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쓰일 수 있는 물건들이 버려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하나 둘 모은 것이 이웃을 도울 수 있다니 즐거울 따름입니다." 주민들이 내놓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쓸 만한 물건을 모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오금동 상아아파트 경비원 고천석(63)씨.

지난해 10월부터 이곳에서 경비를 한 高씨는 "가난을 경험한 세대로서 멀쩡한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니 죄를 짓는 것 같았다"며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쓰레기 더미에서 상태가 좋은 물건을 골라 모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순찰을 돌 때마다 쓰레기 수거함을 살폈고 청소원 아주머니들에게도 "좋은 일에 쓸 테니 좋은 물건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동료 경비원들도 돕기 시작했다. 이사가는 집이 있으면 제일 먼저 高씨에게 알렸다. 高씨는 리어카를 끌고 가 쓸 만한 살림살이를 실어 날랐다. 모은 물건은 동료들의 배려로 경비원 휴식 공간에 쌓아둘 수 있었다.

지난 7월 중순이 되자 이렇게 모아둔 물품 중 신발만 해도 박스 세개 분량에 이르렀다. 처리를 고심하던 중 본지의 아름다운 가게 캠페인 기사를 읽게 됐다. "'기증품을 모아 판매한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줬다'는 글을 보고 '이거다' 싶었지요."

기증 신발은 신발 수선 자원활동가의 손질을 거쳐 온라인 쇼핑몰 '생생몰'(www.beautifulstore.org)과 각 매장에 진열됐다. 5천~1만원에 인기리에 팔려 수십만원의 수익금을 만들어냈다.

지난달 29일 高씨는 두번째로 스키.골프채.의류 등과 함께 책 5백여권을 기증했다. 그는 1995년 '익명'이란 단편으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책은 자신이 읽으려고 모아 놓은 1천5백여권 가운데 일부를 내놓은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등을 담은 옥스퍼드 고전시리즈 10여권, 문학대전집 컬러판 20여권, 독어.영어로 된 소설과 마케팅 등 실용서, 동화책과 만화책 등 아파트 가구수만큼이나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책은 그동안 통폐합하면서 비게 된 경비실에 모아두어 동네 아이들이 빌려 읽게 했던 것들이다.

남을 돕는 데 열심인 高씨지만 정작 자신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어려운 처지다. 신체 장애가 있는 부인(60)과 큰딸(27)이 수시로 입원하고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데다 자신도 디스크와 위장병을 앓고 있다. 경비원 수입 70여만원으로 병원비는커녕 월세도 제때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정부에서 약간의 보조금을 받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있는 高씨는 "가족도 있고 직업도 있고 좋아하는 글도 쓸 수 있으니 행복한 편 "이라며 웃음지었다.

그는 "내가 어려운 처지로 남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늘 뭔가 하고 싶었다"며 "내가 주워온 신발과 책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자전적 소설집 '세레나데'를 비롯해 지금까지 소설 8편과 창작집 한권을 발표한 高씨는 "책이 4천여권 모아질 때쯤 단지 안에 도서관을 만들어 이웃끼리 책을 나눠 보게 하고, 환경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물론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 찾기'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한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박현영 기자<hypark@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