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결론

사해두루마리의 연구 결과 당시 이스라엘 중 가장 진실한 종파인 쿰란사회 무리들은 예언자와 계시를 중요시 여기고 신권을 중심으로 교회를 인도했다. 특히 그들의 교회는 메시아를 기대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 종교의 최고의 다수와 사회의 열광을 차지했던 바리세인과 사두게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이라 했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이단의 무리라 하여 옥에 가두고 처형했다. 신약성서를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의 핵심 종파인 바리세인과 사두게인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고 로마 인들은 둘러리였다

외식하고 말로만 하나님을 찾던 예수님을 죽인 바리세인과 사두게인은 쿰란사회의 사람들을 또한 이단이라 칭했고 이 쿰란 무리들을 냉대했다. 그러나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이단이라 칭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였고 이단이라 칭함을 받은 쿰란사회는 가장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메시아에 대한 신앙이 가장 강했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 무리 중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를 이단이라 한다. 이단이란 전통과 권위에 위배되는 종파를 이단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위배되는 조직과 예배의식 그리고 교리를 갖고 있는 교회가 이단이다. 그러나 이 지상에 있는 교회 중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처럼 성서에 입각한 교회는 없다.
(1) 완전한 초대 교회 조직(예언자, 12사도, 70인, 장로, 제사,
    집사, 감독 등),
(2) 계시 의 중요성,
(3) 침례의식 집행,
(4) 전세의 중요성,
(5) 삼위일체의 부정(인간의 교리),
(6) 예정설의 부정(인간의 교리),
(7) 신앙과 행위의 동시 중요성,
(8) 신전(성전)의식,
(9) 성찬식,
(10) 성서 해석의 일원화,
(11) 원죄설 부인,
(12) 승영

등은 성서의 정확한 근거로 행해진 것이며 지금까지 쿰란사회에서 잘 비교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늘날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를 이단이라 칭한 교회는 이 주장과 전부 반대되는 이론을 갖고 있으며 성서 해석의 정 반대되는 신앙을 갖고 있으니 이단은 누가 이단인가?
이단은 역사가 심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것이다. 사해두루마리 연 구 결과는 한 마디로 기독교는 헌신과 희생의 종교와 사랑의 종교다. 행함이 없는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종교는 죽은 것이다.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는 반복된 생활의 연속이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죄짓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행동의 신앙이 더욱 바람직한 것이다. 죄 짓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필요하고 이러한 신념과 확신은 성서에 입각한 하나님의 교회 조직과 교리를 기초로 해서 발생되는 것이다.

최근 세계 종교 중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가장 빨리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고고학적인 뒷받침의 결과이라고 사료된다. 사해두루마리의 발견은 하나님의 큰 섭리이며 모든 기독교인에게 인간의 교리를 믿지 말고 하나님의 교리를 추종하여 구원의 대업에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독선적이며 아집으로 쌓여있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고 진리를 받아드리 는 포용력을 갖어야 한다. 또한 위선과 황금의 노예가 되어있는 성직자가 있다면 봉사와 희생과 사랑으로 양을 먹일 수 있는 깨끗한 양식을 갖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인들은 경전을 읽고 연구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본인은 이 두루마리를 연구하는 가운데 성신이 같이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심을 다시 실감했으며 위와 같은 정확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므로 큰 간증을 갖게 되었 다.



중요 참고 서적

 

1) G. vermes, The Dead Sea Scrolls in English,
        Penguin, USA, 1975
2) William Sanford Lasor, The Dead Sea Scrolls,
        Moody Press Chigago, U.S.A. 1978.
3) Hugh J. Schonfield, Secrete of the Dead Sea Scrolls,
        A Perpetua Book and A.S.
        Barnes and Company,Inc., New York, U.S.A., 1957.
4) The World Book Encyclopedia.
        A Subsidiary of the Scott & Fetzer Company, U.S.A.. 1980.
5) Henry H. Halley, Halley's Bible Handbook,
        Zondervan Publishing House U.S.A., 1965
6)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 대사전, 평화당, 서울 한국, 1971.
7) 성경 (신약, 구약)
8)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진주(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발행)


※사해두루마리에 대한 참고자료와
    발굴현장 및 사진                     
<사진보기>   

 

쿰란(QUMRAN)
사해두루마리 사본
(The Biblical Texts Found in Qumran)

   1947년부터 1969년까지 약 20여 년 동안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에서 '유대 광야 두루마리' 혹은 사해 두루마리로 불리는 구약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모두 열한 개의 동굴에서 「에스더기」만을 제외한 구약의 모든 옛 사본들이 여러 종류 발견되었다. 거기에서 발견된 여러 종류의 사본들은 주전 2세기로부터 주후 1세기에 속하는 사본들로서 현존하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천년 이상이나 더 옛 것일 뿐만 아니라 구약 본문이 확정되기 이전의 본문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 본문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쿰란 지역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을 비롯한 발굴 문헌들 중에 해독되고 공개된 모든 자료를 마이크로휘쉬 자료에 담아 대한성서공회 성서학문헌정보자료실에 비치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유대 광야 두루마리의 발견은 20세기에 발견된 다른 어느 고고학적 발견보다도 성서학계에 커다란 흥미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1947년 겨울의 그 엄청난 발견은 사실 우연이었다.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는 근 2천여 년 동안 아무도 정착해 본 적이 없는 불모지이다. 다만, 기원전에 한때 엣센파라고 하는 유대교의 한 종파가 이 일대에서 살았을 뿐이고 지금은 아랍 유목민이 계절을 따라 옮겨 다니는 황량한 들판에 불과하다. 아랍 유목민의 한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계곡을 훑다가 우연히 한 동굴에서 단지 안에 보관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사본들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 후 수많은 단편이 이 일대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1947년 봄 한 베드윈(Bedouin) 소년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나섰다가 사해의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의 항아리에 보관되어 있던 양피지에 기록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Scroll) 사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서기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사본이었는데 이 사해 사본은 그보다 무려 1100여년이나 앞선 서기 전 100년을 전후하여 기록된 것이어서 성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51∼6년에 걸쳐 프랑스의 성서 고고학자 드보(R. De Vaux)는 쿰란 언덕에 위치한 유적지를 발굴하여 이곳이 요세프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엣세네(Essene) 집단의 수도원임을 밝히게 되었다. 수도원은 원래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이 보다 높은 지점의 계곡에 댐을 건설하여 겨울철의 우기에 흘러내려 오는 빗물이 수로를 따라 수도원의 물 탱크에 자동적으로 저장되었다. 한 주간 중 평일에는 근처의 수많은 동굴 속에서 기거하던 엣세네 수도자들이 안식일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물로 씻는 정결 예식과 성서 연구를 하였고 공동의 식사를 위한 대형 식당과 주방, 성서를 베끼는 필사실 등일 이곳에 갖추어져 있었다.

유대 광야에서 선교하던 세례요한이나 근처의 요단 강에서 그로 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 했던 예수도 이 공동체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는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 뿐이며 나머지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은 구약 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서,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등으로써,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1.<사해사본>이란 무엇인가

    금세기 중엽에 그노시스 세계, 헤브라이즘 세계 및 헬레니즘 세계에 있어서 각각 극히 중요한 대 발견이 있었다. 그것은 즉, 첫째 1946년(1945년이라고도 한다)에 나일강변의 한 촌락 나그.하마디(카이로의 남쪽 약 570킬로,옛 케노보스키온)에서 그노시스파의 서고를 발견했고, 둘째로 뒤에 말할 1947년의 사해 사본의 발견이며,셋째로, 크레테섬 크노소스 및 그리스 본토에서 출토된 선문자 B가 1952년에 영국 건축가 마이켈,벤트리스(1922-1956)에 의하여 해독되고, 이것이 기원전 1400년대의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라는 것이 판명된 일이다.

    사해 사본이 발견된 경위는 이렇다. 1947년 봄(1945년 이었다고 한다) 사해의 북서부 사막의 구릉지대 쿰란에서 베두인(아랍계 유목민)이 양과 염소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리에서 이탈한 한 마리의 염소를 찾기 위하여 한양치기 청년이 반 쯤 허물어진 벼랑의 동굴에 돌을 던졌더니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튿날 그 청년은 사촌 형제와 함께 그 동굴로 기어 올라가 보니 좁은 동굴 속에는 항아리의 파편이 흩어져 있으며 안쪽에는 뚜껑이 덮인 항아리 여덟개가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일곱 개는 빈것이었고 나머지 한 개의 항아리 속에는 큰 두루마리 한 권과 작은 두루마리 두 권이 들어 있었다.

    이 두루마리를 결국 베들레헴의 고물상에게 넘어가고, 그 해 12월에 예루살렘의 헤브라이 대학이 이 세 두루마리를 사들이게 되었다.

    그후 사해의 서북 연안의 동굴은 베투인들이나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답사되고 매년 계속해서 발견이 있었다. 와디,쿰란 지역의 동굴 발견은 1956년 봄까지 11개 곳(1956년에 발견)이었으며, 발견의 순서에 따라서 1(1Q,Qumran Cave1)에서 11까지 번호가 매겨졌다. 그 밖에 와디,므라바트 지역의 동굴, 킬베트.밀드 지역에서 발견된 사본들,그리고 킬베드,쿰란과 아인.페스카 폐허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모두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사해 사본 또는 사해 문서라고 부르는 것은,1947년에서 수년 간에 걸쳐서 사해의 서북연안과 서안에 펼쳐져 있는 <유다의 황야>의 동굴이나 폐허에서 발견된 고사본들을 말한다. 발견한 장소나 사본의 내용과 성격 등은 여러가지이며, 그 정리와 분류는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간행된 사본과 단편들을 대별하면 다음과 같다.

    (1) 와디.쿰란 지역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들
    (2) 와디.므라바아트(쿰란의 남쪽 약 16킬로미터,예루살렘의 동남남 약 24킬로미터)지역의 동굴들에서 발견된 사본 단편들(대부분은 2세기 전반, 특히 유대인의 대로마 제 2차 반란(AD 132-135년)시대에 속하는 것이며, 이 반란의 지도자 발,코호바에 관한 사료도 포함되어 있다.
    (3) 킬베트.엘밀드(예루살렘의 동남쪽 약 14킬로미터)지역의 유적(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자리)에서 발견된 신약성서의 사본 단편들(AD 5-8세기에 속하며, 쿰란 사본들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4) 아랍인 베투인들이 가지고 온 출저 불명의 사본 단편들.
    이것들 종에서 사해 사본이 중심이 되는 것은 (1)의 쿰란 사본들이다. 사본의 종류는 600종이나 된다고 하며, 두루마리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도 10권 이상이 되며, 특히 동굴 1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전권(54난의 양피지로 돼있으며,전장 7.34미터,폭 평균 26센티미터,각 난은 평균 30행.이사야 66장이 전부 들어있다)과 동굴 4에서 발견된 키므엘기는 귀중한 것이다. 사본들의 연대는 대개 기원전 3세기 중엽에서 쿰란 종단의 본거지가 로마군에게 점령된 기원 67년에 걸쳐있다.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초에 기록된 사본은 대부분이 구약성서의 사본이다. 대부분의 두루마리 연대는 성서의 사본도 쿰란 종단 문서도 기원전 2세기말 이후, 특히 기원 전후의 그시게에 속한다 <사해사본>중에서 오래된 것은 와디.므라바아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단편들이며 기원전 8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발견된 많은 사본이나 파편을 양피지, 파피루스 ,동판,오스트라카 등에 기록되어 있다.

    2.<쿰란 사본들> 은 무엇을 말하는가

    쿰란 사본들은 구약성서 정전.외경,주해서 및 쿰란 종단이라고 하는 유대교의 한 종파의 종교 문서로 나뉘고,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다음 네가지 문서로 대별된다.

    (1) 구약성서 정전의 사본들(단편을 포함)
    전체의 약 4분의 1이 되고 에스델기를 제외한 구약 각서가 있다. 신명기 이사야서,소예언서,시편등의 사본은 10종 이상이 된다. 주요한 것은 성마르크 수도원 소유의 <이사야서>의 두루마리(완본)와 헤브라이 대학 소유의 <이사야서>단편,<시편>단편 등이다.
    (2) 구약성서의 외경(또는 위경)
    여러가지 단편이 출토되고 있으나 가장 많은 것이 요엘서,에녹서 등이다.
    (3) 구약성서의 주해서
    창세기,시편,이사야서,호세아서,미가서, 나훔서,스바니야서,하박국서 등의 주해서의 단편들이 출토되고 있다. 가장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하박국서 주해서는 가장 흥미 깊고 중요한 것이다.
    (4) 쿰란 종단의 종교 문서
    사해 사본을 남긴 사람들의 종교 집단의 조직, 목적 계율,의식 등을 기록한 <종규 요람><종단 계율제요>라고도 한다. <회중규정>,<축복기도문>,<감사의 시편>등의 예배식문에 속하는 문서, 그 밖에 <빛의 아들들의 싸움의 규칙>,아람어로 된 <외경 창세기>등이 있다. 그리고 1952년 3월에 발견된 동굴 3 속에서는 성전의 보물표와 그 숨긴 장소등을 기록한 이른바 <동의 두루마리>가 발견되었으나 이 리스트가 성전의 보물이었는지,또는 쿰란 종단의 재산이었는지,아니면 허구적인 것이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동굴 1에서 남쪽으로 약 1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폐허는 오늘날 킬베트,쿰란<쿰란의 폐허>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이미 1851년에 F.두.서씨에 의하여 답사되었고 <사해사본>의 발견과 함께 이 폐허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51년에서 56년까지에 6회에 걸쳐서 예루살렘의 도미니코파 성서학원 원장 롤런,두.워 신부와 요르단 왕국의 고적 보존국장 G.L.하딩의 지도 아래 킬베트.쿰란의 발굴 조사가 실시되고 그 전모가 밝혀졌다.

    3.<쿰란의 폐허>는 어떻게 발굴되었는가

    두.워 원장이 얻은 결론에 의하면 ,킬베트,쿰란의 역사는 다음에 네 시기로 나누어진다.
    (1) BC 8-7세기(철기시대 제II기)
    (2) BC 2세기말-AD 68년까지
    (3) AD 68-90년경 (로마군의 점령)
    (4) AD 132-135년(유대인의 대로마 제2차 반란시에 유대인 저항군이 점거)

    (1)의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벽의 일부와 토기,오스트라카(ostraca)의 단편이 출토되고 있을 뿐이다.
    (2)의 시기에 속하는 유적은 쿰란 종단의 본거지로서 공동 목적을 위해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건물은 북서쪽 구석에 견고한 성루가 있는 30미터 * 37미터의 장방형 건물이며, 안뜰을 둘러싸고 동서남북으로 작은 방이있고, 집회실, 사경실,식당,부엌 등이 있다. 그리고 부근의 와디.쿰란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수로,7개의 저수조, 6개의 욕실 등이 있고, 이것들은 쿰란의 종단의 교리나 생활을 아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여기에 쿰란 종단이 형성된 것은 요하네.하르카누스(BC 135-104)시대였던 것 같다. 그후 기원전 31년에 이 근처 일대는 대지진을 만나 포기되었다. 이것은 건물의 균열로 알 수 있으며, 프라비우스.오세퍼스도 이 사실을 전하고 있다. 쿰란 사본들을 만들어 낸 쿰란 종단은 그후 재건된 것 같다.
    이곳은 기원전 4년의 헤로데 대왕의 죽음에서 기원 7년경까지 사이에 재건되고 건물의 개축이 있었다.
    (3) 의 시기는 유대 반란 제 3년에 시작된다. 출토품 중에는 반란 제2년과 제 3년의 날짜가 새겨져있는 화폐 70여매와 로마군의 화살촉 등이 들어있다. 로마군은 1세기 말까지 주둔하고 있었던 것 같다.
    (4) 의 시기에 속하는 층에서 출토된 로마의 화폐에 의하면 로마 점령군이 약 10년간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후 단기간이기는 하지만 이유대인의 제2차 대로마 반란(AD 132-135)때에 발.코호바를 수령으로 하는 저항군이 일시 이곳에 진를 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워는 건물의 동쪽에 있는 묘지들을 시굴했다. 또 제분소,빵 굽는 곳, 도기 공장 등의 작업장도 발견했다.
    이상의 모든 점으로 봐서, 이 폐허는 유대교의 어느 종교 집단의 본거지이며, 종단의 구성원은 부근 동굴이나 천막에 있는 일시적인 건물에 살면서 이곳을 도장으로 삼고 있었던 것 같다.

    4. <사해사본>의 발견은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종규 요람> 에 의하면,쿰란 종단의 단원은 자원해서 인적이 떨어진 이 유대 황야에 모여서 임박한 종말을 바라보며 메시아의 내림을 기다리는 종단의 엄격한 계율에 따라 생활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사경은 그들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에 의하여 구약성서 각서 및 구약성 외경의 대부분이 양피지, 파피루스,동판 등에 필사되어 남겨졌다.
    <사해사본>의 발견은 좁은 의미의 성서학이나 성서 고고학 분야 뿐아니라, 특히 유대교의 공인된 교정본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구약성서의 본문 비판학은 물론, 기원전후의 유대교 역사나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교섭, 원시 그리스도교단과 유대교와의 관계 등의 제 분야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사해사본>의 연구는 전문가들의 국제적인 협력체제 아래 계속되고 있다.
    쿰란 종단의 단원들에 의하여 필사된 구약성서의 사본들은 세계 최고의 것으로 높은 학문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스라엘 박물관은 예루살렘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나베.샤난<고요한 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언덕 위에 있으며 22에이커의 부지에 60년의 역사를 가진 옛 베자렐 미술관 (주로 유대인의 민속 자료,슈나고게의 비품등의 종교 사료,16-20세기의 근대 서구 미술작품)과 성서,고고학 박물관(주로 시리아,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오리엔트 고고 출토품)을 포함한 본관과 사해 문서들을 소장한 고문서관이 있으며, 그 중간에 현대 조각을 배치한 조각 정원으로 돼있다.
    그 밖에 창고, 연구실, 수복용 시설 등이 있다. 이 조각 정원의 설계가 그 규모 면에서 전후 최대인이 이스라엘 박물관은 1964년에 창립되고 이듬해 1965년에 개관했다. 그 내용은 광범위해서 고고학적, 미술학적, 민속학적 제 요소와 근대 미술관적 제 요소를 겸비하여 인류 문화유산을 통해서 미래의 전망을 하게 하는 총합적인 민족의 미술관이다.

    박물관 안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고문서관>에는 사해 문서 및 기원 2세기의 발.코호바의 반로마 봉기 관계의 고문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고문서관은 지상으로는 흰 돔과 장방형의 검은 외벽을 보일 뿐이고 중요한 부분은 지하로 들어가 있다. 그 내부는 이중의 포물선 돔으로 돼있으며, 그것은 굴곡이 있는 거대한 항아리 같이 생겼다. 소용돌이 치는 굴곡은 천장 꼭대기에 있는 약 1.8미터의 구멍까지 위로 뻗혀 있으며, 그 구멍에서 하늘 빛이 실내로 비쳐 들어온다. 고문서의 역사의 중요성을 재현해 주는 것 같은 설계와 구조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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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의
4-5동굴
Qumran caves four and five where the ancient manuscripts known as the Dead Sea Scrolls wer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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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쿰란 종파가 살던 마을

Qumran-Ruin on a terrace about 800 meters from the northwest coast of the Dead Sea. In the second century B.C. the sect of Essenes established themselves here. The Dead Sea Scrolls were found in grottos around these ru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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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사본이 보관되어 있던 단지

Jars from Qumran. This was used for storing manuscripts. These two earthenware jars are the only complete ones of their kind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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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사본 두루마리를 복원하고 있는 모습

At work on a manuscript.

 

 

 

 

 

 

사해 두루마리 연구를 지원하는 BYU 프로젝트

 사해 사본 전시회-사해성경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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