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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명쾌한 교리와 가르침

(김차봉)


 

 1.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2. 인간은 어디에 있었으며 왜 이곳에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3. 일부다처제에 대한 질의 응답

 

 4. 몰몬경 등 다른 경전에 대한 견해



 1.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1) 하나님 아버지는 영의 아버지이다.
2)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시다
3)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시다
4)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한 몸이 아니다.
5)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외 성신의 개별성
6)
성신(성령)의 개체성과 권세 


 후기성도들은 현존하는 예언과 계시를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통의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많은 경전적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신학은 풍부한 내용과 성경적 논거와 실천적 해석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교리는 타 종교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명료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교회내에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후좌우로 교리상의 혼란과 분쟁을 일으키는 일이 거의 없다. 이들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매우 다른 체계를 갖고 있는데 본장에서는 그 여러 가지 교리와 가르침 중에 가장 핵심적 문제인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그리고 인간의 구원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다음으로 일반 기독교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일부다처제와 몰몬경등 다른 경전에 관한 해답을 하고자 한다.

 우리가 어떤 종교를 갖든지 자기가 믿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종교인이 되기 쉬울 것이다.
 후기성도는 신앙개조 제1조에 "우리는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을 믿는다"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후기성도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으로 정하고 그외 누구도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다. 즉 아담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조셉 스미스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신앙의 대상인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후기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신회(Godhead)를 구성한다고 믿는다. 즉 세분은 우주를 관리하는 평의회의 구성원이다. 후기성도는 세분의 인격체는 각기 다른 개체이지 일체가 아니라고 믿는다. 즉 삼위일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속성부터 알아 보기로 하자. 주로 성서상에서 문제가 되는 이론을 중심으로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1) 하나님 아버지는 영의 아버지이다.  top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후기성도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모두 육신의 아버지가 있는데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 지상에 올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영(또는 영혼)과 육으로 만들어졌다. 육은 지상의 부모로부터 출생시에 받은 것이고 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두분의 아버지가 있는데 한분은 하나님 아버지로서 영의  아버지며 한분은 우리 가정의 아버지로서 육의 아버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죽음을 '돌아간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곧 영이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세상에 온 모든 인류는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의 영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와 자매가 된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서로를 형제 자매임을 확인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영의 아버지 이기 때문에 대화하기를 좋아하신다. 자식이 아버지를 찾을 때 언제든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세상의 아버지와의 대화처럼 조용히 그리고 공손하고 경견한 태도를 갖고 대화하는 것이다.
 기도는 곧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이 대화에서 몸을 흔들거나 비틀며 괴성을 지르고 손을 흔드는 태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을 모르는 소치인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의 아버지'께 아들이 대화를 청하고는 그런 식으로 감사와 부탁을 드리다면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정신 이상이 되었다고 금방 의사를 부르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도 중 성구를 몇분씩 암송하거나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여 시간을 오래 끌고 말을 많이 해야되는줄 안다. 기도하는 동안 장황한 성구 암송은 성경지식을 뽐내는 교만한 행동이며 중언부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 평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성구를 장황하게 암송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감사와 부탁을 이해하실 수 있으며 중언 부언하지 않아도 삼라만상을 주관 하시는 능력으로 모두 아시는 것이다.

 

 2)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시다  top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좀더 살펴보면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형상을 갖고 계신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약에 한나님이 무형이시라면 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했다고 하겠는가.

 후기성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은 실체가 아니고 그분의 품성이나 속성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7장 54-56절에 나오는 스데반의 순교장면을 살펴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여 하늘을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분명히 스데반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고 예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서 계셨다고 했다. 형상이 없다면 어떻게 좌편과 우편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이성구 한두 구절을 갖고 어떻게 하나님이 형상을 가지셨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전체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금 구약성경 민수기 12장 6-8절을 보자.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 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위의 구절에는 첫째로 대면한다고 되어 있다. 대면한다는 말은 영어 성경에 'face to face'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라는 말이다. 둘째로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다고 했다. 형상이 없으면 어떻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라는 말이 나오며 형상을 보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형상을 갖고 계시며 구약성서 창세기 1장 26졀에 있는 것처럼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는 창조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양처럼 생기셨다면 우리도 양처럼 창조 되었을 것이고, 사자처럼 생기셨다면 사자처럼 창조되었을 것이다. 세상 만물 중 사람처럼 완벽하게 창조된 피조물은 없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육체와는 다른 육신과 능력을 갖고 계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는 우리 인간과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부활후의 육체는 완전히 다른 육체였다. 부활후 방문을 닫고 얘기하고 있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고 이곳 저곳에 나타나셨으나 인간의 눈으로 빨리 구분하지 못했다. 또한 공중으로 승천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계셨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누가복음 24:31-40)

 31절에는 예수께서 나타나셨지만 사람들이 그를 빨리 인식할 수 없었고 36절에는 대화 중에 방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나셨고 그리고 직접 부활한 육체를 보여주셨다. 또 누가복음 24장 51절과 마가복음 16장 19-20절, 그리고 사도행전 1장 9-11절을 보면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 나온다.
 육체를 갖고 있다고 해서 능력에 제한을 받지는 않는다. 예수께서도 육신을 입고 있으실 때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신약성경의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세계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육체를 갖고 있지만 그 능력과 영성은 전부가 다른 것이다.

 

3)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시다  top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창조한 세계에 있는 모든 만물에 힘과 능력을 미치고 계신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분의 육체는 한 번에 한 곳에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인격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하나님도 물질적 존재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형체를 갖고 계시므로 필연적으로 특정한 넓이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차지하는 공간은 제한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동시에 제한된 공간을 여러개 갖는다는 것은 비논리적인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하나님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갈릴리 앞 바다에 계셨다가 사마리아에 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대제사장 집에 가시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곳에 계셔도 세상 어느 곳에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는 누가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이곳 저곳에 내려 오시고 올라 가시는 공간의 제한을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창세기 11장 5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밝히셨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와 성약을 세우셨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창세기 17:22)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시고 완전하신데 그의 지식이 무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은 천사와 종들의 성역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과 끊임없이 교통하고 있으며 원하시면 친히 방문하신다.
 하나님을 통해 물질이 구성되었으며 에너지가 창출되었다. 그러므로 그를 창조주라고 부른다. 하나님 자신은 완전하시고 영원하시며 그의 지식과 능력은 무한하고 영향력 또한 무한하시다. 또 그 분은 지상의 모든 자연력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궤도에 따라 천체를 운행시킨다. 하나님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다. 그 분은 자신이 직접 행하시거나 도구를  통해 행하신다.
 그분이 육체를 갖고 있어 일정한 곳에 계신다고 하여도 영의 매체나 천사의 성역을 통해 어떤 일도 어느 곳에서나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무소 부재하시며 전지 전능 하신 것이다.

때때로 성서에서는 하나님은 영이란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신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영으로 표현되는지 의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육체와 완전한 영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둘 다 가지고 계시므로 어느 하나만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 하나만을 가지고 그 인격을 대표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육을 갖고 계신다는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영으로만 주장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육과 영 둘다 기록 되었을 때는 육 하나나 영 하나로 한가지만 강조했다고 해서 두가지의 결합체인 것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즉 사람이 육과 영을 모두 갖고 있으나 성경에서 영 하나만을 기록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으로 사람은 육이 없다고 부정할 수 있는가 ? 요한 일서 4장 1절 부텨 3절까지 읽어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 있느니라"라고 되어있다.   .
 이 구절의 영이란 이미 세상에 와 있는 적 그리스도의 선지자들이다. 선지자들은 육과 영을 갖고 있지만 영으로만 표현했다. 또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라고 한 말은 하나님을 지지하고 믿는 신앙인을 말한 것이다. 성경 어느 한쪽에서는 하나를 설명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을 설명할 때가 흔히 있다. 이 때는 하나인데 반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4)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한 몸이 아니다.
  top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에 대해 공부해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이 아니며 역할이 다름을 설명하겠다.
 예수(Jesus)란 구세주의 이름으로서 희랍어에서 나온 말이다. 같은 말을 히브리어로 표현하면 Yeshua라고 표기되며 영어의 Joshua와 가다. 천사는 동정녀의 약혼자 요셉에게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1)

 그리스도(Christ)는 일반적인 이름이 아니라 성스러운 칭호이다. 이것은 희랍어에서 나온 것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메시아(Messiah 또는 Messias)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 밖에도 경전상에는 임마누엘, 구세주, 구속주, 독생자, 주 하나님의 아들, 인자등과 같이 분명한 의미를 지닌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죽어야 하는 육체를 가진 아버지와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경우이다. 그는 죽지 않는 육체를 갖고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며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구약의 이사야의 7장 14절에는 이것이 이미 예언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독생자(Only Begotten of the Eternal Father)란 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세(Pre-existence)에서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첫 번째 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 그래서 성경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이라고 부르고 또한 장자(First Son)라고 부른다. 어떻게  해서 맏형이 될 수 있을까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진 의심을 이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왜 또 장자라고 했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이전에 수많은 인류가 출생하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첫아들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나온다. 이것은 바로 전세에서 그른 영의 자녀로서 첫 번째 탄생하였디 때문이다.
 우리인간도 역시 전세에서 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영의 아버지시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육신의 부친이 따로 있다. 그래서 나는 김ㅇㅇ씨의 아들이다. 내가 만약에 김ㅇㅇ씨의 유일한 외아들 이라면 한자어로 나는 김ㅇㅇ의 독생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다. 모든 인가의 영은 다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졌지만 육의 아버지는 다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과 육이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될 수 있다.
 이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거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느데 필수적인 일이었다. 마리아에게 태어날 아이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연법칙의 고차원의 작용 즉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에 의해 잉태되었다. 그 분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 아버지와 죽는 속성을 가졌으나 순결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지극희 높으신 이'라 일컬음을 받을권리를 갖고 있다. 그 속성에는 죽는 능력과 다시 사는 하나님의 권세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16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나온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 중략-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또 누가복음 3장 23졀부터 38절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설명하여 요셉의 아들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아담에까지 이른다. 이 두 계보의 기록에는 몇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있으나 이러한 차이점은 유대 족대 전문가의 조사에 의하면 서로 일치한다. 마태의 기록은 다윗의 왕위를 합법적으로 물려받은 계승자의 순서를 입증해 주는 왕족의 혈통에 관한 기록으로 마태복음이 유태인을 위해 쓰여진 기록이므로 그 나라의 왕통으로 설명할 때 유태인들에게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기록은 조상이나 가까운 친족을 통하여 내려오는 개인의 가계도로서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해 쓰여진 것이므로 이방인에게 호소력이 있다. 하여튼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설명하면서 요셉을 계보의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요셉의 아들로 착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셉의 계보는 곧 마리아의 계보와 다름 없는데 이는 그들이 사촌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계보를 다룬 것이다.
 성구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는 요셉에 의해 탄생되지 않았고 마리아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 예수라 하면 다윗의 혈통을 받은 마리아를 칭하는 것이다. 아버지인 하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칭하는 말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성서에 있는 사실대로 하나님과 아들 예수와 성령을 정의 한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아들, 성신은 모두 다른 인격체이며 목적은 같으나 모두 다른 역할을 맡고 계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영의 아버지시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샹에 육을 입고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부활하신 분이고 성신은 육을 갖고 계시지 않으나 아버지와 아들을 증거하는 분이다. 이것이 후기성도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신애 대한 견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같은 분이 아님을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5)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외 성신의 개별성  top

 

  (1) 갯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 시는 예수 그리스도 (누가복음22장 39절-42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성구는 가롯 유다를 앞세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러 감람산에 도착하기 직전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 성구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또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고 내 원대로 하지 마옵소서 라는 구절이 나온다.
 분명히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뜻은 별개임을 설명한다. 즉 아버지의 의지와 아들의 의지가 별개이고 아들이 아버지의 의지에 순종함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가 같은 일체라면 어떻게 의지와 뜻이 다를 수 있을까?

   (2)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마태복음 27장 45절-46절)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성구는 낮 열두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어두움이 온땅에 덮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던 시간이다. 오후 세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 불렀다.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한 분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경우 예수께서 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3) 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요한복음 20잘 16절-17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내가 내 아버지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천사들이 그 여인에게 어찌하여 울고 있느나고 물었다. 마리아는 비어 있는 무덤을 보고 누가 주님을 가져갔다고 대답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 예수가 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한참 있다기 그 분이 예수인 것을 알고서 예수를 부르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지려고 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약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몸이라면 어떻게 아버지께 아직 가지 않았으니 만지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구가 확실한 것이라면 두 분은 존재가 다른 분이다.

   (4) 내 아버지는 곧 너희의 아버지이다 (요한복음 20장 17졀-1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내가 내 아버지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이 성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아직 아버지께 가지 않았으니 자기 몸을 만지지 말라고 말하고 자기 아버지가 곧 우리의 아버지요, 자기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 부터 영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형제가 되고 첫째로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장자요 우리의 맏형이 된다.

  (5) 심판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위 임 받음 (요한복음 5장 22절-24절)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이 성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상의 삶을 마친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질 심판을 집행할 권능과 권위을 위임한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개성과 개체가 다를 뿐 아니라 직분과 직능에서도 분리되어 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 자신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심 (마태복음 24장 36절, 마가복음 13절 32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위의 구절은 예수의 재림을 설명하는 성구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모든 족속이 가슴을 치겠으며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큰 나팔소리와 함께 그가 천사들을 보낼 것이고 천사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을 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시는 날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 여기서 아버지의 권능이 아들의 권능보다 상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7)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다른 장소에 동시에 나타남 (마태복음3장 13절-17절)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 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위의 성구는 예수께서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을 때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단강에 계셨고, 성령은 비둘기 같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였고, 하늘에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성구는 우리에게 세분의 인격과 걔성과 존재가 분명히 구별 됨을 설명하고 있다.

  (8) 예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임 (요한복음 14장 6절-1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부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구절들은 심위일체설을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구이다. 이 문장은 두가지의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다고 하니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이라는 주장
 두 번째 해석은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은 육체나 신분이나 개체가 하나라는 뜻이 아니고 아버지가 우리 인간에게 가르치려는 진리의 내용과 아들이 가르치려는 내용이 같다는 주장

 이 중에서 두 번째 해석이 바른 해석이다. 6절 부텨 12절 까지를 다시 읽어보면 분명히 두 번째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즉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라는 구절을 보자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한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진리요, 생명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아버지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 하나라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 다음 기도 내용을 끝낼 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라고 마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하나님 아버지께 이어주는 중보자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받아들인자이다. 아들을 맞아 들였다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함당한 권능을 위임하여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고 집행하라고 했다면 아들이 아버지의 의사를 합법적으로 전달하고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많은 것을 위임하고 아들은 그것을 집행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서는 필요한 서류, 예를 들어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이나 기타 신빙성이 있는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증명만 있으면 바로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필요한 증명을 갖고 오셨다. 그는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셨교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꿰뚫어 보는 능력, 자신이 부활한 기적 등 수만가지의 증명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바로 이사실을 믿으라는 얘기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우리인간을 구원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나 깊은 통찰력을 가진다면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구이다. 12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만약 같은 분이라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께로 간다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
 요한복음 17장 21절-23절은 다시 이 논증이 옳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는 성구는 앞서 인용한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설명해 준다.
 형제끼리 서로 하나가 되라는 말은 서로 마음을 합한다는 뜻이다. 의사와 의지를 뭉치라는 말이지 육체적으로 한 몸으로 결합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께서 위 성구에서 하나가 되라고 하신 것은 아버지와 자기의 연합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말이다.

  (9) 세상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 보내심을 받은 분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7장 16절-19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들의 육체는 세상에 속해 있고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세상을 본받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냈으나 그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제자들도 그렇게 되길 원하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제자들을 통해 진리를 깨달은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거룩하게 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신 것이다.

 분명히 세상에 보낸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고 보내심을 받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신분과 개체가 다른 분임을 알 수 있으며 아버지께 자신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간구를 했다. 같은 게체라면 어떻게 보낸 분이 있을 수 있으며 보내진 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분명히 다른 개체를 갖고 있으며 상하관계에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보다 낮을 수 없으며 아들이 아버지보다 높은 위치를 가질 수 없다.

  (10)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 (요한복음15장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한다는 말은 서로가 다른 인격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몸이라면 어떻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므로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의 영의 자녀이며 독생자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았다. 그러므로 신분과 지위와 인격체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삼위일체설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혹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일체임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태양의 비유, 물의 원소의 비유 등이다. 그러나 비유는 사실을 분명하하게 하기 위해 만든 설득 방법이므로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을 인간의 두뇌로 비유를 만들어 성경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삼위일체의 논리적 모순을 또 한가지 살펴보자. 삼위일체설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는 육체가 없는 영이라고 한다. 성경에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말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육체로 세상에 오셨고 현재는 부활하셔서 육체를 갖고 계시고 언젠가는 그 육체를 가지고 재림하실 것이다.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개체라면 왜 하나님 아버지는 영만 갖고 계시면 육이 없는가? 하나님 아버지가 육체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육체가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영으로 계신다고 하였으나 아들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지금도 육체를 갖고 계신다.
 아버지는 영만 존재하고 아들은 육체와 영을 다 갖고 존재한다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 본체와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삼위일체설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과연 삼위일체설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성립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자. 삼위일체의 기초 정의는 니케아 신조(Nicence Creed)에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피조된 것이 아니요, 아버지와 동질이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동질이라 함은 아들이 아버지와 본체 ,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뜻이다. 개신교회의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교회 역사(The Church in History, B.K. Kuiper 지음)에서 삼위 일체설의 역사적인 형성 과정을 살펴보자 (B.K. Kuiper의 같은 서적 41쪽 46쪽 참조).l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이후 약 3백년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상당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두 장로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아리우스(Arius)는 이 문제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동질이라고 주장 했으니 즉 성부와 성자는 본체, 본질, 존재에 있어 꼭 같다고 주장했고, 아리우스는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첫째되며 아버지와 동질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그리스도도 하나님, 즉 아들 하나님 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 교회 지도자들은 양분되어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에 따르거나 아리우스의 이론에 따랐다.

 한때는 아리우스의 이론이 더 맹위를 떨쳤으나 논쟁이 계속되어 그 해결을 위하여 당시 기독교인이 아닌 콘스탄틴 황제가 AD 325년에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종교회의를 니케아(Nicaea) 종교회의라고 한다. 이 종교회의에서는 아리우스의 의견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 이유는 한분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라면 이교도와 같이 다신을 믿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한분의 하나님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본체와 본질과 존재에서 같은 분이라고 규정해야 했다.
 그러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에 반발이 심하였고 많은 감독들이 니케아 종교회의 결과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또한 니케아 신조는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는 토의하지 않았고 포함하지 않았다.
 그래서 AD 381년에 제 2차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되었고 다시금 아타나시우스의 의견을 정리하여 재확인하였고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도 성부, 성자와 동일시하여 삼위일체교리(The Doctrine of the Trinity)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계속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와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AD451년 니케아 근처 갈게돈(Chalcedon)에서 다시금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삼위일체설을 확정했다.

 결국은 AD 321년부텨 AD 451년에 걸쳐 1백30년 동안이나 논쟁이 계속되어 결론이 맺어진 종교회의의 산물이다. 1백30년 동안의 논쟁의 산물이기에 더욱 오류를 가질 수 있으며 문제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리라면 계시로 한번에 결정되었을 것이다.
 삼위일체설을 주장하게 된 근본 원인은 아버지와 아들이 개체가 다른 두분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이교도가 믿는 다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체와 존재는 같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분명히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는 아리우스의 주장과는 별개로 계시로써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말일성도는 아리우스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한 것과 관계없리 삼위일체설 즉,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니케아 신조를 부인한다. 다시 한번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니케아 신조를 기록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개체가 혼동되어 있지도 않고 본질이 나뉘어져 있지도 않은 삼위의 한 하나님 즉, 일체로서의 삼위를 경배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의 개체요, 아들도 하나의 개체요, 성신도 하나의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 아들 성신의 신회는 하나이다. 그 영광도 같고 능력도 영원히 공존한다.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아들도 그러하고 성신도 그러하다. 아버지도 창조되지 않으신 분이며, 아들도 창조되지 않았고, 성신도 창조되지 않았다.
 아버지도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분이며, 아들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도 영원하며 아들도 영원하며 성신도 영원하다. 그러나 영원한 세분이 아니라 영원한 한 분이며,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세분이 아니라 영원한 한 분이고 창조되지 않은 세분이 아니라 창조 되지 않은 한 분이다.
 아버지가 전능하신 것같이 아들도 전능하며 성신도 전능하나 전능자가 셋이 아니라 하나이다.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요, 성신도 하나님이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다.

 세상에 나와 있는 기록 중에 이 글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기록이나 예를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세 개체를 설명하다 바로 하나의 개체를 설명하고 세 분이라고 했다가 바로 한 분이라고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과 계시를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어떻게 혼란되고 혼돈스럽고 모순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상상하기가 어렵다.
 현재 영국 구교는 하나님에 대한 정통 교리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그는 육체나 지체나 감정이 없는 영원한 분이며, 그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은 무한하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영국 국교처럼 하나님께서는 육체와 감정이 없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렇다면 전술한 바와 같이 스데반이 예수님과 함께 본 하나님(사도행전 7장 55-56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구약성서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대면하였다. 주님은 모세를 대면하여 말씀하셨고(민수기 12장 8절), 아담과 이브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창세기 3장 8절), 가인조차 음성을 들었고(창세기 4장 9절)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이 음성을 들었으며(민수기 12장 4절),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신명기 5장 4절,23절-24절)
 감정을 갖고 계시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것도 성경과 일치되지 않는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기록했으며 출애굽기 20장 6절에 주님은 은혜를 베푸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 4장 31절, 신명기 7장9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9장 17절, 시편 116편 5절, 야고보서 5장 11절에는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경전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실체성을 부인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실체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신회 구성원중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주로 설명했으며 삼위일체의 논리성 문제를 토론했다. 지금부터 신회의 마지막 구성원인 성신에 대해 설명하겠다.

 

 6) 성신(성령)의 개체성과 권세   top

 

 성신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신회를 구성하고 있다. 성신은 단지 힘이나 원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난님의 속성과 권세를 부여받은 개체이다. 경전에서는 성신은 하나님의 영, 주님의 영, 진리의 영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성신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교사이다(요한복음 14장 26절). 또한 아들을 증거하고(요한복음 15장 26절) 죄를 책망하며(요한복음 16장8절) 말하고, 명하고, 위임하며(사도행전 10장 19절, 요한계시록 2장 7절, 사도행전 13장 2절) 근심하며(에베소서 4장 30절), 깊은 것에 통달한다(고린도전서 2장 10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신의 영향으로 인간은 정신력이 살아나고 커져서 과거의 일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성신은 인간의 겸손과 순종심에 따라 인간을 깨우쳐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알게 하고 인간을 영적으로 크게 성장시키며, 하나님의 지식을 인간에게 전달해주고 복음을 따르는 자를 성결하게 하며 필요한 모든 것을 나타내 보이고,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와 절대성에 대해 증거한다.
 성신은 아버지와 아들과는 달리 살과 뼈의 몸을 갖고 있지 않고 다만 영체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성신의 본질에 대해 혼란을 갖는 것은 성신의 개체성과 그 권세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개체와 속성이 다르듯이 성신도 다르다. 신약성서를 통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4장 16절-17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5장 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6장 7절 -15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이 성구를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개체가 분명히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6장 13졀 -14졀에는 성신을 그(He)라고 칭하며 남성 인격임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가시고 보혜사가 오겠다고 했다. 만약 삼위일체라면 어떻게 예수께서 아버지께 가시고 성신인 보혜사가 세상에 올 수 있겠는가? 사도행전 1장 2절의 내용 중 성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계명을 주신 구절은 성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개체성을 더욱 강조해 준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속성과 개체가 다르나 그 목적은 같다. 목적이 같다는 의미에서 한 하나님이라고 설명될 수 있으나 삼위일체설과 같이 본질과 본체와 존재가 같지 않음은 분명하다.

 

 

2. 인간은 어디에 있었으며 왜 이곳에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우리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왜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의문을 구원의 계획이라는 제목으로 명쾌하게 가르친다. 다음은 질의응답으로 풀어보는 구원의 계획의 내용이다.

: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교리 중 선명히 우리의 인생 여로를 밝혀주는 교리는 있습니까?

: 네 있습니다. 저는 32년 전에 이 교회에 개종할 때 이 교리에 가장 흥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 우리 인간은 어디서 왔습니까?

: 우리 인간은 이 지상에 오기 전에 전세에서 영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첫째 지체라고 합니다.

: 전세라고요? 불교 교리와 같군요. 저는 40년 이상 기독교에 몸을 담고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에 전세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혹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 만든 교리이거나 또는 불교의 교리를 도입한 것이 아닙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전세에 우리 인간들이 존재한 것은 구약과 신약에 나와 있는 교리입니다. 물론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구약과 신약과 똑같이 하나님 말씀으로 취급하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성약인 몰몬경이나 교리와 성약에서도 그 교리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 저는 몰몬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구약이나 신약만으로 전세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십시오.

: 네, 알겠습니다. 먼저 구약성서에 있는 성구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예레미야서 1장 5절에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모태에서 네 형태를 만들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구별하여 온 세상의 예언자로 세웠다 : <현대인의 성경>, 생명의 말씀사 번역) 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심에 있어서 모태에서 형태를 만들기 전에 알았고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구별했다고 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를 이 지상에 오기 전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할 수 있었다고 하는 성구는 전세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지상의 삶이 있기 전에 우리가 영체로 존재했을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예레미야를 그 분의 예연자로 예임(豫任)했을 것입니다.

: 예레미야서 1장 5절 이외 다른 성구는 없습니까?

: 있습니다. 잠언 8장22절~31절과 전도서 11장7절, 신명기 32장8절~9절, 욥기 38장2절~7절, 사도행전 17장26절, 에베소서 1장4절 등이 있습니다. 구약성서 중 예레미야서를 읽었으니 신약성서 한 구절을 읽어 봅시다. 요한복음 9장1절부터 2절을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까 그 부모이오니까?

이 성구에서 전세가 없다면 언제 이 소경이 죄를 지을 수 있어 소경의 죄에 대해 물었을까요? 즉 나면서부터 소경이었으니 이 지상에 오기 전 다른 세계에서 죄를 지을 기회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전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예수께 물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9절을 봅시다.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이 성구는 우리의 육의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의 아버지는 우리 인간 육신의 아버지이고 영의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영은 바로 이지상에 오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우리 인간은 전세에 하나님과 함께 거했고 그 때는 육체가 없었습니다.

: 네, 전세와 영에 대해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전세를 배울 수 있어 기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죽는다는 말을 돌아간다는 말로 쓰는군요. 즉 하나님께로 영이 돌아간다는 말이겠지요. 육은 이 지상에서 받았으니 지상에 버리고 영만은 우리 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간다는 뜻이겠군요. 이것이 바로 전도서 11장7절에 나오는 성구의 뜻이겠군요.

: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기독교적인 백성들입니다.

: 현세에 대해서는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현세에서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충실히 살고 선한 행동을 해야 내세에 좋은 세계에 간다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현세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현세에서의 국가관(國家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람이 현세에 온 목적은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예지를 발전시키고 계명을 따르면 하나님과 같이 온전히 되기 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48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14절에서 30절을 보면 달란트(Talent)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 살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Talent)을 발전시키고 그 재능을 통해 남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을 행하실 때도 모든 인간들을 똑 같은 심판기준을 갖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과 환경여건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48절을 보아도 위의 달란트 비유와 마찬가지로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똑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도록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 타고난 재능과 능력을 기준으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어떤 환경과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처럼 온전히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온전히 되는 길은 부단한 노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온전히 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 우리 위치를 비하시켜 벌레 같은 인간, 동물보다 못한 인간 등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온전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의 사고와 행위를 온전케 하여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식을 받아야 합니다.

지상에 사는 목적은 육신을 입어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자기가 갖고 있는 환경에 대처하면서 선한 생활속에 지혜를 발전시키고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고 의식을 받아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녀를 출산하면서 사회집단 속에서 주어지는 자기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생에서는 균형과 조화의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 그리고 교회 생활에서는 균형과 조화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바로 훌륭한 가정과 훌륭한 사회와 훌륭한 국가를 이룩하는데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소홀히 하는 교회 생활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훌륭한 시민을 육성해야 합니다. 교회는 개인으로 하여금 훌륭한 인격을 배양할 수 있게 해야 하고 훌륭한 가장과 주부와 자녀를 양성하는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처럼 온전하다면 이 지상은 곧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 후기성도의 철학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참으로 합당한 가르침이요,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님처럼 인간이 완전해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늘 몸과 마음으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누구나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고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써 우리는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범법으로 우리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우리의 행함을 통해 심판을 받게 됩니다.

: 그렇다면, 죄 짓고 회개하고, 죄 짓고 회개하는 생활을 반복하면 어떻게 됩니까?

: 이러한 생활은 수학 점수로 계산한다면 0점이 되겠습니다. 만약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점수는 마이너스 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계속 선행을 하면 그 점수는 플러스 점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큰 죄와 작은 죄, 큰 봉사와 작은 봉사, 큰 선행과 작은 선행, 그리고 의로운 행동과 불의한 행동등 다 정도와 수준에 의해 점수가 결정 되는 것입니다.

, 회개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공의의 법 가운데 판결하실 것 입니다. 결론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사람보다 높게 평가되는 것입니다. 1주일 내내 죄를 짓고 일요일에만 교회에서 회개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은 일요일 신자일뿐 진정한 의미의 ㅅ신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일 내내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생활하며 될 수 있는 한 죄를 짓지 않고 욕망을 통제하며 바른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온전히 되는 일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그대로 실천하는 일 입니다. 이 선생님! 야고보서 2장14절부터 26절까지 같이 읽어봅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전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또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정탐군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아주 긴 성구였으나 믿음과 행함을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즉 믿음과 행함은 중요한 관계가 있군요.

: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훌륭하다면 행함도 반드시 훌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진실한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예수를 믿습니다 라고 떠들면서 행함이 전혀 없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추종하려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는 자가 되며 오히려 하나님의 사업에 장애를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즉 세상의 소금과 빛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서 문제를 야기시키는 사탄의 일을 돕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게 일컫도록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잘 이해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보다 행동면에서 못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행한 그의 가르침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뜻이 되겠군요.

: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과 모범은 의미가 없게 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함께 해야 한다고 결론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가치가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의 삶을 믿음과 행함으로 훌륭하게 마쳐야 됩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합당한 가르침이요,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지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됩니까?

: 인간은 죽으면 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으면 영의 세계로 가게 됩니다. 영의 세계는 다시 낙원과 영옥(靈獄)으로 나눠집니다.

 이 :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영의 세계는 지상에서 살던 사람들이 죽으면 가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다른 곳에 갔다가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먼저 낙원과 영옥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낙원은 의로운 영이나 회개한 영들이 육체적 죽음과 부활 사이에 거하는 곳이며 영옥은 죄 많고 불의한 영들이 육체적으로 죽음을 맛보고 부활할 때까지 거하는 곳입니다.

: 무슨 말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처음 듣는 교리이므로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죽음과 부활 사이란 무슨 말입니까?

: 이 선생님! 질문을 구체적으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낙원은 의롭고 회개한 영들이 이 세상에서 떠난 후에 안식과 평화를 누리며 고난과 근심과 슬픔을 잊고 편히 쉬는 곳입니다. 영옥은 불의한 죄 많은 영들 즉, 회개하지 않고 주님의 영감을 얻지 못하고 사탄의 지배하에서 악마의 뜻에 따라 생활하던 바로 그러한 영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알고 어둠 속에서 울며 통곡하며 고통과 근심 속에서 생활하는 곳입니다. 낙원에 있던, 영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결국 부활하게 됩니다.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5장 22절 참조)

즉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은 후에는 의로운 영은 낙원으로, 불의한 영은 영옥으로 가게 되며, 그곳에서 각자가 부활할 때까지 즉 심판을 받을 때까지 임시로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인간이 이 지상에서 죽은 후 낙원과 영옥 둘 중 어느 한 곳에 갔다가 부활이 있을 때 그 곳에서 나와 부활한 육신을 갖고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이겠군요. 그렇다면 이러한 교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인생의 진로에 대한 이런 가르침은 처음입니다. 신약이나 구약에서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먼저 부활에 대한 것을 성구와 함께 설명한 다음 낙원과 영옥에 대한 성구를 설명하면 더욱 이해가 빠르겠습니다. 이 선생님, 부활이 있다는 말은 믿습니까?

: 네, 부활은 분명히 있습니다.

: 부활은 무슨 부활과 무슨 부활이 있습니까?

: 잘 모르겠습니다.

: 부활은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이 있습니다. 첫째 부활은 요한계시록 20장 4절부터 6절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 제가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 하겠습니다.(이 선생은 요한계시록 20장 4절부터 6절까지 읽는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니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 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이 선생은 잠깐 있다가 질문을 계속한다). 첫째 부활에 대한 설명 같으나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 부활은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 부활은 의로운 자의 부활 또는 생명의 부활이라고 하고, 둘째 부활은 불의한 자의 부활 또는 심판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5장 28절에서 29절을 보면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 한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활은 의로운 사람들의 부활로 낙원에 있는 사람들이 부활하여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축복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천년(福千年)이라고 합니다. 이 복천년이 끝난 다음 영옥에 있는 사람들이 부활하게 됩니다.

영옥에 있는 사람들의 부활은 복천년 동안에 일어나지 않고 복천년이 끝난 다음에 일어납니다. 복천년 동안 사탄은 묶임을 당하여 복천년이 끝난 다음 잠깐 동안 플리게 되나(요한계시록 20장 7절~10절). 곧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게 됩니다. 영옥에 갇혀 있던 영은 부활 때 육신과 결합하여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즉 부활은 이 지상에서 살던 영이 영의 세계 즉, 낙원이나 영옥에 가 있다가 육을 다시 입게 된다는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 의로운 영은 먼저 부활하여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같이 생활하며, 불의한 영은 복천년이 끝난 다음에 늦게 부활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 바로 그렇습니다.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을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 몰몬경이 이러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고요?

: 네 그렇습니다. 몰몬경은 신약과 구약을 잘 보충해서 설명해주고 있으며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 낙원과 영옥에 관한 성구는 신약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 예수께서 누가복음 23장 4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린도후서 12장 4절에도 낙원이 나와 있습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영옥에 관한 성구는 베드로전서 3장 18절~19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19절에 옥에 있는 영들이란 말은 영옥에 있는 영들이란 뜻입니다.

: 예수께서 죽은 후에 영옥에 있는 영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하였는데 죽은 후에도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는 성구는 처음 본 것 같습니다. 다른 성구가 있습니까?

: 네, 베드로전서 4장 6절을 보시면,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이 세상을 떠난 영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이나 예수께서 탄생하신 이후라도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에게는 영의 세계에서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임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복음 전파에 관한 답변은 처음 듣습니다.

: 그것뿐이 아닙니다. 죽은 자들이 영만 있고 육이 없기 때문에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 대신 침례도 받습니다.

: 대신 침례를 받는다니 그것은 좀 이상합니다. 대리 침례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물과 성신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육체가 있어야만 침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을 위해 살아있는 사람이 대리로 침례를 받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초대 교회 때에도 그렇게 행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 대리 침례를 행했다고 했는데 성경에서 그러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 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5장 29절을 봅시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침례(세례)를 받느뇨?

: 이런 성구와 그에 대한 교리 해석은 금시초문입니다.

: 지상의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만 성전(聖殿)을 갖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조상을 위해 대리침례 의식을 행합니다.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해서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67대 손입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직계로 김수로왕까지 전부 대리침례를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거의 2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들의 부인과 자녀들을 위한 대리 침례를 다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가야국의 김수로왕은 태왕(太王)이라고 부르고 왕비는 허황옥(許皇玉)인데 인도의 아유타국(阿揄陀國)의 공주였으며, 그분들의 자녀는 장남이 도왕(道王)이었고 장녀는 영안공주(永安公主)였으며 차녀는 김씨비입니다. 도왕(道王)은 부인 모정밑에서 성왕(成王)을 낳았습니다.

 성왕(成王)은 덕왕(德王)을 낳고, 덕왕은 명왕(明王)을 낳고, 명왕(明王)은 신왕(神王)을 낳고, 신왕은 혜왕(惠王)을 낳아 계속 계보는 이어져 내려 옵니다.

혜왕은 숙왕(肅王)을 낳고, 숙왕은 양왕(讓王)과 구해왕(仇亥王)을 낳고, 양왕은 김세종(金世宗)과 김무력(金武力)과 김무득(金武得)을 낳고, 김무력은 김서현(金舒玄)을 낳고 김서현은 김유신(金庾信)과 김흠순, 김문희, 김보희를 낳고 김유신 장군은 김삼광(金三光), 김원술(金元述), 김원정(金元貞), 김장이(金長耳), 김원망(金元望), 김군승(金軍勝)을 낳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약 2000년간의 역사 속에 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자녀들을 모두 침례했습니다.

저의 어머님은 창녕(昌寧) 조씨 가문입니다. 화순파(和順派)로서 저로부터 시조 조계룡(曺繼龍)과 그의 부인 진평왕녀(眞平王女)까지는 45대입니다. 요사이 저는 아버지 혈통의 침례를 마치고 모계의 침례를 받고 있습니다. 말일성도들은 족보를 아주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도 많은 족보를 기록했고 특히 예수의 족보는 아담과 하나님까지 연결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백성들이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족보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제 얘기와 가족계보 얘기를 너무 많이 해 죄송합니다.

: 네, 그렇다면 족보를 귀중히 여겨야겠군요.

: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 조상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우리나라 족보만큼 과학적으로 잘 기록된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세계계보협회(미국 유타주 솔트 레이크 시티에 소재)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보면 한민족(韓民族)의 계보가 가장 잘 기록되어 있고 가장 오랜 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 말일성도들은 전세계적으로 8백40만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조상을 위해 침례를 받습니까?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회원들은 최대한 자기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타주 솔트 레이크 시티 부근 록키 산맥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족보 보관소를 가지고 있으며, 핵폭탄 피해까지도 막을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이곳 도서관에 지정된 각 교회의 컴퓨터에서도 족보확인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저의 조상을 같은 친척 중에 누가 침례를 베풀려고 하면 컴퓨터를 통해 누가 언제 어디서 침례를 베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복을 피하면서 효율적으로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대리 의식을 위한 시설과 노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29절에 있는 대리침례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 이 선생님은 어느 이씨입니까?

: 전주 이씨입니다.

: 그렇다면 이미 우리 회원 중 누군가가 전주 이씨 족보를 구하여 많은 분들을 침례했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5대나 10대 정도까지의 조상을 찾아 대리 침례를 하시면 될 것입니다. 구청에서 호적등본을 교부 받아 보시면 족보와 연결이 되며 국립도서관이나 종친회를 통해 가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바로 이 사업은 모든 인류는 아담으로부터 한 가족이요, 하나님의 한 자녀라는 사실을 인식케 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성서상의 교회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침례의식을 베풀다 보면 회원들 서로가 혈맥으로 연결되는데 저의 경우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도 아유타국과 연결이 됩니다. 우리 민족의 단일 혈통 이론은 족보를 통해 잘못된 것임도 알았습니다. 김수로왕의 부인은 허황옥으로서 인도의 공주였으니 결국 세계적으로 연결이 됩니다.

: 대리 침례의 의미는 참으로 넓고 깊은 것이군요!

: 그렇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 그 다음 단계를 정리해 봅시다. 이 선생님, 지금까지 토론했던 사항을 제가 다시 요약 정리하겠습니다. 인간은 전세에서 영으로 존재했다가 현세에서 부모로부터 육을 얻어 영육이 함께 결합하게 됩니다. 이것을 출생이라고 부르는데 죽으면 육은 땅에 묻히고 영은 영의 세계로 갑니다. 의로운 영은 낙원에 가고 악한 영은 영옥에 가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낙원에 있는 의로운 영은 먼저 부활하여 복천년의 생활을 누리고 복천년이 끝난 다음 불의한 영이 영옥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다 부활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성취시키게 되며 모든 인간이 주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드렸습니다.

: 심판을 받은 후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천국과 지옥으로 갑니까?

: 각 사람들의 믿음과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가장 높은 단계가 해의 영광이며, 그 다음은 달의 영광이며, 그 다음은 별의 영광입니다. 그 다음은 무저갱(지옥)으로 나뉘어집니다.

: 저는 단지 천국과 지옥으로만 나누어지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그렇게 많은 단위로 나눠지는 것을 몰랐습니다. 김 선생님 성구에서도 천국이 여러 단위로 나뉘어지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까?

: 네, 고린도전서 15장 35절부터 45절까지 읽어 보시면 모든 부활의 육체가 다르다고 설명했으며 하늘에 속한 몸과 땅에 속한 몸이 다르며, 하늘 속에서도 각각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41절에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이 다르고 이 별과 저 별의 영광도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살면서 각각 다른 믿음과 행위의 수준을 갖게 됩니다. 단순히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 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지 두 곳으로 나눠진다면 그 보상과 징벌이 너무 단순하여 하나님께서는 불공평한 분이 될 것입니다. 보상의 단계는 여러 개로 나뉘어 즉 해의 영광 속에서도 또 나뉘어져 각자의 신앙과 행위에 알맞은 보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여러 단계의 영광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해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해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을 받아 들여 그대로 생활해야 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의식을 받으며 구원에 관계되는 성약을 성실히 지켜야 합니다.

: 네, 잘 알았습니다. 잠깐 대화하는 동안 엄청난 지혜의 눈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수십번 신약 성경을 읽었고 가르침을 받아왔지만 그동안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지금까지 설명드린 것은 성경에 있는 대로 간단한 기초 신학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으로 유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도 해의 왕국 중 가장 높은 곳에 가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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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부다처제에 대한 질의 응답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극심한 박해를 받았던 것은 19세기 한 때 일부다처를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날에 일부다처제가 실시된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이며 지금은 어떠하며 또한 기독교의 역사와 교리상으로 보면 이것이 어떤 평가를 받는 것인지를 문답 식으로 설명하여 이것에 대한 오해를 씻고자 한다.

;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일부다처제 또는 복수결혼을 실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 지금은 우리 교회에서 일부다처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 1백년 전에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 그렇습니까? 왜 일부다처제를 실시했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금부터 약 1백50년전 1843년 7월 12일 일리노이주 나부(Nauvoo)에서 선지자 죠셉 스미스는 복수결혼에 관한 계시를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 계시를 받은 죠셉 스미스는 크게 고민했습니다. 당시 많은 성도들이 몰몬경 때문에 핍박을 받았는데 또 복수결혼을 한다면 얼마나 핍박을 많이 받을 것인가 하고 깊이 고민했습니다.

바로 선지자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인간의 생각으로 주저하게 될 때 일어나는 갈등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기도한 결과 공식적으로 이 사실을 교회 회원들에게 공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김 선생님 잠깐만요, 일부다처제는 간음이 아닙니까? 제 생각으로는 일부다처제도는 분명히 성경상으로 간음이라고 봅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다처제를 간음으로 생각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간음이 아닙니다. 구약성서를 통해서 간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겠습니다.

: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복수결혼은 분명히 하나님 율법에 어긋나는 간음입니다. 빨리 답변해 보십시오.

: 설명 하겠습니다. 인내를 갖고 들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었고 그 중 일곱번째 계명으로 간음하지 말라 했습니다.

: 그 사실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 그 당시 간음을 하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 간음한 자를 돌로 쳐 죽이는 무서운 형벌이 있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레위기 20장 10절~12절을 읽어 봅시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최선생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간음한 자는 돌로 맞아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보다 훨씬 무서운 율법이 존재했던 구약시대에도 일부다처제도는 간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아버지들과 사사들과 예언자를 중심으로 이를 실시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일부다처제가 간음이었다면 일부다처제를 실시한 예언자들과 족장과 사사들은 다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 그래요,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구체적으로 토론해 봅시다.

먼저 창세기 16장 1절~3절과 25장 1절~3절을 읽어보면 아브라함은 사라와 결혼하여 이삭을 낳았고 하갈과 결혼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또한 그두라와 결혼하여 여러 민족을 이루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신앙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만약에 일부다처제가 간음이라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돌에 맞아 죽지 않았으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사랑하고 그와 교통할 수 있었겠습니까?

: 잠깐만요. 제 머리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예를 성경을 통해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 그렇게 하겠습니다.

창세기 29장과 30장을 보면 이삭의 아들 야곱(Jacob)은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맞이했고 또한 부인의 여종들인 빌하와 실바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네명이었고 그 네명의 부인에게서 열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이름을 나중에 이스라엘(Israel)로 바꿨고 이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곧 이스라엘이 아닙니까? 이 야곱은 부인 네명에게서 이스라엘의 열 두 부족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 또 다른 성구가 있습니까?

: 네 있습니다. 일부다처에 관한 성구를 찾아봅시다.

민수기 12장 1절

모세가 구스(에티오피아)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사사기 8장 30절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인이었고

사사기 12장 8절~9절

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더니.

사사기 12장 13절~14절

그의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에게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있어서 어린 나귀 칠십필을 탔었더라.

사무엘상 1장 1절~2절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린나라, 브린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사무엘상 25장 42절~43절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사자들을 따라 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취하였더니 그들 두 사람이 자기 아내가 되니라.

사무엘하 3잘 2절~5절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자들이더라.

열왕기상 15장 5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역대상 14장 3절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또 아내들을 취하여 또 자녀를 낳았으니

열왕기상 11장 3절

솔로몬 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역대상 2장 18절

헤스론의 아들 갈렙이 그 아내 마수바와 여리옷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니 그 낳은 아들은 예셀과 소밥과 아르돈이며.

역대상 7장 14절

므낫세의 아들들 그 처의 소생은 아스리엘이요 그 첩 아람 여인의 소생은 길르앗의 아비 마길이니.

역대상 8장 8절~9절

사하라임은 두 아내 후심과 바아라를 내어보낸 후에 모압 땅에서 자녀를 낳았으니, 그 아내 호데스에게서 낳은 자는 요밥과 시비야와 메사와 밀감과……”

이와 같이 일부다처제도가 간음이라면 이에서 열거한 예언자, 신앙의 족장, 사사, 국가의 지도잘들이 왜 그 당시 율법에 의해 처형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신앙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일부다처제도는 그 사회의 풍습과 제도인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계시로서 시대적 요청과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행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만 조금 더 합리적으로 왜 그러한 제도와 규범이 존재했어야 하는가, 그 당위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으면 합니다.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축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위 성구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시의 야곱(이스라엘)이 네 부인을 통해 열 두 아들을 갖게 되었지만 선민(選民)을 번성시켜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계속 일부다처제도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만약 일부다처제도가 실시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국가를 형성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펼쳐진 기록인 구약성서는 우리 손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일부다처제는 언제 어디서나 실시해도 좋다고 봅니까?

: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사회의 상황과 국가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답변해 보겠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의에 대해 논한 후 차례차례 설명하겠습니다. 정의에는 배분적 정의와 균등적 정의가 있습니다.

배분적 정의는 공동체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그 지위와 능력에 알맞은 권리와 의무를 갖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각 기업체와 정부기관에서는 자기의 직급과 직책에 따라 급료를 달리하고 자기의 책임과 임무도 각각 다릅니다. 또 다른 쉬운 예로서 어떤 집단에서 급식을 할 때 8살 먹은 아이에게는 빵 1개, 12살 먹은 소년에게는 빵 2개, 25살 먹은 청년에게는 빵 4개를 주었습니다. 왜 빵의 양이 다르겠습니까? 이것은 이 사람들의 연령과 신체에 알맞은 필요량만큼 잘 분배한 것입니다.

세금을 내는 경우도 수입이 많은 사람은 많이 내게 하고 수입이 적은 사람은 적게 내게 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분적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균등적 정의란 공동체의 성원에 대하여 균등하게 권리와 의무와 명예와 이익을 분배하는 것이겠군요. 예를 들자면 모든 선거권자는 투표를 한번 할 수 있는 것 같은 경우 아닙니가?

: 정확합니다. 균등적 정의는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 이러한 정의와 일부다처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 네, 이러한 정의와 일부다처와의 관계를 설명하겠습니다.

가령 A국과 B국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다고 합시다. 누가 승리를 했던지간에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남자가 1백만명 살아 있고 여자는 2백만명 살아 있다고 합시다. 이 때는 결혼대상 여자가 50%나 남게 됩니다.

만약 최 선생님이 A국이나 B국의 대통령이라면 남자 1백만명과 여자 1백만명만 결혼시키는 일부일처제도를 실시하여 나머지 1백만명 여성이 갖는 결혼의 특권을 박탈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또는 결혼제도를 얼마동안 바꾸어 다시금 국가 건설을 하겠습니까?

: 물론 일부다처제도를 실시하겠습니다. 그런데 후기성도들의 일부다처제도와 지금까지 설명한 상황과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 물론 관계가 있고 말고요. 한가지만 예를 더 설명하면서 상관관계를 설명하겠습니다. 이 지상에서 아주 근면 성실 정직하고 신앙심이 깊은 집단이 있습니다. 이 집단이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로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집단을 보존하기 위해 당연히 이 집단의 지도자에게 계시를 통해서 번성토록 하는 방편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일부다처제도 실시는 이와 같았습니다. 흔히 일부다처제도를 생각하면 먼저 성(性)적인 면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나 1세기 전에 실시했던 교회의 일부다처제도는 전혀 그러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는 도중에 많은 남자들이 죽었습니다. 과로로 죽거나 병사했거나 동사했습니다. 인디안의 습격을 받았고, 전쟁에 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家長)을 잃은 가족에 대한 부양의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그 때는 30세된 남자가 65세된 할머니 가족의 책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바깥 사람들과 완전히 유리되어 마치 대양 한가운데 있는 섬과 같았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 했습니다. 격리된 지리적 여건과 버릴 수 없는 확고한 신앙은 바깥 사람과의 결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남자보다 여자의 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결혼의 특권을 갖지 못하고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통해 조셉 스미스에게 일부다처를 명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주저했던 조셉 스미스는 예언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일부다처를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신앙이 있고 생활 능력이 있는 등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복수 결혼을 허용했습니다.

40년 정도 일부다처를 실시한 후에 교회의 남자와 여자의 수는 균형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회전반의 도덕적 관념도 일부일처를 요구했으며 국가의 법률도 그렇게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1890년에 다시금 교회에서는 일부 일처를 선포했습니다. 일부다처제도는 필요가 있을 때 행했던 잠정적인 조치였습니다.

: 많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보면 왕조와 양반계급에서는 일부다처제도가 널리 퍼져 있었음이 생각나는군요. 그러니까 몰몬 교회의 일부다처제도는 우리나라에서보다 먼저 끝났군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몰몬 교회의 일부다처제도는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회의 관습과 제도였습니다. 현재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네 명의 부인을 취할 수 있지만 간통하는 자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형시킵니다. 길을 가다가 남의 여자를 쳐다보는 경우에도 여자가 경찰에 고발하면 법률적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일부다처제도에서도 합법적인 결혼은 간음이 아니며 일부일처주의라도 비합법적인 결혼은 간음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질문 하겠습니다. 분명히 대답해 주십시오.

지금도 후기성도 중에 일부다처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 지금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일부다처제도를 허락치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교회 재팜을 통해 파문을 받습니다. 이 지상의 종교집단 중 성적(性的)인 문제라면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성도들처럼 깨끗한 집단은 없을 것입니다.

이 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남녀간에는 결혼 전에 순결을 지켜 성전 결혼을 하도록 하고 결혼 후에는 부부간의 순결을 다짐하기 위해 성전의식에 자주 참여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성도들을 도덕적으로 매우 깨끗하다고 말하지요. 이것은 사실이며 이것은 후기 성도들의 생활신조이기도 합니다.

: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내로 끝까지 토론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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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몰몬경 등 다른 경전에 대한 견해

 

radial_blue.gif경전의 개방성

radial_blue.gif다른 경전들

radial_blue.gif몰몬경을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의

radial_blue.gif성경상에 나타난 몰몬경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

경전의 개방성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는 신약성경구약성경을 으뜸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교회는 신약과 구약성경 외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또 다른 경전으로서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과 '값진 진주'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경전의 범위에 관하여 개신교와 같이 한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는 후기성도들을 비판한다. 이러한 논쟁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개신교는 기독교적 신앙생활을 위한 율법과 가르침은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특히 정경(正經, Canon)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가 외경(外經, Apocrypha)이라고 생각하는 7권의 책을 추가로 성경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으로만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증거로서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 있는 성구를 예로 든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또한 요한복음 15장 15절에 나오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라는 구절을 들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필요한 것을 남김없이 다 가르치셨기 때문에 다른 경전은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전의 범위에 대하여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는 후기성도는 기독교적 가르침에 혼란이 많고 수많은 교파와 교회가 서로 다른 주장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것은 성경만으로는 부족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면 왜 그렇게 많은 혼돈과 다툼이 있는 것인가고 반문한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 나오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 더 가감하지 말라"는 것은  지혜로운 신학자라면 그것이 요한계시록에 한정해서 더 가감하지 말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요한계시록이 쓰여졌을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오늘날과 같은 내용과 배열을 가지고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신명기 4장 2절과 12장 32절에도 요한계시록 22장 18절-19절과 같이 "말씀의 내용을 가감하지 말라"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도 그 내용은 신명기에 한정시켜서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명기 후에 나온 모든 경전들이 성서의 내용이 될 수 없다고 해석될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제자들에게 알게 했다는 말은 진실이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이 성경에 남김없이 다 적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21장 25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는 부족할 줄 아노라."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서 1장 2절에 나오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는 구절과 베드로후서 1장 3절의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는 구절을 들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하늘에서 오는 계시가 더 이상 필요가 없고 따라서 다른 경전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에 대해 후기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현재의 성서 안에 들어 있지는 않으며 그 증거로는 외경이 많이 있고 또한 어떤 책이 정경이고 어떤 책이 외경인가 하는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에 토론과 논쟁을 거쳐 결정된 것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정경의 내용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 모두 매듭지어 질 수 있다면 그리스도 승천 후에 사도들이 쓴 후에 글인 사도행전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의 기록은 경전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신약성경은 초기에는 지금의 내용에서 많은 것이 빠져 있었고 실제로 16세기에 들어서야 신약성경의 정경(正經)들이 오늘날과 같은 장과 절을 갖추어 배열되었다. 게다가 신약성경 중 가장 마지막으로 쓰여진 것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라 기원 후 100년 경에 쓰인 요한복음이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한정하는 것으로 해석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요한복음은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성서는 기원전 2000년 경에 쓰여진 모세 오경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기원 후 100년 경에 쓰인 요한복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자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한권 한권이 손으로 꼼꼼히 쓴 필사본으로 만들어 졌다.  따라서 똑같은 경전이 두 권 있을 수 없었다. 구약은 39권, 신약은 27권으로 구성되어 성경은 합계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66권 외에도 성스럽게 쓰여진 책들이 많이 있었다. 그 예를 보자.

  1.  언약서 (the Book of the Covenant): <출애급기 24:7>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the Book of the Covenant)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2. 여호와의 전쟁기 (the Book of the Wars of the Lord): <민수기 21:14>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the Book of the Wars of the Lord)에 일렀으되."
  3. 야살의 책: <여호수아 10:13>  
    "...야살의 책(the Book of Jasher)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4.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책: <사무엘 상 10:25>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5. 에녹서: 유10:14
  6. 솔로몬의 행장: <열왕기상 11:41>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그 지혜는 솔로몬의 행장에 기록되지 아니 하였느냐.."
  7.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  <역대상 29:29>
    "다윗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8. 예언자 나단의 역사와 실로사람 아히야의 예언과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 <역대하 9:29, 12:15, 13:22>
    "이 외에 솔로몬의 시종 행적은 선지자 나단의 글(the Book of Nathan, the Prophet)"
  9. 스마야의 족보책: <역대하 12:15>
    "
    실로 사람 아히야의 예언(the Prophecy of Ahijah, the Shilomite)"
  10. 선지자 잇도의 주석책: <역대하 13:22>
    "
    선견자 잇도의 묵시책(the Visions of Iddo, the Seer) 곧 잇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대하여 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1. 예후의 글: <역대하 20:34>
    "이 외에 여호사밧의 시종 하나님의 아들 예후의 글(the Book of Jehu)에 다 기록되었고 그 글은 이스라엘 열왕기(the Book of the Kings of Israel)에 올랐더라"
  12.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한 웃시야의 시종행적: <역대하 26:22>
  13. 선견자의 말씀: <역대하 33:19>
  14.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잃어버린 편지: <고린도전서 5:9>
    "내가 너희에게 쓴 것(in an epistle)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5. 에베소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 잃어버린 부분: <에베소서 3:3>
  16. 라오디게아가 쓴 골로세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 잃어버린 부분: <골로세서 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the epistle from Laodicea)를 너희도 읽으라.
  17. 유다의 잃어버린 편지: <유다서 3>
  18. 누가에 의해서 언급된 신앙의 선언: <누가복음 1:1>
  19. 선지자로 하신 말씀: <마태복음 2:23> (구약에는 이 말이 없음)
    "나사렛이란 동리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이러한 책과 서신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경 승인'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성경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성서안의 책들은 대충 연대순으로 배열되었으나 구약에서는 시와 예언서들은 연대순으로 편찬되지 않았고 신약성서에서도 많은 책이 연대순으로 편찬되지 않았는데 사도 바울의 편지들이 기원후 50년 경에 가장 일찍 쓰여졌고 네 개의 복음서를 비릇한 대부분의 다른 경전들은 기원 후 70-100년경에 쓰여졌다. 이 중 가장 늦게 쓰여진 것은 요한계시록이 아니라 기원후 100년경에 기록된 요한복음이었다.

이와 같은 '정경 승인'의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분류된 것이 있었는데 이들은 외경(Apocrypha)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오늘날 가톨릭판 구약 성서에는 정경 39권 외에 7권의 외경이 추가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기원후 4세기까지는 성서는 한권의 책으로 편찬되지 않았고 두루마리를 그냥 모아놓는 형태였다. 15세기에 활판인쇄술이 나옴으로써 성서가 인쇄되기 시작했는데 그 이전에는 모든 성경은 손으로 베껴쓴 필사본 이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성경을 베끼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의미의 변화나 오역이나 오류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들어 인류 최대의 발견이라고 불리는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이 사해두루마리는 에스더를 제외한 모든 구약성서의 단편과 대부분의 외경 그리고 현재의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대단히 많은 분량의 새로운 귀중한 문헌을 포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귀중한 문서들이 오늘날 사람들이 가진 성경의 기초가 된 히브리어 원전들보다 1천년 이상 오래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사해두루마리는 지금까지 현대 성경을 만드는데 근본적 자료로 사용해온 맛소라 사본(Masoretic Text)이나, 칠십인 역 사본(Septuagint), 벌게이트(Vulgate) 사본과 비교해 볼 때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가진 성경은 원문을 회복하고 필요한 수정을 가하며 완전한 번역을 할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 후기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하게 이해시키고 성경이 가져다 주는 해석상의 오류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경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후기성도들이 가진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 등 또 다른 경전들은 교회 안에서 교리상의 명쾌함과 더불어 논리상의 일관성을 가져다 주고 교회의 실제 조직과 운영면에서 다른 종교나 종파에서는 볼 수 없는 명확한 질서를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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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경전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후기성도들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알리시고자 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실 진리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교회는 선지자를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후기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또 하나의 경전으로 몰몬경을 받아들인다. 이 몰몬경은 서반구에 살았던 요셉의 후손들에게 관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몰몬경에 따르면 기원전 600년경에 리하이라 불리는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의 부름으로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난다. 이들은 대양을 만날 때까지 여행하여 거기서 새로운 땅에 건너갈 수 있는 배를 짓도록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다. 이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오늘날의 남미 대륙에 도착한다. 리하이의 두 아들인 니파이와 레이맨 사이에는 마찰과 분쟁이 시작되는데, 니파이는 그 부친 리하이의 뜻에 순종했으나 레이맨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레이맨을 따라간 후손들은 저주를 받았고 니파이를 따른 후손들은 축복을 받았다.

몰몬경은 기본적으로 니파이 민족과 레이맨 민족을 두고 일어났던 역사를 다르고 있는데, 기간 중에는 그리스도의 탄생, 죽으심, 부활의 때와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고 결국 기원 후 421년에 니파이 민족이 완전히 멸망함으로써 기록은 끝난다. 그리고 레이맨의 후손 중 일부는 오늘날 인디안으로 알려진 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몰몬경은 상당부분 구약의 신명기와 같은 형태로 쓰여졌다. 이 경전은 니파이인과 레이맨인들의 사회적인 움직임과 정치적인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이 경전은 유대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리라는 예언을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 서반구의 니파이인들에게도 나타나셨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니파이인의 땅에서도 신약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셨으며 백성들은 그의 말씀대로 살았고 기원 후 200년경까지 그 땅에 평화가 있었으나 그 이후 문화적 쇠퇴가 일어났다고 적혀 있다.

이 책은 니파이인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몰몬의 이름을 따서 몰몬경으로 불리게 된 것이며 이 책은 결국 몰몬의 아들 모로나이에 의해 완성되어 땅속에 숨겨진 것으로 되어 있다.

몰몬경과 더불어 후기성도의 경전으로 채택된 것은 <교리와 성약>이다. 이 경전의 대부분은 조셉 스미스가 평생토록 받은 계시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서 후기성도의 신학, 생활태도, 사고의 틀을 형성한다. 교리와 성약의 내용에는 조셉 스미스 이후의 선지자들인 브리감 영, 조셉 에프 스미스, 읠포드 우드럽과 최근에는 스펜서 더불류 킴볼의 계시도 포함되어 있다.

후기성도들이 가진 마지막 경전으로는 <값진 진주>가 있다. 이 책에는 조셉 스미스가 창세기를 보고 영감을 받아 해석한 모세서가 있고 다음에는 1835년 조셉 스미스의 손에 들어온 아브라함의 기록으로 알려진 에집트의 파피루스를 번역한 아브라함서가 있고 마태복음의 일부를 영감을 받아 해석한 글이 있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진리를 회복한 역사를 적은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의 네가지 경전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형성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회의 모든 신학적 교리는 구약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교리 중에는 성경적 근거를 갖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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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몬경을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의

몰몬경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이 몰몬경의 저자라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정해 볼 필요가 있다.  

  1. 저자는 23세에서 24세 사이의 나이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2.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정규 교육은 3년정도 받아야 한다.
  3. 저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자료를 사용해야지 다른 자료를 보거나 참고하지 않아야 한다.
  4. 저자는 239개의 장을 기록해야 하고 54개의 전쟁기사와 21세기의 역사기록, 55개 예언, 71개의 선교사업이야기와 21개의 예수의 사명에 때해 기록해야 한다.
  5. 저자는 이 책에 나와 있는 민족의 종교와 경제와 사회와 정치와 문화를 기록해야 한다.
  6.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 개인과 그의 삶을 이 책에 기록해야 한다.
  7. 이 책의 기록은 약 1천년의 역사이지만 저자는 80일 만에 끝내야 한다.
  8. 이 책의 기록을 끝낸 이후로 어떤 변경도 가하지 않아야 한다.
  9. 취침이나 식사를 한 후 또는 쉬고 난 후에도 이 내용을 받아쓰는 서기에게 쉬기 전에 썼던 마지막 구절이나 마지막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고 곧장 이어 다시 받아쓰도록 불러 주어야 한다.
  10. 이 기록은 한 페이지에 1백50개 이상의 단어를 기록하여 5백22페이지를 기록해야 한다.
  11. 이 기록은 추리가 아니고 진실이고 거룩한 역사 기록이어야 하며 모든 기록이 순조롭게 그리고 물흐르듯 거침이 없어야 한다.
  12. 이 기록에 있는 예언들은 다 성취되어야 한다. 예언의 형태, 예언의 주인공, 예언의 목적과 성취 여부 등에서 신,구약과 상 반되지 않아야 한다.
  13. 이 기록은 모든 국가와 민족과 언어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책으로 출판되어야 한다.
  14. 이 기록은 놀라운 약속을 포함해야 한다. 즉 이 기록을 읽는 독자에게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하고 나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책이 참된 것인지 간구하여 보도록 권고해야 하며 신앙으로 간구하는 사람들은 성신의 권세로 이 책이 성스러운 책이라는 간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15. 수백만명의 세상사람이 1백63년이 지나도록 이 책이 참되다는 것을 성신의 능력을 통해 알았음을 간증해야 한다.
  16. 수많은 유명한 지식인과 학자들이 이 기록의 지지자가 되고 이 기록을 위하여 생명이라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17. 저자가 이 기록을 출판할 때 이 책에 기록된 문명과 문화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18. 이 책 내용 중 어떤 것도 불가능한 얘기이거나 서로 상반된 기록이어서는 안된다.
  19. 이 책을 기록한 다음 세상의 유명한 학자나 전문가에게 이 책이 진실한 것인지 신중히 검토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20. 정직하고 진실한 세 명의 증인이 있어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천사가 나타나 번역의 원본인 금판을 직접 부여주었음을 간증 해야 한다.
  21. 이 책의 내용과 사실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이론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지적해야 한다.
  22. 금판을 본 세 명의 목격자는 이 금판이 하나님의 은사로 번역되었다는 주님의 음성을 직접 전해 들어야 한다.
  23. 여덟명의 목격자는 저자가 보여준 금판을 밝은 낮에 보고 직접 손으로 만져봐야 한다. 그들이 본 새겨진 글씨는 진귀하며 고대어로 기록된 것이어야 한다.
  24. 세 명의 모격자와 다음에 여덟명의 목격자는 진실로 희생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하며 그들의 증언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25. 이 책을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부터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한 재정적 도움을 받아야 하며 저자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원가로 팔아야 한다.
  26. 저자는 이 책을 출판한 후 20년 동안 어려운 고통과 핍박을 받은 후 하나님의 참된 기록이라는 것을 증거하다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
  27. 후기성도들은 결국 예언자 조셉 스미스가 아니면 누구도 이 일을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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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상에 나타난 몰몬경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언급된 몇몇 제한된 민족과 국가에서만 성역을 베풀었고  그들에게만 선지자와 계시를 주신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후기성도들은 하나님은 동방구뿐 아니라 서반구에서도 성역을 베풀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갖게 했다고 믿고 있다.

즉 동반구의 경전인 성경과 서반구의 경전인 몰몬경은 그 전통과 문화, 역사와 정치, 사회 구조와 경제체제, 율법과 복음 등 내용면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으며 두 책은 공히 하나님의 섭리와 영감이 임재하여 일관성과 명확성에서 차이는 있으나 그리스도의 탄생, 그분의 성역과 사명, 사망과 부활, 승천과 재림, 이스라엘의 분산과 집합 등의 기록에서 서로를 증거하고 보충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두권의 책은 서로 모순 되거나 어긋나서 오류를 갖기는커녕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편 85편 11절에서 다윗왕은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강하였도다" 라고 노래했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45장 8절에서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이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라고 노래했는데 후기성도는 몰몬경의 출현이 땅으로 부터 오고 조셉 스미스가 하늘 사자로부터 직접적인 계시의 인도를 받은 것은 이 성구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에스겔은 성경과 몰몬경을 상징하는 유대의 막대기와 요셉의 막대기에 대한 다음 성구를 계시로 받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 라 하셨다 하고"  (에스겔서 37장 15절-19절)

고대에는 문서를 기록하거나 보전할 때 긴 양피지(양가죽)나 파피루스의 두루마리(Scroll of papyrus)에 글을 써서 막대기에 말아 사용했던 관습을 되돌아 볼 때 '막대기'는 곧 책을 의미한다. 책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경전을 의미한다. 에스겔이 이 시현을 봤을 때는 이스라엘 민족은 유다왕국(남왕국)과 이스라엘 왕국(북왕국)으로
분단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두 막대기는 유다의 기록과 요셉의 기록을 의미한다.
후기성도들은 유다의 기록이란 성경을 의미하고 요셉의 기록은 몰몬경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몰몬경에 나타나 있는 니파이 백성은 요셉의 후손이므로 요셉의 막대기에 그들의 행적과 사회, 문화, 정치, 제도 등이 하나님의 성역속에 기록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성구를 통해서도 열국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요한복음 10장 16절에 보면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서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고 했다.
이 말씀에 양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염소는 늘 양의 반대로 나타나 적 그리스도 또는 불의한 자의 입장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가 이 우리 안에 들지 아니한 다른 곳에 있다고 했는데 말일성도는 즉 동반구 이 외에 몰몬경의 무대인 서반구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가 있었다고 이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양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을 말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성역을 베푸실 때 이방인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할 당시 미대륙에는 니파이 백성들이 성스러운 기록을 보존하고 있었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몰몬경의 기록이다. 그리스도께서 저희도 한 무리가 되게 하여 한 목자 아래 있게 하겠다고 한 것은 마치 에스겔서 37장 15절부터 19절 내용 중 한 막대기가 되게 한 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성구와 서로 통하여 몰몬경을 증거하는 동시에 미 대륙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성역을 분명하게 입증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몰몬경에 대한 성경상의 또 다른 증거를 살펴보자. 구약성경의 창세기 49장에는 야곱(이스라엘)이 죽기 전에 열두 아들 즉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대한 예언한 것이 나온다. 열두 아들 중 커다란 축복을 받은 것은 유다와 요셉 이었다. 유다에 대한 축복을 살펴 보자. (창세기 49장 8절-10절).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 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에 대한 축복은 유다 지파에서 왕들이 계속 나오며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서 나오시리라는 것으로서 유다의 역사를 보면 이 예언은 모두 성취되었다. 다음에는 요셉 에게 예언된 축복을 살펴보자(창세기 49장 22절-26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 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요셉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로 전해진 장자의 권한을 상속받은 자로서 요셉의 지파에 대한축복은 다른 지파의 그것을 완전히 능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요셉의 후손이 축복을 받은 기록은 없다.
후기성도들은 요셉의 후손이 받은 축복의 기록이 바로 몰몬경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창세기 49장 22절에서 담을 넘은 가지는 몰몬경에 나오는 대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건너간 요셉의후손들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창세기 48장 5절, 그리고 15절에서 19절을 보면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각각 한 지파씩을 이루게 되나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큰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러면 이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이것에 대한 해답도 역시 몰몬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 후기성도들은 주장한다.


(기적의 역사 -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세계적 종교의 등장 - , 김차봉 박사 편,
도서출판 삶과 꿈, 1994, 203-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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