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16경 (北京十六景)

13. 빠이룽탄(白龍潭)
      <백룡담>

16경

15. 무티앤위 창청(慕田곡長城)
<모전곡 만리장성>

14. 루꺼우쵸(蘆溝橋)<노구교>


베이징(北京) 서남쪽 약 50km 근교에 노구교(盧溝橋)가 있다. 지금까지 800여년의 역사를 갖고있다. 북경시에서 제일 오래된 다리로서 동,서 길이는 266.5메터, 남, 북 너비는 9.3메터이며 모두 백석(白石)으로 만들어졌다. 다리옆에는 청조건륭제가 쓴 "盧溝曉月"이란 비가 세워져 있고 옛날부터 燕京八景의 하나로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또 노구교의 성문이 복원되어 올라갈 수도 있다.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의 발단이 된 즉 중일전쟁의 발단의 노구교사건 때문에 잘 알려진 이 다리는 베이징의 명소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병)Lu gou jiao (웨)Lu kou chiao (영)Marco Polo Bridge.

루꺼우쵸

아치형 교각 11개가 떠받친 길이 266.5㎙ 난간엔 140개의 기둥이 세워졌고, 각각 모양이 다른 사자상이 새겨져 있고 발 밑에도 조그마한 사자가 있다. 몇 번씩 세어보아도 잘 세어지지 않는다는데 정확하게는 486개이다. 1981년에 '盧溝橋史料陳列館'이 개설되었다. 밝은 달이 비치는 노구교의 하얀 모습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북경시의 남서쪽 교외에있는 백색의 돌다리, 난간에는 486개의 사자상과 주석(柱石)등이 있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 '강에는 멋있는 다리가 걸려 있다. 아마 세계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아름다운 다리일 것이다,' 라고 기록할 정도로 아름다운 다리이다. 특히 여기는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 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사자상이 조각된 난간에는 탄환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중일 전쟁 발발 60주년인 1997년 7월 7일 중국과 홍콩,대만에서는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강력한 주장과 시위가 잇따랐다.

베이징에서는 이날 참전용사와 학생,일본의 잔학행위 희생자가족 등 수 천명의 시민들이 지난 37년 7월7일 중일 전쟁의 단초가 됐던 '노구교(蘆溝橋)사건'의현장에 모여 8년간의 전쟁중 사망한 3천5백만 중국인을 추모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류화칭(劉華淸)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웨이젠싱(尉健行)공산당중앙위원이 참석했다.
 

역사적 사건 경위:

항일전쟁시기에 중국인민들은 크나큰 희생을 치르게 되어, 경제는 파탄되고, 현대적 산업과 국민총생산의 면에서도 발전은커녕 오히려 엄청난 후퇴를 하게 된다. 중국의 근대화를 향한 흐름이 또 한번 단절된 것이다.

 부단히 핍박해 오는 일본을 바라보면서, 1935년 봄에 장개석은 내정과 외교.군사.재무와 군사에 대한 각 분야의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일제가 동북지역으로부터 남하하여 내려오는데 대비하여 국제적 지원, 특히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얻어내는 동시에, 화폐를 개혁하고 자원의 절야과 개발로 전쟁물자를 준비하였다. 3년간의 국방계획을 세워 육군을 새로이 편제하고 병역법을 실행하여 신병을 모집하며 군사공업을 일으키는 동시에 군비를 강화하고 전략상의 요충지에 국방공사를 벌였다. 장개석은 일본과의 싸움이 장기화될 경우 광대한 중국영토중에서도 서남과 서북지방이 최후의 결전지가 될 것으로 예견하고, 서남지방의 개발을 강화하여, 서북지역의 국경선 밖으로 통하는 철로와 국도를 건설하였다. 또 '신생활운동'을 통하여 국민정신을 진흥하고 문화재를 보호[특히 고궁박물원의 문화재]하여 서남지역으로 옮겼으며, 대학들을 이전하는 등등의 일을 추진하였다.

 중국국민당이 위와 같은 활동을 하던 시기에 중국공산당은 '9.17사변'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항일유격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며 '7.7사변'때에는 중공이 이끄는 동북 항일연합군이 이미 4만5천명에 이르렀고, 일본군과 중국영토 내에서 일본군으로 편성된 괴뢰 일본군 14만을 섬멸하기도 하였다. 1935년 중공이 발표한 [항일구국을 위해 전체동포에게 고하는 글]에서는 전체 동포는 총동원하여 일제히 일본과 싸우자고 호소한다. 중공의 홍군(紅軍)은 계속하여 선언을 발표하고, 전민족이 항일 통일전선을 구축할 것을 호소하는 작전을 구사하였다.

  • Beijing West train station에서 964번 버스
  • 전화:8389-3919
  • 개장시간: 7:00-19:00
  • 입장료: 10元

 



중국, 루거우차오(노구교) 세계문화유산 후보 확정

[헤럴드생생뉴스   2005-05-31] 



1937년 중일전쟁의 시발지였던 베이징(北京) 근교 루거우차오(蘆溝橋)가 중국정부가 추진중인 세계문화유산의 후보로 확정됐다고 베이징칭녠바오(北京靑年)가 31일 보도했다.

베이징시 문화국은 루거우차오 외에도 고궁박물관이 있는 자금성(紫禁城), 황실공원이었던 베이하이(北海), 천문대인 고관상대(古觀象臺),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 들어선 완평성(宛平城), 백송으로 유명한 계대사(戒臺寺), 봄이면 모란이 아름다운 담척사(潭 木+石 寺), 4195 개의 석판이 소장되어 있는 운거사(雲居寺) 등 7개 명소를 후보로 확정했다.



베이징(北京) 남서쪽 15㎞ 떨어진 운하인 융딩허(永定河)위에 세워진 루거우차오는 길이 266m, 너비 9m로 1189년에 만들기 시작해 1192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수해로 인하여 훼손되었다가 1698년에 복구되었다.

281개의 돌난간과 기둥이 있으며 기둥 위에는 사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기둥 위에 조각된 사자는 모양이 다양하고 살아 있는 듯하며 변화가 많아 ‘루거우차오 위의 돌사자가 몇 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속담이 전해진다. 조사에 의하면 큰 사자의 수는 총 281개이며, 그밖의 작은 사자들까지 합하면 그 수가 485여 개에 이른다.

루거우차오는 예로부터 베이징의 중요한 나루터였으며 이탈리아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는 루거우차오를 세계 최고의 훌륭한 다리라고 말했다.

특히 이 다리는 1937년 7월 7일 전면적인 항일전쟁이 시작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일본군은 7일 전투를 개시해 다음날인 8일에 루거우차오를 점령했고 28일 베이징과 톈진(天津)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했다. 이를 계기로 루거우차오 사건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중?일전쟁으로 돌입했다. 중국측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합작이 이뤄졌고 항일(抗日)의 기운이 높아졌다.

박영서 기자(pys@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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