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경에 대한
증거들이 쌓여가다

다니엘 시 피터슨

충실한 학문적 활동이 몰몬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폭을 지속적으로 넓혀주고 있다

   오늘날 후기성도들의 몰몬경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더욱 많은 연구로 인하여 이 책의 심오함과 그 번역자인 조셉 스미스의 탁월한 업적이 더욱더 명백히 밝혀지고 있다.

물론 학문적인 지식이 간증의 근원으로서의 영적인 증거를 대치하는 것은 아니다.  칠십인이었던 비 에이치 로버츠 장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성신의 힘이 "몰몬경의 참됨에 대한 주된 증거의 근원임에는 틀림이 없다.  기타 다른 증거들은... 부수적인 것이다.  어떠한 증거의 나열도 그것이 아무리 훌륭하게 나열되었다 해도 [성신이] 차지하는 이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며, 아무리 잘 제시된 논거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학문적 연구는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1829년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통하여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주신 계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도다. 보라, 나는 네게 와서 네 마음 가운데 거할 성령으로 네 정신과 마음에 말하리라."(교리와 성약 8:2)  1832년에 주께서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또 연구와 신앙으로써 학문을 구하라."(교리와 성약 88:118)고 말씀하셨다.  한 저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옹호할 수 없는 것은 쉽게 버려진다.  이성적 논증이 믿음을 만들어 주지는 않지만 믿음이 잘 자랄 수 있는 풍토를 형성해 준다.

주의 깊은 학문적 연구는 우리가 더 충만하게, 더 깊게, 그리고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로버츠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진리는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진리가 보다 분명하고 보다 완전하게 설명될수록 성령은, 이 사업의 참됨을 인간의 영혼에 증거할 더 훌륭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에즈라 테프트 벤슨 회장(1899-1994)이 제13대 교회 회장으로 지지되었던 1986년 4월 연차대회는 몰몬경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또 적용하는 데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교리와 성약 84편 54-58절을 인용하면서, 벤슨 대관장은 교회 회원들이 기본적인 경전을 소흘히 하여 왔으며, "주님께서는 몰몬경을 재강조할 필요가 있음을 계시하여 주셨다."고 말씀하였다.  그는 또 성도들이 "몰몬경을 더욱 잘 이해"하도록 축복하였다.

그러한 축복이 성취되어 왔으며 또 분명히 앞으로도 계속 성취돨 것이다.  감사할 만한 것은 몰몬경에 대한 관심이 그 이전에 이미 교회 회원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을 엿볼 수 있는 한 예로서, 몰몬경 연구에 대한 출판물이 1970년대에 50%가 증가했고 또 1980년대 초에는 230%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러한 증가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몰몬경과 고대 시대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주요한 점 몇 가지를 본 기사에 요약하여 보았다.
 

판과 번역, 그리고 증인들

1820년대에 짧은 기간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확실히 금판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점은 후기성도 역사에서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 사실 가운데 하나이다.  조셉 스미스 이외에도 11명의 공식 증인들과 여러 명의 비공식 증인들이 금판이 실재했음을 증거했으며,  몇몇 경우에는 그 사실을 초자연적이고 극적인 방법으로 확인했다고 증거했다.  이러한 증인들에 대한 깊은 연구는 그들의 선한 성품과 그들이 남긴 기록의 참됨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여덟 목격자의 증언

    이 몰몬경을 맞이할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의 백성들에게 전하노니 이 책의 번역자 요셉 스미스 이세가 이미 알려진 금같아 보이는 판을 우리에게 보였으며 또한 그가 번역을 끝낸 판들을 우리 손으로 친히 만져보았노라. 아울러 우리는 그 판 위에 조각된 기록을 보았으며 그 솜씨가 모두 오래전의 것같았고 심히 정교하였느니라.
    이제 말한 바와 같이 스미스가 그 판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어 우리는 친히 보고 만져 보아 이제까지 이야기한 금판을 스미스가 분명히 얻었음을 엄숙히 증언하노라.
    이제 우리는 우리의 연서로 서명하여 세상에 전하며 우리가 본 바를 증거하려 하노라.
하나님께서 이를 증거하시매 우리가 거짓말하지 아니 하노라.

크리스챤 휘트머
 제이콥 휘트머
 피터 휘트머 이세
 존 휘트머

하이람 페이지
요셉스미스 일세 하이람 스미스
사뮤엘 에이치 스미스


더구나, 선지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금판에 대한 그의 주장을 조롱하였지만, 이제 우리는 종교적  내용을 금속판(때로는 금판)에 기록한 것이 근거 있는 고대의 관습이었음을 알고 있다.  참으로 그 고대의 관습이 몰몬경의 백성이 살았던 그 시대와 지역에서도 행하여졌음이 알려졌다.  사실, 사해 근처에서 발견된 구리로 된 두루마리와 다른 자료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로서, 고대의 니파이 백성들의 판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자료들도 앞날을 위해 보존하려고 전쟁 전에 인봉되어 언덕에 묻혔다.

몰몬경은 "개정된 애급어"(몰몬서 9:32)로 기록되었다.  이 주제에 대해 연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히브리 언어를 수정된 애급 문자로 기록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최근에 우리는 여러 다른 고대 문서들도 이러한 방법으로 기록되었음을 알 게 되었다.

몰몬경의 소개 부문에는 이 책이 "하나님의 은사와 권세"로 나오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최근의 증거와 학문적 연구는 이러한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여러 증거들은 그 책을 번역하고 받아쓰는 일이 대략 63일 동안에 완료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는데, 이것은 다시 쓰거나 또는 수정도 하지 않으면서 매일(오늘날의 영문 몰몬경으로) 약 8.5쪽을 번역한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더욱이 조셉 스미스가 몰몬경을 얻기 전에 어떤 학문적 연구를 하였다거나, 많은 책을 읽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사실 번역을 할 때 그는 성경 한권 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셉 스미스는 젊은 시절을 나무를 자르고, 잡목을 태우고, 바위를 깨고, 밭을 갈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기껏해야 겨우 몇 달간의 정식 교육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이 어마니는 그가 십대 후반에도 "우리 자녀들 중 다른 아이들에 비해 책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회상하였다.

조셉 스미스의 아내 엠마는 1820년대 후반에 요셉이 "편지를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잘 쓰거나 구술할 수 없었다.  몰몬경과 같은 책을 구술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또한 "그 일의 상당 부분이 내가 있는 가운데서 행하여졌으며 또 행해지고 있는 일은 내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곳에서 이루어졌다...[번역 작업의] 어떤 때에도 요셉 스미스는 그가 지니고 있다고 내가 알고 있었던 그 금속판 외에는 읽거나 불러줄 만한 어떠한 종류의 [원고나] 책을 결코 갖고 있지 않았다."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그가 어떤 책이나 문서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게서 감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앰마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어떠한 사람도 영감을 받지 않는 한 그 원고의 기록을 읽어 줄 수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내가 서기로 일할 때 네 아버지께서는 여러 시간 동안 내게 원고를 불러 주었는데 식사를 하거나 잠시 쉰 후에 돌아와서는 번역했던 원고를 다시 보거나 읽어 달라고 하지도 않고서 중단했던 곳에서부터 곧바로 시작하시곤 했단다. 네 부친께서는 통상 이렇게 일을 하셨지.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단다. 네 아바지처럼 무지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단다."

최근 여러 해 동안 행해진 정밀한 통계 분석은 요셉 스미스나 그의 동료로 알려진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영문 몰몬경을 저술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이 연구 결과는 그 책이 분명히 여러 다른 저자들에 의해 쓰여졌음을 알려 준다.

연구 결과는 또한 그 책의 내용이 19세기초 미국 문화와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요셉 스미스가 살았던 당시 미국의 군사적 낭만주의는 거의 찾알 볼 수가 없다.  반대로 전쟁의 참상을 부정적으로 그린 사실적 묘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개다이앤톤 도적단의 이야기에서 장기간의 게릴라전에 대한 묘사를 읽을 수 있는데, 이 게릴라전은 일 세기 후인 20세기에 되어서야 군사 전략가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예루살렘에서 신세계로

몰몬경의 내용은 고대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조화된다. 연구 결과가 축적됨에 따라 바벨론에 속박되기 직전의 예루살렘에 관한 초기 기사는 그 신뢰성을 더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몰몬경 이외의 책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리하이의 아내의 이름인 새라이아라는 이름이 애급에서 나온 고대 유대 문서에 등장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성경적인 이름인 니파이라는 이름도 그런 이름을 가진 몰몬경의 첫 번째 등장인물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에 들어맞고 있다.  니파이에게 레이밴을 죽이게 하시고 주님께서 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는데 주님께서 니파이에게 하신 지시가 이제는 니파이 시대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지시로 볼 수가 있게 되었다.

니파이의 시현에 나오는 형상들도 고대 근동 지방의 상징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요셉 스미스가 이러한 것들을 잘 알고 있었을 리 없다.  더욱이 그 예측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일반적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적용되고 있는 니파이일서 13장 12절의 다음 구절을 생각해 보자. "또 내가 보니 한 사람이 이방인들 가운데 섰는데 큰 물로 인하여 나의 형제들의 자손에게서 떨어져 나와 섰더라, 내가 보니 하나님의 영이 저에게 임하심에 저 큰 물을 가로질러 약속의 땅에 있는 내 형제들의 자손들에게로 나아가니라."

많은 사람들이 콜럼버스를 탐험가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출판된 콜럼버스가 지은 예언의 책에서 우리는 몰몬경의 서술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성령으로 인도되었으며 또 기독교 신앙을 열렬히 전파하고 싶어하였을 뿐만아니라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기를 열망하였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구절에는 "다른 양"을 언급하고 있는 요한복음 10장 16절과 "바다 섬들"에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사야서의 구절들이 있다.  이것들은 바로 몰몬경에 등장하는 백성들을 가리키는 표현들인 것이다.

1952년에 발표된 논문 "사막의 리하이"에서 휴 니블리 박사는 리하이의 예루살렘으로부터의 육로 여행이 아라비아 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가정을 제기하였다.  그 이후로, 후기성도 학자들과 탐사자들은 그 지역에 대한 실제 답사와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그 여행 경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 명확히 해 주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몰몬경의 지명일 가능성이 있는 장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신세계에 이르는 리하이의 광야 체류 기사에는 아라비아의 많은 지형적 조건들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의 어떤 학자도, 또한 조셉 스미스 그때는 그것에 대해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신세계에 이르는 리하이의 대서사시적인 여행은 그의 후손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져, 그들은 그 여행을 과거에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의 속박에서 구원하여 내었던 것과 매우 흡사하게 하나님의 기적적인 권세가 그들에게 나타난 증거로 생각하였다.  사실 섬세하게 읽고 살펴보면 리하이의 여행을 묘사하고 또 기억하는데 사용된 표현들이 출애급에 관한 성경의 기사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에 관한 문학적 구성은 대단히 기교적이며 또 확실히 근동 지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

HEBREWS were in Ancient America - SOLID Evidence  

 신세계 지역에서의 구세계 문화

지극히 작은 부분에서도, 몰몬경의 뿌리가 고대 근동 지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앨마서 11장 3-9절에 묘사되어 있는 환전 체계는 고대 바빌롬의 경제 법령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젬나라이하의 사형(니파이삼서 4:28 참조) 이후에 그가 달렸던 나무는, 고대 유대 율법의 요구대로, 의식에 따라서 베어져 쓰러졌다.  앨마서 46장 21-22절에 나오는 니파이 병사들에 의해 행해진 충성의 서약은 고대 이스라엘 전사와 힛타이트 전사 사이에서 행해진 군사적 서약과 그 형태 면에서 거의 동일하다.  그리고 앨마서 30장 49절에서 코리오허에게 내려진 벙어리의 저주는 고대의 여러 경우와 놀랄 만큼 유사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모사이야서 2-5장에 있는 모사이야 왕의 그 유명한 연설은 현재의 영문 몰몬경에서 약 12쪽에 이르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영어로 거의 5,000 단어에 이르고 또 교리적 내용이 풍부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요셉 스미스는 하루가 조금 더 걸리는 시간 동안에 구술하였다.  최근의 연구는 이 설교가 고대 협약 및 성약 형태 그리고 초기 근동 지방의 즉위식 축제뿐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의 초막절 및 속죄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왕이 대 위에 올라서서 행한 (모사이야서 2:7 참조) 그 연설의 외형적 면조차도 그러한 경우에 행하는 의식에 들어맞고 있다.  그러나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성경 또는 그가 접할 수 있었던 다른 어떤 책에서도 이러한 것을 배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사이야(Moshia)라는 고대 히브리 발이, 하나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은, 억압에 대항하는 정의의 투사를 나타내먀, 그 사명은 선택된 백성을 억압에서 해방시키되, 특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 것임을 요셉 스미스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용어는 흠정역 성경의 영문판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폭력적인 해방은 모사이야의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몰몬경에서 앨마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의 등장은 많은 논쟁을 이야기 해왔다. 비판자들은 앨마가 여성의 이름이며 또 히브리어라기 보다는 라틴어라고 지적하여 왔다. 그들의 주장이 옳기는 하다.  만일 조셉 스미스가 19세기 초반에 앨마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더라면, 그도 그것을 여성의 이름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발견된 문서는 앨마가 셈어로는 몰몬경에 나타난 것과 같이 용감한 남자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앨마서 7장 10절에는 예수가 "우리 선조의 땅 예루살렘에서...마리아에게서 나시리라"고 예언되어 있다.  과연 이 구절은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셨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루어진 발견을 통하여 베들레헴이 "예루살렘 땅"이 될 수 있으며 또 고대에는 베들레헴이 "예루살렘 땅"에 있는 한 마을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이제는 명백하여졌다.

예를 들어 최근에 공개된 사해 두루마리 중에서 예레미야 시대 (따라서 리하이의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에 따르면 그 시대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땅에서 포로로 끌려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표현이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요셉 스미스는 이러한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몰몬경 기록의 고대성을 나타내 주는 또 다른 강력한 증거는 최근 몰몬경에서 발견된 대차 대구법인데 이것은 고대의  특징적인 문학 구조 또는 표현 기술이다. 이 표현 구조는 병렬어구를 사용하는 수사학적인 방법으로 성경 학자들이 간과하고 있었으며 조셉 스미스가 죽고 난 몇 십년 후에야 발견되었다. 현재 이와 같은 문학 구조는 콜럽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시대의 특징으로 확인되고 있다. 몰몬경에 나오는 대차 대구법의 몇 가지 예는 영어에서보다는 히브리어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며, 이는 몰몬경의 기원 언어에 대한 중요하고도 주목할 만한 단서이다.

그러한 많은 단서가 몰몬경의 지명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어숀은 앤타이-니파이-리하이 백성들에게 "상속의 땅"(앨마서 27:22) 으로 주어진 장소를 나타내고 있다. 히브리어에서 여어숀은  "상속의 장소"를 의미한다. 조셉 스미스는 1820년대 후반에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야곱서 5장에 있는 감람나무의 비유는 미국의 북동부에서 성장한 요셉 스미스가 경험하지 못한 올비 재배에 관한 명확한 지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세부적인 사항에서도 올리브 재배에 관하여 우리가 고대 문서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과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니파이삼서 8장에서 나오는 커다란 멸망에 관한 기사는 지형적인 대변동에 관한 역사적 보고와 현대과학자들이 알아낸 사실 사이의 주목할  만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요셉 스미스는 결코 화산을 보지 못했으며, 큰 지진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그 주제에 관한 전문 서적을 읽은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몰몬경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중앙 아메리카 지역, 멕시코 남쪽과 과테말라는 화산과 지진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존 엘 소렌슨과 다른 사람들이 행한 각고의 연구는 그 지역이 몰몬경에 들어 있는 복잡한 지형적 자료와 일치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 연구는 우리가 고대 중앙 아메리카의 생활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알게 되는 것과 몰몬경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상관성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요 약

후기성도로서 우리는 몰몬경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몰몬경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그것이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한 젊은이에 의해 출현했다는 것이 세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다. 그러나 그것에 담긴 역사적 서술은 진지하고 또 실제적이다. 그 내용은 풍성하고, 심오하며, 아주 세밀하다. 그리고 아주 빠른 속도로 구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이 뛰어나며 또 매우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몰몬경에 신경쓰지 않기로 한 사람들은 그 진실성을 뒷받침해 주는 이 많은 증거들을 무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몰몬경이 참되다는 것을 결코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밝혀진 증거들은 그 책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정확하다는 것과 우리가 깊이 연구하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개인적으로 기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것을 강하게 말해 주고 있다.  수많은 시간 동안의 연구로 현재와 같은 몰몬경 연구가 그 꽃을 피웠으며 이것은 후기성도들의 생활에 축복을 가져다 주고 있다. 그 연구 결과들이 소홀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현대의 많은 증거들이, 몰몬경이 참되다는 성신의 강력한 증거를 뒷받침하여 준다는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조셉 스미스는 스스로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예언자였다. 그리고 그는 하겠다고 말했던 일을 행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회복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였다. 이와 함께 몰몬경과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세상의 거룩한 구세주가 되시며, 또한 언젠가는 경전에서 말한 그대로 오실 것임을 재차 확인하여 주고 있다.

영어로 된 참고 문헌을 다음 주소에서 얻을 수 있다. Liahona, Floor 24, 50 East North Temple Street, Salt Lake City. UT 84150-3223, USA.

                                                                             (리아호나, 2000.9)

patrn04b.gif 몰몬경, 예맨의 지역과 연관 -  고고학적 발견
     patrn04b.gif 몰몬경
     patrn04b.gif 
몰몬경(금판)의 구성 
     patrn04b.gif 
몰몬경에 대한 증거들이 쌓여가다
     
patrn04b.gif 경전에 다른 경전을 추가함 
     patrn04b.gif 
몰몬경의 도구들 (거의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는)
     patrn04b.gif 
몰몬경을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의
     patrn04b.gif 
몰몬경의 목적
     patrn04b.gif 
몰몬경의 세민족
     patrn04b.gif 
몰몬경 소개
     patrn04b.gif 
몰몬경이란 무엇인가?
     patrn04b.gif 
몰몬경의 책과 저자,
     patrn04b.gif 
몰몬경의 출현
     patrn04b.gif
몰몬경 출현의 예언,
     patrn04b.gif 
몰몬경에 대한 공격
     patrn04b.gif
 몰몬경 판의 목격자들
     patrn04b.gif 
몰몬경, 예맨의 지역과 연관 -  고고학적 발견

    -->>>에스겔의 막대기

 


         All Contents Copyright by 1999-2008
For questions and comments, send e-mail to
pcway@hanafos.com
http://www.ldskorea.net
TEL: 010-4236-9900 / 070-7620-9900 / 031-726-9900 / FAX: 031-726-9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