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속의 개인

A410                                                      홍 병식 박사                                            

        요즘 한국의 여당이나 야당에서 일사불란한 지도체계가 없다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언론 매체와 시민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당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민주당은 이 시각 현재 다섯 분의 대권 도전자들이 열띤 경선 경합을 하고 있고 한나라 당에서도 탈당을 했거나 탈당 의사를 시사하고 있는 중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양당 모두 일인 지도체제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계가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보다는 한두 발짝 앞섰다고 하는 미국의 정계에서는 주류다 또는 비주류다 하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앙당도 없고 지구당도 없는 정당인지라 총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의 전국 위원장은 있지만 그런 직책은 국회의원이 아닌 일반인 중에서 당의 연락책임자 정도의 구실만 맡고 있습니다. 상하 양원에서는 원내 총무가 상대 당과의 절충도 하고 자기와 같은 당에 속한 의원들의 협조를 얻어내는 주 역할을 담당합니다. 당의 대변인도 없고 당의 사무총장, 정책실장 등 화려한 직책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건이 상정될 때마다 의원들 각자는 대략적으로 동료 당원의원들과 보조를 맞추지만 투표하는 것은 완전히 개인 의사에 따라 행합니다. 주요 안건이 표결 될 때마다 여당 의원과 합세하는 야당의원도 있고 야당의원에 합세하는 여당의원도 있습니다. 다른 동료의원들과 다르게 투표를 했다고 해서 출당이니 제명이니 하는 조치는 전혀 없습니다.     

        미국의 의회에서는 표결을 공개적으로 합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어떻게 투표를 했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는 논리 하에서 의원들의 투표기록이 상시 공개되어 있습니다. 소신대로 투표를 했다고 해서 아무런 후환이 없으니 의원들은 자기의 양심에 따라 또는 선거구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가 속한 당의 대다수 의원들의 의견에 상관없이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당의 지시대로 투표를 하지 않으면 출당조치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당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단체행동을 이탈할 의원들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한 개의 당이 반대하는 안건이 표결할 때는 당에 속해 있는 의원들을 전원 퇴장시키곤합니다. 참으로 성숙되지 못한 의정행동입니다. 당에 속한 의원이라고 해서 당의 지시에 충실히 따라서 투표를 해야한다면 국회의원의 자질은 고려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유치원 학생도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손을 들 수는 있을 것 아닙니까? 민주주의란 다수결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체제이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와 지역사정을 대변해야할 국회의원들은 각자가 소신대로 정치활동을 해야할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상향식 경선으로 결정하려는 모습이나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이 총재의 권력체제에 도전하는 모습은 진일보한 정치발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단 개인이 주장이 받아드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탈당이라는 카드를 꺼내드는 행위는 성숙한 정치인의 모습은 아닙니다. 민주 국가에서 누구나 당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창당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겠습니다. 오직 걱정스러운 현상은 이념에 의한 창당이 아니고 이해관계나 대인 감정에 의해서 당을 만들거나 옮기는 경솔한 정치행보입니다. 그런 행동은 건전한 정치 발전을 저해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정치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먼저 중앙당과 지구당을 철폐해야 합니다. 수백 명의 유급 직원을 두고 있는 중앙당과 지구당을 운영하려면 막대한 정치자금이 소요됩니다. 정치자금이 소요된다는 사실은 정경 유착이나 검은 돈의 유입 가능성을 조성합니다. 국회의원이 자기의 봉급으로 활동하고 두 세 사람의 보좌관을 두고 그들의 봉급은 정부로부터 받도록 제도가 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봉급만으로 생활을 하려면 선출직 직위를 가진 모든 사람은 경조사에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주는 것을 불법화해야 할 것입니다. 선출된 사람들은 선거민들로부터 인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선거민들의 경조사에 성의를 표시해야 하는 현 관습은 타파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으로 금지되면 경조사에 나가는 비용을 생활에 쓸 수가 있기 때문에 이권과 연관된 검은 돈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게 될 것입니다. 중앙당과 지구당을 없애고 당의 후보를 상향식 경선으로 한다면 공천이 필요 없게 되어 공천에 수반되는 막대한 검은 자금을 정치권으로부터 차단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비양심적인 정치인들을 정치권으로부터 몰아내려면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정치제도부터 고쳐야 된 다고 저는 믿습니다.

(2002.3)
 

노사 협상에 또 한마디

미국의 경제와 낮은 세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