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기(聖地巡禮記)
Pilgrimage to the Holy Land
시내산
일출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편
박영미
박정빈
Day 1
16/6 / 2013 일요일
아쉽게도 호주 LDS 회원들과의 성지 순례는 금년도 예약이 이미 완료된 상태라 한국으로 와서 한국 여행사에서 모집한 순례팀과 합류를 했다.
인천 공항에서 여행사 직원들과 저녁 10시 45분에 만났는데 이번에 모집된 여행팀은 모두 31명이라고 했다. 여행사 직원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가는 경우는 매우 드믈다고 했다. 소개를 받고 보니 대부분이 장로교회 목사와 전도사 그리고 장로와 권사님들이었고 침례교 예비 성직자 부부도 있었다.
Day 2
17/6 / 2013 월요일
아부다비 국제
공항 대합실
새벽 1시 10분경 EY 873 비행기로 아랍에리미트 (UAE))수도 아부다비를 향해 출발했다.
전날 일기 예보로는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된다 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 한 밤중이라 그런지 바람도 없고 비도 없이 순조로운 비행을 할 수 있었다. 9시간 정도 비행을 한 후 아래를 보니 나무가 보이지않는 거대한 사막이 펼쳐지나고 있었다.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시차가 있어 오후 6시경이었으며 비행시간은 약 10시간 정도였다. 공항대합실은 천정과 벽이 타일로 도배가 되어 있어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곳에서 4시간 정도를 기다린 후 저녁 10시 5분 EY 653비행기로 카이로를 향해 출발해서 12시 20분경에 드디어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도착했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기다리는동안 일행가운데 한 목사님과 이집트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 말씀을 통해 평소에 가졌던 한가지 의문을 풀 수가 있었다.
그것은 구약에서 요셉을 모르는 왕이 일어나 이스라엘 민족을 핍박하여 종으로 삼았다는 말이 있어 어떻게 총리대신까지 지냈고 나라에 큰 공을 새운 요셉을 모르는 왕이 일어 날 수 있으며 그 민족을 핍박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요셉시대의 왕은 이민족인 셈족이었고 새로운 왕은 이집트 본 민족인 함족이었다고 했다. 새 왕조가 일어 났다면전 왕조에 속한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핍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집트편
드디어 구약 성서의 출애굽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이집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집트의 관문이이요 첫 인상이라고 할수 있는 있는 국제 공항은 실망스러울 만큼 허름했다. 이집트는 세계 4대 문명지의 하나요 5000년의 긴 역사 그리고 관광자원이 많고 나일강이란 수자원도 풍부한 나라인데 이렇게 가난한 나라가 되다니 뭔가 정치적으로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을 나오자 이집트 성지를 안내할 가이더를 소개 받았는데 이집트에서 살고 있는 김성애씨였다. 그녀의 안내로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곧바로 성지 순례에 들어갔다.
첫 방문지는 예수님 피난 교회였다 그곳으로 가는길에 마무리가 덜된체 버려진듯한 집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안내자에게 물으니 건물이 완성이되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건물들을 완성하지 않은체 그냥 그 안에서 산다고 했다. 이집트 서민들의 생활이 많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 피난 교회
마태복음 2장에 13절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해롯이 예수님을 죽이려하니 모친 마리아와 함께
이집트로 피하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 피난 교회는 바로 예수님이 피난해서 살던 장소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교회가 세워진 그 지역은 사도 마가가 이집트에 와서 처음 복음을 전했던 지역이라고 했다. 교회 건물 밑에 동굴이 보존되어 있었는데 요셉과 마리아는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였다고 했다. 동굴 안은 사람의 접근이 금지되고 있었으며 콥틱교회의 선택된 사람만이 특별한 날에 들어 간다고 했다. 교회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 돠어 있었는데 둘러보니 12개의 굵은 기둥이 교회 건물안에 있었으며 그 기둥의 숫자는 12사도를 뜻한다고 했다. 약간 다른 한개의 기둥이 있었는데 그 기둥은 가롯유다를 뜻한다고 했다.
교회는 높은 경건성을 유지 하고 있었다.
(이 내부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것임)
그런데 교회 주변을 돌아 보니 그 지역은 슬럼가를 이루고 있었다. 가이더의 설명에 의하면 이집트에서의 기독교인들은 전체 인구의 8%정도라고 하는데 이집트 인구가 8000만정도라고 하니 6-7백만정도가 기독교도라는 말이 된다. 기독교인들은 인구의 90%에 이르는 회교도들로 인해 사회 생활에서 상당한 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직장에서는 승진이 어려우며 세금도 회교도들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사회적 차별로 인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일부는 쓰레기 처리장에서 재활용품들을 모아서 판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어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잡을 수가 없어 외국까지 나가서 돈을 벌어 이집트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들은 이들을 이단으로 분리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이단으로 분류된 이유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같이 믿지 아니하고 신성만(단성론)을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인 이집트왕 파라오를 신으로 섬겨왔던 사람들이 문둥병자를 낫게 하시고 거센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하시며 빵 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의 예수님을 인간이면서도 하나님이라는 이중적인 논리(양성론)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 마리아 교회
다음 성지로는 나일강변에 있는 마리아교회로 갔다.
이 건물 역시 콥틱정교회에 소속된 교회였다.
그곳은 모세가 교회 앞 갈대 숲에서 건져 올려졌다는 이야기와 예수님이 피난 다니실 때 그곳에서 배로 출발한 지점이라는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는 곳이라고 했다. 교회 탑은 세 봉우리로 되어 있었는데 성부 성자 성신을 나타낸 것으로 여겨진다. 가이더의 말에 의하면 모세가 건져 올려 졌다는 갈대숲과 교회 앞에 있는 갈대 숲이 사료적 근거는 없지만 당시의 정황을 생각할 때 지형적으로 같은 곳으로 여겨져 지정되었다고 했다. 아마 그런 배경이 있어서 이 장소에 마리아의 교회를 건립했을 것이다.
이집트 고대 박물관
다음 방문지는 이집트 고대 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은 시내 중심가에 있었는데 박물관 주변 아파트들이 불에 타 검게 그을린체 방치된 것으로 봐서 이집트 민주화 바람이 무척 거셌다는 것을 짐작 할 수가 있었다.
박물관 안에는 이집트 역대 왕조들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5000년의 오랜역사와 세계 4대 문명지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볼 수 있는 훌륭한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이더의 말에 의하면 정작 유명 왕조들의 유물들은 거의 도굴 당하여 없고 별로 이름이 없는 왕들의 것들만 출토되어 전시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유감 스럽게도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 마음에 담고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다음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퍼온 것들이다.
Day 3
18 / 6 / 2013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고대 이집트 왕가의 무덤인 피라미드와 그 주변에 세워진 스핑크스를 관람했다. 피라미드는 그 높이가 140m에 이르는 거대한 석축 건물이었다. 가이더의 설명에 따르면 한개의 피라미드에 쓰여진 벽돌이
무려 240만개에 이르며 10만명이 20년동안 만들었고 현대의 첨단 장비와 기술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5년이상이 걸리는 대 건축물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낙타를 타고 사진을 찍기 위해 가격을 물으니 2불이라고 해서 그말을 믿고 낙타에 오르니 마치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들마냥 여러 사람들이 에워싸며 돈을 요구했다. 얼마냐고 물으니 40불을 달라고 했다.
이들은 배두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돈을 뜯어 내기 위해 관광객들을 위협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겨우 9불을 주고 풀려 나왔는데 성지 주변 상인들을 조심하라는 가이더의 안내는 받았지만 그렇게 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라샘 출애굽기 15장 23절 : 이는 물이 쓰기 때문이라 그로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니라 마라샘을 향해 한참을 달려가니 긴 터널이 나왔다. 가이드는 그터널이 바로 홍해의 수문 수애즈운하 밑을 통과 하는 터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홍해 밑을 차로 통과한 셈이다
그곳을 지나 수르광야로 가니 한 작은 우물이 있었는데 바로 마라의 샘이었다.
출애굽기 15장 22-25 그들이 마라에 왔으나 마라의 물을 마실 수 없었으니 이는 그물이 쓰기 때문이라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므로 그가 주께 부르짖으니 주께서 그에게 한나무를 보여 주시는지라 그가 물에다 던지니 물이 달게 되더라 .
가이더의 설명은 이 우물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그 샘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종려나무 군락이 있는 곳은 오아시스가 있게 마련인데 수르광야 가운데 종려나무가 모여 있다는 점과 홍해에서 사흘간을 여행 할 수 있는 거리등을 따져서 정한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까운 광야는 신광야(출애굽기 16: 1-15)인데 이곳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내려준곳이라고했다. 시나이 반도의 신 광야를 지나서 바다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바다가 바로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기위해 갈랐다는 홍해바다라고 했다.
모세가 기적을 일으켰던 그 지점은 아니지만 홍해의 물이야 어딘들 다르겠는가. 홍해를 바라보며 바다를 가르는 모세의 위용을 상상해 보았다. 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모두들 차에서 내려 물가로 가서 바다물을 손으로 움켜보기도 하고 발을 담가 보기며 감격스러워했다.홍해를 지나 30-40여분을 달려 시내산 기슭에 자리한 조금만한 모텔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미 저녁 11시가 지났다. 그곳에 도착하니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음식도 부실한데다가 장시간의 여행으로 피곤해서 먹는둥 마는둥하고 서둘러 숙소로 들어 갔다. 그러나 숙소에 들어가서 쉴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시간이었다.
시내산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그날 밤 산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저녁 12시 30분경 해발 2285m인 시내산 등정에 나섰다.하루 종일의 여행으로 지쳐있었지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장소를 볼 수있다는 기대감으로 피곤함을 잊을 수가 있었다.
D-4
19 /06 / 2013
시내산 (호랩산)
출애굽기 19장 18 : 시내 산은 온통 연기로 자욱하니 이는 주께서 불 가운데 그 위에 내려 오심이라 그 연기가 용광로의 연기처럼 솟아 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더라.
20 : 주께서 시내 산 정상에 내려오셔서 주께서 모세를 산 정상으로 부르시니라
잠시 걸어 올라가니 여러 마리의 낙타들이 깊옆에 엎드려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더는 혹 일어날지도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가파른 산길이라 낙타를 타는 것이 위험하다며 낙타를 타지말라고 권유 했지만 이미 다녀간 사람들로 부터 안전성을 들은 탓인지 10여명의 사람들이 낙타를 선택했다. 그러나 나머지는 모세가 오른 길이니 직접 체험하겠다며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등정하는 시간은 3시간 정도인데 길이 온통 돌 투성이라 쉽지않은 길이었다. 각자 준비한 작은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올라 가는데 힘이 들면 쉬기도 하고 또 찬송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올라가니 드디어 낙타 정거장이라고 불리는 산 정상 밑의 휴식터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곳에서 낙타를 타고온 사람들과 합류를 해서 1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등정을 시작 했는데 그 지점부터 산 정상까지는 무려 700개의 돌계단이 있다는 가이더의 설명에 일부 노약자는 등정을 취소하고 나머지는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 갔다. 아내는 무릎이 좋지 않아 출발전 부터 염려를 많이 했는데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아 마침내 산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아내는 하나님이 힘을 주셨다며 기뻐했다.
우리 역시 일행중 성직자 몇사람과 함께 한 장소를 찾아 기도를 시작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모세가 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그산 그리고 십계명을 받았던 바로 그 산에 와서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니 … 눈을 들어 산 아래를 보니 나무 하나 없는 바위 산들이 햇빛을 받아 그야말로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내려 오면서 가이더는 한 골찌가를 가르키며 그곳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동안 아론과 나답과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기다린 장소(출애굽기 24장 14절 :너희는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리라)로 추정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엘리야가 (도망와서) 머물렀던 곳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날이 밝아 산을 내려 오다 보니 밤새 올라온 길이 예삿길이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밤중이라 전체적인 거리나 지형도 모른체 그저 앞사람의 뒤만 보고 따라 가다 보니 어찌 어찌 정상까지 올랐지만 만약 밝은 날 그길을 걸어 올랐다면 분명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
내려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려 오는 길 옆에는 어린아이들과 여인들이 포함된 상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1 달라를 외치며 돌이나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산 기슭으로 내려 오자 모세가 호렙산(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았단 떨기 나무가 보존 되고 있다는 케더린 성당으로 들어 갔다. 이집트의 시내산을 모세가 오른 산이라는 사실을 뒤받힘 하고 있는 것은 케더린 성당이 그 이유로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케더린이란 이름의 여인은 로마귀족이었으나 로마가 금하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로마 황제가 그녀의 인품과 학식을 안타깝게 여겨 사람들을 보내 회유를 시도했으나 오히려 자신을 설득시키려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결국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교회안의 떨기 나무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딸기 나무와 비슷했다. 그런데 가이더는 사람들이 이 기념적인 나무를 다른 곳에 심어서 기르려고 시도를 해 보았으나 이상하게 성공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줄기가 잘자라서 풍성하게 어울려져 있는 나무가 다른 곳에는 자랄수가 없다니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케더린 성당안에는 고대 성경사본 3000점과 5000개 이상의 희귀한 성경이
있으며 이곳에서 AD 300년에 기록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신약성경 사본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발견한 독일사람 티쉔도르프이 사본을 당시 동방정교회의 보호자인 러시아 황제에게 주었고 러시아는 재정이 어렵자 이 사본을 영국에 10만파운를 받고 팔았다고 한다.
지금 이 사본은 영국 국영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고 했다. 또 케더린 성당안에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샘이 라 불리는 우물터가 있었다.
누웨바
시내산 등정을 마치고 바란광야를 1시간 30분정도 차를 달려 이집트의 휴양도시라 불리는 누웨바로 이동했다.
휴양도시라고 하면 무언가 있을법 한데 제대로 둘러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집트 시내에도 별로 볼 수 없었던 한국 식당이 이곳에는 3개나 있다고 하니 분명 볼만한 것이 있으련만 그저 한가한 거리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 있는 한국식당에 들려서 점심을 한식으로 먹었다.(여기 올린 누웨바 시가지 모습은 인터넷에서 퍼 온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국경지인 타바로 갔다. 여권을 보이고 이집트 국경을 벗어난 순간 출입국 사무실 직원의 신호를 받고 한 사람이 짐 운반용 커리어를 끌고 오더니 우리가 끌고 가던 짐들을 무조건 실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국경까지 옮겨 주더니 각자 1불을 요구 했다.
우리는 이민성 직원이 짐을 조사하려는 줄 알고 얼떨결에 가방을 준 것인데 알고 보니 1불을 받아 내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가이더의 설명을 듣고 강하게 거절해서 가방을 맡기지 않아 돈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집트 국경을 벗어나자 사람들입에서 절로 터진 한마디 그것은 아! 원달라 ! 였다. 이집트 여행내내 사람들로 부터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국경을 떠나는 사람에게까지 1불을 요구하며 이런 행동을 하다니 그것도 공무원들의 묵인아래서 ….. 현대 문명에서도 기독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나라! 안타깝게도 이집트는 참으로 영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가난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편
Israel,Israel, God is calling Calling thee from lands of woe Babylon the great is falling 이란 찬송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라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반가워 하거나 친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세계로 부터 들어오는 기독교 순례자들은 그저 돈을 가져다 주는 관광객일 뿐이라고 했다. 서로의 신앙이 다르다는 것은 이처럼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짝 사랑이면 어떤가 우린 예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사모해서 그 먼거리를 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스라엘을 적대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이스라엘 국경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여행 안내인(가이더)을 소개 받았다. 예루살렘에 있는 희브리대학 석사과정을 밟고있는 허정문 목사였다. 가이더의 안내로 요르단강 서쪽으로 4시간여를 지나 여리고로갔다. 여리고는 지중해 해면보다 250m가 낮은 저지대라고 했다.
주변을 살펴 보니 모래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데 그 산의 가장 자리가 쪼개져 사람모양의 기둥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이더는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이야기를 하며 그 쪼개진 산 조각을 가르켰다. 억지 연결이라 실소가 터졌지만 그나마 가르킬 수 있는 비슷한 암석 조각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이더는 그 산의 흙을 맛보면 소금맛이라며 롯의 아내를 상기시켰다 .
D-5
20/ 6 / 2013
시험산
마태복음 4장 1절 : 그 때에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려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시니라
여리고 호텔에서 아침 식사 후 예수님이 마귀로 부터 시험을 받았다는 시험산으로 이동했다. 시험산 중턱에도 수도원이 있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성지마다 교회가 아닌 수도원이 있는데 이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 아니고 기독교 활동이 제한된 곳이라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리고
열왕기하 2장4절 그리하여 그들이 여리코로 가니라 ……..13 그가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외투를 집어 들고 ……19 이 성읍의 위치는 아름다우나 물이 쓸모 없으므로 땅이 불모지니이다.
다음 성지는 여리고 성터였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여리고성은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성주위를 하루에 한번 6일을 돌고 7일째는 7번을 돌아 일시에 소리쳐 무너뜨린 성이다. 발굴된 흔적을 돌아보니 성벽이 이중으로 만들어졌는데 가이더의 설명에
의하면 두 성벽 사이에 이스라엘 정탐군을 살려준 기생 라합이 살았으며 그 기생 라합의 후손 가운데 다윗왕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발굴된 유적에 의하면 성이 밖으로 무너진 흔적이 있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무너진 성벽을 딛고 쉽게 성안으로 쳐 들어갔을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엘리사의 샘
이 수원지에서 흐르는 이 온 여리고를 적셔 농사를 짓게 하고 나무를 푸르게 하고 있었다. 여리고 성터위에 서서 주변을 살펴 보니 나무도 많고 들에는 여러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열왕기 하 2장 19절에서 22절에 보면 여리고는 엘리사를 만나기 전 까지는 황폐한 불모지였다.
이유는 물이 써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사는 여리고 사람들의 요청을 받고 물의 근원에 소금을 뿌려 물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한다. 그 물은 오늘날까지 여리고에 과일과 채소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삭개오의 뽕나무
삭개오의 뽕나무 이야기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데 키가 작은 삭개오가 군중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기위해 뽕나무에 올라가 있다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막상보니 뽕나무가 아니었다 영명으로 sycamore 라고 하는 나무인데 이는 단풍나무과였다.
왜 그런 나무를 뽕나무라고 표현했는지는 알지못하나 그곳에서는 이 나무가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로 소개되고 있었다.
사해
사해는 해수면에서 무려 400m나 낮아서 그곳에 흘러들어온 물이 더이상 흘러갈 곳이 없는 호수다.
물의 염도가 높고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며 높은 염도로 수영을하지 않아도 몸이 뜨는 곳으로 유명하다. 직접 들어가서 실험을 해보니 과연 수영하지않아도 몸이 떠서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일이 뒤뚱거려 쉽지 않았다.
얕은 곳의 바닥은 진흙인데 미네날이 풍부해서 진흙팩을 하면 피부 건강에 매우 좋다고 했다.
예뻐진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남녀 구분없이 예뻐진다는 말에 진흙을 몸과 얼굴에 발라 흑인들이 되었다.
쿰란
쿰란은 사해 사본이 발견된 곳이다. 그곳에 가니 영상을 통해 사해 사본이 만들어진 경위를 알 수 있었는데 그 내용에 의하면
남자 수도사들이 세상을 등지고 쿰란이란 지역에 함께 모여 수도사 생활을 하면서 사해 사본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들이 세상을 버리고 집단생활을 한 것은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여건이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쿰란에 모여 살면서 구약 성경의 사본을 만들었는데 이 사본을 토기그릇에 넣어 산 곳곳에 동굴을 만들어 보관했는데 그 사본을 사해 사본이라고 부르는 것은 쿰란이 사해지역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루살렘
다음은 예루살렘 성지방문이었다. 예루살렘 도시 전경이 보이는 언덕을 통과 하다가 우리 교회의 건물인 BYU Centre 건물을 보았다.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차에서 내려 건물 사진을 찍었다. 많이 아쉬웠지만 같이 간 일행들에게 우리교회가 예루살렘 성지에 우뚝 서 있음을 보여 줄 수 있었다는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다음 성지는 예수 승천교회였는데 아쉽게도 예루살렘의 모든 성지는 자연그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그 자리를 기념하는 수도원 건물들로 체워져 있었다.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면 더 감동스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그렇게라도 보존 하지 않았다면 유대교나 회교권의 나라에서 그 흔적 조차 없앨 것이라 생각하니 그렇게 라도 보존하려고 한 그 수고와 희생에 깊은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을 나와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신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주기도문교회로 불리는 교회 건물이 있었다. 교회 담벽에는 수십개의 언어로 된 기도문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는데 그중에 우리 한국말로된 주기도문도 있어서 반가웠다.
그곳에서 내려 오면서 예루살램을 바라보는 장소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많은 무덤을 보았다. 그 무덤들 가운데 말라기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도 뭍혀 있다고 했다. 성전 사업을 예고 하신 말라기 선지자님이 뭍혀 있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컸다.
무덤은 박스형으로 만들어진 돌 상자 무덤인데 그 위에 놓인 작은 돌맹이 수가 그 무덤을 찾는 사람들의 수와 같아서 돌맹이 숫자가 살았을 때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이라고 했다. 숫자가 많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모든 무덤들은 감람산에 있는 성벽의 두 문을 향하고 있었다. 그 문은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다해서 황금문이라 불린다고 했다. 이 문은 마태복음 11장 8절과 요한복음 12장 3절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때 나귀등을 타시고 종려나무를 들고 들어오신 문이다. 그런데 기독교도들이나 유대인들이나 예수님 또는 메시야가 이땅에 오시면 그 황금문이 있는 감람산에 올 것이며 부활은 황금문 가까이에 있는 무덤들로 부터 일어나난다고 믿기 때문에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문 가까이 뭍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문 하나는 자비의 문 다른 하나는 회개의 문이라고 하며 지금은 닫혀 있으나 주님이 오실때 열린다고 한다. (에스겔서 44/1-3 스가랴 14/4)
예루살렘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였는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이자리에서 암닭의 비유를 드시며 완악하여 회개 하지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염려를 표현하셨다.
( 마태복음 23장 37절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
그곳에서는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 통곡의 벽과 그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겟세마네의 감람나무 아래서 기도하셨던 곳에도 역시 교회가 들어서 있었었는데 특정교회 재단 이 아닌 세계 여러나라에 속한 기독교인들의 헌금으로 지어졌다 해서 만국교회로도 불린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 옆에 가히 수백년이 넘었을 만한 " 늙은 감람나무가 몇그루 있었는데 가이더의 말로는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 당시의 나무(?)도 있다고 했다. 감람산과 겟세마네 사이의 골짜기가 성경에 나오는 기드론 골짜기라고 했다. 그곳에는 언덕을 차지 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의 무덤이 있었다. 지금 예루살렘의 한켠에는 다윗의 성을 찾는 발굴사업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옛 지하 감옥으로 여겨지는 곳이 있었으며 배드로가 닭이 세번 울기전 예수님을 부인 하는 동상이 있었고 배드로의 통곡을 기념하는 교회도 있었다.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미가 선지자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 하였던 곳이다.(미가 5장 2절) 히브리어로 빵집 아랍어로는 푸주간(고기집)이며 에브랏(창세기 48장 7절)이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지만 다윗왕의 고향이며 야곱의 둘째 아내인 라헬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윗의 조상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한 곳이며(룻기 2-4)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고향이기도 하다 (누가 2장 4절) 그런데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이 팔래스타인과 6일전쟁 후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이 되었지만 지금은 팔래스타인 자치 정부가 들어 섰기 때문에 자치 정부 관할에 들어 있는 상태였다.
팔래스타인 지역으로 가기위해서는 분리 장벽의 검문소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통과하는 절차가 까다로워 많은 팔래스타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고 했다. 그 장벽에는 자유로운 왕래를 할 수 없는 팔래스타인들이 원성을 담은 벽화나 낙서들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으며 이 벽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들이 수 만명에 이르자 분리벽 철거를 요구하는 데모가 매주 일어 나게 되었고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도 가세해서 그 데모에 앞장서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UN 까지 나서서 벽 철거를 결의했지만 이스라엘은 요지 부동이라고 했다. .
이스라엘에서 팔래스타인 지역으로 넘어가니 두 나라 사이의 경제적인 격차가 확연히 들어 났다.
지금 팔래스타인 자치 정부는 UN등에 재정 원조를 부탁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검문소를지나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으로 여겨지는 장소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천주교회를 비롯한 몇개의 기독교회가 서로 벽을 맛대어 큰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그 교회는 예수님탄생기념교회라고 불려진다고 했다. 교회입구는 허리를 급히지 않고는 들어 갈 수 없을 만큼 작았다. 교회에 들어 갈 때 겸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해서 겸손의문 또는 불경스럽게 말을 타고 내부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든 사랑의 문 이라했다. 그러나 회교문화의 중심에 세워진 교회라 혹외부로부터의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작은 문을 통과 하니 교회 내부는 크고 웅장 하였으며 실내 장식들이 매우 호화로웠다.
Day 6
21/06/2013
아침 7시 30분에 아침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방문하지 못한 브리감영 대학 쎈타가 마음에 걸렸다. 새벽 5시 30분에 피곤해 하는 아내를 깨워 택시를 타고 대학쎈터에 갔다. 이른 아침이라 학교를 지키는 경비원들이 있었는데 혹 이 시간에 우리를 안내할 사람이 없겠는냐고 묻자 너무 이른 아침이라
어렵다고 했다.
그냥 학교 주변만을 둘러보고 올 수 밖에 없었다.
학교 역시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감람산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다. 일부 회원들로 부터 이 건물이 필요할 때 성전으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감람산이 바라보이는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들어 서는 것이니 주님은 언제든지 성전으로 오실 것이다. 그리고 성전은 말일에 세월질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이 성취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립된다면 그야말로 크고 두려운 날(말라기 4장 5)이 이미 목전에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황금돔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원래 이곳은 두개의 성전 곧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 곧 해롯성전이 있었던 자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슬림 교도들의 모스크(회당)가 자리 잡고 있으니 어찌 되찾고 싶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지역을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이요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하나님께 첫 제사를 지낸 곳으로 믿고 있으며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 이곳의 흙을 사용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무슬림들역시 이곳을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한 곳이요 아브라함이 이삭이 아닌 첫째 아들 이스마엘을 제사 지내려 했던 곳이라고 믿고 있어 그들 역시 어떤 경우든 이곳을 반드시 지켜야 할 성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니 이곳은 두 종파간에 결코 양보 할 수 없는 장소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결코 풀어질 수 없는 긴장감이 항상 있는 나라였다.
양의 문
예루살렘성은 몇개의 성문이 있는데 우리 일행은 양의 문양이 새겨진 양문을 통과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이 성문에서 가까이 있는 베데스다 연못이 예루살렘 양시장( sheep market)) 곁에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 문을 양의 문이라고 표현 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문은 십자가길곧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오르신 길로 들어 갈 수 있는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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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연못
베데스다 연못은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곳이다.
요한복음 5장에 “예루살렘 양시장 곁에 히브리어로 베데스다라고 하는 못이 있고 행각이 다섯이 있더라“라고 나와 있다.
십자가의 길
베데스다 교회를 나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길을 따라 걸었다.
오늘날 순례자들이 걷는 십지가의 길은 1540년경 작은형제회 라고 불리는 수도회가 탐사 해서 정한 것이라고 했다.
안토니아성에서부터 골고다까지 모두 14개 장소를 정해 놓았는 데 예를들면 십자가를 메고 가시다가 넘어졌던 장소,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장소 , 십자가에 달리신 동산 그리고 예수님 무덤이 있었던 장소등을 추적 조사해서 그곳을 성별하고 그 장소에 기념교회등이 설수 있도록해 논 것이다. 그런데 그 수난의 길은 옆에는 낡은 상가들과 허름한 건물들이 벽을 만들고 있고 또 순례객들이 많아 마치 북적대는 상가 뒷골목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오가는 모든사람들이 순례객들이라 찬송과 명상으로 애써 그날의 비극을 돼새기려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유대인들이나 무슬림(회교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역사에 아무런 존경이나 의미를 주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가 있었다. 성지가 그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성지마다 교회가 세워져 있는 것은 유감이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기독교의 모든 성지는 십자가의 길 처럼 이방인들에 의해 더렵혀지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 졌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마음에 깊이 느껴졌다. 7세기경 페르시아군과 이슬람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약 1000년간을 제대로된 순례를 할 수 없었다고 하니어찌 기독교 성지가 제대로 보존될 수 있었겠는가 . 계절적으로 비 성수기라 하는데도 많은 순례자들이 붐비면서 십자가 길을 오가며 그리스도의 고통을 되새기고 있었다. 일부 순례팀들은 근처에 있는 상점에서 십자가를 빌려 그 십자가를 직접 지고 그길을 걸으며 그날의 일을 되새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이사리아
예루살렘에 있는성지 순례가 끝난 후 로마 총독부가 있었던 가이사리아라는곳으로이동을했다.
바울의 로마 선교 출발점이자 기독교가 꽃핀 이스라엘 서편 지중해 도시였다.
로마 총독부가 있던 곳으로 전해지는 이곳은 아름다운 지중해 해변에 있었는데 탁트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호화로운 총독부를 연상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원형경기장이 두 개가 있었으며 한 원형경기장은 지금도 보존이 잘되어 있어 공연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수천년된 건물의 조각들이 많이 발굴 되어 유물로 전시되어 있었다.
갈멜산
다음 성지인 갈멜산으로 가기 전 갈멜산 가까이 있는 식당에 들려 간단한 점심을 먹고 갈멜산으로 이동했다.
구약열왕기상 18장에 있는 산으로써 엘리야가 바알신을 섬기던 바알교 선지자들450명과 아세라들의 선지자 400명과 정면 대결을 했던 곳이다..대결 방법은 당시 나라가 크게 가물어 하늘에 바치는 제사의 희생물로 잡은 수 송아지를 불로 태우는 일인데 바알신 선지자들이 칼과 단창으로 자신들의몸에 상처를 내서 피가 흐를 때까지 바일신을 불렀으나 소용이 없었고 엘리야가 희생제물에 물을 붓되 제단 주변의 도랑까지 채우지도록 했으나 하나님을 부르자 불이 내려와 희생제물은 물론 제물 주변의 도랑물까지 마르게하였다고했다. 그때 엘리야는 무려 850여명의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 곳 역시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었는데 옥상에 올라가 보니 이스르엘 평지등 주변의 여러 성지를 조망 할 수가 있었다.
므깃도 Megiddo(히브리어아마겟돈 Armegeddon )
갈멜산을 떠나 인류 최후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므깃도로 갔다. 요한계시록 16장 14절부터 16절에 하나님의 위대한 날의 전쟁을 위해 왕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은다는 말이 나온다.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야에 있으며 텔이라고 불리는 인공 언덕이었다. 텔은 한 시대의 유적지 위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언덕이어서 시대가 다른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므깃도에는 솔로몬 시대의 것과 그 시대보다 100년 후의
아합왕시대의 것이 출토가 된다고 했다.
므깃도는 BC 4000년에서 BC 6세기 까지 이스라엘의 최고 요새로 많은 전쟁을 치룬 곳인데 솔로몬 시대에 만들어졌던 마병장이 BC 923년에 이집트의 장군시삭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아합왕에 의해 다시 재건 되었다고 한다. .
므깃도는 주변국가들이 전쟁을 일으킬 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여서 솔로몬 왕은 이곳에 마병장을 만들어 놓고 말을 길렀는데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정도의 큰 규모였다고 한다. 특히 놀라운 것은 므깃도는 외부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수로를 땅 속에 만들어 놨는데 3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잘 보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쉽게도 이곳 므깃도에 조금 늦게도착해서 들어가보지 못하고 이스르엘 평야를 바라보며 설명을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곳에 올린 자료는 인터넷에서 구한 것들이다. 이스르엘 평야는 땅이 비옥하고 드넓어서 이스라엘의 곡창지라고 했다 그런 평화로운 장소에 인류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짓는 대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나사렛
므깃도를 나와서 예수님이 자라신 곳 나사렛으로들어갔다.
나사렛은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고향이며 예수님께서 유년기를 보낸 고향이다.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 부터 예수님 잉태를 예고 받은 자리 곧 마리아의 집터 위에 성당이 세워져 있었다.
그동안 성지를 돌며 느낀 것은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인 참된 복음은 그 씨앗이 천주교회를 비롯한 일반 교회의 수고와 희생위에서 싹이 텃다는 것이다. 그들이 복음을 지키기위해 숱한 역경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질 수 있었으며 또한 이같은 성지보존을 위한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어떻게 성경이 신화가 아닌 역사임을 눈에 보이는 증거로 보여 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감사함이 있다면 이복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루어온 사람들에게도 깊은 감사함을 가져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소중하다면 그분을 낳으신 마리아와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과 복음을 지켜온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사렛 교회에는 각국에서 자기 나라 사람들의 여인과 아들의 모습으로 성모와 성자를 표현하였는데 그곳에 우리나라 여인과 아들도 있어 반가운 마음이 컸다.
또한 교회 건물밑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살았던곳으로 추정되는 집터가 발굴되어 있었다. 그분을 기르신 요셉에 대해서도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그곳을 방문한 후 숙소에 갔는데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Day 7
22/6/2013
가나 혼인 잔치
오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신 가나혼인잔치가 있었던 곳 그리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베드로를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제자로 거둔 갈릴리호수와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로 시작해서 8가지 복을 말씀하신 팔복산을 방문했다.
가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이 처음 기적을 행하셨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머니인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술이 떨어졌다고 말하고 종에게 그가 시킨대로 하라고 한 점을 생각할 때 그 두분은 그냥 잔치에 참석한 손님이 아니라 그 잔치의 주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때 사용되었을 술 항아리등을 볼 수 있어 그 이야기의 사실성을 알 수 있었다.
갈릴리 호수
마태복음 4장 15절 :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가를 걸으시다가 두 형제를 보셨는데 베드로라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라 …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드디어 갈릴리 호수에 도착했다. 사실 성지 순례를 간다고 했을 때 먼저 생각난게 갈릴리호수였다.
아마 오랫동안 바다와 가까이 살며 낚시를 즐겨온 탓에 배드로와 가까운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갈릴리 방문은 내게 있어 이곳 이스라엘 성지 순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었다.
갈릴리물은 담수여서 분명 호수이지만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서 바다로 표기한다.
성경 영문에도 sea of galilee 라고 표기 되어 있다.
그리고 해면보다 200여미터 낮은 곳이어서 사해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바다라면 갈릴리 호수도 호수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호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갈릴리는 신약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다 12사도 가운데 대부분이 이 근방 사람들이며 직업도 어부들이 대부분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나타나신 곳도 갈릴리다(요한복음 4:4 이미 아침이 되었는데 예수께서 바닷가에 계시나 제자들은 그 분이 예수인줄 알지 못하더라 ).
호수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라하다가 물에 빠진 배드로 사건과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 배가 파도에 덮이자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케 하신 일 그리고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한 배드로에게 그믈이 터지도록 잡게 하신일등도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
갈리리 해변을 살펴 보니 어린 고기들이 때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아직 바다에 충분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물고기 가운대 배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가 있었는데 한 식당에서 그 물고기를 구워서 내 놓았다. 아마 이 물고기는 갈릴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추억으로 주는 음식인지 식당안에 가득찬 손님들에게 한명당 1개씩 주었다.
지느러미를 그대로 두고 요리한 것이라 매우 거칠어 보였지만 베드로의 터프함을 연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먹었는데 맛은 좋았다.
갈릴리 호수 옆에 있는 가버나움 회당자리를 둘러 보았는데 거대한 건물터가 많이 발굴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가까운 배드로의 집터도 둘러 보았다.
가이는는 배드로의 집터를 조사해 보면 집의 규모가적지않아 배드로가 결코 무식하거나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이 집터 역시 증거가 될만한 역사적 사료가 있어 정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 이름과 갈릴리 주변 상황을 고려한 것이어서 유적들을 보는 것만으로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터들만 남았으니 그중에 하나일 것 아닌가 .
배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바다에 뛰어들고 예수님을 자신만은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고 세번을 부인하고 제사장 종의 귀를 자르고 그리고 그는 평생을 주를 위해 살다가 마지막은 스스로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혔다.그분은 예수님의 영원한 친구요 제자였다.
팔복산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 있는 산에 올라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든 사람들을 가르치셨던 곳으로 왔다. 마태복음 5장 부터 7장 : 주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 오더라 주께서 입을 열어 그들을 가르치며 말씀하시기를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예수님은 이곳에서 산상수훈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가르치심을 주셨는데 그가운데 애통하는자, 온유한자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자, 자비로운 자, 마음이 순결한자 화평케 하는자,
그리고 의로 인해 박해를 받은자등 모두 8개 항목으로 나누어서 그들이 받게될 축복을 가르치셨던 곳이라고 해서 팔복산이라 불리워 진다고 했다. 물론 이곳 역시 정확한 사료를 근거로 정해진 곳은 아니겠지만 이 교회에서 갈랄리 호수로 이어지는 들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모습을 상상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곳을 떠나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제자들의 성읍 중 하나인 뱃세다로 갔다. 뱃세다는 그뜻이 어부의 집이라는 뜻이어서 어부들이 모여 사는 성읍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곳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배드로,빌립,안드레의 고향이기도 하다. (요한1: 44, 12:21)
예수님은 그곳에서 물고기 두마리와 빵 다섯덩어리로 5000명을 먹이시고 남은 물고기와 빵 조각 12광주리를 거두셨다. (마가 6:38-44) 그리고 눈먼 소경을 안수하여 낫게하신 곳이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지 않자 심판날에 그들이 투로와 시돈 그리고 소돔보다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눅 10: 13-15) .
요르단 ( 요르단 하심왕국 )편
갈릴리 해변을 돌아 보는 것을 끝으로 이스라엘 성지 여행을 마치고 요르단으로 건너왔다.
요르단은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입헌 군주 국가로서 왕을 가진 나라다. 국토면적은 91860 km2 이니 우리나라 남한(99392 Km2)과 비슷한 면적이며 전형적인 무슬람(회교)국가다. 언어는 아랍어이지만 도시에서는 영어도 통용되며 인구는 500만정도이다.
얍복강
창세기 22장 22 -30 그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여울을 건넜는데 ……..야곱이 홀로 남았는데 어떤 사람이 거기서 야곱과 날이 샐 때까지 맞붙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라 불리리라 이는 네가 통차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라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지만 내 생명이 보전 되었다 함이라
요르단의 첫 성지는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 오는 얍복강이었다. 얍복이라는 말은 물이 흐르다는 뜻이며 이 강의 총 길이는 96Km에 이른다고 했다. 요르단 수도 암만으로 가는 길에 있었는데 아무런 표시도 없고 여기저기 검은 색 폐 비닐이 널부러져 있는 작은 수로였다. 도저히 성경에 등장하는 성지로 표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요르단 역시 이집트처럼 성지로 이동하는 도로변은 사막이요 광야였다. 요르단에서 우리를 안내한 사람은 한국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인데 지난 10년동안 겨우 2 가정을 인도 하였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하자 그 가정들도 자신이 가르친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특별한 체험을 한 후 자신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한 사람은 농사를 짓는 사람인데 어느날 밭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땅이 꺼져 깊은 구렁으로 떨어졌는데 어떤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을 받아주어 살았는데 알고 보니 예수님이어서 개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역시 꿈에서 예수님과 같은 사람을 만난 후 개종을 했다고 했다.
회교도가 기독교도로 개종을 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하고 때론 생계에도 위협을 받기 때문에 이같은 특별한 체험을 갖지않는 한 매우 어렵다고 했다. 10년간을 두 가정을 인도하기위해 선교사를 재정적으로 지원해온 교회도 놀랍지만 그 세월동안 실망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해 온 이 선교사의 희생과 인내도 놀라웠다. 지금 세상에는 참으로 복음을 위해 큰 희생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요르단의 지형은 매우 특이했다.
해면보다 훨씬 낮은 지역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한국의 개마 고원처럼 높은 지대가 있어 오르고 내려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가이더의 말에 의하면 공항에서 나오는 길은 해면보다 200여m가 낮은 저지대이고 숙소가 있는 수도 암만은 해발 700m에서 1100m의 고지대라고하니 공항에서 수도 암만까지 가는길은 900m에서 1300m의 고산지대를
등정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된다 . 더우기 오가는 길도 좁아서 차가 한번씩 커브길을 돌때는 수백길 낭떨어지가 눈앞에 보여 간담이 서늘해졌다. 몇차례 서늘해진 가슴을 달래다 보니 드디어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도착했다. 암만은 공항에서 나오는 길에 보았던 서민들의 도시와는 많이 다른 도시였다. 아름답고 잘 가꾸어진 도시였다. 요르단은 가난한 나라지만 수도 암만은 주변나라 부자들이 와서 살기를 원하는 곳이어서 그들이 투자를 하기 때문에 좋은 집들이 많다고 했다.
Day 8
23 / 6 /2013
고대 암몬성과 패트라를 방문했다. 암몬성은 암몬백성이 살던 성인데 암몬 백성은 롯의 둘째 딸이 아버지를 술먹여 낳은 자식들의 후손들을 말한다. 성경에서 쎌라(사사기 1장 36절 ,역대왕하 14장 7절) 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진 고대 도시 패트라는 최근에 유네스코에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등록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새로 번역된 성경에서는 지금의 이름대로 패트라로 불리워진다고 했다. 일행 중 한명은 이번 성지 순례에 참여한 것은 바로 이곳를 보기 위해서라고했다. 패트라에 가는길에 와디무사(모세의샘)에들렸다.
이샘은 모세가 약속의 땅으로 가면서 지나간 곳이라고 하는데 그 물은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사막에서 나오는 물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물을 떠서 마셔 보았는데 일반 물과 다른 맛을 느낄 수 없었다.
패트라는 그 이름이 바위라는 뜻이라고 하더니 과연 대단한 위용을 가진 거대한 바위 골짜기였다. 기원전 300년경에 나비타안족이 세운 교역 중심의 요새도시며 사도바울이 다마스커스로부터 피신한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온다는 패트라는 거대한 사암이 양벽을 이루어 작은 통로를 만들고 있었는데 엣 거민들이 사용하던 마굿간과 주거지, 무덤들이 모두 사암을 떠내서 만든 암굴 형태였다. 작은 통로를 따라 가니 넓은 광장이나오고
그곳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신전과 원형극장이 있었다. 7대 불가사의로 인정된 것은 바로 이 신전때문이라고 했다 어림 잡아도 30m가 넘을 이 신전은 쌓아 올린 건축물이 아니고 바위벽을 깎아서 만든 조각물이었다. 그러니 이 거대한 조각이 완성되기까지 단 한번의 실수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신전에는 12개의 기둥이 12개월을 의미 하고 신전 옆에 새겨진 사람의 발자국 모양은 365개 곧 365일을 의미 한다고 했다. 이곳을 조금 지나 안으로 가니 이같은 조각물이 미 완성된 상태로 남아 있어 더욱 이 조각물의 완성을 위해 신기의 기술이 필요 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넓은 광장 주변에는 여러 동굴들이 있었는데 어떤 것은 묘지로 어떤 것은 주거지로 사용되었다고했다.
최근까지 사람들이 살았으나 그곳을 관광지로 개발한 이후 주민들을 철거 시켰다고 했다.
실제 굴안을 들여다 보니 오래 비워있어 흙이 쌓여있었는데 그 흙을 다 파내면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패트라는 바위벽을 통해 물을 공급하는수로가 있었으며 바위를 깎아서 만든 원형극장 거기에 신전까지 갖춘 완연한 고대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카락성
민수기 20장 17절에보면 “ 우리가 왕의 도로를 따라 갈것이며 “ 하는말이 나온다.
모세가 카데스에서 에돔왕에게 사자를보내어 길을 열어 줄 것을 간청하는 말이다. 왕의 도로를 따라 가니 열왕기하 3장 27절에 나오는 킬하레셋 곧 카락성이 나왔다.
카락성은 모압왕이 북이스라엘 여호람과 남유다왕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공격해서 성이 함락되기에 이르자 자신의 맏아들을 신에게 번제물로 드린후 위기를 벗어난 곳이다. 이 카락성은 해발 1230m의 고 지대에 있다.
이곳에서 암몬성으로 가는길은 거대한 양대 산맥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어 내려가고 올라오는 길이 위협을 느낄정도로 가팔라서 스릴이 있었다. 가드레일이 있기는 하나 무려 800m 정도를 내려가고 다시 900m정도를 올라가니 혹 미끄러져 굴러떨어질것 같은 아찔함이 있었다. 마음졸이며 올라가니 비로소 평지가 나왔다. 역시 나오는 길도 왕의 길을 따라 나왔다.
요르단의 성지 순례는 고대 이름이 지금도 사용되는 곳이 많아 더욱 실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암몬성
무엘 하 11: 1 다윗이 요압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보내니 그들이 암몬자손을 멸하고 랍바 (암몬성)를 포위하니라 사무엘 하 12: 그때 요압이 암몬자손 랍바와 싸워 그 왕의 도성을 취한지라.
암몬성하면 아무래도 다윗과 밧세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무엘상 11장에 다윗이 성위에서 장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얻기위해 충성스런 부하 우리야를 전장에 보내 죽게하는데 그 전장이 바로 암몬성(랍바 )이기 때문이다. 또한 암몬 족속은 롯의 둘째 딸이 아버지 롯과 동침하여 낳은 자식의 후손들이다.
Day – 9
24 / 6 / 2013
느보산
성지 순례의 마지막 날이다.
모세가 뭍혔다고 여겨지는 느보산에 갔다. 성지 입구에 선지자들의 얼굴이 조각된 입석이 있었는데 서기 2000년에 이곳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해서 세운 것인데 교황이 이곳을 방문한 후 성지로 정해졌다고 했다. 이 곳에는 모세에 관한 기념비가 있었는데 모세는 이곳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을 살펴 본 후 그의 인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신명기 34장 1절 :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느보산 정상에는 아직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임시로 지어논 가건물안에 큰 모자이크 작품이 있었다. 땅 속에서 몇 백년을 보내온 터라 표면엔 마치 먼지가 쌓인것 처럼 뿌옇게 되어 있었으나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모자이크 작품은 요르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예술품인데 비잔틴(동 로마)문화의 유물이라고 했다. 모자이크는 초기 비잔틴 문화에서 많이 쓰여진 예술품인데 주로 궁중과 교회에서 많이 쓰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모세 기념교회가 있었는데 뒷편으로 가자 모세가 광야에서 독사에 물린 사람들을 위해 쳐들었다는 놋쇠뱀이 세워져 있었다. 놋쇠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불뱀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로 만든 것이다.
민수기 21:8-9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불뱀 한마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장대위에 달아 놓으라……모세가 놋쇠로 뱀을 만들어 …그 놋뱀을 보면 살더라.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조각가 지오바니가 만들었으며 놋뱀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복합해서 누구든지 놋뱀을 보면 살아 났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느보산에는 박물관이 있었는데 모세 시대에 사용되던 토기 그릇등 여러 유물들이 전시 되어 있었다.
성경 박물관
느보산을 떠나 버스로 10여분을 가니 성경 박물관이 나왔다. 성경 박물관은 성경에서 일어난 사건과 당시의 생활상을 조형물을 통해 표현해 놓았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설명하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미 대륙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더 할 수가 있다면 참으로 훌륭한 박물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큰 모자이크 성화를 만들어 기네스북에 등재시키려 한다고 했다. 우리도 모자이크
몇개를 붙이고 이름을 적어 넣었다.
성조지교회 (마다바 교회)
느보산과 성경 박물관을 관람한 후 마다바라는 작은 도시로 이동을 해서 점심을 먹었다..
마다바 도시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인데 원래 카락에서 살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1880년대 카락에서 무슬림과 기독교교인들 간에 큰 분쟁이 있었는데 열세였던 기독교인들이 당시 요르단을 관할하고 있던 오스만 쿠르트 제국에 자신들이 모여서 살 수 있는 땅을 달라고 하자 그 지역을 주었다고 했다.
마다바는 원래 기독교인들이 살았던 지역이었는데 오스만 쿠르트 제국(지금의 터키)은 그 땅을 주면서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제한할 목적으로 교회는 오직 옛날 교회가 있었던 장소에만 지을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그때 이곳으로 이주한 기독교인들 수는 약 2000명정도 였는데 그들이 교회를 짓기위해 옛날 교회 터를 파는 과정에서 기독교 성지 지도를 발굴 하였고 그 성지 지도를 통해 잃었던 성지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교회 내부에 들어가니 성지 지도와 함께 발굴된 교회 바닥에 있는 그림도 볼수 있었는데 흙속에서 나온 것이라 색채는 흐렸으나
그림 형태는 분명했다. 그리고 교회 내부에 걸린 성화는 모두 모자이크로 만들어져 있어서 당시의 문화를 재현하고 있었다.
성 조지 교회 방문으로 모든 순례 일정을 마치고 요르단 공항에서 아부다비 공항으로 가서 2시간 정도 기다린 후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하였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모형물
솔로몬 성전은 솔로몬이 7년간(왕상 6:38) 지었으며 BC 960년 부터 BC 586년까지 약 374년간을 유지했다. 바벨론 느부갈레살 왕이 침공해서 성전을 파괴 시켰는데 70년 뒤 포로에서 귀환한 스룹바벨이 유대 총독이 되어 BC 515년에 스룹바벨성전을지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에 비해 너무 작고 볼품이 없어 해롯왕이 BC 18년부터 수십년에 걸쳐 크게 증축을 했고 그 후부터 헤롯성전으로불려지게되었다. 이성전은 AD
70년까지 약 585년을 유지하였으나 로마의 침공으로 다시 파괴 되었고 수백년간을 파괴된체 남아 있다가 무슬림 (회교) 세력의 진입으로 지금은 황금돔이라는무슬림 회당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성지 순례를 마치고
모든 일정이 작은 문제도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지금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있는 이집트 국민들의 소요는 우리가 이집트를 떠난 후 부터 시작되었고 날씨는 청명해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 일정에 지장을 주는 일도 없었다 비록 고된 일정이었지만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한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며 성지 순례를
마감할 수 있었다. 참으로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성지 순례를 오래전 부터 생각해 왔었지만 정작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성지 순례를 떠나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는 중동에 대한 정세적 불안이 있는데 차라리 미국으로 가서 우리 교회 성지들을 돌아보는게 어떠냐며 반대를 했다. 나 역시 중동지역에 대한 불안함이 있던 터에 아내까지 반대를 하니 선듯 밀고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는데 뜻밖에 한 아들이 외국 여행을 다녀 오더니 여행경비 일체를 댈테니 성지 순례를 떠나라고 했다. 여행중에 갑자기 부모님을 성지에 보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자 아내도 더 이상 반대를 하지 못했고 결국 다녀 오게 되었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지난 9일간의 여행이 꿈만같았다. 성경을 읽지 않아도 상상만으로 머리속에 성경내용이 펼쳐졌다. 예루살렘에서 이런일이 있었고 여리고에서 저런일 있었으고 하면 바로 이런일과 저런일이 성경내용이었다.. 아!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다녔던 거구나 ! 싶었다. 갈랄리 호수에 가서 직접 배를 타고 호수를 돌며 그곳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을 상상해 보았는데 돌아와서 돌이켜보니 눈앞에 선하게 상상했던 일들이 떠올려 진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던 배드로, 바다위를 걸으시고 자신을 따라하다가 물에 빠진 배드로를 구하시며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하신 주님이 보다 쉽게 머리에 떠 올려졌다. 미처 돌아보지 못한 성지들을 더 돌아보고 이런 느낌을 더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하이 라이트는 역시 감람산 맞은 편에 자리 잡은 BYU쎈타였다.
전 방송작가 김종철씨가 이스라엘을 35번이나 방문해서 썼다는 책에는 유대인들은 기독교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게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 사건들 가운데는 십자군의 유대인 참살사건이 있는데 십사군은 첫번째 원정에서 당시 이스라엘에 살고 있던 유대인 30만명가운데 29만명을 죽였다고 하니 어찌 깊은 원한이 없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일반 생활에서조차 기독교와 연관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급차에는 적십자 모양을 사용하지 않으며 사거리가 십자가 모양이라고 하여 가운데 원형을 두어 변형시켰고 심지어는 수학에서 플러스표 +가 십자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오자의 ㅇ을 제한 플러스 모양을 사용한다고 하니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 짐작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날을 마태복음 24장 14절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 (땅끝까지 )에 전파되는 날로 여겨 지는지 모른다.
성경 학자들은 말일에 주님의 재림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날 일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이스라엘의 집합 : 모세, 이사야 그리고 예례미아등의 선지지들은 이스라엘의 흩어짐과(신명기 4 :27-28, 28 : 25, ) 재 집합을 예언 했다. (신명기 30 장, 이사야 2:1-5: 26-30, 11:10- 12 예레미아 16:15))
2) 땅 끝까지 복음이 전달된다 (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달됨)(마태복음 24: 14 ,마태복음 10 : 23, 로마서 11: 25-26, 스가랴 12:10 )
3)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건축된다 (.이사야서 2:1-3)
그리고 이런 일들이 일어 나는 과정에서 7년 동안의 큰 환난이 일어 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다시 집합하리라는 선지자들의 예언은 AD 70년에 로마의 침공으로 패망한 이스라엘이 열방으로 1900년 이상을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와 국가를 이룸으로써 (1948 5월 14일) 성취되었다. 또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리라는 예언은 메스컴의 발달과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지구촌 곳곳에 전달되고 있으며 특히 땅끝이라 불리워지는 유대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달되기 시작되었다. 많은 기독교 교단들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귀환을 돕기 위해 마련된 에벤에셀 긴급펀드(EEF)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로 귀환하는데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현재 이스라엘은 약 14000명 정도의 기독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있다고 하니 땅끝까지 복음이 전달돤다는 예언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더욱이 마태복음 10장 23절에는 이스라엘 모든 성읍을 다 다니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이미 성전건축을 위한 준비 위원회가 발족되어서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준비하고 성전 안에서 일할 레위인들을 DNA조사를 통해 선별하고 있다고 하니 성전 역시 건립이 될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의 성전은 어떤 성전이 될 것이며 일반 기독교는 성전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들로 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이 어떻게 성전을 건립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전을 가진 회복된 예수그리스도 교회 곧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현세에서 유일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유대인들이 이 교회의 회복된 복음을 받아 들이고 있으며 이들이 이스라엘에 모이게 되면 성전건축은 바로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성지 순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성전을 건립할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대학교 BYU 쎈타를 직접 봄으로써 실로 크고두려운날로표현되는주님의재림이보다구체적으로우리앞에다가온것임을알게되었다.
무화과나무의한비유를배우라 .그 가지가 유연해지고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줄 너희가 아나니(마태 24:32)……성지 순례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성지 순례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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