 듯도 하다. 이번 첫 개인전은 김씨의 천연염색 여정의 한 단락을 정리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가장 집착하는 색은 기명(起明)색이에요. 저녁 무렵, 어머니 등에 업혀 바라본 황금빛이 도는 주황색의 하늘, 노을지던 그 빛깔…. 그때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요. 흐린 날의 유쾌함과 맑은 날의 우울 등 사람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감성들이 감히 색으로 전달될지는 모르지만 천연염색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천연염색은 색이 더디 나니까 세월과 합작품이 되거든요. 죽기 전에 한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색이 나오지 않을까요.”

-->> 김정화 자매는 대구 스테이크 영청 지부 회원임 [자료제공: 김정애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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