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부모는 자녀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
복음의 원리와 교리를 가르치고(교리와 성약 68:25)
자녀가 만 8세가 되면 침례와 안수를 받게 해야 한다.(교리와 성약 68:27)
부모는 자녀가 기도할 것과 주 앞에서 올바르게 생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교리와 성약 68:28)

모든 자녀는 장성할때까지 부모에게 양육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교리와 성약 83:4) 


부모(父母, PARENTS)


아버지와 어머니.
하나님의 성전에서 결혼하여 바르게 인봉된 합당한 남편과 아내는 영원까지 부모로서 그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자녀들아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6:1~3( 3:20).
  • 아담과 이브는 우리의 첫 조상이었음, 니전 5:11.
  • 저주가 너희 부모의 머리 위에 있을 수 있음, 니후 4:6.
  • 부모들을 가르치되 그들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고, 모로 8:10.
  • 부모는 그 자녀들에게 복음을 가르치라는 명을 받았음, 교성 68:25.
  • 모든 자녀는 자기 부모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느니라, 교성 83:4.
  • 부모의 죄가 자녀의 머리에 응답될 수 없나니, 모세 6:54.


제일장단 메시지


버지, 어머니, 결혼

제임즈 이 파우스트 회장
제일회장단 제 2보좌

 

   최근 우리 사회는 암에 걸린 것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으며,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족들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바로 가정의 붕괴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제 말씀에 어느 누구도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여성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되는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믿습니다. 자녀들의 생애에서 어머니가 미치는 영향력이란 측량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대개가 어머니인 편부모들은 특히 영웅적인 헌신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아내와 자녀들을 학대하는 남편과 아버지가 너무 많으며 이들로부터 아내와 자녀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사회 문제 연구 보고서에서는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자녀의 생애에서 자상한 아버지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가정과 가족은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사회 문제 연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나 비행의 상당 부분은 아버지가 자녀들을 포기한 가정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동 빈곤, 범죄, 마약 복용 및 가족 붕괴의 원인은 남자로서의 보살핌을 주어야 하는 아버지가 책임을 소홀히 한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사회에서의 공통점일 것입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아버지라는 위치가 가족의 선택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영적인 도움과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제가 이러한 말씀을 주저하지 않고 하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아내는 남편이 죽기까지는 남편에게 부양을 요구할 권리가 있나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러한 의무가 남편의 몫임을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또 “모든 자녀는 장성할 때까지는 양친에게 양육을 요구할 권리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뿐 아니라 자녀의 영적인 복지도 “선조의 신앙과 성약으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어린 자녀들에 관해 주님은 “아비의 뜻에 따라 더욱 큰 일을 요구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완하는 역할
아버지와 어머니 가운데 누가 더 중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신생아나 유아에게 있어 어머니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자녀가 성장해 갈수록 아버지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자녀의 성장기에는 부모가 모두 필요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들을 위해 하는 일을 보면 본질적으로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준비하지만 그 방법은 서로 다릅니다. 어머니는 주로 자녀들이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도록(현세나 내세 모두) 준비시키는 역할을 맡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가족의 울타리 바깥의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분입니다.

어느 전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버지는 자녀가 자존심을 갖게 하는 데 특별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버지는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자녀들이 도덕적인 절제와 한계를 배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녀들의 성의 역할 확립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버지로서 관여하게 되면 자녀들은 아들이든지 딸이든지 모두 다 성에 대한 인식이나 인격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가족 생활에 적극적일 때 아들은 남성다움을, 그리고 딸은 여성다움을 더 잘 표출하게 된다.”

부부간의 관계가 어떻든 부모는 자녀들의 생활에서 자녀 개개인의 차이점을 존중하고 서로에게 의로운 영향을 미치도록 격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또다른 훌륭한 피조물인 남성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법이 허용하는 모든 권리와 특권을 여성에게 줄 수는 없겠습니까? 1872년에 이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성의 지위는 오늘날에도 한 가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 및 정치적인 지위는 인정 받아 마땅합니다. 여성은 남성이 부여했으리라고 생각되는 변덕이나 공상이나 정의 외에는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대신 비난하거나 조롱해 버리는데, 이것은 곧 자기가 논박할 수 없는 올바른 원리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정도를 넘어서, 여성을 남성의 적대자로 분류하여 남성과는 정반대인 별개의 존재로 간주하고, 여성이 철저하게 독립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극단적인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들이 보여 주는 더욱 비난할 만한 형태를 따르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피해야 하며, 여성들에게 따르게 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개선하도록 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두 가지는 전형적인 극단론으로서, 그 양자 사이가 곧 ‘중용’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가운데 누가
더 중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신생아나
유아에게 있어 어머니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자녀가 성장해
갈수록 아버지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게 마련입니다.



신권의 활용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인 가정을 위해 중요한 권능을 세우셨다는 우리의 믿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권능을 우리는 신권이라고 부릅니다. 신권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축복하기 위해 그것을 행사하기에 합당한 사람이 갖고 있습니다. 신권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며, 하나님이 그분의 종들의 손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교회 내에서 이 신권의 권능은 가정 복음 교사나 정원회 회장, 감독이나 지부장, 혹은 가장이나 하나님의 왕국의 일을 집행할 책임이 있는 기타 모든 의로운 사람들을 통해 모든 회원들을 축복하는 데 사용됩니다. 신권은 의로운 힘과 영향력이며, 소년들은 이 신권으로 청소년기뿐 아니라 전생애를 통해 순결을 존중하고, 정직하고 근면하며, 여성의 미덕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신권은 절제의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소녀들은 신권의 영향력과 축복의 권세를 통하여 소망들 가운데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신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그분께서 보여 주신 부모로서의 모범을 닮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또 자신의 자녀들을 끊임없이 염려하고 돌본다는 것입니다. 신권을 소유한 사람은 자녀들의 어머니인 아내를 영원히 사랑하고 절대적으로 정절을 지킴으로써 신권을 영예롭게 보호해야 합니다. 또 신권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자녀와 그 자녀의 자녀까지도 영원토록 돌보고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반역한 아들에 대한 다윗의 탄식은 경전에서 가장 감동적인 내용 중 하나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저는 이 교회의 남편과 가장이신 여러분에게 부디 여러분의 아내가 여러분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라고 여길 만큼의 그런 사람이 되시기를 권고합니다. 이 교회의 자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남편을 인내하고 사랑하며 이해하시기를 권고합니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결혼이 자신의 삶에서 최우선이 되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배우자 어느 한 쪽이 상대방에게 “나는 당신이 필요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행복한 결혼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을 파괴해 버리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구세주께서 다음과 같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시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한 마음이 됨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는 것보다 마음과 정신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은 “고마워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라고 진지하게 하는 말에서 나타납니다. 그러한 내적인 조화는 원숙한 결혼 관계의 중요한 요소인 용서와 잊어버리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후에는 반쯤 감으라고 혹자는 말하지 않았습니까. 참된 사랑은 결혼 생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곧 매일 다시 쌓아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혼한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거부하면서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보는 앞에서 배우자의 신성한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곧 딸의 아름다움과 아들의 남성다움이 싹트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항상 얼마간의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는 일부 결혼이 실패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계신 분들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어떤 이혼이든 그 자체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약을 깨뜨리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결혼식에서 남자와 여자가 맺는 약속은 어떤 것이든 준엄한 성약과 같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로 맺어지는 가족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조직입니다. 그것은 지리나 문화가 아무리 다르더라도 지속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결혼이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이루는 것은 도덕적인 의무입니다. 성전에서 집행되는 결혼은 영원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성약 가운데서도 가장 성스러운 성약이 됩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주신 인봉의 권세가 주어졌고 하나님은 약속의 당사자가 되십니다.

평생 동안 인간의 문제를 다루면서 저는 무엇이 성약을 깨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사실 저는 “정당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지혜도 권능도 갖고 있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오로지 이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결혼 당사자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성약들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따르게 되는 일련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정당한 이유”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오래되고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는 관계처럼 아주 심각한 것이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동시에 저는 성스러운 결혼 성약을 깨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강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그저 “정신적인 갈등” 때문이라거나 “성격 차이”, “성장 환경이 달라서” 혹은 “사랑이 식어서”라는 따위의 것들은 결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은 신성한 권고를 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가장 효과적인 치유
저는 붕괴되어 가고 있는 가족 생활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교회 회원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남자나 여자나 자녀 모두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성한 역할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의로움으로 인해 교회 회원간에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촉진될 것입니다. 말라기가 언급했듯이 엘리야에 의해 회복된 위대한 인봉의 열쇠는 이런 방법으로 “선조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며 자녀의 마음을 그 선조에게 돌이키게” 하는 데 적용될 것입니다. 말라기는 그렇지 않을 때에는 “온 땅이 저주로 얻어 맞으리라”고 했습니다.

조셉 필딩 스미스(1876~1972) 대관장은 엘리야의 열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엘리야에게 부여된 이 인봉의 권세는 현세와 영원을 위하여 남편과 아내를 묶어 주고 자녀를 부모에게 묶어 주는 권세입니다. 그것은 모든 복음의 의식에 존재하는 결봉의 권세인 것입니다. … 와서 그 권세를 회복하여 혼란과 무질서의 저주가 하나님의 왕국에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엘리야의 사명이었습니다.” 혼란과 무질서 모두 사회에서는 너무나 흔하지만, 그러한 것들로 우리의 가정이 파괴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엘리야에 의해 부여된 이 권세를 성스러운 장소에서 집행되는 공식적인 의식과 연관된 것쯤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들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적용될 때에만 힘이 있고 생산적인 것이 됩니다. 말라기는 엘리야의 권세가 아비와 자녀의 마음을 서로에게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마음이란 곧 감정이 자리를 잡는 중심이며 계시를 받아들이는 중심입니다. 이러한 인봉의 권세는 가족 관계나 좋은 환경에서 잘 개발된 성품과 덕성, 또는 사랑에 바탕을 둔 봉사에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것들은 가족을 함께 묶어 주는 끈이며, 신권을 통해 촉진됩니다. 감지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신권의 교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처럼 [우리의] 영육을 적실”것입니다.

저는 남편과 아버지가 존중하고, 아내와 자녀들이 경외하는 신권의 축복을 통해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암을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음을 간증드립니다. 저는 아버지 되시는 여러분이 신권을 영화롭게 하고 이 성스러운 영향력으로 가족을 축복하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보상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복음 교사들을 위한 제언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후에, 여러분이 가르치는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이 메시지를 나눈다.

  1. “가족: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에서 “남편과 아내는 배우자와 자녀들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로 시작되는 단락을 읽는다.(성도의 벗, 1998년 10월호, 24쪽) 어떻게 가족 각자와 하나님의 각 자녀가 이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지 묻는다.

  2. 파우스트 부대관장의 메시지에 있는 “한 마음이 됨”으로 된 제목에서 세 번째 단락을 읽는다. 가족에게 성전에서 어떤 성약을 누구와 함께 맺었는지 묻는다. 영원한 결혼 성약의 성스러운 본질을 강조한다.

  3. 파우스트 부대관장의 “붕괴되어 가고 있는 가족 생활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교회 회원들이 갖고 있다”고 하는 말씀을 읽는다. 그런 다음 파우스트 부대관장의 “가장 효과적인 치유”라는 제목 아래 있는 첫 번째 단락을 읽는다.
 


 [자료원: 리아호나, 2004.8]
 

dia_pink.gif대관장단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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