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1946) :

    인류학자. 브리감 영 대학교에서 아시아연구 및 인류학을 공부 학사. 하버드대학교 아시아학 석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동양학 전공으로 동양언어 및 문명에 관한 박사학위. 한국학에 관한 권위있는 대표적 학자 중의 한사람으로 1983부터 브리감 영 대학교 동양학과 교수. BYU 한국학 교수(1984-2004현재). 미국 아시아학회소속 한국학위원회 회장(1999-2002).
    1978-1983까지 5년간 한국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봉사. 국제한국언어 교육학회(Imternational Association of Korean Language Education)의 부회장 역임. 한국에서 선교사업(1965-1968). 1987-1990년까지 교회 부산 선교부장으로 봉사. 한국 군인 지방부장(1980-1982). BYU 아시아 와드 감독(1984-1987). 미국 유타주 프로보 프레전트 뷰 3와드 감독. 스테이크 스포츠위원회 위원장(1998-2004현재). <한국사회의 유교화과정> 등 한국학에 관한 3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한국에서 입양한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1993년부터 두 번째로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봉사. <
    기적의 역사> 공동 저자.

미 교과서 한국 관련 내용
"틀린 것보다 빈약한 게 더 문제"


한국학 대가 피터슨 교수 중등학교용 83종 분석

[중앙일보, 2004.10.06 ]

 

"한국은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지만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그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돼 있는 분량 자체가 중국.일본과는 비교도 안 되고, 미얀마나 아프리카의 소국 정도에 불과합니다."

한국학의 대가로 알려진 마크 피터슨(58) 미국 브리검영대 교수(한국학)는 "한국에 대해 잘못 기술한 내용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관련 내용을 늘리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 3일 미국 교과서 출판담당자 10여명과 함께 방한해 16일까지 머물 예정인 피터슨 교수는 이번에 굵직한 자료를 들고 왔다. 미국 내 중등학교에서 사용되는 83개 역사 교과서를 미국사.세계사.세계지리사.세계문화사 등 4개 범주로 나눠 한국 관련 내용의 양과 질을 분석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 대해 그런대로 충실하게 다뤘다고 생각하는 책에 100점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 책과 비교해 다른 책들의 수준이 어떤지를 분석했다. 그는 "분석 결과 세계사의 경우 29권 중 21권이, 미국사는 36권 중 23권이 50점 미만인 수준 미달로 평가됐으며, 세계지리사는 12권 중 11권이, 세계문화사는 6권 중 5권이 50점 미만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고 말했다.

잘못 기술된 내용도 적지 않았다. 교과서 가운데 'The World '는 한국의 수도를 광주라고 표기했으며(p.535), 'The Heritage of World Civilization'에는 한국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서아시아에서 아랍에 패배했다(p.289)는 엉뚱한 내용이 있었다. 'World Geography Today'에는 한일합병이 1895년에 됐다(p.401)고 적혀 있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웹사이트(http://kennedy.byu.edu/staff/peterson/INDEX.HTM)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피터슨 교수는 14일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회 서울선교부가 개최하는 강연회 등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우리 정부와 공동으로 미국 교과서 분석작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피터슨 교수는 이번 방한의 또 다른 목적으로 "동행한 미국 내 교과서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경복궁 등 서울의 유적지와 수원.부여.공주.경주 등지의 역사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각국 교과서 출판사 관계자들을 한국에 초청해 제대로 된 한국을 보여주고, 그들이 자료를 요청할 때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정부 측에 권고했다.

하버드대에서 아시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피터슨 교수는 한국에 15년간 체류하며 한국풀브라이트장학재단이사장(78~83년) 등을 역임했고, '유교사회의 창출' 등 한국학에 관한 세 권의 저서를 냈다. 또'미국인들과 광주사태'란 논문을 통해 당시 신군부의 만행과 미국의 방관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두 딸을 입양한 피터슨 교수는 "고1인 큰 딸은 치어리더를 하며 쾌활하게 지내고 있고, 초등학교 6년인 둘째딸도 바이올린을 배우며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글=하지윤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2004.10.06 / 2004.10.07

 

5.18 진실규명 마크 피터슨 교수

[경향신문 2004-05-11]

 

 


광주민중항쟁 25년째인 올해 봄 항쟁의 성지인 5·18묘역은 유난히 붐비었다. 광주의 정신을 이어받았다는 정당의 관계자들은 머리를 깎고 이곳으로 달려와 눈물을 흘렸으며, 때로는 삼보일보의 고행을 감내했다. 항쟁을 유혈진압한 군부세력의 후신이랄 수 있는 정당의 대표는 고개숙여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눈앞에 닥친 선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광주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그곳의 돈후(敦厚)한 인심에 푹 빠져 ‘광주사람’이 돼버린 미국인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80년 당시 ‘고향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무시무시한 폭압을 가슴아파하다가 7년 뒤인 87년 ‘미국인들과 광주사태’란 논문을 통해 신군부의 만행과 미국의 책임을 규명했다. 그 뒤에도 그는 갖가지 연구를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잊지 않았다. 주인공인 미국 브리검영대학 한국학연구소장 마크 피터슨 교수(58)를 경향신문 접견실에서 만나 25년째를 맞은 5월 광주에 대한 소회 등을 들어보았다. 한국에서 15년 이상 체류했으며, 한국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은 그와의 인터뷰는 ‘당연히’ 한국어로 진행됐다. 그는 브리검영대학과 학술교류협정을 맺고 있는 성균관대의 초청으로 방한해 강연활동중이다.

- 65년 19세때 선교사로 한국과 첫 인연 -

87년 피터슨은 서울에서 풀브라이트재단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를 주제로 하버드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이었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80년 5월 광주에서의 참사를 전해들은 바 있는 그는 ‘7년 동안 가슴에 품은 한(恨)’을 풀기 위해, 또 ‘전두환을 학문적으로 반대’하기 위해 ‘광주 리포트’를 쓰기 시작했다. 피터슨은 광주사태 당시 전남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던 린다 루이스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작성해 나갔다. 그는 “당시만 해도 이런 종류의 글을 쓴다는 것은 추방까지도 각오해야만 하는, 어느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했다”면서 “논문을 쓰는 중간중간 무참히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등 너무 고통스러워 몇번씩이나 그만두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사태와 관련한 두 명의 핵심적인 미국인인 위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과 글라이스틴 주한미국 대사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논문의 핵심은 두 가지라고 피터슨은 설명했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 찬탈을 위해 광주에서의 폭력사태를 ‘지극히 치밀하게 준비하고 과감하게 실행했다’는 것과 미국의 책임 부분이다. 피터슨은 “전두환이 아직도 광주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고개숙여 사죄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에 대한 분노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얘기라면서 “전두환은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라며 편지를 위조해 마치 자신이 미국으로부터 전적인 신뢰를 받은 것처럼 선전한 파렴치한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군 보병 20사단을 한미연합사 지휘에서 해제해 수도권 지역 임무에서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미국이 신군부와 연계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피터슨은 위컴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그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위컴은 그것(20사단의 이동)은 ‘미리 싹을 자를’ 필요가 있었던 상황을 통제하는 데 있어 한국 군부와 협조하는 수단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글라이스틴은 20사단에 대한 연합사 지휘 해제는 광주에서의 협상이 결렬될 때만 사용한다는 조건을 단 것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광주에서의 유혈참사를 막을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군부에 대한 전적인 통제력을 행사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피터슨은 “그럼에도 당시 카터 대통령이나 글라이스틴 대사 등 미국을 대표할 만한 사람들이 ‘무력사용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피터슨은 자신이 볼 때 광주사태에 대한 전두환 군부와 미국의 책임을 굳이 백분율로 따지면 90 대 10 정도가 될 것이라면서 “이 점에서 한국내 진보진영의 일반적인 시각, 또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견해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아시아학회가 개최하는 세미나 등에서 알게 된 커밍스 교수는 미국의 책임이 매우 크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입장”이라고 소개했다.

- 87년 ‘미국인들과 광주사태’ 논문 발표 -

피터슨은 자신을 비롯한 한국내의 ‘지한파’들이 광주사태 당시에도 미국이 전두환이 미국의 전적인 신뢰를 업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말했다. 고 언더우드 박사의 경우 미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당신들은 전두환이 자신의 몸에 성조기를 휘감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You can’t sit by and allow Chun to wrap himself in the American flag)’고 말했다고 한다.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는 질문에 피터슨은 “솔직히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그러나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참회할 때 치유를 위한 최소한의 실마리가 찾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라이스틴 대사의 후임으로 부임한 도널드 그레그 대사가 ‘광주사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기에 ‘광주에 가서 사과하라’고 조언을 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피터슨은 “신군부와 맥이 닿아 있는 한나라당이 광주에 사죄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7대 총선의 결과에 대해 피터슨은 “한마디로 매우 잘 된 일”이라면서 “이제부터 각 정당은 특정지역을 대표하거나 1인 카리스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전근대적 모습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정책대결로 승부하고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신봉자이며 대북 화해정책을 펼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그는 “한국 특유의 ‘대통령 식인주의(President Cannibalism)’에 의해 김전대통령이 희생당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가 명명한 ‘대통령 식인주의’란 ‘대통령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한편으로 모든 것을 대통령 책임으로 돌리면서 잡아먹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로서 피터슨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사담 후세인은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면서 “이번 대선에서 부시의 낙선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결의를 내비쳤다.

그는 이 세상을 자신들이 설정한 선과 악으로 바라보는 네오콘들은 참으로 위험한 사람들”이라면서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탄인대로 자주적이고 평화스럽게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식 ‘대통령 식인주의’ 안타까워피터슨은 유타주립대 재학중이던 65년 열아홉살의 앳된 모르몬교 선교사로서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광주 학동시장 부근에서 개척선교를 시작한 그는 장날 돼지들이 발이 묶여 군용트럭에 실려오는 구경거리를 보기도 하면서 인정 많은 광주사람들에 푹 빠져버렸다. 시장통 이웃들은 벽안의 청년선교사에게 가슴을 열고 따뜻하게 대했으며 ‘콩나물국이라도 대접하겠다’며 집으로 끌고 가기 일쑤였다. 그때 피터슨에게 비친 한국은 지금보다 물질적으로는 훨씬 가난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훨씬 풍요로웠다. 그는 “광주사태 당시 학동시장 사람들이 생각나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후 풀브라이트재단 책임자와 모르몬교 부산 선교부장 등을 지냈다.

피터슨은 하버드대학에서 동아시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따면서 한국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들을 속속 내놓았다. 특히 96년에는 ‘조선의 입양제도와 상속제도-유교계급사회의 형성에 대한 사례연구’로 해외의 우수한 한국학 연구서에 주어지는 ‘연암상’을 받기도 했다.

피터슨에게는 하나(14), 조이(10) 두 딸이 있는데 조이는 이번 아빠의 출장에 동행했다. 그는 “아내의 거듭되는 자연유산으로 한국에서 입양했다”고 말했다. 피터슨은 인터뷰 내내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옆자리를 지킨 작은 딸의 손을 잡고 “난타 관람을 하러 간다”며 신문사 옆 난타전용극장으로 향했다.

〈손동우기자 sdw@kyunghyang.com

 


[학술]
"美교과서 한국관련 기술 평균 40점"

 

 


마크 피터슨 한국학연구소장 강의

 

 

[세계일보, 2004.5.16]


 

1987년 ‘미국인들과 광주사태’란 논문을 통해 신군부의 만행과 미국의 책임을 강하게 비판했던 마크 피터슨(58·사진) 브리검영대 한국학연구소장이 최근 방한했다.

그는 지난 14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운중관 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한국이미지 콜로키움’에서 ‘미국 교과서 내의 한국관련 내용 분석’을 주제로 강연했다. 피터슨 소장은 15년간 한국에서 체류하고 다년간 미국의 역사 교과서를 분석해 온 저명한 해외 한국학자로 이번 공개 강연회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28개 출판사, 83종의 미국중등교과서의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피터슨 소장은 “미국 교과서에 나타나는 한국 관련 서술 내용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면서 “일부 역사 교과서는 한국에 대해 한국 전쟁뿐 아니라 미국내 한국 이민자나 최근의 교역 현황 등 비교적 광범위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서들을 ▲언급되는 한국 관련 서술의 빈도 ▲독립적인 섹션을 할애하는지의 여부 ▲긍정·부정의 서술 태도 ▲사실의 진위여부 등을 놓고 종합적으로 분석, 점수표를 작성해 순위를 매긴 결과 프렌티스 홀 출판사의 ‘세계 문화 교과서’가 최고점을 받았다며 “이 교과서는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해 특별항목을 두고 설명하고 있었으며 내용상 오류도 가장 적었다”고 말했다.

피터슨 소장은 “하지만 최근 경제성장으로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비교할 때, 임진왜란을 한국이 중국을 대신해 일본과 싸운 것으로 기술하는 등 시정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며 “최고의 교과서에 100점을 줄 경우, 대부분 평균 40점 정도에 그친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역사교과서의 한국 관련 오류는 대부분 단순한 관심 부족이나 정보부족에서 기인한다”며 “연구 과정 중 만난 교과서 출판인들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와 정보 협조에 대해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송민섭기자/stsong@segye.com

 


[대구]
외국 대학생들 한국을 배운다

 

 

영남대, 이달부터 한국체험 프로그램 마련

 

 

[세계일보, 2004.5.11]


 

영남대가 학생들의 국제화를 추진하기 위해 외국인 학생들을 대거 초청,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영남대는 이달부터 미국 브리검 영 대학 10명과 올드 도미니언 대학 학생 25명을 초청, 한국 배우기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11일 밝혔다.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브리검 영 대학 학생 10명은 지난 6일 대학에 도착해 다음달 10일까지, 올드 도미니언 대학 연수단 15명은 20일부터 30일까지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영남대는 이들에게 외국인 전용 기숙사를 제공, 학생들과 자연스러운 접촉 기회를 갖도록 했으며 경주와 합천 해인사, 안동 도산서원, 독립기념관 등을 방문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브리검 영 대학 한국 연수단을 이끌고 영남대에 온 마크 피터슨(한국학) 교수는 “지난 20여년간 대학에서 1000여명의 학생들에게 한국학을 가르쳐 왔는데 최근 2∼3년 동안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 이번 연수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영남대는 한국어 과정 연수생 60여명을 포함해 모두 170여명의 중국 학생과 일본 러시아 유학생 등 모두 420여명의 외국인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고 연간 400여명의 재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있다.

대구=전주식기자

/jschun@segye.com


PETERSON, Mark
(한국에서 선교사봉사: 1965-68) 

1987.7 - 1990.6
(선교부장 봉사)

BYU Professor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부산 선부장 역임


美 브리검영대 피터슨교수
“브리태니커 오류 바로잡았죠”


[동아일보   2005-08-12] 

[동아일보]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한국에 관한 내용을 추가할 때 미국 브리검영대 한국학센터 소장인 마크 피터슨(59·사진) 교수를 찾아 검증을 받는다.

한국학분야 권위자인 피터슨 교수는 그동안 한국에 관한 내용이 미국 교과서와 백과사전 등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분석하고 오류를 시정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내에서 ‘한국 파수꾼’으로도 통한다.

10일(미국 시간) 피터슨 교수의 근황이 궁금해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요즘도 세계의 주요 백과사전 5가지를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94년판의 오류 15가지를 잡아내 대부분을 바로잡은 바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한국 예술가들은 기술적인 완성도나 정확성에서 중국이나 일본 예술가들보다 떨어졌다”고 기술된 것을 그가 지적해 한국 예술가들의 독창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수정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한국은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그동안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장해 이제 외국 교과서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1996년부터 미국 교과서 분석 작업을 해온 그가 검토한 교과서는 80가지가 훨씬 넘는다. 아직까지 세계사 교과서에서 한국 부분은 매우 짧게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미국사 교과서에서 6·25전쟁, 한미 간 무역, 이민 문제 등이 언급되면서 한국이 많이 다뤄지는 편이라고 피터슨 교수는 밝혔다.

피터슨 교수는 “교과서 집필자들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은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많은 정보를 제공해 미국 교과서에 한국 부분이 많이 서술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어떤 미국 교과서는 한국에 대한 언급이 딱 한 줄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양적으로 한국 부분이 늘어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피터슨 교수는 1965년 선교활동을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돼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하버드대에서 한국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산 세월도 15년이나 되고, 두 딸도 한국에서 입양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kong@donga.com



'한국문화 전도사' 마크 피터슨 美 한국학 교수

Category: 뉴스 매일 신문, 2008년 7월 5일

 나무를 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우리는 전통의 소중함과 한국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잊곤 한다. 한발 떨어져 한국과 동양을 바라보는 파란 눈의 시선이 있다.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62) 미국 브리검영대 한국학 교수는 미국 내 한국학의 대가다. 벌써 40년이 넘게 한국을 지켜봤다. 한국에서 15년 이상 체류했고, 한국문화 전반에 깊은 조예를 자랑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논문으로 미국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달 20일 오후 고교 교사 12명으로 이뤄진 펠로우십 프로그램 차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바쁜 방문 일정 탓에 인터뷰는 경주 양동마을과 경주의 한 호텔에서 이뤄졌다. 그는 커피보다 유자차를 좋아했고 한국말을 참 잘했다. 그가 꺼내 보인 여권에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30여개가 넘게 찍힌 한국입국도장들이 빼곡했다.

◆유난스런 한국 사랑

-한국에 처음 오신 게 언제였죠?

"열아홉살이던 1965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몰몬교) 선교사로 처음 한국에 왔어요. 오기 전에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딱 두마디 배워서 왔죠. 그리고 세달 정도 지나 한국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한국말로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그 순간이 아직 기억이 나요. 한국말 배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했고…. 그동안 한국도 많이 달라졌어요. 젊은 세대들은 한미관계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보는 것 같아요. 훨씬 성숙해졌죠."

-왜 한국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결심했습니까?

"한국의 언어와 문화, 정신, 사고 방식이 너무 좋았어요. 한국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사실 길이 안 보였어요. 한국학을 공부해서는 직업을 구할 수 없을 거라고 걱정했죠. 대학 졸업 후에는 로스쿨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안 간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석사 하고 박사 하고 한걸음씩 가다 보니 문이 열렸고 어느새 한국학 전문가가 됐습니다."

-두 딸을 모두 한국에서 입양했죠?

"지금 18살, 15살인데요. 아내가 임신을 두번 했는데 다 자연 유산을 했어요. 그리고는 결혼한 지 18년이 되도록 임신이 안 됐어요. 1990년 지인의 권유로 입양을 신청했으니 18년 만에 아이를 낳은 셈이네요. 둘째 아이 입양할 때는 46세였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45세 넘으면 입양이 안 되거든요. 입양을 하려면 당시 보건사회부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데 제가 편지를 써서 담당국장님을 직접 찾아갔어요. 그런데 이분이 날 반기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대학교수다. 나이가 많아 일찍 죽어도 아이들은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다'고 말했더니 표정이 녹았어요. 설득됐다 싶었죠."

◆전생과 후생

-아직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한국 문화가 있나요?

"개 먹는 것. 제가 알기로는 유림들이 개를 안 먹었어요. 하하. 또 저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술을 전혀 안 해요. 혹자는 날 보고 술을 안 마시고 어떻게 한국 문화에 적응했냐고 하는데…. 어렵죠. 그런데 저는 술을 안 한다는 얘기를 재미있게 해요. 예를 들어 같이 관광버스를 타고 왔는데 '술 한잔 하시오' 그러면 '난 운전해야 돼요' 그래요."

-전생에 혹시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전생이 있다면 난 율곡 이이 선생의 제자였을 거예요. 율곡 선생을 대단히 존경해요. 어머니인 신사임당과 관계도 아주 특수하고 또 과거시험이 진사, 생원, 문과가 있잖아요. 각 시험에 3단계씩 모두 9번 시험을 치는데 율곡선생은 모두 장원을 했어요. 열세살 때부터. 아주 대단해."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그렇게 될 거예요. 하하하. 다시 태어나면 북한에 태어나야 돼요. 통일을 위해. 북한 사람은 불쌍해. 얼마 전에 북한에 다녀왔는데 못살고 완전히 세뇌됐고 불쌍해요. (왜 불쌍한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냐고 물었다.) 북한에 태어난다면 통일을 위해 그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자가 '잘못하면 아오지탄광으로 갈 수도 있다'고 농을 던졌다.) 아, 그럴 수 있어. 바꿉시다. 크크."

◆한국은 평화와 안정의 역사

-한국 역사와 사상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오셨는데요.

"흔히 한국 역사는 전쟁과 침략이 많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제대로 된 외부의 침략은 몽골 침략과 임진왜란밖에 없습니다. 병자호란도 인조가 항복문서까지 쓰긴 했지만 큰 침략이라 보기 힘들죠. 임진왜란을 보세요. 왜·명·조선 3개국이 참전했는데 일본과 명나라는 전쟁 이후에 왕조가 바뀌었어요. 그런데 조선은 피해 당사국인데도 무너지지 않았어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한국이 안정과 평화의 역사라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한국의 영웅은 군인이 아니라 학자입니다.(그가 주머니에서 만원권, 오천원권, 천원권 지폐를 꺼냈다. 옛 500원짜리 지폐도 나왔다.) 여기 보세요. 지폐의 인물이 다 학자잖아요. 한국의 상징은 선비예요."

-한국민의 지향점이 안정과 평화라는 말씀인가요?

"한국은 왕조의 역사도 길고 교체도 평화롭습니다. 예를 들어 가야가 무너질 때 지배층은 경주로 옮겼어요. 김유신은 가야에 뿌리를 뒀죠. 신라가 무너질 때도 신라의 지배층이 개성으로 올라갔잖아요. 지금 대한민국 인구의 55%가 김씨, 이씨, 박씨, 최씨, 정씨 5개 성인데 다 서라벌이야. 또 고려가 무너질 때 몇 사람이 죽었을까요? 답변은 2명. 최영하고 정몽주."(피터슨 교수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를 단숨에 읊었다.)

◆한국, 한국 사회

-1987년에 '미국인들과 광주사태'라는 논문을 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왜 광주민주화운동에 주목했습니까?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한국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서울에 있었어요. 당시 전남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던 린다 루어스가 현장을 목격했고, 함께 논문을 쓰자고 약속했죠. 논문이 발행된 건 1987년이지만, 실은 1984년 AAS(Assosiation for Asian Studies·아시아학회)에서 먼저 발표를 했어요. 당시만 해도 전두환 정권이 언제까지 갈지 몰랐기 때문에 아주 용기가 필요했어요. 다시는 한국에 못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지요."(피터슨 교수는 이 논문에서 "1987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신군부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된 사태였으며 미국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나라 안이 시끄럽습니다. 미국인으로서 어떻게 보세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보다는 수입 개방 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스타일이 안 좋지. 촛불시위를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미국보다 강력하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제가 미국 사람이지만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는 과학적인 증거는 부족할지언정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환영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 대통령이 다 불쌍한 존재라고 봐요."

-왜 한국 대통령이 불쌍한 존재인가요?

"한국 특유의 대통령 카니발리즘(President Cannibalism·대통령 식인주의) 때문이죠. 용서를 안 해요. 미국 정치가 좋은 모범은 아니지만 '로열 어퍼지션(Royal Opposition)'이라고 '충실한 야당'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복수하려는 야당이에요. 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반대세력이 복수하려는 거잖아요. 김대중 전 대통령 때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그렇고. 미국 사회에서는 당선되면 일단 두고 보자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꼼짝달싹 못하게 잡는 것은 너무 심해요."(대통령 식인주의는 대통령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한편,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면서 잡아먹는 것을 말한다.)

◆유교는 한국 문화의 진수

-한국 문화의 여러 유산 중에 진수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유교 사상이 한국 문화의 기둥이라고 생각해요. 유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주장을 믿지 않아요. 특히 조선 초기 유교는 가족 간의 평등한 재산분배, 부모 양계 중심, 거주지 자유, 제사는 돌아가며 지내고 족보는 남녀 함께 기록될 정도로 평등했어요. 17세기 들어서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생긴 거죠. 이런 남녀 평등의 가족 제도가 한국의 전통 가족 제도입니다."(그는 지난 3일 안동시가 주최하고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주관해 안동에서 열린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새로운 가족문화의 도전과 비전'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타자의 눈으로 본 한국의 가족문화'란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영남은 선비 문화의 본향으로 불립니다. 영남의 선비 문화가 갖는 가장 큰 가치는 무엇입니까?

"선비 문화를 고리타분하다거나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선비가 돼야 합니다. 유교 사상에 담긴 좋은 점들이 많잖아요. 하나는 교육열. 미국의 한국 유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건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에요. 또 가족과 상호 간의 믿음, 존경, 사제 관계 등 서구가 갖지 못한 좋은 점들이 있어요. 이런 문화적 자산을 잘 이용하면 21세기에 걸맞은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마크 피터슨(62)은?

미국 브리검영대 언어학 교수. 미국 내 대표적인 한국학자로 한국 문화의 전도사다. 1965년 한국을 처음 찾은 뒤 한국의 푸근한 인심과 사람에 반해 뒤늦게 한국학 공부를 시작해, 하버드대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간 한국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일했고 국제한국언어 교육학회 부회장도 지냈다. 1996년 '유교사회의 창출-조선 중기 입양제와 상속제의 변화'로 해외 한국학 연구서에 주어지는 연암상을 받기도 했다. 요즘도 그는 미국 내 대학생과 교사, 교과서 집필진을 위한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한국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피터슨과 발음이 비슷한 배도선(裵道善)이라는 한국이름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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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_pink.gif 한국 역대 선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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