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2-10-28

 

[100세를 사는 사람들]

한국인의 장수비결 첫 사례 보고서 (7)
'만수상' 수상 101세 권명완 할머니

 

 


이제 백세인(百歲人)은 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화석(化石) 같은 존재가 아니다.
건강하게 1세기를 살아온 백세인들은 우리에게 장수 비결을 알려주는 보석(寶石) 같은 존재다.

한국노인과학학술재단연합회(회장 박상철)는 멋지고 건강하게 100세를 넘긴 장수인을 선정, 오는 11월 8일 제2회 ‘만수상(萬壽賞)’을 수여한다.
수상자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의 권명완(101) 할머니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의 박응섭(100) 할아버지.

두 수상자 중 먼저 권명완 할머니의 장수 비결을 들어보았다.
할머니는 가을 햇볕이 내리 쬐는 마당 한 쪽에 공처럼 웅크리고 앉아 무 채를 말리고 있었다.

일어선 키는 작았고, 허리는 활처럼 굽어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자고 손짓하며 “요샌 무릎이 아파 자꾸 넘어져”라고 했다.
앞서 걷는 모습이 조금 위태로워 보였다.
마주 앉고 보니 손과 얼굴 피부는 아직 팽팽했고, 눈에는 정기(精氣)가 남아 있었다.

문경새재의 단풍을 구경하겠노라는 당초의 예상은 새로 생긴 고속도로가 앗아 갔다.
고속도로를 지나 안동방면으로 쭉 뻗은 국도로 차를 몰다 예천군 표지판이 나오는 곳으로 빠지니 용궁역이 나왔다.

용궁역 맞은 편, 국도와 지방도 사이 삼각지 지점에 8채의 집이 있고, 그 중 가장 오래 되고 허름해 보이는 집이 백수(百壽)를 넘긴 권명완(權名完) 할머니 집이다.
동네는 한적했지만 적어도 장수 노인에 어울리는 풍수·풍광 좋은 곳은 아닌 듯 했다.
60년 가까이 할머니를 모신 며느리 최숙자(崔淑子·74)씨가 집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 감기·몸살 한 번 안 걸릴 정도로 건강했고, 지금도 건강한 편이라고 했다.

“장수비결이 뭐냐구? 그거야 뭐 어렸을 때 생 무를 많이 먹었기 때문이겠지.” 할머니는 오래 산 이유를 다소 엉뚱하게 풀었다.
권 할머니는 장수인다운 식사 습관은 있었다.
술·담배는 평생 입에도 대지 않았고, 소식(小食)했으며, 남보다 물을 두 세 배 정도 많이 마신다고 했다.

하루 세끼 식사를 거르는 법이 없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종일 일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요즘엔 틈나는 대로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염주를 굴린다.
할머니는 수년 전 혼자 된 며느리와 자매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서로 기대며 산다.
그런 가족간의 화목과 건강한 생활 태도가 높은 평가를 받아 ‘만수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사실 할머니의 지난 100년은 개인적 삶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가난한 안동 권씨 집안 7남매 중 여섯째 외동딸로 태어나 나이 스물에 상주로 시집갔다.

매서운 시집살이에 4년 만에 친정(예천군 향석)으로 돌아왔고, 나이 서른엔 남편이 삼남매를 남겨 놓고 작은 마누라를 얻어 집을 나가 버렸다.
남편과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부쳐 먹을 땅 한 평 없이 홀로 남은 할머니는 삯바느질로 어렵사리 삼남매를 키웠고, 마흔 다섯에 외아들을 장가보내 열여덟 살 새색시 최씨를 며느리로 맞았다.

최씨는 슬하에 아들 다섯, 딸 둘 칠남매를 뒀다.
아들은 젊어 양복점 일을 했으나 벌이가 시원찮아 이내 때려 치웠고, 그 뒤엔 공사판을 전전했다.
며느리 최씨도 마흔 일곱부터 쉰아홉까지 공사판을 전전하며 모래통을 졌다.
이 바람에 집안 허드렛일은 칠순을 넘긴 권 할머니가 맡아야 했다.
며느리 최씨는 젊지 않은 나이에 13년간 시멘트와 모래, 자갈을 져 나르느라 무릎과 허리를 상했다.

“우리 ‘며늘 아’가 젊어서 죽도록 고생했다”는 할머니 눈에 눈물이 비치는 듯했다.
젊은 시절 권 할머니는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는 여장부로 당당하게 살았다고 했다.
성격도 불 같아 며느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날벼락이 떨어졌다.
최씨는 “시집왔을 때 머리가 하얗게 센 시어머니가 흰 한복을 입고 앉아 꼿꼿이 절을 받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칠십이 넘었지만 아직도 시어머니가 무섭고,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야가 마음이 순해 평생 늙은이 모시면서 한번도 거역하거나 싫은 기색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60년 가까이 모진 풍파를 함께 헤쳐 온 고부(姑婦)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그토록 건강했던 할머니도 3년 전 외아들을 잃고부터 조금씩 쇠약해지고 있다.
평생 몸져 눕는 법이 없던 할머니가 올 봄엔 여러 차례 며칠씩 못 일어나기도 했다.
마음이 상했기 때문.
그러나 여름을 지나면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다.
아들 얘기가 나오자 할머니는 “그 놈이 얼굴도 이쁘고 참 얌전했는데…” “그놈에게도 글을 가르쳐야 했는데…”라며 눈가를 손으로 문질렀다.
백세 노인의 눈에 제법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최씨는 “요즘 시누이와 내가 여기저기 아파 병원에 다니는 걸 보고 할머니는 우리가 먼저 죽을까 걱정이 태산 같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사람이 순서대로 가야 하는데, 내가 너무 오래 사니…”라고 말을 흐렸다.

/예천=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

◇식단
●밥과 된장, 김, 새우젓. 가끔씩 조기와 부추 부침개
●술·담배 하지 않음

■‘남녀비’ 전문가 진단
서울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가 우리나라의 백세인을 조사한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11배쯤 더 많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학자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세계적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남녀 비는 1대2이고 85세 이상은 1대4이며 100세 이상은 1대7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남녀 인구의 편차가 다른 국가에 비해 커졌다.
특히 지역별로 1대6에서 1대30까지 남녀 인구 편차가 다양한 것은 지역적 환경과 관습적 차이가 장수에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은 여성 호르몬이나 염색체 특성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
또 일부 동물들의 경우 실제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살기도 한다.
그러나 하마·사자·바다표범 등 대부분의 동물들은 암수의 수명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미국의 모르몬교와 아랍사회의 경우같이 남녀 수명 편차가 거의 없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생물학적, 유전적 결정 요인보다 환경 요인이 남녀 수명 차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우리나라 백세인들을 만나보면, 남녀 구분 없이 모두 부지런하며 조금도 쉬지 않고 자기 일에 몰두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생활 습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생물학적 특징보다 장수에 더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몸을 직접 움직이는 일을 하지 않는 반면, 여성들은 허리가 꼬부라져도 자신의 일을 찾아서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결국 노년기 활동량의 차이가 건강을 좌우하고 장수 여부까지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여성 장수인구가 많은 것은 남성들이 2차 세계대전이나 6·25전쟁, 빈번한 사고사의 위험에 노출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통 사회에서 남성 노인들의 육체적 활동을 제한시켰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실제 강원도처럼 남성 장수인구가 많은 지역에선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들도 매일 노동을 하며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상철/서울대 의대 교수

<그래픽>60세 이상 남녀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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