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CANAAN), 가나안인(CANAANITE)




이스라엘은 430년간의 애굽의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아빕월 10일에 애굽의 통치를 벗어났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 이스라엘 회중에게 재정비를 시키고 이 날을 기념하여 유월절로 지켰다. 이스라엘 인구의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동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때에 나온 백성의 수는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으로 언급되고 있다. 최소 2백만 명은 넘었을 거라 추측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이라서 이 곳을 지나려면 불가피하게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보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한다.

성서나 역사문서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팔레스타인에 중심을 둔 지역.

이스라엘 민족이 정착하기 전의 원주민들을 가나안족이라 불렀다. 가나안과 가나안족이라는 이름은 성서를 비롯해 설형문자로 된 BC 15세기경의 이집트·페니키아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나안'은 때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전체를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키거나 요르단 강 서편 땅 전체, 또는 아크레(Akko) 북쪽으로부터 해안을 따라 있는 좁고 긴 땅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BC 2000년대 후반이 시작될 무렵, 또는 그 이전에 팔레스타인, 즉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차지했는데, 성서에서는 가나안을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약속의 땅'과 동일시하여 이 점령을 정당화한다.

가나안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진한 자줏빛 염료를 말하는 '붉은 자줏빛'을 의미하거나 또는 그 색으로 염색된 모직을 뜻하는 고대 셈어에서 유래한 듯하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는 가나안 족속이 노아의 손자이자 함의 아들인 가나안의 후손으로 설명되어 있다(→ 페니키아).

가나안 해안지방의 문명은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마을이나 부락을 이루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BC 7000경~4000경)에 이르러서부터였다. 그다음의 동석기시대(BC 4000경~3000경)에 이 지역의 특징은 도자기와 청동을 사용했고, 진흙으로 담을 쌓았으며 다듬지 않은 돌로 집을 지었다는 데 있다.

초기 청동기시대(BC 3000경~2000경)에 금속이 도입되자 문화적인 혁명이 일어났고, 그결과 채색된 도자기는 쇠퇴하고 조각과 야금술이 발달했다. 이 시기에 셈족이 처음 나타났으며, 중기 청동기시대(BC 2000경~1550경)에 이르러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북동쪽에서 가나안으로 침투한 셈족 계통의 아모리족은 이 지역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그밖에 이집트인과 힉소스족, 그리고 팔레스타인 북쪽에서 이주해온 듯한 일단의 아시아인들이 침입해왔다. 후르리족(〈구약성서〉에서는 호리족)도 북쪽에서 가나안에 들어왔다.

후기 청동기시대(BC 1550경~1200경)에는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족이 도전해오기도 했지만 주로 이집트가 통치했다. 그 시대는 하피루 또는 아피루라는 약탈자들의 침략이 두드러졌다.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인종들로 이루어진 이들을 본래의 히브리인들로 생각하고 있다. 후대의 이스라엘은 이 하피루 가운데 한 분파이거나 이들의 연합체였다. 그러나 BC 13세기말에 가나안 남쪽지역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는 약화되었고 히타이트족은 북쪽에서 침입한 적의 공격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

BC 1250년경으로 여겨지는 후기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바뀌는 무렵,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고지대와 남쪽지방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세기에 가나안은 크레타에서 온 듯한 필리스틴(블레셋)의 침입을 받았다. 필리스틴은 결국 가나안 남부 연안에 5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연합체를 결성했다. 다윗 왕의 지도 아래(BC 10세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필리스틴을 물리치고 가나안 원주민들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뒤로 가나안은 실제 이스라엘 땅이 되었다.

가나안은 여러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었으며 기록된 역사를 볼 때 가나안의 예술과 문학에는 이집트·미케네·크레타·후르리·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시리아 북부 해안에 있는 고대 우가리트 지역인 라스 샴라에서 발견된 일련의 점토판으로부터 가나안 종교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가나안의 주된 신은 엘이었으나 비와 풍요는 바알 또는 하다드 신이 관장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다른 중요한 신들로는 재앙과 지옥을 주관하는 레셰프, 기술의 신 코타르, 엘의 아내 아세라, 풍요를 주관하는 여신 아스타르테 등이 있었다.

가나안 사람들의 언어는 고대 히브리어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나안족은 알파벳을 사용한 최초의 민족이었다. 고고학자들은 후기 청동기시대 지층에서 많은 학자들이 페니키아어·그리스어·라틴어 알파벳의 모어(母言)로 인정하고 있는 문자의 원형을 발견했다. 또한 호기심을 끄는 설형문자 알파벳이 라스 샴라에서 사용되었음도 발견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혁신과 함께 전통적인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가 일상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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