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다른 교회를 필요로 하는가?
1830년에 미국에서 설립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셨던 초대 교회가
회복된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이 교회는 불가능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굳게 뿌리를 내렸고 마침내 수백만 명의 회원을 갖고 전세계로 폭발적으로 팽창해
가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교리와 신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한 안이한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교회의 설립으로
이끌었던 독특한 사건들에 대한 요약된 이야기입니다.
숲속에서의 기도 시대를 위한 책 회복된 교회를 세움 비극이 닥쳐옴 나부에서 그레이트
솔트레이크로
숲속에서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과 사도들의 죽음 이후, 세계는 오랫동안 영적인 암흑의 시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의 일부를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후기성도들은 기원후 2세기부터 1800년도 초기까지의 시기를 배도의 시기, 즉
그리스도 교회를 이끌고 인도하기 위한 하늘과의 직접적인 교통이 상실되고 교회를 관리할 권능이 하나님에 의해 거두어진 시기라고
부릅니다.
후기성도들은 이 영적인 암흑이 기존 예배 의식들의 개혁이 아닌,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신권을 포함한 그리스도 교회의 회복에 의해서만 끝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또한 이러한 사실이 경전들을 통해 예언되고 가르쳐졌다고 믿습니다.
1820년 봄에 14살 난 조셉 스미스는 뉴욕 주 북부 자신의 집 근처에 있던 삼림 지역의 한 한적한 숲속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는 서로
경쟁하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 어느 교회에 가입해야 할지 알기 위해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간구하고자 그 곳에 찾아갔습니다.
그가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사도 시대 이후로 사라졌던 지극히 놀라운 계시와 방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 이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널리 알려진 인식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당시에 존재하던 어떠한 교회에도
속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대신 소년은 지상에 그리스도의 초대 교회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10 년간 고투와 적대와 박해의 험난한 날들을 보낸 후,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고 1830년 4월 6일에 뉴욕 주, 페이에트에서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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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위한 책
조셉 스미스의 짧은 생애 동안, 곧 한적한 숲속에서 시현을 본 때로부터 1844년 폭도의 손에 죽음을 맞기까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성약인 몰몬경을 포함한 3권에 실려 있는 교리를 확립했고, 곧 세상을 뒤덮을 선교사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모든
장애를 견뎌 낼 수 있는 백성의 기반을 닦았으며 교회를 이룩했습니다.
1830년에 출판된 몰몬경은 후기성도의 교리가 다른 교파의 신조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밝혀 주는 많은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명확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어떠한 사람도 새로운 경전을 출판했다고 주장하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한때 고대 미대륙의 백성들을 방문했다고 주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몰몬경은 금속판에 새겨지고 14세기 동안 한 언덕에 묻혔던 고대 미대륙에서의 종교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조셉 스미스에 의하면 그 기록을
편집하는 일을 했던 부활한 예언자이며 지도자인 모로나이에 의해 그 고대 기록이 묻혀 있는 곳으로 인도되었다고 합니다.
이들 고대 백성에게 나타난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인 몰몬경은 그것을 성경의 동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두 번째 증인입니다. 이 책은 또한 특히 초기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회원들에게 붙여졌던 몰몬이라는 별칭의 근거가
됩니다.
몰몬경: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성약에 대해 더 알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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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된 교회를
세움
몰몬경 번역이 완성되기 얼마 전인 1829년 5월 15일에 조셉은 그의 보조자이던 올리버 카우드리와 함께 기도로 답을 구하고자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성경상의 침례에 대한 교리와 합당하게 그것을 행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 자신이
신약 전서에 나오는 침례 요한이라 불리웠던 바로 그 사람이라 소개했습니다. 그는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자신이 옛날에 지녔던 아론
신권을 부여해 주고, 더 높은 신권인 멜기세덱 신권이 후에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요셉과 올리버에게 근처
사스케하나 강에서 서로에게 완전한 침수에 의한 침례를 베풀라고 명했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 조셉과 올리버는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방문을 받고 그들로부터 지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재설립하기 위해 온전한, 곧 충만한 권능을 부여받았습니다.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요셉 스미스를 비롯한 다른 다섯 명은 1830년 4월
6일에 뉴욕 주, 페이에트에서 교회를 조직했습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하늘을 여시고 말씀하셨다는 것과 앞으로도 살아 있는 예언자들을 통해 인류에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것은 후기성도들이 믿는
근본적인 믿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셉 스미스에게 주어졌던 계시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후에 교리와 성약으로 알려진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초기 계시
가운데 하나는 점차 늘어나는 개종자들을 하나의 공동체 사회로 모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16년간 이 실제적인 집합은 그들에게 적대적이던
주민들을 상대로 말일성도들을 강화시켰습니다. 짧은 시간 사이에 대부분의 후기성도들이 오하이오 주의 작은 커틀랜드와 그 주변의 자산들을 소유하기
시작했으며 급격하게 인구를 팽창시켰습니다. 그후 몇 년간 수천 명이 미주리 주 서부의 인디펜덴스에 또한 모여들었습니다. 1838년 여름에 많은
후기성도들이(그 당시 만이천 명에 이름) 미주리 주 서부로 이주해 왔습니다.
유년기의 교회가 개종자들을 불러모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추가적인 교리와 가르침들이 계시를 통해 주어졌습니다. 1833년 계시를 통해 지금은
널리 알려진 말일성도의 건강 규칙인 지혜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1835년 계시에 의해 신약 이후 처음으로 십이사도 정원회가 임명되었습니다.
1837년에는 교회의 기본적인 교리이자 행동 강령인, 선교 사업이 유럽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836년에는 성전이 커틀랜드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개종자들이 여러 나라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말일성도들이 자신들이 정착한 지역에서 경제적,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되자, 이웃한 주민들은
점차 그들의 특이한 교리와 의식에 반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계시, 천사의 방문, 하나님으로부터 온 신성한 권능, 살아 있는 선지자들,
기타 많은 것들에 관한 주장으로 인해 흔히 말일성도들은 비회원들에게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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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찾아옴
1838년 가을에 미주리 주에서 자칭 민병대라는 한 비적 무리가 외딴 농장에서 후기성도 세 명을 납치하자 데이비드 패턴이 지휘한 한 무리의
성도들이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그들과의 충돌에서 패턴과 그 휘하의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무성한 소문의 "몰몬 공격"은 새로
선출된 미주리 주지사, 릴번 보그스의 정치적 허영심을 부추겼고, 그는 후기성도 근절령을 서명하여 승인했습니다.
삼일 후, 240여 명의 미주리 무장 민병대가 헌츠빌에 거주하던 성도들을 공격하여, 심지어 어린이들이 자비를 간청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18명을 살해했습니다.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파웨스트에 모였던 후기성도들은 강압에 못이겨 항복했습니다. 조셉 스미스와 80여 명의
동료들이 모반죄로 체포되었습니다. 대부분은 잠시 구류되었지만, 요셉 스미스와 다섯 동료들은 마차에 실려 40마일 떨어진 리버티라고 이름붙은 한
변경 정착지의 감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네 명은 온 겨울과 그 다음해 봄까지 감옥에서 지내다, 4월초에 그들을 다른 감옥으로
이송하던 치안관이 그들을 달아나도록 놓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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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에서 그레이트 솔트레이크로
조셉과 그의 동료들이 감옥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동안, 십이사도 정원회의 선임 사도였던 브리감 영은 집을 잃고 고립된 성도들을 다시
미주리를 건너 나부 시가 건립된 일리노이 주로 데려왔습니다. 이 여행은 8년 후에 다시 브리감 영의 지도 아래 시작된,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대이주의 서곡이었습니다.
후기성도들은 한동안 나부에서 번성했습니다. 대학도 세우고, 두 번째 성전도 건립하고, 번창한 종교 및 경제 중심지를 건립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을 따라 다녔던 편견과 불관용이 곧 그들에게 밀어 닥쳤습니다. 불만을 품은 회원들이 각 계층에서 가장 열렬한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1844년 6월 7일에 배도자들은 나부에서 예언자 요셉 스미스에 대한 거짓말과 풍자로 가득한 <나부 익스포지터>라는 신문 창간호를
인쇄했습니다. 이에 놀라 시의회가 소집되었고, 그 간행물을 공적 불법 간행물로 규정하고, 그것을 출판한 인쇄기를 파쇄하라는 명령을 내려, 시
보안관이 그 명령을 집행했습니다. 시민들은 양편으로 나뉘어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요셉과 그의 형 하이람은 폭동을 교사한 죄로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습니다.
나부 군단의 사령관인 조셉 스미스는 1844년 6월 18일에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적과 한편이 된 일리노이 주지사인 토마스 포드는
예전의 죄목을 들어 조셉을 다시 체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1844년 6월 27일에 조셉 스미스와 그의 형 하이람은 일리노이 주 카테지 내의
카테지 감옥에서 100 내지 150여 명의 무장 폭도들에 의해 총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브리감 영이 뒤를 이어 교회를 인도했으며 교회를 서쪽으로 1300마일이나 떨어진 계곡으로 안전하게 옮겨 놓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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