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교부 이후
韓國宣敎部 以後


한 인 상

 

1962년 7월 초대 한국선교부장의 임명을 받고 Gail E. Carr 선교부장 내외분이 한국에 오셨다.

이리하여 북극동 선교부에 예속 되었던 한국지방부는 한국선교부로 승격된 것이며, Carr 초대 선교부장을 중심으로 현 삼청지부(당시 중앙지부)에 임시 본부를 설치했었다.

1962년 7월 8일에는 Carr 부장 일행과 함께 내한한 북극동 선교부장 안드루스 부장의 감리하에 휘문고등학교에서 한국 지방부 대회가 있었고, 이 모임에서 안드루스 북극동 선교부장은 한국 선교부의 독립 및 초대 선교부장에 게일 이 카 부장이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대관장회의에서 보내진 공문을 인용하여 발표했다.

 

한국 지방부대회시의 한국 선교부장단
지방부장단 평의원 및 각 지부장단 [1963.9.29]

 

이로서 무려 5년여를 동고동락하던 안두르스 부장은 정말 한국 선교부를 떠나게 되었고 하와이 인 아내와 즐겨 부르던 알로하를 한국 성도들이 오래 두고 추억하게 했다. 세계 제2차 대전시에는 B-24 중폭격기의 조종사이기도 했던 큰 체구의 영국식 신사 안드루스 부장은, 이로부터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1959년 8월 31일 당시 한국 지방부장이셨던 김호직 박사님께서 별세하신 뒤로는 계속해서 한국의 관리선교사가 지방부장을 겸임했었고, 카 선교부장이 취임했을 때는 아담스 장로가 지방부장을 하고 있었다.

비록 일부분이기는 했으나 한국에서 선교사생활을 하면서 한때는 관리선교사까지 맡았던 카부장은 즉시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기구정비를 서둘렀고, 샐러스 장로를 제1보좌에, 버틀러 장로를 제2보좌에 임명했다.

초창기의 선교사였던 카 부장에게 한국과 한국선교부는 결코 낯설지 아니 하였고, 더구나 선교부장으로서의 귀환을 원했던 소망이 이루어진 기쁨으로 하여 그는 온갖 열의를 다하였다.

 

1963년 9월 지방대회시 선교부 강당에 모인 회원들

 

한국 도착 2개월여 후인 동년 9월 당시 요정이었던(구 백운장(白雲莊) 청운동 7번지 소재 임야를 매입함과 동시 재단법인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구성 그 초대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로써 지방부 본부였던 중앙지부는 삼청지부로 명칭을 바꾸었고, 본부는 청운동 7번지 현 선교본부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처럼 분주한 틈에서 번역실은 작업을 계속했고, 일단 재정비된 기구로 경전 번역 및 소책자 번역을 진행해 갔다. 이미 이때 몰몬경과 교리와 성약은 몇 차례의 손질을 끝내고 있었던 것이다.

1963년으로 접어들면서 선교부는 주로 책자 번역 및 교회 조직 강화에 주력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1963년 7월에는 한국 지방부 평의원의 조직을 보았고 이충길 형제, 김용태 형제, 금바울 형제, 김복경 형제, 김동모 형제가 초대 평의원에 임명되었으며 현 장로정원회 회장인 김석모 형제가 초대 장로 모임의 회장으로 발탁되었다.

이로써 한국 선교부와 지방부는 가장 힘든 역사의 길을 걷는 작업과 기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1963년 10월 부터는 부산 동구지부의 개척이 시작되었고, 수정동 658번지 10호에 부산 동구지부를 정하였다.
1963년 12월 21일 현 한국 선교부장단 제2보좌이신 이호남 형제와 박연순 자매의 결혼식이 삼청에서 있었고 선교부장이 그 주례를 맡았다.

이렇게 해서 이때까지 교회에서 탄생한 몰몬 가족은 한국의 첫 가족이었던 홍병식 형제님 부부를 필두로 여섯 번째의 가족이었다.

 

1963년 7월 동부지부 기공식을 마친 후의
루스 형제와 노동 선교사들



1963년 5월 한국 선교부의 건축담당으로 Roos 형제께서 내한 하시었고, 곧 7월에는 건축 선교사로 김상호, 윤재철, 김명웅, 남영진, 김성규, 김형표의 제 형제를 부르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비로소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서울 동부지부의 건물이 착수되었고, 그 후로 사정에 의거 김성규, 남영진 형제가 건축 선교사를 그만 두었고, 얼마 뒤에는 김형표 형제 마저 그만두었으며, 김성문 형제(현재 복음 선교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어 1964년 2월 10일, 한국 선교부 조직 이래 최초로 필자가 한국 성도로서 2년의 복음 선교사의 부름을 받고 대구로 더났고, 과연 한국인 선교사가 효과적이겠느냐를 성도와 교회 지도자들은 주시했다.

 

1966년 12월 22일 칸타타 "거룩한 별"을 끝내고

 

여기서 먼저 이때까지 전 한국의 교회 지도자 및 성도들의 관심사였던 몰몬경의 이야기를 여기 첨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몰몬경은 한국에 교회가 들어서면서부터 착수되어 여러 차례 여러 번역사의 손을 거쳐 숱한 고난을 겪었고 완전히 완성하지 못한 채 공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해 10월 필자는 몰몬경 번역의 책임을 맡고 대구르 떠나 서울로 와서 번역에 착수했다.

둘째번 한국인 선교사였던 황종섭 형제가 부름을 받은게 1963년 6월 15일, 이리해서 한국인 선교사는 두명으로 불었고 둘은 여러 선교사틈에서 부지런히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때 선교부의 움직임중 특기 할 사실은 차차 한국선교부 한국지방부 산하의 전 지부장을 한국 성도로 대치해 갔다는 점이다.

 

1967년 3월 12일 이반스 사도의 방한

 

1964년 4월 26일 브라운 부 대관장님과 힝클리 사도님에게
카네이숀을 선사하는 유치원 원아들



1963년 11월에 한국인으로서는 김호직 박사님에 이어 두 번째로 정대판 형제가 한국 지방부에 임명되었다. 1964년 8월 대회 때 해임, 그의 제1보좌였던 이호남 형제가 지방부장 자리를 맡았다. 성장에 따르는 온갖 고난과 진통의 값을 치르면서 허허 벌판에 기초를 놓는 힘든 작업이 이렇게 계속된 것이다.

1965년 7월 당시 Carr 선교부장의 해임 통보가 한국 선교부에 날라들었다. 따라서 그의 해임으로 현 선교부장이신 스펜서 제이. 팔머 부장이 결정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막 일을 시작한 자리에서 더 오래 머 머물고 싶다는 간절한 요구를 달래면서 Carr 부장은 여장을 꾸몄고 하루 하루 선임 부장을 맞을 차비를 차렸다.

1965년 8월 5일은 또 하나의 역사의 날이었다. 팔머 선교부장님의 가족(팔머 부장, 팔머 자매, 드와이트, 제네트, 제임스) 다섯명이 한국 선교부에 도착한 것이다. 신구 선교부장이 인계 인수 사무를 집행할 당시 한국 선교부 산하에는 지부가 7이었다. 그러니까 초대 선교부장 내한 이래 정규 지부가 3이 새로 생긴 셈이된느데, 원래 동부와 동대문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팔머 선교부장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 이미 한국에는 그의 소개가 잘 되어 있었다. 학자요, 교수로서의 그의 능력과 인품을 한국 성도들은 높게 생각했고, 사실 그러한 이들의 생각은 틀림없는 것이었다. 치밀하고 분명한 성품은 곧 한국 성도의 신뢰를 샀으며 10여년전 한국에서 군목으로 일한 경력을 십분 활용, 또한 미국에서 연구 수집한 한국 선교부에 관한 온갖 재료를 토대로 바로 한국 선교부라는 커다란 조직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귀국을 일년 앞두게 된(만일 정상의 임기를 마친다면) 팔머 부장은 그간 교회의 대 사회 지위확립에 부심하면서 연소자에게 보다는 기혼자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정책을 택해 일 해왔다. 초대 선교부장의 이한 이전에 완수될 것으로 알았던 몰몬경 출판은 1967년 3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을 보았다. 그리하여 몰몬경 출판이라는 비중 높은 역사가 1967년 위에 수놓아진 것이다.

내한 이래로 계속 지역 발전과 지부 확대에 관심을 두도 일해온 결과 현재 한국 선교부 산하에는 8개 지부와 4개지역이 모임을 갖기에 이르렀고, 일하고 있는 65명의 선교사 가운데는 8명의 한국인 선교사가 끼어있다.

현재로는 지역의 경우를 제외하면 지부장단 및 지방부장단은 한국인 성도로 구성되어 있고, 선교부 역사상 최초로 이호남 형제가 선교부장단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2대 선교부장인 팔머 부장의 방침이 성도의 양의 확대가 아닌 질의 향상에 있었던 것만큼, 한국 선교부의 대 사회 지위는 어느 정도 뚜렷해졌다.

이 밖에도 교리와 성약 번역의 최종 정리라든지 교회내의 소년단 조직(1966년 4월 10일) 등은 성장의 표시라하겠고, 1967년도 5월호부터 성도의 벗을 외부 인쇄소에서 조판 인쇄하게 된 것 역시 1967년도의 수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간 팔머 자매가 맡고 있던 상호부조회 회장의 자리를 작우찬 자매가 맡게 된 것도 금년 본 선교부의 업적으로 간주하고 싶다. 더구나 현재 부산지부의 신축 건물의 허가가 나와 있고, 서울 동부에는 지난 3월에 개원한 일문 유치원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 지방부장단제1보좌)

dia_pink.gif 한국 선교의 시작 - 부산 지부
dia_pink.gif 최초 교회 조직 한국 지방부
dia_pink.gif 한국 교회 50년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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