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2002-04-09
[흔들리는 협상전선]

(19) 4년 끈 대우車 매각 <3>

제너럴모터스(GM)의 앨런 페리튼 아태본부장을 제쳐두고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을 말할 수는 없다.

아시아 비즈니스에서 잔뼈를 키워온 그가 있었기 때문에 대우차 인수라는 큰 그림이 가능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그는 GM 내에서 몇 안되는 지한파요 친한파에 속한다.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을 좋아한다.

사실 페리튼이 우리나라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78년 새한자동차에 임원으로 파견됐을 때가 아니라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리튼은 독실한 몰몬 교도로 19살의 나이에 선교사 신분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서울 신림동과 대구 자갈마당 인근 '달동네'에서 3년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봉사와 구호를 겸한 선교활동을 했다.

당시 가난했던 시절을 빤히 기억하는 그는 요즘도 한국내 친구들을 만나면 "한국은 정말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말하곤 한다.

페리튼도 대우차 인수협상 과정에서 크고 작은 고초를 겪었다.

한국 정부나 채권단의 강경파들과 맞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GM내 대우차 인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

"독일 오펠이나 지난 1999년 말 제휴를 맺은 이탈리아의 피아트, 미국의 각 단위 공장을 이끄는 경영진들은 대우차 인수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대우차가 되살아나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을 늘리면 자신들의 실적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지요"(GM 관계자)

이 때문에 페리튼은 지난 4년에 걸친 협상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미국 본사 호출을 당했고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이사들의 질문에 대비해 며칠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었다.

협상 책임자들이 일종의 샌드위치같은 환경에 포위되는 일은 다반사이긴 하지만 페리튼 역시 이중 삼중으로 포위된 가운데 고단한 협상에 나섰던 셈이다.

하지만 GM 입장에서도 페리튼 정도의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페리튼은 대우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구조나 정책결정 시스템에서 일반 국민정서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시사평론가 뺨칠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를 만나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실세가 누구인지, 주요 정책들의 결정 라인에 어떤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는지를 훤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에 마주앉으면 엄청난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어도 곧잘 한다.

평소 영어로 대화하지만 상대방의 영어 실력이 조금이라도 달리면 그 자리에서 기본적인 사항은 한국어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그는 거짓말을 특히나 혐오한다.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다.

화가 나고 못마땅한 것이 있어도 "I am unhappy" 정도의 표현만 한다.

이 때문에 우리 협상단은 용어나 표현방식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커피 술 담배 등 몸에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이 첨가된 음식물이나 기호품은 입에도 안댄다.

주스도 생으로만 마신다.

술 한 잔으로 시작하는 '한국식' 협상 관행에는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GM코리아 페리튼 사장 "한국은 제2의 고향" (조선일보, 1999.06.17)

 

[서울경제] 2002-08-26
[인재허브 국가를 만들자]

GM, 대우車인수 성사


앨런 패리튼 본부장 귀감으로

앨런 패리튼(56) GM 아태 신규사업본부장. 4년여 대우자동차 매각 협상과정을 통해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그는 '협상 전문가'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철저하게 일깨워준 인물이다.

1972년 GM에 몸을 담은 패리튼은 1978년 대우차 전신인 새한자동차 시절부터 GM의 파견 임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했다. 대우차 관계자는 그를 놓고 "조금 과장하자면 김우중 전 회장을 빼고 대우차를 가장 잘 안다"며 "25년 이상 대우차만을 연구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6월 대우차 입찰에서 GM이 포드에 밀려 탈락했을 때 패리튼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당시 GM의 인수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 무조건 포드로 넘어간다는 게 대세였다. 하지만 그는 인수본부를 일단 홍콩으로 옮겨놓고는 줄곧 인수에 필요한 자료를 챙겼다.

그해 9월 기적처럼 포드가 대우차 인수를 포기하자 패리튼은 인수팀을 곧장 정상 가동시켰으며 노회한 협상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대우차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과 회사의 본질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분명 다시 한번의 기회가 올 것이란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 관료는 훗날 그에 대해 "상대방(한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아는 협상가"라고 평했다.

모르몬교도인 패리튼은 19세때 선교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의 성장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한국어 구사 능력도 탁월하다. 한국의 '실세'가 누구며, 한국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안다. 시사 평론가 뺨칠 정도다.
GM도 대단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97년 쌍용차 인수와 99년 대우차가 공개입찰로 전환할 때 GM은 (한국에)배신 당했다고 생각했다. 우리였다면 패리튼은 곧바로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찾아올 기회를 대비해 흔들리지 않고 치밀하게 준비한 패리튼, 그를 끝까지 믿어준 GM. 상대를 압도하는 협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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