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섬길 줄 아는 은행가

A461                                                            홍 병식 박사                                                                   

        저는 최근에 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로스 안젤스에 소재한 한국계 은행의 여성 지점장 한 분을 인터뷰했습니다. 영어와 독일어에도 능통한 이 지점장은 은행 경력 19년인 베터랑 은행가이었습니다. 지점을 개설한지가 1년밖에 되지 않지만 성업중인 지점을 경영하고 있는 그 지점장에게 성공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저에게 가장 감명을 준 대화가 있었습니다. 지점장의 사무실은 높은 벽에 가려진 안쪽 깊은 곳에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내방고객이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에 있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더니 그 지점장의 대답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사무실이 따로 없습니다. 저는 은행의 출입구에 책상을 놓고 거기에 앉아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손님들을 관찰합니다. 저는 저의 지점의 문지기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40대를 넘지 않았을 것 같은 그 여 지점장은 출입문 앞에 책상을 두고 근무하는 이유를 저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만일에 기분이 좋지 않은 안색을 하고 지점을 나가는 손님이 있으면  바로 따라 나가서 혹시 은행직원이 잘못한 점이 있었는가를 확인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손님이 좋은 기분을 갖고 돌아가시도록 노력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간혹 오해로 인하여 손님이 노여움을 사셨다면 때에 따라서는 그 손님의 업소까지 찾아가서 기어이 오해를 풀어드린다고 했습니다. 그 상냥하고 여성다운 지점장의 방문을 받고 기분이 풀리지 않을 손님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많은 은행가를 보았고 은행과 거래도 많이 해보았지만 이 지점장처럼 고객에 대한 봉사의 정신이 뚜렷한 은행가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은행가들이 교만하다”. 또는 “은행의 문턱이 너무 높다” 등의 부정적인 인상이 팽배했던 동포사회에서 은행의 문지기를 자칭하며 고객민족에 발벗고 나서는 은행가를 보는 것이 참신한 현상이었습니다. 경영학의 교과서에 은행가를 빗대어 만들어 낸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은행가란 우산을 주었다가 비가 오려고 하면 우산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다.” 라는 농담입니다.         

        은행가들마다 말을 합니다. “이제 은행들도 개혁과 변화를 해야한다”고. 그런데 개혁과 변화를 어떻게 해야 된단 말입니까? 저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은행가들에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새로운 계좌를 설정할 때 충분한 신상정보를 입수하고 확인을 합니다. 그렇다면 고객을 의심하는 태도를 신임하는 태도로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한국계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다지 많지도 않은 액수의 자기 앞 수표 (Cashier's Check)를 예치하려고 했습니다. 그 액수가 바로 제 계좌에 입금되는지를 물어 보았더니 2 주 후에야 입금이 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자기 앞 수표와 저를 한꺼번에 의심하는  그 은행에 항의를 했더니 그 것은 은행의 정책이니 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즉시로 그 계좌를 닫아 버렸습니다. 예금액이 모자라서 부도현상이 생기면 은행에서는 부도에 대한 수수료를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의 부도란 한국에서처럼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산 착오나 현금 거래의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수표의 금액이 예치금액을 초과하는 현상인데 은행직원이 계좌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그런 사실을 알라면 곧 바로 예금을 가져오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와 같이 은행이 일단 고객을 신뢰해주는 풍토를 조성하면 손님들이 기분 좋게 은행 거래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 은행이 융자를 해주고 나면 융자의 안전성에 신경을 집중합니다. 당연한 관심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은행이 정말로 제구실을 하려면 융자를 받아 가는 업체의 전문 자문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사업이 잘 될 수 있도록 전문적인 협조를 해야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융자를 해주는 것은 농구공을 꼴에 던지는 것과 같다.  공을 던진 후에 가만히 있거나 자리를 떠버리면 공이 꼴에 들어갈  보장이 없다. 농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공을 던진 후에 비록 잘 던졌다고 하더라도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서 공 밑으로 뛰어 간다. 공을 던졌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꼴에 들어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은행가가 되어야 한다.” 융자를 해준 업체의 수입과 지출만을 점검할 것이 아니라 그 업소가 더 잘되기 위해서 어떤 조치와 방향전환 등이 필요한지를 수시로 협의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은행가는 고객의 편이를 도모하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금리가 내려갔으면 고객이 더 낮은 이자를 찾아 딴 곳을 찾아가기 전에 낮은 이자를 위한 재융자를 제안하는 친절을 신속히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고객은 은행에 감사할 것이며 영구적인 고객이 될 것입니다. 위에 말씀드린 지점장은 이런 은행가일 것 같았습니다.    끝

(2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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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