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들어온 宗敎들

유엔軍參戰과 함께 傳敎
聖職者부족 敎勢는 미미
모르몬敎 信徒6萬명으로 가장활발

            동아일보 1982년 6월 18일 (금)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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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동란은 민족비극의 표상이지만 문화사적으로 보면 외래문화, 특히 美國문화가 급속히 밀려들어오게 된 계기가 됐다. 특히 16개국 군대의 참전과 함께 우리에겐 낯선 종교가 국내에 정착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슬람'
'모르몬' '루터'교가 6·25동란과 함께 참전한 '유엔'군에 의해 한국에 처음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이미 들어와 미미한 활동을 보이던 한국正敎會'바하이'敎들은 6·25때 참전했던 와국군들의 전교로 뿌리를 내린 종교들이다.

이들 중엔 선교에 힘쓴 '모르몬'교의 경우처럼 6만여명의 교세를 가진 것도 있으나 1천명이 채안되는 한국정교회 같은 곳도 있다.

먼저 3백여명의 선교사를 파견해 왕성한 선교활동을 해온 '모르몬'교(末日聖徒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는 신자 6만 3천명에 교직자가 129명으로 6·25와 함께 시작된 종교 중 가장 큰 규모다. 1951년 金湖稙박사가 미국에서 처음 침례를 받고 귀국, 釜山에서 美軍들과 집회를 가짐으로써 한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金박사가 오기전에는 군목으로 6·25동란에 참전했던 '스펜스 팔머'목사가 미군들과 함께 예배를 봤다는 기록이 있다.

터키軍牧이 소개  

'모르몬'교는 '스테이크'라는 독특한 교구제도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10개 이상의 '와드'로 조직돼 있고 국내에 있는 1백30개의 '와드'에는 각각 신도가 약 3백∼5백명씩 모이고 있다.
'모르몬'교에서 공보관계 일을 보고 있는 金鎔一씨는 '모르몬'교는 1820년 14세의 소년 '죠셉 스미드'가 계시를 받고 10년 후 '뉴요크'에서 교회를 창립했으며 성서이외에 '모르몬'경을 중심으로 13개 조항을 신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세가 2만3천명 정도인 '이슬람'과 '바하이'교는 다같이 中東쪽에서 생성된 종교인데 '이슬람'은 1955년 駐韓 '터키' 육군부대에 의해 전래됐고 '바하이'교는 1928년 최초로 서울지방 精神會가 구성됐었으나 본격적인 활동은 51년 참전했던 美軍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국 '이슬람'교 초대회장을 지낸 徐正吉씨는 '터키'육군 여단의 '즈벨코우치'군목(현 '이스탄불' 지역에서 '이맘'으로 일하고 있음)을 통해 '이슬람'敎가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작고한 金진규씨와 자신이 초기신자라고 말했다. 「코란」을 경전으로 「알라」神을 믿고 메카를 향해 경배해야 하는 등 독특한 신앙양식을 갖고 있다.

軍牧들이 宣敎건의

「바하이」교는「이란」의「바하올라」가 창시한 종교로 1964년 한국「바하이」전국정신회가 구성되면서 활발한 교세 확장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은 단 한분이며「바하올라」를 그가 보낸 使者로 믿고 一夫一妻制의 엄수 등 19개 신조를 교리로 하고 있다. 총본부는「이스라엘」의「하이파」市에 萬國正義院이 있고 국내에는 전국정신회와 지방정신회(1백17개)가 있으며 경전은「키타에 악다스」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루터」교는 1950년 6·25동란 중 참전했던 군목들이 한국선교를 교회본부에 건의함으로써 한국선교가 태동되기 시작했다. 우선「루터란 아워」란 선교방송요즘도 CBS MBC 극동방송을 이용해 방송 중)을 이용해 선교를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교세가 5천명에 지나지 않는 것은 초교파적인 방송선교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루터」교 교리 등은 일반적인 기독교와 거의 비슷하나「루터」교 小敎理문답서가 있고「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기념행사를 매년 한번씩 10월 중 여는게 특색이다.

希軍이 中興시켜

끝으로 한국정교회는 1897년「러시아」공관에 임시성당을 설치했을 정도로 오래됐지만 50년 6·25동란때 金義漢신부가 납북돼 활동이 중단 됐다가 53년 주한희랍군에 의해 희랍정교회관구 소속으로 복구됐을 정도로 6·25동란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현재의 '소티리오스 트람바스'대신부도 희랍인이며 희랍교회의 도움을 받고 있다. 서울의 유일한 성당인 阿峴洞성당은 68년 貞洞에서 이사 왔고  羅'다니엘'신부가 유일한 한국인 신부로 일하고 있다. 지난 70년부터 '뉴질랜드'대관구로 소속이 바뀌었는데 초대교회의 경전과 직제를 계승하고 있는게 특색이다.

이같이 6.25와 함께 정착한 여러 종교에 대해 종교학자 鄭鎭弘교수(서울大)는 "壬亂때 日軍을 따라 카톨릭이 한반도에 들어왔다든지 식민지 확장과 함께 中南美에 西歐 카톨릭이 퍼진 것 등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외군의 진주와 함께 그들의 종교도 현지에 퍼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6.25동란 당시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된 종교가 큰 교세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성직자가 없는 평신도 중심의 종교이거나 해당종교의 특징이 한국문화와 비교할 때 너무 독특해 일반화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종교의 상징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될 때 개방성이 강한 종교가 되는데 몇몇 종교의 경우 토착화보다 원리에 집착한 결과 발전이 느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林然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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