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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보사업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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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와 계보사업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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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기록서 작성을 위한
족보해독(族譜解讀) 안내

anib13.gif 대표(한국/중국/일본)           anib13.gif 전국 각 성씨 종친회 주소

머리말
족보(族譜)소개
한국 족보의 한글화(化) 현황
족보를 사용하여 조상 기족기록서를 작성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우리 가족은 족보에 어떻게 실리는가?
족보 개설
족보해독 요령
1. 개인역사 기록사항
2. 개인역사의 기록서식 및 표제자
    남편
    가. 인명(본명 및 별명)
    나. 출생 연월일
    다. 직위 및 칭호
    라. 사망 연월일 및 사망시 년령
    마. 묘소 및 묘소 소재지

    배우자(아내)
    가. 배우자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
    나. 본관성씨
    다. 배우자(아내)의 4대 조상 성명
    라. 출생/사망 연월일
    마. 묘소 및 묘소 소재지
3. 입양자 기록의 식별
4. 4대 조상 프로그램

질의 응답

부 록 1
 1. 인명(본명과 별명)

     
    이름이란?

성(姓)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명칭. 넓게는 성과 이름을 모두 합쳐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한국 중세어에서 '일홈' 또는 '일훔' 등으로 표기되고 있지만, '이르다(謂)'나 '말하다'는 뜻을 가진 옛말 '닐다'에서 출발하여 '닐홈-일홈-이름'으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를 이르는 것이 곧 이름이기 때문이다.


[ 토박이 이름과 한자 이름 ]

이름은 사람이 삶을 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토박이말로 지었던 이름이 한자의 유입과 함께 한자 이름으로 지어지면서 오늘에 이른다. 이름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아명(兒名), 관명(冠名), 자(字), 호(號), 시호(諡號) 등이 그것이다.

아명은 어린아이 때의 이름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경우 이(珥)는 관명이지만, 아명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이 꿈에 용을 보았다 하여 현룡(見龍)이라 하였다. 자는 숙헌(叔獻)이고 호는 율곡 외에도 석담(石潭), 우재(愚齋) 등이 있다.

관명은 장성해서 그 집안의 항렬에 따라 짓는 이름이고, 자는 대체로 혼인한 후에 본이름 대신 부르는 이름으로 일상생활에서는 어른 아닌 사람들이 이 자를 불렀다.

호는 자 이외에 쓰는 아명(雅名)으로 학자, 문인, 서화가들이 가지는 또 하나의 이름이었고,

시호는 임금이나 경상(卿相), 유현(儒賢) 등이 죽은 뒤 임금이 그 행적을 칭송하면서 추증하는 이름이었다.

오늘날에는 그 중에서 아명 등은 거의 없어지고 관명, 호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아명은 대체로 무병장수를 염원하면서 천하게 짓는 경향이 있어 개똥이, 쇠똥이, 말똥이 등의 이름도 흔했다. 관명이 '희(熙)'였던 고종 황제의 아명이 개똥이였고, 황희(黃喜)의 아명은 도야지(都耶只)였음이 그 사례이다. 아명이 그대로 관명으로 되어 한자로 '개동(介東), 계동(啓東), 소동(召東), 소동(蘇同), 마동(馬銅), 마동(馬東)'으로 되기도 하였다.

이상은 사대부 집안 남자의 경우이고, 서민들은 아명으로 평생을 살다 가기도 하였다. 여성의 경우, 특별한 사례 외에는 출가와 함께 아명은 없어지고 대신 택호(宅號)가 따랐다.

이름을 한자로 지을 경우의 성명 3자 가운데에서 선택권은 1자밖에 없다(외자이름도 있지만). 성과 항렬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남은 1자도 같은 항렬의 동명이인을 피해야 하고 가까운 조상의 이름에 나오는 글자도 피했다.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의 이름은 토박이말이었으나, 한자의 유입과 성(姓)의 보급에 따라 한자식 이름으로 차츰 바뀌어 내려오는 현상은 땅이름의 경우와도 상통한다. 사람의 이름이 한자로 바뀌는 것은 땅이름이 한자화했던 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부터 심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이름에서도 그것이 토박이 이름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가령 신라의 시조왕 '혁거세(赫居世)'부터가 그렇다. '불거뉘'의 한자 표기이기 때문이다. 또 3대왕 ,유리(儒理)'와 14대왕 '유례(儒禮)'는 똑같은 '누리'의 음사(音寫)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고, 백제의 3대왕 '기루(己婁)'나 21대왕 '개로(蓋鹵)'도 같은 토박이말의 다른 표기인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의 상류계급에도 토박이 이름이 있으면서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한자식 이름을 썼던 듯하다. 박제상(朴堤上)의 경우, 또다른 이름인 '모말(毛末)'이 그 토박이 이름이었다고 하고, 김유신(金庾信)의 두 누이동생인 보희(寶姬), 문희(文姬)에게도 '아해(阿海)' '아지(阿之)'와 같은 토박이 이름이 있었음이 이를 말해 준다. 백제왕의 경우도 시조왕 '온조(溫祚)'로부터 23대 '삼근(三斤)'까지는 토박이 이름의 한자 표기이고, 24대 '동성(東城)'부터가 한자식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토박이 이름과 한자 이름의 혼재(混在)는 고려시대로 이어지고, 다시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에 와서 성이 더 많이 보급되고, 한자식 이름 또한 그에 따라 많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1910년 5월 10일에 완성된 민적부(民籍簿)에 의할 때, 그때까지 성이 없는 사람의 수가 있는 사람에 비하여 1.3배였으니, 토박이 이름인 사람도 그만큼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까지의 토박이 이름은 주로 하층계급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 토박이 이름의 기준은
1. 출산 장소에 따른 것(부엌손, 마당쇠)
2. 간지(干支)나 달 이름에 따른 것(갑돌이, 정월이)
3. 성격에 따른 것(억척이, 납작이)
4. 기원을 곁들인 것(딸고만이, 붙드리)
5. 순서에 따른 것(삼돌이, 막내)
6. 복을 비는 천한 것(개똥이, 돼지)
7. 동식물, 어류 이름에 따른 것(강아지, 도미)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동물 이름이다.

 


[ 다른 나라의 이름 ]

중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버지가 이름을 짓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字)는 성인이 되어 붙이는 이름으로, 그 이후로는 임금이나 부모 등 윗사람 외에는 자를 불러야 한다. 시(諡)는 신하의 경우 임금이 내리고, 임금의 경우 신하들이 생전의 공덕을 생각하여 짓는다. 사람이 죽은 다음 생전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 밖에 유명(乳名), 동명(童名) 또는 서재의 이름이나 사는 곳의 이름 등을 따서 짓는 아호(雅號), 별호(別號)가 있는데, 한 사람이 여러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서양 사람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2종류로 이루어진다. 즉, 개인을 나타내는 퍼스트 네임(또는 세례명)과 가문의 이름인 패밀리 네임(또는 surname)이다. 그러나 11세기 이전의 영국에서는 하나의 이름 밖에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그들은 이크네임(ekename:지금의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었다. 예컨대, 지금은 성으로 된 둘리틀(Dolittle), 롱펠로(Longfellow) 등이 말해주듯 많은 성들이 이크네임에서 유래한다. 영국에서는 세례명의 선정을 목사가 거부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영국이나 미국 쪽이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보다 더 자유롭다고 한다. 세례명 외에 중간 이름을 넣어 2개의 실명을 가지는 습관은 독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집안을 자랑하기 위하여 모계(母系)의 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같은 이름의 사람과 구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유럽 사람의 이름은 본디 공통되는 것이면서 나라에 따라 부르는 법이나 철자에 변화되는 것이 많다. 영어의 찰스(Charles)는 라틴어의 카롤루스(Carolus:용감하다)에서 온 것인데, 독일에서는 카를(Karl, Carl)로, 프랑스에서는 샤를(Charles), 이탈리아에서는 카를로(Carlo), 에스파냐에서는 카를로스(Carlos)이다.

유럽쪽의 이름은 개인 이름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가문 이름인데, 헝가리만은 가문 이름이 먼저이고 개인 이름은 나중이다. 그 점은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경우와 같다. 인도 사람들의 이름은 성과 이름으로 되어 있고, 성을 뒤에 놓는 점에서 유럽과 같지만, 인도네시아나 미얀마와 같이 성은 없고 이름만 있는 나라의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건 천민이건 이름이 모두 같아서 수카르노, 수하르토, 나수티온이라는 이름뿐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우 누' 또는 '우 탄트' 했을 때 마치 성과 이름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우는 미스터라는 뜻이고 이름은 그냥 '누'이며 '탄트'일 뿐이다.

 


 2. 육십갑자(六十甲子)
 3. 묘의 방향 기록에 관한 이해
 4. 조선왕조 품계표
 5. 조선시대 학과 및 과거일람표

연대비교표 제1부
 1. 일러두기
 2. 연대비교표 사용법
 3. 목차
 4. 연대 비교표 (고려시대: 서기 904-1391)
 5. 연대 비교표 (조선시대: 서기 1392-1896)
 6. 연대 비교표 (대한제국 시대: 서기 1897-1910)
 7. 연대 비교표 (일본제국 시대: 서기 1910-현재)
 

부록 2

머리말

가족역사 사업의 주된 작업은 족보를 사용하여 조상의 가족기록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족보는 대부분 한글화 되어 있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최근에 편찬하는 족보는 한글화가 보편화되고 있고 나아가 개인의 사진가지 넣는 족보도 탄생하고 있기도 하나 과거의 족보를 참고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운 점이 많다. 족보를 보고 내용을 해독하지 못하면 가족기록서 작성이 불가능하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힘겹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족보 보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 교재「족보해독 안내」는 족보를 처음 대하는 사람이 족보를 보고 조상 가족기록서를 작성할 때 겪게 되는 심적인 부담을 다소나마 덜어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본 교재는 참고 자료가 극히 빈약한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므로 사용과정에서 적잖은 허점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허점이 발견 되는대로 스테이크 가족 역사 위원회에 통보해 주면, 동(同) 위원회는 이를 수정, 보완하여 적절한 시기에 개정판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역사 사업 발전을 위해 많은 지도와 편달이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본 서를 작성함에 있어서는 전(前)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인 이현종(李絃淙) 박사의 저서「동양연표」와 계보협회가 발행한「연세대조표(年歲對照表)」그리고 동아백과사전이 참고 되었음을 밝힌다.

                               1994년 2월    인천 스테이크 가족역사 위원회

(*인터넷 버전: 본 <가족기록서 작성을 위한 족보해독 안내>는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 인천스테이크(교구)에서 발행한 자료를 주로 인용하였음)

 

차례

족보(族譜)소개

족보의 의의

족보(族譜)는 성씨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의 하나로 시조(始祖) 부터 역대 조상의 얼과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겨져 있으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이 족보에 실려있어 나와 집안의 뿌리를 알수있는 한 집안의 역사책이다. 이에따라 옛날부터 족보는 집안의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이를 대할때는 상위에 모셔놓고 정한수를 떠서 절을 두번한 후에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조상을 대하듯 하였으며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이처럼 소중하게 여겨온 족보가 해방후의 서양화와 지금의 핵가족 제도가 되면서 봉건사상의 유물로만 생각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이 일고 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에서, 또 지금도 '근본이 없는 사람' 으로 치부되었을 때 그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이 족보를 왜 그렇게 소중히 여겼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족보는 '피의 기록이며 혈연의 역사' 이다.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지켜온 족보를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야 할 것이다.

 



족보의 역사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잘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외국에도 '족보학회'나, 심지어는 족보전문 도서관이 있는 곳이 있는 등 가계(家系)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우리처럼 각 가문마다 족보를 문헌으로까지 만들어 2천년 가까이 기록 해온 나라는 없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다.

성씨 관계의 가장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는 족보는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었으며, 개인의 족보를 갖게 된것은 한(漢) 나라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만들어 과거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이다. 특히 중국 북송(北宋)의 문장가인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후 모든 족보의 표본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고려 의종(18대, 1146~1170)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좭이 처음이다. 그러나『고려사좭를 보면 고려 때에도 양반 귀족은 그 씨족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고, 관제(官制)로서도 종부시(宗簿寺)에서 족속보첩을 관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귀족 사이에는 보계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사적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나, 1476년(조선 성종7년)의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좭가 체계적인 족보 형태를 갖춘 최초의 족보이다. 이후 1565년(조선 명종20년)에는 『문화유씨 가정보(文化柳氏 嘉靖譜)좭가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족보가 이 때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족보의 대부분은 족보간행을 위해 초안을 하고 관계 자료를 충실히 보완한 뒤 간행에 착수하여 내용에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의 족보들은 초안이나 관계 자료의 검토, 고증도 없이 자의적으로 간행된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자의적인 수식이 가하여 졌음은 물론이며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선대의 벼슬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작하고, 심지어 명문 집안의 족보를 사고 팔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아니라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시조의 유래를 중국에 두어 기자(기원전 1122년 우리나라에 왔다고 함)를 따라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거나, 중국의 인물을 고증도 없이 조상 이라고 하는 식으로 족보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중화사상에 물들은 일반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족보를 간행함으로써 자신의 가문의 격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족보의 종류

1.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 아래에 각각 다른 계파와 본관을 가지고있는 씨족을 함께 수록하여 만든 족보책이다.

2.족보(族譜), 종보(宗譜) 본관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를 수록한 족보책으로, 한 가문의 역사와 집안의 계통을 수록한 책이다.

3.세보(世譜), 세지(世誌) 한 종파 또는 그 이상이 같이 수록되어 있거나, 한 종파만 수록된것을 말하며 동보(同譜), 합보(合譜)라고도 한다.

4.파보(派譜), 지보(支譜) 시조로 부터 시작하여 한 종파만의 이름과 벼슬, 업적 등을 수록한 책이다. 이들 파보에는 그 권수가 많아 종보를 능가하는 것도 적지 않다. 파보는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증가되어가고, 그 표제에 연안김씨파보, 경주이씨 좌랑공파보, 순창설씨 함경파세보 등과 같이 본관과 성씨 외에 지파의 중시조명 또는 집성촌, 세거지 지명을 붙이고 있으나, 내용과 형식에서는 족보와 다름없다.

5.가승보(家乘譜) 본인을 중심으로 수록하되, 시조로부터 자기의 윗대와 아랫대에 이르기까지의 이름과 업적 ,전설, 사적을 기록한 책으로 족보 편찬의 기본이 된다.

6.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낸 도표로서, 한 씨족 전체 또는 한 부분만을 수록한 것이다.

7.가보(家譜)와 가첩(家牒) 편찬된 형태, 내용에 상관없이 동족 전부에 걸친 것이 아니라 자기 일가의 직계에 한하여 발췌한 세계표(世系表)를 가리킨다.

8.만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하며, 국내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줄기를 추려내어 모아놓은 책으로 모든 족보의 사전 구실을 하는 것이다. 『청구씨보(靑丘氏譜)좭, 『잠영보(簪纓譜)좭, 『만성대동보(萬成大同譜)좭,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좭 등이 있다.

9.기타 『문보(文譜)좭, 『삼반십세보(三班十世譜)좭, 『진신오세보(縉紳五世譜)좭, 『호보(號譜)좭와 같이 현달한 조상의 세계를 명백히 하려고 한 보서(譜書)나 『대방세가언행록(帶方世家言行錄)좭, 『보성선씨오세충의록(寶城宣氏五世忠義錄)좭 등과 같이 조상 중 충,효,절,의가 특히 뛰어난 사적과 공훈을 수록한 것도 있다.
또한, 환관(내시) 사이에도 계보를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이 다른 자손을 입양시켜 자손으로 삼고 가계를 보존하고 있는 양세계보(養世系譜) 등도 있다.

 

한국 족보의 한글화(化) 현황

오늘날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여러 성씨(姓氏)파보(派譜)를 한글화 정도에 따라 분류하여 족보해독에 있어 난이도(難易度)가 각기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다.

1. 전문(全文)이 한글화된 족보

   이 족보는 본문(本文)이 전부 한글화된 족보다. 한글문장 뒤에 한자(漢字)로 된 원문(原文)이 또 실려 있다. 그리고 각 문장 마다 주어(主語) 다음에 우리말 조사(助辭)「...는」자가 붙어져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 족보 중 가장 현대화된 족보다. 그러나 반면, 이 족보는 출생/사망의 해가 서기(西紀)로 표시되어 있지 않고 재래(在來)의 족보처럼 무슨 왕(王) 몇 년과 우리가 알 수 없는 육십(六十) 간지(干支)의 하나로 나타내어져 있어 이해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족보는 아직 완전히 현대화(現代化)된 족보라고는 할 수 없다.
(전문이 한글화된 족보의 예(例)

2. 부분적으로 한글화된 족보

이 족보는 본문이 실린 모든 성명(姓名)만이 그 밑에 한글이 표기되어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은 한문(漢文)으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렵다. 출생/사망의 해는 재래의 족보처럼 무슨 왕(王) 몇 년과 간지(干支)로 된 족보가 있고 무슨 왕(王) 몇 년/간지(干支)에다가 서기 연수(年數)가 추가되어 부분적으로 현대화된 족보가 또 있다.
(부분적으로 한글화된 족보의 예-성명만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음)

(출생/사망의ㅡ 해가 서기연수/군왕이름/간지로 나타내어져 있어 부분적으로 현대화된 족보의 한 예)


3. 한글화되지 않은 족보

전문(全文)이 한자(漢字)로 된 재래(在來)의 족보를 뜻한다. 이 족보는 현대인에게 생소한 어휘들이 많고 각 문구(文句) 사이에 띄어쓰기나 콤마(comma)가 없어 이해하기가 힘들다. 뿐만 아니라 출생/사망의 해가 서기(西紀)로 표시되어 있지 않고 군왕(君王)이름 (및 재위연수)에다가 족보를 사용하여 가족기록서를 작성하기가 매우 힘들다.
(한글화되지 않은 족보의 예(例)

이상과 같이 우리나라에는 누구나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현대화된 족보는 드믈다.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한글화된 족보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모든 족보가 조선시대(朝鮮時代) 말기(末期) (대략 1800년대) 이전으로 올라가면서 여전히 옛날 기록방식을 그대로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기 이후로 내려오면서는 모든 족보가 단순화되고 더러는 현대화된 기록방식을 따르고 있어,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족보를 사용하여 조상 기족기록서를 작성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1. 족보는 한자(漢字)로 된 본문(本文)이 한글로 표기(表記)되어 있어도 그것이
    해설이 아닌, 문장속에 띄어쓰기나 콤마(comma)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족보와 아직 한글화 되지 않은 족보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2.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족보라 하더라도 개인 역사가 기록된 방주(倣註)마다
    동일한 서식(書式)과 표제(表題)자(字)가 있으며 이 서식과 표제자만 알아두면
    문장속에 띄어쓰기나 콤마가 없어도 글 뜻의 단락(段落)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고 따라서 원하는 인적사항을 뽑아낼 수 있음을 발견한다.

3. 따라서 가족기록서를 작성할 때에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많은 한자와
   어휘를 몰라도 원하는 가족역사 기록사항을 어렵잖게 뽑아낼 수 있다.

4. 출생, 사망의 해를 서기로 고치는 방법은 뒤에 설명되겠지만 본 교재 뒤에
    나오는 연대 비교표를 이용하면 해결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족보에 어떻게 실리는가?

족보를 읽다보면 방주(傍註)의 설명이 개인따라 길고 짧은데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하여 우리 가족은 족보에 어떻게 실리는지 알아본다.

1. 종친회에서 족보(파보)편찬이나 족보증보(增補) 계획이 결정될 때, 이 임무를
    맡은 관계 위원회는 종중의 모든 가족들에게 개인역사 기록사항
    ('개인역사 기록사항' 참조)을 전해 줄 것을 요청한다.

2. 이 요청에 응한 가족은 그들이 전해 준 자료대로 족보에 실리게 되지만,
    응하지 않은 가족과 응하지 못한 가족은 종중 족보에 실려지지 않는다.

3. 족보를 증보하는 경우, 편찬자들은 이 증보계획에 응하지 않거나 응하지 못한
    가족들에 대해 기존의 족보에 실린 그대로 신간족보에 싣는다.

4. 개인역사 기록란9방주)의 기록범위는 족보에 등재된 자의 신분에 따라
    달라진다.

5. 종중사람들이 자기 가족 또는 친족에 대한 자료를 제공할 때 인적사항을
    불완전하게 전하는 수가 있다. 이 경우 족보 편집자들은 입수된 자료가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족보에 싣게 된다.

6. 어떤 족보 편찬자들은 역대 군왕들의 재위기간 및 즉위연수표를 정확한
    것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족보에 나오는 출생/사망의
    해(년) 기록이 신빙성있는 공인 연대표와 맞지 않는 결과가 생긴다.

7. 종중 족보가 만들어지기 전의 선조들은 족보에 싣기 위하여 우리 조상들은
    선조의 개인 역사가 담긴 자료나 문헌을 상고했다. 그리하여 문헌에 선조의
    개인역사가 단 한가지라도 기재되어 있으면 그것을 뽑아 족보에 실었다.

8. 이상에서 들은 여러 이유로 하여 족보안의 개인 기록이 개인에 따라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며 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족보 개설(槪設)

 1. 족보 첫 권 서두에는 족보의 연혁(沿革), 서문, 시조(始祖) 탄생의 내력,
    성씨의 분파별 세계도(世系圖, 즉 가계도), 범예 등이 실려 있다.
 2. 족보 본문에는 그 파의 종중에 속하는 모든 가족 구성원 개개인과 그의
     배우자 (아내)의 가족역사가 실려 있다.
 3. 족보 본문 페이지는 부모의 세대와 자녀의 세대를 구분하기 위하여 여러
     층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상층은 부모의 세대, 하층은 자녀의
     세대를 나타낸다.
 4. 페이지 맨 아래층 세대는 그 다음 세대로 계속하기 위해 각 성명자의 좌측
     또는 밑에 몇 페이지를 보라는 간단한 문구가 적혀 있다.  
 5. 페이지 맨 위층은 이 세대가 몇 페이지로부터 계속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각 성명자의 우측 또는 밑에 몇 페이지를 보라는 간단한 문구가 적혀 있다.
 6. 각 층의 성명자가 시조로부터 몇 세손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각 층에는
    해당하는 世 (예를들면 14世, 15世 등) 가 표시되어 있다.
 7. 모든 남성의 성명은 성씨가 생략된채 큰 활자체로 쓰여져 있으며 그 위에는
    아들 子자가 쓰여져 있고, 여성(딸)은 현대화된 족보에는 이름이 실려 있지만
    재래의 족보에는 사위 이름이 실리고 그 위에 '女' 또는 '서(壻)'자가 쓰여져
    있다. '女"는 딸을 의미하고 '서'는 사위를 뜻한다.
 8. 모든 남성 성명자의 좌측 옆에 그 사람의 인적사항(개인역사)이 실려 있다.
 9. 배우자(아내)에 관한 기록은 남편기록이 끝난 다음에 나타나는데,
     보통 "배(配)" 자가 첫 머리에 나타나 있다. 배우자가 현재 생존하는 경우에는
     配 대신 "室"자로 나타난다.
10. 父(아버지)의 성명과 첫 번째 아들 (반드시 장자는 아님)의 성명은 동일
     수직선 상의 상하층에 위치하고, 나머지 다른 아들들과 딸들의 이름은 첫
     번째 아들과 같은 층에 좌측으로 차례로 게재되어 있다. 위층의 부모와
     아래층의 이 구역내에 속하는 자녀들이 한 가정을 이룬다.   
      

 

     연대 비교표


동양 연대 비교표
 

서 기

간지

단 기

한 국

일 본

중 국

1900

庚子

4233

光武4

 

 

 

(메이지)

明治33

(淸)

德宗26

1901

辛丑

4234

光武5

明治34

德宗27

1902

任寅

4235

光武6

明治35

德宗28

1903

癸卯

4236

光武7

明治36

德宗29

1904

甲辰

4237

光武8

明治37

德宗30

1905

乙巳

4238

光武9

明治38

德宗31

1906

丙午

4239

光武10

明治39

德宗32

1907

丁未

4240



隆熙1

明治40

德宗33

1908

戊申

4241

隆熙2

明治41

德宗34

1909

己酉

4242

隆熙3

明治42





宣統1

1910

庚戌

4243

 

隆熙4

明治43

宣統2

1911

辛亥

4244

 

 

 

 

 

 

 

 

 

明治44

 宣統3

1912

壬子

4245

 

 

 

 

 

 

 

(다이쇼)

大正1

 

 

 

1

1913

癸丑

4246

 

大正2

 2

1914

甲寅

4247

 

大正3

 3

1915

乙卯

4248

 

大正4

 4

1916

丙辰

4249

 

大正5

 5

1917

丁巳

4250

 

大正6

 6

1918

戊午

4251

 

大正7

 7

1919

乙未

4252

大正8

 8

1920

庚申

4253

大正9

 9

1921

辛酉

4254

大正10

 10

1922

壬戌 

4255

大正11

 11

1923

癸亥 

4256

大正12

 12

1924

甲子 

4257

大正13

 13

1925

乙丑 

4258

大正14

 14

1926

丙寅 

4259

 

 

 

 

 

 

 

(쇼와)

昭和1

 15

1927

丁卯

4260

昭和2

 16

1928

戊辰

4261

昭和3

 17

1929

己巳

4262

昭和4

 18

1930

庚午

4263

昭和5

 19

1931

辛未 

4264

昭和6

 20

1932

壬申 

42565

昭和7

 

 

 

21

 大同1

1933

癸酉 

4266

昭和8

22

 大同2

1934

甲戌

4267

昭和9

23

 康德1

1935

乙亥

4268

昭和10

24

 康德2

1936

丙子

4269

昭和11

25

 康德3

1937

丁丑

4270

昭和12

26

 康德4

1938

戊寅

4271

昭和13

27

 康德5

1939

乙卯

4272

昭和14

28

 康德6

1940

庚辰

4273

昭和15

29

 康德7

1941

辛巳

4274

昭和16

30

 康德8

1942

壬午

4275

昭和17

31

 康德9

1943

癸未

4276

昭和18

32

 康德10

1944

甲申

4277

昭和19

33

 康德11

1945

乙酉

4278

8.15 政府
獨立前 

昭和20

34

 康德12

1946

丙戌

4279

昭和21

 

35

1947

丁亥

4280

昭和22

 

36

1948

戊子

4281

昭和23

 

37

1949

己丑

4282

 

 

 

 

昭和24

 

 

 

 

 

 

 1

1950

庚寅

4283

昭和25

 2

1951

辛卯

4284

昭和26

 3

1952

壬辰

4285

昭和27

 4

1953

癸巳

4286

昭和28

 5

1954

甲午

4297

昭和29

 6

1955

乙未

4288

昭和30

 7

1956

丙申

4289

昭和31

 8

1957

丁酉

4290

昭和32

 9

1958

戊戌

4291

昭和33

 10

1959

己亥

4292

昭和34

 11

1960

庚子

4293

昭和35

 12

1961

辛丑

4294

昭和36

 13

1962

壬寅

4295

昭和37

 14

1963

癸卯

4296

昭和38

 15

1964

甲辰

4297

昭和39

 16

1965

乙巳

4298

昭和40

 17

1966

丙午

4299

昭和41

 18

1967

丁未

4300

昭和42

 19

1968

戊申

4301

昭和43

 20

1969

己酉

4302

昭和44

 21

1970

4303

昭和45

 22

1971

辛亥

4304

昭和46

 23

1972

壬子

4305

昭和47

 24

1973

癸丑

4306

昭和48

 25

1974

甲寅

4307

昭和49

 26

1975

乙卯

4308

昭和50

 27

1976

丙辰

4309

昭和51

 28

1977

丁巳

4310

昭和52

 29

1978

戊午

4311

昭和53

 30

1979

己未

4312

昭和54

 31

1980

庚申

4313

昭和55

 32

1981

辛酉

4314

昭和56

 33

1982

壬戌

4315

昭和57

 34

1983

癸亥

4316

昭和58

 35

1984

甲子

4317

昭和59

 36

1985

乙丑

4318

昭和60

 37

1986

丙寅

4319

昭和61

 38

1987

丁卯

4320

昭和62

 39

1988

戊辰

4321

昭和63

 40

1989

己巳

4322

 

 

 

 

(헤이세이)

平成1

 41

1990

庚午

4323

平成2

 42

1991

辛未

4324

平成3

 43

1992

壬申

4325

平成4

 44

1993

癸酉

4326

平成5

 45

1994

甲戌

4327

平成6

 46

1995

乙亥

4328

平成7

 47

1996

丙子

4329

平成8

 48

1997

丁丑

4330

平成9

 49

1998

戊寅

4331

平成10

 50

1999

己卯

4332

平成11

 51

2000

庚辰

4333

平成12

 52

 

 

조선시대 학교 및 과거일람표

 

학교별

설립
년대

소속

정원

자격

교관.교수

학과

비고

대별

세별

대학제

태조 7년(1398)

정부 직할
최고 교육
기관

200

진사,
생원,
사학유생
중에서
선출된 자

지사1,
동지사2,
대사성2,
사성2,
사예3.
사업2,
직강4,
학논3,
겸직강1,
전적13
박사3,
학정3,
학유3,
겸박사3.
겸학정3,
겸학유3,
겸직장1,
겸봉사1

경술과 문예를 주로하고 정주학을 봉독구제를 보면 대학제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서, 춘추, 예기, 주역의 차례로 승진 하였음.

속대전에 74인원증제주 1인사성,
사예각감1인 증사업 1인

논어제

맹자제

중용제

시   제

서   제

춘추제

예기제

주역제

중   학

태종11년
(1411)

정부직할
한성소재
(현 고교과정)

100

 

교수 2
훈도 2

경술과 문학

속대전에
각 감 9인
매년 6월 남학시험에서 합격한자를 승보라고함.

남   학

서   학

동   학








한   학

 

사간원

35

중류계급
자제

 

한학, 몽학.
여진학. 왜학
경국대전사서,
노을대, 박통사,
소학, 오륜전비  

속대전에
가40

몽  학

10

가25

여진학

20

청학34

왜   학

15

가25

의   학

 

전의감

50

중류계급
자제

 

경국대전
외과학과목

가6

혜민서

30

가32

천문학

 

관상감

70

"

 

"

가20

지리학

15

감5

명과학

10

 

산   학

 

호  조

15

"

 

산학(예.
철술삼개사가)

가46

율   학

 

형  조

40

"

 

경국대전
과거과목

가40

화  학

 

도화서

15

"

 

죽. 산수.
인물령모화초

가16

도   학

 

초격서

10

"

 

노장중심철학

 

 

 

사  립

 

7, 8세부터
15,6세아동

훈장, 접장

동몽선습
통감, 소학,
사서삼경,
사기당송문습자

사학,
향교의
예비학교

 

태    조
랑위초

지방정부
직할

부목90
도호부70
군   50
현   30

 

대군
   교수 1
   훈도 1
소군
   훈도 1 

소학,
사서오경,
근사록,
사제

16세이하
입학불가
매년6월에
도회소시험에 합격한 자를 생원진사 복시에 나가도록 한다.
(외방공도회)








 한   학

 

 

평양, 의주,
황주
각 30

 

 

 

여진학

 

 

의주5, 창성5, 북청10, 리산5, 벽동5,
위원5, 만포5

왜   학

 

 

제포,
부산포 각10
감포6

의   학

 

 

부,
대도호부, 목

의   학

 

 

각14,
도호부12,
군10,
현8

율   학

 

 

부,
대도호부, 목 각14,
도호부12,
군10, 현8 
 

 

중종63
(1541)

 

사액서원 20명,
문묘종사된
현유서원은 30,
사액서원 15

지방유사의
각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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