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누는 방편

- 박 병규 형제 / 광주 스테이크장

 

 

   작년(1980) 10월 26일, 돌연한 강추위 속에서 예언자의 음성을 듣던 일이 어제만 같은데 해가 바뀌어 1981년을 맞이했습니다. 그 하루 전 광주 스테이크가 탄생될 때 분주한 일정을 무릅쓰고 많은 신권 지도자들과 형제 자매님들이 참석하셔서 광주 스테이크의 탄생을 축하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회복된 복음이 이땅에 전해진지도 4반 세기가 넘었고, 이 기간에 우리는 6개의 스테이크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성취를 통해서 우리는 큰 기쁨과 긍지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 눈을 돌려 볼 때 이같은 외적 성장에 견줄 내족 성장을 아직 못이루고 있다고 느낍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 냐면을 충실히 다질 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율법사가 주님을 시험할 목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길을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가 스스로 대답하게 하셨습니다. 율법에 정통한 그도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모든 회원이 영생을 얻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을 충실히 한다는 것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준비를 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두 계명을 잘 지키게 되면 우리의 내면은 바람직한 것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방편의 하나로 방문 교육과 가정 복음 교육을 마련하셨습니다.

가정 복음 교사는 감독과 정원회 회장을 대표하며 주님의 대표자로 각 가정에 축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대표할 기회는 참으로 영화로운 시간입니다. 또한 이 부름은 성스러운 것이며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

그럼 가정 복음 교사나 방문 교사가 방문 받는 가정에 축복을 어떻게 가져다 주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가정 복음 교사로 "각 회원의 집을 방문하여 소리를 내거나 은밀하게 기도할 것과 모든 가족의 의무를 다할 것을 권고"(교리와 성약 20:47) 하는 것입니다.

가정 복음 교사의 임무의 하나로 방문 받는 분들이 기도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기도를 등한히 여길 때 우리의 신앙은 시들며, 매일매일 주와 의논하고 열렬히 기도드리며 생활할 때 우리의 신앙은 생동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복음의 축복도 요셉 스미스의 기도로 비릇되었습니다.

가정 방문 교사의 또 하나의 임무는 가족이 의무를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회원의 의무로 교회의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가족의 의무를 이행하며, 성전 사업에 참여하고, 예언자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방문 받는 가족이 이같은 의무를 잘 수행하도록 도움으로써 이에 따르는 축복도 받게 할 할 것입니다. 의무를 일깨워 실천하도록 하는 것은 지극한 사랑과 관심과 인내를 뜻합니다. 그러나 그 수고와 사랑과 인내로 다음과 같은 주님의 칭찬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35-36) 위의 상황은 우리가 회원의 가정을 방문할 때 실제로 수없이 당면할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순천 지부의 한 형제님은 위와 유사하게 회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 모임에 잘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을 위해서 성도의 벗(리아호나)을 구입해 주고, 몸이 불편한 회원에게는 약을 사주었으며, 어느 가정에는 나무를 심어 주고 때로는 남의 무거운 짐을 나누어지기조 하는 등 변함없는 사랑으로 돌복 있습니다. 그 결과 그가 담당한 가족들은 저활동 회원일지라도 교회를 아주 잊어 버린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우리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을 자신에게 베푼 사랑만큼이나 소중히 여기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같은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부름을 받는 사람은 누구든지 큰 소명감과 믿음을 갖고 합당한 준비를 갖추어 나아가야겠습니다. 또 방문을 받는 분들은 방문자가 누구이든 문자 그대로 주님의 대표자로 여겨야 하며, 겸허하고 정중히 맞이하며 전해지는 메시지에 경청하고 원하는 보고를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10:40-41)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가정 복음 교육과 방문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보다 큰 사랑과 보다 깊은 뜻을 갖고 이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훌륭히 수행할 때 교회는 활력이 넘치고 방문자나 방문받는 자가 모두 축복을 받을 것이며, 우리의 모습은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성도의 벗(리아호나), 1981.1]
 

박 병규 형제,
부산 선교부장으로

 


부산 선교부장으로 부름받은 박병규 형제 가족 일동

     
   광주 종교 교육원장으로 수고하였고 광주 스테이크장으로 수고하였던 박병규 형제가 1981년 7월 1일부터 3년 동안 부산 선교부장으로 봉사하게 되었다.

1958년 3월 23일 서울에서 침례를 받고 회원이 된지 8년 만에 장로 신권을 받았으며, 다음해에는 광주 지부장으로 임명되었고, 1972년 호남 지방부장으로 그리고 1973년 광주 지방부장으로 부름을 받고 계속 봉사하였다.

1980년 10월 25일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인 힝클리 장로에 의하여 광주 스테이크가 탄생되면서 초대 스테이크장으로 성별되었다.

부인인 이영지 자매와 1963년 결혼하여 현재 장남(철홍)과 차남(철승) 그리고 삼남(지훈)이 있다. 1981년 4월 교회 회복 제151연차 대회에서 한국 성전 건립 발표를 들었으며, 5월 17일 광주 스테이크장의 직책에서 해임되었다. 후임으로는 박하천 형제가 부름 받았다.

이영지 자매는 1966년 12월 3일에 침례를 받고 회원이 되었으며, 광주 지부 상호부조회 회장과 광주 지방부 초등회 회장과 상호부조회 회장으로 봉사하였다.

박병규 형제는 한국 와국어 대학을 졸업하고 전남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교직 생활도 하였다.

23년 동안 한결같이 교회 일에 봉사하였으며 광주 종교 교육원장으로 일하면서 말일에 회복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광주 지방부를 광주 스테이크로 발전시키는 데 많은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이호남 선교부장은 1981년 6월 말로 그 직책에서 해임되었다. [성도의 벗(리아호나), 1981.7]

 


최초의 한국인 성전장 : 박병규 장로

[1990.6.5]


 

1986년 2월에 저는 교회교육기구에서 책임이 바뀌어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같은 달 저는 지역 대표로도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에 있었던 서울, 서울서, 부산, 광주 네 지역 중 부산, 광주 지역을 담당토록 지역대표로 지명되었습니다.

그 뒤 1990년 2월 13일에 지명이 변경되어 서울서 지역을 담당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서울 영동, 서울 강서, 서울 서와 인천 스테이크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성전에서는 인봉자로 또 금요 의식 봉사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성전장이셨던 파머 성전장님은 혹 성전에 만나기라도 하면 "My friend"라 하시며 따뜻이 대해 주셨고 때로 이곳에 방을 하난 마련해 줘야겠다고 농담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럴 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하였는가 싶어 내심 걱정을 했습니다.

1990년 6월 5일 8시가 거의 되었을 때 힝클리 부대관장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를 서울 성전장으로 부르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뭐라 대답할 바를 몰랐습니다. 잠시 후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부름을 감사히 받아 들인다고 대답을 하였고 부대관장님은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전화기를 놓고나니 온 몸에 힘이 빠진 듯 싶었습니다. 꿈을 꾼 듯 싶었습니다. 이 부름은 제가 소망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해 4월 인지 5월 인지 잘 기억할 수 없었으나 여러칸으로 된 흰 집을 꿈속에서 보았고 부름을 받기 전 얼마 동안 이유 모를 긴장감을 새벽마다 느낀 것이 다 그 부름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목욕을 하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어 영적인 준비를 비릇하여 실질적인 이사 할 준비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튿날 파머 성전장님이 전화를 해주셨고 성전 근처에서 만나 격려와 준비에 도움이 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서울 성전장으로서 부름을 수행하면서 저와 저의 아내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었으며, 성전에서는 장막이 엷다는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박 병규 성전장 귀환 노변의 밤

 

 

    지난 1993년 8월 15일 광주 스테이크 센터에서는 8월 31일부로 귀환하게 되는 박병규 성전장의 귀환을 축하하는 노변의 밤이 있었다. 이날 노변의 밤에는 미 국무성 초청으로 1개월간 미행정부와 교회를 둘러보고 귀국한 김제안 스테이크장의 귀국 말씀이 있기도 하였다.

구모라 합창단은 무반주로 구찬송가 "평화의 길에서 멀리 떠난 너"외 1곡을 잘 조회된 화음으로 노래하여 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성전에서 봉사하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주민등록증을 내밀고 성전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있기도 했습니다. 비회원이었는데 거룩한 주님의 집이라 하여 한번 가보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이야기 해주고 돌려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박장로는 시종일관 차분히 성전에서의 값진 경험과 간증들을 예배당을 가득 메운 회원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7년전 교육 기구 대표, 선교사 훈련원장과 지역대표로의 부름을 받고는 그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 왔습니다." 박 장로는 그러한 두려움을 성전을 방문하여 씻어낼 수 있었다고 하였다. "새로운 책임들에 대해 무거운 마음을 갖고 성전에서 예비 의식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비의식 중의 한 부분이 강하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부름에 대한 걱정보다는 힘이 닿는대로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면 모든 일이 잘 될거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 박장로는 무사히 4년간 당시의 직분에 봉사하고 있었는데, 그 후에 주어진 성전장으로서의 부름은 전혀 예기치 않는 부름이었다고 하였다.

성전장으로 봉사하면서 강한 열망을 가졌던 것에 관하여도 간증하였다.
"주님의 손길이나 목소리를 직접 느끼고픈 소망을 강하게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찬송가 90장 '주여 내 영 감동하사'의 가사 중 '시내산 불길 없이도 주 함께 함 보이시니'의 구절이 온종일 귀에 들린 적이 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는 그러한 방법으로 저에게 응답해 주셨음을 느꼈습니다."

또한 성전 사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태내심"으로 귀결지을 수 있다고 말씀하였다. 이 외에도 반드시 기억해 주길 바란다며 교리와 성약 88편 32정부터 33절까지를 인용하며 축복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벤슨 대관장님은 성전은 하늘에 이르는 관문이라고 하였습니다."로 말씀을 끝내며 노변의 밤이 폐회를 하자 성도들은 그의 명예로운 귀환을 손을 맞잡고 축하하며 좀처럼 집으로의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귀환 이후에도 여전히 교회에서, 성전에서 박장로는 성도들과 함께 하겠지만 먼거리를 여행하여 성전에 들어섰을 때 그가 베푼 환대와 친절한 미소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오래도록 성도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자료원: 성도의 벗(리아호나), 1993.10]

 

 

청주스테이크 성전 방문 성도들과 함께한 박병규 성전장 -중앙 [199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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