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은 기독교인인가?

               - 목 차 -

 [3. 인신공격에 의한 배제]

 [7. 교리에 의한 배제 : 성삼위]

  [서문]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8. 교리에 의한 배제 : 기타 ] 

 [1. 단어정의에 의한 배제] 

 [5. 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9. 결론 - 노트 -  번역후기]

 [2. 허위제시에 의한 배제]

 [6. 교리에 의한 배제]

  처음으로 가기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소위 현대 정통 기독교는 정통 기독교를 신약성서에 나오는 사건과 교리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신약 시대 이후의 역사, 신학, 전통으로도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정한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현대 교회는 성서 시대의 기독교 뿐만 아니라 성서 시대의 기독교에서 발전해 나온 전통적인 기독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가끔 나오곤한다. 간략히 말하자면 이게 바로 역사에 의한 배제다. 성서상의 교리 이외에도 수세기에 걸쳐 이러한 세부적인 역사적 사건-종교회의, 신조와 풍습, 신학자와 철학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참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성서의 내용만 받아들여서는 참된 기독교가 될 수 없다.

 이런 식의 배제는 내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일어난 사건으로 설명해 볼 수 있다. 나는 후기성도의 믿음과 예배에 관해 강의를 해 달라는 초청을 시내의 규모가 큰 개신교로부터 받는 적이 있다. 본인의 교수 중 몇 사람도 이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본인의 강의에 참석해서 매우 기뻤다. 강의가 끝날 무렵 회복된 복음과 예언자 조셉 스미스의 신성한 부름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대한 간증을 했다.

 강의가 끝나자 교수 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하기를   "스티브! 강의가 훌륭하고 유익했어요. 그러난 실제로는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당신네 몰몬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그릇된 인상을 주었어요."  나는 이 교수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은 악의에 찬 말도 아니었으며 후기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느냐와도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  이 교수는 진보적인 개신교 역사가였으므로 그가 정의하는 기독교인이란 역사적인 정의에 의한 기독교인이었다.  즉 그가 내린 정의는 개인적인 믿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  그에게는 기독교인이란 종교개혁을 통해서 신학적인 가계도를 추적해 가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정의는 무엇을 믿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어떻게 그러한 미음을 물려 받았느냐 하는 것이 더 큰 관심사였다.  그의 입장은 우리가 믿는 신학이 올바른 가계도를 가지고 있으면 참된 기독교인이 되고 지적인 가계도와 신학적인 가계도가 잘못되어 있으면 신약 성서의 모든 내용을 믿는다 할지라도 참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개신교 역사가로서 이 교수가 믿음보다는 혈통의 의미로 기독교인을 정의하게된 또 다른 동기가 있었다.  왜냐하면 전에 그가 가진 개인적인 대화에서 알 게 된건데 그는 초기 기독교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기적들을 개인적으로는 믿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믿음이 아니라 계승의 문제였다면  신약의 역사적인 내용들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교수의 배경과 사상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그가 "몰몬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말할 때 그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강의에 참석한 회중들이 그가 말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도 감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교수의 말이 후기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 처럼 들렸다. 그래서 회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의도적으로 주고 받았다.

          "교수님은 예수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육신의 아버지가 없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믿습니까?"
          "아니오, 문자 그대로 믿지 않아요"그가 대답했다.
          "역사상의 예수님의 신성을 믿습니까?"
          "아니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까?
          "아니오."
          "예수님이 문자 그대로 세상의 죄를 짊어 지셨다고 믿습니까?"
          "아니오."
          "예수님이 문자 그대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믿습니까?"
          "아니오."
          "예수님이 문자 그대로 육체적인 부활을 하셨다고 믿습니까?"
          "아니오."
          "최후의 심판을 믿습니까?"
          "아니오."
          "내세를 믿습니까?"
          "믿는 것 같소. "
          "교수님은 기독교인입니까?"
          "물론 기독교인이지."
          "어떻게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거죠?"
          "왜냐하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신약을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고 역사적인 단절 없이 신약시대까지 기독교 혈통을 추적해 갈 수 있는 교회의 성밍된 목사니까."
          "좋습니다.  저는 후기성도로서 예수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며 그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가졌었다고 믿으며 겟세마네 동산과 갈보리 언덕에서 세상의 죄를 지셨음을 믿으며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음을 믿으며 삼일만에 문자 그대로 육체적인 부활을 하셨음을 믿으며 영화스러운 내세를 믿습니다. 자 제가 기독교인입니까?"
          "절대 아니지."
          "그 이유가 뭐죠?"
          "왜냐하면 당신은 신학적으로 역사적인 교회의 종교회의와 신조에서 비롯되지도 않았고 의존하지도 않고 이세기 이후의 전통적인 기독교와 신학을 부인하는 교회에 속한 사람이니까."
          "교수님이 정의하는 "기독교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저의 개인적인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까?"
          "관계가 없지."

   대화가 이런식으로 진행되자 회중들은 이 교수가 기독교인이란 용어를 특수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지 자신들의 처음에 생각했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게 되었다.  강의가 끝난 다음 몇 사람들이 나에게 와 자신들의 정의 방법을 좇으면 분명 후기성도는 기독교인이 될 자격이 있으나 그 교수에 대해서는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역사에 근거하여 다른 교파를 배척하기 위하여 기독교인을 특정하고 비표준적으로 정의할 때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정의에 의한 배제뿐이며 따라서 다른 정의와 똑같은 논리적 허위를 담고 있다(1장을보라) 그러나 여기에선 역사적인 배제를 좀 더 고려해 보아야 한다.

 

대  배도 

 먼저 후기성도는 신약시대의 사도가 죽고 난 이후의 전통적인 기독교의 권위를 거부한다.  후기성도는 마태복음 16:16에서 베드로에게 약속된 열쇠와 권능은 성격상 사도직분이므로 사도들이 사라졌을 때 그 들의 열쇠와 권능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고 믿는다.  사도시대 이후로는 보편적인 의미로서는 여전히 "기독교인"이라 불리울 수 있었으나 이들은 후기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자동적으로 구원에서 제외된다 (죽고난 다음에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교회는 더 이상 온전한 복음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신약에서도 가르치는 대 배도에 관한 후기성도의 교리이다.  다음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서 나오는 두가지 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데살로니가 후서 2:1-5)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행전 20:29-31)

 

 이 구절과 다른 구절을 살펴 보면 바울은 필연적으로 오게 되는  배도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힘을 다해 배도에 관하여 교회에 경고하고 있었음을 알 게 된다.  이와 같은 배도가 실제로 일어났으며 사도의 열쇠와 권능이 지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후기성도의 믿음이다.  이러한 이유로 말일성도는 사도시대 이후에 발전된 역사적이 기독교의 권능을 거부한다.
 

비슷한 견해를 갖는 기독교인들


 후기성도가 배도를 믿고 나중에 발전된 사건을 거부한다는 이유로서 개신교인들이 후기성도를 비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개신교인들도 본질적으로는 후기성도와 똑같이 전통적인 교회의 권위를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일세기 이후의 전통적인 교회의 권위를 부인한 것이 아니라 오세기 이후의 권위를 부인한 것이다.  신교 개혁자들은 천주교회가 타락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개혁 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위에서 인용한 똑같은 많은 성구를 이용하였다.  마틴 루터 같은 사람들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보기까지했다.  만약 일부 개신교인들이 몰몬이 니케아 종교회의(서기325년)를 거부하기 때문에 기독교인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천주교인들은 개신교인들이 트렌트 종교 회의(서기1545-1947)를 거부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까?  여기에서 문제는 종류의 차이점이 아니라 정도나 시간상의 차이점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역사적인 교회가 배도하여 참된 교회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교리면에 있어 대부분의 개신교는 후기성도와 의견을 같이한다.  단지 날짜상에 있어 차이가 날 뿐이다.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대 종교 회의 중 첫 번째 일곱 종교회의만이 교리상으로 정당하며 구속력이 있다고 받아들인다.  이 일곱 종교회의 중 제일 마지막으로 열린 종교회의는 제 이차 니케아 종교 회의로 서기 787년에 열렸다.  희랍 정교회는 서방 교회와의 차이점이 서기 1054년 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으나 서기 1054년 부터 서방 교회의 권위를 공식적으로 거부하였다.  이보다 육세기 전에 아르메니아교도, 시리아교도, 콥트교도, 그리고 아비시니아교도들은 모두 다 찰세돈 종교회의(서기451년)에서 "대 교회"를 거부하였으며 이 이후로 줄곧 분리되어 왔다.  따라서 만약 역사적인 배제가 21 종교 회의중 세 가지만 받아들이는 이 "정통" 교회들에게 적용이 된다면 이들은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악 아르메니아교도, 시리아교도 콥트교도, 아비시니아교도들이 5세기 이후의 전통적인 기독교 내에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기독교인이라면 얼마만큼을 거부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기준선은 어디에 있을까?  기준선이 5세기까지 될 수 있다면 왜 2세기는 될 수 없을까?

 그러므로 일부 교파들이 서기 451년을 전통적인 교회로부터 갈라선 연대로 보지만 또 다른 교파들은 787년이나 1054년 혹은 1517년을 갈라선 연대로 본다.  교회의 분열에 있어서 누가 옳고 그르든지 간에, 교회가 분열될 때 마다 누군가가 모교회의 권위를 거부하고 모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따르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아르메니아교도, 콥트교도, 시리아교도, 희랍정교도나 개신교도를 이런 이유로 해서 비기독교인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천주교인들은 종종 개신교인이 참된 기독교를 거부해왔다고 생각하는 반면 개신교인들은 자신들이 천주교가 타락시킨 참된 기독교를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주장의 목적상 누가 옳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서로의 전통과 교리를 거부하면서도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은 보편적인 의미에서 상대방을 기독교인이라 부를 수 있다. 그 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약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후기성도도 성서 시대 이후의 전통과 교리를 거부하면서도 기독교인으로 남아있을 수 없을까?
 

단일의 기독교 전통

 게다가 개신교는 축적된 기독교 유산을 얼마만큼을 받아들이냐에 있어서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많은 개신교인은 성인을 숭배하지 않으며 사순절을 지키지 않으며 성 스위딘(Saint Switin)의 날이 7월 15일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  참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풍습과 비성서적인 전통을 받아 들여야 할까? 성서 이후의 전통이나 풍습 50%를 받아들이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금요일에 생선을 먹는 것과 같은 사사로운 전통은 무시할 수 있는 반면에 올바른 날짜에 부활절을 지키는 것과 같은 받아들여야하는 어떤 비성서적인 주된 전통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떤 풍습은 필요하고 어떤 풍습은 필요없는지를 누가 결정하며 만약 전통이 성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설혹 결정한다 하드래도 무슨 권위로 결정할 수 있는가?  누가 성서 이후의 진짜 "기독교 전통"을 고수하는가?  마 사바 수도원의 희랍 정교회의 수도승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병를 고치는 텍사스의 텔레비젼 설교 목사인가?

 정확히 무엇이 기독교 전통이며 주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전통에 있어서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몰몬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듀크 대학교의 기독교 역사 데이비드 스타인메츠 컨즈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기독교인들은 종종 열광적으로 휘리오케(filioque)에서부터 무염시태에 이르기까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기독교 교리를 두고 서로 논쟁해 왔으나 의견을 같이 하는 경배, 신학, 윤리와 정치적인 주제는 거의 없다.

 오늘날의 후기성도처럼 청교도들도 신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 전통에서 나오는예배 형식이나 풍습을 거부했다. 구도자교인 케네스 스캇 라토렛에 따르면 청교도 가운데에는 로져 윌리암스와 죠지 확스가 "적그리스도가 오랫동안 지배해 참된 교회나 합당한 직책을 가진 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사도들을 보내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성임하기 전까지는 존재햘 수 없다고 믿었다. 이 견해는 후기성도의 견해와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견해를 가졌다고 해서 존경받는 이 개신교도들이 비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묻고자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의 진실성의 유무가 아니라 만약 청교도와 분리주의자들과 구도자교인들이 신약에 나오지 않는 역사적인 기독교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간주 된다면 왜 후기성도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느냐는 것이다.
 

순수한 기독교 전통?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기독교 유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갖는 또다른 문제는 오늘날 행해지는 이 유산에서 나온 많은 전통과 풍습이 실제로는 이교도의 풍습에서 나와 "기독교화"되었다는데 있다. 식민지 미국에서  살았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가 성서에서 지켰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이교도의 풍습과 천주교에서 나왔다고 믿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을 반대했다. 크리스마스 츄리, 양초 크리스마스 장식용 나무 가지, 겨우살이 식물, 크리스마스 장작등과 같이 대부분의 크리스마스의 관습적인 상징은 북유럽의 이교도로터 받아들인 것이며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전통적인 날짜는 원래 이교도였던 로마 사람들의 축제인 나탈리스 솔리스 인빅티(무적의 태양신의 생일)의 날짜였다.

 게다가 많은 이교도의 영향은 성인의 숭배와 맥을 같이하여 기독교에 들어왔다.예를 들어 성 죠지는 정말 용을 죽였을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의 전설이 발틱과 슬라브족 신인 칼비스와 크레스닉과 같으며 희랍의 퍼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신화와 동일하다고 확인하고 있다. 여러 지방에서 열리는 기독교 축제는, 특히 춘분, 하지, 추분, 동지때에 열리는 축제들은 기독교의 옷으로 갈아 입은 기독교 이전의 축제의 연장일 뿐이며 여러 지방의 이교도 신들이 기독교 유산이 되어 버렸다. 참된 기독교인 되기 위해서는 성서 시대 이후의 이교도에서 발생한 기독교 유산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교리적인 전통

 받아들여야 할 것은 역사적 교회의 풍습과 전통이 아니라 역사적인 종교회의와 신조에 들어있는 교리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종교회의와 신조가 신약성서에 나오지 않는 교리를 가르친다면 무슨 권위에 근거하여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종교 회의와 신조가 신약에 첨가되지 않고 단지 신약의 교리를 되풀이하거나 요약하고 있다면 왜 신약 이외의 이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종교회의를 핵심적인 기독교 교리로 만들고 신약을 이차적인 교리로 만들므로써만 역사적인 배제가 이론상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만약 후기성도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종교회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른 기독교가 주장한다면 우리 후기성도들은 다음과 같이 물어볼 수 있다. 어떤 종교회의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왜 어떤 교회들은 21개의 모든 종교회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세 개나 네 개  혹은일곱 개만을 받아들이는가?  실제로는 많은 교파들이 말일성도가 모든 종교회의를 거부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일부 종교회의를 받아들이자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회의가 신약의 교리에 첨가한 것이거나 상반되기 때문이다.

 종교회의와 신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신학은 신약 교회의 신학과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후기성도는 믿으며 현대 학자들도 이에 동의 한다.  후기성도는 1세기와 4세기 사이의 이러한 큰 차이를 대배도로 본다. 학자들은 이를 기독교의 헬레니즘화라고 부르는데 이는 기독교 메시지가 이방인 그리스 문화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변했다는 뜻 이다.  그러나 변화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가르침은 희랍의 가르침이 되어 버렸으며 기독교의 신학이 희람의 신학이 되어 버렸다.  후기성도는 복음의 고유한 메시지에 희랍의 요소를 혼합한 것이 복음을 개선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희석시켰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비롯된 역사적인 교회는 보편적으로는 기독교라고 불리울 수는 있으나 더 이상 신약성서 시대의 순수하고 참된 교회는 아니었다.

 종교회의는 광범위하게는 경전의 간단한 교리를 희랍 사상의 철학적인 요구에 맞출려는 시도였으며 이는 기독교가 희랍화되었음을 나타낸다.  마리스 윌리즈에 따르면 "모든 기독교 사상, 특히 신의 존재와 특성에 관한 모든 기독교 사상은 종종 무의식으로 희랍세계의 철학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기독교의 헬레니즘화에 관하여 1888년 영국 국교회의 위대한 학자였던 에드윈 햇치는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남아있  는 자신의 저서에서 "때때로 기독교 교리라 불리우는 많은 교리와 기독교를 지배해왔고 앞으로 계속 지배할 많은 용례들이 실제로는 초기 기도교의 영향력을 받아 형태와 색깔이 변질된 그러면서도 여전히 본질은 희랍의 색채를 띤 희랍의 이론과 희랍의 용례들이다". 라고 지적헀다.
 나중에 기독교 전통 가운데에서 변질된 이 희랍적인 요소들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권위에 의해 갈릴레오를 비난하기에 이른다.  이는 갈릴레오의 이론이 성서와 상반되어서가 아니라 아리스토틀과 상반되었기 때문이며 그 당시에는 희랍 철학과 성서상의 기독교 사이에 구분을 짓고 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전통적인 교회가 과학에 밀려 희랍 우주관을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희랍 신학을 열렬하게 고수하고 있다 햇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의하는 습관과 정의로부터 추론하는 습관은 철학자들이 기독교 경계선 안으로 들어감에 따라 논리학자와 형이상학자가 기독교를   감리함에 따라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 동의한 추측들이 진리로 인봉되었으며 콘스탄티노플과 찰세돈 종교회의에서 나온 더 깊은 추측들에 있어서 니케아 교부들의 결심은 거의 새로운 계시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이를 거부하게 되면 신약성서 자체를 거부하는 것 보다 더 큰 죄로 여기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후기성도들에게 일어난 것이다.  역사적인 배제가 그들에게 역으로 사용될 때, 그들이 신약성서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희랍의 철학적인 신학을 거부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신약성서가 담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진리를 거부하는 것은 많은 현대 기독교파에서는 사사로운 일로 보여지거나 최소한 협상할 수 있는 문제로 보여지는 반면 희랍화된 교회가 만들어낸 철학적인전통을 거부하게되면 후기성도를 기독교 영역 밖을로 내보낸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배제하에서 후기성도들은 그들이 성서상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철학자들을 거부하는 더 심각한 "죄"를 짓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으로 비난 받든다. 대부분의 현대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플라톤의 메시지를 실제 분별하지 못한다.

 내가 존경하는 몰몬이 아닌 대학원 교수인 더블휴 디 데이비스는 한 때 몰몬이즘을 기독교가 헬레화 되기 전의 기독교로 돌아갈려는 시도로 묘사하였다. 많은 개신교인들은 교황을 포기함으로써 그리고 화해시기(기원325-787)의 교회로 돌아감으로써 기독교 개혁을 시도하지만 후기성도들은 헬레니즘을 포기하고 신약시대의 교회로 돌아감으로써 초기 교회를 회복하려고 한다.

 

천주교 전통 가운데서

 일부 천주교 비평가들이 개신교인들을 더 이상 역사적으로 배척하지 않으면서 후기성도를 역사적으로 배척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몇가지 면에서 후기성도는 대부분의 개신교보다는 천주교의 전통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후기성도들은 천주교 처럼 그러나 많은 개신교와는 달리 기독교회의 모든 일곱 가지 성서 (sacraments)의 필요성을 받아 들인다. 마틴 루터는 주의 만찬과 세례(또는 침례)만을 기독교의 성사로 받아 들이고 다른 5대 성사를 거부했다.

 게다가 몰몬은 오늘날 대다수의 개신교인들이 거부하는 사도계승의 교리를 받아들인다.  이 교리는 마태복음 16:19에서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준 권능이 "참된"교회에 필요하며 열쇠를 가지고 교회를 이끄는 사람의 손에 의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천주교의 용어를 빌리자면 바로 이 사람이 교황이며 후기성도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사람은 교회의 대관장이자 선지자이다. 천주교는 교황의 권능을 베드로를 통해그리스도 자신에게로 까지 이어지는 끊어지지 않는 권능의 선이라고 믿는다.  후기성도는 그들의 선지자들의 권능을 베드로를 통해 그리스도 자신에게로 까지 이어진다고 본다. 따라서 양 교회에서 베드로는 주된 인물, 즉 "반석"이다.  양 교회의 전통에서 베드로는 현재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권능 사이를 연결해 준다. 몰몬이 베드로가 개인적으로 사도직 열쇠를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부여했다고 믿는 것(교성27:12)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후기성도의 주장이 근거를 둔 이론이 천주교의 견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사도의 권능의 열쇠가 안수에 의해 베드로를 통해 참된 교회에 전달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능, 즉 신권은 이미 그 권능을 가진 사람으로 부터만 받을 수 있다. 비록 후기성도의 권능 선이 천주교가 주장하는 권능선 보다 더 짧기는 하지만 후기성도는 사도 계승의 교리를 받아들인다. 반면 대부분의 개신교는 사도 계승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인하며 성임에 의해 부여되는 신성한 권능에 대한 모든 개념을 거부한다.

 대부분의 개신교인은 성서가 개종을 낳으며 개종시 성신이 자동적으로 모든 필요한 신권을 믿는자에게 준다고 믿는다. 이게 바로 "모든 믿는자의 신권"이라는 교리로 기독교의 권능의 궁극적인 원칙으로서 교회나 신권보다는 성경을 의지하며 천주교회를 통해 역사적으로 신권이 이어져 왔음을 부인하나. 이런 이유 때문에 개신교인은 경전상의 권능선을 따른 천주교의 개혁에 만족을 하는 이유다. 이들은 올바른 믿음만 있으면 권능은 자동적으로 생겨난다고 믿는다.

 반면 후기성도나 천주교인처럼 사도 계승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권능선이 끊어지게 되면 단순히 개혁이 아니라 사도직 권능의 회복을 요하게 된다. 천주교는 그러한 단절이 일어났다고 믿지 않고 후기성도는 그러한 단절이 일어났다고  믿지만 양측이 사도 계승의 필요성에 견해를 같이하면 신권과 성임애 대해 유사한 견해를 갖는다. 개신교는 천주교회의 사도 계승으로부터 단절되어 나갔고 권능의 회복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근거에 기초한 권능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믿는자의 신권"이라는 교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천주교가 수 세기동안 알아왔던 사도 열쇠와 신권, 서품 그리고 성사에 대한 성서적인 개념이 개신교 신학에게는 최대 약점이다.

 그러므로 신권, 성임, 그리고 사도 계승 분야에 있어서 후기성도는 실제적으로 개신교보다 더 "정통적"이며 천주교회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물론 후기성도가 천주교가 주장하는 사도 계승의 진실서을 거부하듯 천주교도 후기성도가 주장하는 사도 계스의 진실성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 때문에 서로 비기독교인이라 부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일치가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의 똑같은 분쟁보다 더 심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를 기독교로 인정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1896년 교황 레오 십삼세는 교서에서 영국 구교회(성공회)의 서품을 무효라고 선포했으며 이 사건은 성공회 신자를 극도로 자극시켰다. 그러나 천주교는 성공회를 사교로 본다. 본인의 주장으 이렇다. 비록 교황이 성공회를 보편적인 의미로 기독교인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혹은 천주교가 계승의 교리를 거부하는 개신교를 기독교로 간주할 수 있다면 천주교는 후기성도가 단순히 천주교가 주장하는 사도 계승을 벗어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괄성 없이 후기성도를 기독교로부터 배제할 수 없다.

 

십이사도는 기독교인이었나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배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단연 가장 심각한 반대는 역사적인 배제는 후기성도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그의 사도를 포함한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배제하기 때문이다. 만약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전통적인 기독교를 꾸러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즉 성서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후세기에 발전된 종교회의, 신조 및 신학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연대순으로 보아서 예수님과 그의 교회는 기독교인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일 세기 때의 성도들을 기독교인이라 부르기 때문에 이것 하나만 보아도 역사적인 배제가 함당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헁11:26  26:28  벧전4:16)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사백 년 전의 아브라함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와졌기 때문에 모세 율법은 기독교에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더 나아가 아브라함이 율법 없이도 신앙으로 의로와질 수 있었다면 아브라함의 본보기를 따랐던 이방인들도 똑같이 의로와 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갈3:6-18) 이것이 바로 본인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종교회의와 신조와 신약시대의 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통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기독교인이 되는 필요한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약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찰세돈 종교회의에서 니케아 신경이 만들어지기 4백전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성서 이후의 전통 없이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면 후기성도도 마찬가지다.

 후기성도는 신약의 성도들이 믿었던 것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겠으나 그렇게 주장하게 되면 주장이 역사적인 배제에서 교리상의 배제로 근거를 바꾼 결과가 되는데 이 역사적인 베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신약시대의 성도를 포용하면서 기독교 세계로부터 후기성도를 배척할 수 있는 역사나 전통은 없다.

 

요 약

 요약하자면, 기독교인을 비표준적인 정의, 즉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의 신앙에 기초를 두지 않고 개인의 문화적인 혈통과 신학적인 혈통에 근거한 정의를 제의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배제는 쓸모 없는 것이다. 또한 이 배제가 후기성도에게만 선택적으로 이용되고 전통적인 교회를 거부한 다른 교회에 대해서는 이용되지 않기 때무에 쓸모없는 것이다. 많은 교파들이 초기 정통교회의 일부 혹은 모두를 거부해왔으나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간주된다. 더 나아가 역사적인 배제는 신약성서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역사적인 배제는 수세기 전에 살았던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물려줄 수 없었던 종교회의, 신조, 풍습을 곁들인 후일의 역사적인 교회를 받아들이는 시험이기 때문에 쓸모없는 것이다.


               - 목 차 -

 [3. 인신공격에 의한 배제]

 [7. 교리에 의한 배제 : 성삼위]

  [서문]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8. 교리에 의한 배제 : 기타 ] 

 [1. 단어정의에 의한 배제] 

 [5. 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9. 결론 - 노트 -  번역후기]

 [2. 허위제시에 의한 배제]

 [6. 교리에 의한 배제]

  처음으로 가기


          All Contents Copyright by 1999-2012
For questions and comments, send e-mail to
pcway@naver.com 
http://www.ldskorea.net
TEL: 010-4236-9900 / 070-7620-9900 / FAX: 031-726-9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