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 교회(와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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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대구 교구<대구 스테이크>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4가 1191-3
전화: 053-752-2007


대구 중앙지부 시절의 교회와 간판




 
[자료원: 최수영님의 '한국 말일성도 기억의 책] 
 


 

달구벌에 뿌려진 씨

대구 스테이크 수성 와드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말처럼
영적으로 척박하고 메마른 광야 같았던 대구 땅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훗날 일어나게 될
엄청난 기적의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1. 초창기 개종자 그룹

  1960년초 대구 지역에서 말일성도로 개종한 초창기 그룹은
김병만 형제(현재 대구 스테이크 축복사), 도길회(현재 선교사 훈련원 원장)였다.

김병만 형제는 1960년 9월 18일 부산 송도에서 침례를 받고 부산 지부 회원이 되었다. 당시에는 대구에 교회가 없었으므로 대구 미8군 캠프 워커에서 만난 미군 형제들과 홍범식 형제(전라북도 임신 출신)와 함께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1962년 7월 12일 미군 부대에서 브루스 케이 그랜트 장로와 바트 엘 버틀러 장로가 방문하여 그들을 대구 삼덕동 교회로 안내했다. 김병만 형제는 당시 영어 교사였다.  김병만 형제의 개종으로 인해 많은 그의 가족들이 개종했는데 김형제의 모친 정숙자, 부친 김동근, 동생 병지, 병채 그리고 누님의 아들 손진기, 용기, 양기 형제, 자매가 침례를 받았다.

 

 

도길회 형제는 같은 해 12월에 서울 서대문 지부에서 침롈르 받고 대구에 내려왔지만 당시 대구에는 교회가 없어 2년 동안 혼자서 예배를 보다가 1962년 여름 대구 동인동 집으로 그랜트 장로와 버틀러 장로가 방문하여 대구에 교회가 조직된 것을 알려 주었다.

도길회 형제는 1960년 12월 26일 장로 교회에 다니던 김영애 자매와 결혼했는데, 대구 지부가 생긴 이후 매주 안식일 아침, 저녁이면 같이 사이좋게 집을 나서 골목을 지나 다리를 건넌 후 각각 자기 교회로 예배보러 다니다가 이후 1962년 12월 2일, 김영애 자매도 침례를 받게 되었다. 후에 도길회, 김영애 부부를 통해 권찬태, 긴정애(김영애 자매의 동생) 부부도 개종하게 되었다.  

대구에서도 대학과 교회 모임에서 영어 회화반에 관심을 가졌던 학생들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초창기 회원으로 도길회, 김병만 형제 외에도 김병지 형제와 그의 어머니, 아버지, 김명비, 박석동, 배성수, 이인석, 정정길, 박동자, 박명자, 이명진, 최봉길, 최봉혁, 김상현, 최무선, 김영애, 홍희자, 이벙숙, 홍태교, 김상호, 배보수, 김미랑, 이종길 형제, 자매 등이 있었다.


2. 드디어 대구에 교회가 조직되다.

   선교부 기록에 의하면 1962년 3월 5일 당시 고든 비 힝클리 장로와 앤 듀러스 북국동 선교부장이 대구를 방문하여 건물 구입을 위해 대구를 살펴보고 서울로 갔다. 1962년 7월 12일 한국 선교부가 조직되면서 게일 이 카 선교부장에 의해 대구 지역에 교회를 조직하여 공식적인 선교 사업을 시작하는 발표를 했다.

1962년 7월 16일 교회 건물을 정하고 계약했으며, 1962년 7월 17일에 대구 지부가 조직되었다.
초대 지부장으로 브루스 케이 그랜트 장로가 부름 받았고, 대구 교회의 역사적인 첫 예배는 서원, 도길회, 김미랑, 김병만, 홍범식 형제와 바트 엘 버틀러 장로 등이 참석했다. 이후 매년 7월 17일은 지부 창립 기념일로 기념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1963년 2월 2일에 25세의 나이로 김상현 형제의 형 김상호, 김성규 형제가 개종했는데 당시 30-40명의 회원이 있었다. 그는 1963년 7월 1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6명의 노동 선교사(LABOR MISSIONARY) 중 일원으로 부름 받아 서울 용두동 교회 건물 짓는 일에 봉사히기도 했다. 또한 이때 도길회 형제가 대구 지부장으로 부름 받아 봉사했다. 1964년 2월 9일에는 한국 선교부 한인상 장로가 선교사로 부름받고 대구로 내려와 지부장을 맡아 봉사했다.

당시 지역에서 봉사한 초창기 전임 선교사들은 브루스 케이 그랜트, 바트 버틀러, 유진 피 틸, 앨버타 더불류 호프만, 게일 이 카, 제임스 알 브랫샤, 로날드 케이 낼슴, 데이비드 시 버틀러, 한인상, 서원, 천낙서, 황종섭 장로 등이다.

1965년 7월 15일 배수열(배동렬 형제 동생), 이미자 부부를 통해 여고 2년생 정경순 자매가 개종했고, 훗일에 도길회 형제의 소개로 현재 열동 스테이크장인 서희철 형제와 결혼했다. 이 무렵 신학도였던 남국화 형제도 시내 중심가에서 선교사들을 만나 개종하게 된다.

 

대구 지역 최초의 회원인 김병만 형제

 

당시 지부 건물은 대구 중구 삼덕동 2가 24번지에 위치한 제2군 사령관 관사와 관음사는 절 사이의 건물이었다. 현재는 관음사와 사령관 고나사는 옛모습 그대로 있으나 교회가 있던 자리는 음식점으로 바뀌어 옛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삼덕동 교회는 큰 방이 3개, 작은 방 1개, 큰 마루가 1개가 있는 큰 집이었다. 선교사들은 그곳에서 살았으며 예배도 보았다. 이후 지방부 시절에는 지부 대회와 지방부 대회를 열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한 곳이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곳이었던 건물 입구에는 관리인이 거주하던 별채가 있었고, 높게 세워진 간판과 나무로 지어진 대문이 있었다.(주: 상위 최수영 형제 제공 사진 참조). 그 대문 옆에는 작은 문이 있어서 보통 대는 그곳을 이용해서 출입을 했다. 포도나무가 있어 여름에는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고 관리인으로는 여러 분이 수고하셨는데, 서울에서 통역사로 일하시는 한민근 형제님과 노모가 살았던 적도 있고 부산에 사는 한정윤 형제와 한민근 형제가 한국 사회 산업 대학(대구 대학 전신)에 다니면서 자취를 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 회원들이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겨울이면 발을 이불 밑에 묻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3. 선교 사업과 교회의 성장

  1966년 6월 당시 지부장이었던 배수열 형제를 중심으로 남국화, 박석도, 윤선희, 박득자, 홍태교 형제, 자매 등이 합류하여 대규모 "하이킹 대회"를 개최해 말일성도들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날 가진 "한미 친선 하이킹 대회"에는 선교사, 회원, 미군인, 그리고 일반 시민 등 150여 명이 자전거 대열을 이뤄 대구역에서 출발, 반월당, 남문시장, 계산 성당(매일 신문사)를 돌아 자갈 마당을 순회했고, 말일성도란 깃발을 펄럭이며 연도의 많은 시민들의 박수 갈채와 함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70년대 지방부 시절 부산 지부 앞에서

 

1969년 포항으로 전근갔던 김병만 형제와 1971년 2월에 포항으로 발령 받아온  도길회 형제 등 두 가족이 포항에서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1969년 12월 7일 지방부 대회의 일부로 로드쇼 모임이 부산, 이.에스.에스 회관에서 있었다. 이날 모임에서 몰몬경의 니파이일서 3장부터 5장까지를 "레이벤의 놋쇠판"이란 주제로 열연을 한 대구 지부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고, 남국화 형제가 "앨마서 17-19장" 까지의 내용을 요약해서 "복음이 지닌 평화"란 주제의 뮤지컬을 연출했다. 배성수, 도길회 형제와 채정은, 이현주 자매가 배역을 맡아 열연했고, 특히 모사이야 왕의 네 아들을 노래한 곡은 직접 작곡, 연출해 예술적 재능을 나타냈다. 그는 훗일 한국 대회 부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2년 4월 대구 백화점 4층에서 첫 몰몬 전시회를 가졌는데, 이날 약 700여 명의 시민들이 다녀가 교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4. 수성 와드가 있기 까지

1962년 7월 17일 브루스 케이 그랜트 장로가 초대 대구 지부장으로 부름 받은 이후 1963년에 도길회 형제가 제2대 지부장으로 부름받아 봉사했고, 한인상, 배수열, 송정섭, 박석도, 배동열, 이원환 형제가 계속 지부장 직분을 이너나갔다.
1971년 2월 28일에 이인석 장로가 지부장을 맡았고, 우인서 장로가 제12대 지부장을 맡았다. 1971년 11월 28일 배성수 형제가 지부장으로 부름 받았고, 2년 후인 1973년에 송재현 형제가 지부장을 맡았다. 제15대 지부장으로 권오량 형제가 봉사했고,
박원걸 형제가 제16대 지부장으로 일했다.

대구 지부에서 대구 중앙 지부로 이어오면서 서대구, 동대구, 남대구 지부로 분리되고, 1979년 12월 8일에 대구 지방부 회원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중앙 지부(현 수성 와드) 표준 건물 기공식이 있었다.
1980년 1월 배덕수 형제가 지부장으로 부름 받았고, 그 해 10월 신축 건물로 이전해서 첫 예배를 드렸다. 1980년 11월에 서보국 형제, 김한규 형제, 강경구 형제가 계속 지부장으로 봉사했고, 1983년 5월 8일 중앙 지부가 삼덕 와드로 바뀌면서 초대 감독으로 지부장이었던 강경구 형제가 부름 받았다. 그 후 제2대 감독으로
배성수 형제가 부름 받았고, 와드가 통폐합 되면서 삼덕 와드가 수성 와드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1년 11월 10일 이병만 형제가 제3대 감독으로 봉사했고, 1995년 3월 26일 수성 와드에서 경산 지부를 분리시키는 위업을 이루었다. 그리고 1996년 10월에 부름 받은 김종현 형제가 현재 제4대 감독으로 봉사하고 있다.


5. 더욱 강화된 선교 선교 사업과 성전 사업 프로그램

대구 스테이크는 1987년 5월 8일 스테이크가 조직되어 초대 스테이크장으로 권찬태, 이어서 박원걸, 배성수 형제가 부름받았고, 1997년 8월 전정신 형제가 현재까지 스테이크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전정신 스테이크장은 특별히 가장이 가정에서 모범을 보이고 복음대로 생활할 것과 성전 사업에 참여할 것을 계속 강조해 오고 있다. 전국에서 리아호나를 가장 많이 구독하는 스테이크일 뿐 아니라1998년 12월부터 매월 둘째 토요일을 스테이크 단체 성전 방문일로 정하고, 전세 버스로 현재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실시되고 있으며 단체 방문은 새벽 5시부터 연속 3번의 의식에 30-40명의 회원들이 봉사하고 있다.

대구 스테이크는 수성 와드를 비릇하여 중리 와드, 대명 와드, 상인 와드, 경산 지부, 영천 지부, 경주 지부, 포항 지부, 구미 지부, 김천 지부, 안동 지부, 상주 지부 등 12개 단위 조직으로 발전해 왔으며, 스테이크를 더욱 발전시켜서 분리시키는 목표로 여러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자료원: 리아호나, 1999.6]

 

1963년 대구 지부 앞에 모인 청녀회 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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