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은 기독교인인가?

               - 목 차 -

 [3. 인신공격에 의한 배제]

 [7. 교리에 의한 배제 : 성삼위]

  [서문]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8. 교리에 의한 배제 : 기타 ] 

 [1. 단어정의에 의한 배제] 

 [5. 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9. 결론 - 노트 -  번역후기]

 [2. 허위제시에 의한 배제]

 [6. 교리에 의한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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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에 의한 배제

 

 후기성도를 비기독교인으로 배척하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되는 것은 교리에 의한 배제다. 이 배제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나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논리적 주장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즉 후기성도는 다른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부류의 주장이 갖는 보편적인 결함은 다른 모든 기독교인이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을 믿는다면 그릇된 가정이다. 사실은 다른 어느 두 교파나 기독교인 개개인도 세부적인 모든 기독교리에 의견이 같지 않다. 대부분의 교파는 어떤 교리가 모든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여야할 핵심 교리인지 어떤 교리가  토론의 여지가 있는 종속교리인지 의견이 서로 다르다.

 많은 기독교 가운데서 교리의 차이점이 있는게 분명한 사실인데도 후기성도에게만 교리의 차이를 보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공정할 수 있을까? 또 이러한 "교리의 차이점"을 측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설혹 이러한 요구가 공정하다 할지라도 이러한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요구에 응하고 싶더라도 후기성도가 동의할 수 있는 모든 기독교인이 받아들이는 단일의 통일된 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모든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는 보편적인 교리가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그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정도의 보편적인 교리를 정의하지 못하였다.

 

무엇이 "기독교" 교리인가?

 모든 면에서 "기독교" 교리를 따르라는 요구를 후기성도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했다고 잠시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후기성도의 교리는 개신교의 교리와 일치할까 아니면 천주교의 교리와 일치할까? 후기성도는 사도의 계승을 믿게 될까 아니면 모든 믿는자의 신권을 믿게될까? 말일성도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로 대주교와, 족장, 교왕, 군주를 믿게될까 아니면 어느 누구도 믿지 않게될까? 자비만으로 구원을 받게된다고 믿게될까 아니면 교회의 성사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믿게될까? 자유의지를 믿게될까 이니면 예정설을 믿게될까? 물의 침례를 행하게 될까? 그렇다면 침수로써의 침례를 행하게 될까 아니면 물뿌리는 세례를 행하게 될까? 그리스도의 대속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할까 아니면 하나의 예나 표본으로 믿어야 할까? "원죄"를 믿어야 할까 아니면 믿지 말아야 할까? 이런 질문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교리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잘 모르면서 후기성도에게 단일의 통일된 기독교" 교리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후기성도에게 단일의 통일된"기독교" 교리를 따르라고 요구하게되면 특정한 교파의 교리는 차이점을 묵인하면서도 다른 교파의 교리는 차이점을 묵인하지 않는 표리부동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모든 참된 교회는 핵심적인 기독교 교리가 같다는 자주 듣게되는 주장은 기독교파 간에 존재하는 교리의 차이점이란 순전히 이차적인 것, 즉 시시한 문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지 않는 문제일 뿐이라는 모호한 명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독교 역사적 관점에서 보게 되면 이런 주장은 방어하기가 매우 힘들며 개신교인과 천주교인들이 이 "시시한" 차이점 때문에 한 때 서로를 이단으로 몰아붙여 화형시켰는지 사실 여부를 받아들이기가 오히려 더 쉬울런지 모른다.

 

기독교 교리는 늘 성경의 교리인가?

 교리에 의한 배제를 적용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교리와 성경의 교리를 자주 혼동한다. 많은 교파들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교리를 맡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일부 개신교인들은 춤추는 것을 죄로 여긴다. 천주교인들은 마리아의 무염시태 (immaculate conception )를 믿는다. 그리고 개신교와 천주교는 최소한 초교파 종교회의에서 발표한 교리를 믿으나 이런 교리를 성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니케아 신경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정의하는데 도움을 주기위해 기독교인들이 작성했다는 점에서 기독교교리로 간주된다. 니케아 신경은 내용에 있어서는 성서의 교리가 아니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는 기독교 교리다.

 

기독교 교리는 늘 옳은가?

교리에 의한 배제를 적용하는 사람들은 또한 교리가 참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와 어떤 특정한 교리를 믿게 되면 그 사람이 필연적으로 비기독교인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와 자주 혼동한다. 이들은 기독교 교리를 곧 옳은 교리로 혼동한다. 종종 이들은 단지 두 부류의 신앙인들, 즉" 내가 믿는 사람들"과 "참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 만을 보게된다. 그러나 어떤 기독교인은 다른 기독교인이 믿지 않는 것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보아 여러 기독교파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리에 의한 배제를 적용하는 사람들이 사물을 두 가지로만 보지만 실제로는 세 번째 부류의 신자, 즉 그들과는 믿음이 다른 참된 기독교인들이 있음에 틀림없다.

 후기성도 비평가들은 만약 후기성도의 이러 저러한 믿음이 틀린 것으로 입증될 수 있다면 이는 후기성도는 기독교가 아님을 입증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재(참된 교리와 기독교 교리)는 논리적으로 별개의 문제다. 많은 교파는 다른 교파가 믿지 않는 것을 믿는다. 예를 들어, 천주교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예수를 잉태했다는 교리인 무염시태와 마리아가 천국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중재설을 믿지만 개신교는 이런 교리를 믿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개신교는 성경만으로 구원에 충분하다고 믿지만 천주교는 이를 믿지 않는다. 분명 이 문제는 교리상으로 중대하며 이 교리에 있어서 분명 개신교나 천주교 둘 중에 하나가 잘못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초보수주의자들을 제외한) 양측은 이러한 믿음의 차이 때문에 상대측을 비기독교로 보지는 않는다. 상대의 교리가 옳은지 그른지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옳든지 그르든지 둘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천주교나 개신교 둘 중에 하나가 틀려야 한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이 틀렸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한편 양측은 견해가 다르다는데 동의했으므로 일반적으로 아량을 보여 상대측의 견해를 기독교적인 견해로 보아 넘긴다.

 그러나 교파간의 교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에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기독교로부터 배제하지 않으면서 다른 교파와 의견을 달리한다는 이유만으로 후기성도를 제외시킬 수 있을까? 만약 기성교파들이 교파간의 교리 차이를 어느정도 참아 넘길 수 있다면 후기성도만을 선택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교리 차이를 이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다른 기독교파들이 아량을 보이는 교리 차이는 광범위한 한계내에서의 유도리의 문제이며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일부 교리는 신약이나 전통 기독교에 비추어보아도 너무 이상한데다 심지어는 이 광범위한 한계를 벗어나서 아량을 보일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로 비평들이 가장 크게 헐뜯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이 개별적인 교리들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놀라운 결과를 낳게된다. 가장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문제인 후기성도는 "이방 신제조자"라는 비난부터 시작해 보자.

 

 신성에 관한 교리

 하나님(God)은  한때 인간이셨으며 인간도 신(gods)이 될 수 있다고 후기성도가 믿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5대 회장 이었던 로렌조 스노우는 자신의 2행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지금 인간이 인간이듯 하나님도 한 때는 인간 이었고
     지금 하나님이 하나님이듯 인간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되리.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위엄을 모독하는 이교도의 교리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생각해온건 아니다. 2세기에 가장 저명한 기도교 신학자였던 이레내우스 경은 로렌조 스노우와 비슷한 말을 했다.

    말씀이 인간이 되셨다면,
    인간도 신(gods)이 될 수 있으리.

이레내우스는 신성에 관하여 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가 처음부터 신(gods)으로 창조되지 않고, 처음에는 인간으로 창조되었다가 나중에야 신이 된다고 해서 그분(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순수한 자비로 이러한 과정을 채택하셔서 아무도 하나님이 인간을 차별하신다거나 인간에게 인색하시다고 불평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내가 말했노니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 모두는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라"고 선포하신다. ...왜냐하면 먼저는 필멸의 특성이 보여지고 다음에는 필멸의 것이 정복되어 불멸가운데 삼키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2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말하노니 여러분이 신이되는 방법을 인간으로부터 배우도록 하기위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로렌조 스노우의 말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클레멘트는 "만약 사람이 자신을 안다고 하나님을 알게될 것이며 하나님을 알게되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 하나님의 미는 참된 미다. 참된 미는 하나님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신(gods)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인간은 신이 될 것이다. 그래서 헤라클리투스가 '인간은 신이며 신은 인간이다'라는 말을 했을 때 그의 말이 옳았다"

 2세기 성 저스틴 마터는 태초에 인간은 "하나님처럼 창조되어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며" 따라서 "인간은 신이 되고 가장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4세기 초기에 자신의 이름을 따 지어진 아타나시우스 신경으로 유명한 이단의 적이었던 성 아타나시우스도 로렌조 스노우가 사용한 용어와 매우 흡사한 용어로 신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피력했다. "우리가 신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 주님이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되었듯이 우리 인간도 그의 육체를 통해 신이 되어 영원한 삶을 상속받게 된다. 또 다른 경우에 아타나시우스는 "우리가 신이 되도록 주님은 인간이 되셨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로렌조 스노우의 표현과 똑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위대한 기독교 교부였던 성 어거스틴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러나 인간을 의롭게 만드시는 그분 자신이 인간을 신으로 만드신다. 왜냐하면 인간을 의롭게 만들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때문이다. [요1:12].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도 역시 신이 된 것이다."

 본인은 이곳에서 이교도나 영지주의자가 아닌 비난할 여지가 없는 권위있는 기독교인들의 말만을 인용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위에 언급한 다섯 사람은 기독교인일 뿐만 아니라 정통 기독교 성인으로 인정받는 정통 기독교인이었다. 위 다섯 사람중 세 사람의 말은 사도 시대로 부터 백년이 채 못되어서 한말이며 그리고 다섯 사람 모두다 신성에 관한 교리를 믿었다. 이 교리는 비교적 최근까지 역사적인 기독교의 일부였으며 일부 동방 정통 교회에서는 이 교리가 여전히 중요한 교리로 남아있다. 후기성도가 이 교리를 지어냈다고 비난하는 자들은 기독교 교리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천주교에 관한 가장 훌륭한 책을 낸 리차드 피 맥브리엔 신부는 자신의 저서에서 교부 시대의 근본적인 정통 원리는 "우주의 역사를 신성화와 구원의 역사로 보는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맥브리엔에 따르면 이 결과 "성신은 참된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신이 거하게 되면 우리는 참된 신이 될 수 있다"고 교부들은 결론지었다.

         몰몬의 출판물이 안니 웹스터 기독교 신학 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부수적인 정보가 "신성화"라는 기사에 나와있다.

     신이 되고자 하는 것(희랍어로 theosis)은 모든 기독교인의 목표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은혜로 신이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이 신성화 교리는 구약과 신약의 여러 성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 시82(81).6: 벧후1.4). 그리고 성 바울은 양부모가 양자를 입양할 대 사용하는 언어(cf. 롬8.9-17: 갈4.5-7)와 제 사복음서      (cf.17.21-23)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교리는 본질적으로 성 바울의 가르침이다.

     성 이레내우스는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면 인간이 신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랬다'는 자신의 유명한 구절에서 베드로 후서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따라서 베드로 후서의 언어는 희랍신학의 표준이 되어 버렸다. 4세기에 성 아타나시우스는 이레내우스의 말을 그대로 반복했음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성 시릴은 우리는 참여로 '(희랍어로 methesis)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성화는 중성자 성 막시무스의 핵심적인 교리였다. 왜냐하면 막시무스의 신성화 교리는  신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났다는 신학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모든 시대와 세대에 구애받지 않고 신성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10세기 말에 신 신학자였던 성 시므온은 질적으로 하나님이신 분이 은혜로 이 된 자들과 친구가 친구와 대면하여 이야기 하듯이 대화하신다...

    마지막으로 신성화는 하나님에게 흡수된다는 뜻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이 된 자들은 분명 자신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신 가운데서 신성한 본질의 화상으로 변모하는 것은 육체와 영을 지닌 인간이다. 따라서 신성화는 모든 기독교인의 목표다.

 신성화 교리가 옳든지 그르든지 간에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일부 현대 기독교들은 이를 잘 모를 수도 있으나 이 교리는 여러세기 동안 주된 기독교 정통교리였다. 만약 이 교리가 "희랍 신학의 표준"이 되었다면 그리고 만약"신이되는 것이 모든 기독교의 목표"라면 말일성도가 이와 똑같은 신학과 목표를 가졌다는 이유로 기독교 가족으로부터 배제될 수는 없다. 만약 성 이레내우스와 성 저스틴 마터와 알렉산드리아의 성 클레멘트와 성 아타나시웃, 알렉산드리아의 성 시릴과 중성자 성 막시무스와 신 신학자인 성 시므온 모두가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리고도 이 훌륭한 초기 성인들이 여전히 기독인으로 간주 될 수 있다면 후기성도들이 똑같은 것을 믿는다는 이유로 배척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 교리는 이교도의 교리도 이니며 주된 기독교 전통에 비추어 보아도 전혀 이상한 교리도 아니다. 이 교리는 2세기의 저스틴 바터로 부터 11세기의 신 신학자인 시므온에 이르기까지 신학자와 성인들 가운데서 챶아볼 수 있기 때문에 분명 조셉 스미스가 지어낸 것은 아니다.

 사실 후기성도들은 대부분의 이 복음 전도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신성화 교리에 동의 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후기성도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만 그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고 난 후에야만 온전한 신의 상속을 받기 때문이다. 논쟁할 여지가 없이 참된 기독교인으로 인정 받는 시 에스 루이스의 견해는 후기성도가 이해하고 있는 교리와 흡사하다: " 가장 재미없고 가장 흥미없는 사람이 언젠가는 강렬하게 숭배하고 싶은 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신과 여신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에 사는 것은 진지한 일입니다"

 또 루이스는 기독교의 가장 큰 약속은 인간이 그리스도의 생활방식(희랍어로 bios가  아닌 zoe)을 공유 할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루이스는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내가 '좋은 감염'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보급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되셨다. 모든 기독교인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로렌조 스노우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부의 말을 연상시켜주는 말로 루이스는 명료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
 루이스가 자신의 신성화 교리를 다음과 같이 더 자세히 언급할 때 사실은 후기성도의 견해를 되풀이 하고 있다.

      완전하라는 명령은 그림의 떡도 아니며 실현 불가능한 것을 하라는 명령도 아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창조물로 만들고자 하신다. 주님은 (성경에셔)우리는 "신이다라고 말씀했으며 그 말씀을 이행하실 것이다. 우리가 주님이 하시도록 허용만 한다면 -왜냐하면 원한다면 우리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님은 가장 약하고 가장 더러운 우리를 신으로 만들어, 눈부시고 발광하는 불멸의 창조물로 만들어 하나님 자신의 무한한 권능과 기쁨과 선을 완전하게(물론 작은 범주기는 하지만) 하나님에게로 반영시키는 밝은 흠없는 거울을 통해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그러한 에너지와 기쁨과 지혜를 가지고 영원토록 박동하게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길고 부분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 이외의 다른 이유는 없다. 주님은 진심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시 에스 루이스가 인간을- "미래의 가능한 신과 여신"으로 보면서도 그리고 "주님이 가장 약하고 가장 더러운 우리를 신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어떻게 후기성도가 정확히 똑같은 것을 믿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에서 제외되고 이교도로 간주될 수 있단 말인가?

 후기성도 비평가들은  초기 기독교 성도들과 후일의 희랍 신학자와 시 에스 루이스 모두가 후기성도가 이해하고 있는 신성화 교리와는 다른 교리를 이해하고 있다고 대답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과 시 에스 루이스의 경우에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다. 신성화 교리가 참된 기독교에게는 완전히 낯선 이교도 교리라는 주장으로 부텨 비겁하게 도망하는 꼴이기 때문에 이러한 대답은 둘러대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신성화 교리를 후기성도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본인의 말을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린) 기독교 교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교리에 근거한 교리에 의한 배제는 더 이상 합당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후기성도가 신성화 교리를 "올바르게"해석하든지 아니든지 간에 신성화 교리는 후기성도들이 전혀 근거없이 꾸며낸 교리도 아니며 고대 이교도로부터 빌려온 교리도 아니기 때문이며 참된 기독교에 완전히 낯설거나 모순되지도 않으며 이 교리가 역사적으로 기독교 교리로 간주되어온 것의 광범위한 한계를 벗어나도 않기 때문이다.

 후기성도의 신성화 교리가 종종 잘못 제시되어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기성도 비평가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말일성도는 인간이 결코 하나님(God)과 동일하게 될 거라고 믿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 언젠가는 하나님과 대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후기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gods)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을 뜻한다(요일5:4-5: 계2:7,11). 그러므로 우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며 그리스도와 공동상속자가 되며(롬8:17: 갈4:7)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상속받듯 우리도 무든 것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골전 3:21-23: 계21:7), 이 경전의 선포에는 한계가 없다, 즉 우리는 창조의 힘과 생산의 힘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상속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찬란한 상태에서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처럼 보일 것이다(요일3:2: 골전15:49: 골후3:18) 우리는 주님의 영광릉 받고 주님과 아버지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요17:21-23: 빌3:21)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우리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눅12:44: 계3:21).

 만일 기독교 경전이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고 하나님의 상속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하나님의 권능과 법을 행사한다고 가르친다면 시 에스 루이스와 다른 사람처럼 이와같은 존재를 하나님(gods)이라부를 수 있다고 결론내린다면 하나님(gods)이라는 용어가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 아버지 하난님의 주권을 감소시키거나 제한하지 않는한 분명 비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 용어를 사용한 방법이며 이것이 바로 시 에스 루이스가 이 용어를 사용한 방법이며 이것이 바로 후기성도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고 이 교리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복수성

  현대 기독교파들이 신성화 교리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종종 이 교리가 한 하나님 이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면, 신이 되면서도 하나님과는 별개의 분명한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다면 우주에는 많은 신이 있게 된다. 분명 이 시 에스 루이스와 초기 기독교 성인들도 이 말 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일성도와는 달리 이들은 이 말이 참된 다신론을 구성한다는 뜻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신성화 교리와 다신론 교리에 있어 이 두 단어를 반드시 정의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후기성도가 믿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두자. 후기성도들은 인간이 하나님과 동일하게 될 것이라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할 것이라고 결코 믿지 않는다. 인간과 관련한 하나님의 지위는 어떤 식을로든지 위협받지 않는다. 우주에는 오직 단 하나의 빛과 지시과 힘의 근원만이 있다. 만약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함을 받는다면(엡3:19), 그리하여 우리가 신(gods)이리 불리울 수 있다면 인간은 결코 추상적이고 보좌에 앉아 신(gods)의 권능릉 행사할지라도 은혜로 하나님이 된 자들은 영원히 그 은혜의 원천에 종속된 채로 남아있을 것이며 그들이 행사한는 권능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의 연장일 뿐이며 하나님 뜻의 대행자일 뿐이다. 그들은 계속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을 영원히 경배하고 섬기게 될 것이며 다른 신을 숭배하거나 섬기지 않을 것이다.

 만일 후기성도가 이러한 영예로운 존재를 "신(gods)"이라 부르지 않고 "천사"로 부른다면 후기성도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특별히 이 교리에 반대할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이들이 반대하는 것이 있다면 단지 이 용어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경전 자체도 비궁극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한정된 의미로 하나님(gods)이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한다.

 예를 들어 시편 8장에서 하나님(gods:히브리어로는 elohim)이라는 용어는 천사와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다. "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elohim]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4-5절.) 비록 히브리어로는 "하나님"(elohim)으로 읽히지만 신약성서의 히브리서를 포함하여 칠십인역부터 번역가와 주석자들은 위 표현이 천사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히2:7을 보라)> 하나님(gods)이라는 용어는 이곳에서 하나님(Gods)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적용된다. 신명기 10:17, 여호수아서 22:22, 그리고 시편 136:2는 모두 다 하나님은 "신중의 신"이라고 주장한다. 분명 이 구절은 우주 어디에선가 신들간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임영된 신성한 역할을 맡은 천사를 가리킴에 틀림없다. 만약 어떤 의미에서든지 천사가 하나님의 권능을  행사하고 하나님을 바로 "신중의 신"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일 것이다. 학자들은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 비궁국적인 의미로 천사를 "하나님" (히브리어로 elim 또는 elohim)으로 칭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사해 두루마리와 그 시대의 다른 인쇄물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이는 유대인들이 다신론자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성한 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이 허용된 하나님과 관련된 다른 존재를 가리키기 위해 제한된 의미로 하나님(gods)이라는 용어를 그들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인간도 역시 천사들과 똑걑은 이유로-천사뿐만 아니라 인간도 하나님의 권능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라 불리운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에게 신"으로 임명되었다(출7:1). 이것은 모세가 승영한 존재나 궁국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모세에게 신성한 권능이 주어졌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인칭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바로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도록 권능을 받았음을 뜻한는 것이다. 만약 경전에 모세와 같은 필멸의 인간을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god)으로 부를 수 있다면 분명 부활하여 하나님의 권능과 권위의 온전함을 상속 받는 불멸의 인간은 똑같은 의미에서 "신"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기 21:6와 22:8-9에서 인간 사사도 히브리 경전에서는 엘로힘("gods")으로 불리운다. 시편 45:6에서도 왕도 elohim으로 불리운다. 인간 지도자나 사사도 역시 시편의 다음 구절에서 "신"으로 불리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들의 아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어지리로다."(시82:1, 6-7.) 유대인 성서 학자와 기독교 성서 학자들은 한결같이 이 구절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적용하는 구절로 이해하여왔다. 몰몬이 아닌 제임스 에스 액커맨에 따르면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사사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정의를 집행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졌었기 때문에 이 구절을 '하나님'이라 부리웠던 이스라엘 사사들을 칭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왔다."

 신약의 요한복음 10:34-36에서 예수님 자신이 시편 82:6을 인용하고 하나님(gods)이라는 용어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인간들을 칭하는 용어로 해석하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만약 경전[시82]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필멸의 인간을 "신" (gods)이라 칭할 수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분개 하느냐? 라는 뜻이었다. 경전이 한정된 이 의미로 인간을 칭하기 위해 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구세주의 주장은 효과적이었다. 또한 몰몬이 아닌 제이 에이 에머토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서 해석가들은 주님의 주장이 인간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신이라 불리울 수 있음을 입증 할 의도였으며.... 예수가 근본적인 원리로 되돌아 더 일반적으로 '신'(god)이라는 말이 특정한 상황 하에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 즉 하나님이 권능을 위임한 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이게 바로 후기성도의 믿음이다. 이 생에서든지 다음 세상에서든지간에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은 한나님의 권능과 권위를 받을 수 있다. 이 위대한 상속을 받은 자들은 신이라 불리울 수 있다. 이들은 희랍의 철학적 의미인 "궁극적인 존재"로서 신도 아니며 숭배의 대상으로서 이들의 상소의 원천인 하나님과 경쟁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결코 하나님과 동일 할 수 도 없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지도 않는다. 정통 신학자들은 후기성도는 비궁극적인 존재에 대해 신(gods)이란 용어를 사용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후기성도가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성서의 정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플라톤의 정의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경전과 초기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초기 기독교인들을 신(gods)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신성화 교리에 관하여 위에서 언급된 초기 기독교 성인과 신학자들의 말을 반복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후기성도처럼 그들에게도 신성화 교리는 "신"(gods)의 복수성을 뜻했지 하나님(Gods)의 복수성을 뜻하지 않았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다신론을 뜻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클레멘트는 분명 단일신을 믿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완전해진 자들은 "신(gods)이라 는 명칭으로 불리우며 구세주에 의해서 자리가 먼저 주어진 다른 신들과 더불어 보좌에 앉도록 되어있다"고 믿었다. 이게 바로 후기성도의 교리다. 기독교 성인이자 신학자였던 클레멘트가 인간들이 신(gods )이라 불리울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신으로 만든 다른 사람들과 보좌에 앉을 것이라고 가르칠 수 있었다면 조셉 스미스가 똑같은 것을 가르친 것으로 하여 다신론자나 비기독교인으로 낙인찍인는 것이 공정할 수 있을까?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경전과 역사적 선례와 조화를 이루는 후기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부활할 때 하나님의 온전함을 받게될 자들, 즉 하나님의 권능과 특권을 받게될 자들을 신(god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묘사한다. 그러므로 후기성도에게 있어서 "신(gods)이 한분 이상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주에는 힘의 근원이자 경배의 대상이 한분 이상 있는가?"라는 질문과는 다른 질문이다. 후기성도는 성 클레멘트 경우처럼 첫 번째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하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후기성도에겐 god라는 용어는 경전에서 충실한 자들에게 약속되었듯이 하나님의 권능과 권위를 받는 자에게까지 확대시켜 사용할 수 있는 칭호다. 그러나 이러한 칭호를 이렇게 확장하여 사용한다고 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지위에 도전하거나 제한하거나 침해하지는 않는다.

 적물몬 비평가들이 출애굽기 7:1과 신명기 10:17,(히브리어로된) 시편8:5, 그리고 시편 45:6과 시편 82:6이나 요한복음 10:34-36을 해석할 때는 이 경전 구절들은 제한된 의미에서 god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다신론과는 관련이 없다고 즉, 한 god 이상이 있을 수 있으나 오직 한 God만 있다고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똑같은 의미로 god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후기성도의 글을 토론할때는 좀처럼 똑같은 예의를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god 라는 용어가 말일성도 글에 나타날 때는 이 용어가 사용될 수 있는 어떤 제한된  의미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후기성도의 교리를 왜곡하고 그릇되게 해석하여 합당한 경전과 역사적인 선례가사용하는 똑같은 의미로 후기성도가 "신" (gods)을 말한다는 이유로 말일성도를 " 다신론자" 라고 비난한다.

 고대 현대를 막론하고 기독교 성인과 신학자와 작가들은 인간이 " 신"(gods)이 될 수 있다고 믿어왔으나 다신론자로 비난받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의미에서 사용된 "신"은 성부와 성자, 성신에 영원히 종속된 채로 남아있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후기성도의 교리이기 때문에 말일성도들도 역시 다신론자들이라는 비난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 기독교인들과 후기성도들은 똑같은 교리를 공유하므로 이들은 또 같은 운명을 공유해야 한다. 즉 의심스러운 성인과 신학자와 작가들을 다신론을 믿는 이단자로 매도하든지 아니면 후기성도를 유일한 참 하난님 한 분만을 믿는 숭배자들로 간주하든지 해야한다.

 

요 약

 교리에 의한 배제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기준과 모든 기독교인들이 동의 할 수 없는 "순수한" 기독교 교리를 따를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원리에 근거해서 쓸모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리에 의한 배제는 교파마다 변하는 움직이느 표적이다. 각 교파들은 후기성도가 더 "정통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도 각 교파마다 "정통성"을 가긱 달리 해석한다. 교리에 의한 배제는 실제 여러 기독 교파가 기독교의 견해는 통일된 단일의 견해가 아니라는 것을 보면서도  통일된 단일의 견해로 추측한다. 교리에 의한 배제를 적용하는 자들은 종종 두가지 부류만을 , 즉 자신들의 교리와 일치하는 자들과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교리와는 다르면서도 여전히 기독교인인 세 번째 부류가 없다면 독자적인 기독교 교파로 이루어진 가족이란 개념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후기성도 교리는 성서시대 기독교나 역사적인기독교에 비추어 보아도 너무 이상하여 후기성도의 교리에 아량을 보일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곤한다. 이러한 근거로 가장 자주 비난 받는 후기성도의 신성화 교리와 신성화 교리에서 비롯된 신(gods)의 복수성에 비추어 보아도 이 주장은 역사적인 면민한 검토 앞에 견디지 못한다. 초기 기독교 성인과 신학자, 훗일의 희랍정통주의자들과 현대 개신교 복음 전도자와 심지어 시 에스 루이스까지 신성화 교리를 믿는다고 공언해왔다. 경전 자체도 여러 "신"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신(gods)을 성부, 성자,성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경전과 고대 및 현대 정통 기독교인들이 이 용어를 "다신론"의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량을 보일 수 있다면 이와 비슷하게 후기성도들에게도 아량을 보여야 할 것이다. 경전이 gods 를 비 궁극적인 존재로 뜻하는 용어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리고 초기 교회와 그리스도가 그럴 수 있었다면, 후기성도가 똑같은 용어를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한다는 이유  때문에 비기독교인으로 매도될 수 없다.

 다시 한번 본인은 이 교리가 참되다고 확실히 믿지만 이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본인은 단지 비난할 여지가 없는 다른 정통 기독교인들이 후기성도들 보다 훨씬 전에 신성화 교리를 믿어왔으며 이 교리를 참된 기독교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묵인해 왔다는 사실을 주장할 뿐이다. 후기성도에게도 공정한 대접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


               - 목 차 -

 [3. 인신공격에 의한 배제]

 [7. 교리에 의한 배제 : 성삼위]

  [서문]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8. 교리에 의한 배제 : 기타 ] 

 [1. 단어정의에 의한 배제] 

 [5. 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9. 결론 - 노트 -  번역후기]

 [2. 허위제시에 의한 배제]

 [6. 교리에 의한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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