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파이와 산호]

 김산호의 '라이파이'(기념우표)

"라이파이" 아아...!! 얼마나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리운 이름인가?

라이파이라는 이름을 이미 알고 계신 분들에게는 그 이름을 불러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흥분과 감동으로 두근거리는 기분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6대륙을 종횡무진으로 나르며 날렵한 제비기로부터 가느다란 외줄을 타고 내려와 마치 전광석화처럼 재빠른 태권도의 발차기로 수많은 적들을 단숨에 무찌르고 하늘에 흰 구름 "V" 자를 그리며 유유히 사라지던 우리 대한의 청년 그의 이름은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아참! 제비기를 조정하며 라이파이의 생명 줄을 내려주던 이국적인 용모의 미녀 제비양...!!!?
그리고 라이파이와 제비양을 괴롭히던 녹색 드레스의 마녀 녹의여왕.....!!!
지금의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어른들을 순식간에 아련한 감상의 세계로 안내할 그리운 이름들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신비스러운 꿈의 세계가 그들 부모님들의 가슴속에 숨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실감나는가? 4~50대의 아버님들도 똑같이 어린 시절을 만화와 함께 자랐음을 발견 하실 수 있게 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이 글을 읽으면 가능하면 라이파이가 어떤 만화였는지도 한번 물어보시라. 여러분들은 뜻밖에 아버지의 만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열에 놀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라이파이 만화를 보기 위해서 잠못이루고, 시골에서 읍내 장터까지 수십리를 걸어서 라이파이 만화를 구하기 위해서 헤매던 그리운 시절!!!...

라이파이는 6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한국 최초의 SF만화시리즈 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알고 있는 미국의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베트맨처럼 라이파이는 그 당시 한국을 상징하는 유일무이한 만화 캐랙터였다.

1959~1962년동안 총 32권으로 연재되었던 김산호 화백(당시 필명 '산호', 당시 20세)의 작품으로, 이후 한국 SF액션물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작품입니다. 당시 인기는 매우 폭발적이어서 현재 40~50대의 중장년 여러분의 어린시절을 뜨겁게 불태웠던 작품이지요.
그러나 그 유명세에 비하면 단행본도 현재 전국에 10여권밖에 남아있지 않고, 타 매체(애니메이션 등등)의 존재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푹 꺼진 낡은 소파, 손때 묻은 만화책, 연탄난로와 쥐포 굽는 냄새가 있었던 그 시절의 만화방... 만화우표와 함께 그 옛날의 추억과 낭만을 느껴 보시기를....
'미국에 수퍼맨이 있다면 우리 나라에는 라이파이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김산호의 '라이파이'는 1959년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로 연재를 시작한 이후 '피너 3세와 라이파이', '녹의여왕과 라이파이' 등 계속적인 시리즈로 발간되어 사랑을 받아왔다. 미래세계 서기 2100년 정의의 용사 라이파이가 빛보다 빠른 제비호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우주의 침략자로부터 지구를 지켜낸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줄거리로 SF만화의 새 장을 열었던 작품입니다. 가슴에 'ㄹ'자를 새기고 흰 두건과 선글라스를 쓴, 아이들의 영웅 라이파이를 우표와 캐릭터로 만나보시기를.....
운영자인 점백이 박복주가 가장 좋아했던 '라이파이', 이 만화를 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망과 기대와 자신감 그리고 고난(?)을 겼었던가??!!! 그리고...어른이 다 되어 이 만화를 구하기 위해서 서울 청계천 중고 만화가계를 뒤지고 뒤져도(시간만 나면 헤메고 헤메고 다녔음) 없었다. 저자인 산호 선생님께 연락을 천신만고 끝에 하고 45년만에 만나 뵙고 만화팬들에 의해 일부 복간이 되어 라이파이 만화를 다시 보게 되다니....


2003년 8월27일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라이파이’ 회고전을 찾은 라이파이 열혈팬들이 만화가 김산호씨(뒷줄 가운데)와 함께 기념사진.  

본명 김산호

  •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남. 서울 인헌초등학교 졸업
  • 1952년 부산피난시절 부산일보 시사만화 처음 접함
  • 1957년 서라벌예대에서 본격적인 미술수업
  • 1957년 잡지<만화세계>에 독립군 이야기를 다룬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
  • 1958년 만화세계에 '황혼에 빛난 별'을 연재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화
  • 1959년 - 1962년 SF극화 '라이파이' 탄생
    제1부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제2부 피너3세와 라이파이 제3부 녹의 여왕과 라이파이/ 제4부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총4부작 32권.
  • 1960년 <십자가에 핀 꽃>, <검은 나비>, <모비딕>, <유리천사>,  <차돌장군>, <청동마왕>, <흑검무>, <광풍도>,  <피터링> 등 많은 작품 연재 
  • 1963년 가로가 긴 만화 '청동마왕'발표
  • 1966년 미국시장 진출 찰튼 코믹스 (Charlton Comics)
    전속작가 '샤이안 키드' '하우스 오브 양' '용녀'등 발표
  • 1988년 2월 세계 최초로 해저관광용 잠수함 엔젤-브이호 설계
  • 1994년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 발표. 동아출판사
  • 1995년 '라이파이' 만화영화 제작중
  • 1996년 '내불전' '두만강' 발표
  • 다물넷 운영 [민족사학자](도서출판)
    <조선해군과 대제독 이순신>, <한민족의 시조
    단군조선>, <한민족의 군신 치우천황>


복간본을 들고 있는 김산호씨 

서라벌 예대 서양화과 전공
Greenwich Art School에서 Commercial Art 전공
대표작:‘라이파이’ 등 500여 편 저작
1965년도미
NY Off Broadway, Village Times 등의 Art Director
Charlton Comics Group 전속작가
Iron Horse Publishing Company의 발행인 역임
대표작: Cheyenne Kid, House of Yang, Ghostly Tales 등을 비롯하여 300여 편 저작 Warren 출판사의 Vampirella 등 다수의 작품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 17개국에서 출간 1997년‘대 쥬신 제국사’ 5권 완간
 

2005년 라이파이 팬미팅(서울 종로)에서 저자 산호 선생님과 함께
초등학교 초반(1959-1963년경)에 최고의 희망으로 즐겨보던
만화 라이파이 저자 김산호 선생을 45년 후정도에 만나다!! [2005.12.2/종로 로마네꽁띠]

만화영웅 ‘라이파이’ 41년 만에 컴백

라이파이 홈페이지


 


 

 

 

 

'점백이(박복주)'는 만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초등학교때 만화를 좋아해 지금도 한결같은데 나의 자녀가 좋아하는것 보다 더 좋아하나 보다. 초등학교때는 만화가 귀해서 만화를 보기 위해서 10km 멀리 떨어진 읍내나 이웃 면소재지를 갔다오기도 했다. 특히 풍선이나 얇은 책자의 만화를 이용한 뽑기도 있었는데 만화를 뽑기 위해서 거액(?!)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 후 다행히 중,고등학교는 도시에서 다니게 되어 만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하교 길에 만화가게에 들려 만화를 보았는데 당시는 유명 만화가가 정성스럽게 그린 작품이 참 많았다. 유세종, 산호 등 만화가는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많았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걸어가다가 만화가게가 눈에 띄면 들려서 보고나오곤 했고, 대학생 책가방 속에 만화가 몇권 들어있기도 했다. 특히 보물섬에 대한 만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여 보고 또보고 했다.

  다시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아내는 이러한 내가 철(?)이 덜 들었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만화 보는 성향이 좀 바뀌었다면 지금은 역사적 물이나 코믹하고 익살스럽고  재치있고 기발한 착상의 만화, 모험이나 스릴있는 상상력이 풍부한 만화, 그림을 정성스럽게 그린 만화 등을 좋아한다고나 할까. 무역을 하면서 미국이나 동남아 특히 중국을 10년 정도 다니면서 만화를 수집했는데 여행가방 속에 만화가 가득했다. 그림 자체가 재미있는 것도 많다.

  만화는 표현하지 못하는 영역이 없다.
그리고 무한한 기쁨을 제공하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표현하고 미래의 세계를 그대로 타임 머신을 타고와서 오늘 바로앞에서 보여준다.  훌륭한 만화가는 미래의 세계를 미리서 그대로 보여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험으로 보니 그렇다.

1967년 상영

                  

 


‘코주부’에서 ‘까치 오혜성’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
한국 토종 캐릭 역사


우리에게 과연 한국 토종 캐릭터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던가? 갸우뚱갸우뚱. 그러나 1백년의 우리 현대 만화사를 함부로 보면 절대 안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사 만화(현대적인)는 1909년 대한민보의 한 칸짜리 만화. 본격적인 캐릭터가 등장한 건 좀더 후의 일이다. 40년대 ‘코주부’에서 지금 80년대 ‘까치 오혜성’까지, 우리 만화판 대표적인 캐릭터를 불러모았다. 뒤에 많이 언급되는 캐릭터, 특히 순정 만화 쪽 캐릭터들, 여기선 뺐다. 편견으로 선정한 것은 아니다.

1940년대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맨 처음 고바우가 등장한 건 1950년 12월 ‘사병 만화’. 그 후 1955년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문화일보에 연재되고 있으니(1만 회를 기록하며!), 정말 놀라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그가 50년 가까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그가 일찍부터 서민들의 대변인 역할(?)해왔기 때문. 무능한 정부와 악랄한 독재 정권에 대항해 바른 소리 하다 출연 정지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가 김성환이 이 캐릭터를 만든 건 6·25전쟁이 터진 직후,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다락에 숨어 지내는 동안이었다고 한다.

1949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연합신문] ‘멍텅구리’ 연재
1950년 [만화신보] ‘고사리군’
1950년 ‘사병만화’
1955년 [동아일보] ‘무언만화’
1956년 7월 27일 ‘의원 데모’ 사건 떼에 장택상이 개에게 물리는 그림으로 첫 필화를 겪었던 김성환은 1958년 ‘호통을 친 경무대 귀하신 몸’ 이라는 그림으로, 1961년 5.16직후 ‘엿장수 마음대로 가위질’ 이라는 그림으로 필화를 겪어야 했다.
1974년 영국, 독일, 일본정부로 부터 초청
1980년 [조선일보] ‘고바우 영감’

김용환의 ‘코주부’
 

 

코주부는 광복 직후 창간된 영자 신문 1945년 ‘서울 타임즈’에 실린 네칸짜리 만화를 시작으로, 한국 최초의 만화 잡지 「만화행진」(1948년)과 ‘서울신문’(1952년)에 연재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코주부는 영락없는 한국의 중년 남자. 똥똥하고, 키 작고, 체구에 비해 좀 크다 싶은 주먹코에 세 가닥만 달랑 남은 대머리…. 좀 과장되고 익살스런 이 낙천주의자는 때로는 백수 건달로, 술주정뱅이로, 「삼국지」 속의 장군으로, 탐정으로 변신, 온 나라 사람들에게 소박한 희망과 웃음을 주었다. 그러나 지나친 반공주의자에 계몽주의자로, 가끔은 객관성을 잃고 기울어진 모습으로 ‘우매한’ 대중을 가르치려들었다는 것이 그의 한계였다.

 

1950년대

김원빈의 ‘주먹대장’

1958년에 서점용 단행본으로 출간된 후 1992년까지, 「어깨동무」 「소년중앙」 「보물섬」 「월간 점프」 등에 무려 4차례나 재연되었던 걸작. 늦둥이 주먹대장은 머리통만큼이나 큰 오른손 주먹과 예사롭지 않은 힘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된다.그러던 어느 날 학선, 자신의 주먹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착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주먹대장은 그때부터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소년이 된다. ‘아기 장수 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산호의 ‘라이파이’
 

1940년 생
서라벌 예대 서양화과 전공
Greenwich Art School에서 Commercial Art 전공
대표작:‘라이파이’ 등 500여 편 저작
1965년도미
NY Off Broadway, Village Times 등의 Art Director
Charlton Comics Group 전속작가
Iron Horse Publishing Company의 발행인 역임
대표작: Cheyenne Kid, House of Yang, Ghostly Tales 등을
비롯하여 300여 편 저작
Warren 출판사의 Vampirella 등 다수의 작품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 17개국에서 출간
1997년‘대 쥬신 제국사’ 5권 완간

 

라이파이는 말하자면 한국의 슈퍼맨쯤 된다. 한국 최초의 SF 만화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거다. 1959년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로 처음 등장한 후, 「피너 3세와 라이파이」 「녹의 여왕과 라이파이」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등에 연달아 출연. ‘이 책이 깔리는 토요일 오후엔 수업 마친 학생들이 만화방으로 떼지어 몰려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져온다. 두건과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빛보다 빠른 ‘제비기’를 타고 다니는 멋쟁이 라이파이는 총알도 피하는 기인. 세계 곳곳을 다니며 악당들을 무찌른다. 시대적 배경은 21세기도 아닌 22세기(2130년). 최첨단 무기에 지금의 삐삐 같은 트랜지스터, 3차원 홀로그램을 표현한 입체 영상 등은 지금 봐도 경이롭다.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

 

 

1960년대

임창의 ‘땡이’

 

땡이는 64년 「땡이의 사냥기」에 처음 등장한 후 「땡이와 영화감독」 「땡이의 애견기」 「땡이의 그림자」 「잠자는 우등생」 등 임창의 거의 모든 만화에 출연한다. 땡이는 당시 모든 소년들의 우상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주로 부잣집 아들에다 뭐든 잘하는 똘똘한 우등생 역할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심지어 13세에 일본 명문고를 졸업하고, 미국의 하버드 대학을 거쳐 프랑스 파리 대학을 졸업하는 천재 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때는 이런 왕건전 만화의 왕모범 주인공이 인기였던 것이다.

 

1970년대

길창덕의 ‘꺼벙이’

1970년부터 2년 동안 「만화왕국」에, 그 이후 「소년중앙」에 4년간 연재되었던 작품 「꺼벙이」. 꺼벙이는 그러고 보니 범생이 땡이와 반대말 격인 캐릭터다. 반쯤 감겨서 멍해 보이는 눈, 꺼벙함을 더 강조하는 머리의 땜방 자국,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 그 생각이란 엉뚱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꺼벙이는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으니, 땡이처럼 너무 완벽해서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는, 언제나 만만한 친구 같은 녀석이었던 거다.

  • 1930년 평북 선천 출생
  • 1953년 화랑무공훈장
  • 1955년 만화계 데뷔 ( 잡지 [실화] 에 '허서방' 연재 )
  • 1968년 '재동이' [소년한국]에 13년 연재
  • 1970년 '꺼벙이' [만화왕국]에 2년, [소년중앙]에 4년 연재
  • 1971년 '순악질 여사' [여성중앙]에 18년 연재
  • 1973년 중앙일보 편집위원
  • 1974년 서울시 어린이 애호공로상 수상
  • 1979년 한국만화가협회 자문위원
  • 1982년 '정의의 재동이' 문공부 추천도서로 선정
  • 1989년 민주일보 연재
  • 1997년 현대정공 사보 '미스터 현정' 연재로 98년 집필중단]
  • 1999년 '꺼벙이' 부천 만화정보센터 명예의 전당 캐릭터선정
  • 아동만화자율위원회 심사위원 역임

 

이상무의 ‘독고탁’
 

독고탁은 1973년 「주근깨」를 시작으로 「비둘기 합창」 「우정의 마운드」 「달려라 꼴찌」 「울지 않는 소년」 「아홉개의 빨간 모자」 등 이상무 만화 대부분에 등장했다. 동글동글 삼등신의 귀엽고 엉뚱한 초등학생이었다가, 이유 있는 10대 반항아였다가, 독 품은 야구 선수였다가…. 주로 가족간의 대립과 화합을 통해 휴머니티를 구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답게, 독고탁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절대 좌절하는 일 없이 씩씩하게 자랐다. 독고탁이 등장할 때 늘 같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약간 이기적인 성격의 독고준과 생김새만큼이나 편하고 따뜻한 봉구, 착하고 영리한 슬기가 바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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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8월 김천 출생
1964년 박기준 선생 문하로 만화계 입문/1966년 ‘노미호와 주리혜’로 작품 시작/1978년 도서잡지 윤리위원 제정 우수만화상 수상‘비둘기 합창’
1978~1982년 한국 만화가 협회 이사 역임/1980~1982년 ‘비둘기 합창’, ‘내이름은 독고 탁’,‘다시찾은 마운드’, ‘태양을 향해 던져라’등 만화 영화화/1980년 문화공보부 장관 추천 도서로 선정‘비둘기 합창’, ‘현해탄 너머’1994년 명지 대학교 사화교육대 만화예술 창작과 출강(지도교수)

 

1980년대

김수정의 ‘둘리’

둘리 모르는 사람, 간첩이다, 정말로. 1983년 4월부터 1993년 7월까지 무려 11년 동안 장기 연재되었을 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니, 가히 국민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둘리 덕분에 성격 더러운 고길동씨와 아무것도 모르는(사실일까?) 희동이, 다소 염치없는 군식구 도우너와 또치, 마이콜까지 사랑받았다. 둘리와 고길동씨와의 눈물나는(너무 웃겨서) 주도권 싸움이 「아기 공룡 둘리」의 주내용. 우리의 꼬마 영웅 둘리는, 국산 캐릭터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증명한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은 물론, 소시지와 아이스크림, 반창고와 은행 통장에까지 등장.

1950년 경남 진주 출생1975년 ‘폭우’로 데뷔.
1979년 ‘막순이’
1981년 ‘오달자의 봄’ ‘홍실이’
1982년 ‘날자 고도리’ ‘신인 부부’
1983년 ‘아기공룡 둘리’ ‘쩔그렁 쩔그렁 요요’
1984년 ‘미스터제로’ ‘자투리반의 덧니들’ ‘천상천하’
1985년 ‘아리아리 동동’

1986년 ‘꼬마인디언 레이요’
1989년 ‘귀여운 쪼꼬미’
1990년 ‘일곱개의 숫가락’
1994년 ‘B.S 돌리’ ‘티처 X’
1996년 ‘아기공룡 둘리(얼음별의 대모험)’ 극장용 애니메이션.

 고우영의 삼국지,수호지

  Go! Go! Go!~

1938년 9월 27일 만주 본계호 출생
1946년 월남, 서울 정착
서울 동성 고등학교 졸업
작가 데뷔: ‘쥐돌이’(1952)
대표작: ‘일지매’, ‘수호지’ , '삼국지'  '열국지', '초한지', '임꺽정' 등
(사)한국 만화가 협회 회장 역임

관우,안량을 베다 
우영님의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올해 회갑을 맞은 작가 고우영씨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만화계에 데뷔, 40년 넘게 만화를 그려오면서 대하 역사만화, 특히 중국 역사만화쪽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거장이다.

1972년 1월 1일, 고우영은 일간 스포츠에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만화계의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특유의 해학과 기지로 성인들을 만화의 장으로 쓸어들이기 시작했으며 아동의 전유물로 생각하던 만화를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그는 한칸 혹은 네칸으로 실리던 신문만화의 관례를 깨고 하루 25칸 안팍의 파격적인 지면을 차지하며 신문연재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고우영의 <임꺽정>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신문의 판매부수를 좌우할 정도였다. 그는 그후에도 <수호지>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등을 연달아 연재, 부동의 인기작가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중국 역사를 망라한 만화 <십팔사략>을 펴냈다.

- 이야기

고우영 <삼국지> - 오리지날 표지고우영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정본에 근거를 두되 자신만의 해학과 기지를 담아 지금 이시대의 살아있는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점이다. 영웅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원작이지만, 이를 하찮은 병졸과 민초들의 삶으로(심지어는 말과 돌멩이의 삶으로까지..)파고들며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뛰어난 유머는 정말로 환상적이지만.. 때론 눈물겹기도 하다!..
그래서 난 누군가 나에게 중국고전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들을때면 주저없이 고우영씨의 작품들을 권한다! (내가 본 여러 삼국지 서적 중에서도 <고우영-삼국지>야말로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으로 기억남으니까..)

 - 그림

누군가 고우영의 그림을 보고 너무 조잡하다라고도 말하고 대충 그린 그림이라고도 말한다. 그렇다!.. 그의 그림은 너무 조막조막하고 때론 너무 정성이 없어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거침없는 필체(누구는 이를 보고 춤을 추는 듯 하다는 말로도 표현하더군..)와 놀라운 화면구성을 본다면 이상의 평가는 너무 작은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인물의 감정을 선 하나로 간단히 해결해 버리기도 하지만 때론 놀랍도록 섬세하고 강렬한 펜선과 화면구성은 정말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이현세의 ‘오혜성’
 

어떤 영웅이 필요했다. 마침 「공포의 외인구단」(1983년)이 혜성처럼 나타났고, 그 안에 어딘지 그늘이 있어 보이는 한 녀석이 우리의 맘을 사로잡았다. 바로 오혜성. 독특한 머리 스타일 때문에 까치라고 불리기도 했던. 그 역시 작품마다 성격이나 외모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내성적이고 어둡고 광기 어린 기본적인 설정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는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소름끼치는 다짐으로 야구를 시작한다. 이런 맹목적인 사랑은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그것이야말로 오혜성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아닐는지.

 

1954년   경북 경주 출생
1979년 ‘시모노세키의 까치놀이’로 데뷔
1981년 ‘격정의 까치머리’, ‘제5 계절’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80년대 만화붐을 조성
1982년 ‘국경의 갈가마귀’, ‘공포의 외인구단’
1983년 ‘지옥의 링’
1984년 ‘까치의 양지’
1985년 ‘고교외인부대’
1986년 ‘활’(일본어 판), ‘제왕’
1987년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1988년 ‘며느리 밥풀에 대한 보고서’,‘두목’, '아마게돈’,
       ‘블루엔젤’,  '카론의 새벽’
1989년 ‘춤추는 애벌레’
1990년 ‘병아리 광시곡’
1993년 ‘남벌’
1995년 ‘아마게돈’(에니메이션), ‘황금의 꽃’
1997년~ 세종대학교 교수

 

                             

만화영화 미키 마우스

 

미키 마우스…만화가로서의 디즈니의 첫 성공은 '오스월드'라는 토끼를 창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만화의 판권은 디즈니에게 없었다. 디즈니는 자기가 일하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 스튜디오, 저 스튜디오를 전전하다 28년의 어느날 아내와 함께 기차여행을 하는 도중에 미키 마우스라는 새로운 만화 주인공을 생각해냈다. 처음에 는 그 생쥐 이름을 '모티머'라 붙이려고 했는데 부인의 제안으로 미키 마우스라 명명하기로 했다. "미키는 항상 최선을 다하려 하는 작은 놈이다" 이렇게 디즈니는 말했다. 미키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 한 생쥐가 되자 '라이프' 잡지는 특집호까지 내며 그 속에서 이렇 게 소개했다. "어린이들은 미키가 웃긴다고 생각하고, 철학자들은 그가 미국의 소란스러운 개인주의를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2차 대 전의 미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때의 암호는 '미키 마우스!'였다. (홍사중 조선일보 논설고문).

미키 마우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당당하게 제 이름을 등재 한 생쥐다.

미키 전 일본 총리 등 각국 유명 인사들과 나란히 등장한다. 20 세기 후반 문화의 총아로 떠오른 만화영화와 캐릭터 산업을 선도한 문명사적 스타이기 때문이다.

미키 마우스는 월트 디즈니와 동료 만화가 어브 이웍스의 공동 작품이다.

디즈니가 아이디어를 내고, 이웍스가 그 주문에 따라 첫 형상을 그렸다. 최초의 미키는 눈이 왕방울만하고, 손에 장갑을 끼지 않았다. 현대의 미키는 점잖고 수줍음 많은 신사의 이미지를 풍기지만, 초창기 미키는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말썽꾼이었다. '모던 타임 즈'의 찰리 채플린을 염두에 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미키는 현실의 쓴 맛부터 봤다. 데뷔작 '미친 비행기'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 로 일약 스타가 됐다. 당시 미키 목소리는 디즈니가 맡았다. 젖소 이빨을 실로폰 삼아 치거나, 염소 꼬리를 감아 돌리는 개구장이 미 키를 내세운 이 영화는 음악과 목소리의 조화로 대성공을 거뒀다.

미키가 아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자 디즈니 사무실에는 부모 들 편지가 쇄도했다. 미키를 좀 더 착하고 얌전한 아이로 만들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키는 성격도 유순해지고, 몸체도 보다 부드러운 느낌 을 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는 더 이상 엎어지는 코미디를 보여주지 않았다.

미국 작가 존 업다이크는 "때때로 나는 왜 미키 마우스가 온 세 상에서 인기를 끄는 지를 규명해보려고 했다"라며"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착한 꼬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키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인간적 풍모를 지니게 됐다. 그는 최초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생쥐가 됐다. 예쁜 걸 프렌드 '미니' 도 만났다. 물론 미키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나치당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야유했다. 그런데 나치를 몰아낸 노르망디 상륙 작전 암호명이 미 키 마우스였으니, 인과응보였다.

잘 나가던 미키도 한때 침체기를 만난 적이 있다. 2차대전 직후 만화영화 주인공 인기 순위에서 3등으로 밀려났다. 동료 도널드 덕 이 1위, 토끼 벅스 바니가 2위였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가 1955년 미 ABC방송을 통해 '미키 클럽'을 내보내면서 미키의 인기는 되살 아났고, 같은해 디즈니랜드가 문을 열었다. 미키가 상징인 디즈니 랜드를 지금까지 찾은 관람객은 약 2억5천만명으로 추산된다.

미국 언론인 밥 그린은 미키의 매력을 이렇게 요약했다.

"미키는 순수의 상징이다.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표현한 다. 그는 세상사가 얼마나 소박하고 즐겁고, 어둠속에서도 자유로 운 지를 표현한다. 미키보다 더 매력적인 상징을 본 적이 없다.".
 

디즈니의 캐릭터 마케팅

디즈니 사는 이처럼 많은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기만한 것이 아니라 이들 캐릭터의 상업적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해마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마이더스 기업이기도 하다.

디즈니 경영 최고의 전술은 만화, 캐릭터, 비디오, 음반, 전자오락, 테마파크, 상점 등을 하나로 엮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른바 ‘토탈 마케팅’(복합상술)에 있다.

디즈니 사의 시너지 중시 경영은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월트 디즈니의 계열사는 우리 대기업만큼이나 많고, 신규사업에의 진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사업간의 시너지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신규사업 진출시에도 주력사업과의 연계성을 최우선 고려요인으로 삼고 있다.

80년대 초반 월트 디즈니가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시너지 창출의 원천이 될 수 있는 핵심사업 부문에서의 확고한 경쟁력의 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축적된 애니메이션 기술과 컨텐츠는 월트 디즈니의 자산으로 체계화되었으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토탈 마케팅의 제1단계는 신작 만화영화의 제작에서 시작되며 제2단계 전략은 1차 만화 파생 상품이라 불리는 다양한 캐릭터 용품의 개발이다.

이점은 1996년부터 시작된 디즈니 사와 미국 최대의 패스트 푸드점인 맥도널드와의 캐릭터 제휴계약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토탈 마케팅의 마지막 단계인 3단계는 제2차 만화 상품인 비디오, 음반, 전자오락,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본격 개발과 판매이다. 이러한 점은 초기 만화영화 제작 단계부터 거대한 음반시장을 겨냥, 미국 최고의 작곡가와 가수를 동원하기로 유명한 디즈니 사를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디즈니 사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완벽한 캐릭터의 창출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렇게 창조되는 디즈니의 1천여 캐릭터들은 현재 ‘미키 헌법’이라는 엄격한 규정에 따라 담배와 술, 약 등의 세 가지 제품에만 사용이 금지될 뿐, 나머지 모든 소비 상품과 미국의 검정 교과서에까지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소비자층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현재 비싼 로열티를 물고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하는 생산, 유통업체 숫자는 전세계적으로 3천여 개에 이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백 20여 개 기업이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디즈니 사도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새로운 소재 발굴과 캐릭터 개발의 어려움이 그것이다. 디즈니는 이와 같은 한계극복을 위해 중국, 그리스, 인디언, 이집트 등 이국적 소재 개발에 치중해왔다.

하지만 최근작 ‘뮬란’의 여자 주인공이 중국문화 이해의 부족으로 많은 부분 일본색을 띠게 되어 중국 등의 강한 비판을 받고 아시아 지역의 흥행에서 참패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국화 전술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최근작들의 표절 시비도 역시 디즈니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보겠다.


역설적으로 지난 수십년간 미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하청작업을 도맡아온 까닭에 그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제작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및 캐릭터 디자인 업계가 이제는 자신감을 가지고 세계 시장이라는 넓은 무대로 눈길을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자료원: 인터넷 검색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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