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삶 자체, 그 속에 고통도 있고 희열도 있어”

자신의 이름 딴 국제콩쿠르 여는 성악가 김신환씨

[중앙일보. 2009.7.13]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장천아트홀. 1, 2부에 걸쳐 두 시간여 진행된 음악회의 레퍼토리가 모두 끝난 직후 한 노신사가 성큼성큼 무대로 걸어나왔다. 관객의 시선이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작은 키임에도 그의 말투와 동작에선 ‘마에스트로’의 위엄이 배어 나왔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정에 없었던 것이지만 제가 노래 한 곡 안 부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곡목은 김재호 시, 이수인 작곡의 ‘고향의 노래’입니다.”

‘국화꽃 져 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뭇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 들에 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후략)’

노신사는 고음을 처리할 때 지휘자를 둘러싼 철제 난간을 잠깐 붙잡기도 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이탈리아 전통의 ‘벨 칸토(아름다운 노래라는 뜻)’ 창법으로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명곡을 노래했고, 관객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 노신사가 늙지 않는 목소리, 어린아이 같이 해맑은 얼굴의 김신환(사진) 전 영남대 음대 학장이다. 이날 음악회는 그의 이름을 딴 ‘국제성악콩쿠르’ 설립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생물학도에서 성악가로

성악가 출신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이 노신사를 ‘예술을 노래하는 영원한 현역’이라고 부른다. 올해 78세지만 얼굴엔 미소가, 몸엔 생기가 넘친다. 비결을 묻자 “평생 불러온 노래 덕분”이란다. 지금까지 1000여 차례 무대에 섰고 20여 차례 독창회를 했다.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 노래가 뭡니까.

“삶 자체지 뭐. 그 속에 고통도 있고 희열도 있어.” 이날 무대에 선 고성현 한양대 교수, 김요한 명지대 교수 등 12명의 성악가들은 대부분 그의 제자들이었다. 이 중에는 춘천지법 정강찬(43) 부장판사도 있었다. 아마추어로서는 드물게 예술의전당에서 독창회를 열었던 ‘테너 판사’다. 그는 주말마다 처 외삼촌인 김 전 학장에게서 성악을 배운다.

김 전 학장은 성악계의 ‘국보급 존재’다. 20대 초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30여 년을 해외에서 살았다. 원래 그의 전공은 ‘생물학’이었다.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에서 파리 솔본대학 생물학과로 공부하러 떠난 지 2년 만에 성악가로 변신했다. 유학 가기 전부터 성악에 빠져 있긴 했다. 군 복무 시절 전시 육군교향악단 , 해군 정훈음악대 합창단원으로서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 등 오페라 에 출연했다.

파리에선 전공보다 성악 개인 레슨에 더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다 파리예술콩쿠르에 나갔는데 성악 전공자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단다. 한국인 최초의 유럽 국제콩쿠르 입상 기록이다. 이후 프랑스예술가곡해석콩쿠르 등 5~6개 국제 콩쿠르를 석권했다. 그러자 스승인 샤르 판제라 파리국립고등음악대학원 교수가 “생물학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노래는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한다. 당신은 음악가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그 길을 가라 ”고 권유했다. 결국 그는 인생의 항로를 바꿨고 4년 뒤인 61년 파리에서 성악가로 공식 데뷔했다. 데뷔작으로는 독일 작곡가인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1681~1767)의 ‘요한수난곡’을 세계 초연했다. 그 즈음 한인 프랑스 유학생회 회장직을 맡아 군사 독재 시절 조국을 떠나 있던 젊은 예술가들의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작곡가 윤이상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이 유학생의 동태를 알려주면 경제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유혹해 호통을 쳐서 쫓아낸 적도 있었지.”

김 전 학장은 60년대 중반 이탈리아 로마를 거쳐 밀라노에 정착했다. 전 세계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인 ‘라 스칼라’ 극장의 솔리스트가 되기 위해서였다.

유학생활은 쉽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 일주일에 이틀은 오페라 공부를 하고 사흘은 돈벌이를 해야 했어. 한때 마사지사로도 일했지. 내가 손힘이 셌거든.” 결국 김 전 학장은 고생 끝에 76년 오페라 주연 오디션에 합격했고 이듬해 라 스칼라 극장의 테너 솔리스트로 발탁됐다. 1776년 개관한 라 스칼라 극장 사상 최초의 동양인 솔리스트였다.“

당시 이탈리아 전통의 벨 칸토 창법 복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어. 지금은 세계 최고 바리톤으로 꼽히는 ‘레오 누치’와 함께 선발돼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주연을 맡았지. 이탈리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했고 이탈리아 기사 작위도 받았어.”

18세기에 유행했던 벨 칸토 창법은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발성, 명확한 가사 전달 등을 중시한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 가수인 마리아 칼라스도 벨 칸토 창법으로 불렀다. 이정애 한서대 교수는 “김신환 학장님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벨 칸토 창법의 대가 중 한 분”이라며 “여성 소프라노들도 그분에게서 발성법을 배울 정도”라고 말했다.

라 스칼라 첫 동양인 솔리스트

지난해 숨진 이탈리아 태생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는 김 전 학장의 라 스칼라 극장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디 스테파노는 마리아 칼라스의 이중창 파트너로, 세기의 명콤비를 이뤘다.

“74년 중앙일보 주최 음악회에 마리아 칼라스를 초청했지만 칼라스가 응하지 않았어. ‘나는 여자 사자로 태어났는데 지금 한국에 가서 노래하면 개처럼 죽을 것’이라는 이유를 댔거든. 당시 칼라스는 연인이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실연으로 상심한 상태였지. 노래를 제대로 부를 심리상태가 아니어서 갈 수 없다는 것이었어. 그때 내가 디 스테파노를 통해 칼라스를 설득해 한국에 데리고 같이 들어왔어. 그녀는 사랑의 묘약 1막에 나오는 이중창 등 2곡을 불렀지.”

그는 노래의 힘은 대단하다며 수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를 소개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경기고 1년 후배인 이상훈 국방부 장관이 하루는 전화를 해 ‘빨리 와 달라’고 했다. 정부가 용산미군기지에서 미군이 나가게 하겠다고 발표하자 전·현직 장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 장관이 나를 소개하자 ‘지금 한가하게 무슨 노래냐’는 소리가 나왔다. 노래를 시작하자 처음엔 뜨뜻미지근하던 참석자들이 나중엔 앙코르를 네 번이나 했다. 이 장관이 ‘앞으로 강하게 나가겠다’고 하자 박수가 나왔고 사태가 해결됐다. 노래의 힘이 그런 것이다.”

김 전 학장은 80년대 중반 ‘뜻한 바 있어’ 외국 생활을 완전히 접고 귀국해 영남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국 오페라의 국제화, 한국 가곡의 세계화에 매진했다. 성악가에서 음악행정가로 또 한 차례 변신했다. 귀국 직후인 85년 서울시립오페라단을 창단해 초대 단장이 된 후 13년간 이끌었다.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 자막을 처음 도입한 것도 그였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그가 서울시장일 때 2년간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지낸 인연이 있다. 국내외 각종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이탈리아 벨리니 국제성악콩쿠르,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제음악콩쿠르 등이다.

가곡 세계화 위해 내 이름 걸어

김 전 학장은 주변에서 콩쿠르 설립을 제안할 때마다 완곡하게 거절했다. “살아 있는 음악가의 이름을 딴 콩쿠르는 적절치 않다”고 했다. 최근 들어 마음이 움직였다.

“언젠가 파바로티의 스승인 에토레 캄포갈리아니 선생이 ‘이탈리아 민족이 오페라 종주국으로서 누려왔던 지위가 한국 민족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다. 지금 한국은 성악 대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한국 예술가곡의 세계화에 도움이 된다면 내 이름을 걸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전 학장의 뜻에 따라 콩쿠르 참가자들은 1~3차 예선, 본선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에서 반드시 한국 가곡을 불러야 한다. 콩쿠르 조직위원회에는 국내외 저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다. 조직위원장은 주세페 줄리아노(70) 전 이탈리아 카리에리 국립극장장이 맡았고 초대 심사위원장은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를 내정했다. 시인 김남조, 작곡가 김동진,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 염보현 전 서울시장 등이 고문이다. 상금도 외국의 유명 성악콩쿠르 수준으로 줄 계획이다. 조직위원회는 내년 6월 이전에 1회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그와 서울대 문리대 학보 편집위원을 같이 했던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은 기념 음악회 축사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시간의 흐름도 그의 아름다운 노래를 뺏지 못했다. 공간의 벽도 그의 사랑을 막지 못했다. 그는 분명 시간과 공간을 정복한 승리자이다.”

조강수 기자

--> 김신환 형제 기사 더 보기 :
http://www.ldskorea.net/88kinshwan.htm
 


All Contents Copyright by 1999-2009
For questions and comments, send e-mail to
pcway@hanafos.com
http://www.ldskorea.net
TEL: 010-4236-9900 / 070-7620-9900 / FAX: 031-726-9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