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워싱턴州 상원의원 愼昊範씨 방한

"젊은이여, 조국의 테두리를 벗어나라"

조선일보 1999.6.12
국민일보 2000.1.17
대한매일 1998.12.01
경향신문 1998.11.06
동아일보 1998.11.06
문화일보 1998.11.05
중앙일보 1998.11.05
조선일보 1998.11.05
뉴스피플 1997.12.17
중앙일보 1997.01.05
월간조선 2000.2월호 
조선일보 2001.6.11
신호범 박사 출판기념회 성황
동아일보 2005.5.9

 

 

  dia_pink.gif 신호범 선교부 회장 노변의 밤 말씀
     <오디오-육성>
(미국 상원의원 당선 전)
   1.
제1부<오디오-육성>(38분)
   2. 제2부<오디오-육성>(47분)  [자료원: 최수영 형제]

 

美워싱턴州 상원의원 愼昊範씨 방한

"젊은이여, 조국의 테두리를 벗어나라"
조선일보 1999.6.12  


6.25 전쟁 중 후 입양아로 미국에 건너가 워싱턴주의 주(州)상원의원에 당선된 신호범(愼昊範·64·미국명 폴신)씨가 한국을 찾았다.

신 의원의 이번 방한은 지방대학에서의 순회 강연을 위한 것. 지난 달 30일 도착, 충남-충북-전남-원광대 등 10여개 대학을 돌며 '21세기의 한국 학생'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 세기의 주역인 대학생들은 이제 지역이나 국가의식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한국 학생들은 배운 것은 잘 알지만 빌 게이츠처럼 끊임없이 '왜'란 질문을 던지는 데는 약하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신씨는 "이제는 세계로 뻗어나가 활동하는 사람이 정말 애국자"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시애틀의 쇼어라인 커뮤니티 대학에서 22년간 동양사를 가르친 신씨는 워싱턴 주지사 고문, 주 하원의원을 거쳐 98년 11월 주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신씨는 6.25때 군의관으로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의 독실한 신자이다. 그는 56-58년 일본에서 선교했으며 88년부터 3년간 한국에서 선교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전미(全美)입양협회 이사이기도 한 신씨는 지난해 정부가 해외입양아들을 초청한 후 이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신씨는 "미국 입양아들 사이에 '모국을 알아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으며 내달 24일 LA에서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다"고 전했다.

/李先敏기자 smlee@chosun.com

 


신호범(미국명 폴신)
   아시아계 최초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1935년생). 전미(全 美) 입양협회 이사. 6.25때 입양. 전쟁고아.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1955년 19세에 미국이주. 정규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으나 후기성도인 양아버지의 가르침으로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여 9개월만에 검정고시인 GED에 합격. 브리감 영 대학 졸업, 피치버 그 대학 석사. 워싱턴 주립대학 동양학 박사. 시애틀 소재 쇼어라인 커뮤니 티 대학에서 22년간 역사학과 교수.
  1956년-58년까지 3년간 일본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선교사업. 1988년부터 3년간 한국 서울에서 선교부장 역임. 년두차례 워싱톤 한인회장.
  1991년 미국 민주당 지명을 받아 시애틀시 21지역구에서 주하원으로 출마하여 주민의 99%까지가 백인인 이 지역에서 3선의 현역 공화당 백인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 당선후 주하원에서 8개법안을 제출하여 6개 법안이 통과되는 등 눈부신 활동. 특히 백인과 동양인을 둘다 이롭게 하는 성공적인 의정활동. 신호법의원이 제안하여 통과된 법안 중에는 1996년부터 워싱턴주에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과과정에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 주요 아시아 국가의 언어 및 문화관련 과목을 정식과목으로 채택케한 '국제교육법'등이 있다.
2001년 8월 22일 건국대학교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
저서(한국어):
기적의 역사(공저, 도서출판 삶과 꿈), 공부도둑놈 희망의 선생님-거리소년에서 상원의원까지(신호범 자선 에세이,웅진출판)


1989년 신호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선교부 회장(앞줄 중앙 우측)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선교부 강원도 강릉 지방부 주문진 지부 조직 기념 사진

 


 

[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
신호범 지음 / A5 / 304쪽 / 웅진출판 펴냄 / 7,500원


불행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는 자칫 신화적으로 미화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류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초인 같은 의지 속에 흐르는 잔잔한 '인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자로부터 출발해 많은 이의 귀감이 된 한 진실한 인간의 곡진한 인생담이 담겨있다. 풀씨 같은 희망일지라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글쓴이의 신념은 거리의 소년에서 대학교수까지,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에서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까지 된다.

 

신호범 박사 출판기념회 성황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 에세이 출간

미국 워싱턴주 상원위원인 신호범 박사는 최근 "공부 도둑놈,희망의 선생님"이라는 자전적 에세이(웅진출판사)를 출간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출판 기념회를 2000년 12월 16일 롯데 호텔에서 유명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가졌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종열, 고원용 지역대표, 이준택 스테이크장 등 경인지역 후기성도(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스테이크장을 비릇한 교회 지도자들은 물론, 사회를 맡은 김현욱 의원(자민련 사무총장), 축사를 해준 한화갑 의원(국민회의 사무총장), 유재건 의원(국민회의 부총재), 이경재 의원(한나라당)과 김근태 부총재(국민회의),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 등 상당수의 유명인사들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축사에 나선 이들은 한결같이 신호범 상원의원이 "한민족으로 자랑할만한 분"이라며, 그분의 인생 여정이 "곧 인간승리"라고 극찬했다. 유재건 의원은 특히 미국서 같이 공부한 친구로서 "그의 노력과 열정에 놀랐으며 모든 이의 귀감이 된다"고 하였으며, 김현욱 의원은 지난번 워싱턴주 상원의원 선거때 신 의원을 돕기 위해 2주간 미국으로 건너가 지역구 내의 수많은 집을 신 의원과 같이 가가호호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신 의원은 미국인들로부터도 존경받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한화갑 의원은 또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한 미 대사에 신호범 의원이 거명되던 시절을 회고하며 신 의원은 한민족으로서 한국을 빛낸 인물이라고 말했다.

신호범(미국명 폴 신, 64) 박사는 이날 모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책을 출간하는 것이 모든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라는 주위의 강력한 권고로 책을 내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책 판매의 모든 수익금은 해외 입양아와 교포 이세의 교육 사업과 지도자 양성 지원에 쓰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4살 때 모친을 여의고 부친마저 사라진 후 고아로 생활하다가 공부가 하고 싶어 무작정 상경하여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가 되었던 그는 어린 시절 김호직 박사의 친절함에 이끌려 교회 회원이 되었고, 당시 군목이던 레이 폴 박사를 만나 그의 양자가 되어 19세때 미국으로 이주해 검정고시를 거쳐 브리감 영 대학에서 정치학에 이어 피츠버그 대학에서 국제 정치학 석사 학위와 워싱턴 주립 대학에서 동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2년간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선교 사업을 마친 그는 지난 1988년부터 3년간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서울 선교부장으로 봉사하기도 했다.(리아호나, 2000.2)


 신호범 박사의 교원대 연수원 강의-권이종,신호범,최수영 친구,최수영

[사진 자료원: 최수영님의 '한국 말일성도 기억의 책] 



입양아서 주 상원의원된 신호범의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


[글 : 조성일 기자 sicho@bookoo.co.kr]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 신호범(미국명 폴신)은 보통사람이 아닌 것만 분명한 듯 싶다. 어린 시절의 고단한 삶이 그의 '특별함'을 웅변해 준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공부해 이룬 것이라도 황색 동양인이 미국 주 상원의원에 당선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대, 그것도 동양의 작은 나라의 밑바닥 인생이 이룬 것이어서 더욱 값지게 와닿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드라마틱한 성공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거치며 열어간 인간 승리의 흔적 갈피갈피가 우리 삶의 반면교사가 되기 때문이다.

신효범은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남대문 시장에서의 거지생활과 미군부대의 하우스보이 생활을 하다가 인생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양아버지로 미군인 폴 대위를 만나면서다.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가본 그가 검정고시부터 시작해 학부는 물론이거니와 석사(정치학, 역사학), 박사(역사학) 학위를 받아 대학교수가 되는 과정은 입지전적이라는 표현만이 적합할 뿐이다.
이후 부동산업으로 기반을 잡고 워싱턴주 최초 아시아계 하원의원, 상원의원이 된 그의 삶은 '신화' 바로 그것이다.

그의 본격적인 사회 활동은 시애틀 한국 교민 단체의 회장을 맡아 주미교포들을 위한 지원활동에서 시작한다.
월남전 이후 15년동안 워싱턴 주정부에서 주지사 고문역으로 정계와 관련을 맺은 그는 태평양 시대를 맞아 부각되는 동양과의 교류확대와 동양 이민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선다.
결국 그가 미국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성실함과 봉사정신, 동양에 대한 지식, 탁월한 국제감각이었다.
그는 '생각하면 꿈이 생각난다'며 희망과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곳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 일이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일하기를 즐기는 그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아주 작은 것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그는 철저한 자기 성찰를 통한 자기긍정의 정신으로, 진정한 홀로 서기를 한 사람이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생각으로 산다.
한편 이 책의 인세는 전액 입양아와 교포2세의 문화교육 및 지도자 양성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한미정치교육장학재단 국내 설립

국민일보 2000.01.17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 신호범씨(미국명 폴 신·사진)가 펼치 는 정치교육 장학사업을 후원하기 위한 국내 모임이 결성,오는 2월7일 롯데호텔에서 발기총회를 갖는다.

신호범의원은 미국내에 더 많은 한국정치인이 탄생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9월,한국인2세 정치인후원장학회를 설립,현재 미국 50개 주에 한국인 정치가가 모두 나오도록 한다는 취지 아래 다각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가칭 ‘한미정치교육장학재단 후원회’로 정한 국내 모임은 현 재 차일석씨를 대표고문으로 위촉했으며 공동대표에 현 국회의원인 정희경장로와 유재건장로를 비롯 윤석금웅진출판사회장을 선임했다 .또 총무는 이유진 한국문학세계화추진본부회장이 맡았다.

이유진총무는 “신의원의 좋은 뜻과 취지를 한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적극 후원하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마련한 것”이라며 “일 단 준비위원들이 발기총회를 한 다음 4월 하순 경,신의원이 참석 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무정 moojeong@kukminilbo.co.kr

 

美 정계서 立身한 자랑스런 코리안

/孫薰(해외기고)
 대한매일 1998.12.01


◎성실·정직·실력으로 무장/미 정치문화 원리 철저 체득/한인들 권익신장 토대 마련/양국 유대관계 증진 큰 기대

지난 11월3일 미 중간선거에서 60대 한국계 노신사 신호범 (미국명 폴 신) 박사가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미국 내에 서도 백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인 시애틀에서 인종의 벽을 뛰어 넘어 당선됐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신박사는 6개월간 2만7,000가구의 지역구내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선거구민과 악수하는 등 풀뿌리 정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이 한국전쟁의 고아였다고 말문을 연 그는 어린 나이인 5 0년대 미국에 입양돼 어렵게 공부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피부색깔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대를 기초로 자신에 대한 지지 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현재 워싱턴,오리건,아이다호,몬태나주 등 서북미 4개주에는 재미동포 1.5세,2세 정치인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2선 의원 이자 20억달러에 달하는 시예산을 다루는 예산위원장인 마사 최 시애틀 시의원,보잉사 엔지니어면서 75%의 압도적 득표로 재 선에 성공한 이승영 쇼라인 시의원 등 한인 출신 정치인들이 미 국 본류사회에 파고들어 재선을 거듭하면서 내일의 유망 정치인으 로 활동하고 있다.또 미 본류사회에서의 한인 권익신장을 위해 정치적으로 참여할 2,3세 예비 정치후보자군이 성장하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미국사회에서 정치인 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곳 정치문화에 순응해야 한다.정직과 공 정을 생명으로 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그대로 적용되는 미국선거 와 정치에서 정치인으로 입신하기 위해선 이러한 원리를 철저하게 체득하는 게 선결과제다.

신의원의 승리는 이러한 명제에 충실한 정공법을 선택한 결과다 .성실과 정직,겸손과 실력,그리고 전문성과 용기에 더해 유창한 영어로 무장하고 선거자금과 관련한 선거법의 철저한 준수가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신의원의 당선은 그가 최근 몇년간 연방하원,주·부지사 선거에서 연속 패배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의원의 탄생으로 서북미 한인동포들은 크게 고무돼 있고 어려 운 이민생활과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얻고 있다.본류사회에의 정치 적 참여를 기초로 한 동포사회의 발전은 우리 정부의 주요한 동포사회정책 목표의 하나기도하다.동포의 권익보호 및 증진 등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선 한국계 정치인의 활발한 미 의회 진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의원이 혈맹으로서 한국과 미국간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해 줄 것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서북미지역은 정치·경제·군사 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특히 워싱턴주는 미국 내 한국전 참전용사가 가장 많은 주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이다.워싱턴주에게 있어 한국은 제4의 교역대상국으로 상호 통상규모가 연 70억달러에 달하고 있고 한국의 대미 총 수출의 약 1 0%가 이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와같은 워싱턴주와 한국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앞으로 제반분야 에서의 한국과 워싱턴주의 유대관계 증진을 위한 신의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게리 락 워싱턴주지사는 자매결연을 하 고 있는 전북 柳鍾根 지사의 초청으로 내년 중 한국을 방문할 계 획이며 신의원은 이 방문에 동행,한국과 워싱턴주간의 통상교류 증진에 기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駐시애틀 총영사>

 

클린턴 “정책의 승리” 자찬

/이모저모 경향신문 1998.11.06


◎깅리치 “공화부진 언론 탓”/민주당소속 한국교민 2명 워싱턴 ·하와이 州의회 진출

○…미국 중간선거에 출마한 한인 후보중 민주당 소속은 모두 당선한 반면 공화당 출신은 낙선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주당 소속의 신호범(愼昊範·62·미국명 폴 신)씨와 실비아 장 룩 (30)씨는 각각 워싱턴주 상원 및 하와이주 하원에 도전, 주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반면 공화당 소속으로 연방 상원에 도전한 오리건주의 임용근( 林龍根)씨를 비롯, 캘리포니아주 하원에 두번째로 도전한 진교륜 후보(64)와 김기현 후보(38)는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분 투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한편 UC어바인 교수인 최석호씨는 캘 리포니아주 어바인 통합교육구 교육위원에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서 아시아계 유권자들이 결집된 힘을 보여주지 못한 것과는 달리 멕시코 등 중남미계(히스패닉)는 과거 어느 때보다 큰 위력을 발휘해 사상 가장 많은 히스패닉 의원을 탄생 시켰다. 히스패닉계는 연방 하원에 출마한 24명중 22명이 당 선되는 등 기존의석에 4석을 더 보탰다.

반면 96년 민주당 선거자금 불법제공 파문에 휘말려 큰 곤욕 을 치른 아시아계는 대만계 데이비드 우 후보(민주·오리건주)를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시켰을 뿐이다.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은 공화당의 부진을 성추문에 대한 과 도한 언론보도 탓이라고 주장. 특히 성추문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선거광고 전략이 오산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우리 가 과도하게 성추문에 매달렸다고 말하는 방송매체들이 놀라울 지 경』이라고 되레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번 중간선거를 『정파정치에 대 한 정책의 승리』라고 자찬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앨 고어 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청문회를 자제하라는 메 시지』라고 공화당에 대해 경고.

<워싱턴·로스앤젤레스/외신 종합 >

 

신호범·장 룩/한국계 2명 州의원 당선

동아일보 1998.11.06


◎워싱턴州 상원의원 신호범­美軍 하우스보이 인연 6·25직후 美 가정 입양 고학으로 대학 졸업 92년 州의원에 당선/하와이 州 하원의원 장 룩­30세 패기의 도전 공화후보에 압승

미국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원에 도전했던 임용근(林龍根) 오리 건주 상원의원(62·공화)이 패해 한인 최초의 상원진출은 좌절 됐지만 워싱턴주와 하와이주에서 각각 한인 주의원이 탄생했다.

워싱턴주 상원에 출마한 신호범(愼昊範·미국명 폴 신·62·민 주) 후보는 상대 후보인 재닛 우드(공화)를 55%대 45%로 누르고 당선됐다. 하와이주 하원에 도전한 한인 1.5세 실비 아 장 룩 후보(30·민주)도 공화당의 크리스토퍼 닷슨 후보를 약 20% 포인트 차로 앞서 승리했다.

주하원의원을 역임했고 연방하원과 부지사직에 도전한 경력도 있는 신후보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우세한 지역에서 유권자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는 선거운동을 벌인 결과 승리를 거뒀다.

경기 파주 출신으로 4세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도 행방불명된 신후보는 6·25전쟁 중에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한 인연 으로 1955년 미국 가정에 입양돼 고학으로 대학을 마친 입지 전적 인물.

브리검 영 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와 워싱턴대에서 수학하며 중국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신씨는 31년간 대학강단에 섰다가 92년 주하원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입문했다.

반면 캘리포니아주 하원에 각각 두번째로 도전한 진교륜 후보( 64·공화)와 김기현 후보(38·공화)는 모두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분투했으나 고배를 마셨으며 가든그로브 시의회에 출마한 오세훈 후보 역시 낙선했다.<정성희 기자 shchung@don ga.com>

 

입양소년,상원의원 됐다
愼昊範씨 민주당후보로 워싱턴서 당선

문화일보 1998.11.05


◎미군부대 하우스보이하다 양부모 만나 18세대 渡美/“나의 승 리는 한민족 승리”

6·25 전란 중에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일한 인연으로 19 55년에 미국 가정에 입양되었던 소년이 워싱턴州(주)상원의원으로 입신했다. 3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愼昊範(신호범·6 3·미국이름 폴 신)씨는 시애틀 북쪽 교외 선거구에서 민주당후 보로 출마, 상대후보 재닛 우드(공화)를 득표율 55%대 45 %로 누르고 당선이 확정됐다. 이제 그의 소원은 아시아와의 교역을 위한 ‘무역 대사’가 되어 워싱턴州뿐 아니라 고국 한국에 도 도움이 될 일을 하는 것과 재미 교포사회의 젊은이들이 소수 계가 직면하는 제약을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잡이 가 되는 것.

愼당선자는 4일 본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나의 승리는 미국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또 한민족의 승리이기도 하다. 한국 인도 이민생활에서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 했다.

이번 선거는 지역자체가 원래 공화당 텃밭인데다 상대후보의 정 치경력이 풍부했기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 인구 15만명의 95 %가 백인이고 아시아계 주민은 한국인 1천5백명을 포함해서 3 천명 미만이다. 그러나 愼당선자는 특색있는 정책을 제시해 유권 자의 마음을 끌었다. 바로 ‘교육의 국제화’ 제창. 거래처 1 0명 중 9명 정도가 아시아 회사인 지역에서 아시아에 관한 소 양은 필수적이라면서 초등학교때부터 프랑스어 등 유럽언어 대신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등 아시아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경기도 파주시 금촌이 고향인 그를 입양키로 한 사람은 치과의 사로 종군중이던 레이 폴씨였다. 네살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당시 아버지도 행방불명이어서 고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입양수속에 시간이 걸려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18세였다. 그는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브리검 영 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데 이어 워싱턴대에서 중국역사를 전공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획득했다. 그 뒤 올해 은퇴하기까지 31년간 대학강단에 서왔다.

그는 92년 주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처음 정계에 입문할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날 밤 늦게 교포 자녀 두 학생 이 찾아와 ‘부모따라 미국에 와서 자라면서 피부색이 달라 갈등 을 느껴왔으며 정치에는 나설 수 없는 것으로만 알아왔다’고 말 해 셋이 함께 울었다.”<워싱턴=秦哲洙 특파원>

 

韓人 신호범·실비아 장 룩
/州 상·하원 진출에 성공

중앙일보 1998.11.05


3일 선거에서 신호범·실비아 장 룩·최석호씨 등 한인들이 각 각 워싱턴주 상원·하와이주 하원·어바인시 교육위원 입성에 성공 했다.

신호범씨는 개표 초반부터 상대 후보 재닛 우드를 앞질렀으며 실비아 장 룩(30·여·민주) 후보도 초반부터 공화당의 크리스 토퍼 닷슨을 20% 정도의 큰 표차로 앞지르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그러나 오리건주서 연방상원에 도전한 임용근(林龍根·공화) 후 보는 석패했다.<LA 지사=김완신·한용택 기자>

 

6·25입양아」 美 州상원의원 됐다
/신호범씨 워싱턴주서 당선

조선일보 1998.11.05


◎「하우스보이」하다 양아버지 만나
/미국 건너가 노동일하며 독학
/“후손­교포들 위해 봉사하겠다”

19살 때 한국을 떠났던 가난한 소년이 미 워싱턴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3일(현지 시각)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신호범(62·미국 명 폴 신)씨는 백인이 93%에 달하는 보수적인 지역에서 민주 당 후보로서, 또 동양계로서는 처음으로 상원의원이 됐다. 신씨는 국제통화에서 『나의 승리는 교포들의 승리이며, 유색인종에게 지지를 보내준 미국의 승리이다. 나에게 기회를 준 양아버지에 게 영광을 돌린다』고 감격해 했다.

신씨와 양아버지의 인연은 포탄이 쏟아지는 6·25전쟁 속에 싹이 텄다. 4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한때 행방불명된 뒤로, 소년은 50년 서울 영등포 일대에 주둔해 있던 미군부 대에서 하우스보이 생활을 했다. 『부대 주변을 서성이다 일자리 를 얻었죠. 그러던 중 양아버지를 만났어요.』

주한미군 군의관이던 양아버지 레이 폴 박사는 유난히 검은 눈 동자를 지닌 소년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고, 소년은 53년 양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난 뒤 이민절차를 밟아 미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게 한이 돼 죽도록 공부했어요. 학교에 진학하려고 해도 나이가 많다고 받아주지 않아 혼자서 공부를 했죠. 처음하는 공부에, 말은 안 통하고…. 하루에 3시간 이 상 잔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양부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 는 생각에 고학으로 대학을 다녔다. 호텔 접시닦이에서 배달원, 공사판 노동일….

워싱턴 대학에서 동아시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69년 대학강의를 시작하면서 월급을 받게 되자, 72년부터 6년에 걸쳐, 50년 생존을 확인한 친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이복동생 5명을 차례로 데려왔다.

주지사의 무역자문역할을 하던 그는 92년 주 하원의원에 당선 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당선 통보를 받은 그날 밤 그는 자신의 또다른 삶을 결심했다.
『교포 1.5세대 대학생 2명이 찾아와 울면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미국에 이민 와서 얼굴 색깔 때문에 설움을 많이 당했는 데, 이젠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죠. 그때 나의 길은 정해졌습니 다.』

그는 『지난 40여년간 한번도 한국인임을 잊은 적이 없다. 미국을 대표하는 한국인이 많이 나오고,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 들기 위해 모든 것을 쏟겠다』고 말했다.

<조형래 기자·hrch o@chosun.com>

 

기사분야 : 문화 [뉴스피플]
게재일자 : 1997년 12월17일


[문화&얼굴] 美 워싱턴주 상원의원 신호범



   44년전 열 여덟 소년은 서울을 떠났었다.미련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었다.1955년 9월.
부산항을 떠나 미국까지 직항하는 미군 부대 화물선 갑판에 서서 저 만치 멀어져가는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설움을 잘근잘근 씹었었다.네가 나를 버렸듯 이젠 내가 널 버린다,
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침을 모아 바다에 뱉었다.한글 이름 석자도 그 바다에 팽개쳤다.
설움뿐인 이 땅을 영원히 밟지 않겠다고.   세월은 흘렀다.붉은 뺨의 소년을 백발 성성한 노인으로 만들어놓은 세월은 용했다.등 돌렸던 고향땅과의 화해를 주선해주고,버렸던 이름 석자를 되찾 게 한 건 세월이다.신호범(愼昊範 64,미국명 폴 신)이란 이름을 다시 거두어 그가 돌아왔다.떠날 때 맨주먹이었던 손에 떡하니 책 한 권을 들고서다.   “변변찮습니다.주위에서 하도 권유들 하길래 못 이기는 척하고 낸 건데, 생각보다 쑥스럽네요.출판기념회다 뭐다 생각지 못했던 자리들이 자꾸 만들 어지네요.” 최근 펴낸 자전에세이(‘공부 도둑놈,희망의 선생님’/웅진출판 )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지난해 연말부터 떠들썩했다.미 워싱턴주 상원의원( 민주당)에 당선됐다는 소식이 날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를 알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말이 쉬워 주 상원의원이지,어디 그게 간단한가.15만 인구의 95%가 백인이고 아시안계라고는 한국인 1천500여명을 합쳐도 3천명이 다 안 되는 곳에서,그는 아시안계 최초의 상원의원을 기록했다.   거리의 부랑아,미군부대 하우스보이,대학 교수,미 하원의원,그리고 다시 상원의원.지난날,서울역 광장에서 주린 배를 움키다 별을 세며 잠을 청하던 거리소년이었다.그의 한살이는 빼고 보탤 것도 없이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다.   “한가지 복은 타고나는가 보지요.사람들이 그럽디다.내가 인복 하나는 타 고났다고.맞는 말인성 싶습니다.벼랑에 섰다 싶어서 앞이 캄캄해지면 등을 쓸어주는 이가 번번이 나타나곤 했으니까요.” 지난 시절을 돌이켜본다.마치 남의 말 하듯 그 얼굴은 맺힌 데 없이 넉넉한 웃음을 품었다.작정하고 살아 온 날들을 얘기하자면 소설 한질은 쓰고도 남을 사람이.   지지리도 없이 살았다.파주시 금촌읍 대골마을.고향에서의 유년은 허기를 달래느라 전전긍긍했던 기억밖에는 없다.네살되던 해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 을 버리고 아버지마저 남의 집 머슴살이 떠난 뒤 그는 외갓집에 맡겨졌다.찢 어지는 살림형편은 마찬가지였다.여섯살.끼니를 떼우지 못해 이집 저집 기웃 거리다 막 철이 들기 시작했을 즈음,그는 동네 천덕꾸러기가 다 돼있었다.초 가 지붕 위로 별이 무더기로 쏟아내리던 어느 여름밤,땡전 한푼없이 서울가 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엿 한가락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그때,속에 품은 희망은 엿장수였다.   서울역을 얼씬거리는 거리생활이 시작됐다.해가 있는 동안은 주린 배 채울 걱정에,다시 해가 떨어지면 잠자리 걱정에 날이 지고샜다.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분수도 모르고 고개 쳐드는 공부욕심만큼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남들처럼 ‘책보’ 한번 들쳐매보는 게 소원이었다.변두리 초등학교를 맥없 이 맴돌길 얼마나 했을까.공부도둑질을 하기로 맘먹었다.교실 창밖에서 국어 책 따라읽는 소리에 넋을 빼고 섰다 순사한테 붙들려 눈물 쏙 빠지게 얻어맞 는 일은 다반사였다.길가 간판을 짚어가며,시장골목에 뒹구는 신문 쪼가리를 모아 읽으며 끝내 한글은 깨우쳤다.   6.25를 맞은 열다섯 되던 해.난리통에 미군 트럭을 따라다니다 용산 미8군 하우스 보이로 뽑혀갔다.생의 첫 행운이었다.아니,생의 전환점이 거기 기다 리고 있었다.눈만 뜨면 빨래,청소,다림질,구두닦이….미군 장교들의 수발을 드는 일은 배고픔을 면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전생에 무슨 연이 닿아있어 폴 대위를 만났을까.장단 막사로 옮 겨가 있던 그 해 여름밤,외로움을 못 이겨 막사에 기대 엉엉 울고 있던 그를 군의관이던 폴 대위가 다독여줬다.그렇게 생겨난 인연의 끈이 그토록 길고 실하게 이어질 줄 그땐 미처 몰랐었다.   바닥을 기며 살던 그에게 무지개를 보여준 사람.입술이 부르트게 일하면서 도 공부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그를 대위는 양아들로 삼았다.포탄 나르는 전 방 군부대에서 명동성당으로 그를 데려다놓고 이듬해 한국을 떠나며 양아버 지는 약속했다.꼭 미국으로 불러 책가방을 들게 해주겠다고.   미국땅은 그렇게 밟았다.책가방을 들고 다니는 일은 그런데 간단치가 않았 다.열아홉살이나 되는 그를 받아줄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이것저것 아르바 이트를 해가며 독학을 시작했다.   “하루 세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었어요,그 시절엔.양아버지의 짐을 조 금이라도 덜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안해본 일이 없었지요.남몰래 울기도 많 이 했습니다.” 목소리가 축축해진다.머리를 도리질쳐도 고향 생각은 질기게 고개 들었고,그럴 적마다 떡잎부터 문질러야 했던 시절이다.   피나는 고학도 그에겐 기회였다.검정고시에 합격했고,(유타)대학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들어갔다.외교관 시험에 합격해 피츠버그 대학원은 전액 장학생 으로 다녔고,다시 워싱턴 주립대에서는 동양역사학 박사학위를 따냈다.멀기 만 한 꿈은 어느새 발치 아래 엎드려 있었다.69년 하와이대 교수를 시작으로 이태전 정년퇴직때까지 그는 30년을 대학강단에 설 수 있었다.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겁니다.정계에는 뜻하잖게 발을 들이게 됐던 것 같습니다.워싱턴 주지사 무역고문을 맡은 게 계기가 됐어요.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게 정치는 싸움입니다.감히 말하지만,나같은 이 몇만 더 있어도 피부색 노란 사람들이 미국땅에서 살기는 훨씬 편해지지 않겠나 싶어요.”   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던 날의 기억은 두고두고 잊히질 않는다. “부모따라 이민 온 1.5세 교포 대학생 둘이 밤늦게 찾아와서는 눈물이 글썽 해서 말을 하더군요.피부색 때문에 수없이 갈등해왔고,졸업해도 식당 말고는 할 게 없을 거라 믿었는데 이제 세상문이 활짝 열린 것같다고요.결국 셋이 부둥켜 울고 말았습니다.”   상원의원에 당선되기 전 한때 그는 한국에 주한 미 대사로 올 뻔했다.97년 제임스 레이니 전 대사의 후임으로 클린턴 행정부는 그를 물망에 올려놨었 다.   한국 교포들을 위해 정계의 문을 있는 힘껏 열어놓는 것.지금 그의 꿈은 그 하나다.올해 ‘정치교육협회’를 손수 만들어 각종 강의까지 도맡는 것도 그래서다.일을 벌이고 나니 유태인들의 의지가 새삼 부럽다.그 차별 속에서 도 미국 전체 정치인의 17%를 차지해 할 말을 다하고 사는 민족.   “예나 지금이나 나는 꿈꾸는 걸 좋아합니다.꿈속에서는 안되는 일이 없어 요.하고 싶은 것만 하고,갖고 싶은 것을 가지며,되고 싶은 걸 이룰 수가 있 었어요.아주 세속적인 꿈을 꿔봅니다.미국 50개주에 더도 덜도 말고 한사람 씩만 금배지를 달게 해도….”   황수정 기자

 

교포 신호범씨 주한 미대사 물망

중앙일보 1997.01.05


◎4살때 고아… 미군에 입양돼 독학/교수 거쳐 91년 주 하원 의원 당선

미국 워싱턴주 하원의원을 역임했던 재미교포 신호범(61)박사 가 지난해말 사의를 표한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대사 후임 물망 에 올랐다.클린턴 행정부는 스티븐 솔라즈 전 연방하원 아시아· 태평양소위 위원장과 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과 함께 신박사를 레이니 대사의 후임자후보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박사는 3일“2주전 백악관으로부터 주한 미 대사직에 관심이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며 “오는 15∼22일 워싱턴 DC에 서 면접받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박사는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계 미국인이 사상 최초로 주한 미 대사 후보에 오른 것만도 영광”이라고 밝혔다.4세때 고아가 된 그는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로 들어가 주 한미군 군의관이던 레이 폴 박사에게 입양돼 독학으로 고교과정을 마친 뒤 브리검 영 대에서 정치학과 역사학을 전공하고,워싱턴 대에서 동아시아학 박사학위를 따낸 입지전적 인물.

69년부터 대학에서 강의한 그는 워싱턴 주지사 무역고문을 맡은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해 91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2년 후 연방하원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지난 해에도 워싱턴주 부지사 선거에 나섰다가 탈락했으나 여전히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마이크 라우리 현 워싱턴 주지사와 게리 럭 워싱턴 주지 사 당선자및 놈 라이스 시애틀 시장등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신박사의 대사 임명을 지원하는 추천서를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LA지사>

월간조선 2000년 2월호 / 인물과 인터뷰

[화제의 인물]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 愼昊範


서울역 꼬마 거지가 미국 州상원의원이 되기까지의 人生 드라마

●네 살 때 孤兒돼 서울 역전에서 거지 생활
●교실 밖서 공부 훔쳐보다 순사한테 도둑으로 몰려
●미군부대 하우스보이하다 終戰되면서 미국 입양
●갖은 인종차별 딛고 대학 敎授이어 상원의원 돼

金熙燮 朝鮮日報 기획행정팀 기자 hs-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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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세다 별이 되어

1999년 11월5일 오후 8시 롯데호텔 3053호 에서 만난 愼昊範(신호범·미국명 폴 신· 64)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은 시애틀에서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온 사람답지 않게 기운차고 씩씩했다. 악수를 청하는 손은 마치 운동선수처럼 두툼하고 손아귀에 힘이 들어 있었다.

그는 당시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 (웅진출판刊)이란 自傳(자전) 에세이 출판차 우리나라를 찾았다. 거리의 소년에서 미 군부대 하우스보이, 미국 입양, 대학교수를 거쳐 워싱턴주 최초로 동양계 상원의원에 오른 그의 인생 歷程(역정)을 담은 책이다 . 자기 업적을 내세우는 자서전이란 말보다 젊은이에게 가르칠 게 없는가 하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31년간 학교 선생일을 하다 보니 가르치는 게 몸에 뱄어요. 1993년에 책을 써 볼까 하다 제 자랑 같아 부끄러워서 그만 뒀지요. 이번에 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완성하게 됐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금촌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잃었다. 아버지도 일을 찾아간다며 집을 나간 뒤 행방 불명됐다 . 한순간에 孤兒(고아) 아닌 孤兒가 돼 외할머니 댁에서 자라던 愼昊範은 돈을 벌겠다고 무작정 가출, 서울로 올라갔지만 남대문 시장과 서울역 일대에서 거지생활로 연 명해야 했다.

『아홉 살이 됐지만 학교에 갈 수가 없었어요. 추운 겨울날 친구들이 책가방을 들고 학교 가는 게 너무 부러워 무작정 따라 나섰죠. 교실 안에 들어가진 못하고, 창문 너머로 흑판을 넘겨다보며 공책에 필기를 하다 지나가던 한국인 순사에게 들켰습니다』 자서전의 제목에 붙인 「공부 도둑놈」이라 는 말은 이 사건에서 비릇됐다. 나쁜 일을 하다 들킨 듯 마구 도망치는 昊範을 순사는 집요하게 따라왔다. 마침내 그를 붙잡은 순사는 귀싸대기부터 한 대 갈긴 다음 『뭘 훔쳤냐』고 꾸짖었다. 昊範이 울면서 공책을 보여주자 그제야 전후 사정을 깨달은 순사는 그를 식당에 데려가 국수를 사주고는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했다. 「별을 세다 별이 되어」란 自作詩(자작시 )는 그때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다.


<배가 고파서 별을 세었고
엄마가 보고 싶어 별을 세었습니다
잠이 안 와서 별을 세었고
외로워서 별을 세었습니다
희망이 없어 별을 세었고
내가 너무 작아 별을 세었습니다
별을 세다 보면

꿈을 꾸듯 희망이 생기고
내 자신을 망각한 채
별 속에 서서 별만 셉니다>
이 詩를 써 놓고 밤새 울었다는 愼박사는

『지금도 때때로 이 詩를 읽으며 그 시절을 견딘 내 자신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새로운 힘을 얻곤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으로 돈도 벌어 / 소수민족 위해 출마 결심

그는 한국전쟁 당시 지나가던 미군 트럭에 「픽업」돼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일을 하게 됐다. 장교 7명의 군화를 닦고, 방 청소 를 하는 사환 노릇을 했다. 『구드 모닝가 싸(Good morning, sir)』란 되지도 않는 영어 발음을 씩씩하게 외쳐대며 총알처럼 빠르고 부지런하게 일하던 愼昊範에겐 「벅 샷(buckshot·사슴사냥용 총탄)」이란 별칭이 붙었다. 당시 愼昊範이 제일 믿고 따르 던 군의관 레이 폴 대위가 1953년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18세이던 그를 양아들로 입양 , 미국생활을 시작한다.

1950년대 미국은 지금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인종차별이 심했다. 흑인도 제대로 사람 취급을 안해주는데, 동양인이야 오죽 했으랴.

『하우스보이 시절에 제가 모시던 흑인장교 의 막사에 들어갔더니 서럽게 울고 있더군요. 소령 진급에 떨어진 그는 자기 손을 꼬집으며 「이것 때문에 안된다」며 피부색을 원망하는 걸 봤어요』

소수민족 위해 출마 결심

愼昊範도 차별을 많이 당했다. 이발소도 못 가고, 학교 진학, 사업 등 모두 어려웠다. 지금도 뒤에서 잽스(japs·일본인을 낮춰 부르는 말)니 친스(chins·중국인을 비하 하는 말)니 하면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나이가 많아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친 愼昊範은 브리검 영 대학 정치학 학사, 피츠버그大 국제관계 학 석사, 워싱턴大 역사학 박사를 거쳐 하 와이大-메릴랜드大 등에서 31년간 교수 생활을 했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부동산 중개 및 아파트 개발사업 등으로 재산을 모았다.

『보잉社(사)가 1970년대 불황으로 종업원을 대량 감원하면서 워싱턴주 전체가 불황에 빠졌습니다. 집을 팔려는 사람에게 싼 값에 사서 수리해 팔았죠. 학교 강의를 마친 뒤 저녁마다 달려가 페인트 칠, 목수 일 , 정원 가꾸기까지 혼자서 해냈습니다』愼昊範은 『2백만 韓人(한인) 교포를 비롯 한 소수민족의 이해를 대변하고, 인종차별을 없애 화합에 기여하겠다』는 각오로 州 (주) 하원의원에 출마했다.

『아무리 차별을 당해도 나는 내 뜻으로 미 국에 건너온 1세대니까 참을 수 있다. 하지 만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어떡할 것인가. 그래서 정계진출 을 결심했다』고 그는 말했다.

『LA 흑인 폭동 때 한국출신 정치인이 있었다면 그렇게 우리만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미국은 말을 안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우리 韓人을 대변해줄 정치인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가 사는 에드먼드市(시)는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20마일 떨어진 소도시. 시애틀의 침실이라 불리는 베드타운이다. 이 지역은 백인이 유권자의 94%이고, 공화당의 텃밭으로 여겨질 정도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愼昊範이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아무 이유 없이 삶의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동포들을 보며 나 자신에게 한 다짐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후보들이 흔히 하는 편지 보내기론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 가가호호 방문에 나섰습니다』 그는 5개월간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늦게까지 모두 1만4천 가구의 문을 두드렸다. 보통 후보들의 열 배가 넘는 방문 유세를 한 그에겐 「문 두드리는 정치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유세기간 중 신발 네 켤레가 닳아 못쓰게 됐다. 집에 와선 소금물에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 평생 흘린 땀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6년 뒤 도전한 1998년 州 상원의원 선거 때는 2만9천 가구를 방문했다. 비오는 날 바닷가 언덕 위의 집을 걸어 올라가면 집주인이 『나는 공화당원이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정성을 봐서 당신을 찍겠다』며 커피를 대접했다.

 

市長 출신 현역 꺾고 당선

『집에 가라(Go home)』는 노골적인 비난을 받았을 때도 그는 웃으며 받아넘겼다.

『감사합니다. 저도 집에 가고 싶은데, 여기가 내 집입니다. 미국 군대에 복무했고, 39년 동안 세금을 바쳤습니다. 부인도 미국에서 만났습니다. 여기를 떠나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당신이 만약 선조를 찾아 유럽으로 간다면 저도 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말문이 막힌 상대에게 인종 화합과 교통문제 해결, 경제정책 등 선거 공약을 하나 둘씩 풀어나갔다. 愼昊範은 선거를 치르면서 부정을 긍정으로 돌리는 게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렇게 흘린 땀의 최종 결과는 공화당 현역 의원을 9%차로 따돌린 승리로 나타났다. 당선이 결정되고 선거 자원봉사자들이 다 돌 아간 새벽 1시쯤. 혼자 선거사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愼昊範에게 교포 1 .5세 젊은이 두 명이 찾아와 다짜고짜 울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우린 여기서 공부를 해도, 장사하거나 취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보고 나선 용기를 얻었습니다. 당신이 해내셨듯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후 연방 하원에 도전했던 그는 아깝게 실패한 데 이어 워싱턴주 부지사 선거에 재차 출마, 0.4% 차로 석패했다. 계속된 실패로 주변에선 「출세욕에 눈먼 자」, 「뿌리도 없는 입양아」라는 식의 질시와 모략이 잇따랐다. 愼昊範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98년 주 상원 의원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이 선거구엔 그가 사는 에드먼드市를 비롯해 21개 시· 군이 모여 있다. 총 인구는 18만. 보통 15 만∼20만명에 한 명의 주 상원의원이 뽑힌다. 게다가 상대는 전직 市長(시장) 출신의 중진 여성 현역의원이어서 어느 때보다 힘 든 대결이었다.

그래도 선거운동에 역시 교포들이 제일 큰 힘이 됐다. 백인들의 곱지않은 시선을 피해 밤새 선전캠페인 말뚝을 박아줬고, 후원회를 통해 성금을 보내왔다.

『워싱턴DC에서 구멍가게를 한다는 朴 선생 이란 분이 5백 달러의 수표를 보냈어요. 동봉한 편지엔 「17년 전 이민을 왔다. 우리도 넉넉하진 않은 형편이다. 하지만 이 돈 은 우리 자식을 위해 보낸다. 꼭 당선돼 달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교포정치인 육성 계획

최종 스코어는 58%대 42%의 압도적 승리였다. 愼昊範은 15만 달러를 선거비용으로 지출했으나 상대는 배가 넘는 39만 달러를 썼다. 지역신문엔 이처럼 믿기지 않는 결과에 대해 「도저히 가라앉을 수 없는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부딪쳐 침몰했다」고 비유했다 .(She was unsinkable Titanic. He just b ecame the iceberg)

워싱턴주의 州都(주도)는 에드먼드에서 2시 간쯤 떨어진 올림피아. 양쪽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그는 정월부터 4월까지 회기가 열릴 때는 올림피아에서, 나머지는 에드먼드에서 지낸다. 초선인데도 상원 고등교육위 원회와 상업-무역-건축-재정제도 위원회 부의장을 맡을 만큼 인정받고 있다. 교통위원회 위원도 겸한다. 오랫동안의 교수 생활과 비즈니스 경험, 주지사 경제고문 경력 등을 살려 동양과의 무역상담, 친선외교 등을 맡고 있다. 워싱턴주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한국, 중국, 일본 등을 방문하기도 한다. 워싱턴주에서 동양계 상원의원은 그가 처음이다. 그래서 인구가 더 많은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도 愼昊範을 부러워한다고 했다. 입양아 뿌리 찾기 운동과 사회봉사 활동, 신앙생활 등에 열중하던 그는 YMCA봉사상, 브리검 영 대학 동문상, 직업교육 발전상 , 아시안 아메리카 개척자상, 올해의 교수 상, 아시안 아메리카 공동체 봉사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시애틀-워싱턴 한국교민연합 의장을 지낸 그는 이제 2세 정치인 양성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소수 민족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愼昊範은 교포 정치인들을 많이 양성하는 게 제일 큰 소망이다 . 그래서 1999년 9월엔 한국인 2세를 위한 정치교육협회를 결성했다. 장학금을 주면서 공부시키고, 정치경험도 쌓게 해줄 작정이다.

『유태인들도 처음엔 미국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2세를 공부시켜 정계와 사업계로 진출시켰습니다. 지금 유태계는 市와 연방 의원의 17%가 넘어 막강한 파워를 과시합니다』

 

동양계 혼혈 2명 입양

愼昊範은 자신의 당선을 미국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韓民族(한민족)의 승리라고 표현 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 다(I have a dream)』란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낸 끝에 이뤄낸 결과였다. 게다가 어느 민족 못지않게 영리하고 부지런한 자신 의 민족성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는 공화당 소속인 金昌準(김창준 ) 前 연방 하원의원과도 자주 만나 가깝게 지내며 그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견이 달라도 우리는 한 민족입니다. 우리는 당이 없어요. 양쪽에서 모두 한국사람이 많이 당선돼야죠』

부동산 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번 愼昊範은 한국에 살던 동생 5명과, 뒤늦게 행방을 찾은 친아버지까지 모두 미국으로 모셔와 집안의 기둥 노릇을 톡톡히 했다. 3년 반 동안 모시고 살던 친아버지는 1993년에 세 상을 떠났다. 그는 어릴 때 가난만 주고 훌쩍 떠나버린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지만, 이젠 모든 걸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해 한다.

『아버지는 제게 한국피를 주셨고, 건강을 주셨습니다. 가난도 주셨지만, 그걸 이겨 낼 능력과 노력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정말 고맙습니다』 금발의 미국 여성 다나(58)를 부인으로 맞은 그는 양아버지에게서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을 대물림하기 위해 동양계 혼혈 2명을 아들과 딸로 각각 입양해 훌륭히 키워냈다. 유타대학 교수이던 양아버지가 제자의 사업에 은행 빚을 내 투자했다가 사업 실패로 파산위기에 처하자 愼昊範은 오히려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려 하늘이 준 기회』 로 받아들였다. 원금은 커녕 이자를 무느라 주말도 없이 일하는 양부모를 위해 그는 3천평 규모의 양로원을 지어 선물했다. 준공식에서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준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하던 양아버지는 이젠 이 세상에 없다. 양로원을 찾아가면 胸像(흉상)이 그를 반긴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양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사랑은 피보다 더 진합니다』

눈물 많은 愼昊範 의원은 양아버지를 회상 하며 금방 눈시울을 붉혔다.●

 

[꿈을 이룬 코메리칸]
워싱턴州 상원 폴 신(신호범) 부의장


조선일보 2001.6.11

 

집념의 46년...'거리의 깡패소년'이 주상원 진출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주 상원 부의장에 오른 폴 신(Paull Shin·한국명 신호범·66)의 인생은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

지난 1월 8일 워싱턴주 상원 의사당에서 실시된 투표에서 민주당 소속의 그는 찬성 46, 기권 2, 불참 1로 사실상 만장일치 부의장에 선출됐다.

“주 대법원 판사 앞에서 선서식을 할 때 참으로 감개무량했습니다.”

6세 때 가출, 거리의 깡패 소년으로 전전하다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하던 중, 1955년 열아홉살 때 입양돼 미국으로 건너온 지 46년 만에 이룬 꿈이었다. 55년 9월 부산항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배에 오르면서 그는 “한 맺힌 이 땅을 영원히 밟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고 했다.

하지만 차별과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솟아오른 그의 추진력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인으로서 지지 않겠다는 오기와 자각이었다. “뿌리를 알아야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뿌리를 잃으면 부초처럼 흔들리다 말지요.”

1994년 연방하원 선거에 이어 96년 워싱턴주 부지사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자, 그는 시름을 달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홀로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조선아’ 할머니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는데,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항거하다 무참히 살해됐다고 합니다. 항상 조국을 그리다가 딸의 이름을 ‘조선아’라고 지어줬다고 하더군요. 그분들의 역경을 어찌 제가 미국에 와서 고생한 것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그는 98년에 다시, 주위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말리는 주 상원의원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스노호미쉬 카운티에서 출마한 그의 공화당측 상대는 시장까지 지낸 우드(Wood) 여사였다. 그는 10개월 동안 하루 10시간씩 혼자서 가가호호를 누볐다. “한국에서 입양 온 사람인데 그동안 이곳에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제 보답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뚜껑을 열자 58% 대 42%, 폴 신의 승리였다.

지역 언론들은 당시 ‘타이태닉호(우드)가 드디어 빙산(폴 신)에 부딪혀 침몰했다’고 썼다. 92년 주 하원에 진출한 뒤 6년 만에 이룬 개가였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60년대초 훈련병 시절(미국은 당시 징병제였음), 텍사스의 한 식당에서 동양인이라고 내동댕이쳐졌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내가 너희를 도우며 살 날이 오리라’고 맹세했었습니다. 막연하게 정치를 꿈꿨었죠.”

84년부터 부스 가드너(Booth Gardner) 전 주지사의 무역고문을 맡았던 그는 “가드너 주지사가 87년 막상 정치를 권유했을 때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났습니다. 5년을 미루다가 결국 92년에 도전한 셈”이라고 말했다.

1969년부터 97년까지 워싱턴 주립대, 하와이대 등에서 국제정치와 동양역사 분야 교수를 지낸 그의 향학열은 뼈에 사무칠 정도다. 미국에 오자마자 열아홉 나이에 양아버지 레이 폴(Ray Paull)씨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찾아다녔으나 전부 문전박대 당했다. 교육받은 경력이 전혀 없다는 이유였다.

엉엉 우는 그가 안쓰러웠던지, 동네 고교 교장인 케니스(Kennith)씨가 교사 1명에게 하루 두 시간씩 영어를 특별 지도하게 하는 은전을 베풀었다. “1년 뒤 검정고시(GED)에 합격하고 74년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아들 폴(33)과 딸 앨리사(32)를 한국에서 입양, 버젓하게 키웠다. 61년 결혼한 미국인 아내 다나(58)는 요즘엔 손자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즐겁기만 하다. 그는 또 입양아들의 모임인 'KIDS(Korean Identity Development Society)'를 10년째 가동하고 있다.

작년엔 ‘한미 정치교육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미국의 각급 선출직의 1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정치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앞으로 한국계 미국인 중에도 연방의원, 대통령이 나올 수 있습니다.”

99년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이라는 제목의 자전 에세이를 펴낸 그는, “다음 생이 있다면 초등학교 5~6학년 교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은 눈이 빛나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가장 큰 감화를 줄 수 있는 때죠.”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시절 동작과 눈치가 빠르다고 ‘벅샷(buckshot·엽총탄)’으로 불렸던 신호범. 이제 그는 동료의원들이 ‘동양박물관’이라 부르는 그의 상원 의사당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의 앞에는 ‘경천애인’이라 적힌 액자가 걸려 있고, 책장에는 모형 에밀레종과 거북선이 놓여 있다.


약력 - 35년 경기도 파주 출생 - 55년 입양, 도미 - 62년 브리검 영 대학 졸 - 64년 피츠버그 대학원 졸 - 74년 워싱턴주립대 박사학위 - 84년 워싱턴 주지사 무역고문 - 92년 워싱턴 주 하원의원 - 99년 워싱턴 주 상원의원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

 


[클로즈업]
워싱턴大 한국학 폐강위기 살린
신호범 州상원의원

[동아일보 2005-05-09]

 


[동아일보]

“정말 막판에는 이 나이에도 엉엉 울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영국 옥스퍼드대의 한국학 전공과정이 2007년 폐강 위기에 몰린 가운데 미국 서부지역에서 가장 전통이 오랜 워싱턴대 한국학과정이 폐강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났다. 교민들과 한국인 졸업생들의 3년여에 걸친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폴 신(신호범·愼昊範·70) 워싱턴 주 상원의원은 9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기자들을 만나 그 과정을 설명했다.

워싱턴대 한국학과정은 태평양전쟁 중이던 1943년에 미군과 정보요원 훈련을 위해 개설된 뒤 제임스 팔레, 브루스 커밍스 씨 등 미국 내 대표적인 한국학 교수들을 키워냈다. 입양아 출신의 신 의원도 이 대학에서 한국말을 배웠다.

2001년 팔레 교수의 은퇴 후 후임 교수 선발이 예산 부족으로 유야무야되면서 강좌 자체가 존폐 위기에 몰렸다. 워싱턴 주 교민 10만여 명과 400여 명의 워싱턴대 한국동문들도 모금운동에 나섰다. 재학생들도 폐강 움직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50만 달러의 지원금을 내놓았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신 의원의 발의로 주 정부가 한국학강좌 전체 예산의 25%를 부담하는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예산안은 하원의 반대로 부결됐다. 지난달 예산지원안을 다시 내놓았으나 또다시 하원의 반대에 부닥쳤다. 전체 주 예산이 17억 달러나 적자인 데다 소수민족이 주도하는 특정 강좌를 지원하는 예산안이 통과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 예산안의 최종투표일이 지난달 24일이었는데 전날 저녁 같은 민주당 소속 상원의장을 찾아가 ‘내일 예산안 투표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 주 상원은 25 대 24로 민주당 우세였는데 제가 반대표를 던지면 예산안 전체가 부결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지요. 결국 그날 밤 12시 민주당 상하원 합동회의로 한국학 지원예산이 최종예산안에 포함됐습니다.”

신 의원은 “예산안 통과 후 보잉과 스타벅스 등 미국 기업들의 후원 의사를 타진해 기금규모를 250만 달러에서 400만 달러까지 늘려 잡았다”며 “한국학센터의 독립까지 모색 중인 만큼 이제는 한국기업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시애틀지부에 참석한 신호범 형제, 성찬식을 마치고,[200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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