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6-01-22] |
대한민국에서 기업체 홍보맨이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시고 ‘홍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처럼 ‘술 권하는 문화’가 고착된 사회에서 그게 가능이라도 할까. 오늘 아침에도 숙취로 고생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로 비춰질 것이다.
국내 최대 경매사이트 (주)옥션에서 7년째 홍보담당 임원으로 있는 배동철 이사(44)가 그 주인공. 배 이사는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도 오히려 ‘주류(酒流)’들보다 더 경쟁력 있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그는 스무살 때 종교-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를 접한 후 줄곧 ‘종교적 신념’으로 금주와 금연을 실천해 왔다) IT업계에서는 내로라하는 홍보맨으로 평가받는 그는 2004년 PR협회가 주는 마케팅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기업보다 자금력이 달려 홍보에 열악한 IT기업이 마케팅대상을 받기는 극히 예외적인 일. 그 덕분인지 그는 이 회사의 초창기 임원 가운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식적으로 술을 잘 마시는 임원이 더 ‘롱런’할 것 같지만 배이사의 경우는 그런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홍보부서는 대인 업무가 많은 부서의 속성상 비주류보다 주류들이 많다. 비주류일 경우라도 웬만한 신념을 지니지 않고서는 ‘술 안 먹기’를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술자리마다 종교적 신념이나 일신상 이유 등으로 금주를 한다고 해명하기도 성가신 일이다. 때로는 집요할 정도로 술잔을 권하는 주당들이 있는데, 이럴 경우 술잔을 받지 않고 배겨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심지어 인간적인 수모까지 줄 경우도 있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이 하나의 무기이자 ‘경쟁력’으로 꼽히는 것은 비단 한국 사회에 국한한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폭탄주 문화가 대변하듯 술을 강권하는 경향이 있어 비주류들의 설자리는 좁을 수밖에 없다.
술 안 먹어도 홍보는 좋아 그는 대학 졸업후 1989년 초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그가 지망한 부서는 해외영업직이었다. 입사를 하자 회사에서는 ‘앞으로 해외영업을 하더라도 홍보업무를 경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홍보부서로 발령을 냈다. 그에게 홍보업무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만든 자료가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 맛보는 기분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홍보맨으로 차츰 두각을 보이자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로 발령이 났다. 동기 가운데 가장 빨리 차장이 됐다. 그러다 2000년 3월 대기업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벤처기업으로의 모험을 택했다. 대기업 차장에서 벤처기업 이사로 자리를 옮기자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홍보이사가 되자 그가 접대해야 하는 술자리는 늘어만 갔다. ‘구차스럽게 변명을 하느니 차라리 술을 마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차장까지만 해도 상사들이 접대 주체로 나섰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18년간 줄곧 홍보맨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비주류 홍보맨의 원칙, 비결, 장점 참고> “저는 술자리에서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금주·금연을 한다고 먼저 솔직하게 양해를 구합니다. 문제는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취기 때문인지 제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잔을 권해요. ‘남자가 그까짓 술도 한잔 안 하느냐’며 핀잔을 줄 때도 많았죠. 그때는 정말 난감합니다. 쓰레기통에 쏟아부은 술만도 엄청날 겁니다.”
‘지조’ 지키자 선후배들이 오히려 환호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후배들이 술을 권할 때. 상사인 경우에는 양해를 구하면 되는데, 후배들은 막무가내다. 한번은 워크숍 회식자리에서 배이사를 둘러싸고 내기가 벌어졌다고 한다. 후배들이 그에게 술잔을 권하면 이를 마실지 거부할지를 두고 내기가 벌어졌던 것. 그런데 마시지 않는다는 사람보다 마신다는 쪽에 내기를 건 사람들이 많았다. 한 후배가 술잔을 가져와 ‘선배님 주욱 드십시오!’라고 했다. 식은땀이 났다. 거부하면 전체 분위기를 깰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술잔을 거부했는데도 오히려 선후배들이 더 크게 환호를 해주었어요. 저의 초지일관하는 자세를 높이 사준 거죠. 그때 후배의 강권에 못이겨 술을 마셨다면 저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했을 것이고, 또 선배·동료들도 ‘지조없는 사람’이라고 비아냥했을 것입니다.” 배이사는 인덕이 있었던지 그가 모신 사장이며 회사 동료들은 그의 ‘신념’을 인정해주고 적극 도와주었다. 어떤 후배는 술자리가 있을 때 자청해서 동행해 ‘술상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재현 전임 사장의 경우 그가 술을 못마시는 홍보맨인 줄 알고도 계속 홍보를 맡겼고 술자리에서는 잔을 주지 않는 등 배려해주었다. 그는 “회사가 저를 배려해준 데 답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는 풍토가 서서히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가 지니고 다니는 메모장엔 ‘악의 가지를 천번 잘라내는 것보다 악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게 낫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경구가 적혀있다. 그는 이 말을 늘 챙겨보며 되새기곤 한다. 상시 구조조정의 살벌한 기업풍토 속에서 자기와의 약속을 초지일관 지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소신껏 신념대로 사는 것, 그것이 어쩌면 그가 ‘비주류 홍보맨’임에도 장수하고 있는 비결이 아닐까. 〉〉 ‘비주류 홍보맨’ 의 원칙, 비결, 장점 1. 술 안 마시면 좋은 이유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한다. 2. 금주를 솔직하게 알리고 양해를 구한다. 3. 금주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는 ‘후원자’를 만든다. 4. 후원자에게는 반드시 고마움을 전한다. 5. 술자리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나 유머를 준비한다. 6. 술 대신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을 접대한다. 7. 등산이나 골프 등 함께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8. 신념을 지키는 지조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 9. 업무에 성실할 수 있어 능력발휘 기회를 빨리 잡을 수 있다. 10. 가화만사성-가족화합도 보너스로 얻는다. 〈글 최효찬·사진 김영민기자〉 -->> 기사 바로 보기
한국일보 최연진기자 원문: http://news.hankooki.com/lpage/it_tech/200711/h200711071849228459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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