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스톤 교(橋)

                                                - 구자옥 -

 

    太陽을 
    목늘여 살아온 奴隸의 信仰이라 하자 
    長霖의 歲月이 흘렸거늘 
    이 潺潺(잔잔)한 가슴위에 
    미워 할 무엇이 있었다는 게냐?   

1) 바람이 불어온다 
    雪山의 어느 高地에서 보내는 
    念願이었을까   

2) 駐屯軍의 B-29가 낮게 날고 
    砲口를 가늠하는 兵士의 언저리엔 
    그 
    6仴月에 逃走하던 記憶이 
    가물대는데 
    言語를 喪失한 
    다리는 
    에뜨랑제 
    참으로 빛나는 黎明의 
    鍾소리이고 싶었다.   

3) 하여, 
    宿願의 江물은 歲月마냥 
    흐르는데, 
    누가 외는가, 저 서러운 黙示錄의 
    일절은 ..........   

4) 텅빈 하늘, 그 땅에 서서 
    다리는 
    終日을 서성대는 아침 안개를 
    벗어나고 싶었다.   

    因習에 절은 코리아의 겨울이면 
    앙상한 몇 초리의 노래를 하며 
    열음하지 못하는 
    꽃 앞에 서서 
    꽃 앞에 서서    

    씨앗처럼 펴올 오늘의 理由를 
    證言하고 
    다리는 밤마다 呻吟한다. 
 

5) 非常의 瞬間부터 칼끝은 
    날랜 
    꽃대위에 
    번쩍이고 
    푸른 制服의 血脈은 
    鍾소리가 울리는 죽음 밑바닥의 
    외마디 웃음을 쓸어안아라 
                       쓸어안아라.  

6) 숱한 걸음이 오가고 
    歲月이 넘는 
    거기는 
    喊聲 마붓기는 L-19의 날개가 
    아니었는데    

    北風을 맞는 
    가슴들엔 
    기다림의 땀방울이 서러지고 
    北 에 막혀 돌아선  
    忍苦의 걸음   

7) 다리는 울지 않았다. 
    應分의 歸結을 豫感하는 
    絶頂에 서서 江을 달래고 
                    울음을 달래고 
    始終을 바램으로 꽃피는 
    콤파스 그 위   

8) 結局은 
    너와 내가 
    이 후미진 雪山의 한 地點에서 
    對決하려는 
    서로가 사랑하지 못한 歲月을 
    이제는 
    痛哭할 수도 없는 
    아픔이여!   

    太陽은 
    늘 우리 信仰의 노랫가락 이었거니 
    사랑하고 미워 할 
    모든 씨앗을 거두어 
    내 
    平溫한 바다의 安息日 날은 
    멀었는가?   

    모든 善良한 죽음을 거두어 
    鍾 소리 같이 
    내 
    豫鳴에 울리어갈 時間은 
    멀었는가.    

 

         (이 시(詩)는 강원도 인제와 원통사이에 있는 강(합강)에 놓여진
             다리 이름으로, 육군 2사단 17연대의 부대식당 벽에 걸린 것으로
             이 부대에서 근무한 부대원의 작품이다.
             다리의 유래는 6.25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 장군이었던 '리빙스톤'이
             이 강에서 북한군과 인제 방어진을 사수하려고 치열한 격전을
             치루다가 전사한 것을 기념하여 다리가 놓여지자 이 장군의 이름을
             따서 <리빙스톤교>라고 작명을 했다....지금도 이 부대 식당에
             그대로 걸려있는지.....)


남편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리빙스턴교'를 아시나요?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에는 소일평과 덕산리를 연결하는 길이 150m 넓이 3.6m 규모의 다리하나가 놓여있었다.1957년 2월 인제 및 기린면 일대 3만여 주민의 숙원이었던 다리가 놓여지게 된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이 다리의 이름은 '리빙스턴교’ 원래 이 다리는 아이빔에 목재를 깔아 가설했으나 노후해지자 1970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길이 148m 폭과 높이가 각각7m인 다리로 다시 놓였다. 다리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이름만은 그대로 ‘리빙스턴교’로 불리고 있다.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며 험준하고 깊은 인제와 원통을 두고 입대 장병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오지에 영어로 돼 있는 '리빙스턴' 이라는 이름의 다리는 한복에 구두를 신은듯 지역과 어울리지 않은 이상한 이름이다.

어떠한 이유로 이곳 다리에 영어 이름이 붙여지게 됐을까?

1951년 7월 여름 한국전쟁이 발발한 1년 후 인제지구의 한미 합동 작전 중이던 리빙스턴 중령(대대장)이 이끄는 포병부대는 작전상 후퇴를 하게 됐다. 하지만 홍수로 범람하는 급류를 건너지 못하고 지체하던 리빙스턴 중령의 부대는 적 기습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인제에서 2km 위에 있는 북소양강 상류인 합강정(合江享) 근방에 매복하고 있던 적이 기습공격을 해온 것이다. 리빙스턴 중령 역시 중상을 입었다.급히 야전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받던 리빙스턴 중령은 치료 도중 사망하게 됐고 임종 직전 부인에게 다리를 놓아 줄 것을유언으로 남겼다.

"항복하여 살길을 찾느니 군인답게 싸우다 죽자"라는 말을남기고 이곳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리빙스턴과 부대원들! 조그만 다리 하나만 있었어도 부대원들은 강을 건널수 있었으나 결국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부대원을 잃고 그 자신또한 목숨을 잃었다. 리빙스턴은 “이 강에 다리만 있었더라도 전투에서 숭리를 할 수 있었던 건 물론이고 수많은 아군의 인명 피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죽으면 고향에 있는 내 아내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사재를 털어서라도 꼭 이 마을에 다리를 만들게 해달라’는 한서린 유언을 남겼다.

리빙스턴의 유언은 곧 그의 본가에 전해졌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을 찾은 리빙스턴 부인은 남편의 유언에 따라 다리를 만들었고, 리빙스턴 중령의 이름을 따 '리빙스턴 교’라고 명명하게 됐다.

한국 땅에 자유와 평화를 심어 주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용감히 싸우다 산화한 리빙스턴 중령.그의 고귀한 희생정신은 '리빙스턴교'와 함께 살아 숨쉴 것이다.

출처: 전우와민족
http://www.junwoominjok.net
 

리빙스턴교 유래를 아십니까?

사람은 죽을때 사고사가 아닌 경우 대부분 유언을 남긴다
그런데 특별한 유언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우언을 한 사람이 있다면 믿겠는가?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합강리 소일평과 덕산리를 연결하는 다리가 리빙스턴교다
이다리 이름이 영어로 돼있어 이상하게 생각하는 쌍호부대 전우는 없을 것이다

『1951년 7월 한국전쟁 중반 인제지구의 한미 합동 작전중이던 리빙스턴중령(대대장)이 이끄는 포병부대가
작전상 후퇴를 하게 됐다 하지만 홍수로 범람하는 급류를 건너지 못하고 지체하던 리빙스턴 중령의
부대는 적 기습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게됐고 리빙스턴 중령 역시 중상을 입었다 급히 야전병원으로 후송
돼 치료받던 리빙스턴 중령은 치료 도중 사망하게 됐고 임종 직전 부인에게 다리를 놓아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리빙스턴 부인은 남편의 유언에 따라 다리를 만들었고 리빙스턴 중령의 이름을 따 리빙스턴교 라고 명명하게 됐다 처음에는 교량 사설공사를 미군부대에서 맡았으나 비가 많이 온다는 이유로 중단했고 이후
70연대 초 한국군 3개중대병력을 투입해 가설했다 공사 초기에는 아이빔에 목재를 깔아 가설하고 붉은
색칠을 해 붉은 다리로 불렸다 피부색도 다르고 얼굴도 한 번 본적없는 한반도의 이작은 나라 한국 땅에
자유와 평화를 심어 주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용감히 싸우다 산화한 리빙스턴 중령 그의 고귀한 희생정신은 리빙스턴 교와 함께 언제나 살아 숨쉴 것이다』

이글은 07년 7월 4일 국방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쌍호부대에서 근무한 전우들은 다 알고 있을겁니다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리빙스턴 중령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리빙스턴교의 의미를
우리는 깊이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고귀한 다리를 우리는 많은 시간을 오고가고 했습니다
흐르는 물은 다시오지않지요 그러나 엣전우들은 다시 쌍호부대의 정신을 계승하게 될 것입니다
쌍호부대 전우여러분 늘 건강하세요 !

엣전우 박갑수 드림  [17연대 카페에서]


인제 리빙스턴교 유래 새발견

호클리 美2사단 6·25전쟁 재향군인회장

 

  인제읍 합강3리와 덕산리를 잇는 '리빙스턴교'의 유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은 상판이 없어지고 교각만 남아 있지만 속칭 '빨간다리'로도 불렸던 리빙스턴교의 유래는 미군 리빙스턴 중령이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밀려 후퇴를 하다 인제읍 합강3리에 이르러 인북천을 건너지 못해 많은 희생을 치렀던 것으로 전래되고 있다. 이 때 부상을 당한 리빙스턴 중령은 당시 인북천에 다리가 없어 희생이 컸음을 안타까워하며 사비로 리빙스턴교를 세웠다는 게 알려진 정설.

 그러나 최근 랄프 호클리 미2사단 6·25전쟁 재향군인회장이 "리빙스턴은 중령이 아니라 당시 미 제196포병연대 리빙스턴 소위였다"고 밝힘으로써 "리빙스턴교의 유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호클리 회장에 따르면 미 제196포병연대는 51년부터 54년까지 인제에 주둔했으며 부대 소속 리빙스턴 소위는 52년 9월 22일 양구 펀치볼(현 해안면) 북동쪽 854고지에서 북한군에 의해 2명의 병사와 함께 살해당했다.

 그는 또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 미 10군단 포병부대는 포격연습장을 인제에 설치하고 리빙스턴 소위를 추모하기 위해 '리빙스턴 포격연습장'이란 이름을 붙였으며 이 후 포격연습장이 폐쇄된 후 자연스럽게 다리로 옮겨져 리빙스턴 소위를 추모하게 된 것 같다"고 증언했다.

 한편 리빙스턴추모위원회는 28일 오전 11시 인제읍 합강3리 리빙스턴광장에서 유족대표 와 미 재향196포병대원, 군 장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거행할 예정이다.

인제/정연재 yjjeong@kado.net

강원도민일보 기사 : 2005-10-22


토마스 리빙스턴 소위 추모행사

오늘 10월28일 부대앞 리빙스턴교에서 추모행사 개최

오늘 인제읍서 리빙스턴 추모행사

6.25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자유수호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토마스 리빙스턴 소위와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길이 새기는 `리빙스턴 추모행사'가 28일 오전 인제읍 합강리3리 리빙스턴 추모비광장에서 개최된다.

 이번 추모식에는 사회기관단체장 및 군 부대장, 리빙스턴 가족및 재향군인회 196포병대원, 미 제2사단 군악대 및 의장대 등 170여명이 참가한다.
< 인제 전상규기자 /2005.10.28>

내무반 동료들과 - 인제 한강지류 합강 -우리 전우들의 빨래터 겸 놀이터 겸 목욕탕(?)
이 강이 합강정이며 바로 밑에 리빙스턴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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