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과 생의 전환점

B4037                                     홍병식

 

        여행의 목적지도 없이 항공권을 사러 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항공회사의 카운터에 가서 “목적지가 없습니다. 그저 항공권을 한 장 주십시오.” 라고 한다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을 받을 것입니다.

 

        저를 찾아와서 직장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어떤 직장을 찾으십니까” 하고 물어보면 “그저 아무 직장이나 좋습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또는 앞으로 나아갈 진로가 뭐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인상밖에 그로부터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럭저럭 산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온지 약 10년쯤 되었을 때이었습니다. 저는 풍요로운 생활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생활에 지장을 느끼지 않고 생활을 하면서 4 남매의 아버지로서 그럭저럭 살고 있었습니다. 출근시간이 되면 직장에 지각하지 않고 출근을 했고 최근을 하면 부랴부랴 귀가하여 저녁 식사를 한 후에 TV를 보는 소위 Couch Potato가 되었습니다. 닻이 부러진 배처럼 저는 인생항로를 가면서 표류하고 있었지만 표류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교적 좋다는 직장에 있었음으로 오히려 평탄하게 살아가는 저희들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TV에서 나오는 Si-com을 즐기고 있었는데 아내가 신중하게 말했습니다. 학위를 얻기 위해서 대학이나 대학원에 다니면 직장에서 수업료 일체를 환불해 준다는데 야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공부를 시작해 보라는 강한 건의이었습니다. 그 제안은 저에게 큰 충격적이었지만 큰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아내의 지지와 격려에 힘입어 그후 5년 동안 일하며 공부하며 자고 싶은 잠도 희생하여 드디어 만 49세에 목표를 했던 박사학위를 획득했습니다. 그후 저에게는 많은 기회와 특권이 찾아와 주었습니다. 그런 만학의 덕분으로 저는 지금까지 보람을 느끼면서 만족스럽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런 동기부여를 해준 아내가 타계한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먼저 간 아내의 은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시애틀에 살고 계시는 신호범 박사를 아십니까? 그분은 어려서 부모를 일고 거리를 헤매다가 미군을 도움으로 미군부대에서 심부름을 하고 연명을 했습니다. 도움을 준 미군 장교의 혜택으로 미국에 입양되었지만 19세가 된 그에게 진로를 개척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초등학교는 말할 나위 없고 중 고등학교를 다녀보지 못한 처지이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받아주려는 학교가 없어서 창피와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불타는 향학열을 아무도 꺾지를 못했습니다. 독학을 하여 대학에 입학을 했고 학사, 석사 학위를 거쳐 드디어는 박사학위를 유명대학교에서 받았습니다. 대학교수도 되었습니다. 후에 워싱턴 중의 하원의원에 출마하여 당선을 했고 연방 하원에 도전을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996년에는 워싱턴 주의 부지사로 입후보하여 1% 미만의 근소한 표차로 낙선을 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일어나서 주 상원 의원에 당선이 되었고 재선을 거쳐서 현재는 워싱턴 주 상원의 부의장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십니다.

 

        저에게 감명을 준 또 한 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Mary Groda라는 여자는 십대가 될 때까지 문맹이었습니다. 그녀를 시험해본 심리학자들은 그녀를 “학습장애자” 또는 “교정 불능자”로 낙인들 찍었습니다. 그녀에게 닥아오는 운명은 교화소였고 하루에 열 여섯시간 노동을 하는 혹사 노동시장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교화소를 나온 후 사생아를 둘이나 낳았고 중풍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그랬지만 그녀는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않고 남의 자녀를 칠팔 명씩 보아주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초급대학에 등록을 하여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놀라운 대가로서 그녀는 알바니과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수년 후에는 당당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Groda 박사는 굳은 결심과 강한 의지를 갖고 매진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산 표본으로 우리에게 우뚝 섰던 것입니다.

 

  제 아내의 일주기를 맞이하여 그녀가 저에게 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준 고마움이 제 마음을 채웠습니다. 외람됩니다만 제 아내가 영민하고 있는 자리에 제가족들이 함께 모여 찍은 사진을 여기에 싣습니다.  끝 [2004.9.6]

->사진은 아래쪽에 있습니다.
왼쪽 3번째가 홍병식 박사이시고
딸 사위 손자 손녀들과 부인 이정순 자매 1주기를 맞이하여
촬영한 사진입니다.
(미국의 묘는 봉분이 없다고 합니다)

 

홍박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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