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rewd, Very Shrewd

아이디어 창업의 달인 


Matthew Miller 기자

제임스 소렌슨은 기업 만들기가 취미다. 그렇게 만든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공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 소렌스 지노믹스의
CEO 제임스 소렌슨
 


제임스 소렌슨(James Levoy Sorenson ·82)은 평생 ‘다음 대박’을 구상하다 실천에 옮기곤 했다. 그는 유타주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의료장비 ·부동산 ·유전체학 ·인터넷 등으로 성공해 거부가 됐다. 그의 재산은 4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렌슨이 가장 최근 고안한 장치가 비디오폰 기기인 소렌슨 VP100이다. 이를 초고속 인터넷과 대형 TV에 연결해 사용한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필립 몬털렛 등 청각 장애인들(미국의 경우 2,800만 명)에게 큰 도움이 되는 장치다. 짜증나는 텍스트 기반 서비스가 아니라 청각 장애인들끼리 직접 교신하며 세세한 표정까지 전할 수 있다. 비장애인들과도 통화할 수 있다. 네 지역에 포진한 수화 통역사들이 가교 역을 맡기 때문이다. 몬털렛은 소렌슨 비디오 릴레이 서비스(Sorenson Video Relay Service) 덕에 “삶이 달라졌다”고 좋아했다.

그렇다고 소렌슨이 대박을 터뜨린 것은 아니다. 소렌슨 미디어는 지난해 4월 이래 비디오폰 5,000대를 설치했다. 지난해 비디오폰 서비스로 6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소렌슨 미디어 전체 매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비디오폰과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에서 비롯됐다. 소렌슨은 올해 매출이 4,500만 달러를 무난히 돌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디오폰 기술을 원격 의료 서비스에 응용할 경우 수요는 엄청날 것이다.

소렌슨은 이런 ‘도박 아닌 도박’으로 거대한 기업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현재 32개 기업과 40개를 웃도는 미국 내 특허까지 갖고 있다. 로드아일랜드주 면적의 75%에 상당하는 땅도 보유하고 있다. 제약업체 애벗 래버러터리스(Abbott Laboratories) 주식은 5,240만 주로 몇 년 전 자신의 의료장비 제조업체를 매각해 얻은 것이다. 소렌슨은 “혁신적 아이디어에 비즈니스를 접목시켜 왔다”며 “기회다 싶으면 이를 활용할 줄 아는 용기도 있다”고 자평했다.

소렌슨의 성공은 가난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그는 아이다호주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유바시티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하수도 공사장 노동자였다. 13세 소년 소렌슨은 아버지에게 2,300달러에 코카콜라 유통권을 사들이자고 졸랐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그만한 돈을 갖고 있었지만 사업 자본, 아니 요령이 부족했다. 어린 소렌슨의 학교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교사는 소렌슨이 정신 지체아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읽기 장애(難讀症)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렌슨은 어린 시절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배짱과 주변의 생각과 달리 자기가 훨씬 똑똑하다는 확신,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18세의 소렌슨은 대학을 중퇴하고 모르몬교 선교사가 돼 뉴잉글랜드로 갔다. 1946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주한 그는 업존(Upjohn)의 의료장비를 판매했다. 그는 저가 판매로 금방 유명해졌다. 소렌슨이 처음 제출한 비용 보고서에는 1주에 4.67달러를 쓴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그의 상사는 소렌슨 때문에 다른 직원들까지 힘들어지게 됐다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소렌슨은 “의사들에게 점심이나 술을 대접하며 적어도 주당 30달러는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들려줬다.

틈만 나면 땅 장사로 떼돈 벌어

소렌슨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의사들에게 점심 대신 음료수를 대접하고, 남는 돈은 가족 생계비에 보탰다. 그리고 땅도 샀다. 소렌슨은 선교사 시절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 있었다. 세일즈 업무를 오전 9시에 마치는 날도 종종 있었다. 오후에는 땅을 보러 다니며 에이커(약 1,224평)당 25달러로 조금씩 매입했다. 50년대 초반 로키산맥에 우라늄 열풍이 불었다. 당시 원자력의 미래는 매우 밝았다.

뉴욕에서 투기꾼들이 몰려와 우라늄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소렌슨은 우라늄 매장지역을 물색하다가 50달러 정도에 땅을 산 뒤 우라늄 회사의 투기꾼들에게 되팔았다. 6,000달러에 넘긴 적도 있었다. 소렌슨은 땅 값을 현금과 주식으로 받았다. 그는 주가가 배로 오르면 팔고, 그 돈으로 다시 땅을 샀다.

소렌슨은 지금도 부동산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특히 산 정상 부근 땅을 좋아한다. 오늘날 그가 보유한 6억4,000만 평 가운데에는 멋진 파크시티 스키 리조트 건너편의 미개발 지대와 유타주 중부 목장지대도 포함돼 있다. 목장지대에 풍력시설이 들어서면 땅 값은 두 배로 뛸 것이다. 소렌슨부동산의 도널드 월러스(Donald Wallace) 사장은 부동산 가치가 모두 15억 달러라고 밝혔다.

업존에서 쌓은 경험은 다른 사업에도 도움이 됐다. 57년 소렌슨은 데저럿 파머수티컬스(Deseret Pharmaceuticals)를 공동 설립했다. 데저럿은 서부의 항생제 도매업체였다. 항생제 도매에 만족하지 못한 소렌슨은 새로운 돈벌이를 궁리했다. 그는 “어느날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두껍고 날카로운 주사바늘로 여기저기 찔러 멍투성이가 된 환자를 목격했다”고 들려줬다. 소렌슨은 의사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는 주사바늘을 개발했다. 플라스틱 도관에 끼워 주사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몇 달 뒤 데저럿은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주사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소렌슨의 아이디어는 그뿐이 아니다. 일회용 수술 마스크도 그가 생각해낸 것이다. 의사들이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착안했다. 소렌슨은 “당시 의사들 모두가 모르몬교 신자였기 때문에 마스크에서 담배나 술 냄새가 나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고 전했다. 소렌슨은 유타대학의 한 미생물학 교수를 만났다. 그 결과 침 속의 미생물을 걸러내는 데 얇은 유리섬유가 가장 적합한 소재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는 코닝(Corning)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6만5,000달러짜리 접착기로 마스크를 생산했다. 얼마 되지 않아 일회용 마스크를 시간당 3,000장씩 생산해 장당 17센트에 팔았다.

소렌슨은 60년 또 한 차례 전기를 맞았다. 동업자들과 불화를 빚은 끝에 데저럿에서 손을 뗐을 때였다. 그는 4만 달러로 공장 하나를 인수해 란제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회사 이름을 리보이스(LeVoy’s)로 붙였다. 소렌슨은 패션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나 극히 폐쇄적인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점잖은 잠옷이 뜰 수 있음을 간파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디자이너를 영입했다. 그리고 ‘우아함과 수수함의 조화’를 강조한 신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세일즈 인력으로 주부들을 활용했다. 주부들은 여성 모임에서 잠옷을 선전했다. 67년 매출이 200만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리보이스는 소렌슨의 진정한 야망인 의료장비 사업을 실천으로 옮기는 출발선에 불과했다. 소렌슨 리서치(Sorenson Research)의 연구소가 탄생한 것은 란제리 공장 식당에서였다. 한 아이디어가 다른 아이디어로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당시 소렌슨은 심장에 직접 삽입할 수 있는 도관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호머 워너 박사의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워너는 전자공학과 의술을 한데 접목시키는 탁월한 인물이었다. 소렌슨과 워너는 의기투합했다. 75년 소렌슨은 컴퓨터 기반의 실시간 심장 모니터 개발로 특허를 취득했다. 그는 병원마다 돌아다니며 의사들에게 모니터를 소개했다.

70년대 후반 소렌슨 리서치는 연간 4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심각한 자금부족으로 기존 제품 판매와 신제품 개발을 병행할 수 없었다. 80년 소렌슨은 소렌슨 리서치를 애벗에 1억 달러를 받고 넘겼다. 매각대금은 주식으로 받았다. 자신의 발명품들이 애벗의 미래 수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렌슨은 그 뒤 24년 동안 애벗 주식을 하나도 팔지 않았다. 오늘날 애벗의 최대 개인 주주인 소렌슨이 갖고 있는 지분 가치는 23억 달러다.

소렌슨은 가족을 사업에 끌어들였다. 사위 개리 크로커(Gary Crocker)는 수년간 소렌슨 밑에서 일하다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크로커는 의료장비 제조업체들을 키운 뒤 되팔았다. 그 가운데 심혈관 도관 제조업체 리서치 메디컬(Research Medical)은 97년 2억3,600만 달러에 백스터 인터내셔널(Baxter International)로 매각됐다. 반창고처럼 붙이는 의약품 개발업체 세러테크(TheraTech)는 99년 3억5,000만 달러에 왓슨 파머수티컬스(Watson Pharmaceuticals)로 넘어갔다.

원격의료에 친자확인 사업까지

아들 제임스 리(James Lee ·53)는 소렌슨의 여러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 90년대 소렌슨에게 인터넷에 관심을 가지라고 자극한 사람이 그다. 그 덕에 비디오 압축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소렌슨의 압축 코드는 비디오폰뿐 아니라 애플의 멀티미디어 재생 기술인 퀵타임(QuickTime), 매크로미디어(MacroMedia)의 플래시(Flash)에도 사용되고 있다.

소렌슨 미디어는 워싱턴 DC 소재 갤러데트대학과 공동으로 수화 통역센터를 위한 학교 설립에 나섰다. 솔트레이크시티 소재 건강관리기구(HMO ·민간건강보험)인 인터마운틴 헬스 케어는 올 하반기 소렌슨의 비디오 장비로 원격 의료 서비스 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제임스 리는 내년 원격 의료 서비스가 타당성 있는 사업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소렌슨의 사업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소렌슨지노믹스(Sorenson Geno-mics)일 것이다. 소렌슨지노믹스는 광범위한 DNA 자료와 소렌슨의 기업가 자질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다. 진트리(Gene Tree)는 친자 확인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친자 확인 시장 규모는 연간 190만 달러에 이른다.

렐러티브지네틱스(Relative Genetics)는 190달러에 Y염색체 염기서열 자료를 제공한다. 이로써 인간 DNA의 26개 염색체를 확인할 수 있다. Y염색체는 가계(家系)를 분석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도 아니다. 소렌슨 분자 계보학 재단(SMGF)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DNA 샘플 4만 개와 비교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SMGF는 비영리 기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SMGF의 직원은 20명이다. 그들 가운데 반이 유전학 ·미생물학 ·컴퓨터공학 ·통계학 박사다. 이들은 세계 전역에서 채집한 샘플을 처리한다. 샘플 기증자는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올해 안식년에 들어간 브리검영대학의 유전학 교수 스콧 우드워드는 SMGF에서 한 연구를 지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SMGF는 DNA 샘플로 뭘 하려는 것일까. 소렌슨은 ‘세계 평화’를 강조한다.

그는 “인류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며 “우리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게 되면 서로를 지금과는 달리 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곤 유전학 자본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가운데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되면 정보의 금광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약업계의 경우 결과물에 대해 아낌없이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소렌슨은 돈에 별 관심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저녁이면 찬송가와 시를 쓰곤 한다. 영적 치유에 관한 책도 집필하고 있다. 93년 출간한 회고록 <더 나은 길을 찾아서>(Finding the Better Way)의 후속이다. SMGF는 그의 끊임없는 선구적 발상에서 비롯된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돈은 부산물이다. [포보스코리아, 2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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