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역 관리 역원 김종열 장로
정부 요직에서 일하다

구 윤성 형제

 

김종열(金鐘悅) : 한국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장역임(1995-1997). 연세대 교수. 치의학박사. 법의학 전문가. 연세대학교 치과대 치의학과 구강내과학교실 교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 구강내과 과장. 대한치의학회 회장(2002.4). 연세대학교 개인식별연구소 소장(2002- ). 치의학회 회장은 우리 나라 치의학 관련 학회를 관할하고, 학슬대회를 개최하며, 국가 시험을 관리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70인지역관리역원(한국). 서울대 치대졸업. 대한 구강내과학회장. 대한법의학회부회장. 치과의사로 법의 치과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며 많은 논문들을 국제 전문 학술지에 게제. 여러 대형 사고를 통해 발생한 피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에 관련하여 이름을 떨친 아주 유명한 인사. 한국에서 발생한 몇 차례 대형사고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능력 발휘, 대연각 호텔 화재, 여객기 참사,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 사망자 신원 확인. 서울대 치의대 졸업때 학장상 수여. 서울대학교와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서 법의 치과학 전문 연구. 이 연구소는 미 연방 수사국과 유사한 기관. 1960년 침례. 자신이 대학교 교수라는 지위에서 정부의 중요 직책에 발탁되었다는 소식에 놀랐으나 한국 최대 사립대학교인 연세 대학교 치의대 교수였던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 정부 직책 때문에 학계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으나, 다행스럽게도 정부 시책의 변화로 인해 그는 교수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과학수사 연구소장으로 근무.  more...


     북아시아 지역의 지역 관리 역원인 김종열 장로는 법의 치과학 권위자이다. 여러 대형 사고를 통해 발생한 피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일에 관련하여 이름을 떨친 아주 유명한 인사이다.

김 장로는 탁월한 지식과 경험을 인정 받아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장이라는 정부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이 연구소는 미 연방 수사국과 유사한 기관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삽법 당국이나 변호사들이 제출하는 보고서의 진위를 평가하고 과학적인 증거 자료를 준비한다. 또한 법의학 검시를 다루며 방화나 자동차 사고 등의 수사를 지원하는 한편 신체 검증을 돕는다.

치과 의사인 김 장로는 법의 치과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며 이에 관한 많은 논문들을 국제 전문 학술지에 게제해 왔다.

그는 한국에서 발생했던 몇 차례의 대형 사고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당시로선 역사상 그 전례가 없었던 1971년의 참혹한 대연각 호텔 화재를 수사하는 일을 도왔으며, 1987년에는 여객기 참사로 인한 희생자들의 신원을 검증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는 또한 16전 전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려는 정부의 무력에 항거하다 일어난 광주에서 학살된 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신원을 밝혀 냈다.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장로는 사망자가 무려 500명 이상 발생한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에서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을 지휘했다.

이렇듯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서도, 김 장로는 자신이 대학교 교수라는 지위에서 정부의 중요 직책에 발탁되었다는 소식에 놀라었다. 한국 최대의 사립대학인 연세 대학교 치의대 교수였던 김 장로는 정부의 칙책 때문에 학계를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다행스럽게도 정부 시책의 변화로 인해 그는 교수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김 장로는 서울 대학교 치의대를 졸어할 때에 학장상을 받았다. 졸업 후 계속해서 서울대학교와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서 법의 치과학을 공부했다.

그는 1941년에 태어났으며, 한국이 일본에서 해방된 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또한 그는 한국에 있어서 일세대 말일성도 회원이기도 하다.

1957년 어느 봄날, 그는 처음으로 군인이 아닌 외국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교회의 선교사들이었다. 처음에는 수줍음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으나.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던 집회소에 초대되었다. 그가 교회 건물에 난생 처음 들어갔을 때, 상호향상회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후, 김 장로는 선교사들과 함께 복음 원리를 공부했으며 교회에 들어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침례를 받지 못했다. 3년간을 기다린 후 18세가 되던 1960년에 그는 마침내 침례를 받았다.

그는 교회의 여러 직책에서 봉사하였으며, 현재 칠십인 정원회 회원인 한인상 지부장으로부터 주일학교에서 복음 교리반 교사로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적도 있다.

1973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부름을 받은 감독들 중 한 사람으로, 그 당시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원이었던 스펜서 더불류 킴볼 장로에 의해 성임되었다. 그후 7년 간 감독으로 봉사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선교 사업을 하도록 준비시켰다.

그후 김 장로는 스테이크장단 일원, 선교부장단 보좌, 지부장, 장로정원회 회장, 주일학교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에 교회 교육 기구가 설립된 후, 몇 년 간 시간제 강사로 봉사하기도 했다. 그가 가르쳤던 많은 학생들은 후에 감독, 스테이크장, 상호부조회 회장, 초등회지도자 및 다른 여러 직책의 교회 지도자로 성장했다.

1973년에 반 연차 대회 참석차 유타를 방문한 동안 그는 프로보 선전에서 엔다우먼트를 받았다.

1985년 한국 서울 성전이 헌납되자, 그는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여러 가지 축복을 받았다. 그 중 하나는 여행의 제약으로 인해 이전에는 성전에 갈 수 없었던 그의 아내 홍영숙 자매와 함께 성전에서 인봉된 것이다. 서울 성전이 헌납된 때부터, 김 장로와 그의 부인은 함께 성전에서 의식 봉사자로 계속 봉사를 해오고 있다.

김 장로는 1993년에 서울 지역 담당 지역 대표로 부름을 받았으며, 그 직책에서 봉사하던 중에 작년에 지역 관리 역원으로 부름받았다.

그가 침례를 받고 교회 안에서 성장하는 동안, 교회 또한 한국에서 많은 성장을 했다. 그가 침례를 받았을 당시에는 단 4개의 지부와 200여 명도 안되는 회원밖에 없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16개의 스테이크, 5개의 지방부, 그리고 4개의 선교부와 함께 65,000여 명의 회원이 있다.

김 장로는 여러 가지 많은 부름을 받아 이 나라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조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 큰 기쁨을 표시한다.

이제, 공인으로 정부의 중요한 직책에 부름 받아 봉사하는 말일성도로서 김 장로는 조국에 평등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열망이라고 한다. 또한 지역 관리 역원으로서의 자신의 부름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부름이 하늘에서 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1996년 3월 9일자 처치 뉴스에 실린 것을 번역한 것임). [자료원: 성도의 벗(리아호나), 1996.5]

 


 

 

김종렬 장로

새로운 서울 지역 대표로 부름 받다

   

 

지난 1992년 4월 17일 서울 지역의 새로운 지역대표로 부름 받은 김종렬 장로가 북아시아 지역의 더불류 유진 핸슨 회장에 의해 성별되었다.

김종렬 장로(52세)는 경기 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치과 대학을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편 대학 구강 내과 학회 회장, 한국 구강 보건 협회 상무 이사, 문교부 학술 진흥위원회 위원 등의 다채로운 사회 경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는 연세 대학교 치과대학 교수 겸 구강 진단과 주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9년 이래 한국 지역 공보 위원회 위원장으로 봉사해 온 김 장로는 1960년 8월에 침례를 받았으며 그동안 교회내에서 서울 스테이크 제3와드(삼청) 감독, 서울 스테이크장단 보좌, 반포 지부장, 서울 선교부 선교부장의 보좌, 영동 스테이크 선교부장 등의 직책에서 봉사했다.

김장로는 영동 스테이크 서초 와드 회원이며 가족으로는 부인 홍영숙 자매와 슬하에는 혜수, 온수 두 딸이 있다. [성도의 벗(리아호나), 1992.7]


 

연세대학교 치의학 90년 구강내과학교실 30년사
출판물에 등재된 김종열 형제의 이력 중 교회 관련 기사
[230-231 쪽]

 

교회 주요 경력

  • -1960.8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회원 가입
  • -1973.3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감독(Bishop)
  • -1985-1991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서울 선교부장단
  • -1989-1992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한국지역공보위원회 위원장
  • -1992.4-1995.8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지역대표, 장로
  • -1995.8-1997.4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북아시아지역관리역원
  • -1997.4-2002.8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칠십인 지역관리 역원
  • -1993.2-2004 현재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서울 성전 인봉자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홈페이지 운영자 주]

김종열 선생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3년 10개월을 근무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단 한 명뿐인 법치의학 담당자로 근무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려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 시간 강사로 출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972년 10월 연대 구강내과에 전임으로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교직을 선택한 뒤에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의 관계는 계속이어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김종열 선생 후임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적임자를 구하지 못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김종열 선생은 법치의학분야의 감정이 요구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기꺼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161쪽 중에서)


[위의 책 차례]

사진으로 보는 구강내과학교실 30년
발간사
축사

1장 되돌아 본 구강내과학교실 30년의 역사
이땅의 구강내과 시원(始原)
연세대학교 구강내과의 첫걸음
편견과 오해
생존을 위한 노력
끊임없는 갈등과 폐과조치
좌절속에서 발견한 희망의 싹
10년 보다 길었던 8년
구강내과의 부활
새로운 기운들
자생력을 키우던 시기
사명감과 헌신의 시기
도약의 발판

2장 구강내과가 뿌린 씨앗들

우리의 의료현실과 구강내과의 과거
구강내과의 역할과 비전
구강내과에는 철학과 미래가 있다
구강내과와 법치의학과의 만남
법의학의 꽃, 법치의학
김종열, 그리고 구강내과가 키워낸 열매
구강내과의 사람들 이야기
연대 구강내과의 산증인 김종열

3장 부록


[같은 책에 실린 사진과 설명]
      LDS교회 북아시아지역 칠십인지역관리역원으로 봉사하고 있는 김종열 장로가
     대한적십자사 강영훈 총재에게 북한동포돕기 수호금을 전달하고 있다.(1998년)
 


교회 복지 농장에서 봉사하는 삼청와드 성도들 (1977.5.5)
(김종열 형제-좌측 두 번째, 당시 삼청 와드 감독)

 



삼청와드 역원 모임 [1978.3.25, 도봉산장에서]
좌측 세 번재가 김종열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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