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명쾌한 교리와 가르침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1) 하나님 아버지는 영의 아버지이다.
2)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시다
3)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시다
4)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한 몸이 아니다.
5)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외 성신의 개별성
6)
성신(성령)의 개체성과 권세 

 


 후기성도들은 현존하는 예언과 계시를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통의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많은 경전적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신학은 풍부한 내용과 성경적 논거와 실천적 해석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교리는 타 종교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명료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교회내에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후좌우로 교리상의 혼란과 분쟁을 일으키는 일이 거의 없다. 이들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매우 다른 체계를 갖고 있는데 본장에서는 그 여러 가지 교리와 가르침 중에 가장 핵심적 문제인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그리고 인간의 구원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다음으로 일반 기독교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일부다처제와 몰몬경등 다른 경전에 관한 해답을 하고자 한다.

 우리가 어떤 종교를 갖든지 자기가 믿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종교인이 되기 쉬울 것이다.
 말일성도는 신앙개조 제1조에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을 믿는다"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후기성도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으로 정하고 그외 누구도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다. 즉 아담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조셉 스미스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신앙의 대상인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말일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신회(Godhead)를 구성한다고 믿는다. 즉 세분은 우주를 관리하는 평의회의 구성원이다. 후기성도는 세분의 인격체는 각기 다른 개체이지 일체가 아니라고 믿는다. 즉 삼위일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속성부터 알아 보기로 하자. 주로 성서상에서 문제가 되는 이론을 중심으로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1) 하나님 아버지는 영의 아버지이다.  top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후기성도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모두 육신의 아버지가 있는데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 지상에 올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영(또는 영혼)과 육으로 만들어졌다. 육은 지상의 부모로부터 출생시에 받은 것이고 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두분의 아버지가 있는데 한분은 하나님 아버지로서 영의  아버지며 한분은 우리 가정의 아버지로서 육의 아버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죽음을 '돌아간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곧 영이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세상에 온 모든 인류는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의 영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와 자매가 된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서로를 형제 자매임을 확인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영의 아버지 이기 때문에 대화하기를 좋아하신다. 자식이 아버지를 찾을 때 언제든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세상의 아버지와의 대화처럼 조용히 그리고 공손하고 경견한 태도를 갖고 대화하는 것이다.
 기도는 곧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이 대화에서 몸을 흔들거나 비틀며 괴성을 지르고 손을 흔드는 태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을 모르는 소치인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의 아버지'께 아들이 대화를 청하고는 그런 식으로 감사와 부탁을 드리다면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정신 이상이 되었다고 금방 의사를 부르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도 중 성구를 몇분씩 암송하거나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여 시간을 오래 끌고 말을 많이 해야되는줄 안다. 기도하는 동안 장황한 성구 암송은 성경지식을 뽐내는 교만한 행동이며 중언부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 평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성구를 장황하게 암송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감사와 부탁을 이해하실 수 있으며 중언 부언하지 않아도 삼라만상을 주관 하시는 능력으로 모두 아시는 것이다.

 

 2)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시다  top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좀더 살펴보면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형상을 갖고 계신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약에 한나님이 무형이시라면 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했다고 하겠는가.

 후기성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은 실체가 아니고 그분의 품성이나 속성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7장 54-56절에 나오는 스데반의 순교장면을 살펴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여 하늘을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분명히 스데반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고 예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서 계셨다고 했다. 형상이 없다면 어떻게 좌편과 우편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이성구 한두 구절을 갖고 어떻게 하나님이 형상을 가지셨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전체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금 구약성경 민수기 12장 6-8절을 보자.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 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위의 구절에는 첫째로 대면한다고 되어 있다. 대면한다는 말은 영어 성경에 'face to face'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라는 말이다. 둘째로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다고 했다. 형상이 없으면 어떻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라는 말이 나오며 형상을 보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형상을 갖고 계시며 구약성서 창세기 1장 26졀에 있는 것처럼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는 창조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양처럼 생기셨다면 우리도 양처럼 창조 되었을 것이고, 사자처럼 생기셨다면 사자처럼 창조되었을 것이다. 세상 만물 중 사람처럼 완벽하게 창조된 피조물은 없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육체와는 다른 육신과 능력을 갖고 계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는 우리 인간과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부활후의 육체는 완전히 다른 육체였다. 부활후 방문을 닫고 얘기하고 있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고 이곳 저곳에 나타나셨으나 인간의 눈으로 빨리 구분하지 못했다. 또한 공중으로 승천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계셨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누가복음 24:31-40)

 31절에는 예수께서 나타나셨지만 사람들이 그를 빨리 인식할 수 없었고 36절에는 대화 중에 방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나셨고 그리고 직접 부활한 육체를 보여주셨다. 또 누가복음 24장 51절과 마가복음 16장 19-20절, 그리고 사도행전 1장 9-11절을 보면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 나온다.
 육체를 갖고 있다고 해서 능력에 제한을 받지는 않는다. 예수께서도 육신을 입고 있으실 때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신약성경의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세계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육체를 갖고 있지만 그 능력과 영성은 전부가 다른 것이다.

 

3)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시다  top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창조한 세계에 있는 모든 만물에 힘과 능력을 미치고 계신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분의 육체는 한 번에 한 곳에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인격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하나님도 물질적 존재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형체를 갖고 계시므로 필연적으로 특정한 넓이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차지하는 공간은 제한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동시에 제한된 공간을 여러개 갖는다는 것은 비논리적인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하나님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갈릴리 앞 바다에 계셨다가 사마리아에 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대제사장 집에 가시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곳에 계셔도 세상 어느 곳에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는 누가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이곳 저곳에 내려 오시고 올라 가시는 공간의 제한을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창세기 11장 5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밝히셨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와 성약을 세우셨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창세기 17:22)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시고 완전하신데 그의 지식이 무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은 천사와 종들의 성역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과 끊임없이 교통하고 있으며 원하시면 친히 방문하신다.
 하나님을 통해 물질이 구성되었으며 에너지가 창출되었다. 그러므로 그를 창조주라고 부른다. 하나님 자신은 완전하시고 영원하시며 그의 지식과 능력은 무한하고 영향력 또한 무한하시다. 또 그 분은 지상의 모든 자연력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궤도에 따라 천체를 운행시킨다. 하나님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다. 그 분은 자신이 직접 행하시거나 도구를  통해 행하신다.
 그분이 육체를 갖고 있어 일정한 곳에 계신다고 하여도 영의 매체나 천사의 성역을 통해 어떤 일도 어느 곳에서나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무소 부재하시며 전지 전능 하신 것이다.

때때로 성서에서는 하나님은 영이란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신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영으로 표현되는지 의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육체와 완전한 영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둘 다 가지고 계시므로 어느 하나만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 하나만을 가지고 그 인격을 대표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육을 갖고 계신다는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영으로만 주장 되어야 한다. 그러나 육과 영 둘다 기록 되었을 때는 육 하나나 영 하나로 한가지만 강조했다고 해서 두가지의 결합체인 것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즉 사람이 육과 영을 모두 갖고 있으나 성경에서 영 하나만을 기록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으로 사람은 육이 없다고 부정할 수 있는가 ? 요한 일서 4장 1절 부텨 3절까지 읽어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 있느니라"라고 되어있다.   .
 이 구절의 영이란 이미 세상에 와 있는 적 그리스도의 선지자들이다. 선지자들은 육과 영을 갖고 있지만 영으로만 표현했다. 또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라고 한 말은 하나님을 지지하고 믿는 신앙인을 말한 것이다. 성경 어느 한쪽에서는 하나를 설명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을 설명할 때가 흔히 있다. 이 때는 하나인데 반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4)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한 몸이 아니다.
  top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에 대해 공부해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이 아니며 역할이 다름을 설명하겠다.
 예수(Jesus)란 구세주의 이름으로서 희랍어에서 나온 말이다. 같은 말을 히브리어로 표현하면 Yeshua라고 표기되며 영어의 Joshua와 가다. 천사는 동정녀의 약혼자 요셉에게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1)

 그리스도(Christ)는 일반적인 이름이 아니라 성스러운 칭호이다. 이것은 희랍어에서 나온 것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메시아(Messiah 또는 Messias)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 밖에도 경전상에는 임마누엘, 구세주, 구속주, 독생자, 주 하나님의 아들, 인자등과 같이 분명한 의미를 지닌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죽어야 하는 육체를 가진 아버지와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경우이다. 그는 죽지 않는 육체를 갖고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며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구약의 이사야의 7장 14절에는 이것이 이미 예언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독생자(Only Begotten of the Eternal Father)란 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세(Pre-existence)에서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첫 번째 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 그래서 성경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이라고 부르고 또한 장자(First Son)라고 부른다. 어떻게  해서 맏형이 될 수 있을까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진 의심을 이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왜 또 장자라고 했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이전에 수많은 인류가 출생하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첫아들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나온다. 이것은 바로 전세에서 그른 영의 자녀로서 첫 번째 탄생하였디 때문이다.
 우리인간도 역시 전세에서 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영의 아버지시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육신의 부친이 따로 있다. 그래서 나는 김ㅇㅇ씨의 아들이다. 내가 만약에 김ㅇㅇ씨의 유일한 외아들 이라면 한자어로 나는 김ㅇㅇ의 독생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다. 모든 인가의 영은 다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졌지만 육의 아버지는 다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과 육이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될 수 있다.
 이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거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느데 필수적인 일이었다. 마리아에게 태어날 아이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연법칙의 고차원의 작용 즉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에 의해 잉태되었다. 그 분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 아버지와 죽는 속성을 가졌으나 순결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지극희 높으신 이'라 일컬음을 받을권리를 갖고 있다. 그 속성에는 죽는 능력과 다시 사는 하나님의 권세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16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나온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 중략-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또 누가복음 3장 23졀부터 38절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설명하여 요셉의 아들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아담에까지 이른다. 이 두 계보의 기록에는 몇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있으나 이러한 차이점은 유대 족대 전문가의 조사에 의하면 서로 일치한다. 마태의 기록은 다윗의 왕위를 합법적으로 물려받은 계승자의 순서를 입증해 주는 왕족의 혈통에 관한 기록으로 마태복음이 유태인을 위해 쓰여진 기록이므로 그 나라의 왕통으로 설명할 때 유태인들에게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기록은 조상이나 가까운 친족을 통하여 내려오는 개인의 가계도로서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해 쓰여진 것이므로 이방인에게 호소력이 있다. 하여튼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설명하면서 요셉을 계보의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요셉의 아들로 착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셉의 계보는 곧 마리아의 계보와 다름 없는데 이는 그들이 사촌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계보를 다룬 것이다.
 성구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는 요셉에 의해 탄생되지 않았고 마리아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 예수라 하면 다윗의 혈통을 받은 마리아를 칭하는 것이다. 아버지인 하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칭하는 말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성서에 있는 사실대로 하나님과 아들 예수와 성령을 정의 한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아들, 성신은 모두 다른 인격체이며 목적은 같으나 모두 다른 역할을 맡고 계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우리의 영의 아버지시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샹에 육을 입고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부활하신 분이고 성신은 육을 갖고 계시지 않으나 아버지와 아들을 증거하는 분이다. 이것이 말일성도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신애 대한 견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같은 분이 아님을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5)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외 성신의 개별성  top

 

  (1) 갯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 시는 예수 그리스도 (누가복음22장 39절-42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이 성구는 가롯 유다를 앞세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러 감람산에 도착하기 직전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 성구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또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고 내 원대로 하지 마옵소서 라는 구절이 나온다.
 분명히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뜻은 별개임을 설명한다. 즉 아버지의 의지와 아들의 의지가 별개이고 아들이 아버지의 의지에 순종함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가 같은 일체라면 어떻게 의지와 뜻이 다를 수 있을까?

   (2)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마태복음 27장 45절-46절)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어찌하여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성구는 낮 열두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어두움이 온땅에 덮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던 시간이다. 오후 세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 불렀다.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한 분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경우 예수께서 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3) 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 (요한복음 20잘 16절-17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내가 내 아버지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천사들이 그 여인에게 어찌하여 울고 있느나고 물었다. 마리아는 비어 있는 무덤을 보고 누가 주님을 가져갔다고 대답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 예수가 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한참 있다기 그 분이 예수인 것을 알고서 예수를 부르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지려고 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약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몸이라면 어떻게 아버지께 아직 가지 않았으니 만지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구가 확실한 것이라면 두 분은 존재가 다른 분이다.

   (4) 내 아버지는 곧 너희의 아버지이다 (요한복음 20장 17졀-1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내가 내 아버지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이 성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아직 아버지께 가지 않았으니 자기 몸을 만지지 말라고 말하고 자기 아버지가 곧 우리의 아버지요, 자기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 부터 영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형제가 되고 첫째로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장자요 우리의 맏형이 된다.

  (5) 심판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위 임 받음 (요한복음 5장 22절-24절)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이 성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상의 삶을 마친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질 심판을 집행할 권능과 권위을 위임한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개성과 개체가 다를 뿐 아니라 직분과 직능에서도 분리되어 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 자신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심 (마태복음 24장 36절, 마가복음 13절 32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위의 구절은 예수의 재림을 설명하는 성구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모든 족속이 가슴을 치겠으며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큰 나팔소리와 함께 그가 천사들을 보낼 것이고 천사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을 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시는 날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 여기서 아버지의 권능이 아들의 권능보다 상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7)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다른 장소에 동시에 나타남 (마태복음3장 13절-17절)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 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위의 성구는 예수께서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을 때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단강에 계셨고, 성령은 비둘기 같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였고, 하늘에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성구는 우리에게 세분의 인격과 걔성과 존재가 분명히 구별 됨을 설명하고 있다.

  (8) 예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임 (요한복음 14장 6절-1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부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구절들은 심위일체설을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구이다. 이 문장은 두가지의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다고 하니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이라는 주장
 두 번째 해석은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은 육체나 신분이나 개체가 하나라는 뜻이 아니고 아버지가 우리 인간에게 가르치려는 진리의 내용과 아들이 가르치려는 내용이 같다는 주장

 이 중에서 두 번째 해석이 바른 해석이다. 6절 부텨 12절 까지를 다시 읽어보면 분명히 두 번째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즉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라는 구절을 보자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한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진리요, 생명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아버지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 하나라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 다음 기도 내용을 끝낼 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라고 마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하나님 아버지께 이어주는 중보자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받아들인자이다. 아들을 맞아 들였다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함당한 권능을 위임하여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고 집행하라고 했다면 아들이 아버지의 의사를 합법적으로 전달하고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많은 것을 위임하고 아들은 그것을 집행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서는 필요한 서류, 예를 들어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이나 기타 신빙성이 있는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증명만 있으면 바로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필요한 증명을 갖고 오셨다. 그는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셨교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꿰뚫어 보는 능력, 자신이 부활한 기적 등 수만가지의 증명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바로 이사실을 믿으라는 얘기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우리인간을 구원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나 깊은 통찰력을 가진다면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구이다. 12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만약 같은 분이라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께로 간다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
 요한복음 17장 21절-23절은 다시 이 논증이 옳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는 성구는 앞서 인용한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설명해 준다.
 형제끼리 서로 하나가 되라는 말은 서로 마음을 합한다는 뜻이다. 의사와 의지를 뭉치라는 말이지 육체적으로 한 몸으로 결합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께서 위 성구에서 하나가 되라고 하신 것은 아버지와 자기의 연합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말이다.

  (9) 세상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 보내심을 받은 분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7장 16절-19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들의 육체는 세상에 속해 있고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세상을 본받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냈으나 그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제자들도 그렇게 되길 원하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제자들을 통해 진리를 깨달은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거룩하게 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신 것이다.

 분명히 세상에 보낸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고 보내심을 받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신분과 개체가 다른 분임을 알 수 있으며 아버지께 자신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간구를 했다. 같은 게체라면 어떻게 보낸 분이 있을 수 있으며 보내진 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분명히 다른 개체를 갖고 있으며 상하관계에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보다 낮을 수 없으며 아들이 아버지보다 높은 위치를 가질 수 없다.

  (10)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 (요한복음15장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한다는 말은 서로가 다른 인격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몸이라면 어떻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므로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의 영의 자녀이며 독생자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았다. 그러므로 신분과 지위와 인격체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삼위일체설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혹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일체임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태양의 비유, 물의 원소의 비유 등이다. 그러나 비유는 사실을 분명하하게 하기 위해 만든 설득 방법이므로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을 인간의 두뇌로 비유를 만들어 성경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삼위일체의 논리적 모순을 또 한가지 살펴보자. 삼위일체설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는 육체가 없는 영이라고 한다. 성경에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말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육체로 세상에 오셨고 현재는 부활하셔서 육체를 갖고 계시고 언젠가는 그 육체를 가지고 재림하실 것이다.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개체라면 왜 하나님 아버지는 영만 갖고 계시면 육이 없는가? 하나님 아버지가 육체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육체가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영으로 계신다고 하였으나 아들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지금도 육체를 갖고 계신다.
 아버지는 영만 존재하고 아들은 육체와 영을 다 갖고 존재한다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 본체와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삼위일체설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과연 삼위일체설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성립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자. 삼위일체의 기초 정의는 니케아 신조(Nicence Creed)에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피조된 것이 아니요, 아버지와 동질이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동질이라 함은 아들이 아버지와 본체 ,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뜻이다. 개신교회의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교회 역사(The Church in History, B.K. Kuiper 지음)에서 삼위 일체설의 역사적인 형성 과정을 살펴보자 (B.K. Kuiper의 같은 서적 41쪽 46쪽 참조).l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이후 약 3백년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상당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두 장로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아리우스(Arius)는 이 문제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동질이라고 주장 했으니 즉 성부와 성자는 본체, 본질, 존재에 있어 꼭 같다고 주장했고, 아리우스는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첫째되며 아버지와 동질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그리스도도 하나님, 즉 아들 하나님 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 교회 지도자들은 양분되어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에 따르거나 아리우스의 이론에 따랐다.

 한때는 아리우스의 이론이 더 맹위를 떨쳤으나 논쟁이 계속되어 그 해결을 위하여 당시 기독교인이 아닌 콘스탄틴 황제가 AD 325년에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종교회의를 니케아(Nicaea) 종교회의라고 한다. 이 종교회의에서는 아리우스의 의견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 이유는 한분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라면 이교도와 같이 다신을 믿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한분의 하나님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본체와 본질과 존재에서 같은 분이라고 규정해야 했다.
 그러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에 반발이 심하였고 많은 감독들이 니케아 종교회의 결과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또한 니케아 신조는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는 토의하지 않았고 포함하지 않았다.
 그래서 AD 381년에 제 2차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되었고 다시금 아타나시우스의 의견을 정리하여 재확인하였고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도 성부, 성자와 동일시하여 삼위일체교리(The Doctrine of the Trinity)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계속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와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AD451년 니케아 근처 갈게돈(Chalcedon)에서 다시금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삼위일체설을 확정했다.

 결국은 AD 321년부텨 AD 451년에 걸쳐 1백30년 동안이나 논쟁이 계속되어 결론이 맺어진 종교회의의 산물이다. 1백30년 동안의 논쟁의 산물이기에 더욱 오류를 가질 수 있으며 문제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리라면 계시로 한번에 결정되었을 것이다.
 삼위일체설을 주장하게 된 근본 원인은 아버지와 아들이 개체가 다른 두분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이교도가 믿는 다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체와 존재는 같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분명히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아리우스의 주장과는 별개로 계시로써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말일성도는 아리우스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한 것과 관계없리 삼위일체설 즉,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니케아 신조를 부인한다. 다시 한번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니케아 신조를 기록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개체가 혼동되어 있지도 않고 본질이 나뉘어져 있지도 않은 삼위의 한 하나님 즉, 일체로서의 삼위를 경배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의 개체요, 아들도 하나의 개체요, 성신도 하나의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 아들 성신의 신회는 하나이다. 그 영광도 같고 능력도 영원히 공존한다.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아들도 그러하고 성신도 그러하다. 아버지도 창조되지 않으신 분이며, 아들도 창조되지 않았고, 성신도 창조되지 않았다.
 아버지도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분이며, 아들도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도 영원하며 아들도 영원하며 성신도 영원하다. 그러나 영원한 세분이 아니라 영원한 한 분이며, 이해할 수 없는 무한한 세분이 아니라 영원한 한 분이고 창조되지 않은 세분이 아니라 창조 되지 않은 한 분이다.
 아버지가 전능하신 것같이 아들도 전능하며 성신도 전능하나 전능자가 셋이 아니라 하나이다.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요, 성신도 하나님이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다.

 세상에 나와 있는 기록 중에 이 글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기록이나 예를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세 개체를 설명하다 바로 하나의 개체를 설명하고 세 분이라고 했다가 바로 한 분이라고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과 계시를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어떻게 혼란되고 혼돈스럽고 모순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상상하기가 어렵다.
 현재 영국 구교는 하나님에 대한 정통 교리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그는 육체나 지체나 감정이 없는 영원한 분이며, 그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은 무한하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영국 국교처럼 하나님께서는 육체와 감정이 없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렇다면 전술한 바와 같이 스데반이 예수님과 함께 본 하나님(사도행전 7장 55-56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구약성서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대면하였다. 주님은 모세를 대면하여 말씀하셨고(민수기 12장 8절), 아담과 이브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창세기 3장 8절), 가인조차 음성을 들었고(창세기 4장 9절)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이 음성을 들었으며(민수기 12장 4절),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신명기 5장 4절,23절-24절)
 감정을 갖고 계시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것도 성경과 일치되지 않는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기록했으며 출애굽기 20장 6절에 주님은 은혜를 베푸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 4장 31절, 신명기 7장9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9장 17절, 시편 116편 5절, 야고보서 5장 11절에는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경전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실체성을 부인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실체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신회 구성원중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주로 설명했으며 삼위일체의 논리성 문제를 토론했다. 지금부터 신회의 마지막 구성원인 성신에 대해 설명하겠다.

 

 6) 성신(성령)의 개체성과 권세   top

 

 성신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신회를 구성하고 있다. 성신은 단지 힘이나 원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난님의 속성과 권세를 부여받은 개체이다. 경전에서는 성신은 하나님의 영, 주님의 영, 진리의 영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성신은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교사이다(요한복음 14장 26절). 또한 아들을 증거하고(요한복음 15장 26절) 죄를 책망하며(요한복음 16장8절) 말하고, 명하고, 위임하며(사도행전 10장 19절, 요한계시록 2장 7절, 사도행전 13장 2절) 근심하며(에베소서 4장 30절), 깊은 것에 통달한다(고린도전서 2장 10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성신의 영향으로 인간은 정신력이 살아나고 커져서 과거의 일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성신은 인간의 겸손과 순종심에 따라 인간을 깨우쳐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알게 하고 인간을 영적으로 크게 성장시키며, 하나님의 지식을 인간에게 전달해주고 복음을 따르는 자를 성결하게 하며 필요한 모든 것을 나타내 보이고,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와 절대성에 대해 증거한다.
 성신은 아버지와 아들과는 달리 살과 뼈의 몸을 갖고 있지 않고 다만 영체로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성신의 본질에 대해 혼란을 갖는 것은 성신의 개체성과 그 권세를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개체와 속성이 다르듯이 성신도 다르다. 신약성서를 통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4장 16절-17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5장 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6장 7절 -15절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이 성구를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개체가 분명히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6장 13졀 -14졀에는 성신을 그(He)라고 칭하며 남성 인격임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가시고 보혜사가 오겠다고 했다. 만약 삼위일체라면 어떻게 예수께서 아버지께 가시고 성신인 보혜사가 세상에 올 수 있겠는가? 사도행전 1장 2절의 내용 중 성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계명을 주신 구절은 성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개체성을 더욱 강조해 준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속성과 개체가 다르나 그 목적은 같다. 목적이 같다는 의미에서 한 하나님이라고 설명될 수 있으나 삼위일체설과 같이 본질과 본체와 존재가 같지 않음은 분명하다.


(기적의 역사 -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명쾌한 교리와 가르침 - , 김차봉 박사 편,
도서출판 삶과 꿈, 1994, 203-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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