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몬교의 오디세이


뉴스위크, 2005.10.21
[통권 702호, 64-71쪽]

ELISE SOUKUP 기자


 

한 젊은이의 꿈이 모르몬교의 모태가 됐다. 창시자 조셉 스미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살펴본 모르몬의 탄생에서 현재까지.

The Mormon Odyssey

조셉 스미스 2세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1820년의 어느 봄날 뉴욕주 북부. 개신교 부흥회 열기가 뜨거웠던 시절, 복음주의적 열정으로 너무 달아올라 ‘화재 지구’라고 알려진 지역이었다. 14세의 스미스는 가난했지만 기대는 하늘을 찌르던 집안 출신이었다. 할아버지는 집안에서 종교계에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오리라 예언했다. 아버지는 가족이 구원받는 내용의 예언적 꿈을 연달아 꾸었다. 고모는 예수로부터 직접 치료받았다고 주장해 지역의 유명 인사가 됐다. 따라서 스미스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당연했다. 어머니가 최근 장로교에 등록했는데 자신도 그래야 할까. 아니면 아버지처럼 주류 교회 밖에 머물러야 할까.

집에 있던 성서를 펼쳐들 때 야고보서의 한 구절이 천둥처럼 스미스의 머리를 때렸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영감을 얻은 스미스는 숲으로 들어가 기도를 했다. 기도를 시작하자 어둠의 세력이 그를 덮쳤다. 그때 하나님이 직접 중재에 나섰다고 스미스는 전했다.

“매우 놀라 긴장한 순간 바로 내 머리 위로 빛의 기둥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 빛은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며 서서히 내려와 내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고 스미스는 회상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등장해 놀라운 메시지를 전달했다. 세상의 어떤 교회에도 가입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들은 오래전에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으로부터 멀어졌으니.

스미스의 추종자들에게 ‘최초의 시현(示現)’이라고 알려진 이 경험은 결국 세상에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켰다. 모르몬교,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현재 1200만 명이 넘는 신도를 거느리며 스미스 자신이 시작한 열성적인 선교의 전통 덕택에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기독교 종파로 손꼽힌다.
예언자이자 일부다처주의자, 최면술사이자 민중 선동가, 성인이자 죄인. 반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는 토박이로서는 미국의 종교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며 가장 매혹적 인물임에 거의 틀림없다.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제 탄생 200주년을 맞아 스미스, 그가 세운 종교,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고찰이 활발하다. 모르몬교는 스미스의 인생과 업적을 일반에 개방해 연구토록 했다. 초기 박해를 당한 경험 탓에 종종 방어적이고 폐쇄적이던 모르몬교로서는 새로운 태도 변화다. 지난 여름 브리검 영 대학은 미국 인문지원기금의 후원으로 6주간의 다종교 세미나를 주최했다. 그리고 스미스의 문서들도 이제 통합 발간된다.

스미스의 시대는 현시대와 상당히 흡사하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21세기 초 몇 년간과 특히 비슷한 울림을 갖는다. 우리들처럼 그는 복음주의적 열정, 짙은 애국심, 경제적 변혁, 첨예한 정치적 분열, 외세가 조국에 미치는 해악을 우려하던 시대에 살았다. 스미스의 가르침은 미국 역사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하던 찰나(1812년 미·영 전쟁 성공의 여파로)에 미국을 존재의 중심에 올려 놓았다.

공화당 소속 매사추세츠 주지사이자 2008년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미트 롬니로부터 상원의 민주당 지도자인 해리 레이드에 이르기까지 모르몬교도들이 미국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갈수록 두각을 나타낸다. 그것은 정계와 포춘 500대 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전통적으로 보수지만 실제로는 종교 우파에 속하지 않는 모르몬교는 동성 결혼과 낙태를 반대한다(엄마의 목숨이 위험하든가 강간이나 근친상간의 경우는 제외).

그러나 올해 초 안락사 논쟁을 촉발했던 식물인간 테리 시아보 사건에서 모르몬교는 많은 보수 기독교도들과 노선을 달리했다. “신도들은 죽을 목숨을 합당치 않은 수단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언론 매체에 말했다. 모르몬교도인 지도급 인사들 간의 정책적 견해차 여지도 있다. 롬니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반면 오린 해치 상원의원(유타주)은 지지한다. 한편 죽음과 가족에 관한 모르몬교의 전통적인 관점을 등에 업고 모르몬교는 개도국 세계에서 급속히 세를 넓혀간다. 세계적으로 반미주의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몬교는 미국 내에서보다 개도국에서 더 빨리 성장한다.

그것은 모두 10대 소년 조셉 스미스와 함께 시작됐다. 모르몬교도들에게 스미스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모든 교리는 오로지 그분에게서 나온다”고 12사도 정원회의 달린 H 오크스 위원은 말했다. 12사도 정원회는 모르몬교의 최고 통치기구 중 하나다. 모르몬교의 특성(성스러운 사원 의식, 개인적 계시, 십일조, 일부다처제의 역사)은 스미스에게서 직접 물려받은 유산이다. 높은 도덕적 기준, 가족간의 유대, 지역사회 봉사에 대한 강조도 마찬가지다. 모르몬주의는 유대관계·안정, 그리고 지상뿐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보상의 약속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에 호소한다.

스미스는 자신의 증언을 믿으려면 믿음이 비약적으로 커져야 한다는 점을 알았다. 스미스는 임종 직전 “내 역사를 믿지 않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겪은 일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으리라.” 최초 시현 3년 후 스미스는 미주 대륙 출신의 고대 예언자인 모로니라는 이름의 천사가 그에게 전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하나님은 그가 새로운 성서를 내놓기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성서는 아메리카에 살았던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역사뿐 아니라 예수가 부활한 후 아메리카를 방문했을 동안의 이야기가 담긴 몇 개의 금판이다. 그 판들은 스미스의 집 근처 언덕에 묻혀 있었으며 그 옆에 우림과 툼밈이 함께 있었다. 우림과 툼밈은 갑옷 가슴받이에 부착된 돌들로 미지의 언어인 ‘변형 이집트어’로 쓰인 문장을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모르몬경이라고 알려진 그의 번역은 그 종파의 별명으로 굳어졌으며 그를 온 나라가 주목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가 갈구하던 ‘진정한 교회’는 여전히 얻지 못했다. 부활한 예언자와 사도들이 1829년 찾아와 마침내 지상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재구축하기 위한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했다고 스미스는 전했다. 그는 1830년 4월 6일 뉴욕주 페이어트에 교회를 공식 설립했다.

주변 지역으로 파견된 그의 선교사들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서 행운을 만났다. 그들은 저명한 캠벨교 목사인 시드니 리그던과 그의 신도 약 100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신자 수를 배로 늘렸다. 1831년 스미스는 추종자들에게 커틀랜드나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로 이주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잭슨 카운티를 가리켜 성경에 나오는 에덴 동산 자리며 장차 시온의 땅이라고 말했다.

신도들의 이 같은 갑작스러운 유입을 미주리주에서 환영할 리 없었다. 현지인들은 모르몬교도들을 문화·정치·경제적 위협으로 여겼다. 그 후 5년 동안 모르몬교도들은 폭도들에게 쫓겨 잭슨 카운티에서 클레이 카운티로, 다시 미주리주 파 웨스트로 이동했다. 편견이 커지자 릴번 보그스 미주리 주지사는 1838년 ‘근절 명령’을 내렸으며 스미스와 추종자들은 일리노이주 나우부로 도망갔다.

그곳에서도 스미스의 정치활동이 점차 확대되자(그는 현지 민병대의 지휘관, 치안판사, 미국 대통령 후보였다) 위험한 신정(神政)이 자라난다며 나우부의 비모르몬교도들이 들고 일어섰다. 스미스는 한 적대적인 활자매체의 파괴를 명령한 후 붙잡혀 투옥됐다. 스미스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간다”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말했다. “그러나 여름 아침처럼 평화롭다. 내 양심은 하나님과, 모든 인간에 대해 한 점 부끄럼도 없다.” 1844년 6월 27일, 한 떼의 폭도가 감옥에 쳐들어가 스미스와 그의 형제 하이럼을 쏴죽이고 다른 모르몬교도 두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스미스의 나이 38세였다.

그의 교회는 살아남았다(추종자 브리검 영이 남은 신도 대다수를 서쪽 유타주로 이끌었던 덕이 제일 컸다). 그리고 161년이 지난 지금 모르몬교는 번창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신비로 남아 있다. 모르몬교의 중심 교의는 비신도들에게는 혼란을 주는 듯하다(심지어 말 그대로 믿기 어렵다). 모로니라는 이름의 천사? ‘중혼’? 부활한 예수가 신세계를 방문했다고? 잠재적인 개종자들뿐 아니라 스미스의 주장을 검증하는 역사가와 과학자들도 그런 질문을 던진다.

모세에게 천사가 나타났다는 불타는 가시나무 덤불은 방사성 탄소로 연대를 측정하거나 해부할 만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스미스와 추종자들은 현대적인 역사 분석이 가능한 문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에서 스미스는 복잡한 인물로 드러난다. 교회의 초기 개종자들은 모르몬교에 관해 선교사들에게 배운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초기 개종자들은 스미스를 직접 만났을 때 때때로 큰 충격을 받았다. 스미스는 배우지 못했고, 화를 참지 못했으며, 권력을 즐겼다. 그리고 개종자들에게 아마도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가끔 스미스의 모험사업이 실패했다는 사실이었다. 쉽게 말해 항상 예언자 같지는 않았다.

“스미스가 살아 있던 시절에도 그에 관해 중립을 지키기가 대단히 어려웠다”고 마크 셰러는 말했다. 스미스 사후 브리검 영 대신 스미스의 아들 조셉 3세를 따랐던 분파인 ‘그리스도의 공동체’ 소속 교회 역사가인 셰러는 이렇게 덧붙였다. “스미스가 물 위를 걷는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엄청난 사기꾼이라고 믿었다.” 스미스는 수십 건의 소송에 연루됐다. 인생 말년에 이르러서는 약 30명의 부인, 엄청난 빚이 있었고 적은 수백 명이었다. “내가 완벽하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소.” 그는 추종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내가 가르친 계시에는 잘못이 없소.”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지난해 분자생물학자이자 모르몬교 주교를 지냈던 사이먼 G 서더턴은 자신의 저서 ‘사라진 부족 잃기’(Losing a Lost Tribe)에서 가능한 DNA 조사 결과를 동원해 미국 원주민은 아시아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기원전 6세기에 이스라엘인 가족이 신세계로 건너가 결국 두 개의 별도 문명을 꽃피웠다는 모르몬경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서더턴은 “진지하고 순수한 연구가 수십 년간 진행됐지만 모르몬경에서 말하는 문명이 존재했다는 믿을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썼다. 물론 모르몬교 학자들은 그런 결론을 인정하지 않지만 일부는 모르몬경의 지리에 관한 보편적인 이론들을 재검토하는 중이다. 그리고 많은 독자가 앞서 가정했듯 그것이 서반구 전반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멕시코 남부의 지협 근처에서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교회는 적당한 선에서 내부 토론을 장려한다. 회의(懷疑)는 신앙이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길 바라신다고 믿는다. 쉽게 얻으면 쉽게 잃고, 힘들여 얻으면 오래 남는다”고 고든 B 힝클리 회장은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는 모르몬교도들이 믿고 따르는 현직 예언자로 신의 계시에 따라 교회를 이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불신을 표하고 교리나 지도자에 반대하는 설교를 활발히 하는 사람들을 모르몬 교회는 용인하지 않는다.

1993년, 6명의 모르몬교 학자들(징계 처분된 달을 가리켜 ‘9월의 6인’이라 불린다)은 이른바 그릇된 역사관과 여성주의적 가르침을 유포했다는 등의 문제로 교회 법정에서 신문을 받았다. 이들 중 5명은 파문을 당했다. 한편 1970년대 말 모르몬교 지도자들은 교회 기록의 접근을 제한해 승인받지 않은 교회사(史) 해석을 방해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일부 고위층은 홍보 담당자들이 작성하는 내용 외에 우리의 역사가 달리 없다는 쪽을 선호하는 듯 보였다”고 당시 교회사 부서를 담당했던 레너드 J 애링턴은 썼다.

지금은 통제가 한결 느슨해졌다. 교회는 언제나 질문받기보다 정통교리를 설파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리고 올해 기념행사에서 남 부끄러운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예컨대 교회가 후원하는, 스미스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 전시회에서도 일부다처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교회 문서를 숨기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르몬교 역사가이자 ‘조셉 스미스, 구르는 거친 돌’(Joseph Smith: Rough Stone Rolling)의 저자인 리처드 부시먼 컬럼비아대 명예교수는 최근 고위 모르몬교 지도자들이 포함된 청중 앞에서 두 차례 강연하면서, 스미스의 삶에 관해 몇 가지 다루기 힘든 문제들을 언급했다.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지 모르지만 어쨌든 감수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청중들은 강연 내용을 좋아했다. 이번 강연을 통해 우리 문제를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또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

모르몬교의 교리나 실천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는 바로 일부다처제다. 스미스는 아브라함과 다른 여러 구약성서 인물들처럼 여러 명의 부인을 취하라는 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역사가들은 스미스가 1833년께 집에서 일하던 16세 소녀를 둘째 부인으로 맞았으며 그 후 10년 동안 부인을 30명 정도 더 들였다는 사실에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그 결혼을 하나님이 허락했다고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스미스의 동료 올리버 카우드리는 그 첫 번째 중혼을 ‘더럽고 추잡하며 불결하다’고 말했다(카우드리는 나중에 교회에 다시 합류했다). 모르몬교는 일부다처제를 하나님의 계시로 지지하지만(나중에 취소됐지만) 스미스의 동기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직자로서 잘못된 행동을 했다. 간통을 저지르는 한 가지 방법이었을 뿐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통을 저질렀다”고 셰러는 말했다. 사실 셰러의 교회는 스미스가 실제로 일부다처제를 실행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부인했다.

스미스 사후 유타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공개적으로 실행됐다. 가장 성행할 때는 한 동네에서 성인 중 최소 25%가 일부다처제 가정의 일원이었다. 1890년 연방정부가 강하게 압박하자 당시 예언자였던 윌퍼드 우드러프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도 모르몬교에서 빠져나간 몇몇 분파들은 여전히 일부다처제 생활방식을 따르지만, 모르몬교는 단호히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모르몬교 교리는 일부다처제 결혼 중 일부는 천상의 왕국(하늘에서도 가장 높은 층)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을 견지한다. 스미스는 ‘전생’에서 영혼으로 존재했던 인간이 지구로 와서 육체를 얻고 시험을 당한다고 가르쳤다. 모든 사람은 죽으면 세 가지 왕국 중 한 곳에 가는데 어디에 가느냐는 덕성의 수준에 달려 있다. 가장 덕이 높은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며 그 가족은 영원히 살고 신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이 그랬듯 말이다. 제5대 모르몬교 예언자 로렌조 스노는 이렇게 교리를 단적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현재는 하나님의 과거며 하나님의 현재는 인간의 미래다.”

모르몬교의 독특한 교리 중 몇몇 항목은 초기 기독교 교의를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기독교 종파가 모르몬교를 기독교로 간주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모르몬교 교리에는 기독교라 이름 붙일 만한 타당한 근거가 전혀 없다. 기독교의 매우 기본적인 교리를 거의 모두 부인하기 때문”이라고 남부 복음주의 신학교의 설립자 노먼 가이즐러는 말했다. 하지만 신약성서와 모르몬경에 모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후기 성도들에게 다른 종파의 차가운 냉대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사람들이 나보고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말할 때 어이가 없다. 특히 4세기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할 때는 더욱 당황스럽다”고 ‘12사도 정원회’의 일원인 엘더 제프리 R 홀랜드는 말했다.

스미스가 받은 하나님의 계시가 기쁨에 찬 그 최초의 시현으로 끝났다면, 그는 아마도 스스로 신성을 발견했다고 믿는 무수한 구도자 중 한 명으로만 존재했을 뿐 역사 속에 아무런 이름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도록 했고 박해를 견디며 죽음도 불사하게 만들었다. 그 해답 중 한 가지는 스미스 개인의 카리스마를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열세라고 느껴지는 곳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고 부시먼은 말했다. 그러나 스미스를 가장 충실히 따른 다수의 사람들(그들 중에는 미래의 예언자인 영과 우드러프도 있다)은 스미스를 전혀 만나본 적도 없이 교회에 합류했다. “이들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신성을 발견했다고 느꼈지 싶다. 그들은 그 사상을 좇아 지구 끝까지라도 가려고 했다”고 부시먼은 말했다.

그런 자세는 지금도 여전하다. 모르몬교가 구성원들의 일용할 양식과 일상적 관심사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는지 알게 되면 교회의 성공 이유가 보다 확연해진다. 모르몬교도는 세계 어디에 살든 상호 관심사로 연결된 그물망에 속하게 된다. 모르몬교 교리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성직자다. 또 모든 사람은 선행을 베풀고 받아들여도 좋다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는 21세기식 돌봄의 약속인 셈이다.

교회는 ‘구’(區)로 조직된다. 거기서 아이를 갓 낳은 여자들은 식사를 제공받고 이사를 앞둔 가정은 새 집을 구하고 짐을 싸고 푸는 일까지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모르몬교 신자들은 매달 모임을 갖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 소중한 벗이 되어줌으로써 복잡한 일상 속에서 연대감을 형성한다. 이처럼 우리끼리 돌본다는 문화가 생겨난 뿌리는 확실히, 수십 년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도 서부를 향한 긴 여정을 견뎌낸 신도들의 인내에 있다. 그 옛날의 저주가 세월이 무르익으면서 축복이 된 셈이다.

스미스는 여러 도시를 세우고 교회를 지었으며 대통령 노릇을 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일컬었듯 ‘예언자·계시자·현자’로, 자비심을 통해 구성원의 연대의식을 고취시킨 교회 개척자로서 가장 크게 기여했다. 기꺼이 은총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끊임없는 인격 성장의 원천이 되는 낙관적이고 활기찬 스미스의 이상(理想)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메리칸 드림과 닮았다. 지금 전 세계의 1천여만 명이, 한 청년이 뉴욕의 작은 숲에서 스스로 발견했던 깨달음을 자신의 삶에서 찾고 있다.

차진우·이정명jincha@joongang.co.kr
 


 

“우리 믿음의 토대는 그리스도다”


고든 힝클리 회장, 가치관 혼란 시대에 모르몬교가 굳건한 반석이 된다고 강조

'Solid, Strong, True'

고든 B 힝클리(95)는 LDS(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모르몬교)의 현 선지자로서 조셉 스미스가 175년 전 세운 이 교단을 이끈다. 힝클리는 최근 뉴스위크의 엘리스 수쿠프, 존 미첨 기자와 계시(啓示) 경험, 스미스의 유산, 이 교회의 매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셉 스미스와 거의 비슷한 반열에 올랐는데 그와 가깝게 느끼는가?

조셉 스미스를 생각할 때면 경외심 때문에 거의 일어설 정도다. 천사 모로니가 1823년 스미스에게 나타났다. 천사는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이 순박한 소년에게 “네 이름은 온 세상에 선으로도, 악으로도 알려질지니라”라고 말했다. 오늘날 그 예언은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6개월마다 열리는 총회를 개최할 때면 우리는 80가지 언어로, 167개 국가에 방송한다. 이는 기적이다.

주님이 왜 스미스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가 유일한가?

글쎄, 우선 주님이 그를 선택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스미스는 어떤 선입관이나 고정관념 없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깨끗하고, 순수하며, 순진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스미스가 교회뿐 아니라 이 세상에 한 가장 중요한 공헌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가장 큰 공헌은 신성의 본질을 정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미스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봤다. 그분들과 얘기도 나눴다. 그분들은 실체적 존재였다. 그분들은 인간의 형상을 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고, 스미스도 그분들과 이야기했다. 너무도 인간적인 관계였다. 하나님의 본성을 아는 것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위안을 주는 일이다.

어떻게 계시가 당신에게 나타났나? 어떻게 계시를 받는가?

모든 정직한 남녀는 자신의 일과 관련된 계시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한 사람(모르몬교 회장)은 교회 전체에 관한 계시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내 느낌에 그 경험들은 내 의지나 이해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나온 지시와 감명이었다.

일부다처제를 금하고 흑인들이 성직을 맡도록 하는 등 일부 계시는 모르몬교 역사에서 논란을 야기했다. 그런 계시들은 시대 상황을 의식한 전임자들이 내놓지 않았나?

시대 요청에 부응하고, 선지자 자신이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이 선지자의 임무다. 구약성서에 그런 사례가 나온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편협성과 갈등을 어떻게 보는가? 매우 힘든 시대인데.

가증스럽다. 비열하고 씁쓸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형제자매다. 우리는 서로 그런 식으로 대해야 한다.

조셉 스미스 선지자는 당신과 매우 다른 듯하다.

글쎄, 언젠가 데이비드 매컬러프의 책을 읽었다. 매컬러프는 아주 흥미로운 말을 했다.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등등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사는 동안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원래 그런 게 정상이다. 조셉 스미스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았으며, 그 신조에 따라 적절히 처신했고, 여러 문제에 맞섰다.

모르몬 교도들도 기독교인인가?

물론 기독교인들이다. 우리 믿음의 온전한 토대는 그리스도다. 우리 교회의 명칭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들어 있다. 모르몬경은 그리스도의 또 다른 성서다.

모르몬교는 신도들에게 엄격한 생활 규범을 따르게 한다. 그런데도 많은 신도가 모여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는 가치관이 계속 바뀌는 세상에서 산다. 가정은 해체되고, 부모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못 한다. 신도들은 우리 교회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 무엇은 삶의 기준을 제시하고 또 그 기준들을 준수하게 하며 의무와 규정 등등을 말한다. 신도들은 우리 교회에서 어떤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며, 강인하고, 참된 반석을 발견한다. [뉴스위크, 2005.10.26, 통권 702호, 6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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