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지하묘지의 미이라와 파피루스의
발굴(發掘) totem_next.gif 입수(入手) totem_next.gif분실(紛失)
totem_next.gif 재발견(再發見) 역사

- 파피루스 경전이 '조셉 스미스'에 이르기까지 -
  - 경전(經典)인
『값진 진주』중의 역사 -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초대 회장이요 선지자인 '
조셉 스미스(Joseph Smith)'가 어떻게 이집트의 지하묘지에서 나온 파피루스를 입수했는지에 관한 이야기 는 정말 신(神)의 지시나 명령으로 받았다는 생각에 의심을 갖지 않게 한다. 매년 새 로운 발견으로 정확한 내용을 뒷받침해 주고 있으나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의 일부는 미궁속에 빠져 있다. 그러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1798∼1799년에 걸쳐 이집트를 정복하게 되자 세계의 초점은 바로 이 땅 에 집중되었다. 과학적 탐구나 고대 장례의식에 관한 절차를 알기 위한 의욕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는 묘를 습격하여 속에 든 물건을 훔쳐 가는 예도 허다했다. 이런 초 기 모험가 중에는 이집트(애급, 埃及, Egypt)의 고대 유물에 관심을 갖고 있던 '안토 니오 로블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골동품(骨董品)을 아끼는 백작(伯爵)들 이 모여 구성한 「베르나르디노 드로베티」라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1817년에 이집트에 있던 '로블리'는 이집트의 「티브스」에 있는 지하묘(地下墓)에 들어갈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는 「티브스」근처 「구르너」라 불리는 곳에서 지 하묘를 발견하여 안에 들어가 보니, 그 곳에는 수많은 미이라(mummy)가 있었다. 그 중 제일 좋은 것 몇 개를 「드로베티」로 보내고 몇 개는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 다. 그는 이집트를 떠나 「트리스테」를 경유하여 프랑스로 오고 있었다. 그는「트리스테」섬에서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로블리'는 이 미이라를 일글란드에 있는 것으로 믿었던 조카 '마이클 H. 챈들러'에 게 유언으로 상속해 주었다.

   미이라가 파란곡절을 겪은 후 영국의 런던을 경유하여 잉 글란드에 도착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학자들은 '로블리'와 '챈들러'와의 관계를 계 속 연구 중이다). '챈들러'의 친구들은 그가 살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로 재 발 송했다. 마침내 미이라는 뉴욕시 세관에까지 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도착한 미이라 의 수효는 11구(미이라가 들어 있는 관) 였다.

   학자들은 이 귀중한 미이라와 기록이 유물수집단체, 무덤약탈자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상모략하는 상대 단체들 을 어떻게 뚫고 뉴욕 항구의 안전한 곳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하는 점에 난색을 표명 하고 있다.

   1833년 4월에 '마이클 H. 챈들러'는 세관에 통관세를 물고 11구의 미이라를 입수, 개봉하여 봤다. 그러나 그 안에는 기대했던 일확천금의 보물이나 값진 물건은 없었 다. 파피루스로 된 두루마리 몇 개를 얻었을 뿐이었다. 이야기에 신의 섭리가 다시 한 번 작용한다. '마이클 H. 챈들러'는 두루마리를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도시에는 없다는 소리를 들 었으나 "같은 신사(나그네)로부터 어떠한 권능과 은사를 가지고 있어서 전에도 이와 비슷한 글자를 번역한바 있다는 '조셉 스미스 2세'에 관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뒤 '마이클 H. 챈들러'는 미국의 대도시를 순회하며 미이라를 전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곧 이 전시물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전국의 학식이 많은 사 람들에게서 「미이라」와 「파피루스」가 진짜라는 확인을 받았다. 또 그는 몇몇 사람 들로부터 그의 전시물이 진짜이며 파피루스에 기록된 문자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얻었다.

   1835년 7월 3일, 비로서 '마이클 H. 챈들러'는 이집트의 미이라를 가지고 미국 「커 틀랜드」에 도착하여 즉시 선지자 '조셉 스미스'를 찾았다. 그는 선지자에게 이 두루마리를 번역할 권능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고, 선지자는 가지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선지자는 그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상형문자의 그림과 문장과 같이 네 가지의 사람 그림이 있었다. '마이클 H. 챈들 러'씨는 내가 그것을 번역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나에게 이 문자의 기록을 약간 가져 왔다. 나는 그에게 해석을 해주었고 그는 신사답게 다음과 같이 증명해 주었다."

"본 증명서가 미국의 유명한 도시를 순회하며 가장 유식한 학자들에게 보여준 바 있 는 본인이 소유한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판독한 '조셉 스미스 2세'에 관하여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본인이 지금까지 배우고 얻 은 지식으로 판단하건 데 '요셉 스미스 2세'의 해석이 미세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마이클 H. 챈들러
                  이집트 미이라의 소유자로서 이를 가지고 여행을 한자임.

'마이클 H. 챈들러'씨로부터 이 같은 증명서를 받은 뒤 곧「커틀랜드」의 성도들은 그에게서 미이라와 파피루스를 샀고, 이리하여 예언자는 '윌리암 W. 펠프스'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서기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이 상형문자(象形文字)의 번역에 착수했다. 예언자는 교회정사(Volume 2, p.236)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커틀랜드」에 있는 성도들이 이 미이라와 파피루스를 구입했다.

   설명은 다음에 하겠지만 나는 '윌리암 W. 펠프스'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기록 하게 하여 이 글자 혹은 상형문자의 번역을 착수했다. 놀랍게도 두루마리 중 하나에 는 이집트에 있던 요셉의 말씀이 실려 있었다....."   그들을 무한히 기쁘게 한 사실은 파피루스의 두루마리 하나에 '아브라함'의 기록이 담겨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 중 첫 번째 두루마리는 선지자께서 일부를 번역했다.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던 조상의 고향에서 아브라함이 당하던 수난과 기적적인 구출에 관하여 자세하게 증명하고 있고, 세상의 창조와 전세에서의 영(靈)에 대해서 말해 주 고 있으며, 고대의 족장들이 이해하던 천체조직(天體組織)을 보여주고 있다. 성스러 운 영감으로 번역된 무한의 가치가 있는 실제의 기록인 '아브라함서'는 현재 교회 4 대 표준경전(성경,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의 하나인『값진 진주(Pearl of Great Price)』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조셉 스미스'의 기록이 실려있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번역되지 않았다. 성도들은 계속 미이라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안식처인 아름다운 도시「나부」에 정착할 때까지 이리저리 떠돌면서 그것을 함께 운반하고 다녔다. 그 곳 선지자가 건립한「나부회관」에서 미이라는 전시되었으나 선지자의 순교 이후 미이라와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선지자 가족의 손에 넘겨져서 결국 다른 사람에게 팔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한동안「세인트루이스」에 있는 기업재단에 의해 전시된바 있었다. 그리고 나서「시카 고박물관」에 매도되어 버렸다. 1870년 시카고 대화재(大火災)가 발생시 박물관이 파괴되면서 아마 이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미이라와 고대의 성스러운 기록이 함께 소실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 다.

   4개의 미이라에 관하여 예언자는 처음에는 미이라가 누구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는 사 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후에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예언자는 그들 미이라가 '바로 왕', '왕비', '공주'와 노예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파피루스를 통하여 미이라 중 한 사람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두루마리에 관하여는 이것이 '아브라함'과 그의 손자 '요셉'이 직접 쓴 원본이거나 원본을 복사한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기록관리인의 손을 거쳐 수 천년 동안 보관되어 왔을 것으로 믿어진다.

   후기성도에게는 이의 결과가 잘 알려져 있다. 선지자는 두루마리의 일부를 번역하 여, 이것의 번역과 복사한 그림 1, 2, 3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경전인 「값진 진주」의 『아브라함서』에 실려 있다. 또한 선지자는 우리가 발췌한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아브라함서』에서 발췌한 것을" 약속하였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순교로(1805- 1843) "구상하고 있던" 출판물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말았다. (죤 테일러의 '타임 즈 앤드 씨즌즈', 1843년 2월)

  여하튼, 선지자가 순교(殉敎)당하자 미이라와 원고는 조셉 스미스의 어머니인 '루시 멕 스미스' 에게 넘겨졌다. 1855년 5월 그녀가 죽자 미이라와 파피루스 원고는 '루시 멕 스미스'가 죽기 2년 전부터 같 이 살았던 '엠마 스미스 비다몬'의 손에 의하여 보전되었다. '엠마 스미스 비다몬'은 예언자의 미망인으로 '엘. 씨. 비다몬'과 결혼했다. 1년 남짓하게 보관해 오던 미이라 와 원고를 '엠마'는 '에이. 콤'씨에게 팔았다.    


이집트의 파피루스 다시 발견

  회복된 복음 속에서 생활하는 후기성도('몰몬'이란 별명으로도 불림)들에게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아브라함서를 쓰는데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 이집트의 파피루스가 다 시 발견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관심거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1871년 시카고박물관 대화재(大火災)시에 소실된 것으로 알았던 파피루스가 유타대 학의 중동문제 연구원장으로 봉직한바 있는 '아지스 S. 아티야' 박사가 뉴욕 박물관 소장의 파피루스를 조사하던 중 발견한 지 약 1년이 지난 1967년 11월 27일「뉴욕시 립 박물관」의 양해로 교회측에 이관되었다.  


 

                                     파피루스경전 발견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서 -

                                          동아일보 / 1967년 12월 9일


 
 

*기사전문: 한자는 한글로 표기했음


파피루스경전 발견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서 -

  "백년 전에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3천년 전 에집트「파피루스」 경전이 지난 주 뉴욕「메트로폴리탄」박물관 지하실에서 발견되어 「모르몬교」본부에 이관되었다. 고대 에집트 사람들이 미이라와 함께 장례의식과 사후율법으로 적어 무덤 속에 묻곤 했던 이 파피루스경전은 모르몬교 교조 「성 죠셉 스미스」(1805-1844)가 1835년 프랑스 고미술발굴가 「안토니오 로블리」와 고미술상「마이클 챈들러」의 손을 거쳐 입수, 보관해 오다가 사망시 그 미망인「엠마 스미스」에게 3개의 미이라와 함께 넘겨주었던 것을「스미스」여사가 시카고박물관에 팔았던 것이다.

  "시카고 박물관은 1871년 시카고대화재 때에 타버렸고, 동시에 여기 보존되었던 미이라와 이 파피루스경전도 소실되었던 것으로 믿어져 왔는데, 지난주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중동과장「헨리 피셔」에 의해 발견되어 「에집트 고고학」전문가이며 유타대학 교수인「아지스 S 아티야」박사에 의해 진본임이 입증된 것이다. 이「파피루스경전」은「엠마 스미스」와 그의 아들의 사인이 든 11통의 편지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모르몬교 경전은 기독교의 구약 외에 마지막에「값진 진주」 (PEARL OF GREAT PRICE)란 장을 따로 가지고 있다. 이 장은 교조 「죠셉 스미스」자신이 기록한 것으로 그 출저를 입증 할 수 없었던 것을 이미 발견된「파피루스」상형문자의 해독결과 그 「값진진주」장이 그대로 에집트 장례의식인 이 경전의 내용과 글자 한자 안틀린 번역임이 입증되었다.
   모르몬경전「값진진주」장에는 이 파피루스와 똑 같은 (FACSIMILE) 그림이 실려있다."  

     *사진1: 박물관측이 교회의 부대관장에게 파피루스경전을 이관하는 사진.
     *사진2: 뉴욕에 있는 세 종류의 미이라.
     *사진3: 값진진주의 아브라함서 1장 아브라함서에서 복사한 그림1과 똑 같은 사진:「파피루스경전」이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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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박물관측으로부터 교회의 부대관장이 박물관장 후빙박사로부터
파피루스를 받고 있다. 가운데서 보고 있는 사람이 아티야 박사
 

 

*사진2: 뉴욕에 있는 세 종류의 미이라



*사진3: 값진진주의 아브라함서 1장 아브라함서에서 복사한 그림1과
똑 같은 사진:「파피루스경전」이라 소개
.

아브라함서에 포함된 그림 1
 

아브라함서에 포함된 그림 2


아브라함서에 포함된 그림 3
 

 

  발견된 11개 중에는 『값진 진주』의 서문에 해당하는 '복사한 그림Ⅰ'을 만들 때 조셉 스미스가 사용한 원본도 들어있었다. 또한 발견된 원고 중에는 1856년 5월 26일 자의 편지도 함께 있었는데, 이는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미망인 '엠마 스미스 비다 몬'과 아들 '조셉 스미스'의 들어 있는 것으로 이들 파피루스가 선지자의 소유였음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들 파피루스에는 성스러운 비문이나 이와 비슷 한 내용의 그림을 전통적인 상형문자로 적은 것과 보통 이집트의 미이라와 함께 매장 하는 장례문을 상형문자의 초서체로 적운 것이 들어 있었다.

  대개 장례문은 "사자의 책"에서 인용하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이 영계에까지 무사히 가도록 해달라고 기원하 는 내용이다. 이를 제외한 10개의 파피루스가 아브라함서와 직접관계가 있는 것 인지 의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원고 석장 뒷면에는(원고 자체를 보호하기 위하 여 선지자가 종이 한 장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약기(略記), 손으로 그린 지도, 지 명을 나타내는 표시등 모두가 예언자 요셉 스미스가 손수 쓰신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 있다.

  중요성이나 그밖에 「아브라함서」와 관계는 확인된 바 없으나 후기성도의 역사 가에게 단단한 관심거리가 되기에 족하다.   발견된 원고는 뉴욕박물관에서 거행된 인상적인 식전에서 세계적인 보도원이 지켜보 는 가운데 시립박물관장 '호빙'박사로부터 교회 대관장단의 '엔 엘돈 테너' 부대관장 에게 전달되었다. 솔트레이크 시티 교회 본부에서 언어학을 강의하는 '휴니블리' 박사에게 넘겨주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파피루스 원본과 이집트 미이라를 소유하게 된 이야기는 사람 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으며, 사실 그것은 모험과 매혹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맞먹는 관심사는 시립박물관에서 파피루스를 발견한 '아지스 S. 아티야' 박사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발견해 온 것 중에서 제일 훌륭한 것이 었다고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하고 있다.

  "저는 세계기독교와 동양의 기독교를 강의하면서 책을 한 권 저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뒷받침 할만한 서류, 파피루스, 사진 또는 설명문을 찾으려고 시립 박물관엘 갔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잊었지만 1965년 초봄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책은 출판단계에 있었고, 저는 보충자료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두침침한 방에서 여러 가지를 훑어보고 있을 때 저의 시선을 끄는 것이었습니 다. 저는 보조원 한 사람에게 서류금고 안으로 들어가 좀 더 자세히 보게 해 달라 고 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서류뭉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림은 눈에 익은 것이었습니 다. 『값진 진주』에 나오는 그림이라는 것을 곧 알았습니다. 저는 그 그림의 대체 적인 형태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그림이라면 다른 파피루스에서도 흔 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이 특별한 그림은 보통 것과는 다른 특이한 면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머리부분이 떨어져 나갔는데, 이것을 19세기에 사용한 종이에 받쳐 떨 어진 머리부분을 연필로 그려 넣은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머리부분이 없어졌을 때 이것을 소유한바 있었던 조셉 스미스가 손수 그 부분을 받침 종이에 받쳐 그려 넣 은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었습니다. 또는 미이라는 똑바로 누워 있는 것이 보통이었 으나 이것은 손수 위로 쳐들고 다리도 들고 있는 등 아주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이 파피루스는 이집트산 이었으며, 저는 그러한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계속하여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밖에도 서로 붙어있는 파피 루스 뭉치를 발견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 습니다. 이들 서류와 함께 발견된 것 중에는 파피루스는 조셉 스미스의 소유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편지로 조셉 스미스의 부인과 그의 아들과 또 다른 사람의 서명 이 든 것도 있었습니다.

  '후서'여사가 박물관측에 자기가 파피루스를 가지고 있으니, 감정하여 달라고 부탁 하였는데 이 때가 1918년이었고, 그러나 1947년까지는 빛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제 서야 비로소 박물관측에서 구입했으나 이집트관 책임자의 경질 등으로 완전히 망각 된 상태였습니다. 서류를 보고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몰몬 사회를 알고 있었습니다. 몰몬이 상 징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들의 경전 등에 대하여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즉시 이 서류는 이곳 박물관에 속한 것이 아니고 몰몬교회에 속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저의 가까운 친구들이고 해서 저는 이 서류를 교회로 돌 려주자고 했습니다. 저는 절친한 친구이며 국제관광 솔트레이크 분회 비서실장으로 일하는 '파이어 스'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발견품을 교회에 인계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협의했습 니다.

 '태너'부대관장을 만나보라고 한 그녀는 이 모임을 주선하여 주셨고, 처음 두 모임에는 자리를 같이 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테너' 부대관장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는데 그 분은 교회가 갖고 있는 이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며 파피루 스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 다. 우리는 그 때부터 원고를 교회에 이관하기 위하여 조용히 일했습니다.

  저는 본래가 이러한 일에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장기전을 쓰는 것이지요. 설득과 회합을 계속하여 결국 박물관 측은 박물관 보관국에 그 문제에 관한 각서를 하달하 게 되었습니다. 이 단계까지가 오랜 시간을 요했습니다. 보관국에서도 장기간을 두 고 토의를 계속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상상하는 기간 이상을 토의한 끝에, 박 물관에는 이와 같은 종류의 파피루스가 많이 있는데 이들 서류를 구태여 우리가 쥐 고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데 까지 진전이 된 모양입니다.

  관대한 결정이 내려지자 이집트관의 책임자는 이 사실을 저에게 전화로 알려 주었 고, 또 같은 내용을 편지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 상태에까지 이야기의 급진전을 보았으나 이집트관 책임자가 한 달 동안에 걸친 출장으로 일단 정지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돌아온 그는 아주 고무적인 사실을 전해 주면서 '이미 결정은 난 것입니다. 당신 의 몰몬 친구들은 이 파피루스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구와 대관장을 만나 서 식에 필요한 준비나 하시죠'하는 것이었습니다. '엔 엘돈 테너' 부대관장도 저 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그는 역시 원고의 이관을 열망하고 계신 '데이비드 오 멕케 이' 대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들은 식의 순서와 방 법을 결정했습니다. 저는 '테너' 부대관장님이나 '후빙'박물관장 등 존경하는 분 의 중앙에 서서 사진을 찍게된 사실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후빙'박사 는 훌륭한 조언자이며, 박물관 부관장인 '죠셉 노블'박사와 함께 이번 일에 중요 한 일을 하신 분입니다. 모든 분이 자리를 같이 해 주셨는데, 더구나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이 파피루스를 훌륭한 상자에 넣어 준비한 박물관측의 세심한 배려였습니 다.

  저는 이 중요한 식전(式典)이 행해질 그 날 아침 일찍 그 장소에 가서 파피루스가 제 자리에 있는지 알아보려 했습니다. 파피루스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던 서류도 분실되지 않았나 일기 위해서였습니다. 19C에 만들어진 것으로 희미하기 때문에 박 물관측에서는 그것을 사진을 찍어 복사해 두었습니다. 전에도 이 사진촬영을 시도 한 일이 있으나 본래가 오래된 푸른 색 계통의 종이였기 때문에 잘 나오지 않았습 니다. 그래서 적외선과 자외선을 이용하여 촬영한 결과 원래보다도 훨씬 선명하게 나왔습니다.

  저는 한 때 '조셉 스미스'의 수중에 있었던 파피루스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기쁨을 감당할 수 없었으나, 발견은 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파피루스를 이관하던 날 아 침, 저는 이들을 다시 한번 세밀히 아래위를 훑어보았습니다. 그런데 파피루스를 받치고 있는 종이 뒷면에 '요셉 스미스/ 자신이 손수 만든 것으로 여겨지는 도시 에 대한 기호와 지도와 발음법을 포함하여 몰몬역사에 지극히 중요한 것이 적혀있 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석장 뒷면에는 몰몬 전문가들이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지 도와 부호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전문가는 못된다 하여도 이미 원본을 본 바가 있었으므로 이들 파피루 스 원고가 위조품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전 시대의 이집트산 파피 루스였습니다.

  저는 이집트인들이 사용했던 잉크의 종류를 알고 있었으며 원본과 위조품의 차이 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보통 미이라와 함께 매장되는 파피루스의 종류는 허다하지 만, 특히 죽은 사람을 저쪽 세상에 까지 안전하게 안내하는 글이 적힌 '사자(死者) 의 책'이 사용되었습니다. 파피루스에 채색이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은 푸른 색, 금색, 붉은 색의 파피루스를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이 보통 있는 예는 아닙니다. 이렇게 만든 색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쓰여진 잉크에 관하 여 알아보았더니 숯과 풀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었습니다. 저는 두루마리도 역시 이 런 것으로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사(祭司)가 이 글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고, 그들은 이 방면에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나무 펜 을 사용하였는데, 만드는 방법은 가운데를 뾰족하게 만들어 가운데를 둘로 잘라 잉 크가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를 만드는 나무를 키우고 있었고 이것을 아주 얇게 잘라서 한 장씩 교차시켜 놓고 나무 망치로 잘 두드려 고른 다음 풀을 칠하여 책으로 매 어 쓰고는 했습니다. 이것을 자기들이 원하는 크기로 잘라 사용했습니다. 긴 형태 의 것을 두루마리로 쓰는데, 이번에 발견된 것도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이관식(移管式)을 가진 다음날 이집트신문에 이 발견품에 관하여 기사가 실렸다는 것을 아십니까? 가장 유명한 신문의 제1면에 특종으로 취급한 기 사를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이 발견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을 아심은 아마도 놀라실 것입니다. 그들도 이들 원고가 발견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 각하고 있습니다."

  '아티야' 박사가 이것을 발견하여, '조셉 스미스'가 '아브라함書'를 번역할 때 사용 한 원본이란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의 있는 일입니다. '아티야' 박사는 세계적인 학자요, 이집트 및 아라비아 원고문서 연구로 이름 있는 분 입니다. 대학에서는 세 사람의 저명한 교수 중의 한 사람이며 미시간, 콜롬비아, 프린스톤, 리버풀, 런던, 본, 쥬리히,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대학 중에서는 명강의와 저서로 정 평 있는 분입니다. '아티야' 박사가 이것을 발견한 것은 '피리 피. 프렛트'가 '요셉 스미스'가 어떻게 이 미이라 원고를 입수했는지를 설명할 때 사용한 표현을 빌려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고대기록(古代紀錄)이 주님의 종인 '조셉 스미스'의 손에 들어오게 된 섭리(攝理) 는 놀라운 것입니다."

  '아티야' 박사가 발견한 11개의 파피루스와 같이 들어 있던 1856년 5월 26일자 '엠 마 스미스 비다몬'의 서명이 든 편지가 바로 이것이다. 편지는 "이 편지는 4개의 미이 라와 이에 딸린 기록을 '에이 콤'씨에게 매도했음을 증명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미이라는 지하 60피트의 이집트 묘(墓)에서 얻은 것이다.

  이는 파리의 고적협회(古 蹟協會)가 구입하여 뉴욕으로 발송한 것을 몰몬 선지자(先知者)가 1835년에 2,400달러 를 주고 구입한 것인데, 사실 선지자는 한 미이라의 가슴에 들어 있는 기록이 중요한 것을 알고 비싼 값으로 사들인 것이다. '조셉 스미스'가 기록을 번역하여 본 결과 이 들 미이라는 이집트의 '바로왕'의 가족이라는 점이 판명되었다. 조셉 스미스씨는 그 가 사망할 때까지 이를 보관하였고, 죽으면서 이를 어머니에게 인계하여 보관해 왔 다. 그것을 사려는 사람이 있어 여러번 구입교섭을 벌려 왔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녀가 지난 5월 14일에 세상을 떠나자 이것이 가능했다. "계약서(契約書)"에는 "엘 씨 비다몬과 앰마 비다몬과 조셉 스미스(그의 아들)"의 서명이 들어 있다.   미이라에 관한 기사는 1856년 "세인트루이스 박물관 목록표"에 1863년에는 "시카고 박물관 목록표" 42페이지에 나타난다. 이에는 두개의 미이라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데 다음과 같다.] "예언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선지자의 어머니가 보관하여 왔으며, 상속자들이 이를 팔아 박물관측에서 구입한 것"이다.

  1856년 및 1863년 목록표에 다른 미이라 두 개에 관하여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1871년 시카고 대화재(大火災)시에 미이라 두 개와 파피루스 원고는 는 소실(燒失)된 것으로 믿어 왔다. 선지자 소유였던 나머지 미이라 두 개와 파피루스 원고가 언젠가 는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번에 '아티야' 박사가 발견한 것이 뉴욕시립박물관의 관심을 끈 것은 1918년의 일 이었다. '에이 콤'씨가 '엠마 스미스 비다몬'으로부터 구입한 것을 전부 처분하지 않았다는데 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뉴욕주 '부르클린'의 '엘리스 씨 후쓰'여사가 '엠 마 스미스'의 서명이 든 근래에 발견한 파피루스와 서류를 시립박물관에 감정을 의뢰 한 것이 1918년이었기 때문이다. '후서' 여사는 '에이 콤'씨 집 관리인의 딸이었다. 그러나 '앨리스'의 남편인 '에드워드 후서'씨가 파피루스를 박물관 측에 매도한 1947 년까지는 박물관 측은 이를 사들이지 않았다. 파피루스는 그때부터 박물관 보관소에 쌓여 있었다.

  '아티야' 박사의 훌륭한 발견이 빛을 볼 단계에 이른 것이다. 조셉 스미스(Joseph Smith)가 소유했던 것의 일부분인 이들 파피루스는 다시 교회의 손에 돌아왔다. 이들은 선지자가 자기가 파피루스 원고를 가지고 있으며 일부는 예수그리스 도 후기성도 교회의 경전(經典)인 『값진 진주』의 「아브라함書」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고 말씀 한 분명하고도 간단한 이야기에 강한 간증(干證)이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월간지-「성도의 벗」1968.5 「기이한 업적」,  pp.338-340 참조
         *동아일보(東亞日報, 1967.12.9 / "파피루스경전 발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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