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16경 (北京十六景)

 

16경

2.. 밍쓰싼링(明十三陵)<명십삼릉>

1. 완리창청 (빠따링)
(만리장성(萬里長城(八達嶺,
Great Wall)

중국정부가 일반에게 개방한 만리장성은 원래는 팔달령에 위치한 만리장성이었는데 후에 또 하나를 개방했다.  그곳은 모전곡 장성(무티엔위창청)으로 이 곳이 개방됨으로 비로서 진짜 만리장성을 보게 된 것이다. 모전곡장성은 자연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때묻지 않은 역사를 느낄 수 있다.

팔달령 만리장성

팔달령 장성은 현대식으로 겉을 거의 대부분 개조해 고색찬란한 고고한 맛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중국 관광의 관문이 이 곳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관광을 하는 곳으로 꼽힌다. 또한 원경을 가장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흔히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조물이라고 일컬어지는 만리장성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도 불린다. 일꾼이 성벽을 쌓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이다.
北京에 가서 만리장성을 구경하는 사람 가운데 열에 아홉은 八達嶺 만리장성을 보게 된다. 북경에서 가깝고 관공지로서 잘 개발된 곳이기 때문이다. 팔달령이란 이름은 이곳이 '四通八達'의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붙여진 곳이라고 한다. 버스로는 2시간, 택시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곳만 구경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관광객들은 보통 팔달령에 먼저 들렸다가 明13陵에 가거나, 반대로 明13陵에 들렸다가 팔달령 만리장성에 가게된다. 팔달령은 해발 1천m 정도의 고지대여서 평지보다 기온이 낮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평지는 따뜻해도 이곳은 추울 때도 있다. 겨울에는 모자, 목도리, 장갑 등 방한 대책을 확실히 하도록 한다.
만리장성의 성벽의 규모는 일정치 않다. 팔달령 부근의 성벽은 대체로 높이가 7.8m, 폭은 바닥이 6.5m, 위가 5.8m 정도이다.
팓달령의 성벽은 왼쪽보다 오른쪽이 경사가 심하지 않아 오르기가 편하다. 그러나 큰 차이는 없고, 풍경을 즐기기에는 왼족이 낫다. 양쪽을 다 올라 보는 것이 좋다. 약간 힘이 들더라도 중간중간에 있는 성루에도 올라가서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둘러보도록 하자.
北京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관광버스를 타고 타는 곳이 가장 편리하다. 버스는 대개 명13릉에도 들른다. 기차를 타면 또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지만 하루에 명13릉과 팔달령 두 곳을 다 돌아보기가 어렵다.

중국 본토의 북변, 몽골 지역과의 사이에 축조된 성벽.
지도상의 총연장은 약 2,700km이나 실제는 12,700리(약 6,350km)에 이를 것이다. 만리장성은 춘추시대부터 여러 나라에 의해 구축되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북변에 구축했던 성을 증축·개축하여, 인산(陰山)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뻗어 랴오양에 이르는 장성을 구축함으로써 흉노(匈奴)를 방어했다.

한 대(漢代)에는 둔황의 위먼관(玉門關)까지 장성을 연장하였다. 진·한 시대에는 현재의 장성보다 훨씬 북쪽에 뻗어 있었는데, 그것이 현재의 위치로 남하한 것은 거란(契丹)·돌궐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의 허난성(河南省)·산시성(山西省) 경계 북부를 타이항 산맥(太行山脈)을 따라 남하하는 장성도 북주(北周) 방어대책으로 그 무렵에 축조된 것인 듯하다. 당대(唐代)에 들어서 북쪽까지 판도를 넓혔기 때문에 방어선으로서의 장성이 필요하지 않았고 오대(五代) 이후에는 장성지대가 북방민족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방치되었다.

장성이 산하이관에서 자위관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명대(明代)에 들어와서이다. 명(明)나라는 이 지대를 9개의 군관구(軍管區)로 나누어 구변진(九邊鎭)을 두고, 장성을 통과하는 교통요지로 삼았다. 그러나 청대(淸代) 이후에는 군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단지 본토와 만주·몽골 지역을 나누는 행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하게 되었다.
축성의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전(塼)·돌 등이며, 성벽은 높이 6~9m, 폭은 상부 4.5m, 기부(基部) 9m이다.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은 남자는 사내 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장성 돌담에 빈틈없이 새겨진 낙서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좋지 않은 모습으로 남겨 놓았다. 장성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평생에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이것은 최근에 개방한 모전곡장성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여기의 장성은 낙서가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 낙서가 늘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살아서 남기고 있으니 '人在名虎在皮'는 세계 어디서든지 통하는가 보다.

팔달령장성을 보고는 이 곳 모전곡장성을 들려야 제 맛이 남으로 꼭 권장을 한다.

팔달령 장성은
북경의 북쪽, 약 75km의 산악부에 위치한 萬里長城 (중국에서는 '長城, 창청'이라고 부름)은 역사의 숱한 이야기를 감춘 유적으로서, 또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건조물로서 유명하다.

이 八達嶺의 장성은 明대에 만들어진 비교덕 새로운 것으로 모델화된 것이며 일반적인 장성은 이곳처럼 연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기원전 5세기 이래 각 지방의 나라들이 북방의 흉노 침입에 대한 방어벽으로 만든 長城을 진의 시황제가 연결한 것이 시초였다. 전국시대에 趙나라, 燕나라 등이 부분적으로 축성해 놓은 것을,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秦始皇이 흉노 등 변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해 증축, 연결했다. 그 후 역대 왕조들도 계속 성을 보완했으며 특히 明나라는 몽골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서 증축, 개축에 힘썼다. 현재의 성은 대부분 明나라 때 완성된 것이다. 한, 당대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소국이 분립한 남북조 때 북조의 몇 몇 나라가 국경 근처에 만든 것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명은 몽고의 재침입을 두려워해서 長城의 확장 강화에 나섰다. 현재 남아있는 長城의 대부분은 명대의 것인데, 발해만 河北省의 山海關을 기점으로 北京을 지나 黃河를 건너 실크로드의 북변을 따라 西行하면서 감숙성의 嘉浴關에 이르기까지 北京, 天津등 2개 市, 河北, 山西, 섬서, 甘肅 등 4개 省, 寧夏回族自治區 등 모두 7개의 省과 市, 자치구를 통과하고 있다.

만리장성 500km 더 찾았다       (중앙일보 2001년 02월 23일)


11-12-manrijangseong.jpg[홍콩〓진세근 특파원] 티베트(西藏)의 관문인 위먼(玉門)에서 티베트 끝단 뤄부보(羅布泊)까지 이어지는 5백㎞ 길이의 만리장성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원래 만리장성은 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간쑤(甘肅)성 자위관(嘉關)까지 6천7백㎞ 길이였지만 이번 발견으로 총 7천2백㎞로 늘어났다.

신화사 보도에 따르면 신장(新疆)문물고고(考古)연구소 무순잉(穆舜英.여)연구원이 티베트 지역을 탐사하던 중 위먼에서 서쪽으로 곧게 이어진 토담을 발견했다.

이 토담은 사막의 모래와 자갈에 덮인 채 숨겨져 있었다. 발견된 토담은 군데군데 유실되거나 심하게 훼손돼 있었지만 뤄부보까지 이어져 있었다.

穆연구원은 또 토담 주변 곳곳에서 녹슨 화살촉도 발견했다.

중국문물학회 뤄저원(羅哲文)회장은 "발견된 새 토담은 성벽과 봉화대를 갖춘, 완벽한 형태의 종합 방어체계이며 사서(史書)에 기록된 서쪽 만리장성이 분명하다" 고 말했다.

새로 발견된 만리장성은 벽돌로 지어진 동쪽과 달리 갈대잎.버들개지가 섞인 황사를 교대로 쌓아올린 전형적인 토담이다.

중국 사서에는 기원전 2세기께 한무제가 60만명을 동원, 서쪽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기록돼 있다.

<sk427@netvigator.com, 진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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