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은 기독교인인가?

               - 목 차 -

 [3. 인신공격에 의한 배제]

 [7. 교리에 의한 배제 : 성삼위]

  [서문]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8. 교리에 의한 배제 : 기타 ] 

 [1. 단어정의에 의한 배제] 

 [5. 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9. 결론 - 노트 -  번역후기]

 [2. 허위제시에 의한 배제]

 [6. 교리에 의한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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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희랍어인 Kanon은 "잣대"또는 "곧은자"를 뜻하며 이차적으로 "표준" 또는 "기준"을 뜻한다. 이 이차적인 뜻으로부터 영어인 canon이 나왔으며 이 단어가 경전을 가리킬 때는 "권위있는 책들"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렇다면 경전(canon)이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또는 권위설로 받아들이는 책들이다. 어떤 책을 경전이나 표준 경전("경전"을 뜻하는 말일성도의 용어)으로 부른다면 이 말은 승인된 경전에 나와있다는 뜻이다. 비몰몬들에겐 경전이란 성서를 구성하는 책들을 뜻한다.

 다른 기독교파와 비교해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더 많은 경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성경 이외에도 후기성도는 몰몬경, 교리와 성약, 그리고 값진 진주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이 영감 받은 4대 경전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표준 경전이다. 후기성도에게 적용되는 경전에 의한 배제란 간략히 표현하자면 몰몬은 기독교 경전과는 다른 경전을 가지고 있는데다 기독교 경전에 다른 경전을 첨가했으므로 몰몬은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경전에 다른 경전을 첨가함
 

 경전에 의한 배제를 지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공되는 주장은 성경 자체가 기독교 경전을 가감하지 못하게 금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구절로 계시록 22:18-19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위 구절이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장 끝에 나오기 때문에 "순진한" 독자는 "이 책의 예언"이라는 구절이 성경 전체를 가리키며 따라서 경전을 가감할 수 없다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먼저 계시록이 신약 성서의 책 중 가장 나중에 쓰여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계시록이 기록된 서기 94년-95년 경으로 보며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유다서, 요한 1,2,3서와 요한 복음도 이와 똑같은 시기이거나 그 이후에 쓰여졌다고 추정한다. 만일 계시록이 신약 성서중 가장 나중에 쓰여진 책이 아니라면 계시록 22:18-19는 경전을 끝맺는 선포로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계시록이 마지막으로 쓰여졌느냐 쓰여지지 않았느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요한이 경고하면서 기록했던 "책은 분명히 성경 전체가 아닌 계시록 자체였기 때문이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했을 당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한권으로 묶어진 영감 받은 책들-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이 자신의 책들을 출판한 후 수세기 동안 성경의 개별적인 책들은 개별적으로 배포되었거나 다른 몇권의 책들과 함께 묶여 배포되었지 지금과 같이 전체가 한권으로 묶어 배포한적이 결코 없었다. 10세기 이전에 출판된 것으로 알려진 362사본 가운데서 오직 한 사본만이 완전한 신약성서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 사본을 제외한 나머지 어떤 사본도 완전한 성경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날까지 알겨진 5366 희랍 사본 가운데서 오직 34 사본만이 성서 전체를 담고 있으며 이 34 사본도 전부 서기 1000년 이후에 쓰여진 것이다.(Bruce M. Metzger의 Manuscripts of the Greek Bible: An Introduction to Greek Paleography (new York: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국, 1981), 54-55쪽을 보라). 오늘날 기독교 세계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인쇄시대가 준 축복이다. 구텐버그 이전에는 완전한 성경이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요한이 "이 책의 예언"에 관하여 글을 썼을 때 그는 성경으로 알려진 한권으로 묶어진 책의 모음집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쓰고 있었던 책인 계시록을 지칭한 말이었다. 말일성도는 계시록의 내용을 가감하지 않았으므로 계시록 22:18-19의 구절은 후기성도가 성서 이외의 경전을 받아들이는 문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바로 이와 똑같은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신명기 4:1-2에서 발견되는 계명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만약 모세의 말이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면 모세 이후의 선지자와 글을 받아들인 유대인과 시내산에서 받은 계시에 신약성서를 첨가한 기독교인은 분명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 모세는 그 당시 기록중이던 특정한 계시를 언급하고 있었지 다른 경전을 첨가할 수 없다는 경고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요한의 말처럼 모세의 말도 자신이 쓴 글을 함부로 고치지 말라는 뜻이었지 하나님으로부터 더 이상의 경전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선지자(예언자)는 늘 경전을 첨가해옴
 

 사실 구약의 모든 선지자(예언자)들은 그들 이전의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말씀을 "첨가"했다. 성서를 연구하는 학생이라면 역대상, 역대하의 저자는 열왕기와 사무엘서에 이미 들어있던 자료를 다시 기록 했으며 종종 말 그대로를 인용하기도 하고 두 책의 내용을 역대기에 첨가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였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신약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경전에 다른 경전을 "첨가"했다. 신약성서 내에서도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글에 "첨가" 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최근의 성서 학자들에 따르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가복음 이후에 쓰여졌으며 마태와 누가가 자신들이 복음서를 쓰는데 기본 원서로 마가복음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즉 마가복음에다 자신들의 자료를 더하고 필요치 않은 내용들을 제하여 버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태는 마가복음에다 동방박사 이야기와 에굽으로의 피신, 그리고 산상수훈을 첨가했으며 마가복음 1:23-28에 나오는 가보나움의 귀신들린 자를 고친 이야기를 빼 버렸다. 마가복음에 누가가 첨가한 것으로는 침례 요한의 출생, 선한 사마리아인과 탕자의 비유들이있다. 이방인 이였던 누가는 마가복음 7:26-27과 같이 이방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구절(마태복음 7:26-27과 비교하라)과 정부관리와 충돌하는 기독교인을 보여주는 구절을 삭제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의 출생에 대해 헤롯 왕이 근심하는 부분을 삭제했었을 수도 있다)

 설혹 성서학자들의 견해가 잘못되어 마가가 최초의 복음서 저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 공관복음이 다르고 이 복음서들이 문자 그대로 상호 의존했다는 사실-어떤 보금서가 먼저 쓰였던 간에-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 세명의 저자 중 두명이 다른 한 저자의 글을 가감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만약 마태, 누가, 요한이 유대인 경전에 그들 자신의 책을 첨가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독교 복음서인 마가복음에 담겨진 이야기에 그들의 기록을 첨가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면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조셉 스미스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있어서 문제는 어떤 사람이 경전에 다른 말을 첨가했느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성서상의 사도와 선지자들도 기존의 경전에 다른 기록을 첨가해왔다. 문제는 경전에 기록을 첨가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권능과 명을 받았느냐에 있다. 조셉 스미스가 받은 경전이 참된 것이나 아니냐를 이곳에서 입증할 필요는 없다. 경전에 의한 배제가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도와 예언자들이 경전이 다른 말을 첨가하고서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경전을 끝맺는다거나 더 이상의 계시를 금한다는 성경상의 언급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또 과거의 사도와 선지자들이 경전에 다른 말을 첨가해왔으면서도 하나님에 과오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전을 근거로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경전에 의한 배제 논리를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문제는 신약의 저자처럼 조셉 스미스가 기독교 경전에 다른 기록을 첨가했느냐는데 있는게 아니라 신약성서의 저자들 처럼 사도적 권능을 가졌느냐는데 있다. 만약 조셉 스미스가 사도적 권능을 가졌다면 그가 성경에 다른 기록을 첨가한 것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 조셉 스미스는 선지자도 아니었으며 사도적 권능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경전에 의한 배제를 포기하고 다른 논쟁에 의존하는 것에 불과하다.

 경전상의 배제 뒤에 숨어 있는 동기는 더 이상의 사도와 선지자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대부분의 비몰몬들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확신이다. 만약 이 확신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의 경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경전을 쓸 수 있는 사도적 권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몰몬들의 이러한 확신을 입증해 줄 만한 경전 구절이 없으므로 후기성도들은 이 확신이 사실이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후기성도(몰몬)와 성서의 완벽성

 

 경전상의 배제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동기는 성서 하나만으로 족하며 기존의 경전은 완벽해서 더 이상 손 볼데가 없다는 배제자들의 확신이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완벽하다는 극단적인 교리로, 성서는 완벽해서 결함이 없으므로 모든 신학적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준다고 주장한다. 성서 완벽주의자들은 성서가 이토록 완벽하므로 더 이상의 경전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종종 말일성도는 다음과 같은 성서 완벽주의 논리에 부딪히게 된다.

  1. 모든 종교적 진리는 성서에서 발견된다.
  2. 조셉 스미스의 계시는 성서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3. 그러므로 조셉 스미스의 계시는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본인은 여기에다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다.
  4. 명제 1도 성서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5. 따라서 명제 1은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다.
  6. 만약 명제 1이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라면 명제 1에 기초한 결론 3도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다.

극단적인 성서 완벽주의자들은 명제 4를 두고 논쟁하겠으나 이는 어쨌든 사실이다. 성경 어는 곳에도 성경(Bible)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 성서에 나오는 용어가 아니다.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 명제를 기본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극단적인 성서 완벽주의자들의 주장이 갖는 가장 큰 결함이다. 예를 들면 "성경은 구원에 충분하다" "성경은 완벽하다"  "성경은 인간이 갖는 모든 종교 문제에 해답을 준다"  "성경은 하나님을 대변해 말하고 행동 할 수 있는 권능을 우리에게 준다" 또는 "성경 이외에 다른 경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들이 그것들이다. 이 명제중 그 어느 것도 성서에서 나온 건 없다. 그러면서도 모든 비성서적인 종교원리를 거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비성서적인 종교원리를 근본적인 종교 원리로 받아 들인다.

 극단적인 성서 완벽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경전구절은 디모데 후서 3:16-17이다: 모든 성경(scripture)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완벽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 구절은 단순히 문제점을 증명하지 않고 이론을 펴 나가는 꼴이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성경(Bible)을 언급하지도 않으며 성경 안에 어떤 책이 포함되어야 하는지도 설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단지모든 성경(all scripture)은 유익하다고만 말할 뿐이다. 참으로 후기성도는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를 포함한 모든 경전이 유익하다는 것에 진심으로 공감할 것이다. 디모데 후서의 이 구절은 어떤 것을 경전으로 포함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설혹 제공해준다 할지라고 그 경전으로서만 충분하다거나 완벽하다거나 또는 더 이상의 개선이 필요없다거나 하는 것을 보여 주지 못하고 단지 경전이 유익하다고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차를 운전하고 싶을 때 자동차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익하겠으나 탱크에 기름이 없다거나 바퀴에 공기가 없다면 자동차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떤 사물이 충분하지 않고서도 유익하거나 필요할 수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진술은 하나님의 사람이 경전없이는 완벽해 질 수 없음을 분명하게 가르치나 경전 하나만으로 완벽하게 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 모든 종교적 진리는 성서에서 발견된다" 거나 "성경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거나 혹은 "성경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중요한 종교적인 명제가 조리에 맞을려면 명확한 용어로 성경에 설명되어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런 구절이 성경에 전혀 나와 있지 않다.

 후기성도가 이러한 극단적인 성서 완벽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의상 후기성도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이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구원받기에는 성경 하나만으로 족하다거나 성경이 모든 종교적인 문제를 명확하게 답변해 준다고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사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만약  현대의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을 제외한 모든 기독교인들이 극단적인 형태의 성서 완벽설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배제된다면 이러한 배제는 교파의 종교적인 오만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며 기독교인를 자신들에 맞게 정의하는 것에 불과할 분이다(일장을 보라). 반면 천주교와 정통파와 주된 개신교파들이 이런 형태의 완벽주의를 거부하는데도 기독교에서 제외되지 않는데 후기성도만 제외된다면 우리는 분명 표리부동한 신학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기독교" 성경인가?

 

 경전에 의한 배제가 갖는 최대 약점은 사실 다른데 있다. 이 약점이란 기독교 경전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인데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 경전은 하나만 있어온게 아니고 종류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기 190젼대 후반에 로마 교회의 교인 한 사람이 그 당시 로마 교회가 경전으로 받아들였던 책들의 목록을 열거했다. 이 경전의 목록을 담고 있는 서류를 로도비코 무라토리가 1740년에 밀란의 암브로시안 도서관에서 발견하였으며 이런 사유로 이 경전을 무라토리 경전이라고 부른다. 이 경전에 따르면 이세기 끝 무렵 로마 교회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베드로 후서를 경전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요한의 서신 중 오늘날까지도 이 두 서신이 어떤 두 서신인지도 확실히 모르지만 두 서신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를 경전으로 받아들였으나 오늘날 이 두 서신은 신약과 베드로의 계시록과 솔로몬의 지혜서에는 들어있지 않다. 분명 그들의 경전은 현대 기독교인들의 경전과는 달랐으나 이 이유 때문에 2세기나 3세기의 로마 교회가 기독교가 아니었다는 뜻일까?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경기장에 죽어 가는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하자. 과연 누가 그들의 경전이 달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기독교인 아니었다고 주장 할 수 있을까?

 가이사랴의 유명한 교회 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는 서기 3백년경쯤에 또 다른 경전을 제안하는 글을 썼다. 유세비우스는 21권의 책만을 "인정받는 책"으로 열거했으며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와 요한 3서, 유다서와 계시록을 의심이 가는 책으로 열거했다. "교회 역
사의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을까? 결국 유세비우스가 믿었던 성서는 현대 "기독교인"이 믿는 성서와는 달랐다. 브루스 엠 멧츠거가 요악한 말에 의하면 "서기 325년 경에 유세비우스가 보고한 바에 의하면 동방 교회는 계시록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천주교회 서신들의 권위에 대하여 상당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나자안주스의 성 그레고리는 자신의 4세기 경전에서 계시록을 제거했으나 삼세기가 지난 692년에서야 트룰란 종교회의에서 비준되었다. 그레고리는 계시록을 자신의 경전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들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참된 책이 아니오"라고 까지 주장했다. 성 그레고리와 트룰란 종교회의는 "기독교" 성서에서 계시록을 제하였으므로 비기독교인이었을까? D또는 클로몬타누스 사본으로 알려진 희랍 신약 사본 중 가장 중요한 사본에는 구약과 신약 성서의 목록이 담겨져 있다. 이 사본 자체는 6세기의 산물이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경전의 목록은 4세기 당시의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믿는다. 이 경전에는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 후서와 히브리서가 빠져있으나 바나바서, 허마스의 목자, (사도행전이 아닌) 바울 행전이 포함되어 있으며 무라토리 경전과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계시록도 포함되어 있다.

 현대 기독교 경전과 같은 경전이 처음 나타난 때는 4세기 중반을 넘어서였다. 이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성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교회에 받아들일 수 있는 책들을 자신의 39번째 축서(39th Festal Letter)에서 추천하였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의 경전은 천년이 지난 후에서야 비로소 공식화되었다.

 5세기 이전의 시리아 기독교 경전에는 고린도 삼서와 타티안의 디아테사론(4복음서를 하나로 묶은 책)이 포함되었으나 사복음서와 빌레몬서, 일곱게의 일반 서신과 계시록이 제외되었다. 5세기 이후의 시리아 기독교는 디아테사론 대신에 4복음서를 포함시키고 고린도 삼서를 제외시킨 시리아의 페쉬타(Syriac Peshitta)성경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리아 기독교는 22권의 책만을-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및 바울의 14서신과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요한 1서-경전으로 인정했다. 오늘날 까지 시리아 교회는이 22권만을 경전으로 인정하며 베드로 후서, 요한 2서와 3서, 유다서와 계시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희랍 정교회가 계시록을 공식 성구집(lectionary)에 결코 포함시키지 않았던 사실을 주목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죠지 교회와 아르메니아 교회는 시리아 교회를 좇아 각각 10세기와 12세기까지 계시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비시니아 정교회의 경전에는 현대의 신약성서인 27권의 책과 (로마의 클레멘트가 기록한 것으로 간주되는) 시노도스(Synodos) 와 콸레멘토스(Qulementos), (부활 이후 구세주의 강연을 포함한) 성약의 책과 이디오피아의 디다스칼리아( Didascalia))가 포함되어 있다. 아비시니언 경전은 구약에다 (유다서가 예언서라고 언급한)에녹의 책을 첨가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모든 것의 요지는 신약성서의 어떤 책도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말일성도는 신약의 27권 전부를 믿기 때문이다. 요지는 경전 문제에 있어 서로의견이 달라왔고 지금도 다르면서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남아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가 시작할 때부터 한권으로 고정된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실 경전으 1546년에 열린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로마 카톨릭에 의해 비로소 최종적으로 확정 되었다. 개신교 경전은 이 보다 훨씬 후에 가서야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개신교인 중에서 마틴 루터는 신약의 책들이 서로 가치가 다르므로 세 등급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루터는 자신이 출판한 초기 신약성서의 서문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책(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은 "신약에서 참되고 가장 고상한 책"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더 나아거 야고보서를 밀짚으로 만들러진 편지"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루터는 히브리서가 침례 이후에는 회개란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바울의 가르침과 상반되며, 야고보서는 행위에 의한 의로움을 가르치기 때문에 역시 바울의 가르침과 상반되며,, 유다서는 베드로 후서와 외경을 베꼈으며 계시록은 사도 요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그리스도에 관하여 충분하게 가르치고 있지 않으며 또한 계시록 저자가 자신을 너무 높이 치켜 세우고 있다고 불평했다. 루터ㅡ이 성경판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그리고 계시록을 나머지 신약으로부터 분리시켰으며 심지어는 이 책들을 "외경"과 "비성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까지 하였다. 브르스 메츠거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 신약을 가지고 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과 거룩한 사도들', 그리고 '출처가 의심스러운 신약'이 바로 그것으로 이런 식으로 배열된 성경이 거의 일세기에 걸쳐 6차례나 출판되었다.
 바셀의 개혁 설교가였던 요한 오콜람파디우스는 1536년에 "야고고서와 유다서 및 베드로 후서와 요한 2,3서와 더불어 계시록을 (신약성서)의 나머지 책과 대등하다고 간주하지 않는다"라고 기록했다.

 다시 한번 이 모든 자료를 제시하는 요지는 현대 기독교의 경전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신교와 천주교, 고대 기독교와 현대 기독교를 막론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어떤  책이 경전에 속하고 어떤 책이 경전에 속하지 않는지에 대해 서로 의견이 같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들이 단일의  통일된 경전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기도교인으로 간주되는데 후기성도를 똑 같은 이유로 비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으며 표리부동한 신학의 또 다른 예에 불과한 것이다.

 

 천주교 성경 대 개신교 성경


 마지막으로 지금도 여전히 단일의 통일된 기독교 성경이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개신교와 천주교는 "(개신교가 외경이라고 부르는) 12권의 책(deutercanonical books)"이 경전인가에 대해서 서로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로마 카톨릭은 외경을 포함한 경전을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택하였다. 따라서 이 12권의 책은 현대 천주교 성경판에는 나와있다. 도빗서, 유디트서, 솔로몬의 지혜, 집회의서 즉 벤 시락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서신, 마카비 일서, 마카비 이서, 에스더 첨가서,(아사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기도, 수산나와 장로들, 그리고 벨과 용으로 이루어진) 다니엘 첨가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들은 기원전 2세기에 이집트에서 사용한 칠십인역은 초기 기독교회가 사용한 구약성서였으므로 천주교회의 라틴어판인 벌게이트로 이어졌으며 지금도 여전히 희랍 정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1546년 4월 8일에 발표된 종교회의 신조인 De Canonicis Scripturis는 이 12권의 책(외경)을 기독교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누구나 다 저주 받은 자 들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대부분의 개신교들은 칠십인역과 칠십인역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이는 수세기의 전통을 깨고 유대인들이 보존해온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선호하였다. 히브리어 구약성서 중세판에는 칠십인역에는 들어있지 않았으므로 개신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외경들을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천주교와 희랍 정교회 성경은 일반 개신교 성경보다 대략 230쪽에 해당하는 12권의 책을 더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와 희랍 정교회 성경보다  더 잛은 경전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인들은 트렌트 종교회의의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와 천주교는 "기독교" 경전을 감하거나 첨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기독교인이라 부른다. 만약 천주교와 희랍정교가 개신교보다 성경에 12권의 책을 더 가지고 있데도 기독교로 간주될 수 있다면 왜 몰몬은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과 값진 진주를 성경에 첨가할 수 없을까? 한쪽에만 공정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기독교 통합의 관심사 때문에 개신교와 천주교는 경전 문제에 있어서 서로 "동의하지 않기로 동의해온 것"이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서로 자신들이 옳으며 상대방이 그릇되다고 믿으면서도 어떤 측의 경전이 참된 경전이나라는 문제는 상대를 "비기독교"라고 부를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것이 바로 똑같은 문제가 후기성도에게 제기 되었을 때 공정치 못한 이유다. 만약 단일의 통일된 기독교 경전이 있다면 그래서 몰몬이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기독교 단일의 통일된 성경이 있다면 도대체 어떤 경전일까? "기독교" 경전은 천주교가 발행한 성경일까 아니면 개신교가 발행한 성경일까? 그리고 만약 개신교와 천주교가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르면서도 여전히 양측이 기독교로 남아있다면 어떻게 하여 이 똑같은 문제가 몰몬은 기독교 가족으로부터 배제하는데 일관성있게 적용될 수 있단 말인가? 즉 다른 교회들이 그들 가운데서는 적용하지 않는 것을 후기성도를 배제하기 위해서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요 약


 후기성도가 보다 많은 경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 경전은 성경과 사도의 선포로 보아 종결된 것도 아니며 성경의 내용이 사도 시대에 종결되었거나 동의된 것도 아니다. 경전이 종결되었다는 개념은 비록 모든 기독교파들이 동의한 단일의 통일된 경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훗일에 생겨난 개념이다. 사도들이 죽고 난 다음 계시가 끊어지자 교회는 다음 두 가지 결론 중 하나에 이르게 되었다. 첫 번째 결론은 하나님 자신이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말했으므로 계시가 끊겨 교회는 더 이상의 계시를 필요로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 결론은 계시를 받을 사도와 예언자가 더 이상 없게 되자 교회는 필요한 구성요소를 잃게 되었으므로 계시가 끊겼다는 것이다. 후기성도는 두 번째 결론을 받아들인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은 기독교회의 산물이지 기독교회가 성경의 산물은 아니다. 신약성서가 쓰여지기 이전에도 기독교인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므로 성경 때문에 기독교가 생겨났다고 주장할 수 없다. 후기성도는 이러한 개념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경에 관한 다른 모든 광적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어떤 책이 하나님의 책이냐, 즉, 어떤 책이 "기독교" 성경에 속하느냐를 두고 의견을 달리 해왔다. 기독교 시대에 어떤 책이 신약성서의 일부가 될 수 있는냐를 놓고 의견이 서로 달리 해왔다. 게다가 천주교는 초기 기독교의 고대 희랍어판에서 발견되는 많은 책을 첨가했다(아니면 개신교가 뺏던가). 사실 전통적인 기독교는 경전과 성경 문제에서 결코 의견이 같아 본 적이 없었다. 현대 교회들이 어떤 것이 기독교 경전인가를 놓고 서로 의견이 다른데도 상대를 기독교로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게만 똑같은 특권을 거부한다면 논리적으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공정치 못하다.    

 경전 - 신약 성경의 기원               구약 성경의 기원


               - 목 차 -

 [3. 인신공격에 의한 배제]

 [7. 교리에 의한 배제 : 성삼위]

  [서문]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8. 교리에 의한 배제 : 기타 ] 

 [1. 단어정의에 의한 배제] 

 [5. 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9. 결론 - 노트 -  번역후기]

 [2. 허위제시에 의한 배제]

 [6. 교리에 의한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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