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yellow01_next.gif 예수그리스도복음 yellow01_next.gif기적의 역사 yellow01_next.gif제3장 교회 성장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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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교회성장의 배경
(스펜서 파머 / 마크 피터슨)
 


 

 1. 높은 도덕적 표준을 지킨다

 

 2. 일의 가치와 경제적 자립을 강조

 

 3. 가정은 지상의 천국이라는 믿음

 

 4. 교육을 중시

 

 5.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완벽한 복지프로그램 실시

 

 6.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세계적인 자선구호활동 전개

 

 7. 희생과 봉사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평신도 교회 운영



  이와 같은 교회성장의 배경은 무엇인가? 과연 후기성도는 어떠한 생활 철학을 가지고 있기에 그토록 성장이 빠른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엄청난 편견과 오해와 왜곡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러한 것들이 장애물이 되지 않고 경이적인 발전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 장에서는 성장의 배경이 되는 후기성도의 생활철학과 실천원리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1. 높은 도덕적 표준을 지킨다.


제일 먼저 후기성도(몰몬)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높은 도덕성이다. 교회 신자들은
신권*(神權)을 받거나 교회직책을 맡게 되는 경우에는 사전에 지도자들과 접견을 하게 되는데 이때 지도자들은 먼저  당신이 이웃이나 고객과의 모든 거래에서 항상 정직합니까? 라는 질문을 하고 신자들은 그때마다 "네" 라고 대답하면서 모든 일과 거래에 정직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된다.

몰몬 신학은 정직한 거래를 절대적으로 강조한다. 교회는 일부 수익사업을 가지고 방대한 교회행정을 맡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유명한 비즈니스 잡지인 「네이션스 비즈니스(Nation`s Business)」는 "몰몬교회는 1센트 버는 것까지도 세금을 낸다"고 칭찬한 바 있다.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도 일찍이 "몰몬교회는 가지고 있는 수익사업이나 부동산관리를 포함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가끔 면세를 주장하기는 하지만 연방정부가 정한 것이든 주정부가 정한 것이든 그 아래 지방정부가 정한 것이든 완전한 세금을 내는 것에 큰 긍지를 갖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 신권(神權) : 완전한 평신도의 교회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리해서 필요한 의식을 집행할 수 있는 신권(神權)을 신앙심 깊은 모든 남자회원에게 부여한다.

미국인들은 자녀가 정직과 성실을 기본 이념으로 가르치는 소년단원이 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미국의 소년단원 중에서 몰몬의 단원수는 미국 평균보다 엄청나게 높다. 소년단원의 최종 목표인 독수리(Eagle) 칭호를 받는 소년단원 비율도 제일 높다. 독수리(Eagle) 칭호를 받는 소년단원 비율에서 미국 평균이 1%임에 비하여 말일성도는 4%가 이 영예를 성취하고 있다. 그래서 후기성도 중에는 통계적으로 특별한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지난 1989년 강원도 인제에서 세계 잼보리 대회가 열렸을 때 단일 교파로는 가장 많은 소년단원이 참석했던 것도 몰몬이었으며 그 당시 일요일의 예배 때도 카톨릭, 개신교 등 8개 종교 단체 중의 하나로 몰몬은 독립된 예배의식을 가졌었다.

 위스콘신 대학의 사회학자인 로스박사는 "몰몬교회는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찰스 포터(Charles F. Porter)목사는 그의 저서 '종교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몰몬이즘의 역사는 이제 1백40년이 조금 넘었으나 오늘날 미대륙에서 최고로 성공한 종교로 등장했다. 이런 사실에 대해 비(非)몰몬이나 이방인들은 잘 모른다. 특히 미국의 동부에서 그러하다. 몰몬은 미국에서 최초로 관개시설을 이용하여 사막을 농업의 낙원으로 만들었다. 미주리 서쪽지역에서는 몰몬이 처음으로 신문을 발행하고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일찍이 시작한 교육제도로 그들은 수준이 높은 학교, 문인협회, 극장, 도서관 등을 갖추고 있었다. 유타의 문화와 번영의 수준은 다른 주에 비해 훨씬 높다. 우리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몰몬을 높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이 신앙의 기본지침으로 받아들이는 신앙개조 13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
우리는 정직, 진실, 순결, 인자 유덕, 그리고 만인에게의 선행을 믿는다. 진실로 우리는 바울의 훈계를 따른다 할 수 있으니-우리는 모든 것을 믿으며, 우리는 모든 것을 바라며,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견디어 왔으니,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이든지 유덕하고 사랑할 만하거나 혹 듣기 좋거나 혹 칭찬할 만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이것들을 구하여 마지 않는다."

 교회지도자들은 이러한 도덕적 표준을 문자 그대로 지키도록 강조한다. 교회는 혼전 성관계를 갖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가르치고 동성연애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마약, 흡연, 포르노, 도박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장도 노출이 심한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낙태행위와 낙태를 허용하는 입법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반대한다. 교회는 가정의 순결을 지키고 간음을 하지 않도록 경고하며, 동성연애를 하거나 간음하는 회원이 회개하고 그 행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파문한다.

 후기성도와 기독교 정통주의자들의 가치관은 비슷하다. 그러나 전통적 기독교에서는 정통주의를 자처하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덕적 표준에서 많은 예외를 허용하고 용인하는 반면에 몰몬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과거 미국정부가 행한 조사보고서에서는 후기성도가 집중된 유타주는 사생아 출산율이 미국 최하위로 나타나고 있고 정신과학회와 전국정신건강학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자료에는 유타주의 인구 10만명당 공공병원 정신병 환자수는 미국 평균의 5분의 1 정도로 전국 51개주 중 가장 낮은 숫자를 보여주고 있다.

 1989년 12월 캘리포니아주는 강력한 반(反)포르노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당초에는 어린이 학대를 형사처벌하는 법안으로 제안되었으나 몰몬교회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 어린이를 포르노의 대상으로 한 그림이나 사진을 소지하는 것까지도 형사처벌하는 반(反)포르노 법안으로 강화되었다. 이 법안의 내용은 교회 회원 중 한 사람이 제안한 것이며 변호사를 지낸 칠십인 정원회의 죤 카아막(John Carmack)장로는 주의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반(反)포르노 법안에 대한 지지를 강하게 피력하였다. 법안 통과후 정부관계자는 교회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와 뜻을 같이하는 몇몇 종교 기관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 법안은 주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첨단 가전제품의 등장과 함께 집안 깊숙한 곳에까지 침투한 포르노와 외설물을 추방하기 위하여 교회는 반(反)포르노 영화를 다수 제작하여 미국 전역의 상업방송과 유선방송 그리고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를 방영하여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도덕적인 표준을 높게 지키는 몰몬신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이행하고 있는 동유럽과 러시아 여러나라는 자본주의의 해악인 도덕적 타락이 자기 국민들을 오염시키지 않을까 하여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1992년 8월 23일에는 두 사람의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 프로듀서와 한사람의 텔레비전 기자가 솔트 레이크 시티를 방문하여 교회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이들은 사막위에 문명의 꽃을 피운 몰몬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1억5천만명 러시아인들에게 들려줌으로써 경제적 시련을 겪고 있는 러시아인들을 격려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1993년 5월 10일에서 25일 사이에 체코슬로바키아 국영 텔레비전의 방송기자 프레미슬 체크(Premysl Czeck)와 문화담당 프로듀서 라딤 스메타나(Radim Smetana)는 솔트 레이크 시티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를 방문하였다. 뉴스와 다큐멘터리 시간에 방영할 예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와 후기성도신자들의 생활태도를 취재한 기자는 체코사회가 사회주의체제에서 자유시장 경제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몰몬의 생활태도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돈과 재산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치관이라든가 생각하는 태도 등이 보다 중요하다"고 부연하였다.
몰몬 태버나클 합창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방문했을 때 네번이나 공연 장면을 전국에 방영한 인연이 있는 스메타나는 교회와 솔트 레이크 시티의 문화적인 측면을 담아서 방영할 준비를 하였다. 그가 놀란 것은 미국 영화에 흔히 나오는 그런 종류의 서부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를 몰몬들이 사막 위에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2. 일의 가치와 경제적 자립을 강조

 

 후기성도들은 일에 대한 성실성, 직장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강한 근로 의욕을 갖고 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측근에 세 사람의 몰몬신자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국가안보 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er)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Brent Scowcroft), 국내문제 및 경제정책담당 보좌관(Presidential Assistant for Domestic and Economic Policy) 로저 포터(Roger Porter), 그리고 대통령 의전비서관(Presidents Scheduler) 스티브 스타더트(Steve Studdert)가 그 사람들인데 세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널리 알려진 일벌레라는 점이다.

 서부 개척시대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브리검 영(Brigham Young)은 "남에게 고용되어 있는 사람은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그 주인에게 열심히 일해주라"고 가르쳤다. 후기성도들이 가진 또 하나의 경전인 교리와 성약 42장 42절에는 "게으르지 말라. 게으른 자는 밥을 먹지도 말아야 하며, 일꾼의 옷을 입지도 말아야 함이니라"고 가르친다.

 역사적으로 몰몬신자들은 비즈니스에 성공적으로 참여해 왔다. 이들은 서부 개척시대에 자립, 실용성,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특성을 발전시키고 기업가 정신과 더불어 무섭게 일하는 습관을 길렀다

 한편 이들의 신학은 정직한 거래를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창의력과 판단력을 존중하고 자유기업을 옹호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물질적인 부에 관한 청지기 직분을 강조하여 가진 것 안에서 살고 절약하고 저축하며 부채를 지지 말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것을 계속해서 가르쳐 왔다.

 이러한 원리를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몰몬들은 급변하는 경제적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고 놀랄 만한 경제적 성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교회행정과 조직운영은 사업활동에 필수적인 기량을 발전시키는 기회를 갖게 했다. 어린이나 젊은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모든 신자들은 직책에 부름을 받아 교회운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며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도 남자나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교회의 청중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교회의 젊은이는 지도자가 되는 기회가 주어지며 교사의 부름을 받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예산계획, 상담접견, 조직계획, 관리업무 수행의 기회는 항상 주어진다. 이러한 여러가지 경험을 통하여 신자들은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기량을 발전시키게 된다.

 오랜 기간동안 교회지도자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높은 수준의 근로윤리를 갖도록 가르쳐 왔고 비즈니스 활동이 옳은 방법으로, 바른 목적을 위해 수행되는 경우에는 물질적인 축복도 복음계획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또한 기업의 주인들은 관대하고 친절하도록 권고를 받고, 종업원들은 충성스럽고 부지런하도록 권고를 받아왔다. 브리감 영 대관장은 모두에게 근면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모든 남자와 여자들로 하여금 근면하고 사려 깊고, 행동과 사고에서 경제성과 효율성을 찾고, 함께 모였을 때 이웃의 관심사항을 살피고, 그 모든 것에서 행복과 발전을 찾으라"

 후기성도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장 26절)는 인류가 받은 첫번째 도덕률을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녀를 갖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축복이고 기쁨이며 또한 의무라고 가르친다. 몰몬 신학의 핵심적인 주제는 가정이다. 몰몬은 교회의 기본적인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교회 지도자는 "가정은 의로운 생활의 기반이며 어떤 다른 조직도 가정의 역할을 대치하거나 충족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말일성도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적 자녀라고 믿기 때문에 자기들이 기르는 자녀를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키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전에서 결혼성약을 맺고 그 성약에 충실하면 다음 세상에서도 가정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몰몬은 가정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부모는 자녀의 모범이 되도록 강조하고 "세상의 어떤 성공이라도 가정에서 실패하는 것을 보상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몰몬은 자녀를 많이 갖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인구 1천명당 출산율을 보면 미국의 몰몬신자들은 <도표3-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의 평균출산율보다 두배 가까이 높다. 미국의 전반적인 출산율이 해가 지남에 따라 낮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몬의 출산율은 여전히 평균출산율보다 두배 가량 높은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후기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특히 교회에 헌신적인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1950년까지는 교회의 성장을 보면 개종으로 인한 것보다는 신자들의 높은 출산율이 상당히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후기성도들의 출산율이 서서히 낮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주로 개종으로 인한 것이다. 후기성도의 가족수는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녀수가 많은 것은 앞으로 여전히 말일성도의 특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표3-2>는 미국의 경우,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그리고 종교가 없는 사람과 비교해 본 몰몬의 자녀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교회에 많이 출석하는 사람과 가끔 출석하는 사람과를 구분한 자녀수를 나타내고 있다. 개신교인은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거나 간에 종교가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균 두명 정도의 자녀를 갖고 있으며 가톨릭 신자는 두명반의 자녀가 일반적이다. 그에 비해 후기성도는 네명 정도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가톨릭 신자나 후기성도는 교회에 충실한 사람들이 자녀수가 약간 더 많은 반면에 개신교인은 교회에 충실한 사람들이 자녀수는 약간 적다.

 

3. 가정은 지상의 천국이라는 믿음


후기성도들은 가정이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고 믿는다. 후기성도들은 영적인 교육과 훈련 그리고 가족간의 사랑과 유대감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 매주 한 차례씩(주로 월요일 저녁에) 모여서
'가정의 밤'을 갖는다. 이 때는 기도를 하고 찬송가나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나누고 가족이 부딪치는 사회적인 문제나 교육에서의 어려움 또는 종교적 문제 등 갖가지 주제에 관해서 토론을 한다. 그리고는 맛있는 간식을 먹는 순서와 오락활동을 빠뜨리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도 모두 참여한다.

 후기성도들은 매일 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기도를 한다. 이것은 가족이 한마음으로 매일의 축복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하나님께 힘과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후기성도들에게 가정을 중시하는 전통이 만들어진 신학적 배경은 무엇인가? 후기성도는 결혼과 가족관계는 영원하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 조셉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이 세상에서 우리 가운데에 있는 똑같은 사귐이 저 세상에서도 있게 될 것 입니다. 다만 저 세상에서는 영원한 영광을 입게 되는 것만이 다릅니다. 부부관계와 부모 자식의 관계는 이 세상을 넘어서까지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훌륭한 부부관계와 부모 자식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으로 사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관계와 가족관계가 영원하다고 믿는 후기성도들에게는 훌륭한 결혼관계와 가족관계에 따르는 축복과 이익이 이 세상은 물론 다음 세상에서도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혼관계와 가족관계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하지 못한다면 저 세상에서도 행복은 계속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대관장은 신자들에게 가정을 '지상의 천국'으로 만들도록 권고하였다.

 "가정을 천국과 같이 만드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참으로 저는 천국은 이상적인 가정의 연장이라고 봅니다."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도 이렇게 가르쳤다.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천국에도 가정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주님의 성전에 가서 주님의 율법에 따라 현세와 영원을 위한 결혼의식을 행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영원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주님의 집에 가서 현세와 영혼을 위한 결혼의식을 가질 때는 이러한 결혼에 충실하겠다는 서약을 주님과 맺은 것입니다. 그러한 서약은 주님의 성전에 있는 계단에서 하나님과 천사들의 면전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품에 지니게 된 남녀가 어떻게 그 서약에 등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결혼서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을 미워하는 자의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을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한일서 제4장 20절) 

 그러면 이러한 신학을 가꾸어 온 결과로 말일성도들은 가정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보자. 먼저 말일성도의 이혼율을 살펴보자.

 <도표3-3>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의 경우 이혼은 모든 종교별 집단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종교가 없는 사람은 이혼율이 월등히 높다. 종교가 없는 남자의 39.2%, 여자의 경우는 44.7%가 한번 이상 이혼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보적인 개신교 신자의 경우는 남자의 24.5%, 여자의 31.7%가 이혼하고 보수적인 개신교인의 경우는 남자의 27.5%, 여자의 30.3%가 이혼한 경험이 있다. 가톨릭교도는 남자의 19.8%, 여자의 23.1%가 이혼한일이 있다.

 후기성도의 경우는 이들보다 훨씬 낮아서 남자의 경우가 14.3%, 여자의 경우 18.8%가 이혼한다. 참고로 한국의 이혼율을 보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높아져서 1991년에는 거의 12%에 달하였다. 1991년 한국에서는 32만4천3백18명이 결혼한 것에 비하면 3만7천8백18명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후기성도 중에서 신앙에 충실한 사람들은 성전에 가서 현세와 영원을 위한 결혼의식을 집행하는데 성전결혼을 한 사람들의 이혼율은 어떠한가? 성전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예비신랑과 신부는 결혼전 순결을 지켜야 하고 흡연, 음주, 마약을 피하고 거래에서 정직해야 하며 안식일 모임에 참석하고 말이나 행동에서 복음원칙에 위배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하여 성전결혼을 하는 사람들의 이혼율은 대단히 낮아서 일반 결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하여 5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남자의 경우는 5.4%, 여자의 경우는 6.5%에 불과하다. 이와 비교해서 일반 결혼한 신자의 경우는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이 남자 27.8%, 여자 32.7%에 달한다.

 브리검 영 대학교 교수인 팀 히이튼(Tim B. Heaton)과 크리슨 굿맨(Kristen L. Goodman)은 영원한 결혼에 관한 믿음은 이혼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연구 발표하면서 성전결혼을 하려는 신자는 결혼의 신성함을 믿고 배우자를 주의 깊게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고 결혼 후에도 좋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미국의 후기성도 중 성전결혼자의 이혼율은 한국의 이혼율과 비교해도 훨씬 낮은 편인데 한국의 2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배우자 중 한 사람이라도 10대이면 이혼율이 훨씬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나, 말일성도의 경우에는 둘다 10대라도 성전결혼을 하면 다른 연령층에 비하여 이혼율이 높아지지 않는다.

 후기성도들의 가정생활은 어떠한가? 앞에서 이미 후기성도들은 자녀를 많이 둔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일반적으로 종교를 가리지 않고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여자들은 자녀를 적게 가지려는 경향이 있으나 말일성도 가정에서는 교육을 많이 받은 여자들도 자녀를 많이 가지려 한다.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맥락에서 몰몬 신자들은 먼저 가신 조상을 찾아 자기들과의 관계를 밝히고 가족역사와 족보를 만들어 관심을 가계 전체로 넓힌다. 학자들 중에는 일반적으로 가족수가 많아질수록 가족간의 친밀감은 줄어들고 가정내에는 강제적인 규율이 지배하게 되나 말일성도의 가정에서는 반대로 가족이 많아질수록 애정이 커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류의 가정생활에는 지난 몇십년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십년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혼전섹스, 결혼하지 않은 동거생활, 이혼, 사생아 출생, 만혼, 동성연애, 혼외정사 등이 범람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결혼을 둘러싼 관념과 사고의 변화가 후기성도의 태도에는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일까? 후기성도들의 결혼중시 태도, 전통적인 가정을 지키는 주부역할, 자녀를 많이 갖는 것 등에 대한 생각은 바뀌고 있는 것일까?

몰몬의 가정생활에 대한 인구통계학적 연구에서 권위를 자랑하는 학자인 팀 히이튼(Tim B. Heaton)은 1980년대에 미국에서 세가지의 전국적인 조사를 행하여 이를 종합한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이 분석은 17개의 인종과 종교 집단으로 나누어 행한 것이다. 혼전섹스와 간통은 후기성도들에게는 커다란 죄악으로 간주되어 왔다. <도표3-5>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인종이나 종교 집단보다도 후기성도는 혼전섹스를 허용하는 경향이 적다. 다만 백인 개신교 근본주의자 집단만이 후기성도와 비슷한 수준을 갖는다.

 <도표3-6>에서 보는 바와 같이 후기성도들은 다른 집단에 비하여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비율이 낮다. 조사대상 집단의 평균이 26%이고 종교가 없는 백인의 47%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한 경험이 있음에 비해 후기성도는 13% 수준이다.

 히이튼 교수에 의하면 후기성도의 결혼율은 <도표3-7>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다른 집단보다도 높다. 최근 몇 년간 독신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나 후기성도의 경우는 변화가 없다. 또한 후기성도들 가운데는 교육수준이 높아져도 결혼율이 낮아지는 경향도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문명의 발달과 함께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크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후기성도들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기성도의 결혼 및 가족특성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는 한층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후기성도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가족이 많고, 결혼율이 높고,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비율이 낮고 이혼율이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히이튼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자료에서 우리는 몰몬의 가정생활은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보다 문제점이 적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후기성도들이 가정의 영원성을 굳게 믿기 때문에 결혼을 중요시하고 또한 가정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성실과 순결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후기성도의 가정생활에서는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신앙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후기성도는 가정생활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있다.
 후기성도들은 좋은 가정을 갖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경주하고 인내와 용서를 중시하고 희생을 감수한다. 후기성도에게는 가정은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 개인적 성장과 발전의 기회는 가정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서 온다는 것을 후기성도들은 잘 알고 있다. 후기성도들이 가정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종국적으로는 천국에 있으나 그 축복의 시작은 이 세상에서부터라는 것을 말일성도들은 잘 알고 있다.

 가정을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중시하는 후기성도들의 열매는 장한 어머니상이나 모범가정 선발에서 항상 나타난다.
 1983년 6월 22일 백악관에서는 미국 가정협회(American Family Society)가 선정한 아홉 가정이 초청되어 대통령부인 낸시 여사로부터 표창장을 받고 격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낸시여사는 다른 사람에 모범을 보인 이 가정들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 가정은 전국적인 규모로 조직된 심사위원들이 선정하였는데 아홉 가정 중 후기성도가 두 가정이었다. 키일러 가정(Keala Family)은 미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4대가 함께 사는 모범 가정으로 선정되었으며 오우스 가정(Oeth Family)은 군인가정으로서 자신들의 생활을 훌륭하게 이끄는 것도 쉽지 않은데 수없이 많은 어려운 이웃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와준 사연 때문에 선정되었다.

 1993년도 미국의 어머니(USA Mom of the Year)로 뽑힌 사람은 보니 카드(Bonnie Card)라는 몰몬신자로서 40명의 자녀를 키웠는데 이 중 10명은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고 30명은 입양한 아이들이었다. 입양아들은 폴리네시아, 한국, 인도, 중미, 멕시코, 아프리카 등 7개 소수민족의 자녀들인데 이 아이들을 종교 교육을 훌륭하게 시키면서 키워내고 지역사회 봉사를 잘 한 것으로 인해 1993년 미국의 어머니로 뽑힌 것이다.

 한편 1993년도 어린 아이들의 장한 어머니상(1993 National Mother of Young Children)은 각 주를 대표한 어머니 중에서 인디아나 출신의 몰몬신자인 미쉘 웨이트(Michelle K. Waite)에게로 돌아갔다. 51개의 각주를 대표한 어머니들 중에 8명의 몰몬신자들이 있었다.
 1992년 8월 15일 텍사스주 플라노에서 열린 1993년도 Mrs. USA선발대회에서는 산드라 어네스트(Sandra Earnest)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부인이 Mrs. USA로 뽑혔다. 이 부인은 10명의 자녀를 가진 독실한 몰몬신자였는데 선발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은 그녀가 믿는 복음원리에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고 그녀가 지키는 도덕적 표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많은 자녀를 잘 키우는 방법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Mrs. USA에 선발된 후 그녀를 위해 열린 여러번의 유명한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그녀는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누누이 강조하였다.

또한 그녀는 수많은 신문과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의 힘은 훌륭한 가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역설하였고 여러 시민단체에서 가졌던 강연회에서도 그녀는 정직과 도덕적 표준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그녀는 자기 직업란을 항상 주부(Homemaker)라고 쓰고 가정을 지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4. 교육을 중시


 후기성도는 교육의 중요성을 믿는다. 이들이 가진 경전에는 "무릇 사람이 무지하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느니라"고 가르친다. 또한 말일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지혜와 지식은 어떠한 것이든 다음 세상에 그대로 가져가게 된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얻은 예지는 어떠한 것이든지 다 부활할 때에 우리와 함께 부활하리라. 만일 어느 사람이 근면하고 순종심이 강하여 다른 사람보다 한층 많은 지식과 예지를 얻었으면 장차 오는 세상에서 그만큼의 유익을 얻으리라."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은 젊은이들에게 최대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도록 강조해왔다. 밀튼 베니언(Milton L. Bennion)이라는 교육자는 "몰몬 교회보다 더 자기 백성의 교육발전에 대해 완전한 지도를 하는 조직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지 의심스럽다"고까지 말할 정도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교육기간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교육을 중시하고 자체의 교육제도를 발전시켜왔다. 몰몬이 가장 많은 유타주의 예를 들면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초기 성도들의 선조는 대부분 뉴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들이었는데 이들은 지식과 학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교회가 조직된 1년 후인 1831년에는 학교와 교수와 교재에 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1833년에 교회는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예언자학교(The School of the Prophets, 선지자학교)로 불리는 성인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이는 성인교육에 있어서는 당시 세계의 선두를 달리는 일었다.

 이 학교에서는 역사학과 정치학, 히브리어를 포함한 언어, 문학과 신학을 가르쳤다. 이 학교의 교육 목표는 교회 지도자들로 하여금 세상에 경고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의 부름을 보다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이 학교는 미주리주, 일리노이주 그리고 유타주 시절에 부모가 자녀와 함께 공부하는 성인교육의 효시가 된다.

 1840년에 제정된 일리노이주 나부시의 헌장에는 시 경계내에 예술과 과학과 전문직업을 가르치는 나부시립대학(University of the City of Nauwoo)이라는 교육기관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였다. 1841년에 교육이 시작된 이 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시립대학이다. 이 대학의 교육 과목은 독일어, 불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와 같은 언어와 수학, 화학, 지학, 문학과 역사 등이었다. 이 학교는 같은 종류의 다른 학교에 비해서는 그 교육수준이 훨씬 높았으며, 교수진은 개척 도시로서는 유치하기 어려운 학문 수준이 상당히 높은 학자들로 구성되었다.

 이 대학의 수업은 일리노이주 나부시에서 쫓겨나 대평원을 횡단하여 유타로 가는 고난의 여행 속에서도 계속되었다. 지도자 브리검 영은 이동하는 성도들에게 모든 귀중한 논문을 한 질씩 준비하도록 지시하였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읽기를 즐기게끔 만드는 재미있고 유익한 모든 책과 지도와 도표와 도형을 준비하게 하였으며 다음 세대의 유익한 학문을 형성하게 될 각종의 역사, 수학, 철학, 지리학, 지질학, 천문학, 과학 그리고 각종 기술에 관한 글과 논문을 준비하도록 지시하였다.

 솔트 레이트 계곡에 도착하여 몇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통나무집에서 수업은 다시금 시작되었다. 도로설치 법안이 통과된 후 다음으로 성안한 법률이 미시시피 강 서부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설립하는 법안이었다.

 물질적인 부담이 컸지만 후기성도가 교육의 필요성과 가치를 망각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부 시립대학 헌장이 기초가 되어 1850년에 브리검 영에 의해 현 유타 주립대학의 전신인 데저렛대학(University of Deseret)이 설립되었다. 브리감 영은 이 대학 이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육은 사람의 생각을 명석하게 하는 힘이 되며 세상일을 잘하게 하는 힘이 되며 인생을 잘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는 또한 훌륭한 학교 선생은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설파하였다. 이와 같은 결과를 뒷받침하듯 1850년에 제7차 미국 총인구조사에서 밝혀진 미국의 문맹률은 4.92%였으나 말일성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타주는 0.25%에 불과했다. 1923년에 미국 교육 현황을 조사한 결과 몰몬 사회는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 소유자가 전체 미국 인구의 평균치보다 3배나 더 높은 교육열을 나타냈다. 또한 대학 진학 및 재학률은 미국평균에 비해 2배나 높았다. 또한 대학원 재학, 석사, 박사 학위 소유자의 비율도 미국이나 세계 어느 단체보다도 높았다.

 콜롬비아  대학교 명예교수인 손다이크 박사는 미국의 과학자와 현저한 업적을 남김 사람들의 출신을 파악하기 위해 카네기 재단의 요청으로 「미국의 명인전」 「교육계 지도자」 「미국의 과학자」 등의 책에 수록된 사람들을 각 주의 인구 비율로 주별 분포율을 분석한 결과 유타주가 가장 높았는데, 2위인 매사추세츠주보다 약 20%나 더 높았다. 과학자의 수도 유타주가 많았다. 2위인 콜로라도주보다 30% 정도가 앞서고 있다.

 개척자들이 서부의 사막에 집을 집기 시작한 후 1세기가 끝나갈 무렵 후기성도는 교육적인 업적에 있어서 미국과 전세계를 통하여 남을 앞서는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교수인 토마스 닉슨 카버 교수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몰몬교도보다 건전하고 유익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으며 이들만큼 낭비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과 접촉을 가져본 적도 없다. 몰몬처럼 건강한 집단을 연구해 본적도 없다. 또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그처럼 큰 어려움을 감내하는 사람들도 없다. 이런 점이 바로 몰몬을 불모지 사막에서 도시를 건설하는 개척자로 성공하게 한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은 교육 수준이야말로 몰몬이 세상의 물질적인 부에서도 성공한 이유의 하나가 된다. 분석가들은 중상류층이 되는 비율에서 몰몬들은 미국의 기독교 정통주의자들을 휠씬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의 연구결과는 후기성도의 교육수준이 인구전체로 본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수준에 대한 이런 경향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도표 3-8>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에서는 후기성도 가운데 대학교육을 받은 비율이 전국 평균의 두배에 달하며 영국은 전국 평균보다 약간 높다. 멕시코에서는 중학교 이상 높은 교육을 받은 비율이 전국 평균의 두배를 넘고 캐나다에서도 대학교육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높다. 아프리카에서도 후기성도 개종자의 교육수준이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2년에 뉴저지주에 있는 프린스턴 종교연구센터(Princeton Religious Research Center)는 미국내에서 교육수준과 종교적 열정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여 발표하였는데 일반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종교적 열정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스탠 올브레트(Stan L. Albrecht)와 팀 하튼(Tim B. Heaton)이 후기 성도를 상대로 연구한 결과로는 후기성도들의 경우에는 교육수준이 높아져도 종교적인 열정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 즉 어린이와 성인 모두 다양하고 풍부한 교회의 교육활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한다. 존 위소(John a. widtsoe)라는 후기성도 교육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교육이 지식의 집합이면서도 정신을 훈련시키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교회 그 자체가 실제로 하나의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교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후기성도들에게는 세상의 교육과 영적 지식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후기성도들은 세상의 지적 교육을 경시하면서까지 영적 교육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지식은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서 추구해야 하나 영적 지식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의 종교적인 교육을 위해 노력해 왔다. 1890년부터 1929년 사이에 국민학교 1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니는 신자 아이들에게 별도의 종교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평일에 학교 교육과 병행하는 종교교육을 실험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종교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교회는 범세계적인 교회교육기구(Church Educational System)를 설립하여 다음과 같은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첫째로, 중고등학교 교육과 병행 실시하는 '세미나리'라는 교육이 있다. 이것은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이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가까이에 건물을 준비하여
구약성경, 신약성경,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 가르친다.

 둘째로, 대학 캠퍼스 부근에
종교 교육원(Institute of Religion)을 설치하여 대개 1주일에 두번씩 종교교육을 시킨다. 모든 세미나리와 신학연구원의 과정은 무료로 되어 있다. 이 과정은 성인들에게도 개방되어 있고 통신과정도 마련되어 있다.

셋째로, 공적인 교육기관이 충분하지 않은 나라나 지역에는 교회가 직접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한다. 미국에는 유타주 프로보 시에 미국 최대의 사립대학인
브리감 영 대학교가 있고 하와이의 라이에 시에는 브리감 영 대학교의 하와이 캠퍼스가 있으며 아이다호주 렉스버그에는 브리감 영 대학교 아이다호 캠퍼스가 있고 솔트 레이크 시에는 말일성도 경영대학(L.D.S. Business College)이 있다. 그리고 멕시코와 남태평양 그리고 뉴질랜드에는 7개의 국민학교, 13개의 중학교, 9개의 고등학교와 1개의 초급대학이 있다.

 1988년~1989년간의 통계를 보면 교회 교육기구는 전세계 90개국에 교육 조직을 두어 25만명의 세미나리 등록생과 12만4천5백명의 신학연구원 소속 대학생이 있고 교회 대학교에는 3만7천6백명, 기타의 각급 학교에는 9천3백명의 학생이 있다. 이 교회 교육기구의 직원은 4천1백명에 달하며 세미나리와 신학연구원에서 가르치는 교수와 선생은 모두 합쳐 15만명에 이른다.

 교회는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기간의 하나로 브리검 영 대학교(Brighan Young Univercity)를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은 1875년에 엄격한 근로 정신을 가진 브리감 영 대관장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3만6천명이 등록되어 있는 미국 최대의 사립대학인데 미국에서 질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지난 5년간 학문적인 면에서 가장 괄목하게 발전한 학교로 인정받고 있으며 전국 교등학교 졸업생 중 1%의 우수 학생이 받는 전국 규모 메리트 장학금(Merit Scholarship) 수상자 진학률이 MIT와 더불어 전국에서 10번째로 높은 대학교로 인정받고 있고 1990년 머니 가이드(Money Guide)지는 우수 고등학교 졸업생의 입학수, 졸업후 취업률, 졸업후의 박사학위 취득률, 수업료, 학교시설, 교수진을 참고하여 1백개 전국 명문 사립대학교 중 브리검 영 대학교 순위를 4위로 꼽았다.

 이 대학 졸업후의 박사학위 취득률은 코넬, MIT, 하버드, 스탠포드에 이어 다섯번째에 올라 있고 코카콜라 장학재단에서 수여하는 전국적인 장학생은 스탠포드, 하버드, MIT에 이어 4위에 올라 있다.

 이 학교는 하와이에 분교를 가지고 있고 예루살렘과 수도 워싱턴 그리고 런던에 연구센터를 갖고 있으며 미국내 사립대학 중 가장 큰 학생 기숙사를 갖고 있다. 미국 전역의 사립대학교 중 학비가 가장 저렴하여 주립대학교보다도 싼 연 2천4백 달러 수준이다.

 이 대학의 입학 조건은 대학에서 요구하는 성적과 도덕적인 표준에 맞는 학생이면 종교, 성,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입학시킨다.

 특히 이 학교의 언어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미 국방성의 연어교육 위탁기관이다. 이 학교는 65개의 언어를 교육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 한국어 분야에 대한 학사학위를 수여하는 유일한 대학교다.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외국어 교육과정을 현상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비해 브리감 영 대학의 외국어 교육과정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지에 따르면 미국대학의 평균적인 외국어 교육 규모는 1960년에는 학생 1백명 중 16명이 외국어 과목을 수강하였으나 1990년에는 그 비율이 8.5명으로 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비해 브리검 영 대학교는 현재 3만 6천명의 학생중 1만명 이상의 학생이 외국어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이 학교의 가장 인기있는 외국어 과목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불어, 일본어, 러시아어, 이탈리어인데 중국어, 한국어, 히브리어, 아랍어도 항상 개강되고 있다. 일본어는 하와이 대학 다음으로 큰 규모의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유럽의 여러 언어와 베트남어, 몽고어, 희랍어 및 아프리카와 중동의 여러 언어과정이 개설되고 있다.

 이 학교 학생 중 4백60명 정도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1천4백여명은 일본어를, 4백여명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전세계 99개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학교는 체육분야에서도 대단히 전통 있는 학교로서 모든 운동팀들이 전국 대학교 10위 내에 랭크되어 있고 특히 미식 축구는 전국 우승과 지역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바 있다.

미식 축구에서는 명 쿼터백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브리감 영 대학이 배출한 명 쿼터백 스티브 영은 San Francisco 49ers에 입단한 후 소속팀에 시즌 최고 기록을 안겨줌으로써 AP통신이 선정한 1992년 풋폴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그는 또한 AP가 정한 1992년의 최고 공격수로 선정되었다.

 이 학교의 무용단, 합창단, 교향악단 등 예술단의 질과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교수진 중 2백30명 이상이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국제감각이 뛰어난 대학이며 교수진 중에는 전국을 대상으로 한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연구소의 고문과 상담역을 맡은 사람이 많고 미국 내와 세계적으로 알려진 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이 학교는 장학금과 융자금이 많아 등록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학교 규율이 대단히 엄하고 전통적인 학풍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말일성도의 도덕적 표준에 맞는 생활을 요구한다. 즉 옷과 머리가 단정하고 정직을 최선으로 여기며 혼외 정사를 금하고 교내에서 술과 담배, 마약 등을 금한다.

 그래서 후기성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브리감 영 대학교를 비롯한 각종 대학이 있는 유타주는 자녀들을 안심하고 유학 보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교육을 중시하는 후기성도들의 철학은 유명한 교육정책가를 많이 배출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스털링 맥머린(Sterling M. McMurrin)은 케네디 행정부에서 연방 교육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았고 테드 벨(Ted H. Bell)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8년간 교육부 장관을 지냈으며 데이비드 가드너(David Gardner)는 레이건과 벨 밑에서 연방교육위원을 맡았다.

 

5.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완벽한 복지 프로그램 실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미국에서는 가장 포괄적이고 성공적인 민간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만간 복지사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적이고 성공적인 것이다. 교회는 복지사업과 관련해서 정부로부터 일체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으며 회원들로 하여금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국민의 사회복지 문제는 정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나라의 국민들은 복지비용이 모두 계속적으로 올라가기만 하고 구호대상자가 늘어나기만 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특히 서유럽의 복지국가에서는 근로자 봉급의 반 이상이 정부의 사회복지예산에 쓰이고 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정부에 의한 복지사업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훌륭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후기성도는 이 세상에서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능력을 갖지 못하는 종교는 다음 세상에서도 인간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수 없다고 믿는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경전에 쓰여진 원리를 따라 건강과 물질적인 복지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가난과 질병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성도와 이웃을 돕는 구체적인 사업과 활동을 발전시켜 왔다. 말일성도가 가진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디모데전서 5장 8절) "그러므로 어느 사람이 내가 만든 풍성한 것을 취하고 나의 복음의 법에 따라 자기 몫을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주지 아니하면, 그는 악한 자와 더불어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자기 눈을 들어 보리라.."(교리와 성약 104편 18절)

 교회는 모든 성도들에게 재난에 대비해서 1년간 쓸 수 있는 곡물, 식품, 의복, 연료, 음료수 등의 생활 필수품을 가정에 비축하도록 권고한다. 이러한 생활필수품은 천재지변이나 질병 부상 등 비상시에는 자기가족을 위해 활용하고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도록 한다.

 교회가 어려운 성도와 이웃을 돕는 제도적 방법으로는 금식기금 지원, 복지 사업, 데저렛 산업(Deseret Industries), 그리고 직업알선을 위한 고용촉진제도(Employment System)가 있다.

 또한 교회는 세계적으로 지진, 태풍, 홍수, 화산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이나 재난이 발생할 때 이를 지원하는 자선구호사업과 더불어 개발도상국의 성도와 이웃들의 빈곤과 질병과 어려움을 퇴치하기 위한 여러가지 지원사업을 행하고 있다. 자선구호사업과 개발도상국 지원사업에 대하여는 다음에 자세히 설명한다.

 금식기금은 어려운 성도나 이웃에게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 첫번째 지원수단으로 사용된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한 달에 한번씩 금식을 하도록 권고한다. 금식을 하는 날은 대개는 매월 첫번째 일요일이 된다. 금식일의 예배순서는 일반적인 설교의 순서보다는 모든 신자에게 개방된다. 신자들은 자기 자리에 서서 아니면 단 앞에 나와서 복음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생활 가운데서 받은 축복에 대하여 간증을 한다. 금식이란 24시간 동안 음식과 물을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신자들은 먹지 않은 두끼분의 식사에 해당하는 돈을 금식기금으로 교회에 낸다. 그러나 이 헌금은 어려운 이웃과 성도를 돕는 데만 쓰여지는 것이므로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두끼분보다 훨씬 넉넉한 헌금을 내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기금의 회계처리는 별도로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금식기금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족이나 개인에게 다음에 설명하는 여러가지 복지지원제도와 연결해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교회 신자 중에 직업을 잃거나 병을 앓거나 수술을 하는 경우 등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는 교회의 감독(개신교회의 목사에 해당함)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한다. 도움을 요청받으면 감독은 그 사람과 접견하여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우선적으로 금식기금을 사용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다음에 가난한 이웃과 성도를 돕는 복지사업이라 불리는 거대하고 독특한 제도가 있다. 대공황 직후인 1936년에 교회는 가난하거나 질병, 실업, 재난을 당한 신자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하여 복지사업이라 불리는 대규모의 항구적인 구제사업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투자하여 농장, 목장, 생필품 공장을 각처에 대규모로 세우고, 모든 회원들이 자원봉사로 무상의 노동력을 제공하여 이 모든 시설을 운영하고, 여기서 나오는 식품, 의복을 비롯한 모든 생활필수품은  감독의 창고라 불리는 유통시설에 보관한다. 가난한 사람이나 병에 걸린 사람이나 직장을 잃거나 각종의 재난으로 인해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생기면 이들에게 직장이 생기거나 자립할 때까지 모든 것을 무상으로 도와준다.

 무상으로 도와주기는 하지만 자립을 강조하므로, 근로능력이 있으면서도 게을러서 구호를 받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1937년에 복지사업이 궤도에 들어섰을 때 미국의 모든 대중매체와 언론은 교회의 복지제도를 극찬하였는데 당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년 반 전인 1935년에는 모든 몰몬 신자의 6분의 1인 8만4천4백60명이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구호를 받고 있었다. 오늘에는 그들 중 아무도 구호를 받지 않고 있다. 교회가 스스로 이들의 구호를 맡게 된 것이다."

  미국의 연방정부 복지프로그램으로 유지되는 대부분의 빈민구제사업을 이제는 지역사회나 기업이나 민간 자선기관이 맡도록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고 근면과 협동을 통하여 성도들을 자립하게 하는 몰몬의 철학에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 몰몬의 복지사업을 추천하였다.

  "만약에 대공황 시절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정부의 복지계획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민간의 자발적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81년 백악관에 팀을 구성하고 미시간 주지사를 지낸 죠지 롬니(Georgh W. Romney)를 포함한 세 사람의 말일성도를 단원으로 임명하였다.

 1981년 9월에 레이건 대통령은 연방정부 복지프로그램을 대체할 수 있는 몰몬의 복지사업과 같은 '자기 이웃돕기 정책(Help-The-Neighbor-Policy)'을 다른 교회도 채택하기를 권고하였다. 레이건은 백악관에서 몰몬 복지사업의 기본원리와 현황을 듣고는 큰 감명을 받아 1982년 9월 유타주 오그든(Ogden) 시에 있는 복지사업 관련 식품공장을 시찰하였다. 시찰이 끝난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은 칭찬의 말을 했다.

 "무보수의 자발적인 봉사인력으로 복지사업을 운영하는 방법은 미국의 지난 역사 기간동안에 사용된 방법이며 전국적으로 다시 일어나야 할 이상으로서 앞으로 미국을 새롭게 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85년의 복지사업 규모를 보면 1백99개의 대규모 농장과 51개의 농산물 가공 공장 그리고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1백13개의 유통기지와 유통기지에 공급할 곡물을 보관하는 63개의 곡물저장설비가 있다. 유통기지는 창고와 진열시설로 이루어지는데 육류가공 시설과 유가공공장, 제빵공장, 비누공장, 의류공장, 밀가루 제품 공장 등이 부속되어 있다. 그리고 대규모의 트럭 운송단이 이 모든 시설을 서로 연결시킨다. 1년에 도움을 받는 연인원은 35만명에 달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일하는 시간은 연 87만 시간에 달한다.

 잘 알려진 보수적 두뇌집단인 헤리티지 재단은 1992년 기관지 폴리시리뷰(Policy Review)에서 몰몬의 복지사업을 분석하고 이를 국가 복지 개혁을 위해 참고해야 할 모델로 제시하였다.

 이 재단은 몰몬교회 복지사업은 사람들의 물질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사업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가정을 강화시키고 활기차게 일하도록 하는 근로 윤리를 가르치면서 어려운 사람을 자립하도록 도와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이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폴리시 리뷰의 보조 편집장이며 이 보고서의 책임집필자인 타커 칼슨(Tucker Carl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몰몬들은 복지하는 것이 니트로글리세린(화약의 원료)과 같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제대로 쓰면 복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멋대로 쓰면 멸망을 가져오는 것이다."

 몰몬의 복지사업이 성공적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수혜자가 지원을 받아 자립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교회의 복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백일간의 도움을 받으면 자립한다. 연방정부 사회복지제도에서는 반 이상의 가정이 10년 이상 계속 정부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몰몬 복지사업의 분명한 목표는 거기서 독립해 나가는 것이며 그것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몰몬의 복지사업은 성공하고 있는데 비하여 연방정부 복지사업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타커 칼슨은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분석해 내고 있다.

  1. 몰몬 복지사업의 수혜자들은 자기들이 받는 것에 대해 일해서 갚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농산물 가공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근로는 자기들이 받는 물건의 원가를 낮춘다. 이와 같은 몰몬교회의 정책은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사람은 일을 해야 하고 일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선한 일이라는 몰몬들의 생각을 그대로 나타낸다.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교회의 구호대상에서 제외되므로 몰몬교회에 몰려드는 무위도식자들은 이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2. 몰몬 교회의 가정복음교사들은* 매달 신자의 집을 방문해서 그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발견해서 큰 문제가 되기 전에 해결되도록 도와준다. 어떤 가정은 자기들의 문제가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나 가정복음교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먼저 알아내므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부끄러움을 없애주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한다.
  3. 복지지원을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급료를 받지 않는 감독들이 행하는데 이들은 대개는 전문직업에 종사하거나 사업가들인 경우가 많다.  그 결과를 보면 대개는 세상 일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자기 경험에 비추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4. 감독들은 수혜 가정에서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지원하므로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제공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감독은 수혜자들이 예산을 세우고 수입의 범위 내에서 생활하는 방법과 지혜를 알려준다. 그래서 교회는 가급적 현금을 지불하지 않고 식료품이나 필요한 물건을 사주고 필요한 서비스에 대해 직접 돈을 지불한다.
  5. 교회는 각 가정으로 하여금 자기 가족을 돌보는 의무를 다하도록 적극 권하는데 특히 나이 많은 노부모를 돌보아 주도록 강조한다.
    *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모든 신자 가정을 종교적으로 세상적으로 돌보기 위해 그 가정을 담당하는 가정복음교사를 임명하는데 가정복음교사는 맡은 가정을 한 달에 한번씩 방문한다.
    전(前) 보건성(Department of Health & Human Services)차관이었던 콘스탄스 호너(Constance Horner)는 다음과 같이 비교하여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족과 지역 사회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이러한 일반적 인간속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몰몬의 방법과는 달리 우리 정부의 사회복지제도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가족과 지역사회로부터 고립시켜서 더욱 더 정부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6. 교회는 마지막으로 의지해야 할 수단이 복지사업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수혜 가정들은 가능한 한 빠르게 독립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7.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적어도 1년간 필요한 식량과 의복과 필수품을 비축하도록 권장하기 때문에 복지사업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물품은 직장을 잃은 다른 가정에도 나누어 주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이런 가정들은 상당기간 오래 버틸 수 있다. 절약과 자립을 강조하는 몰몬의 가르침은 복지지원의 필요성을 줄인다.
  8. 몰몬교회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게 나누어 주도록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모든 몰몬 신자들은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 한달에 하루를 금식(禁食)하고 두끼분 이상의 넉넉한 금액을 교회에 낸다. 몰몬 신자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유타주는 전국에서 1인당 기부액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 돈의 대부분은 교회에 모여져 가난한 자를 돕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회의 복지사업은 정부나 다른 기관이 연구하고 배울 가치가 있는 가장 성공적인 구호사업으로 꼽힌다. 1987년 3월 11일 미 연방 하원 세출위원회의 공공지원 소위원회(Subcommittee on Public Assistance)는 매년 늘어나고 있는 정부의 구호사업을 개선하기 위해 청문회를 열고 몰몬교회의 복지사업 책임자인 케이드 맥멀린(Keith McMullin)을 불러 증언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맥멀린은 교회의 복지사업은 종교적인 원리에 따라 실시 되는 것일 뿐 연방정부나 주정부 또는 지방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사업의 목표는 성도들로 하여금 일의 가치를 알게 하고 경제적 자립을 얻게 하며 게으름을 없애고 남이 주는 것에 기대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아서 근로 능력이 없다든지 가족을 부양할 방법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계속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고 증언하였다. 그는 복지사업의 기본이념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임을 강조하였다.

 교회가 신자 개개인의 복지에 이와 같이 구체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는 복음교리적인 근거가 있다.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쳤으며 그 가르침을 많은 비유로 설명하였다.

 기독교인들이 모두 잘 아는 대표적인 비유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이단으로 불리고 정통적인 유태교인의 미움을 받았던 사마리아인 중 한 사람인 '선한 사마리아인'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소지품을 털리고 얻어 맞아 죽게 된 길손을 가까운 마을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먹을 것을 주게 한 후에 자기 돈을 지불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였다. 말일성도들은 '형제를 지키는 자( Your Brother`s Keeper)'가 되어야 한다는 복음원칙이 국적과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원리하에 교회는 성도와 그 가족의 영적인 생활과 물질적인 생활 그리고 정서적인 생활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생활방법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따라서 복지 프로그램은 성도들의 생활전반에 걸친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지 프로그램은 교회의 한 개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본질이라고 믿는 것이다.

 교회의 복지사업은 정부가 행하는 사회복지정책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19세기 중반에 교회의 두번째 대관장이었던 브리감 영 은 교회복지지원의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험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원칙의 하나는 일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성한 몸을 가지고 있는 남자나 여자에게 돈과 음식과 옷과 생필품을 거져 주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원칙을 지키고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 그런 사람들에게 거져 주는 것은 사회를 파괴시키고 사람을 게으름뱅이로 만드는 것이다. 사회를 파괴시키는 것은 나라를 파괴시키는 것이 된다. "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 교회의 복지 프로그램을 만든 히버 제이 그랜트(Heber J. Grant)대관장도 복지사업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의 목표는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이 복지 제도하에서는 게으름이라는 저주가 사라지고 공짜로 얻어 먹으려는 죄악이 없어지고 근면과 검소 그리고 자존심이 성도들에게 한층 더 살아나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목표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일의 가치가 회원들 가운데에 으뜸되는 원리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개인과 그 가족이 가진 것을 다 소진하여 더 이상의 생계유지능력이 없을 때에 긴급하게 구원의 손길을 펴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교회는 복지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기다리고 있다.
 이 복지제도는 다른 기관에서도 모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복지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하는 정신적인 바탕은 흉내낼 수 없는 것이지만 정부보다는 다른 종교기관이나 자선구호기관에서는 충분히 이를 채택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도움을 받은 사람의 인간적 자존심을 유지하게 하면서 복지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혜자에게도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회원들간에 부를 똑같이 분배하는 제도가 아니라 교회내에 가난한 자가 없는 유토피아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다름에 교회는 자선구제 사업의 하나로 데저렛 사업(Deseret Industries)이라고 불리는 사업장들을 세웠다. 이 사업장은 일반 기업이나 업소에서는 전혀 고용하지 않으려는 노인들이나, 신체장애자, 정신박약자, 정신병자, 저능자 등 사회적 무능력자들을 신자나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 종업원으로 받아들인다.

 한편 신자들의 집에는 쓰지 않는 물건이나 손질하면 거의 신품으로 재생할 수 있는 물건들이 많이 있다. 신자들이 기증하는 이 물건들을 자원봉사자가 수집하여 데저렛 산업에 가져오면 고용된 종업원들은 이것을 수선하여 신품에 가깝게 재생한다. 재생된 제품은 염가상점(Thrift Store)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며 판매에서 나온 수익금은 보수로 지불된다.

 데저렛 산업은 복지사업과 연결되어 심각한 재난을 당한 신자나 이웃들에게 의복, 가구, 가정용품 등을 무상으로 공급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회적 무능력자들은 자원봉사하는 기술자들로부터 여러가지 기술과 기능을 배우는 기회를 갖는데, 다른 민간기업으로부터 보다 좋은 조건으로 채용을 희망하면 즉시 추천해준다.

 데저렛 산업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고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기술과 기능을 익히게 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결함이 있더라도 진정한 사랑과 완전한 인격적인 대우를 받게 하고 비록 작은 일이라도 남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시키고 일의 가치와 보람을 느끼면서 생을 영위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데저렛 산업은 1938년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그 후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미국 서부의 각 도시지역에 48개의 사업장이 있다.

 한편 교회는 직장을 잃은 성도들에게 직업을 구해주고 고용을 촉진시키기 위해 포괄적이고 조직적인 고용촉진제도(Employment System)를 구축해 놓았다. 미국 전역과 해외 일부에 87개의 고용촉진센터(Employment Center)가 있는데 36개 센터에는 전임의 고용전문가가 활동하고 있고 51개 센터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일하고 있다.

 고용센터는 교구와 모든 개별교회의 고용전문가(Employment specialists)와 협력하여 구인과 구직을 연결하고 고용을 위한 연수와 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고용 상담을 행한다. 이러한 고용촉진사업을 통해 비회원을 포함한 연간 4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새로운 직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복지기관과 달라서 이러한 고용전문가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무료 봉사하며 민간 직업소개 기관과 달라서 이 고용센터들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때때로 신자들의 어려움은 식품이나 의복과 같은 생활필수품의 공급이나 직장 알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인 문제 또는 사회적인 문제가 성도들을 괴롭힌다. 이런 경우 교회감독은 그 성도를 교회의 사회 봉사부(L.D.S. Social services)에 보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한다.

 이 곳에서 성도들은 유능한 정신과 의사나 상담 전문가로부터 조언과 권고를 받는다. 사회봉사부의 활동 중 특기할 것은 입양과 미혼모 상담이다. 교회는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에 치명적인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치 않는 임신이 되거나 미혼모가 생길 경우 사회봉사부에서는 낙태를 피하게 하고 원하는 부부에게 입양 시키도록 주선한다. 후기성도들은 자녀를 많이 갖는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자녀들 외에도 이러한 입양아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회봉사는 또한 선교사 활동의 중요한 일부분이 된다. 보건, 의료, 간호, 응급 조치 등에 관한 경험과 훈련을 가진 사람들은 복지선교사(Welfare Service Missionary)로 부름 받는다. 이 선교사들은 복음전도 외에 사회봉사를 전담하는 선교사로 일한다. 이 경우에도 대개 남자는 2년, 여자는 1년 반 동안 일한다.

 또한 모든 선교사들은 1주일에 4시간씩은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의무를 갖는다. 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선교사 각자의 계획에 따라 고아원이나 유아원, 양로원, 병원 등에서 무료로 일하기도 하고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공원이나 도로를 청소하기도 한다.

 

6.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세계적인 자선구호활동 전개


 교회는 어려운 이웃과 성도를 도와주는 금식기금을 계속해서 모으고 복지사업으로 생산되는 충분한 양의 생활필수품을 항상 확보하고 있으므로 세계적으로 지진이나 홍수, 태풍과 같은 큰 재난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구호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와 같은 구호활동은 인종이나 국적,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성도들은 경전에 쓰여 있는 다음의 가르침을 지키려 노력한다. 

 "저들은 헐벗고 굶주리며 혹은 목마르고 혹은 병들고 또 잘 먹지 못한 자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고, 헛된 세상의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아니 하였으므로,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는 그들이 늙었거나 젊었거나, 속박된 사람이거나 자유로운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교회에 속한 사람이거나 속하지 않은 사람이거나를 막론하고 조금도 치우침 없이 거저 나누어 주었느니라."

 제1차 세계대전중 교회의 자선조직의 하나인 상호부조회(Relief Society)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동맹국의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구하고 미군의 식량으로도 사용하게끔 3만6천섬의 질이 좋은 밀을 미국 정부에 기증하였다. 1918년 연방하원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1936년에 시작된 복지사업이 성공함에 따라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유럽지역에 훨씬 대규모의 구호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교회는 주로 식료품, 의복, 주방용품과 의약품 등을 포함하는 92개 화차분 2천톤의 복지사업 생산품을 유럽의 성도들과 구호기간에 실어 보냈다. 이 외에 북미의 성도들은 계획을 세워서 추가로 수만 상자의 식품과 의복을 유럽으로 실어 보냈다.

 당시 유럽에서 이 구호활동을 총지휘한 사람은 에즈라 태프트 벤슨(Ezra Taft Benson) 사도였는데, 벤슨 사도는 후일에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8년간 농무장관을 역임하였고 현재(1994년)는 교회의 대관장으로 교회를 대표하고 있다. 1953년 그리스에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을 잃었을 때 동방정교회, 가톨릭교회, 유태교회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공동으로 교회연합 이오니아 구호위원회(United Churches Ionian Relief Committee)를 구성하고 많은 양의 구호물자를 거둬서 그리스에 보냈다.

 이러한 교회의 구호노력에 대하여 샌프란시스코 주재 그리스 총영사인 존 초우니스(John Tzounis)는 국왕의 감사장을 전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비밀이 아닙니다마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합니다. 귀 교회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호기금을 보내 주셨습니다."

 1971년부터는 복지 선교사제도(Welfare services Missionary Program)가 실시되어 보건 전문가들이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자기 비용으로 여러 나라에 파견되어 병원, 의원, 지역사회 보건기관에서 현지인을 훈련시키고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어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1973년에는 농업 전문가들이 자기 비용으로 농업 선교사(Agricultural Missionary)가 되어 중남미와 남태평양의 농민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안에 있는 인디안 보호지역의 농부들에게 지역 여건에 알맞은 농업 기술을 지도하고 가르쳤다.

 1980년까지 7백68명의 복지선교사가 전세계에 파견되었으며 1990년까지는 추가로 3백50명의 특별한 기능을 가진 선교사(간호사, 의사, 직업훈련 교육자, 농업전문가)들이 동구권을 포함한 각국에 파견되어 보건문제, 농업문제에 대한 지도를 행하고 지도자 개발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1970년대에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로부터 수많은 난민이 생기자 교회는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실(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 for Refugees)'이 담당한 난민 수용소에 복지 선교사를 파견하여 태국과 필리핀과 홍콩에 와 있는 난민 중 미국으로 갈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어와 문화를 가르쳐 새로운 문화에 쉽게 적응하도록 하였다.

 1983년에는 큰 지진을 만난 콜롬비아, 태풍으로 큰 재난을 겪은 타히티에 식량과 의복을 보내고 집없는 사람들에게 줄 건축자재를 구입할 기금을 보냈다.

 1989년 대지진으로 5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아르메니아에는 각종 자재와 공구를 기증하여 집과 상가를 다시 짓도록 지원하였다.

 1984년에서 1985년에 걸쳐 동북 아프리카 지역에는 한발과 내전으로 엄청난 기아가 닥쳐왔다. 교회는 1985년 1월 25일을 '아프리카를 위한 특별 금식일'로 지정하여 모든 북미지역의 성도들로 하여금 두끼를 금식하고 두끼 이상에 해당되는 후한 금식헌금을 내도록 격려하였다.

 이 때 모여진 금식헌금은 6백40만 달러에 달하였으며 교회는 에티오피아와 수단 등의 현지에서 활약하는 적십자 국제위원회와 가톨릭 구호기관 등과 협력하여 식량과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였다. 몰몬교회의 금식일지정과 헌금모금에 자극받은 미국 연방의회는 전국적인 금식일을 선포하였으며 두번째 금식일에 교회는 성도들로부터 4백만 달러의 금식헌금을 모금하였다. 2차에 걸쳐 모여진 헌금 중 3분의 1은 영구적으로 아프리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농업개발사업에 쓰도록 결정되어 에티오피아, 차드, 니제르, 카메룬, 나이지리아, 가나 등에서 한발에 대비하여 수자원을 확보하고 농업개발하는 사업에 투입되고 있다. 최근에 아프리카에서만도 20개 이상의 개발사업이 교회의 지원으로 진행중이며, 중남미에서도 여러 개의 교회지원 개발사업이 진행중이다.

 사하라사막 바로 밑의 니제르에서는 교회 기금을 지원받아 바람에 의한 토양침식을 막고 풍화작용을 줄여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립사업이 대대적으로 실시되고 있는데 니제르 임업공사와 협력하여 서부 니제르의 마지아(Majia) 계곡에서 사하라 이남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조림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5백60km 떨어진 월로지역(Wello Province)의 게도바르(Geddobar) 계곡에서는 교회의 도움으로 관개수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공사는 댐을 만들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막고 24km의 농업용 운하를 옆으로 파서 물을 마른 땅에 끌어들이는 공사로서 1백만평 이상의 땅에 일년 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3개 마을 1천6백50개 가구 1만명의 주민이 농사를 짓게 되었으며 주민들은 관개수로 공사가 끝나기까지 연 20만명의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주민들 중에는 하루 10시간 반씩 일하기 위해 두시간 내지 세시간을 걸어와서 일하고 같은 시간만큼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공사는 현대적인 중장비가 동원된 것이 아니고 주민들이 가진 자재와 도구만을 사용하여 이룩한 공사이므로 주민의 자부심을 크게 높였을 뿐 아니라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고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었고 유지보수 역시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주민의 자조노력으로 이룩된 이 사업을 가장 모범적인 사업으로 손꼽았으며 다른 구호기관의 지원방법도 이렇게 하도록 제안하였다. 정부지도자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하기를 바랍니다. 이 사업은 사람들을 영원히 독립할 수 있게 하였으며 소독을 두배 세배로 늘리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아주 성공적인 실험이었는데 낮은 비용의 기술과 주민 자신의 노동력을 쓰는 그럼 실험이었습니다."

 이 사업의 성공에 감탄한 에티오피아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낙농 협동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금을 이 지역 주민들에게 내놓았다. 

 케냐에서는 60km 밖에서 도수로를 통하여 물을 끌어 1천1백 세대에 공급하는 수도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에서는 두개의 대규모 지하수개발을 통하여 6백세대에 물을 공급하고 있고 교회가 운영하는 복지농장에서는 훨씬 생산량이 많은 주곡작물의 재배방법을 교육하고 종자를 나누어 주고 있다. 또한 우기에 많은 양의 빗물을 모아 두는 집수탱크를 교회 건물 옆에 설치하여 건기에 신자와 이웃에게 물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제분공장을 세우고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케냐와 아이보리 코스트에서는 천연두 예방접종을 위한 기금을 기부하여 이 두 나라에서는 천연두 발생률이 거의 영(零)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다.

 볼리비아의 알티프라노에서는 싼 가격의 지하수개발, 양수용 풍차개발, 물탱크 건설, 비닐하우스 농법 등을 통해 식량증산을 추진하는 주민들의 자립노력을 지원하고 학교 건설, 보건 전문가의 양성, 새로운 식량자원의 개발 등에 도움을 주고 있다.

 1991년에 교회는 의료시설 부족과 낮은 의료기술 수준으로 고생하고 있는 베트남에 의료지원사업을 전개하였다. 베트남의 의료수준을 한 단계 높여 주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일단의 말일성도 의사들이 베트남에 파견되었는데 이 의사들은 베트남에서는 시술할 수 없는 정형외과 수술 일곱 가지를 행하여 베트남 의사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필요한 의료기자재를 모두 기증하고 그 사용방법을 가르쳤다. 이들 의료 봉사단을 수행했던 총관리역원인 멀린 리버트(Merlyn R.Lybbert) 장로는 외교 및 종교성 장관 등 베트남 고위 정부 지도자들을 만나서 교회의 봉사활동을 설명하고 정부의 지원을 당부하였다.

 1991년 러시아의 겨울은 러시아인에게는 너무나 길고 추웠다. 정부와 민간이 모두 배고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걱정하는 겨울이었다. 유럽의 말일성도들은 러시아에 있는 성도와 이웃들에게 즉시 먹을 것을 지원하기 위하여 나섰다.

 미국의 성도들은 솔트 레이크 시티로부터 1만8천kg에 달하는 밀가루, 쌀, 마카로니, 식용유, 분유, 마른 야채, 비타민 등을 모스크바, 성페테르스부르그, 비보르그(Vyborg)와 탈린(Tallin)에 있는 성도들과 그 이웃에게 보냈으며 북부 독일의 성도들은 4천5백kg의 의류를 러시아로 보내서 추위에 떠는 성도와 이웃을 따뜻하게 했다. 구호식량의 일부는 고아원, 학교, 병원, 양로원 등에도 보내졌다.

 1991년 한 해 동안에 교회가 행한 구호사업 중 하나는 이라크 정부의 박해를 피해 터키로 피난한 크르드족을 도운 것이었다. 교회는 1만3천장의 담요와 40톤 분량의 의복을 쿠르드족에게 보냈으며 의약품을 사서 피난민들에게 보낼 수 있는 기금을 구호기관에 기탁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자선구호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현지 구호기관을 별도로 세우지 않고 가톨릭 구제기구(Catholic Relief Agency)와 같이 이미 조직되어 현지에서 효율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구호기관을 활용하고 있다.

 교회의 구호사업의 구체적인 예를 또 한가지 들어보자. 최근 소말리아, 동부케냐,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의 아프리카 지역은 세기의 한발이라고 불리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1백년 만에 닥친다는 최악의 한발 속에서 소말리아의 내전은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가뭄을 피해 먹을 것과 물을 찾아서 그리고 전쟁이 없는 안전지대를 찾아서 수천, 수만명의 소말리아인들이 케냐 국경을 넘어 피난하고 있다. 1991년 1월에 3만5천명이었던 이 난민은 1992년 초에는 거의 5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한발과 내전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1992년 말까지 1백만명 이상의 난민이 케냐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전쟁 위험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호기관은 소말리아와의 국경에 접한 케냐땅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회는 구호를 위한 첫번째 조치로 1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45만kg의 식품과 다른 여러가지 필수품을 여기에 공급하였다. 이 구호조치는 1만3천명의 아이들을 3개월간 먹이고 산모와 임산부들에게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것인데 이 외에도 교회는 의복과 거처를 마련할 자재를 공급하고 음료수 개발과 소규모 농사를 돕기 위한 기금을 보냈다.

 교회는 구호사업 책임자를 현장에 파견하고 현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대규모의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수없이 많은 신자들이 구호사업 참여를 신청하고 있다. 교회의 대관장은 1991년 12월 전세계의 모든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 구호사업을 전개하도록 촉구하였다.

 "우리는 성도들의 구호 열의에 감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열의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이 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별도의 헌금을 감독이나 지부장에게 보내 주시면 이 헌금은 즉각 본부 구좌에 모여지게 됩니다. 또한 헌금은 본부에 있는 구호사업부로 직접 보내셔도 좋습니다."

 교회는 구호물품이 난민들에게 확실하게 전달되도록 필요한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 첫째로 과거에 함께 구호사업을 한 경험이 있는 작으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구호기관을 선택하고, 둘째로 모든 식품은 즉각 사용이 가능하도록 가공하여 포장한다. 이렇게 하면 낭비와 부정유출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식품과 생활필수품은 반드시 콘테이너에 넣어 봉하고 구호기관과 담당자를 정해서 발송한다.

 교회는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가공공장을 돌려서 분유와 밀가루를 만들고 또한 콩과 옥수수도 가공하여 난민 수용소에 있는 엄마와 아이들이 필요한 양을 정확하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교회의 구호사업부는 비누를 준비하였다. 또한 구호품에는 씨앗과 간단한 농기구가 들어 있어서 난민들로 하여금 농사를 지울 수 있게 하였으며 식수와 농업용수를 개발하고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차량과 설비와 비품도 공급하였다.

 1991년 12월 7일부터 5일간에 걸쳐 사모아 제도에는 발(Val)이라 불리는 열대성 태풍이 몰아쳐 17명이 죽고 모든 건물의 65%가 파괴되었다. 태풍이 강타한 지역은 농작물의 100%까지 쓸어가 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교회는 즉각 구호활동에 나서서 12월 13일에는 호주로부터 천막, 로프, 쌀, 밀가루, 설탕, 통조림 고기 등 30톤의 물자를 항공편으로 발송하였으며 며칠 후에는 12톤의 식량과 2백개의 천막을 보냈고 12월 말에는 추가적으로 쌀, 밀가루, 통조림 고기와 설탕을 긴급 수송하였다. 한편 시간이 지난 후에는 무너진 집을 복구하기 위하여 목재와 지붕자재를 보냈다. 이러한 식량과 자재는 현지 교회 지도자들의 손으로 개인별로 가정별로 수요를 파악하여 골고루 분배하였다.

 1992년 8월 24일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남부지역에는 역사상 최대의 허리케인이 몰아쳤다. 시속 2백50km의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앤드류(Andrew)는 남부 여러주를 강타하여 8만5천채의 가옥이 거의 폐허화되었고 25만명의 주민이 집을 잃었다.

 지방정부, 주정부, 연방정부는 난민구제를 위한 신속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그날 오후 건축자재, 전동공구와 각종 구호물자를 싣고 플로리다에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주변 6개주에 사는 6천명 이상의 말일성도들이었다.

 이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지시에 따라 10명, 50명, 1백명 단위로 인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즉각 3천채의 가옥에 임시 지붕을 만들어 주고 네 군데 교회 건물에 구호소를 설치하여 대형 트레일러 10대분의 비상식량과 물과 약품을 나누어 주었고 외국인 농부(주로 멕시코인) 집단 거주지의 부서진 가옥 7백10채를 긴급 수리하였고 2천1백 트럭분의 쓰레기와 부서진 물자를 수거하여 처리하였다.

 플로리다의 재해구조작업을 지휘하기 위해 파견되어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미육군 7야전포병대의 찰스 래쉬(Charles R. Rash)중령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함께 일한 모든 단체 중에는 몰몬교회가 가장 잘 조직되었고 가장 효율적인 활동을 전개 하였습니다."

 보다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각종 기술과 자원을 제3세계에 제공하는 것은 브리감 영 대학교 내에 있는 에즈라 태프트 벤슨 농업식량연구소(Ezra Taft Benson Agriculture and Food Institute)이다. 1975년에 설립된 이 연구소는 연구와 교육을 행하면서 세계 여러나라의 농업프로젝트를 돕고 있다.

 이 연구소는 효과적인 소규모 농작물 재배방법을 개발한 후 이를 볼리비아, 에콰도르, 과테말라, 멕시코의 농촌에 적용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 연구소는 영양상태에 대한 평가도 행하고 이를 위한 훈련도 실시하고 있으며 소규모 농토에 적합한 영농기술, 예를 들어 소형 트랙터, 태양열 이용 양수펌프, 풍력이용 양수펌프 등을 사용한 기술을 개발하여 개발도상국에 보급하고 있다.

 연구소는 개발도상국의 농업연수생을 교육하고 개발도상국 정부와의 협약으로 농업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농업용 장비와 의료용구를 모아서 개발 도상국에 보내기도 하고 단기 또는 장기로 그 나라에 거주하면서 농업개발, 위생과 영양문제를 지도하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관리도 행하고 있다.

 1977년 말일성도인 트래셔(E. W. Thrasher)는 전세계 아동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을 교회가 담당하도록 1천4백만 달러를 기증하였다. 교회는 이를 재원으로 트래셔 연구재단(Thrasher Research Fund)을 설치하였다. 이 재단은 개도국 아동들의 영양 상태와 전염병을 연구하고 위생과 건강을 증진하는 여러 기술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매년 교회는 복지사업에서 사용하고도 항상 넘치는 잉여 생산물과 의복, 가정용품 등을 전세계의 자선기관에 기증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세상의 어느 종교보다도 신자들이 내는 헌금에 비해서 이웃과 성도들에게 나누는 몫이 큰 종교로 알려져 있다.

 1992년 4월 13일 에즈라 태프트 벤슨 농업식량연구소는 멕시코 교육부와 15년 장기의 소규모 영농기술 제공 계약을 체결하였다. 미국의 농장크기는 40만평에서 1천2백만평에 이르지만 멕시코나 중남미 제국의 농민은 평균 3천평 농토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연구소측이 제공하는 소규모 영농기술은 3천평 농토를 가진 7인 가족이 농작물 종류를 잘 선정하여 영양부족 없이 자급자족하고 나머지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까지 하는 농업기술이다.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은 멕시코 농민들이 브리감 영 대학 기술진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영농기술을 멕시코 전역에 보급하는 것이다.

 멕시코 교육부는 이 프로그램을 우선 40개 농과대학에 보급하고 다음에는 점진적으로 농업고등학교에, 그 다음에는 개별 농가에 보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계약에는 멕시코의 농과대학 하나를 소규모 국제영농센터로 선정하고 멕시코 각주에서 온 팀들을 모두 교육시키게 되어 있다. 소규모 영농프로그램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 온 훈련생들도 이 국제센터에서 훈련하도록 되어 있다.

 

7. 희생과 봉사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평신도 교회 운영


 넬스 넬스(Nels L. Nelson)은 1세기 전의 유명한 기독교 성직자의 말을 인용하여
"독일 군대 조직을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조직도 몰몬교회의 조직과 같이 완전한 것은 없다"고 이야기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조직은 초기 사도시대의 그것을 원형으로 하고 있는데 그 머리는 회장과 두명의 보좌으로 구성되는 제일회장단이다.

 대관장단 세 사람은 모두 사도의 직분을 함께 가진다. 그 아래에는 열두명의 사도로서 구성되는 십이사도 정원회가 있고 다음에는 칠십인이라 불리는 장로들로 구성되는 제일 칠십인 정원회와 제이 칠십인 정원회가 있는데, 대관장에서 칠십인까지의 지도자들이 교회 전체를 인도해 나가는 책임을 맡은 '총관리역원(General Authority)'이 된다. 총관리역원은 자기 직업을 갖지 않고 교회 일만을 전념하는 고위 지도자들인데 이들의 숫자는 현재 99명(1994년)이다. 칠십인 정원회는 전 세계 교회가 확장됨에 따라 관리할 지역이 늘어감에 따라 제3, 제4, 제5 정원회 식으로 계속 조직이 확대 편성된다.

 이들 중 칠십인들은 전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23개 지역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한 사람의 회장과 두 사람의 부회장이 회장단을 구성하여 관리 책임을 맡는다. 총관리 역원들의 공통된 특징은 기업세계나 공공업무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종교와 이세상을 함께 다룰 만한 충분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총관리역원들의 또 한가지 특징은 교회 일에 대하여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비슷한 나이의 회사 중역이나 정부 관리 또는 전문직에 속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봉급을 받는 것에 비해 이들은 총관리역원이 되면 과거의 모든 직업을 버리고 문자 그대로 소명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일하는데, 총관리역원이 되기 이전의 몇분의 일이나 몇십분의 일밖에 안되는 매우 적은 급여로 검소하게 생활한다. 게다가 이들은 총관리역원이 되기 이전부터 넉넉한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급여를 교회로 돌려보내고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기 위해 쓴 책에서 받는 인세(印稅)조차도 교회로 보낸다.

 전세계 여섯개 대륙에는 약 2만개의 '와드(Ward)'라 불리는 개별 교회가 흩어져 있다. 이 중 작은 규모의 간이 와드는 지부(Branch)라 불린다. 열개 정도의 와드 또는 지부가 모이면 스테이크(Stake)라 불리는 교구를 구성하는데 전세계적으로 1천9백개의 교구가 있다.

 와드에는 감독이라 불리는 교회 지도자가 있고 교구에는 교구장이 있다. 정규 교회에는 연령에 따라 신자들을 보살피는 여러가지의 조직이 있다.

 성인 남자들이 참여하는 멜기세댁 신권회가 있고, 중고등학교 수준의 남자들이 참여하는 아론 신권회가 있고, 성인 여자가 참여하는 상호부조회가 있으며, 중고등학교 수준의 여자들을 돌보는 청녀회가 있다. 어린아이들이나 국민학교 수준의 아이들은 초등회에 속한다. 또 모든 신자가 모여서 배우고 토론하는 주일학교가 있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찬식이 있다.

 교구에도 마찬가지로 개별교회를 돕는 여러가지 조직이 있다. 이 모든 조직에는 직책을 맡아 희생하고 봉사하는 역원들(개신교의 교역자와 같다)이 있다.

 놀라운 것은 교구장과 감독을 비롯한 모든 직책을 맡은 사람들은 무료로 봉사하는 평신도들이라는 점이다. 성가대도, 지휘자도 물론 무료로 봉사한다.

 구약성경의 미가서 3장 11절을 보면 제사장이 삯을 위하여 교훈하고 선지자가 돈을 위하여 예언하는 것을 엄중하게 꾸짖고 있는데 후기성도들은 이 경고를 엄하게 따르고 있다.

 감독과 교구장을 거쳐 세상일과 영적인 일 두가지를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람들은 총관리역원이 된다. 총관리역원이 되면 지금까지의 자기 직업을 버리고 교회 전체를 관리하는 일에만 전념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는 완전한 평신도의 교회 이므로 매우 경제적으로 운영되며 금전이나 재정문제로 인한 교회 안에서의 다툼이 하나도 없고 계층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직책이 높은 사람은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희생하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후기성도신자들은 각종의 교회활동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직접 모임을 운영하고 지도해 나가는 기회를 많이 갖는다. 이와 같이 어렸을 때부터 교회조직의 책임자가 되어 관리운영하는 경험을 많이 익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몰몬의 관리 관리능력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후기성도들은 신자끼리 형제 자매라 부르면서 매우 가깝게 지내고 한 교회내의 신자들은 서로 잘 알면서 친형제같이 도우려고 애쓴다. 신자규모가 3백명을 훨씬 넘으면 서로 아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교회의 크기는 지역여건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참석회원이 3백명을 넘지 않도록 하며 그 이상이 되면 교회를 나눈다.

 그러면 교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재정은 어떻게 조달하는가? 모든 신자들은 교회에 세가지 헌금을 낸다. 첫째로 교역자 역할을 하는 신자를 포함한 모든 회원은 십일조를 바친다.

그러나 십일조는 금액의 대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분의 1을 지키면 누구나 합당한 것이다. 둘째로 회원들은 한달에 하루를 금식하고 그 음식값 이상의 후한 금식기금을 낸다. 이 금식기금은 오로지 구호의 목적으로만 쓰여지며 미국에서 1인당 기부금을 제일 많이 내는 사람들이 몰몬신자임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기부금과 경제적인 교회운영은 교회로 하여금 어려운 성도나 이웃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자원을 충분히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신자들은 선교사로 나가는 젊은이들을 위해 선교사 기금을 낸다. 이것은 오로지 선교사업을 위해서만 쓰여진다. 이 세가지 헌금은 게시되거나 발표되거나 다른 사람에 알려지지 않고 감독만이 알고 항상 정확하게 영수증을 발행한다.

 교회내에는 교회 전체, 교구, 그리고 개별교회가 원활히 운영되도록 도와주면서 일상적인 행정업무를 전일제로 맡은 직원들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신자들이 전문적으로 훈련받고 높은 급여를 받는 직장을 버리고 몇분의 1밖에 안되는 낮은 급여에도 교회직장에서 일하기 위해 달려온다. 도대체 후기성도들은 왜 그렇게 희생을 많이 하려고 하는가?

 「몰몬 기업 왕국(Mormon Corporate Empire)」이라는 책의 저자인 존 헤이너만(John Heinerman)은 교회행정을 맡은 어떤 직원을 면접하고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은 교회에서 일하는 것을 구세주 자신의 부름으로 받아들이며 자기의 전문적인 업무가 하나님의 왕국을 발전시키기 위한 한 부분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하고 더 오래 일해야 하는데도 교회 직장에서 일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직업을 가진 경험자들이 운영하므로 운영의 효율성을 많이 고려한다. 교회는 자주 저명한 대학이나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서 운영의 효율성을 검토하고 재정이나 투자, 그리고 행정과 홍보 등에 관한 전문적인 조언과 자문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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